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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백남준] 유럽의 늙은 어른과 아시아의 아이 중국 작가 왕싱웨이(늙고 불쌍한 유럽 어른[해밀턴] 1996년 작품)는 백남준은 제대로 읽고 있었다. 여기서 문명의 측이 결국 서양에서 동양으로 왔음을 알린다. 서양의 다 빈치와 프로이트와 뒤샹(작품의 왼쪽 뒤샹의 대표작)은 동양의 백남준을 뒤따라올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유럽의 이런 어른들은 사고뭉치인 아시아의 어린이를 야단치지만 그 아이는 단청을 부리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게 바로 백남준이다 더보기
[백남준] 1984년 빅 브라더 사회 대안 내놓다 백남준에게 민주주의가 뭐냐?고 묻자 "말대꾸하는 것이다(댓글이다)" 백남준에게 예술이 뭐냐?고 묻자 "대중을 얼떨떨하게 하는 것이다" 1984년 기념비적인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맑스가 말하는 '소외와 착취'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작품이다. 그 대안은 바로 '참여와 소통'이다. 노무현 정권 때 이 말이 유행했죠. 여기서 백남준은 자본론이라는 발명품을 실패를 보지 않고 그것을 고쳐서 재활용한 것이다. 가 아니고 이렇게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 그리고 위성으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문화 칭기즈칸이 된 것이다. 백남준이 만약에 을 다시 만든다면 그는 BTS를 전면에 내세울 것이다. 백남준은 1984년에도 대중예술가 와 고급예술가를 번갈아 집어 넣었다. 정말 머리를 잘 쓴 것이다. 왜냐하면.. 더보기
[백남준 ] 1989년 작 그의 '자화상'과 정보혁명 [백남준의 혁명은 바로 '정보' 혁명] 1989년 작 백남준의 '자화상(아래)'을 보면 낡은 모니터 속에 TV 안경을 쓰고, 청동 마스크를 한 백남준이 출연한다. 또 동양사상을 연상시키는 '불상', 시간예술을 상징하는 '시계', 전자아트를 암시하는 '자석', 지구촌을 뜻하는 '지구본', 서구 음악을 뒤집은 '그랜드피아노', 비디오아트를 떠올리는 '비디오테이프' 등이 나온다. 이 작품을 잘 보면 '혁명'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게 무슨 혁명인가? 그것은 아마도 '정보 혁명'일 것이다. 백남준은 60-70년대엔 공간과 소리를 시간과 영상으로 전환하려 했다면, 80-90년대 이후는 "정보가 석유를 대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언하면서 정보 지식사회가 도래했음을 알렸고, 이는 현대 미술의 과제인 경제적 부와 .. 더보기
[백남준] '천지인' 사상을 레이저 아트로 구현 백남준 뉴욕 구겐하임 전시 2000년 2월 11일부터 4월 26일 전시되다. 한글 창제의 원리가 된 '천지인' 사상을 레이저 아트로 구현하다 레이저 빛 즉 불이 야곱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위에서는 물이 폭포처럼 내려오고 물과 불이 만나면서 뉴 레이저 미디어 아트의 탄생을 보여주다 그리고 아래 TV 정원은 백남준의 유토피아 즉 자연이 반이고 문명이 반인 자연과 문명의 상호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표현하다. 이것은 이우환의 돌과 철 즉 자연과 문명의 관계와 조응(relation and correspondence)을 이루려는 주제와 같다 Father of video art Nam June Paik was born today in 1932. In 2000, the Guggenheim presented "The.. 더보기
[백남준] 그의 심미안은 잡음도 아름답게 들어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백남준. 아래 사진 임영균 저작권 1982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Charlotte Moorman and Nam June Paik 샬럿 무어만은 정말 살아있는 인간조각이다 1982년은 백남준이 미국에 간지 18년이 되는 때로 이때부터 백남준의 미국에서의 위상을 확고 더보기
[백남준] 윤회설에 동조자 조지 마키우나스 백남준의 윤회설에 동조한 사람은 바로 플럭서스의 창시자인 조지 마키우나스다. 그는 철저한 윤회설 신자였다. 그래서는 그는 죽으면 개구리가 된다고 믿었다 그 말을 주변 친구들에게 자주 했다. 그래서 백남준은 마치우나스 추모공연을 할 때 라는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그렇다면 백남준도 죽으면 개구리가 될 것이라고 믿은 것인가 마키우나스와 백남준은 서로 잘 통했는데 둘이 다 약소국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윤회설을 믿었고 마키우나스는 환생하면 개구리가 될 거라며 장난스럽게 그를 개구리 판화로 그리기도 했다. 둘은 나중에 유명예술가가 되어 정치발언도 하고 싶어 했다. 작품 가운데 Fluxus라는 단어가 보인다 백남준의 '윤회설'과 위노의 '사이버네틱스 미학'은 서로 상통하는것인지 모른다. 극과 극은 서로 만.. 더보기
[백남준] 2000년 1월 1 샬럿 무어먼 추모공연 "백남준은 샬럿이 1980년대 암투병을 할 때 의료보험이 없어 힘들어 하자 1991년 죽기 전까지 암 수술치료비에 보태라고 거금의 수술비용을 여러 차례 내주었다고" 사진작가 임영균은 전한다. 2000년 1월 1일 그날 백남준의 손과 얼굴이 많이 부어있었다고 임영균은 전한다 (January 1, 2000 in Memory of Charotte Moorman, Guggenheim Museum, New York) 사진저작권 임영균 위 사진은 2000년 1월 1일부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그의 '백남준의 세계' 회고전(2000년 2월 11일부터 4월 26일까지)을 하기 전에 백남준 선생 사전전시회가 열렸고, 전시회 첫날 선생의 예술적 동지였던 샬럿 무어먼을 위한 추모공연이 있었다. 이날 백남준은 그녀를 위해.. 더보기
[백남준] 날 보면 나를,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여라 백남준, '살불살조(殺佛殺組)'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백남준 아트센터 전시할 때 찍은 사진으로 목이 잘린 부처의 몸뚱이가 전시장 바닥에 뒹굴고 있다 잘린 부처의 두상을 전시장 천장에 걸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한 작품 중 또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살불살조(殺佛殺祖)'다. 이 제목은 부처라는 관념에 집착하지 않을 때 깨달음이 온다는 뜻으로 우상파괴자인 백남준의 면모를 또한 잘 보여준다. 서양미술계 한복판인 베니스에서 동양의 불교사상의 진수를 설치미술로 유감없이 알린 셈이다. 백남준이 그동안 부처를 가지고 많은 작업을 했지만 이 작품은 야만적으로 보일 정도로 파격이라 사람들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조수를 시켜 큼지막한 부처상의 목을 베어 나무에 걸었고 몸체는 바닥에 그대로 뉘었다.. 더보기
[백남준] 1995년, 자신의 예술론(미디어론) 5개국어 요약 [아래작품] 백남준 I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 1995. 이 로제타 석에 백남준 예술론이 요약되어 있다 백남준은 같은 해 로제타석(石) 형식에 영어·프랑스어·독어·일본어·한국어 5개 국어로 자신의 예술골자가 담긴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시베리아-몽골리언 요소를 좋아한다(Ich mag das chaotische sibirisch-mongolische[독일어])"거나, "굿의 어원은 '얼' 즉 정신자체이니 미디어와 굿은 거의 같은 말이다[한국어]"거나 "의심할 여지없이 나의 몽골선조들은 이 노마디즘 문화로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Mes ancêtres mongols m'inspirent sans doute ce nomadisme c.. 더보기
[백남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세계적 행사로 백남준 1996년 쓰러지고 1년 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의뢰를 받아 작품을 출품하다 여기서 그동안 인기가 없었던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행사로 바꿔버린다. 왜냐하면 뮌스터 시민들 그동안 조각프로젝트에 관심이 없다가 이 백남준 작품을 보고 환호하면서 시민들 협조가 급상승하고 기부금도 많이 내게 된 것이다. 이후 이 국제미술행사는 베니스와 카셀과 함께 3대 권위 있는 세계적 미술행사가 되었다. 아래는 자동차(산업) 시대는 가고, 컴퓨터(정보) 시대가 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동차 속도와 전자고속도로(인터넷) 속도는 비교가 안 된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래저래 백남준은 독일미술발전에 큰 도움을 준다. 그래서 백남준 독일에서 주는 모든 미술상(괴테상 포함)을 다 받..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