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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지구촌의 자화상 <비디오 코뮌>

비디오로 그린 백남준의 자화상 1970년 <비디오 코뮌> 동서의 경계가 없다는 주제가 담긴 그리고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처음 사용한 (위성) 비디오 아트의 첫번째 시리즈 /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첫 방송용 작품은 ‘비디오 코뮌’으로 WGBH 방송국에서 제작된 4시간짜리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다. 비틀즈의 음악을 프로그램 내내 틀어주는 일종의 음악방송이었다. 백남준은 비디오 합성 이미지와 더불어, 일본 상업 방송을 자막 없이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너무나 유기적이어서 어떤 이미지를 반복할 수 없는데다, 색채를 영상에 과도하게 입히게 되면 트랜스미터 장비가 과열되어 파손되었기 때문에 방송국 기술자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이 WGBH 방송국에서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이용하였다.

백남준은 이후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과 뉴욕 WNET 방송국의 의뢰를 받아 신시사이저를 추가로 제작 하였다. 백남준은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개방형 전자 환경을 만들기를 원했고, 그들이 제작한 신시사이저는 일종의 개방형 시스템으로 쌍방향 비디오게임의 원형이라고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의사, 아베’에서 밝히고 있다.

보스턴 WGBH 방송국과의 레지던시가 끝나자 백남준은 록팰러 재단의 하워드 클라인 디렉터에게 보스턴 방송국과 같은 프로그램이 뉴욕에도 생길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설득하여 뉴욕 WNET 방송국에도 예술가를 위한 워크샵이 탄생하게 되었다. WGBH 방송국 관계자들은 백남준을 회고하면서 그는 자신의 임무가 더 많은 예술가들이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비디오 매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제목 ‘비디오 코뮌’처럼 그는 일종의 공동 커뮤니티를 구현하고 싶어 했다.

백남준은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공동시장’이라는 그의 글에서 세계 평화와 지구 환경을 위해 누구나 소통이 가능한 음악과 춤이 중심이 되는 공영 텔레비전의 프로그램과 유럽공동시장 모델을 따라 비디오 공동시장을 형성하여 비디오 정보 유통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원화된 상업 방송의 대안으로 이를 제시하며 이런 대안적인 프로그램이 미칠 교육적 효과는 무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백남준 당대에 실현되지 못했었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의 발전으로 그의 꿈은 실현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트위터, 팟 캐스트 등 정규 방송 이외에도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대안적인 매체들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교환 하면서, 중동의 재스민 혁명처럼 사회 곳곳에서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백남준이 위성 방송 프로젝트를 통해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를 뒤섞고, 방송국에 예술가들을 참여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일조 했던 것은 더 많은 사람들과 폭넓게 소통하면 인간 행동을 변화 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백남준은 1995년 첫 광주비엔날레를 기획하면서, “1995-2015년 사이의 비디오 예술은 ‘비디오 예술/비디오 삶’의 쌍방향 소통을 이룩함으로써 스스로를 능가할 것” 라고 선언하였다.

백남준은 일원화된 문화가 아닌 다양한 층위를 가진 문화들이 서로 만나고 교차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가능성을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도 백남준 실험의 현재 진행형 속에 있다.이유진(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