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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92년 '도올'과 인터뷰, 폭소 터지다

<백남준 유럽 가보니까 다 쓰레기야> [1992년 백남준과 김용옥 인터뷰 중 일부내용] "내가 가서 보니까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인상파도 독일의 작곡가들도 다 쓰레기야" - 백남준 김용옥 인터뷰 중에서 1992년

우린 역사를 너무 잘 못 봐 선진이다 후진이다. 이런 거 없는 거야 선진이라는데 가보면 후진도 있고 후진이라는데 가보면 선진도 있지 내가 일본가보니까 일본이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더라고. 그냥 우리랑 똑 같았어. 난 여태까지 일본 무서워해본 적 없거든 일본에서 음악공부 좀 하다가 질력이 나서 ...진짜 음악공부 해봐야겠다고 본고장으로 가자해서 경박한 나라는 안 가고 독일 찾아갔거든 그래서 독일에가서 보니깐 작곡가들이라는데 전부 엉터리들이었어. 그것뿐이 아니야 미술도 그래. 난 예술에 그 유명한 그림들 일본 놈들이 근사하게 인쇄해놓은 것으로만 봤잖아. 그래서 굉장한 것으로 생각하고 동경했지 그런데 직접가보니깐 허름한 캔버스위에 나달나달하는 페인트 형편없더라고 뭐 인상파다 르네상스 예술이다. 루벤스다 하는 것 직접 보니깐 형편이 없었던 비싸다고 하니깐 대단하게 보였던 거야 난 정말 실망했고 이따위 것 가지고 내게 그렇게도 동경했던가 하구 말이야. 박물관에 멍하니 앉아있었어. 작곡가도 말야 그 대단한 독일이라는데 쓸 만한 몸에 4-5명밖에 안 되더라고 4-5명 정도는 탑이었어. 그러나 나머지는 어차피 쓰레기 아냐 그러니깐 난 용기가 나더라고. 우선 4-5명밖에는 안 되는가 내가 낄 자리도 아직 많겠고 생각이 들었고 또 못겨두 어차피 시원찮은 놈들뿐인데 그 시원찮은 놈들 속에 내 시원찮은 이름 하나 더 끼어 넣는 들 죄송할 게 없잖아. 피차 마찬가진데 그래서 난 곧바로 작곡 행세를 해버린 거야 그리고 지금부터 굵게 놀았지 그러니까 내가 독일에서 작곡가가 된 것으로 훌륭한 작곡가 때문이 아니라 나쁜 작곡가들이 하도 많아서 자신감이 생겼던 것 뿐이지

백남준의 맑시즘에 대한 생각은 아주 명쾌하다. 아래 도올이 쓴 책(석수화론)에서 봐도 그렇다. 여기서 4-5페이지 너무 길어 앞 부분만 간단히 소개한다. 그리고 한국의 민중미술에 대한 입장도 분명하다. 백남준과 민중미술의 차이는 나는 이렇게 본다. 민중미술은 정치를 예술화했다면, 백남준은 예술을 정치화했다. 우리나라 백남준 연구에서 맑스와 백남준은 전무하다. 사실은 이것이 백남준을 이해하는 키포인트가 되는데 그냥 무관심하다. 분단국에서 무슨 말을 하겠나
[평] 1. 백남준은 아버지가 너무나 큰 부자였기에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체계 다시 말해 무소유주의작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2. 백남준은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너무나 싫어했다. 나치가 바로 그런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였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애독서 중 하나는 '삼국유사'> 백남준, 경기고 다닐 때 동아일보에 계셨던 한문 선생 '천관우'에게 노장을 배웠다고. 노자는 '5천자'도 되어 있어, 아주 짧고 명확해(clear). 그런데 장자는 좀 어려워, 노자를 뻥 튀기면 장자가 돼. 그런데 그냥 튀긴 것이 아니고 장자에는 판타지가 들어가 있어. 장자의 판타지는 무시무시해. 하여간 미우주항공국(NASA)에서 일하는 사람들(항공 공학자, 우주 물리학자) 등보다 스케일 더 크거든. 장자에게서 배울 것은 시공간에 대한 거야. 시간하고 공간이 따로 놀지 않고 같이 놀아. 그리고 그 스케일이 커. 하여간 무시무시하지. 그런데 장자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 있어. 그게 바로 일연 스님이 지운 <삼국유사>야. 정말 대단해. 우리민족이 참 판타지가 있는 민족이거든. 노장 영향을 받은 것인지 몰라. 나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것 같기는 해. -백남준 문장을 약간 풀어보다 이만익이 그린 '삼국유사' 백남준 반면 '삼국사기(국수주의)' 백남준 이 문서를 엄청 싫어하다. 역사 기록은 승자의 문서라고 본다 그래서 중국 <사기>마저도 싫어한다.

모든 사람은 다 예술가다 -요셉 보이스
길거리에 가득 찬 사람이 다 성인이다. -양명학(맹자)
모든 사람이 다 살아있는 부처다 -부처

예술가와 철학자에게 노벨상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백남준 예술은 무목적적이다. 그 목적이 있으면 예술이라는 것이 그 스케일과 창조적 상상력에서 그 범위가 너무나 좁아지고 형편없는 지위로 떨어지고 만다. 그것에 대해서 상을 준다는 것도 사실은 좀 뭐한 일이다 예술가를 가장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목적을 가지는 일이다. 칸트가 말하는 합목적적 무목적성인가 아니면 무목적적 합목적성인가 하여간 목적이 없어야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백남준 말대로 예술은 스포츠가 아니다.

세상의 종말은 인류가 다 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태풍 후 자연이 깨뜻이 정화되듯 전 지구적으로 타락한 인간성의 거대한 정화의 한 과정이리라. 종교가 공포가 되면 인류를 타락시킨다. 종말이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지금은 모든 분야에서 종교가 가장 후진적이다. 독일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아직도 교회에 다니냐?" 성서를 거꾸로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복음서에 나오는 주기도문은 예수가 30년간 펼친 하느님 나라 운동의 골자가 다 담겨 있다. 구약의 십계명 이상으로 중요한 문서다. 그래서 교인들이 이를 암송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속에 담긴 중요한 메시지가 뭔지는 잘(전혀) 모른다 "악에서 구하옵소서!" 여기서 악을 좁게 해석하면 사회구조악을 말하는 것이리라. 21세기에 예화를 설명한다면 신자유주의도 바로 그런 사회구조악 중 하나다. "하느님 나라가 임하옵소서" 이 말도 의미심장하다. 인간 구원의 유일한 원천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정의가 실천되는 데 있다고. 아모스 예언자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의 정의란 "돈보다 인간이 먼저다" 뭐 그런 거겠죠.

남준과 도올은 여기까지 도올이 그의 말을 듣고 얼떨떨해 졌다. 충격을 받은 것이다 //<도올질문> 앞으로 예술가의 역할은? <남준대답> 21세기는 무직자(실업자) 천국시대다. 그러니 예술가는 사람들이 직업이 없어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을 발상할 것 같기도 하다) 그리로 앞으로는 예술가도 자본주의에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기여해야 하다. 즉 폭력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소비를 조상시켜줘야 한다. 즉 재미라는 소비를 만들어줘여 한다. 어떻게 많은 시간을 잘 재미있게 소비할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도올질문> 종교는? <남준대답> 나는 불교나 기독교 종교에 관심 없다 예술적 모티프를 취할 뿐이다 <도올질문> TV는? <남준대답> TV는 one-way 비디오는two-way 신문도 one-way지만 TV는 신문보다 더 위험하다. [평] one-way는 독재방식 two-way 민주방식 백남준에 민주주의 뭔가? 라고 물었을 때, 답이 "말대꾸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출처를 못 찾다. 여기 근처 같은데 못 찾겠다.

<도올질문> 플럭서스의 정신은 뭔가? <남준대답> 자유를 위한 자유이며 자기를 위한 위반이다. 추신, 비디오아트에서 쾰른 스테인드 글라스 보고 영감을 얻은 건 사실이다. 신비로움에 감동을 받았다. 빛이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저 건너편 바깥에 있다. 그리고 그 바깥에 있는 빛 때문에 information생겨난다. 그래서 난 그걸 좋아했고. 그걸 내 아트로 옮기기로 했다.

도올 윤리 문제(남을 해지지 않는 범위에서 하면 된다) 섹스문제(너무 과하면 문제가 있다) 등등 질문이 많아 신조어 하이브리드 자동차, nuclear fusion 등 그는 자신의 스승인 존 케이지에 대해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사람 등 한국미술학도에게 주고 싶은 말 '삼국유사'를 읽어라. 90년에 '한국미술5천년전' 소감에 대해서는 한국적 판타지 다 죽이고 맨 중국적인 것 전시했다고 맹비난하다. 오히려 한국민화를 전시했으면 훨씬 좋았겠다고 소감을 남겼다.

최초의 발상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우연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 우연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역사적 연속성(continuity)이다. 나보다 10살 위인 독일의 Goetz가 레이저 부대에서 일해 1958년 컴퓨터 프로그램 논문 발표, 자기가 상상한 것 시물레이션만 했지만, 실제로 만들지 못했다. 예술가인 나에게 완성도는 중요하다. -백남준 [평] 레이저 아트, 백남준은 자기 보다 혹시 먼저 한 사람이 있지만 그들이 연속성 실천성이 없었기에 실패로 보는 것이다. 자신은 '레이저 아트(1958-2000)'를 끝까지 했다는 소리다.

내가 30대 비디오 아트를 할 때 스튜디오를 2개 가졌다. 초기 내 작품을 훔쳐가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1개의 스튜디오만 보여주고 다른 1개의 스튜디오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내 작품을 도둑질해간 작가놈들과 평론가들은 다 불러놓고 2개를 다 보여줬다. 그래서 나의 원조성에 대한 공인을 받게 된 것이다. 그 뒤로는 그들은 군소리 못했다. 예술가 중 좀 야비한 사람도 있다.

도올: 당신의 성공에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많은 노력이 있는 것 같다.
남준: 예술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더 중요한 것은 착안점

<도올질문> 당신은 나처럼 심각한 공부독서 안한다 그런데 그렇게 박식한가?
<남준대답> 난 당신처럼 그렇게 심각하고 공부나 독서하지 않는다. 내 지식원은 대강 신문이다. 그런데 신문은 그 나라 문화수준을 반영. 뉴욕타임스만 읽어도 우리나라 학자 서재에 쌓여있는 책의 정보보다 더 명료한 세계사의 인식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3대 정보:슈피겔-CIA-미쯔비시다.

<1992년 "호랑이를 주고 고양이를 들여온다" -백남준. 미술시장전략 "예술은 텃세다. 보편성이 아니다"(예술은 실력보다 국력이 좌우한다?)> 한때는 프랑스, 한때는 미국, 지금은 독일로 그 시장이 옮겨왔다. 왜냐하면 독일사람 돈이 많아 미국 작가 작품 많이 사기 때문이다. 90년경 프랑스 개념미술 화랑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더 많은 작품 산다. 그런데 안목이 매우 높다.이제 결국 새로운 시장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지금 비싸지 않지만 나중에 비싸질 작가의 작품이 많다. 안목을 가지고 계속 사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작가들의 위치가 국제화된다. one-way 팔려고 하면 그건 금물. 미술시장도 two-way communication로 가야 한다. 우리는 항상 호랑이를 주고 고양이를 들여오고 있는데 새로운 시장 리서치가 필요하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예술은 텃세다. 보편성이 아니다"

[유머] <도올질문> 당신 천재아닌가? <남준대답>: 난 천부적 재능 없어. 친구들 잘 사귀었을 뿐, 플럭서스 친구들 다 유명해지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유명해졌지. 내 인생의 모든 경험을 2개의 속담에 다 담겨 있다 1)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 2)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

[백남준 유머 3개] 92년 과천에서 관객과 일문일답 중 3가지
@ <질문1 관객> 당신은 종교와 무관하다고 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반드시 신의 소리라고할까? 영감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 인스퍼레이션은 어디서 받는가? <대답> 그건 직업적 비밀인데 어떻게 말하나?(웃음바다)
@ <질문2 중2여학생> 지금까지 질문이 좀 어렵습니다. 미술시간에 느낀 건 하나 질문합니다. 전 미술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그림 그리는데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요? <대답> 바로 그대처럼 아무생각없이 그리는게 최고의 그림이다. 아무쪼록 아무생각없이 그려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선생님 말씀을 듣지 말라는 것이다(또 다시 거대한 웃음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다).
@ <질문3 도올> 당신에게 예술이란 뭔가? <남준 대답> 현재 나에게 있어 예술이란 돈을 벌는 것이다.(과천 장내가 떠나갈 듯이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우리 신문을 보면 4분3이 정치야. 우리나라는 정치 관심을 반으로 줄여야. 구미는 specialist를 위한 기사가 70% 정치보다는 수학, 물리학, 역사학, 철학 이런 걸 더 공부하라. 그리고 narrow-based specialist가 되도록 노력해 봐 -백남준

[평] 정치에 관심을 가지되 거기에만 관심을 가지면 괴물이 된다 그만큼의 문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사'와 '서사'가 같아 가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뭐 그런 소리겠죠.

한국은 여자가 무지하게 센 나라야. 난 어려서 누나, 엄마 품에 자라 여성적 분위기 지배적인 환경에서 자랐어. 한국 여자들 돈 만져도 무엇을 해도 겁이 없어. 세계 사람들 마피아 두려워하는데 한국 여자들 하는 계는 더 세고 무섭다. 계라는 것이 고리대금업이야. 한국 여자들 남자들에게 다 순종 하는 것 같아도 안방을 잘 지키고 있어. 사실 한국 남자들 허깨비야. 이런 여자 문화 속 '굿(샤먼)'이 태어난 거야.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는 여성 형태를 닮아 순종 하는 척하면서 실속을 차린다. -백남준 [평] 우리가 미국에게 순종 하는 듯하지만 실속을 차리고 있는가.

한국예술가들 괴롭히는 것은 무지다. 그러다보니 지식을 흉내 내게 되는데 그러면 거짓된 지식의 질곡 때문에 감수성 후퇴하거나 속박을 당한다 북한사람들이 발해사를 복원한 것은 이런 것이다.. 한국 작가들이 최치원, 김대문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조선조가 왜 망했는지? 세계사적 맥락에서 해방 후 근현대사 속에 당한 그런 민족모순의 원인에 대해서 자기 나름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백남준 [평] 한국예술가들은 머리는 좋은데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리인가.

1992년 서울 학생들과 인터뷰에서 백남준, 아카데미즘에 융단폭격 가하다. 대학에 별로 정직한 사람 없어. 대학에 들어가면 information 왜곡되거든. 어떻게 그런 곳에서 창조가 나올 수 있겠어. 대학을 한 번 때려쳐 본 사람이 아니라면 인류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구! 우리는 학문만 하면 안 돼. 살아있는 진실을 찾아내야지! [평] 그리고 보니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페북 사장 마크 저커버그(하버드 중퇴) 등 미국 천재들 대부분 대학을 때려치웠다.

1992년 백남준 서울에 와서 누이 차를 타고 가장 빈민가를 가자고 했고 가 보았더니 서울은 아무리 가난해도 뉴욕의 브롱드 등에서 보는 슬럼가는 없었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뉴욕 Blonde에 가 보니 정말 도시가 반은 죽은 것 같더라. 처참하게 hopeless... 우리나라 사람은 그런 것을 참을 수 없다. 아무리 빈천해도

백남준 책을 읽으면 하루 종일 웃음이 나온다.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유럽 가보니 쓰레기야 얼마나 통쾌한 말인가!! ㅎㅎ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할 때 의도가 어린 백성을 위한 것이지 학문을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는 소리인가> 영어로만 하면 사람들 사고력이 단세포적이고 천박한 거야. 한자권 문명이 인류의 희망이야. 그 가능성에서 낙후하면 안돼 한문 얼마나 심오하고 그 의미가 무궁무진한가.그 예술적 가능성 우리민족이 포기하면 안 돼 등등 -백남준. 그는 한글 전용을 문화 후진국으로 가는 길로 봤다.

1992년 백남준 회갑 서울 파티에서 참석자 명단 대충 이렇다. 도현순(갤러리현대) '바바라 로즈(B. Ross)' 미국 저명 전위 아트 미술사가), '어빙 샌들러'(I. Sandler 미국 유명미술사가), 프랑스 가장 권위있는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 베니스시장인 '보니토 올리버'. 베를린 현대미술관 수석큐레이터 '볼프 헤르츠겐라트' 박사. 뉴욕 모마의 '바바라 런던',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큐레이터 '도린 미노' 그리고 백남준, 연구가 '이용우' 선생 그리고 건축가 '김원' 선생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김승덕 '씨 등등 정말 세계적 미술인사 다 모였군요.

[도울은 왜 백남준을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보았는가?] 종로구 서린동 45번지에서 태어난 백남준, 다시 말해서 그는 전통적 인간으로서 지니는 모든 감정과 소양을 지닌 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헌다.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일찍 서구에 개명된 것이 아니라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인의 순수성을 더 잘 보전하는 고전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말씨와 행동은 1949년에 멈쳐버린(서울 양반 말투와 행동거지) 다시 말해서 백남준이라는 존재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근대적 번용 과정에서 축적된 새로운 문화 측면의 가장 밝은 측면 19세기말 동학으로부터 또한 19세기 중엽 최한기, 이제마로부터 시작해 20세기에 많은 개화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각성된 문화 여명기 폭발적 창조성과 그 맥락, 그 패기, 그 에너지 서구의 가장 아방가르드한 흐름과 일치할 수 있었던 보편사적 사실에서 온 것이다. 이런 도올의 좀 산만한 비평에 대해서 아래에 백남준은 아주 명쾌한 대답을 남긴다.

사이버네틱스(인터넷의 전신)를 발명한 수학자 '노버트 비너'와 비디오아트(사이버네틱한 삶의 창시자)의 선구자 '백남준' 그리고 20세기 미디어론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비저너리였던 '맥루한' 이 세 3사람이 인터넷 지구촌 세상을 만들었다 그것을 공식으로 만든 것이다. 난해하다.

<말년의 백남준 부부 서로 칭찬하기는 이랬다> 얼마 전 그의 반려 구보타 시게코가 생을 마쳤다. 그녀는 백남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명석한 철학자이고 훌륭한 재담가였다. 아주 지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사람을 전혀 지겹게 만들지 않는다. 그는 예의 바르고 조용한 사람이다. 스마트하고 달콤하고 재미있고 섹스를 잘하는 남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백남준이 해준 말. “시게코, 넌 젊어선 멋진 애인이었고, 늙어선 최고의 엄마이자 부처가 됐어.” 그가 죽은 후 한국에는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백남준 아트센터)”이 지어졌다. 그가 그곳에서 오래 살 수 있을지, 잠시 왔다가 갈 지는 우리가 그를 대하는 수준에 달렸다

일본 아줌마들 한류의 원조는 욘사마가 아니라 시인 윤동주였다. 시게코 여사의 욘사마는 백남준이었다.

백남준 'TV를 위한 선' MoMA 소장품 1963-198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다른 버전. 이 작품으로 인해 세계미술사를 다시 쓰게 되었다.

<학고재 갤러리 소장품> 백남준의 〈로봇 (라디오 맨, 요셉 보이스)〉(1987) 세기 말의 로봇이 오늘을 응시하다. // 요셉 보이스(1921-1986, 독일)가 세상을 떠난 2년 후 제작한 작품이다. 보이스가 즐겨 쓰던 펠트 모자가 상징적이다. 로봇의 상단 모니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하단 모니터는 〈바이 바이 키플링〉(1986)을 재생한다. 백남준이 '우주 오페라 3부작' 연작 중 두 점이다. 조지 오웰이 예견한 디스토피아에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동서양은 화합할 수 없다던 키플링(1865-1936)에게 위성을 연결시켜 그의 주장을 거부하고, 동서가 하나로 세계로 회답할 수 있음을 보여주다

백남준은 굿의 소통방식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굿의 소통방식은 서양의 소통방식인 산 자와 산 자의 소통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산 자와 죽은 자와의 소통마저도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초능력 소통(super communication)의 철학을 전자매체예술로 실험한 예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