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비디오예술은 문화적 테러리즘이다. 보들레르 악의 미학은 현대시의 테터리즘이다. 빅토르 위고는 보들레르의 시적 테러리즘을 새로운 전율(nouveau frisson)을 창조했다고 평했다. 이렇게 둘은 동서를 넘어 사제지간이다. 백남준의 <말에서 크리스토> 라는 책에서 그의 비디오아트는 보들레르의 조응이라는 시에서 크게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두 사람은 동서의 테러리즘 미학의 창시자다. 백남준이 전자빛, 이미지, 사운드의 비빔밥이라면, 보들레르는 상징적 시어로 빛깔, 소리, 향기(lumiere, son, parfum)의 비빔밥(correspondance) 이다. 두 사람은 또한 원효가 말하는 원융합일 즉 융복합적인 종합적 정신체계와 더 나아가 총체적(integral) 미의 세계와도 통한다.
보들레르와 원효는 어떻게 통하는가 두 사람은 타락을 통한 최고의 진리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다시 설명하면 보들레르는 악의 미학과 매춘론(prostitution) 그리고 원효는 불교의 자기무화와 파계적 세속주의다. 즉 춤을 추는 광대의 복장으로 불교의 이치를 노래로 지어 세상에 유포시켜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쉽게 전하는 방식을 취하다
추신 백남준은 뒤샹에 와서 더 이상 발전의 가능성이 막혀 버린 현대미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바로 TV의 도입이다. 백남준은 TV를 TV로 보지 않고 악기로 봤다. 즉 음악으로 본 것이다. 그가 음악 전공자이기에 그런 이점을 살려 현대미술의 음악적 시간의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현대미술에 사운드 아트로 들어옴으로써 장르간의 경계를 해체시킨 것이다. 현대미술의 범위를 결국 확장시킨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바로 18세기 서구의 현대시를 창안한 보들레르의 조응론 즉 융합(Correspondence)미학에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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