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백남준과 부친 김갑권이 독일에 같이 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지만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부친 독일 프랑크푸르트 혹은 베를린과 스위스 바젤과 제네바 사진이다. 이때가 1957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4년 후의 일이다. 당시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 봐도 참 특별한 사진이군요. 당시 독일은 전후 라인 강 기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상당히 높아져서 활기차게 보이죠. 각국 나라마다 다른 패션의 모자를 쓴 모습이 흥미롭네요. 세계 정상 회담처럼 식탁도 화려하고 옷차림도 예사롭지 않다. 모두가 너무나 멋진 댄디 풍이다. 사진 한 가운데 태극기가 보이고, 부친이 한국의 민간 대사 역할까지 했나요!! 어려서부터 이런 사진을 봤기 때문에 독일과 스위스가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
위는 1957년 부친이 프랑크푸르트 에서 아주 가까운 도시 미혤슈타트에 홈 스테이할 때 찍은 사진이다
1958년 백남준 독일사진 윤이상과 그의 친구들
<추신> 이 작품을 처음 본 것은 1960년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려서 좀 무서웠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보니 명작이네요. 부친이 1957년 독일 화학회사(BASF 지금도 독일을 대표하는 화학회사다)에서 기술 연수를 하시고 귀국하셨는데 그 회사에서 매년 회사 달력을 보내줬다. 독일 르네상스 그림이 담긴 그 달력에서 이 작품도 실려있었다. 당시에도 독일은 인쇄수준이 좋아 실화를 보는 것 같았다. 지난 번에 독일(뮌헨)에 가서 이 작품을 다시 봤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이은화 평론가는 이 작품은 뒤러의 셀프 브랜딩 경향의 자화상 중 가장 유명한 완결판이라고 설명해준다. 앤디워홀도 그랬지만 작가에게는 셀프 브랜딩이 꼭 필요한지 모른다. 배경 오른쪽에는 ‘나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에 지울 수 없는 색으로 나를 그렸다’는 문구가 있다고 그는 일찍이 셀프 브랜딩의 중요함을 깨달았고 자신을 PR하는데도 천재적 능력을 발휘한 셈이다.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그린 이 도상은 이제 많은 사람들 가슴에도 각인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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