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물질적이든 지식적이든 그걸 사유 재산으로 소유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공유주의자이다. 특히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관심이 높았다.
그렇게 본다면 사상적인 면에서 맑스 계보학이다. 고장 난 맑스 사상을 고쳐서 재활용한 것이다.
백남준에게 최고의 적은 독점(사유화)이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늘 추구했다. 그것이 바로 비디오가 결국 인터넷으로 진화한 것이죠. 소셜미디어 즉 SNS가 된 것이다.
<추신> 백남준이 평생 생각한 것이 바로 원할한 소통을 방해하는 정보의 독점을 교란시키는 일이었다. 그가 6개국어를 한 이유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정보독점세력의 구멍을 내고 다녔다 하여간 인공지능의 발달로 번역기 나와서 정보 독점이 그나마 많이 해소되었다 물론 세계신문정보가 문제 가 많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낫지 않은가 백남준은 당연히 미국정보국에 블랙리스트 1번에 올라가 있다. 그가 바보짓을 하고 다닌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사실 세계 어느 나라 정보부보다 더 많은 정보(증권정보, 군사정보, 우주항공정보 등등)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정보 아티스트(information artist)'라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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