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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그 앞에 서면 세속된 내 모습이 부끄럽다 - 이우환

<이우환이 본 백남준 - 여백의 예술 95> "백남준을 만날 때마다, 나는 자신의 세속화된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백의 작업은 무릇 인간의 삶을 침전과 정화로 향하게 하고, 굳어버린 제도의 쇠사슬에서 세계를 해방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그 밑바닥에 따뜻한 지혜의 작용과 끝없는 놀이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남준 전시장에서 이우환

백이 참으로 시대의 선구자이며, 새로운 표현자라고 일컬어 지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세계는 단순한 다다적인 부정적 파괴주의나 압화식의 표현으로 기호의 증식과 그 되짜기를 일삼는 구조언어론이나 그와 같은 수정주의를 넘어선 지평으로 열려 있다. 비디오를 살아 있는 동료로 포착하려고 할 때, 그것은 스스로 서구 형이상학하고는 다른 레벨에서, 때묻지 않고 감도가 높은 인간의 정신성이라고나 할 산다는 것의 질을 다시 묻는 작업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백의 작업은 무릇 인간의 삶을 침전과 정화로 향하게 하고, 굳어버린 제도의 쇠사슬에서 세계를 해방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표현은 최근의 것일수록, 신선한 놀이 가운데 편안함이 넘치고 깊은 엑스터시를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하고, 아나키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조금도 심각하거나 명령적인 인상이 없는 것은, 그 밑바닥에 따뜻한 지혜의 작용과 끝없는 놀이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남준을 만날 때마다, 나는 자신의 세속화된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장난스럽게 히죽히죽 웃으면서 의아한 듯이 그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깨우친 듯이 거지인 양하면서도 당당한 그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보임에 비해, 가끔 신사복도 입고 주위에 신경을 쓰면서 사는 나는, 부자유스럽기 짝이 없고 아직껏 불필요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백을 본떠 나도 언젠가는 깨우친 표현자가 되고 싶은지 어쩐지조차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