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어마이스터 한국에 와서 강연할 때 사진> 독일시대(1958년~1962년) 정도 백남준은 유학비를 받아서 경제가 바닥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동료 예술가들은 날마다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지경이었다. 남정호(뉴욕특파원)와 바우어마이스터와 인터뷰 소개 <그의 저서 '백남준' 중에서>
[질문] 남정호: 당시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나?
[대답] 바우어마이스터: 당시 우리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플럭서스 동료 중에 디자이너 겸 기자가 있었는데, 시내에서 리셉션이 열리면 우리는 2마르크를 모아 그에게 쥐여 주면서 그곳에 가도록 했다. 그에게는 아주 품위 있는 검은색 양복이 있어서 그것을 입고 리셉션장에 가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보였다. 입구에서 초대장을 보여달라고 하면 그는 “아, 택시에 두고 내렸네”라고 둘러댔다. 연기까지 하며 행사장으로 들어간 뒤에는 호주머니에 넣어둔 비닐봉지에 온갖 음식을 담아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그러면 목이 빠지게 먹을 것을 기다리던 우리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만큼 우리는 가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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