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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보이스 고인돌과 백남준 고인돌 뮌헨 시립 미술관(구관 & 신관 중 신관:현대미술)에서 본 보이스 작품을 봤을 때 "바로 이게 미술이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고인돌이다. 선사시대 인류가 만든 최고의 설치미술, 그것을 보이스는 현대미술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남준의 고인돌은 전자 고인돌이죠. 좀 다르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하네요 전라남도 나주에 가면 고인돌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받는 영감은 정말 크다. 이곳이 바로 우리민족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의 든다. 천지인 기운이 웅장하게 느껴진다 또 다른 비교 보이스의 샤머니즘이 동물의 정령과 통하는 '탈혼'의 방식이라면, 백남준의 샤머니즘은 춤과 음악을 통한 '빙의(접신)'의 방식이다. 탈혼이 무당의 혼이 능동적.. 더보기
[백남준] 그의 형뻘인 요셉 보이스 상호작용 요셉 보이스는 천재다. 선사시대를 그렸다. 그런데 여기서 백남준 보이스는 상호동화작용을 한 면이 있다. 보이스의 오브제아트에서 백남준이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 아마도 놋그릇(놋주발)과 지게 아닌가 싶다. 어려서 큰집에서 제사 지낼 때 보면 놋주불이 상당 수 등장하는데 그 그릇의 품격이 드높아 보였다. 정말 눈부시게 빛났다. 1-2번 사진 백남준과 보이스 연결되어 있다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김수영 "세계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는 나의 욕망과 철학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것을 만족시켜 준 것이 이 포로 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수영 // 근대라는 시간이 “더러운.. 더보기
[백남준] 청소년기, 독학한 외국어는 '프랑스어' [시게코 여사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백남준 이야기 중 하나] 백남준이 625 전쟁으로 처음에는 피난을 안 갔죠(이 부분 내가 아는 것과 시게코 말 다르다). 가족들만 먼저 가고 그런데 다시 일본으로 넘어갔는데 그때 가장 먼저 챙긴 것이 프랑스어 사전이었다고 백남준은 10대 때부터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했단다. "서울을 떠나던 날 남준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북한군이 대문을 박차고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 남준은 아버지 명령에 따라 급하게 짐을 꾸렸다. 가방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머리가 뒤죽박죽되는 순간 남준은 책꽂이에 꽃혀 있던 불어 사전을 날쌔게 집에 그 안에 넣었다. 당시 불어공부에 재미를 들인 그가 애지중지하던 사전이었다" - 중에서 더보기
[백남준] 요셉 보이스, 앤디 워홀의 차이 왜 백남준이 요셉 보이스보다 한수 위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다 가장 정치적 예술가다. 정치의 예술화(민중미술)가 아니고 예술을 정치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보이스는 독일 녹생당 창시자로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하면서 정치적 예술가였다면, 백남준은 전혀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정치적 예술가였다. 그런 면에서 요셉 보이스보다 한 수 위다. 앤디 워홀은 보이스보다 한 수 낮은 정치 예술가 왜냐하면 낫과 망치를 노골적으로 그렸기에. 양혜규는 백남준과에 속한다. 한국에서 이런 그림 그리면 제재받겠죠 더보기
[백남준] 그의 동반자 시게코 우리가 잘 모른다 우리는 시게코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그 집안을 보면 상당히 지식인 층이었다.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화가였고 그래서 미술지망생인 시게코 생애 영향을 가장 많이 주었다고 그의 아버지는 도쿄대학 출신으로 중고교장이었다. 어머니는 갑부집안 딸이었다고. 시케코를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여자라고 투덜거렸지만 딸이 미술 한다고 하니 적극 지원했고 아버지가 딸을 위해서 지방 교장이었기에 동경에 가서 일본 최고대학 나온 미대생을 교사를 모시기 위해 동경 출장 갈 정도 그게 다 딸을 위한 아버지의 배려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게코는 타고난 반항적 소녀였고 그래도 공부는 1등을 했다고 중고시절 우리나라로 치면 성인용 국전(일본 중앙미술전)에 학생이 출품을 해 입선도 했으니 천재 소녀가 태어났다고 일본 신문에도 나고 그랬다고.. 더보기
[백남준] 잡동사니 예술가 손 닿으면 예술품 되다 백남준 '라인골드(Rheingold 바그너 중 첫 번째 전야제 악장)' 네온관, 소니 TV, 워크맨 세트 1993-1995 잡동사니 소위 비 미술적 재료가 천재적 예술가의 손에 들어가면 위대한 예술품이 된다 조형 구성 능력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백남준은 음악 전공자라 그런지 모든 구성이 역시 음악적이다. 악기가 빠지지 않는다. 하긴 비디오아트 자체가 사실은 매우 리듬감이 풍부하고 공명이 일어나는 음악적인 미술이다 백남준이 이런 작품을 하게 된 동기는 게임문화가 나오면서 그런 로봇이 너무 잔인하고 파괴적이고 판에 박인 것에 실망해 보다 인간적인 전자로봇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로봇 첫 작품의 대상이 바로 그의 부모였고 그것이 가장 따뜻한 인간의 정을 품은 로봇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보기
[백남준]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예술가 되어야겠다 예술가가 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한이 많은 사람이다. 여기서 한은 복수나 원한이 아니고 최고로 승화된 가장 수준높은 정서인 것이다. 한을 정을 승화하는 비슷한 그러한 삶에 대한 태도가 아닌가. 백남준의 한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버지 같이 부자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가가 된 것이다. 일제시대 부자가 된다는 것은 일본정부와 타협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천재성을 마음껏 펼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그가 만난 지식인 중 최고는 맑시스트였지만 결국 백남준은 그런 맑시스트마저도 능가하는 최고의 예술가가 된 것이 아닌가. 그가 1996년 지나친 작업과로와 욕심으로 뇌졸증으로 쓰러진 .. 더보기
[백남준] 지식과 정보의 사유화를 반대하다 백남준 물질적이든 지식적이든 그걸 사유 재산으로 소유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공유주의자이다. 특히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관심이 높았다. 그렇게 본다면 사상적인 면에서 맑스 계보학이다. 고장 난 맑스 사상을 고쳐서 재활용한 것이다. 백남준에게 최고의 적은 독점(사유화)이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늘 추구했다. 그것이 바로 비디오가 결국 인터넷으로 진화한 것이죠. 소셜미디어 즉 SNS가 된 것이다. 백남준이 평생 생각한 것이 바로 원할한 소통을 방해하는 정보의 독점을 교란시키는 일이었다. 그가 6개국어를 한 이유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정보독점세력의 구멍을 내고 다녔다 하여간 인공지능의 발달로 번역기 나와서 정보 독점이 그나마 많이 해소되었다 물론 세계신문정보가 문제 가 많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더보기
[백남준] 테이트모던 순회전: 'Stedelijk Museum' [NAM JUNE PAIK] THE FUTURE IS NOW Exhibition 14 Mar until 23 Aug 2020 백남준 Stedelijk Museum에 TV-Buddha를 설치 사진 : 르네 블록 이 작품은 로댕의 일차적 조각인 '생각하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다차원 전자조각으로 만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물론 백남준의 'TV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작품도 있다 1964년-1974년 백남준 뉴욕에 간지 10년만에 대성공한 작품이다. 뉴욕 미술계 지축을 흔들다. 10년간 절대빈곤 속에 빠진 백남준을 구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인류의 난제를 풀어내는 대안을 제시한 작품이다. 즉 인류가 구원을 받으려면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기술을 융합하여 새로운 공존과 평화의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는 메시지.. 더보기
[백남준] 2006년 사망, 뉴욕타임스(2월4일) 애도 부고기사 시게코 여사는 백남준 사후 그에 대한 글에서 2006년 그가 사망하자 는 그를 '성공한 반란자'로 말로 애도했다며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아래 글은 Robert Smith가 쓴 뉴욕 타임스 기고문 Tuming Television Inside Out and Art Upside Down Feb 4, 2006 https://www.nytimes.com/…/turning-television-inside-out-and… Turning Television Inside Out, and Art Upside Down Roberta Smith appreciation of artist Nam June Paik, who has died at age 73; Paik is widely considered inventor of 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