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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30살 때, 전 세계 미술판 쓸어버리겠다

[1963-1993 백남준] 그의 생애의 하이라이트를 요약하는 시기다. 백남준 1963년 첫 전시를 열다. 30년만에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다. 백남준 1962년 30살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황색재앙이다(Yellow Peril, C'est Moi)". 내가 전 유럽과 미국의 미술판을 확실하게 쓸어버리겠다. 그걸 할 사람은 바로 나다. 역시 백남준이다!!

백남준은 예술이란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백남준의 평생 작업을 보면 정말 우리를 얼떨떨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매우 통쾌하다.

60년대부터 백남준은 유럽과 미국의 위풍당당한 고급 문화의 장벽을 허물기 시작하다. 그리고 60년 지난 지금 코로나 시대 구미의 신화는 무너지고 있다. 한국의 시대가 오고 있다 백남준이 2000년 1월 1월 0시에 발표한

<호랑이는 살아있다>가 그 예고편이었다. 여기서 보면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는 장면이 나오고 결국 사자가 호랑이에게 밀려 공격을 더 못하고 물러나는 장면이 나온다. 2000년 뉴욕 구겐하임 회고전에서 '호랑이는 살아있다'를 서양미녀와 함께 외치다!!

우리가 백남준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자신감(자아존중)'이다. 백남준은 만 30살(1962년)에 독일에서 세계 미술계에 데뷔하면서 내가 전 세계 미술판을 쓸어버리겠다고 선언하다. "황색재앙은 바로 나다(Yellow Peril, c'est Moi.)" <내가 세계 미술계를 평정하는 문화 칭기즈칸이 되겠다>

여기서 '황색재앙'이란 뭔가? 몽골이 전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유럽까지 쳐들어갔다 헝가리까지도 원정을 가다. 헝가리 사람들 몽골군 말이 빠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그들은 3달 후에나 쳐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하루 만에 헝가리에 쳐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겠는가. 그게 바로 '황색재앙'이다. 유럽 미술을 다 쓸어버리겠다는 포부는 실제도 이 말을 선언하지 30년이 지난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서 황금사자상을 탐으로써 실현된 것이다. 거짓말 아니었다. 동양사람이 베니스비엔날레상을 탄다는 것은 당시는 드문일이었다. 하긴 백남준은 한국대표가 아니고 독일대표으로 나갔지만 말이다.

<한번도 근대인 적이 없었던 유럽에 백남준이 서구에 진정한 근대를 선물하다> '백남준은 서양악기의 기원인 피아노와 서양미술의 기원인 뮤즈에게 테러를 가하다. 백남준 나름의 충격요법 2가지가 있었다. 역시 테러리즘과 에로티시즘이다. 물론 평화적인 방식이다. 1963년 첫 전시가 유럽의 한복한 독일에서 서구미술판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면서 테러를 가하다. 1967년 이번에는 뉴욕의 한복판에서 걸출한 에로티시즘으로 역시 원자폭탄을 선물을 보내면서 대파문을 일으키다. 공연자(Performer) 샬럿 무어먼 외설시비로 경찰에 체포되다. 왜 백남준은 이런 퍼포먼스를 했을까 기존의 고체가 된 고정관념을 산산조작 내지 않고 깨버리지 않고는 새로운 예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남준 1960년대 독일에서 얻은 별명은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였다

<추신> 1910 년경 Rabindranath Tagore 사진. 인도 시인 타고르 재조명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21세기 아시아 전성)시대에In the golden age of Asia
그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Korea was one of its lamp - bearers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에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너는 동방의 밝은 등불이 되리라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