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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길은 우리가 걸어가는 데서 시작"

비디오아트 전망에 대해 물으니 백남준 확실히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뒤샹은 비디오 제외하고 모든 것을 다 했어요. 뒤샹은 들어가는 문은 크게 만들었는데 나가는 문은 작게 만들었어요. 그 문이 바로 비디오예요. 바로 그 문을 통해서 우리는 뒤샹의 막다른 미술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거예요. -백남준

장자사상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길은 우리가 걸어가는 데서 시작한다" 아무도 가지 않는 사막을 길을 걸어가다 보면 거기에 길이 생기는 것이다. 남북 통합의 길도 그렇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그 길이 죽을 수도 있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이다.

뒤샹 I 샘

뒤샹을 미술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에 기성품을 가져다 놓은 것으로 봤다. 그래서 서구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되다.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을 재해석해 남성의 변기로 여성의 누드를 그렸다. 그것이 에로틱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사실은 그것이 우주의 원리이자 음양의 조화이다. 이런 작품을 만들고 나면 더 이상 할 작품이 없게 된다. 모든 걸 다 그린 것이다 그래 선가 뒤샹은 평생 거의 작품을 안 했다. <작성중>

백남준은 비디오 조각을 창안함으로써 서구 미술사에서는 족보가 없는 새로운 조각 장르를 확장시켰다. 조각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셈이다. 서구의 이런 새로운 장르를 수용함으로써 이런 작품을 소장하기를 좋아했다. 1989년 프랑스 정부가 혁명 200주년에 맞춰 의뢰한 만든 그의 비디오 조각은 그런 장르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들이었다.

반 고흐(1992)

아래는 프랑스 200주년 이전 작품인가 이후 작품인가 잘 모르겠지만 이 작품 명은 '반 고흐(1992)'이다.

<추신> 백남준 I '다산과 한국경제' 1997 백남준, 과학자로서의 다산(*거중기 수원성을 쌓을 때 이 기구를 통해서 성을 쌓다)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 조선시대 정조 때에 수원성곽을 쌓는 데 사용되었으며, 정약용(丁若鏞)의 『기중도설 起重圖說』에는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는데 도르래를 이용하여 물체를 들어올리다. 이 당시 백남준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해 작품을 디테일하게 작업을 하지 못했군요

백남준 I '다산과 한국경제'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