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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부터 시작 1984년 위성아트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creating a multi-temporal and multi-spacial symphony) 일종의 전 세계 방송의 정보와 뉴스가 하나 하나 악기가 되어 총체적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라고 본 것이다. 백남준은 거기서 총 감독 총 지휘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흔히 '우주 오페라'라고 한다. 백남준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기 직전 1993년 겨울에 "이제 우리에게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부터 시작된다(Pour nous, le XXl e siècle commencera le 1er janvier. / For us, the twenty-first century will begin on January 1st.)"라고 선언.. 더보기
[백남준] 전시장에 피아노가 무슨 계략이냐 백남준 전략: 서양에서 거의 모르는 나라인 한국의 미술가를 그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백남준 첫 전시에서 서양에서 보여주는 전시방식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서양식 룰과 형식과 개념을 완전하게 뒤집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혼을 빼놓고 정신을 못 차라게 했다. 예술 아니 전신의 목적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다. 영국의 센세이션 전은 비교가 안 된다. 그는 서양미술판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것이다. 서양예술가들 맥 없이 당한 것이다. 백남준 첫 전시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백남준의 첫 전시는 한 마디로 서양미술귀신추방굿이었다. Hall with pianos at the Expostion of Music_Electronic TV 1963 Photo by Manfred Leve 더보기
[백남준] 이것은 그가 연출한 완벽한 불상이다 1950년대 말 백남준은 action painter였다 다시 말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바로 그림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사진으로 남겼다. 잭슨 폴록의 action painting와는 다르다. 그런데 최근 베니스비엔날레서 황금사자장은 2번(독일과 리투아니아)이나 action painter에게 돌아가다 그는 살아있는 조각 혹은 아티스트 부처였다 백남준 무신론자이기에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상당히 불교적이다 그래서 한국적이다 Paik with shaving foam during the Performance of Originale Cologne Germany 1961 Photo by Peter Fischer 더보기
[백남준] 가장 한국적인 것은 바로 '굿'이다 [백남준은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전자 샤먼킹 혹은 전자 만신(Electronic Shaman or Mansin)] 백남준, 노마드인데 그냥 노마드가 아니고 '디지털 노마드'다. 백남준은 샤먼킹인데 그냥 샤먼킹이 아니고 '전자 셔먼킹'이다. 백남준은 전통굿에서 쓰는 '칼과 방울과 부채' 대신에 'TV와 피아노와 로봇'을 굿판에서 신령을 끌어들이는 도구로 사용했다. 정말 창의적 발상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백남준은 굿판에서 TV를 산처럼 쌓아놓고 굿판을 벌린다 우리는 110년 식민시대와 그 연장인 분단시대를 살면서 근대화라는 것을 한번도 스스로 해본 적이 없다. 식민시대에는 일본 것을 빌려 썼고, 분단시대에는 미국 것을 빌려 썼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적인 것이 뭐지라고 물으면 답이 안 .. 더보기
[백남준] 독일에 유학할 때 잠시 기자였다 백남준 독일에 유학했을 때 1957년 이후 일본의 음악전문잡지 통신원 즉 기자를 한 셈이다. 아래는 1963년 6월 8일 신문 백남준 소개기사인가 당시 그는 작곡가로 기록되어 있네요.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말은 나중에 생긴 것이죠.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 뭐 그런 내용 같네요. During his studies in Germany, Paik wrote for the progressive Japanese music journal For its October issue in 1957 , he contributed an article. , describing the new legendary music course. 독일에서 공부하는 동안 백남준은 일본의 진보 음악 저널인 '음악예술(1957년 10월호)'에 기고하.. 더보기
[백남준] 백남준, 피카소는 똑같이 반전작가 피카소: 반전작가, 인류공존(1937년 작 게르니카) 백남준: 반전작가, 인류공존(1970년 작TV 코뮌, 이런 면에서 피카소와 백남준은 같다. 백남준의 전쟁 방지 방식은 동서 간에 가능한 많은 정보를 교환해야 한다고 믿었다. 백남준은 미국이 베트남에게 진 것은 결국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정보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보 결핍이 전쟁을 유발한다는 말이다 이 작품에 보면 반은 아시아에 대한 것, 반은 서구에 대한 것이 뒤섞여 있다 전쟁 하지 말라자는 메시지다) 남북이 전쟁을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 많은 정보를 풍부하고 교환하는 길밖에 없다. 우리가 개성공단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북한의 입장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중소기업은 북한 노동자에게 월급으로 6-7만원씩 지급했다. .. 더보기
[백남준] 돈 없어도 누구나 방송하는 시대 열다 백남준 전 세계에 인터넷 바이러스를 퍼트려 거대한 자본으로 운영되는 전 세계 미디어의 장벽을 허물어버렸다. 그러니 백남준은 정말 그들에게는 철천지원수와 같은 존재였다, 백남준은 맑스보다 훨씬 무서운 정보사회를 열어젖히는 혁명가였던 것이다. 돈 없이도 누구나 방송을 하는 시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백남준 1973년 1인 미디어 시대를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Someday everyone will have their own TV channel 1973 - N.J. Paik 더보기
[백남준] 우리 그의 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전혀 모른다. 여러분에 손에 백남준이 있다. 그 핸드폰 속에 백남준이 항상 웃고 있다. 모르는 것 있으면 그에게 물어봐라. 친절하게 답해줄 것이다. 백남준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를 진정 이해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다. 백남준은 모든 국민이 잘 써먹으면 된다. 그의 아이디어를 우리가 재활용해 돈벌이에서도 써먹고 연애에서도 써먹고 발명에서도 써먹고 공부에서도 경제 발전에서도 써먹고 오만 가지에 다 잘 써먹으면 된다. 그것이 바로 백남준이 가장 좋아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 문화에서 세계 1등을 하는 것이 바로 백남준을 잘 써먹는 길이다. 무엇보다 위기의 한반도가 연합 국가에 되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 백남준을 가장 잘 써먹는 길이다.. 더보기
[백남준] 1974년 인터넷 아이디어 첫 제안자 백남준은 1974년 인터넷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백남준은 1970년 작 은 사실 인터넷의 전조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술적 자유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유를 유발할 수있는 인터넷의 잠재력을 진정으로 믿었다 Nam June Paik Courtesy of Eric Kroll 더보기
[백남준] 지구촌의 자화상 <비디오 코뮌> 비디오로 그린 백남준의 자화상 1970년 동서의 경계가 없다는 주제가 담긴 그리고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처음 사용한 (위성) 비디오 아트의 첫번째 시리즈 /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첫 방송용 작품은 ‘비디오 코뮌’으로 WGBH 방송국에서 제작된 4시간짜리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다. 비틀즈의 음악을 프로그램 내내 틀어주는 일종의 음악방송이었다. 백남준은 비디오 합성 이미지와 더불어, 일본 상업 방송을 자막 없이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너무나 유기적이어서 어떤 이미지를 반복할 수 없는데다, 색채를 영상에 과도하게 입히게 되면 트랜스미터 장비가 과열되어 파손되었기 때문에 방송국 기술자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