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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TV' 캔버스에 '음악' 그리는 미술 백남준 첫 전시가 1963년 '부퍼탈'에서 음악으로 그리는 미술전람회(음악의 전시) 부제는 전자 텔레비전 백남준의 전자붓으로 그리는 회화와 물감붓으로 그리는 회화의 차이는 바로 움직임에 의해서 결정된다. 독일의 대학자인 '와그리파(1486-1535)'는 "움직이기 때문에 살아있고 살아있기 때문에 움직인다" 예술에서 움직임(movement)을 중시한 거죠. 고흐는 움직이지 않는 유화 회화에서도 이미 움직임을 그렸죠. 꿈틀거리는 움직임 착시 현상을 일으키다. 그러나 백남준은 실제로 움직이는 전자그림을 그렸다. 그것이 바로 비디오아트. 또 하나 비디오 아트의 큰 장점이다. 21세기 정보와 지식의 폭발시대에 기존회화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천 가지 만 가지 풍경을 동시다발로 화면에 다 담을 수 있게 했다.. 그리.. 더보기
[백남준I]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 사이버네틱스의 핵심에는 피드백 고리가 있는데, 이것은 체계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 이 피드백은 체계 내 부분들 사이의 관계 뿐만 아니라 외부환경과 관련된 체계의 실행에 관한 정보를 포함한다. 피드백 고리는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남정호 선생(백남준 저자), 백남준 용어 '노스탤지어'를 이렇게 풀다 1950년 전쟁의 참화를 피해 등 떠밀리듯 한국을 떠났던 백남준은 종종 고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고국과 가족에 대한 향수나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영감을 얻곤 했는데, 그의 기억에 자리한 특정 날짜를 이용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말년에 그가 남긴 작품을 보면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백남준은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품게 되는 노스탤지어가 단순히 .. 더보기
[백남준] 내게 '세계문명사' 꿰뚫어보게 한 통로 나는 백남준을 통해 일본 예술가도 알게 되고 독일의 철학자들도 알게 되고 프랑스 미술평론가도 알게 되고 한국의 선사시대 역사를 알게 되고 미국의 전위적 시인과 무용가가 알게 되고 중국의 대사상가들 알게 되고 삼국유사와 몽골의 노마드적 살의 스타일 무엇보다 샤머니즘의 수준 높은 예술성과 역동성을 알게 되게 고줄 후 한번도 제대로 공부해 보지 않는 영어도 조금 공부하게 되었다. 백남준의 탁월하게 재해석한 맑시즘과 에로티시즘과 야생적 사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선사시대부터 첨단 현대예술을 알려주는 세계미술사 그 자체다 한국 옷: 큰 조각을 잘라서 걸친다// 서양 옷: 작은 조각을 하나하나 붙여 꿰맨다. 백남준의 절친인 일본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백남준을 위해서 디자인해 선물한 한복에서 착상.. 더보기
[백남준] 보이스, 옷(한복과 양복)의 예술화 백남준과 보이스, 오브제 아트로서 옷(한복과 양복)의 예술화 한국 사람은 한복을 입으면 누구나 스타급 배우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된다. 송창식 1975년 홍콩에서 열리는 국제 송 콘테스트에 나갔는데 첫 날 연회(reception)에서 한국에서 가장 비싼 양복을 입고 갔는데 다른 외국인에 비해 너무 후져 보여 다음날 연회에는 한복을 입고 갔는데 그래도 최고 양복보다 한복이 훨씬 더 멋지게 보였다고 하네요. 그 이후 송창식은 자신이 스스로 디자인한 한복을 입기 시작했고, 한복 50벌 정도 된다고. 요즘은 거의 100% 한복을 입죠. 2015년 뉴욕에 갔을 때 나도 한복을 입고 갔는데, 패션의 도시 뉴욕커 중 그냥 그런 사람은 날 안 쳐다보는데, 패션에 안목이 있고 수준이 높은 사람은 슬쩍슬쩍 쳐다보더군요. 그.. 더보기
[백남준] 이 세상에서 처음, 댓글을 창안하다 백남준은 그의 작품보다 그의 말 더 예술적이다. 민주주의가 뭐냐?고 물으니 "말대꾸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촌철살인이다. 민주주의는 쌍방향 소통, 즉 two way communication이라는 뜻이다. 즉 댓글이 민주주의라는 소리다. 그런데 반민주주의자들 이 댓글을 유용함 알아차리고 댓글부대 만들어 노무현 집권 이후 사이버 상에서 엄청난 욕설과 비방 등 왜곡과 변질을 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시민들은 그런 가짜 부대의 댓글을 가려내는 혜안을 갖추고 있다. 그것만 잘 해도 민주주의가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페미니즘 사이트를 배 나온 50대 남자들이 운영하면서 댓글을 쓰고 있다고, 이런 류의 사이트 경계!!!. 남녀대결구조 조성하고 여성비하와 여성협오를 도발한다. PC 게임방에서 이런 짓 하다가 학.. 더보기
[백남준] 30살 때, 전 세계 미술판 쓸어버리겠다 [1963-1993 백남준] 그의 생애의 하이라이트를 요약하는 시기다. 백남준 1963년 첫 전시를 열다. 30년만에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다. 백남준 1962년 30살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황색재앙이다(Yellow Peril, C'est Moi)". 내가 전 유럽과 미국의 미술판을 확실하게 쓸어버리겠다. 그걸 할 사람은 바로 나다. 역시 백남준이다!! 백남준은 예술이란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백남준의 평생 작업을 보면 정말 우리를 얼떨떨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매우 통쾌하다. 60년대부터 백남준은 유럽과 미국의 위풍당당한 고급 문화의 장벽을 허물기 시작하다. 그리고 60년 지난 지금 코로나 시대 구미의 신화는 무너지고 있다. 한국의 시대가 오고 있다 백남.. 더보기
[백남준] "예술, 대중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 백남준은 예술이란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다"라고 했는데 백남준의 평생 작업을 보면 정말 우리를 얼떨떨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정말 통쾌하다 60년대부터 백남준은 유럽과 미국의 위풍당당한 고급문화의 장벽을 허물기 시작하다. 그리고 60년 지난 지금 코로나 시대 구미의 신화는 무너지고 있다. 한국의 시대가 오고 있다 백남준이 2000년 1월 1월 0시에 발표한 가 그 예고편이다. 여기서 보면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는 장면이 나오고 결국 사자가 호랑이에게 밀려 공격을 더 못하고 물러나는 장면이 나온다. 2000년 뉴욕 구겐하임 회고전에서 '호랑이는 살아있다'를 서양미녀와 함께 외치네요!! 타고르는 일찍이 "코리아가 동방의 빛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백남준은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작품에서 한국이 .. 더보기
[백남준] '전지구, '평화'연결자(Peace Maker)' "세계가 파괴를 향하고 있는 현재 스타워즈(Star Wars)가 아닌 스타피스(Star Peace)를 만들어보고 싶다. 서울을 비롯해 미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를 동시 중계로 연결하겠다. 테크놀로지는 지금까지 옛 문화를 파손시켜 왔으나,최근 테크놀로지인 영상통신 기술은 각지의 고유문화를 교류시켜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는 지구를 둘러싸서 하나로 모을 수가 있다" -백남준 이것이 바로 1988년에 발표한 '지구를 온몸으로 감싸안다(Wrap Around the World)'라는 작품. 서울, 동경, 베이징, 독일 본, 런던 등 연결하다. 타고르는 일찍이 "코리아가 동방의 빛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백남준은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작품에서 한국이 21세기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격려사를 썼다... 더보기
[백남준] TV로 전 지구 연결하는 '위성굿' "우리 모두는 백남준의 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 이영철 교수. (We all live in the galaxy of Nam June Paik)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In 1964 Paik migrated to the US where he developed his video art in full swing. Paik is a pioneering media artist working with various technologies in creative and experimental ways. He saw the artist's role as consisting in thinking about the future and sought for better ways of global commu.. 더보기
[백남준] 왜 그는 캠벨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백남준 2006년 1월 29일 한국시간 1월 30일 마이애미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리고 뉴욕 자택으로 돌아와 2월 3일 오후 3시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뉴욕의 캠벨 장례식장(Frank Campbell Funeral Home)에서 시신을 공개하는 행사(viewing 아래)를 하면서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그런데 이 장례식장은 재클린 케네디, 존 레논 등이 장례를 치룬 곳으로 유서깊은 명소라고 한다. 그러니까 좀 비싼 장소인 셈이다. 왜 시게코 여사는 이 장소를 정했을까? 그건 백남준이 생전에 하도 가난하게 살아 죽을 때만큼은 좀 편안하게 보내고 싶어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이곳을 장례식으로 정했단다. "1966년까지 일본의 형님이 돈을 보내주어 도움을 받았으나, 그후 돈이 끊어져 한때 고생 많이 했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