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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김홍희저(Mr.Paik) 서문, 멋진 '굿' 미디어론 굿모닝 미스터 백(2007년6월) 김홍희전 책을 냈을 때 백남준이 서문을 써 주었다(1992년 그가 만 60). 우리가 사전 가지고 찾아보면서 읽어야. 순 우리말도 많지만 한문 투성이다. 백남준은 음 달지말라고 했지만 젊은층은 읽기 어렵다. 1930년대 서울 양반들 사용한 언어들 그대로 살아있다. 지금은 안 쓰는 말도 많다. 어려서 본 집안 굿 풍경에 대한 소감문이다. 그런데 명문이다 '이상' 시인의 글보다 낫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우리의 굿에 대한 재해석. 요약하면 굿판의 주인공은 여성, 제사의 주인공은 남성, 백남준은 당연히 여성편이다.그증 앞 부분 일부와 맨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굿이란 도대체 여자들의 것이다. 무당도 여자거니와 그를 맞이하는 이쪽도 여자가 주동이다. 우리집에는 대개 음력 10.. 더보기
[백남준] 동서양 예술가 구분 없애 with Beuys "예술가면 그냥 예술가지, 동양의 예술가, 서양의 예술가 이런 구분을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가 없애 버렸다. 서양의 이분법을 극복한 것이다 그래서 유라시아 작가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1961년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는 같은 장소에 있었다. 여긴 슈멜라(Schmela) 화랑 그러나 둘은 서로 몰랐다. 나중에 사진에서 같이 있었다는 게 확인되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독일에서 만남은 20세기 현대미술사에서 최고의 사건이다. 왜냐하면 두 예술가는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연결하는 유라시아 작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키워드는 네트워킹 도킹 둘 사람이 예술가에서 서양과 동양의 구분이 없어진 것이다. 다른 것에 비유하면 미술 장르에서 동양화 서양화, 이런 구분이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왼쪽: 백남준 .. 더보기
[백남준] '요셉 보이스'와 함께 '유라시아 작가'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를 흔히 유라시아 작가라고 한다. 이 두 예술가는 아시아와 유럽의 예술을 하나로 합쳤다" 전통샤먼의례: 언월도, 부채, 거울, 방울, 삼지창·신칼·작두, 장구, 징, 꽹과리 등등 전자샤먼의례: TV, 피아노, 인터넷, 정원수 가지치기, 갓, 병풍, 크림, 나무가지, 쌀, 땅, 불, 초, 명찰 In this performance, Paik Nam June uses twelve symbolic elements: a piano, a name plate, two hats, fire, rice, earth, candles, a folding screen, creme, a branch, a ritual costume, and televisions. -이용우 백남준과 보이스 두 예술가는 간단치 .. 더보기
[백남준] "내 텔레비전은 물리적 음악이다" "내 텔레비전은 물리적 음악이다(PHYSICAL MUSIC)" -백남준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후기 글(1964년) 중에서 백남준의 동경대 학사논문 을 읽어보면 이건 학사논문이 아니라 거의 준박사논문 수준이다. 작곡한 악보(33편)도 포함되어 있다. 나같이 음악에 대해 문외한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수직적 음악보다 수평적 음악을 중시한 것 같다. 음악의 민주화 그러면서 반음계주의-불협화음주의-신즉물주의다. 쇤베르크가 한 말도 작곡가는 예견하는 자 개념미술처럼 음악적 아이디어가 중요하는 말도 보이네요. 지금까지 백남준 연구는 이 논문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허술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이번에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김순주 기획자가 그의 학사논문 발굴은 그의 블랙박스를 찾아낸 것이다. 백남준 연구에 새 .. 더보기
[백남준] 탈영토제국:'소통-참여-공유'유토피아 탈영토제국(주의): [자본주의 대안] 가장 현실적이고 평화적인 인류공존의 개념이다. 백남준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지 않고도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이 바로 '탈영토제국주의'야. 내질문: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탈영토제국주의를 경험할 수 있나요? 백남준: 예컨대 내가 어느 한 분야에서(아주 좁은 분야라도) 세계에서 최고의 1인자가 된다면 땅을 차지하지 않고도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거야! 들뢰즈나 백남준이나 (노마드)탈영토시대를 주장, 이제 땅의 영토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상 온라인 사이버 영토의 크기가 중요하게 되었다. 거기에 어떤 콘텐츠를 남기고 어떤 지도를 그리고 어떤 메시지를 남기느냐가 중요하다. [탈영토제국(주의)] 들뢰즈와 유사한 개념(?). 백남준의 이 개념은 매우 도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더보기
[백남준] 전시, <나의 예술적 고향 파르나스> 백해영 갤러리 백남준 전 6월 30일까지 1962년(백남준 30살) 뒤셀도르프 병렬 공연 기획: 백남준과 보스텔(Parallele Aufführungen), NEO-DADA in der Musik, Kammerspiele, Düsseldorf / Neo-Dada in der Music 은 Carlheinz Caspari, George Maciunas, 백남준, Benjamin Patterson, Thomas Schmid, Wolf Vostell이 Kammerspiele (Dusseldorf)라는 극장에서 공연 한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백남준과 마시우나스가 공동 감독했고, 개막 연설은 장 피에르 빌헬름이 전했다. 이곳에서 백남준은 처음으로 바이올린 솔로와 소나타를 위해 곡을 연주했다 1957년 독일 죽어.. 더보기
[백남준] 예술가들이여! 방송국을 점령하라! [비디오 코뮌, 비디오 코뮨(Video Commune)] 비틀즈 처음부터 끝까지 (BEATLES FROM BEGINNING TO END) -텔레비전 실험 예술가들이여 방송국을 점령하라! -이유진(전 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 백남준에 대한 탁월한 글 남겼다. "백남준, 예술가들이여! 방송국을 점령하라!" "전자 산업은 하나의 목적, 즉 소스의 재생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문제. 따라서 전자 장치는 군사 목적, 검열, 도청에 사용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는 수신기에 도달한 순간 신호를 방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스 컨텐츠 자체를 만드는 데 개입하는 것이다" -백남준 생각(테이트모던 백남준 전시 글 중에서) 테이트 모던 글 https://www.tate.org.uk/r.. 더보기
[백남준] 나 서양서 배운 거 없어! -도올과 대화 [백남준 나 서양에서 배운 것 없어! 백남준과 도울의 대화 중에서] “날 자꾸 서양에서 다 배운 사람인 줄 아는데, 사실 인생을 결정지은 사상이나 예술의 바탕은 이미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모두 흡수한 거거덩. 우리나라 일제시대 때 한국 예술가들 수준이 당대의 서구라파나 일본의 아방가르드적 수준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우. 난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두 이건우 선생한테서 유학 가기 이전에 다 배운 거구. 신재덕 선생이나 이건우 선생 같은 분이 가르쳐 주신 수준이나 김순남 선생을 사사한 수준이 내가 독일 가서 작곡가 노릇할 수 있었던 바탕을 다 만들어 주셨던 거거덩. 역사를 자꾸 단절적으로 보면 안돼. 우리는 일제시대 때 문화두 말이지, 전통문화구 서구문화구 다 높은 수준으로 그대로 가지구 있었거덩.. 더보기
[백남준] 독일 'D. 다니엘스박사', 백남준 '인터넷' 착안 [독일 미학자, 디터 다니엘스] 독일 아헨대에서 미술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마르셀 뒤샹에 관한 논문 «뒤샹과 타자: 근대성에 있어 미술사적 영향의 준례»로 박사학위를 취득(1992) 독일에서 유명한 백남준 연구자. // 텔레비전을 만지다: 마셜 매클루언, 존 케이지, 백남준의 참여 매체 Touching Television: Participation Media with Marshall McLuhan, John Cage and Nam June Paik 백남준은 Global Communication 매체인 '인터넷'을 미리 내다봤다는 결론이다.매클루언 혹은 '맥루언'의 미디어 이론은 실상 기계에 대한 이론, 커뮤니케이션 혹은 정보에 대한 이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감각과 그것이 미디어와 맺는 다감각적 관계에 대.. 더보기
[백남준] '임영방' 전 국현미술관관장 증언 세계적 아티스트로서,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백남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세 사람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증언 “백 선생과는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백남준 회갑전),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 한국전’(백남준 주선으로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미국 휘트니 미술관 전시를 서울에서 순회적으로 열다 당시 동성애 주제가 들어가는 현대적 전시였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등을 함께 추진했고 곁에서 그 천재성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영상과 음향, 조형을 한데 합해 새로운 차원의 종합예술을 탄생시켰다. 예전부터 예술가들이 꿈꿔온 여러 장르의 결합을 그가 완성한 것이다. 노래방 기계의 화면을 비롯해 우리가 지금 누리는 거의 모든 영상예술의 원형은 그의 상상력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