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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1996년 호암상 후 뉴욕에서 쓰러지다 백남준은 1995년 광주비엔날레 유치한 공로로 1996년 3월 25일 호암상을 수상하다. 그 당시 영상자료 캡처. 자료 이정성 대표 제공. 백남준 호암상을 탈 때 뉴욕에서 서울로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뉴욕으로 가는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탄 이유인가. 백남준이 뉴욕에 무사히 도착하기는 했지만 예감이 그리 좋지 않았다. 백남준 추위를 많이 타고 당뇨 등이 있어 건강체질이 아니었다.서울에서 뉴욕으로 올 때 "비행기 안이 너무 추웠다" 는 말에 시게코 여사는 항상 이 말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결국 얼마 되지 않아 1996년 4월 9일 자택에서 쓰러지다. 뇌줄중이 온 것이다. 그래서 왼손을 못 쓰게 되다 더보기
[백남준] 서양미술의 아버지 뒤샹과 관계는 백남준이라고 뒤샹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백남준도 뒤샹의 오브제아트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작품도 만들었다. 그러나 백남준과 뒤샹을 완벽하게 시대가 다르다. 뒤샹이 산업사회에서 살았고 백남준은 정보사회에서 살았다 비교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뒤샹이 이런 바퀴를 만들었을 때 이 바퀴에는 서양의 2000년 이상의 문명사가 다 농축되어 있다 바퀴는 결국 마차의 기원이 되고 나중에 탱크가 되고 자동차가 되고 고속기차로 까지 발전한다 백남준은 코믹하게 장난기 어린 손길로 여기에 TV와 비디오를 집어넣어 정보시대의 풍경을 가미한 것이다. 그래야 시대정신이 반영된 동시대 현대미술이 되지 않는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전문 출판사 타셴(독일)에서 백남준 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더보기
[백남준] 예술의 본질, 해프닝이 일어나는 것 오늘날의 미술이 현대미술 혹은 동시대 미술로 존재하려면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보듯 전혀 예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일종의 해프닝아트인데 백남준은 70년대 예술가의 삶을 살펴보면 90%가 (무목적적인) 해프닝이었다. 물론 1974년 그 중간에 너무나 유명한 TV부처를 발명하기는 했다. 1976년에는 그의 예술적 파트너가 진짜로 뉴욕경찰에 체포되었다. 이것은 그가 70년대 치열하게 해프닝아트에 전념했다는 반증이다. 역으로 그런 해프닝(스캔들)이 백남준을 더 유명한 세계적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https://frieze.com/article/how-beach-opera-58th-venice-biennale-quietly-contends-climate-chang.. 더보기
[백남준] 해프닝, 사건 터지지 않으면 비예술 진정한 예술은 왜 테러리즘처럼 보이는가.예술의 테러리즘은 당연히 평화적인 것이죠.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예술의 본질은 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프닝이다. 해프닝이 없는 예술, 사건이 터지지 않는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바다의 파도나 물결에 파동이 없으면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듯 예술이란 지루하기 짝이 없고 재미 없는 세상에서 파문과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만 31살이었던 1984년 6월 26일 교사시절, 이 기사를 스크랩 했었는데 보관을 잘못 해 지금은 너덜너덜해져 사진만 남고 거의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번에 김달진 자료박물관 아카이브에서 이 기사를 다시 발견하고 복사하다. 당시 조선일보 정중헌 기자는 문화분야에서 그의 전문성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1.. 더보기
[백남준] 그의 부인이 말하는 그의 삶의 예술 인터뷰 백남준아트센터에서 [1] 초기 TV아트가 고급예술인데 정크아트로 취급받아 [2] TV를 부수는 행위가 그에게는 어떻게 보면 수행이나 명상이었을 거예요.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급진적 사고로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샀죠. - 백남준은 어떤 예술가였다고 생각하는지? "나와 백남준은 우선 플럭서스(fluxus) 멤버이자 같은 예술적 동반자였죠. 나와 백남준은 이미 행위미술에 공감하여 어려운 시절을 같이 동고동락했어요. 플럭서스 운동이 결국은 비디오아트로 발전한 거예요. 일본에 있을 때부터 백남준을 알았지만 처음 만난 것은 1964년 뉴욕에서고 거기서 슈아 아베도 만나 '456로봇'도 만들었어요. 비디오아트는 초반에는 그 TV자체가 이동하기 어렵고 무겁고 잘 망가져 정크아트(junk art)로 취급당했기도 .. 더보기
[백남준] 모든 감각에 총체적으로 개입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 골자를 아래처럼 요약하고 있다. 그는 분명 초감각적이고 촉각적인 쾌락주의자다. "카타르시스, 순간의 환희, 모든 감각의 만족, 전인격 총체적 개입, 극도의 전자적 충동, 두뇌의 전기자기 진동, 직접접촉예술, 전자와 생리학의 시뮬레이션,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전자초고속도로), 정신의 사이버네틱스, 인공신진대사, 다매체 다방향 상응 등등." 백남준의 에로시티슴은 그의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누군가 나와서 연구해야 할 테마이다. 이에 대한 전문가가 전무하다. 더보기
[백남준] 몸으로 깨닫고 배우고 춤추는 철학자 -백남준이 증오한 '부르주아 교양취미'가 뭔지 한마디 해주시죠? "'(이영철) 부르주아 교양취미'가 뭐냐면 항상 좋은 자리에 참석하여 좋은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고, 좋은 음식만 먹고, 좋은 소리만 듣고, 좋은 말만 하고 고상한 척, 유식한 척하고 행세를 하는 것이에요. 결국은 가진 사람, 있는 사람에게 기대고 기존의 질서만 유지하려고만 하는 거죠." - 그러면 백남준이 '몸'을 중시한 것이 여기서 나오나요? "백남준이 이런 '부르주아 교양취미'를 부수는 데 사용한 무기가 바로 '몸'이죠. 그래서 예술에 몸을 도입해 행위음악, 해프닝아트가 생긴 거고요. 그런데 여기서 혼돈하지 말아야 하는 건 그가 말하는 몸 예술은 발레나 고전무용과는 전혀 달라요. 그건 이미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방식으로 철학이 없는 그저 .. 더보기
[백남준] 굿이란 모순된 사회 속에서 대안창출 아래는 백남준이 첫 전시에서 피아노 위에 굿판을 벌린 것이다. 서양미술판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그걸 다시 초토화시킨 것이다. 이런 판을 갈아엎어 버리겠다는 백남준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래서 첫 전시의 부제가 (서양미술 터줏대감) 추방(Expel)이다. 굿판은 서양의 전위예술보다 더 전위적이다. 왜냐하면, 전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초토화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이 백남준의 랜덤 액세스다. 게다가 소통의 범위가 서양보다 훨씬 차원이 높다. 산 자만 아니라 죽은 자도 와서 같이 소통을 하면서 전시를 보라고 초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미처 서양사람들이 못한다. 이 세상에 모든 귀신들아! 다 여기에 와서 내가 펼쳐놓은 전시굿판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 "굿은 나에게 모든 예술의 원초적 근원이다" 백남준이 그.. 더보기
[백남준] 그의 계보학은 보들레르와 원효 백남준 비디오예술은 문화적 테러리즘이다. 보들레르 악의 미학은 현대시의 테터리즘이다. 빅토르 위고는 보들레르의 시적 테러리즘을 새로운 전율(nouveau frisson)을 창조했다고 평했다. 이렇게 둘은 동서를 넘어 사제지간이다. 백남준의 라는 책에서 그의 비디오아트는 보들레르의 조응이라는 시에서 크게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두 사람은 동서의 테러리즘 미학의 창시자다. 백남준이 전자빛, 이미지, 사운드의 비빔밥이라면, 보들레르는 상징적 시어로 빛깔, 소리, 향기(lumiere, son, parfum)의 비빔밥(correspondance) 이다. 두 사람은 또한 원효가 말하는 원융합일 즉 융복합적인 종합적 정신체계와 더 나아가 총체적(integral) 미의 세계와도 통한다. 보들레르와 원효는 어떻게 통.. 더보기
[백남준] 왜 원과 소통(정보)을 그리 중시했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설명 명쾌하다. 그는 정보와 통신과 예술의 결합이다. 다 원할한 소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보에는 하아테크와 디지털 인터넷도 포함된다. 예술은 원이다. 원효 말로 바꾸면 원융합일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