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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제3회 백남준 포럼], "21세기는 한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2024년 1월 29일은 백남준 18주년 기일이다 [백남준 유언] "21세기는 한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작성 보완 중' 장소 광화문 스페이스 본 [왜 백남준은 생존 시에 데스마스크 만들었나? 이 마스크는 언제 만들었나?] ‘Nam June Paik Death Mask’ this mask was sculpted by a friend of Paik’s Yongjin Han in around 1994. 백남준 절친 한용진이 1994년 뉴욕에서 조각, 주조한 청동 '데스마스크' [백남준 뉴욕 자택 SOHO 머서 스트리트 110번지 어디 있나?] 위 사진 그의 아파트 입구. 우리가 보기에는 입구가 아닌 곳처럼 보인다. 백남준은 이 아파트 5층에 살았다. 한번은 장마철 비가 억수로 내려 그의 지붕에 물이 새는 .. 더보기
[백남준] 피카소보다 한 수 위 뒤샹, 뒤샹 보다 한 수 위 백남준 [백남준] 피카소보다 한 수 위 뒤샹, 뒤샹 보다 한 수 위 백남준 1978년 백남준 뒤셀도르프 미대 교수 취임 때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아카이브 전시 카라바조와 그를 모방한 네덜란드 등 유럽의 작가들 그리고 피카소도 마찬가지다. 뒤샹이 서양의 회화전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레디-메이드를 만들었다는 면에서 위대하다. 그런 면에서 피카소보다 한 수 위다. 그러나 뒤샹도 백남준에 비해서는 한 수 아래다. 백남준이야말로 세계미술사에서 진정한 창조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와 인터넷과 SNS 소통방식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핸하르트'는 백남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폰은 백.. 더보기
[백남준] 그의 예술동지 '플럭서스'의 경제 사정은 어땠나? 독일시대(1958년~1962년) 정도 백남준은 유학비를 받아서 경제가 바닥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동료 예술가들은 날마다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지경이었다. 남정호(뉴욕특파원)와 바우어마이스터와 인터뷰 소개 [질문] 남정호: 당시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나? [대답] 바우어마이스터: 당시 우리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플럭서스 동료 중에 디자이너 겸 기자가 있었는데, 시내에서 리셉션이 열리면 우리는 2마르크를 모아 그에게 쥐여 주면서 그곳에 가도록 했다. 그에게는 아주 품위 있는 검은색 양복이 있어서 그것을 입고 리셉션장에 가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보였다. 입구에서 초대장을 보여달라고 하면 그는 “아, 택시에 두고 내렸네”라고 둘러댔다. 연기까지 하며 행사장으로 들어간 뒤에는 호주.. 더보기
[백남준] 'Dany Bloch'(비디오아트박사) 1978년 12월 인터뷰 [백남준과 다니 블로흐(미술비평가)와 인터뷰1978년 12월] 에서 / 다니 블로흐(Dany Bloch 아래 사진)는 누구인가? 1925년에 태어나 1988년에 사망한 프랑스 국내외 비디오 아트 전문가. 1982년에 그녀는 비디오아트에 대한 박사학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아트 앤 비디오(1960-1980)', 1983년에 '비디오아트' 출간하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이 1920년대에 추상적 시간을 발견한 이래로 을 생각하는 건 더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1. "시간의 개념이 당신의 모든 작업을 조건 짓는 게 맞습니까?". 백남준: “그렇습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개념이며 피드백은 이를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저에게 피드백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 고리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폐쇄 회로 시간입니다. 노스.. 더보기
[백남준] 제2회포럼, 12월 9일(토) 늦은 3시 인사동 코트본관(2층) "창신동에 돌아가는 게 나의 소원이야(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나의 소원이야. 창신동에)" - 백남준(2005년 1월 마지막 인터뷰) / 뼈에 사무친 듯한 그의 유언이 들려온다. 백남준 유언은 아니나, "난 한국의 문화자본이 되겠다-날 실컷 써먹어라!-날 천년 동안 우려먹어라"라고 백남준은 5살부터 18살까지 동대문이 보이는 이곳에 살았다. 그의 한국적 상상력은 바로 여기서 겪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예술적 창조력을 낳게 한 원류(우물터)가 되는 곳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사진이나 건물과 같은 그런 흔적이 없으면 다 잊어버리는 속성이 있다. [백남준 다큐 영화 후기] 단군 후손 백남준 '홍익인간(두루 넓게 주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 전형적 면모를 보여주다 이 영화를 보면 백.. 더보기
[백남준] 1998년 교토상(예술부분) 수상자 상금 약 6억 교토상은 개인 수상자에게 상금이 6억 정도(백남준 수상 당시 금액) 돌아가게 하는 일본이 나름 노벨상 급으로 만든 상이다. 노벨 상은 상금이 12억 정도 된다. "우리들 인류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정신적인 면에서도 더욱더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 백남준 / 예술부분 역대 수상자: 존 케이지, 피나 바우슈, 브뤼노 라투르, 피에르 불레즈, 위르겐 하버마스, 안도 다다오, 폴 리퀘르, 렌초 피아노, 올리비에 메시앙, 로이 리히텐슈타인, 칼 포퍼, 미야케 이세이 등등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는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저는 음악, 미술, 춤 같은, 이런 것에 각기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나누어 갖.. 더보기
[백남준] 그 앞에 서면 세속된 내 모습이 부끄럽다 - 이우환 "백남준을 만날 때마다, 나는 자신의 세속화된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백의 작업은 무릇 인간의 삶을 침전과 정화로 향하게 하고, 굳어버린 제도의 쇠사슬에서 세계를 해방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그 밑바닥에 따뜻한 지혜의 작용과 끝없는 놀이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이 참으로 시대의 선구자이며, 새로운 표현자라고 일컬어 지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세계는 단순한 다다적인 부정적 파괴주의나 압화식의 표현으로 기호의 증식과 그 되짜기를 일삼는 구조언어론이나 그와 같은 수정주의를 넘어선 지평으로 열려 있다. 비디오를 살아 있는 동료로 포착하려고 할 때, 그것은 스스로 서구 형이상학하고는 다른 레벨에서, 때묻지 않고 감도가 높은 인간의 정신성이라고나 할 산다는 것의 질을 다시 묻는 작업이.. 더보기
[백남준] 내년 1월 1일 광화문에서 '우주오페라'로 다시 만나자!! "백남준은 세계 미술사에서 하늘(우주)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 오페라를 연주한 첫 예술가다" [22세기는 바로 오늘부터 시작한다] 40주년(1984~2024) 맞아 내년 첫날인 2024년 1월 1일 광화문 광장 역사박물관에서 지금보다 훨씬 큰 대형 스크린으로 방영해야 한다. 1984년 백남준 작품의 오리지널을 살리되 최근 NFT, 메타버스, 뉴미디어 기술을 합쳐 전 세계에 방영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백남준 작품이 임팩트가 없다고 하는데 이번에 한번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백남준은 1984년 캔버스로 전 세계를 연결해 우주로 확장한 천상에서 전자 오페라를 그려낸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와 하이아트를 반반씩(백남준 주특기)로 살려낸 것이다. 당시에 최고 대중예술가와 고급미술가가 총출동한 지구상에 한.. 더보기
[백남준] 정보화시대 예언가 - 황인평론가, 87년 백남준과 첫 대면 - 황인(미술평론가) 1987년 그가 갤러리 현대에서 근무할 때 백남준을 처음 만나다. 소중한 에피소드 많네요. 1984년 1월말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존 케이지가 음악을 맡은 '머스 커닝햄 무용단 공연'이 있었다(잘 몰랐던 이야기) 당시 백남준의 생생한 모습을 반짝이는 보석처럼 증언하고 있다 1984년은 특별한 해였다. // 새해벽두(1월 2일 새벽)에 백남준의 지휘로 뉴욕, 파리 서울 등지에 동시중계되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란 위성중계 생방송이 있었다. 그리고 1984년 1월말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머스 커닝햄 무용단의 공연이 있었는데 존 케이지가 음악을 맡았다. 미술대학 학생이었던 나는 그 공연의 뒷자리 일반석표를 샀지만, 7*50 쌍안경 덕분으로 퍼포머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스웨터 차.. 더보기
[백남준] '리베라시옹' 인터뷰, "난 전자화된 맑스-데카르트" 1995/8/30 [프랑스 매체 리베라시옹 인터뷰 전문 도발의 대가 백남준에게 묻다] 1995년 8월 30일 질문 : '앙리 프랑수아 드바이외' 기자 11개 질문을 던지다 Interview : A quoi servent les cyber-totems de Nam June Paik? A raison d'un robot par mois, l'artiste coréen s'estime plus rapide et plus heureux que Rodin. par Henri-François Debailleux / publié le 30 août 1995 à 7h08 // Avec sa bouille toute ronde et ses yeux malicieux, Nam June Paik est, depuis longtemps, pa..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