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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1950-1990년대 백남준 미니연대기] [1950-1990년대 백남준의 대략 흔적]백남준 전문가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관장이 1984년 코펜하겐에서 존 케이지를 만났을 때 사진[1950년대 백남준의 대략 흔적] 경기중학교 다니던 백남준 홍콩 로이든 영어학교에 전학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중고 시절 영어권 학교 유학의 원조다. 백남준 여권번호 7번이다 백남준 조카 백일잔치를 위해 귀국하다. 그해 625가 나다. 가족은 부산으로 피난 백남준만 피난을 가지 않다. 백남준 가족 일본으로 이주하다. 백남준은 홀로 일본으로 가다 쇤베르크 논문으로 백남준 도쿄대 졸업 독일로 유학을 가다 캘커다와 카이로 경유에 뮌헨에 도착 그는 독일친구들에게 '나는 동양어 3개국어, 서양어 3개국어 하는 한국에 온 예술가"라고 소개했단다. 동경대 다닐 때 헤겔의 예술.. 더보기
[부처 백남준] '수월관음보살(水月觀音菩薩)' 백남준, '수월관음보살''수'는 물이다 여성이다. '월'은 달이다 여성이다. '관음'은 역시 여성이다' 이런 여성적 요소가 다 합쳐진 '수월관음보살'은 제4의 성이다. 백남준은 제4의 성이고, 뒤샹은 제3의 성이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이다. '수월관음보살도' 비단에 색, 103.5×53cm, 호암미술관(오른쪽) '수월관음보살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색 114.5×55.6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보충설명] 뒤샹과 백남준 두 작가는 여성적인 것에 관심이 높다는 면에서는 둘은 같다. 뒤샹은 여장으로 여성적인 것을 동경했지만 그럼에도 '에탕돈네'를 보면 여전히 남성적 시선이다. 그러나 여성성의 상징인 달 작품을 많이 했던 백남준은 유작마저도 '엄마(2005)'이다. 백남준은 처음부터 '여성주의'다... 더보기
[백남준의 핵심사상] 소프트웨어 속에 고 백남준 선생, 2019년 1월 29일 13주기 백남준 선생 고체사회를 액체사회로 만들다. 하드웨어사회를 소프트웨어 사회로 변화시키다. 국경과 시간과 공간의 벽과 경계를 없애다. "비디어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선생, 그의 핵심사상은 바로 소프트웨어에 달려있다" -이정성(백남준 미디어 테크니션)이정성(백남준 미디어 테크니션) 더보기
[백남준 위대성] 천지인 전자아트로 예술화 [백남준의 위대성은 천지인사상과 원효가 말한 융합사상을 전자아트로 예술화] 백남준의 타자성은 바로 인류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다. 즉 휴머니즘이다. 그런데 백남준이 천재인 것은 서양인이 해 보지 않는 휴머니즘을 확대시켰다는(휴머니즘의 확장) 점이다. 그 범위가 사람만 아니라 자연과 우주와 기계(TV나 로봇 포함)와 사물(악기나 매체)까지로 확장되었다. 그에게 사람과 기계와 자연(동식물)과 우주와 매체 즉 천지인은 상하개념 없이 평등하게 융합된 하나이다 백남준을 '신'(God of video)이라고 표현해서 흥미롭다 독일의 저명한 갤러리스트인 이 사람(한스 마이어 Hans Mayer 그는 2008년 유럽연합미술협회(European Art Gallery Association)가 주는 유럽갤러리 상 수상)의 백.. 더보기
[백남준] 우상파괴자, 스승의 넥타이를 자르다 백남준은 일원론적 융합주의 철학자다 존 케이지는 1992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는데 이때 백남준이 자신이 직접 쓴 존 케이지 추도사를 읽었다. 그중 일부다. [아래] 백남준에게 충격을 준 존 케이지, 백남준은 초기에 2번 존 케이지 오마주 전을 개최했는데 1번째 전시에는 케이지가 오지 않았고 2번째 전시에는 참석을 했다. 백남준은 그가 주도한 2번째 존 케이지 오마주 전에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 버렸다. 왜? "케이지는 완전히 악마로 돌변해 정원에 모래를 던지듯 청중의 머리에 음(音)들을 던졌다. 장식적 효과나 오락, 완성미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케이지의 기질이 바로 내가 감탄한 부분이다. 그의 수많은 제자와 젊은 친구들은 케이지의 세례를 받고 나서 더 선.. 더보기
[프랑스 철학자와 미디어] 그들이 본 백남준 프랑스 철학자와 미술계과 언론에서 본 백남준 등등 이야기 장-폴 파르지에(파리 8대학교수 백남준 전문가 영화 영상 아카이브수집가) "백남준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다" 이 말을 할 때 전혀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I think Nam June Paik is the greatest artist of the 20th century(Je pense que Nam June Paik est le plus grand artiste du 20ème siècle) -Jean Paul Fagier 백남준 전문가 장 폴 파르지에 그의 책 '백남준 나의 어머니(Ma mère Paik.' 그리고 '인공위성과 랑데뷰하는 삶(La vie, satellites, une rencontre-une vie)' 장 폴 파르지에.. 더보기
[백남준] 우린 지금 모두 그의 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모두 백남준의 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초대관장 .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초대관장의 말이다. 맞는 말이다. 또 미국의 스미소니언 국립미술관 시니어 큐레이터 핸하르트는 "아이폰은 백남준의 아이디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지금 사회적 네트워크의 연결망으로 쓰는 인터넷과 스마트폰도 다 그의 아이디어다. 이런 전자코뮌(전자오페라)을 처음으로 실현한 작품이 바로 이다. 인터넷이 나오기 전 백남준은 각 나라의 TV를 위성으로 연결하려고 했고 그것이 다행히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날부터 인터넷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백남준은 1984년 1월 1일부터 21세기가 시작된다(Le XXIe siècle commencera le 1er janvier en 1984)고 말하지 않았던가!!!.. 더보기
뒤샹과 백남준 다 여자 되려고 해, 그 차이는? 뒤샹, 백남준 다 여자 되려 했는데 그 차이는 뭔가? 뒤샹은 남자이지만 여자라 되려고 할 정도로 여장을 하면서까지 여성적인 것을 동경하고 있었지만 그의 유작인 에탕돈네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남성적이다 그러나 백남준은 유작이 엄마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아기가 되어 엄마와 대화를 하는 드로잉을 그리고 있다 달의 예술가인 백남준은 처음부터 여성주의적이다. 백남준과 샬럿 무어만 퍼포먼스 장면그런 면에서 뒤샹이 제3의 성을 이야기 했다면 백남준은 제 4의 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뒤샹은 남성으로 여성이 되려고 했고 백남준은 아예 처음부터 여성으로서의 남성이라는 전제 하에 여성이 되려고 한 것이다. 더보기
백남준이 죽기 전에 우리에게 던진 숙제 [백남준이 죽기 전에 우리에게 던진 숙제] 백남준 데드마스크 "한국이 20세기에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21세기에는 크게 성공할 것이다 -백남준 어쨌든 백남준은 1999년 말에 이런 말을 하면서 우리에게 과제를 남겼다. "그러면 왜 우리단군은 이스라엘의 모세처럼 세계적 거물이 못되었느냐? 삼국사기가 구약성서에 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한국은 이스라엘처럼 민족의 유리표방을 거치지 않고 그래도 안정된 중견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개개인으로 볼 때, 우리는 유대인만큼 문화나 과학에서 세계사에 기여하지 못했다. 21~30세기 한국인의 과제는 여기에 있다." 그렇다. 우리는 강대국 속 분단국가에 살면서 어느 나라보다 많은 고통을 받았기에 그 대안을 내놓을 수 있다. 미디어 그 자체인 백남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을 .. 더보기
백남준에게 굿은 그의 예술적 원류이다 [백남준추모5주기] 피아노는 걷어차고 요강으로 연주하는 백남준 [최재영의 사진 첫개인전] 갤러리아트링크에서 2011.01.25-02.13 TV와 피아노가 있는 백남준 전자굿 갤러리 아트링크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7-6 전화: 02 -738-0738 홈페이지: www.artlink.co.kr 백남준에게 굿은 모든 예술의 원초적 근원이었다[巫舞] (To Nam June Paik the shamanistic ritual of Good is the primitive source of art) 최재영이 다소 늦은 감 있게 첫 개인전으로 준비한 이번 전시는 2006년 1월29일 작고한 백남준의 5주기를 맞이하여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최초로 공개하는 백남준의 퍼포먼스사진을 선보인다. 백남준 생일이었던 1990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