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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삼촌 절대 기 꺾이지 않는 사람"

<삼촌은 절대 기 꺾이는 법이 없어> < 삼촌은 “열심히 작업하시되, 게으르게”라고 말했습니다> [하쿠타, 삼촌 백남준 바지사건 회고 글] “내 바지가 흘러내렸고 그게 전부란다.” -백남준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f8m9

 백악관 만찬장(1998년 6월 2일)에서 백남준과 악수하다 그의 바지가 흘러내린 걸 보고 당황해하는 클린턴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백남준의 고급스러운 사기에는 천재적 발상이 동반하고 있다. 과연 그날 우연인가? 의도인가? 내 생각에 그것은 의도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날 백남준의 예술패인 플럭서스 친구들 격려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세계의 대통령 앞에서 바지를 내릴 수 있는 예술가는 백남준이 유일무이하다.

그것은 퍼포먼스의 귀재인 백남준이 전 세계 언론이 집중되는 가운데 최고의 타이밍을 잡은 것이다. 여기서 오히려 해프닝이 없었다면 백남준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전 세계 예술가들을 대신해서 예술가가 언제나 권력자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대사건이다!!>

"애도하는 마음은 잠시 접고, 지금부터 여러분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저희 삼촌 백남준과 함께 했던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사건입니다. 1998년 6월,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만찬에 삼촌이 초대됐었습니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죠. 당시는 그해 1월 혹은 2월에 터졌던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 양의 스캔들이 한참 고조됐던 때입니다.

삼촌은 백악관으로 가면서 제게 동행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꺼이 같이 가겠다고 했죠. 전 삼촌과 함께 차를 몰고 백악관으로 들어갔고, 덩치 큰 해병대 병사들이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제가 기억에 삼촌은 매우 즐거워했던 것 같습니다.

생애 마지막 조카 캔을 모델로 퍼포먼스를 벌리다 © Ken Hakuta

우리는 리셉션 라인으로 갔습니다. 갑자기 삼촌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보조 보행 장치로 리셉션 라인을 가로지르려 했습니다. 아마도 삼촌은 영부인 힐러리와 그곳의 다른 귀빈들에게 경의를 표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빈 만찬에서 리셉션 라인을 넘어가는 것은 ‘월드뉴스 토픽’ 감입니다. 온갖 기자들이 그곳에 있었고요.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수 십 대의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가 있었습니다.

어찌 됐건 삼촌은 클린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고, 저는 그 뒤에 서있었습니다. 그때, 삼촌이 뒤를 돌아보더니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켄! 내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 같아. 정말이야” 저는 “뭐라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삼촌은 한 번 더 “내 바지가 흘러내리고 있다고!”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정말로 삼촌의 바지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바지는 완전히 바닥까지 흘러내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속옷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삼촌의 바지를 끌어올렸고 더 이상 삼촌의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꽉 붙잡았습니다.

한편, 꽤 쿨한 대통령인 클린턴은 삼촌과 계속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따님인 첼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둘의 대화가 끝나고 몇 발자국 움직인 후 보니, 옆에 있던 힐러리는 전혀 재밌지 않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얼굴을 붉히고 있었죠. 그런데도 클린턴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죠.

이렇게 재미있는 만찬사건 후, 삼촌은 수백 통의 전화와 팩스를 받았습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삼촌의 친구들은 그 사건이 세계에서 가장 플럭서스다운, 즉 전위적인 퍼포먼스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언론인은 그 사건이 우연한 사고였는지 궁금해했습니다.

백남준 스승의 넥타이도 자른 사람

백남준 스승 케이지 넥타이도 자른 사람이다. 미국 대통령 앞에서 바지 벗었다는 건 그의 일련의 행위로 볼 때 아무렇지도 않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여러분이 기억하듯, 삼촌은 비록 휠체어에 앉아있을지라도 문화적 테러리스트라는 평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삼촌에게 일부러 바지를 흘러내리게 꾸몄느냐고 물었습니다. “행위입니까? 예술적인 선언입니까? 아니면 정치적 의도인가요?”라고 말이죠. 삼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바지가 흘러내렸고 그게 전부란다.”

그리고 삼촌은 “이런 게 바로 백남준이야”라고 말했어요. 삼촌이 뭐라고 대답했건, 그 일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삼촌은 절대 기가 꺾이는 법이 없는 사람입니다. 삼촌이 당황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저는 클린턴 대통령 역시 그 사건에 상당히 침착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합니다. 과민 반응한 언론은, ‘대통령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바지가 백악관에서 흘러내렸다’고만 보도했습니다. 그 사건은 진정한 플럭서스 이벤트였습니다.

2004년 8월 맥도웰 메달을 대리 수상할 때, 저는 한두 시간 전쯤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서 예술가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지 물었더랬습니다. 삼촌은 “열심히 작업하시되, 게으르게”라고 말했습니다. 백남준다운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삼촌은 여러분 모두에게 안부를 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켄 백 하쿠타 <출처 아트 인 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