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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피카소보다 한 수 위 뒤샹, 뒤샹 보다 한 수 위 백남준

[백남준] 피카소보다 한 수 위 뒤샹, 뒤샹 보다 한 수 위 백남준

<백남준, 세계미술계에 이름 올린 한국 유일한 예술가가 아니라, 세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비교 불가능한 예술가다. 뒤샹도 못 따라온다. 서구미술 우월주의를 백남준 한 방에 날려버리다. 그게 바로 비디오아트, 서양인들이 듣도 보도 못한 완전히 미개척 예술. 세계미술사에서 기념비적인 새 장르를 창조했다>

1978년 백남준 뒤셀도르프 미대 교수 취임 때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아카이브 전시 

카라바조와 그를 모방한 네덜란드 등 유럽의 작가들 그리고 피카소도 마찬가지다
. 뒤샹이 서양의 회화전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레디-메이드를 만들었다는 면에서 위대하다. 그런 면에서 피카소보다 한 수 위다. 그러나 뒤샹도 백남준에 비해서는 한 수 아래다.

백남준이야말로 세계미술사에서 진정한 창조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와 인터넷과 SNS 소통방식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핸하르트'는 백남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폰은 백남준의 아이디어다"

미술 평론가 진중권은 세계 미술사적으로 볼 때 '20세기 전반은 피카소, 20세기 후반은 워홀, 20세기 전체는 뒤샹, 그러나 21세기는 백남준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카라바조와 그의 후계자 위트레흐트 파 및 유럽 미술파는 누구인가?

뮌헨 시립미술관 카라바조 전시

1600년경 로마는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다. 팽창하는 대도시는 유럽 전역의 예술가와 건축가를 끌어 모았다. 그중에는 위트레흐트 화가 Hendrick ter Brugghen, Gerard van Honthorst  Dirck van Baburen이 있었다. 고대 예술 외에도 그들은 그곳에서 르네상스의 걸작도 연구했다. 그러나 그녀의 주요 관심은 당시 회화의 혁명적인 혁신이었다. 그들은 1604년에 특정 Caravaggio가 그곳에서 성취한 "놀라운 일"에 대해 "Schilder-Boeck"(Painter's Book)에서 보고한 네덜란드 예술가 전기 작가이자 예술 이론가 Karel van Mander의 요청을 따랐다.

카라바조는 회화에 혁명을 가져온 열정적인 성급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새로운 시각적 주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주의,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로 그의 작품은 양극화되고 자극적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처음 본 네덜란드 젊은이들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뮌헨 시립미술관 카라바조 전시

각지에서 로마로 모여든 많은 예술가들은 각자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왔다. 그들은 개별 훈련을 마쳤으며 해외 체류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목표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미지 주제에 대한 해석과 인상의 예술적 처리가 완전히 다르다. 이탈리아에 머무른 후 Ter Brugghen, Honthorst Baburen은 고향으로 돌아와 Caravaggesque 이미지와 자신의 시각적 전통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쳤다.

전시된 그림들은 1600년에서 1630년 사이의 유럽 카라바조주의(Caravaggism)의 핵심 시기에 제작되었다. 주제별로 비교해 보면 동시에 로마에서 활동했던 카라바기파 사이의 유사점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지역적 차이도 보여준니다. 회화 전통.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그림을 위해 특별히 작곡된 음악 작품을 경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