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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왜 그는 캠벨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백남준 2006년 1월 29일 한국시간 1월 30일 마이애미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리고 뉴욕 자택으로 돌아와 2월 3일 오후 3시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뉴욕의 캠벨 장례식장(Frank Campbell Funeral Home)에서 시신을 공개하는 행사(viewing 아래)를 하면서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그런데 이 장례식장은 재클린 케네디, 존 레논 등이 장례를 치룬 곳으로 유서깊은 명소라고 한다. 그러니까 좀 비싼 장소인 셈이다.

왜 시게코 여사는 이 장소를 정했을까? 그건 백남준이 생전에 하도 가난하게 살아 죽을 때만큼은 좀 편안하게 보내고 싶어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이곳을 장례식으로 정했단다.

<백남준 뉴욕에서 초기 10년간 궁핍>

"1966년까지 일본의 형님이 돈을 보내주어 도움을 받았으나, 그후 돈이 끊어져 한때 고생 많이 했어. 뉴욕에 있을 때 Bell Lab란 세계적인 과학 연구소가 있었는데 그때 45센트면 식당에서 피자 한 개와 콜라 한 병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것을 45센트가 없어서 내 방에 올라가 15센트 짜리 라면을 끊여 먹었어. 1967년부터 록펠러 재단에서 돈이 나와 1년에 1만 8천 달러 씩 얻어 그것을 쓰고 있었어". - 한국일보 1984년 이경희 여사와 인터뷰 중

[평] 1964년-1974년까지 백남준 뉴욕 초기 생활에서 끼니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일본에 있는 형에게 가서 나에게 배당된 아버지 유산 중 일부를 달라고 해 형은 이거 마지막이야 라고 말하면서 1만 달러를 주었고 그걸 가지고 뉴욕으로 돌아온 후 맨해튼 골동품 상회에서 부처를 사올 수 있었고 이것을 가지고 드디어 그의 대표작을 만들다. 1974년 <TV 부처> 발표하면서 뉴욕 미술계 지축을 흔들었고, 그 이후에 생계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당시 백남준은 시케코 여사와 코뮌 생활을 할 때다 시케코 남준 부처 사오는 걸 보고 하도 어이가 없어 "당신 장사꾼이 아니고 예술가예요"라고 했단다. 그런데 대박이 터진 것이다

<백남준 뉴욕에서 초기 10년간 궁핍> "1966년까지 일본의 형님이 돈을 보내주어 도움을 받았으나, 그후 돈이 끊어져 한때 고생 많이 했어. 뉴욕에 있을 때 Bell Lab란 세계적인 과학 연구소가 있었는데 그때 45센트면 식당에서 피자 한 개와 콜라 한 병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것을 45센트가 없어서 내 방에 올라가 15센트 짜리 라면을 끊여 먹었어. 1967년부터 록펠러 재단에서 돈이 나와 1년에 1만 8천 달러 씩 얻어 그것을 쓰고 있었어". - 한국일보 1984년 이경희 여사와 인터뷰 중 [평] 1964년-1974년까지 백남준 뉴욕 초기 생활에서 끼니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일본에 있는 형에게 가서 나에게 배당된 아버지 유산 중 일부를 달라고 해 형은 이거 마지막이야 라고 말하면서 1만 달러를 주었고 그걸 가지고 뉴욕으로 돌아온 후 맨해튼 골동품 상회에서 부처를 사올 수 있었고 이것을 가지고 드디어 그의 대표작을 만들다. 1974년 <TV 부처> 발표하면서 뉴욕 미술계 지축을 흔들었고, 그 이후에 생계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당시 백남준은 시케코 여사와 코뮌 생활을 할 때다 시케코 남준 부처 사오는 걸 보고 하도 어이가 없어 "당신 장사꾼이 아니고 예술가예요"라고 했단다. 그런데 대박이 터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