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랩소디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남준] 실실 웃으면서 서양미술판 뒤엎다 "깊은 변화를 가져오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진정한 영향은 소수파만이 일으킨다. 세계를 변혁하는 것은 이탈자이다" -모스코비치. 백남준은 서구에서 완전 이탈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뒤샹을 포함한 서구미술판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는 서구에 족보가 없는 비디오아트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미술과 음악을 합친 제3의 미술이다. "깊은 변화를 가져오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진정한 영향은 소수파만이 일으킨다. 세계를 변혁하는 것은 이탈자이다" -모스코비치. 백남준은 서구에서 완전 이탈자였다. 그러나 뒤샹을 포함한 서구미술판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는 서구에 족보가 없는 비디오아트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미술과 음악을 합친 제3의 미술이다. 기존의 서구미술과 완벽하게 다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주류미술에서.. 더보기 [백남준] "길은 우리가 걸어가는 데서 시작" 비디오아트 전망에 대해 물으니 백남준 확실히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뒤샹은 비디오 제외하고 모든 것을 다 했어요. 뒤샹은 들어가는 문은 크게 만들었는데 나가는 문은 작게 만들었어요. 그 문이 바로 비디오예요. 바로 그 문을 통해서 우리는 뒤샹의 막다른 미술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거예요. -백남준 장자사상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길은 우리가 걸어가는 데서 시작한다" 아무도 가지 않는 사막을 길을 걸어가다 보면 거기에 길이 생기는 것이다. 남북 통합의 길도 그렇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그 길이 죽을 수도 있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이다. 뒤샹을 미술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에 기성품을 가져다 놓은 것으로 봤다. 그래서 서구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되다. 쿠르베의.. 더보기 [백남준] 유럽미술관 그의 작품 소장 시작 백남준, 가장 새로운 것은 새로운 것대로 그 가치를 빛냈고, 가장 오래된 것은 오래된 대로 그 가치를 빛냈다. 백남준의 예술에 있어 첨단의 하이테크 기술과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제례인 샤머니즘의 다이내믹이 공존한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동시에 가장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세계에서 이런 예술가는 없다. 그는 동서양의 오래된 지혜 문서에 능통했다. 그의 시대를 앞선 비전은 바로 그런 선사 시대에 대한 지식과 고고학적 상상력에서 나왔다. 유럽에서 족보 없는 백남준의 전자 아트 작품의 초기 대표작인 'TV와 부처'를 용기 있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슈테텍라익 시립미술관에서 1976-1977년 소장 Nam June Paik shined the value of the newest as the new.. 더보기 [백남준] '자석TV', "나는 여기서 우주를 보다" "미국 '휘트니미술관' 소장품 중 하나. 2015년에 이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본 기억이 난다. 이 작품(자석 TV 1965)은 불의 발명 같은 하나의 혁명이다. 독불장군 TV를 내 마음대로 가지고 놀게 있게 된 것이다. 모니터에 장치를 통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일종의 개념미술이다" "(리처드 블로스) 1982년 백남준 회고전 때 이 작품을 봤다. 이 작품은 단순함에서 불구하고 그 안에 집중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하나의 우주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기가 중력처럼 작용하여 빛의 파동을 일으키는 이상한 우주 말이다. 지금 유럽 순회전 때문에 대여 중이다 - Richard Bloes // CELESTIAL SILENCE IN NAM JUNE PAIK .. 더보기 [백남준] 1984년 신문을 통해서 그를 만나다 1984년 조선일보에 출중한 정중헌 미술기자가 있었다. 그때 백남준과 정중헌의 인터뷰 내용. 내가 교사 시절 그 신문을 스크랩 해두었는데 종이가 거의 너덜너덜할 정도가 되었다. 벌써 36년이 지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문을 복사한 것이다 지금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래 사진은 지난번 김달진 연구소에 가서 다시 복사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 내용이 그의 작품 그 이상이다. 백남준의 천재성은 이런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 선생님이 세계적인 대가란 것을 알지만 왜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도대체 전위예술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신화를 파는 예술이지요.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한 실험이기도 합니다. 룰(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지요.” -예술 지망 학생들.. 더보기 [백남준] '전자로봇' 중 '데카르트' 국현소장품 백남준 '데카르트' 전자로봇' 이 작품 뒤에는 백남준의 낙서가 적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남자(Inscrutible Man)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개관]을 맞아 1층 1층 개방수장고(open storage/visible storage/window storage)에 전시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백남준 데카르트 오늘 기자들에게게 공개가 되었는데 작동이 되지 않았다. 황당한 사건이 되었다. 기자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라도 작동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리 수장고에 있는 작품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오늘은 그냥 정식 전시가 아니라 작동을 시키지 않았다"고 말하니 할 말이 없다. 전기세가 아까웠던 모양이다 "나는 헐랭이다" -백남준 "헐랭이가 일을 내도 낸다고. 헐랭이가 뭔 줄 알아 헐렁헐렁한 거 말이야 옷도 .. 더보기 [백남준] 1957년, 부친 '김갑권'도 당시 독일 근무 "1957년 백남준과 부친 김갑권이 독일에 같이 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지만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부친 독일 프랑크푸르트 혹은 베를린과 스위스 바젤과 제네바 사진이다. 이때가 1957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4년 후의 일이다. 당시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 봐도 참 특별한 사진이군요. 당시 독일은 전후 라인 강 기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상당히 높아져서 활기차게 보이죠. 각국 나라마다 다른 패션의 모자를 쓴 모습이 흥미롭네요. 세계 정상 회담처럼 식탁도 화려하고 옷차림도 예사롭지 않다. 모두가 너무나 멋진 댄디 풍이다. 사진 한 가운데 태극기가 보이고, 부친이 한국의 민간 대사 역할까지 했나요!! 어려서부터 이런 사진을 봤기 때문에 독일과 스위스가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 위는 19.. 더보기 [백남준] 서양에 족보 없는 비디오아트 창안 백남준 20세기 초에 나온 다다이즘(백남준은 플럭서스와 함께 네오다다이즘을 추구)과 20세기 말에 나온 포스트모더니즘을 잘 비비다. 그런 과정에서 TV 매체를 새로운 예술의 도구로 삼고, 서양미술사에 족보가 없는 전혀 새로운 비디오아트를 창안하다. 그렇게 아무도 가지 않는 현대미술의 신대륙에 달에 처음 도착한 우주 비행사처럼 발을 내딛다. 실험적 전위 음악의 기수로 서양음계를 해체시키는 액션 뮤직을 평생 살렷 무어먼과 함께 파격적 방식으로 선보였다. 또한 그걸 참여 TV로 더욱 높은 단계로 끌어올렸다. 그는 관념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몸을 자신의 예술수행(performance)을 위한 최고악기로 삼다. 지구촌을 놀이터 삼아 TV를 아기 장난감처럼 가지고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칼춤과 부채와 방울 대신 TV.. 더보기 [백남준] 92년 '도올'과 인터뷰, 폭소 터지다 [1992년 백남준과 김용옥 인터뷰 중 일부내용] "내가 가서 보니까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인상파도 독일의 작곡가들도 다 쓰레기야" - 백남준 김용옥 인터뷰 중에서 1992년 우린 역사를 너무 잘 못 봐 선진이다 후진이다. 이런 거 없는 거야 선진이라는데 가보면 후진도 있고 후진이라는데 가보면 선진도 있지 내가 일본가보니까 일본이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더라고. 그냥 우리랑 똑 같았어. 난 여태까지 일본 무서워해본 적 없거든 일본에서 음악공부 좀 하다가 질력이 나서 ...진짜 음악공부 해봐야겠다고 본고장으로 가자해서 경박한 나라는 안 가고 독일 찾아갔거든 그래서 독일에가서 보니깐 작곡가들이라는데 전부 엉터리들이었어. 그것뿐이 아니야 미술도 그래. 난 예술에 그 유명한 그림들 일본 놈들이 근사하게 .. 더보기 [백남준] 고인돌, 샤먼과 예인 전승의 합작품 아래 고인돌을 보면서 한국인은 '샤먼(제사장) 전승'과 가무를 즐기는 '예인(예술가)' 기질이 한반도인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그 예로 백남준만한 사람도 없다. 백남준의 '고인돌'이라는 작품도 있지만 저렇게 난이도 높은 쌓은 조형기술은 역시 한국이 최고다. 백남준 작품에도 그런 게 많다. 다다익선이 우선 그렇다> 왜 한반도의 고대인들은 이처럼 압도적으로 많은 고인돌을 만들었을까. 돌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물리적 조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공동체만 죽음을 묵상하고 기념할 수 있다. 그리고 풍요로운 생산물을 평등하게 누리는 사회만 이처럼 많은 실용적 기념물들을 만들 수 있다. 한반도 고인돌 사회는 묵상하고 기념하는 정신 공동체였고 평등하고 협업하는 경제 공동체였다. 2500년 후 코로.. 더보기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4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