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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해프닝, 사건 터지지 않으면 비예술

진정한 예술은 왜 테러리즘처럼 보이는가.예술의 테러리즘은 당연히 평화적인 것이죠.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예술의 본질은 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프닝이다. 해프닝이 없는 예술, 사건이 터지지 않는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바다의 파도나 물결에 파동이 없으면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듯 예술이란 지루하기 짝이 없고 재미 없는 세상에서 파문과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추신> 내가 만 31살이었던 1984년 6월 26일 교사시절, 이 기사를 스크랩 했었는데 보관을 잘못 해 지금은 너덜너덜해져 사진만 남고 거의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번에 김달진 자료박물관 아카이브에서 이 기사를 다시 발견하고 복사하다. 당시 조선일보 정중헌 기자는 문화분야에서 그의 전문성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1984년 백남준은 앞으로 유전자 예술이 나온다고 했는데 이건 요즘 인공지능 예술을 연상시킨다. <비디오는 현대의 종이> 이란 말은 정말 대단한 선견지명..

<추신>백남준 비디오예술은 문화적 테러리즘이다. 보들레르 악의 미학은 현대시의 테터리즘이다. 빅토르 위고는 보들레르의 시적 테러리즘을 새로운 전율(nouveau frisson)을 창조했다고 평했다. 이렇게 둘은 동서를 넘어 사제지간이다. 백남준의 <말에서 크리스토> 라는 책에서 그의 비디오아트는 보들레르의 조응이라는 시에서 크게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두 사람은 동서의 테러리즘 미학의 창시자다. 백남준이 전자빛, 이미지, 사운드의 비빔밥이라면, 보들레르는 상징적 시어로 빛깔, 소리, 향기(lumiere, son, parfum)의 비빔밥(correspondance) 이다.

두 사람은 또한 원효가 말하는 원융합일 즉 융복합적인 종합적 정신체계와 더 나아가 총체적(integral) 미의 세계와도 통한다. 보들레르와 원효는 어떻게 통하는가 두 사람은 타락을 통한 최고의 진리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다시 설명하면 보들레르는 악의 미학과 매춘론(prostitution) 그리고 원효는 불교의 자기무화와 파계적 세속주의다. 즉 춤을 추는 광대의 복장으로 불교의 이치를 노래로 지어 세상에 유포시켜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쉽게 전하는 방식을 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