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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백남준] 한국인 그렇게 찬양했지만 이것 만은[...] 민화의 가장 큰 기교는 서툰 것처럼 그린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포스트모던하다. 현대회화는 못(엽기적으로) 그려야 살고 틀리게 그려야 생존할 수 있다 백남준은 한국인을 늘 훌륭하다고 칭찬을 했지만 드물게 꾸짖은 적도 있다. 우리나라가 민화 연구에서 일본의 한국 민화 연구보다 훨씬 못하다고 호통을 친 것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민화란 이다. 다시 말해 우리 체질과 취향에 맞는 그림이다. 물론 수묵화나 문인화, 궁중미술의 영향이 없지 않다. 중국적인 요소도 있겠죠 그러나 결국 민화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다. 한국미술의 원자본(source)인 셈이다 민화가 위대한 것은 미추의 차원을 넘어 승화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 부른다. 왜 결국 웃음을 터트리게 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 더보기
[백남준] 모든 전쟁의 시작은 '가짜뉴스'에서 모든 전쟁은 결국 가까뉴스에서 온다. 히틀러의 가짜 뉴스에 독일국민이 속은 것이다 백남준의 천재성은 1960년대 초 당시로는 반민주주의 상징이기도 한 그래서 별명이 바보상자다. 즉 일방향으로(one-way) 쏟아붓는 정보전달방식인 TV를 쌍방이 주고받는 방식(two-way)인 Video 형식으로 바꿔 당시로는 말도 안 되는 미친 혹은 엽기적인 전자 정보예술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깔려있는 백남준의 철학은 바로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고 독재(파시즘)를 반대하는 것이다. 원활한 소통과 정확한 팩트에 근거한 정보야말로 전쟁과 독재를 막는 지름길이라고 본 것이다 가짜(허위)뉴스의 폐해를 백남준은 이미 60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모든 악 중의 악의 진원은 바로 가짜뉴스에서 온다는 것이다. 모든 전쟁이 결국은.. 더보기
[백남준] 독일교수시절, 수업자체가 최고아트 위 사진은 1979년 백남준 뒤셀도르프대학에서 수업하는 장면이다. 독일은 백남준을 뒤셀도프르 교수로 임명해 1978년부터 1995년까지 그의 최소한의 경제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독일이 대신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사실 백남준은 독일미술을 세계수준으로끌어올렸다는 면에서 그만한 대우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기는 하다. 백남준은 괴테상 등 독일에서 주는 모든 문화훈장 6개를 다 받았다. 2번째 사진은 백남준 뒤셀도르프 교수 첫 취임 공개 수업 장면 여기서 역시 퍼포먼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명은 독일 만화가 그린 백남준 전기가 있다 여기서 만화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는 요셉 보이스의 만화도 그렸다 미술전문가인 셈이다. 이런 포퍼먼스는 바..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로 철학 하는 비저너리 예술가 백남준은 비디오로 철학하는 예언가 같은 예술가였다. 엄청난 파급력으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되었고, 맑스를 능가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칭기즈칸의 후예답게 문화제국의 황제가 되기를 꿈꿨다. 서양 것에 누구보다 정통한 그는, 소리소문없이 서양적인 것을 추방(expel)시키겠다 첫 전시(첫 전시 부제가 추방이다)에서 선언했다. 그는 1963년 한 셈이다 마네가 를 발표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63년 백남준 첫 전시의 설치작품 중 하나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때 독일 지식인 중 가장 존경을 많이 받고 있었던 피에르 빌헬름이 백남준 첫 전시 글을 썼다. 그 첫 줄이 너무나 멋지다.아니 시적 표현이다. "이번 전시가 온 우주에 음악이 스미게 했다" 그는 아마도 기존의 화음과 충돌을 일으키는 불협화음.. 더보기
[호크니] 영국왕립미술학교 수석 졸업 호크니 동성애를 비롯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다. 그게 예술가다 워홀 피카소 남준이 다 그랬다. 예술은 시대의 과학만큼 발전한다. 아트와 테크(art & technology)는 긴밀한 상호관계 속에 있다. 백남준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양미술사 대가들 그 뒤에는 다 그 당시 유사 카메라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호크니의 그림이 진전이 된 것은 21세기 첨단 카메라 덕분이다. 1620년 네덜란드 화가들도 그 나름의 옵스큐라 카메라(어두운 카메라방)가 있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린 물론 지금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호크니가 위대한 화가가 된 것은 누구보다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꿰뚫고 있기 때문, 고전을 모르고 현대를 창조할 수 없다. 그의 그림은 첨단 카메라가 가능하게 했다. 그렇지만 그.. 더보기
[백남준] '세기말 II' 휘트니미술관, 7년만 복구 "복구 난이도 너무 높은 백남준 대표작 세기말2 이게 마지막 기회(?)" -뉴욕 타임스 (서울=조선) 정상혁 기자 뉴욕 휘트니미술관 다시 전시, 브라운관 TV 전세계서 모아 한국 복원작업 본보기될듯 복원 기간 총 7년 걸리다. 금의환향에 29년이 걸렸다. 한국 미디어아트 선구자 백남준(1932~2006)의 대표작 '세기말 II'가 정비를 끝마치고 1989년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됐던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에 재설치되면서 '백남준 복원'이 재조명되다. 미국 현대미술 대표공간인 휘트니미술관은 50년 간의 전시작 중 명작 70여 점을 추린 'Programmed: Rules, Codes, and Choreographies in Art, 1965~2018'을 내년 4월까지 진행한다. 복원 기간 총 7년. 해외 박물.. 더보기
[2019 홍콩바젤] 8만8천명-242개갤러리 참가 [29019 홍콩 아트 바젤 총결산] 아트 바젤 홍콩은 전 세계의 미술계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한눈에 볼 수 있게 조망한 뛰어난 갤러리들의 전시로 전 세계 컬렉터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올해 88,000명의 관객/2019년 에디션에는 35개 국가 및 지역을 대표하는 242개의 우수한 갤러리 라인업(처음 참여하는 21개의 갤러리도 포함) hongkong@suttonpr.com www.suttonpr.com 아트 바젤 홍콩은 오늘자로 성황리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으며, 모든 섹터와 지역에서 높은 매출 실적을 보였다. 전세계에서 참여한 21개의 갤러리가 올해 최초로 본 쇼에 참가했으며, 그중 9개의 갤러리는 미국과 유럽에서 참여해, 메인 섹터에서 소개되었다. 본 페어는 아시아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기존에 .. 더보기
[백남준] "삼촌 절대 기 꺾이지 않는 사람" [하쿠타, 삼촌 백남준 바지사건 회고 글] “내 바지가 흘러내렸고 그게 전부란다.” -백남준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f8m9 "애도하는 마음은 잠시 접고, 지금부터 여러분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저희 삼촌 백남준과 함께 했던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사건입니다. 1998년 6월,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만찬에 삼촌이 초대됐었습니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죠. 당시는 그해 1월 혹은 2월에 터졌던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 양의 스캔들이 한참 고조됐던 때입니다. 삼촌은 백악관으로 가면서 제게 동행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꺼이 같이 가겠다고 했죠. 전 삼촌과 함께 차를 몰고 백악관으로 들어갔.. 더보기
[백남준의 엽기] 천장에 붙은 작품 백남준의 천장에 붙인 엽기적인 작품(1985) 물고기가 하늘을 날다(Fish flies on sky 1985) SMKP 백남준처럼 말도 안 되는 천장에 작품을 붙이는 엽기적인(bizzare) 듣보잡 예술품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독일의 미술관에 소장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물고기가 하늘을 날다(Fish flies on sky 1985)' 이 작품은 비디오조각이라는 장르로 구분되어 독일 뒤셀도르프 현대미술관에 소장이 되다 TV 88대로 만들다. 하긴 1984년 이후 너무나 유명해진 백남준 이 미술관의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이기는 하다 뒤셀도르프 미술관이 신개관을 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더 좋아한다.70년대까지만 해도 오락적인 Low art로 취급되던 .. 더보기
[1950-1990년대 백남준 미니연대기] [1950-1990년대 백남준의 대략 흔적]백남준 전문가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관장이 1984년 코펜하겐에서 존 케이지를 만났을 때 사진[1950년대 백남준의 대략 흔적] 경기중학교 다니던 백남준 홍콩 로이든 영어학교에 전학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중고 시절 영어권 학교 유학의 원조다. 백남준 여권번호 7번이다 백남준 조카 백일잔치를 위해 귀국하다. 그해 625가 나다. 가족은 부산으로 피난 백남준만 피난을 가지 않다. 백남준 가족 일본으로 이주하다. 백남준은 홀로 일본으로 가다 쇤베르크 논문으로 백남준 도쿄대 졸업 독일로 유학을 가다 캘커다와 카이로 경유에 뮌헨에 도착 그는 독일친구들에게 '나는 동양어 3개국어, 서양어 3개국어 하는 한국에 온 예술가"라고 소개했단다. 동경대 다닐 때 헤겔의 예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