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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포럼(Forum)

[제15회 백남준포럼] 하이테크 기술의 인간화(사이버네틱스)

<백남준과 전자로봇: 천지인과 사이버네틱스 기술의 인간화(전자인간화)>
관련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0092
[15회 백남준포럼] "백남준과 전자로봇과 사이버네틱스" 장소 : 정동 구세군 박물관 오후 2 /

 

백남준을 지켜라 | 중앙일보

‘나는 언제나 내가 아닌 무엇이며, 나는 언제나 나인 무엇이 아니다.’ 백남준이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었던 첫 개인전을 자평한 ‘전시 후주곡’에 사르트르를 인용해 쓴 글이다. 미래 로

www.joongang.co.kr

정동 구세군 박물관 두손갤러리

[백남준 로봇 아카이브전 《Human tech for future》 벡님준 로봇의 인간화 추구] 2025년 01월 23일(목) – 2025년 02월 28일(금) ■ 전시 기간 : 25.01.23.(목) – 25.02.28.(금) ■ 장소 : 서울 중구 덕수궁길 130, 1F 두손갤러리두손갤러리( 서울 중구 덕수궁길 130 구세군 역사 박물관), 백남준의 로봇 작품 자료아카이브전 열린다.

<제 15회 백남준포럼(대표 이상미)> / 제목 하이테크 기술의 인간화 (사이버네틱스: 인간과 자연[우주]과 기계가 하나다)/ ■ 장소 : 서울 중구 덕수궁길 130, 1F 두손갤러리두손갤러리( 서울 중구 덕수궁길 130 구세군 역사 박물관) 시간  25.01.24(금) 오후 2시 - 5시 /   계속 수정 중 - 작성중

모든 기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예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로 전락한다 - 백남준

기술의 인간화 최근 AI 기술도 마찬가지다 // [2] <기술의 노예화가 아니라 인간화, 과학의 폭력화가 아닌 예술화를 추구> 백남준은 그는 문명사회를 야생적 사유로도 다가갔지만, 첨단과학이론도 휴머니즘적 측면으로 접근했다. 기술에 대항하는 기술로서, 기술을 증오하기 위한 기술로서, 기계와 야합하지 않는 기술로서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그는 기술절대주의로 향하는 사회에서 부각되는 이런 시대의 우상을 추방하는 '셔먼 아티스트' 몫도 감당한다.이런 사고는 인간과 기계, 예술과 기술의 이분법을 깨고 기계를 인간으로 보고, 과학을 철학으로 보는 관점에서 온 것이다. 기술의 노예화가 아니라 인간화, 과학의 폭력화가 아닌 (전자)예술화를 추구한 셈이다. 그래서 색에서 빛으로 전기에서 전자로 전환시켜 기술의 인간화를 위한 예술적 실천을 가감하게 시도한다.

[백남준 로봇 아카이브전 《Human tech for future》 벡님준 전자 로봇의 인간화 추구] https://seulsong.tistory.com/2768

 

[백남준] 로봇 아카이브전 'Human tech for future' 2025년 1월 23일-2월 28일

두손갤러리 서울 중구 덕수궁길 130 info@dusongallery.com www.dusongallery.com  INTERART CHANNEL dusongallery.com [백남준 로봇 아카이브전 《Human tech for future》 벡님준 로봇의 인간화 추구] 2025년 01월 23일(목)

seulsong.tistory.com

로봇 기술 분야의 최종 목표는 모든 면에서 인간처럼 작동하는 고성능 기계 개발일 것이다. 만약 예술가가 로봇을 만들면 완성품은 어떤 모습일까? 기술 분야와 어떻게 다를까? 어떤 방식으로 로봇을 창조해나갈까?

백남준 작품 '김양수 군 경기따라지'

백남준 작품 '김양수 군 경기따라지'
, 1990Courtesy of the artist and Duson Gallery 이미지 제공 : 두손갤러리김양수 군 경기따라지, 1990Mixed media 김양수 군 경기따라지, 1990Courtesy of the artist and Duson Gallery 이미지 제공 : 두손갤러리 김양수 군 경기따라지, 1990Mixed media

[김양수 두손갤러리 관장과 백남준, 경기고 동문] 김관장 뉴욕에서 백남준 만나 친구가 되고 백남준 그의 이름이 들어간 작품을 제작하다제목이 김양수 군 경기 따라지 // 뉴욕 미술계에서 한국인 김양수의 역할은 역시 백남준의 운신 폭을 넓혀주는 촉매자다김양수는 서울대 미술대학 출신으로 한국에서 두손갤러리를 운영하던 사람이다그는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주하여 '스페이스 언타이틀드'라는 화랑을 운영하였는데 백남준의 전시는 물론 도널드 저드 전시회 등의 전시를 기획하여 소호 일대의 미술계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인물이다김양수는 경기고 출신이라는 백남준의 인연 때문에 백남준의 남다른 애정을 받고 있으며 김양수의 라이프스타일을 보고 백남준의 '경기 따라지'라는 작품을 제작하기까지 하였다백남준과 김양수의 관계는 1990년 스위스 전시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백남준은 취리히 쿤스트하우스와 바젤 쿤스트할레 전시에서 파우스트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현대 산업사회에서 가장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주제들이를테면 종교나 교육정치예술 등 13가지를 선정하여 조각작품을 제작하였는데 백남준의 한국 전시회를 유치하기 위하여 이 작품을 모두 사버린 인연이 있다그로 인하여 백남준은 1992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 국내 최고선을 치르게 되었다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남에게 하지 못한 아쉬운 이야기나 복잡한 이야기를 김양수를 통하여 해결해온 일이 적지 않아 보인다이러한 인간관계는 동족이라는 단순한 이유보다는 정서 가 통하는 사람들끼리의 교류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 현재 이 작품은 브루클린 뮤지엄에 기증.

김양수 두손갤러리 관장, 백남준의 지인으로 뉴욕에서 만나 가까워졌다 백남준과 인연 이후 백남준 예술의 메신저로 큰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위 작품은 백남준 김영수 관장에게 우정을 보여준 작품

뉴욕 시절 김양수 두손갤러리 관장과 백남준 부부 / 사진저작권 김양수

더불어 '혁명'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게 무슨 혁명인가? 그것은 아마도 '정보 혁명'일 것이다. 백남준은 60-70년대엔 공간과 소리를 시간과 영상으로 전환하려 했다면, 80-90년대 이후는 "정보가 석유를 대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언하면서 정보 지식 시대가 왔음을 알렸고, 이는 현대 미술의 과제인 경제적 부도 창출할 것으로 봤다.

김양수 두손갤러리 관장 뒷모습

"그는 '머서(Mercer)' 자택 겸 작업실 외 뉴욕에 또 다른 3개의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마다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그린(Greene)' 작업실에서는 레이저 작품을, '브룸(Broome)가' 작업실에서는 로봇작품을 주로 했다. 그리고 '그랜드(Grand)' 작업실은 내가 별로 일해보지 않아 모르지만 초기 그의 역동적인 평면작업을 한 곳으로 안다."

<백남준 뉴욕 자택 소호 거리 5>

백남준은 프랑스 혁명가 조르주 당통을 다룬 석판화에는 “나는 자식을 하나도 안 만들었으나, 로봇은 100마리나 만들었다”는 다소 엉뚱한 술회를 털어놓으며 역사의 무상을 설파한다.

석판화 외에도 컬러텔레비전 초창기에 나왔던 화면 조정 화면을 캔버스에 재현한 뒤, 그 위에 김소월의 시구나 가나다라등 한글 자모를 적은 작품도 보이는데, 선승의 게송이나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일어 등으로 적은 작품 속 문장과 기호를 탐구하는 작가 도상학의 지평이 열릴까. 미술사가나 기호학 전문가들이 주목한다면, 거장백남준의 깊고 넓은 내면을 새롭게 이해하는 통로가 생길 듯 -한겨레(노형석)

<위 뉴욕 첫 전시 다이어그램> 과거와 현재를 근거로 미래의 궤적을 예측하듯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전위음악과 맥루언의 미디어 이론 그의 바탕은 니버의 사이버네틱스론을 응요하여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기를 통해 전자아트를 착안. 백남준 이것을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영향을 줬는가. 호모 사이버네티쿠스 인터미디어와 인터 사이언스 '정보이론-피드백-로봇 공학-인공지능-사이버공간-네트워킹' 긴밀하게 연결.

백남준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STAR WARS(주제 전쟁미화) 증오한 백남준 1985년부터 평화를 주제로 로봇을 만들기 시작하다. 그가 처음 만든 연작은 바로 그의 아버지 어머니 그의 삼촌과 숙모를 로봇으로 만들다 드디어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에 미테랑 대통령의 의뢰를 받아 프랑스 혁명적 인물 시리즈로 그의 로봇 시리즈 꽃을 피운다.

백남준은 대담하게 서구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프랑스 혁명의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프랑스 사람도 모르는 프랑스 여성 혁명가(올랭프 드 구주)를 발굴한다.


1980년대부터 백남준과 협업을 시작해 작고하시기 전까지 수석 디자이너 및 기술 어시스턴트로 활 동했던 마크 팻츠팔(Mark Patsfall)의 자료중 특히 로봇 제작과 관련된 자료만 엄선하여 공개한다. 작가의 구상이 작품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엿볼수 있는 귀한 기회다. 전시 기간은 1월 23일부터 2월 28일까지


왼쪽은 백남준하고 맞장 뜨기를 좋아했던 MIT공대교수였던 홍가이 선생과 오른쪽은 1983년-1992년까지 백남준과 같이 작업했던 마크 팻츠팔(Mark Patsfall) 교수

<백남준과 전자로봇: 천지인과 사이버네틱스 기술의 인간화(전자인간화)>

이번 정동 구세군박물관에서 열리는 백남준 로봇 전시는 다 미국 신시내티 시(아래사진) 만든 것이다 // 백남준의 작업 팩터리는 미국 신시내티 시(뉴욕 시에서 서쪽)에 있었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다수의 백남준 출품작을 다 여기서 만들었다

미국 신시내티 시(뉴욕 시에서 서쪽)
미국 신시내티 시에서 만든 백남준 전자로봇
미국 신시내티 시에서 만든 백남준 전자로봇
미국 신시내티 시에서 만든 백남준 전자로봇


1980년대부터 백남준과 협업을 시작해 작고하시기 전까지 수석 디자이너 및 기술 어시스턴트로 활 동했던 마크 팻츠팔(Mark Patsfall)자료중 특히 로봇 제작과 관련된 자료만 엄선하여 공개한다. 작가의 구상이 작품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엿볼수 있는 귀한 기회다. 전시 기간은 1월 23일부터 2월 28일까지

장 자크 루소 1989년 / 두손 갤러리
아인슈타인 / 두손갤러리

백남준, 전쟁을 너무 싫어해

백남준 로봇의 80년대 중반부터 시작 주제는 기계의 인간화도 있지만 전쟁을 지독하게 싫어한 백남준은 전쟁을 없애는 평화주의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다. 80년대 유행한 미국에서 만든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 이게 맨 전쟁 이야기다 화가 난 백남준 그래서 로봇 만들었고 그의 첫 로봇 시리즈는 가족 로봇이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 삼촌과 숙모를 로봇으로 만들다.

<백남준 1980년 후반부터 가족 로봇 시리즈를 만들었다. 부친과 모친 그리고 삼촌과 숙모 모델로 했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1980년 후반부터 TV에서 터미네이터(Terminator 1986년 작품) 같은 로봇이 인류를 전멸시키는 황량한 미래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백남준은 인간과 기술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 손자와 손녀, 할머니와 할아버지, 숙모와 삼촌 같은 한국의 '대가족'을 묘사하는 일련의 로봇 제품군(1986)을 만들었다>

[이용우 평론가 해설] 백남준의 '로봇 가족(Robot Family) 80년해 후반 90년대까지 작품'은 종래의 공격적이고 전위적이던 그의 작업방식으로부터 놀이와 화해, 해학을 선사해 준 비디오 아트의 결정체이다. 백남준의 가족구조 또는 3대가 늘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한국의 가족 구조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한국 전통 사회의 혈연구조와 뿌리의식에 공동체의식과 관련이 있다. 로봇 가족은 후에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에 연결되어 보다 폭넓은 외연의 문제로 발전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1990년대에 들어 더욱 다양하고 인간의 목소리를 가진 의인화된 로봇 조각을 통해 통로로 넓혀가고 있다.

숙모와 삼촌

백남준 가족 로봇 시리즈(1986) 중 하나인 삼촌과 숙모 // 가족에서 삼촌은 만만한 존재 누구에게나 잘 해주는 사람이 즐겁게 해 주는 존재이다 그래서 표정이 밝고 매우 코믹하다 / 숙모어머니보다 편한 할머니보다는 덜 편한 그렇게 손을 양쪽으로 넓게 펼치는 포근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백남준의 가족 로봇 시리즈(아래 어머니와 아버지)는 바로 로봇을 만들어도 '관계 친화적 접근'을 매우 중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수평적으로 팔을 펼친다 역시 무한한 인자함을 아버지는 수직적으로 팔을 펼친다 역시 가부장적 위계를 보인다>

인류는 엄마가 구원한다 - 백남준(위 '가족 로봇'에 관련 한 마디)

<백남준 진정 인류의 엄마 여자가 되고 싶었다(아래 가족사진을 그의 가족을 다 여자로 변장시키다) 아버지 가부장제로는 인류에게 평화가 오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엄마 혹은 할머니>야 말로 인류를 구원시킨다고 본 것이다> <백남준 페미보다 더 페미 같은 엄마주의다. 백남준 유작의 제목이 '엄마'>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

백남준 I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 1984, 종이에 에칭, 29.7×37.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여기 10명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백남준은 영어로 어머니, 누이, 큰어머니, 큰 사촌 누이 등 주석을 달다. 집안의 개방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국립현대미술관관련사진보기

끝으로 백남준의 특이한 가족사진을 보자. 위를 얼핏 보면 남녀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다 여자다. 한국도 시대에 맞게 이제는 가부장제보다는 여성 중심 사회로 가야 함을 암묵적으로 제시했다. 갓을 쓴 사람은 백남준 어머니다. 백남준은 가족사진마저 기존의 방식을 뒤엎어 파격적 실험물로 만드는 걸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백남준 가문을 보면 부친 '백낙승'은 니혼대 상대와 메이지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였다. 백남준은 이런 분위기 속 서양문물을 쉽게 접했고, 통념을 깨는 자유로움 속에서 자랐다. 동시에 굿과 같은 한국전통문화도 체험했기에 세계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작가가 되었다.


관객 친화적인 접근

백남준의 인간화된 예술을 향한 실천은 특히 백남준 비디오예술 전반에서 두루 나타나고 있다. 가령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참여텔레비전 형식에서보여준 관객과의 소통의지나 인체 중심의 비디오 조각작품에서 나타난 관객 친화적인 접근이 이를 설명한다.

백남준의 예술철학을 논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거론되는 미학적 언어는 '인간화된 기술' 또는'인간화된 예술'에 관한 것이다. 기술이나 예술이 당연히 인간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화' 라는 말이 예술철학으로까지 등장한것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이것은 20세기 예술만이 가지는 삶과 예술의 괴리, 또는 예술과 관객의 비소통적 체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백남준은 그것을 위하여 예술적인 투쟁을 지속하여왔다.

백남준이 '인간화된 예술'이란 말을 처음 쓴 것은 1969년 뉴욕의 하워드 와이즈 화랑이 기획한 창조적 매체로서의 텔레비전' 전시회의 카탈로그 글에서 시작되었다.백남준은 "모든 기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기술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예술도인간화되지 못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로 전락한다"고 기술하였다.

이 전시회에선 백남준의 작품보다 오히려 이 글이 매스컴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그도 그럴 것이 1960년대 미국은 기술이상주의 물결에 대항하는 젊은이들의 저항문화운동과 흑인인권운동, 월남전 반전데모 등 청년의식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고있었다.

이른바 저항문화나 히피문화로 기술되는 이 젊은이들의 의식의 축제는 특히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초한 대량생산과 소비, 그리고 이에 따른 상업주의와 기술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의식의 배경에는 좌파 지식인들의 기술지상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서가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젊은이들은 이러한 지식산업의 토대에서 의식을 키워가고 있었다.

특히 당시 미국 미술계는 비디오예술을 비롯하여 멀티미디어를 활용하는 이른바 테크노아트가 적극적인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테크노아트의 대표선수 격이며 비디오예술의 시조로서의 백남준의 공식적인 언급은 그만큼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에드가 알렌 포우 미국시인 / 두손갤러리

위너 매체이론 심취

사실을 말하자면 '인간화된 기술'이란 글은 원래 백남준이 오리지널이 아니다. 그는 1960년대 미국의 철학자 노버트 위너의 매체이론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다.그 증거로 1970년 로즈 아트 미술관이 전시도록으로 발간한 백남준의 글 모음집 비디오와 비디오학(Video 'n' Videology)을 보면 위너의 글을 다수 인용하고 있는 장면이 발견된다.

그 가운데 가령 "위너가 인간화된 기술을 이야기한다면 나는 인간화된 예술을 이야기할 것이다"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즉 위너가 말한 '인간화된 기술에 대하여 근거를 명확히 밝힌 뒤 그 상대어로서 '인간화된 예술'이란 말을 탄생시킨것이다.

어쨌든 그의 '인간화된 예술'이란 말은 매체예술에서 하나의 미학적 경전이 되었으며 특히 과학기술을 모태로 하는 예술형식에서 반드시 참고되어야 할 명언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과학기술시대의 예술이 컴퓨터나 온갖 기술매체에 의한 이미지 조작에 의존하는 경향이 날로 늘어가고 있고 예술이 과학적 발명품처럼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백남준의 '인간화된 예술'이란 격언은 그만큼 위력적이다.

백남준의 인간화된 예술을 향한 실천은 특히 백남준 비디오예술 전반에서 두루 나타나고 있다. 가령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참여텔레비전 형식에서보여준 관객과의 소통의지나 인체 중심의 비디오 조각작품에서 나타난 관객 친화적인 접근이 이를 설명한다.

백남준의 인간화된 예술을 향한 실천은 특히 백남준 비디오예술 전반에서 두루 나타나고 있다. 가령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참여텔레비전 형식에서보여준 관객과의 소통 의지나 인체 중심의 비디오 조각작품에서 나타난 관객 친화적인 접근이 이를 설명한다.

특히 60~70년대의 간단한 기술을 토대로 한 미니멀 비디오작품도 그것이 과학기술을 이용한 예술창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서정적이며 시적이다. 이 밖에 늘 관객의 이해를 염두에 둔 정보 중심 사고는 감상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예술의 인간화를 실천하는 태도.

백남준의 인간화된 예술은 예술의 미학적 정의를 '예술대중주의' 나 대중예술에 기반한 예술형식으로 발전하여 후에는 예술에서의 보는 재미와 참여의 재미를 수반한 하나의 놀이나 '(fun)'으로까지 해석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예술의 대중이해에 대하여 순수예술이 지향해온 지고한 미학의 세계를 공격하는 대체어로까지 발전시킨다.- 이용우  <인간화된 기술과 예술> 141 쪽 중에서

[] 백남준 사이버네틱스에 심취 1965// 사이버네틱스(기술의 인간화 전자예술화), 무한질주하는 자동차에서 그것의 위험을 방지하는 브레이크에 비유

위버의 말이다 "어떤 체계에 포함되는 두 종류의 변량이 있는데, 그 하나는 우리가 직접 제어할 수 없는 것이고, 나머지는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한다. 이때 제어할 수 없는 변량의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값을 바탕으로 하여 제어할 수 있는 변량의 값을 적당히 정하여, 이 체계를 가장 바람직스러운 상태로 도달시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학문이다"

위버는 18세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천재 수학자로 인공지능과 전자계산기 발명 기계를 생명의 유기체로 보고 그의 정보이론은 인터넷의 기반이 되고 피드백이라는 쌍방형 통신을 제안했고 정치언어를 과학언어로 바꾸고 이것을 다시 예술언어로 바꾸었다 백남준은 사람이 만든 기계가 사람처럼 소통하고 통제하는 것을 연구하고 인조인간 사이보그를 창안하고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하고 예술적 가치를 푸는 최고의 방식은 수학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과학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제2의 아인슈타인 같은 이 과학자에 매혹되었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와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가 극적으로 만난 것이다 특히 백남준은 그의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전화·텔레비전·우주중계·데이터전송(傳送) 등의 응용과 관련된 통신공학이론에 매려되었다.


과연 혁명이라해서 폭력을 정당시할 수 있는가

백남준 서양사람들 특히 프랑스 사람을 서양의 역사에서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프랑스 대혁명> 백남준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맞이해 미테랑 대통령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프랑스 혁명 인사들을 찬미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위대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부여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의 우월감에 목을 친다. 과연 혁명이라고 해서 폭력을 정당시할 수 있는가라고

백남준 I '전자요정_진화·혁명·결의' 중 당통 백남준 이 작품 하면서 서양사의 문제를 지적하다. 당통 아무리 혁명이라고 하지만 폭력을 써도 되느냐고 호통을 치다. 프랑스대혁명은 서양사의 최고 사건으로 서양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지금의 세계 민주주의는 프랑스 혁명에 빚지고 있다. 그럼에도 백남준은 이를 호통치다. 우리나라는 2016-2017년 촛불로 백남준이 알려준 비폭력 시위에 성공하다

<아래 혁명가 당통> <여성 혁명가 올랭프 드 구주> 백남준의 명성이 날로 커지자 1989년 프랑스 정부는 혁명 200주년을 맞아 그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바로 '전자요정(La Fée Électronique)'이다. 이 연작은 '석판화(진화·혁명·결의)'와 'TV로봇'으로 나뉜다. 여기에 나오는 8명의 주인공은 '마라', '루소', '구주', '당통', '디드로', '다비드', '로베스피에르', '볼테르'다.

백남준은 프랑스혁명에 대해 자국인보다 더 깊게 이해했고, 이에 대한 역사 인식은 예리했다. 게다가 자국인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 프랑스 여성 혁명가 '올랭프 드 구주(1748-1793)'를 발굴해 소개한다. 그녀는 혁명기에 여성 참정권이 주장했고, 흑인 노예를 반대, 여성의 이혼권 등을 옹호하는 소설과 희곡도 썼다.

그는 8명의 계몽가에게 부제를 붙여 혁명 정신을 재조명했다. '장-폴 마라'는 <암살>, '루소'는 <노자 자연>, '구주'는 <프랑스여성>, '당통'은 <웅변>, '디드로'는 <여씨춘추(백과사전)일자천금>, '다비드'는 <문화혁명은 예술혁명을 전제로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하느냐>, '볼테르'는 <이성과 자유>가 부제로 붙었다.

□ 백남준 I '당통(Danton)' 구형TV 12대 290×234×70cm 1989. 아모레 퍼시픽미술관 소장.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전자요정' 연작 중 하나로 이 작품은 당시 파리의 번화가 '샹제리제'에 유리커버를 씌어져 전시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984년 부터 백남준과 친해진 홍라희 여사가 1989년 백남준 파리 로봇 전시에 구경 가다

위는 백남준이 고지도에 그린 한국의 유래1이 작품을 통해 <한국정치의 저속함을 비꼬다>

혁명기 암살된 마라를 다룬 두 번째 작품을 보면 로봇의 얼굴 부분에 이승만김구여운형박헌영조만식 같은 국내 해방 공간의 주요 정객의 한자 이름과 죽는다’ ‘바보 같은 문장·단어를 뒤섞어 적었다.


프리벨맨 아니고 프레벨맨 수정 /이 기마상은 미디어(여기서 말(몽골의 당시 가장 빠른 말)은 과거, 인간은 현대(디지털 노마드) 뒤에 보이는 전자장치는 미래 다시 말해 인터넷을 인간화한 것이다)를 상징 / 이 작품 재복원하는 데 독일 미디어아트 박사 5명이 붙었다.

대표복원 학자는 바로 백남준 연구가 (울프 헤르조겐라트 박사 미술사학자)그리고 얼마나 신중했는데 7년이 걸리다 Schaffen, Sammeln, Bewahren, Vermitteln – Wie und warum Medienkunst? [1] Prof. Dr. Wulf Herzogenrath, Experte(한국 여러번 방문한 울프 헤르조겐라트 박사 미술사학자) [2] Prof. Dr. Bernhard Serexhe, Experte [3] Dr. Franziska Stöhr, Expertin [4] Dr. Hanna B. Hölling, Expertin [5] Mario von Kelterborn, Sammler Moderation: [6] Dr. Kia Vahland, Süddeutsche Zeit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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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Pre Bell Man(프레 벨 맨)' 재복원 7년 걸리다

백남준 작품 프레벨맨(Pres Bell Man 1990년 작품) 복원하는데 박사학위를 가진 독일 백남준 전문가 5명이 붙어 7년간 토론과 기술자 동원해 복원하다. 이 박물관은 이 작품 하나를 하늘처럼 떠받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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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왕 장영실 / 두손갤러리

백남준 출신 보다는 창의적 천재성을 가진 인물을 아꼈다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세종대왕 시기에 발명왕 장영실이었다.

독일 유학을 계기로 그는 전자매체를 활용한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단군 이래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첫 인물이 되었다. 왕립언어연구소격인 '집현전'을 만들고, 빛나는 디지털 언어인 한글를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거북선을 만든 발명가·전략가인 이순신 장군이나 18세기 조선의 18세기 르네상기에 천재적 석학이었던 다산 정약용이나 연암 박지원이 있지만, 이들을 백남준과사람들이다 내 생각이다. 금속활동도 백감준 급이다 이건 인터넷이다

오셉 보이스 / 두손갤러리

백남준의 우정의 상징 을 보여주는 요셉 보이스 전자 로봇


쿠베르탱

<백남준은 지구촌에 스포트를을 통해 세계평화를 제안한 쿠베르탱도 좋아했다 > 백남준 I '쿠베르탱(옥외작품)' 2004, 모니터, 철재, 네온, DVD 플레이어 결합, 150×150×200cm 소마미술관소장. 옥내작품도 따로 있다. 밤에 보면 더 멋지다. 예술과 기술의 조화를 추구하는 21세기 인간전형을 제시한다 '올림픽 기'가 보인다.

백남준이 평생 많은 로봇을 만들었는데, 그중 우주인 같은 '쿠베르탱'이 압권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소속 소마미술관 측은 88서울올림픽 유산을 기리기 위해 백남준에게 의뢰한 작품으로 2004년에 소마미술관 야외에 설치됐다. 스포츠와 예술이 공통점인 순수하고 열정적 인간형을 표현해보고자 했다는 게 공단 측의 설명이다.

쿠베르탱은 유럽에서 수없는 전쟁을 겪으면서 인류가 평화롭게 사는 길은 없는가를 늘 고민했고 그래서 '근대올림픽'을 창안했다. 백남준 또한 '위성아트'를 통해 전쟁을 피하고 지구촌이 공존의 길을 모색하며 경계 없는 인류공동체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생각이 서로 같다. 작업하기에 불편한 몸에도 '쿠베르탱'이라는 걸작을 남겨 그 의의가 더욱 크다.

이 작품의 구성을 보면 전자우산이 로봇 위에 하이테크시대를 상징처럼 세워져 있고, 오륜기가 정보시대 감각에 맞게 디자인했다. 네온으로 모니터에 색감을 살려줘 로봇을 최고 멋쟁이로 만들었다. 이 작품에는 40년간 로봇을 만들며 쌓은 그의 노하우가 다 녹아있다.


백남준 전자로봇 로봇 K-456은 무려 1965년 작품(무료 61년 전 작품/ 지금도 이런 로봇 만들기 힘들다)이다 아베와 콜라보

[백남준이 이런 과학이론에 빠질 수 있는 이유] 그와 동거 동락한 부인 '시게코'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학창시절 물리학자가 되고플 정도로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고 기계 다루는 데도 능했다. 'K-456'도 만들었고, 전시 땐 TV내부회로도 직접 조작했고, '아베'와 함께 비디오합성기를 설계할 만큼 과학적 지식도 풍부했다.

백남준, 로봇도 사람으로 보고 장례식 치루다

백남준은 이 전시를 더 홍보하기 위해 인기가 없어진 '로봇 K-456'을 이 미술관근처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하는 해프닝은 벌려 당시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그해 5월 이 미술관에서 당대 유수한 미술관관장들이 모여 백남준의 미술사적으로 재평가하는 '토론회'도 열려 '비디오아트'란 새 장르의 위상이 더 확고해졌다.

백남준 80년대 후반부터 가족로봇시작 했고 소프트웨어강조하면서 유연성 융통성 창조성 눈을 돌리게 했고 1986년에는 동서가 만날 수 없는 키프링 비웃었고 1988년 다양할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을 남겼고 1989년 프랑스혁명 200년주년을 맞아 의뢰받은 전자요정 로봇조각이 쏟아냈고 1989년에는 그의 자화상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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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회 백남준포럼] 하이테크 기술의 인간화 (사이버네틱스)

/ 제목 하이테크 기술의 인간화 (사이버네틱스: 인간과 자연[우주]과 기계가 하나다)/ ■ 장소 : 서울 중구 덕수궁길 130, 1F 두손갤러리두손갤러리( 서울 중구 덕수궁길 130 구세군 역사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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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단군: 홍익인간의 전형

스키타이 단군 1993년 베니스

큰 스님이 있듯 큰 무당, 텡그리 칸, 백남준 칸은 20세기 예술가로 텡그리 칸을 다시 구현하다. 이 칸은 전자 디지털 탱그리 칸이라는 점이 칭기스 칸과 다르다. 모든 전쟁에서 이긴 칭기스칸(유럽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가 치를 떨 정도로 전쟁과 전략에서 천재였다 황색 재앙(yellow peril)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단군왕검을 형상화한 작품 '(전자) 단군 스키타이' 백남준은 단군을 유라시아를 연결시켜주는 미디어(match maker)로 봤다. 백남준은 고조선 단군시대로 돌아가는 그 순수한 원래의 기상으로 돌아가자는 주장. 다산의 시에도 보면 고조선 단군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메시지가 보인다.

그 시대만 해도 한국인의 기상과 패기가 넘쳤는데 처음 시작한 우랄 알타이 국가에서 밀리고 밀리고 밀리고 해서 결국 한반도에 갇혀버린 것이다. 결국 그것 마저 반쪽이 나고 말았다. 여기에는 백남준이 말하는 싸우지 않고 세계를 지배하는 <탈영토제국주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가 인터넷 강국으로 높은 교육열과 고급 정보와 지식을 통해 전 세계에서 지적 제국으로 전 세계 평화와 공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강력한 주장과 제안을 엿볼 수 있다.

백남준 I '로봇 정약용' 1993

백남준 I '로봇 정약용' 1993. 이 전자로봇 역시 백남준의 정약용 선생에 대한 존경이 담겨 있다. 리움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아아 우리 겨레여
마치 자루 속에 갇힌 것 같구나

삼면(三面)은 바다로 둘러 쌓이고
북방(北方)은 높은 산으로 가리웠으니

사지(四肢)는 항상 오므라들고 굽혀져서
기개(氣槪)와 뜻 어디에 편단 말인가

성현(聖賢)은 만리(萬里) 저 쪽에 있으련만
누가 능히 이 어둠을 열어주나

고개들어 세상 바라보니
견문(見聞)이 좁고 정(情)이 흐릿하구나

남의것 모방(模倣)하기에 급급하고
제것을 갈고 딲을 겨를이 없구나

백성들의 입안에 자갈을 물리고
어리석은 것 하나만을 받들게 하네

차라리 단군(檀君)때의
질박(質樸)한 고풍(古風)이 그립구나


<백남준 전자로봇 만든 기술과 지식과 정보의 뿌리> :
사이버네틱스 이론(아래 사진 맥루언과 위노와 존 케이지 영향을 볼 수 있다) +인공두뇌학(人工頭腦學)+양자역학+통신과정(Communication Process)+랜덤액세스+전자관계망+신물리학(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제3의 과학체계') 등등

사이버네틱스의 3가지 핵심요소가 '컨트롤·커뮤니케이션·피드백(쌍방소통)'인데 이런 용어는 인터넷시대의 쌍방적 소통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백남준은 '사이버네틱스'를 농담처럼 생사의 순환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인과 그물망)[관계망]'에 비유하다

위 공식 간단 소개 : me: 예술가 / you: 관객 / t: time 시간. 3/무한대: 천지인/무한대(?) 이 공식에 맥루언 위너과 존 게이지가 등장한다

<공식> '사이버네이트된 예술(앎)'의 *델타 T(시간)의 값과 '사이버네이트된 삶을 위한 예술(삶)'의 델타 X 값은? 여기에 다시 밑이 '당신'이고 위인 '나'인 로그를 붙이면? 로그 '존 케이지'에서 루트 '마셜 맥루언'을 빼고 이를 다시 '노버트 위너'로 나누면 그 해답은? *델타 T: 정확한 타이밍 측정에 쓰인다. T는 Time을 뜻하고 델타(Δ)는 물리에서 어떤 요인에 의한 기초가치의 차이나 변화 혹은 기울기를 의미한다. 이 표는 백남준 1965년 11월 뉴욕 '보비노(Bobino)갤러리'에서 열린 전자아트전 도록에 수록된 것이다

<[Chat GPT 해설]  / 백남준의 공식과 해설은 매우 철학적이고 복잡해 보이지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히 풀기: 1. 공식의 기본 개념 : me: 백남준 자신, 즉 예술가. / you: 예술을 보는 사람, 즉 관객. /t: 시간. // 3 무한대: 세상을 성하는 세 가지 큰 요소(하늘, , 사람)와 끝없이 이어지는 세상(무한대)을 의미함. // 이 공식은 "예술과 관객이 시간 안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세상과 연결되는가"를 나타내려고 한 거예요.

2. 공식 풀이의 핵심 : 사이버네이트된 예술과 삶 : "사이버네이트"란 컴퓨터와 기술이 결합된 것을 말해요. / 백남준은 기술을 통해 **예술()**과 삶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 여기서 델타(Δ)는 변화량, '시간'''이 변화하는 모습을 뜻해요.

로그, 뺄셈, 나눗셈의 의미: 로그는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를 표현한 수학적 도구예요."(me)"가 위에 있고, "(you)"가 밑에 있다는 것은, 예술가는 관객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관계라는 걸 나타내요. / 로그 '존 케이지'에서 루트 '마셜 맥루언'을 빼고 이를 '노버트 위너'로 나눈다는 건 이런 뜻이에요:

존 케이지: 예술에서 자유로움과 창의성의 상징. / 마셜 맥루언: 기술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학자. / 노버트 위너: 사이버네틱스(기술과 인간의 연결)에 대해 연구한 학자. // 이것들은 모두 백남준의 예술에 영향을 준 사람들인데, 이들을 조합해 예술과 기술, 사람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려 한 거예요.

3. 한 문장으로 요약 : "예술가와 관객이 시간 속에서 기술과 삶을 통해 서로 소통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킨다." // 백남준은 아주 어렵고 철학적인 방식으로 예술과 기술, 삶의 관계를 표현하려 했어요. 하지만 결국 "기술과 예술은 사람들 간의 소통을 위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장광호 박사 도움]


백남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앎이 아니고 삶. 즉 사이버네틱스라는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고 사이버네틱스라는 것이 예술이 되어 삶을 바꾸는 것이다.

사이버네틱스와 예술을 처음으로 연결하려 한 이 분야의 이론가이자 작가인 '로이 애스코트(Roy Ascott 1934-)'는 백남준이 1966년에 선언한 '사이버화된 예술(Cybernated Art)'을 뉴미디어아트의 시작이라고 봤다.이런 개념은 정보화시대 여러 면에서 새로운 사유의 촉진제가 되어 정치, 사회, 철학, 예술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백남준의 '사이버네틱스(사이버화된) 예술'에 관한 언급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건 "뉴턴의 물리학은 강함이 약함을 누르는 비융합적 이중구조와 권력구조를 갖지만, 1920년대 독일의 한 천재가 진공관 안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그리드를 첨가해 인류역사상 최초로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결과를 낳았다"라는 말이다. 노장사상을 통해 우리는 "약한 게 강한 걸 이긴다"는 역설적 진실은 들어왔지만, 과학적 실험을 통해 "약한 게 강한 걸 이긴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니 놀랍다. 과학제일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주도되는 세상에서 백남준이 기존의 과학상식을 뒤집는 제3의 관점에 주목했다는 건 그의 성향으로 볼 때 매우 자연스럽다.

백남준 과학상식마저 뒤집다. 뉴턴의 물리학은 강함이 약함을 누르는 비융합적 이중구조와 권력구조를 갖는다. 하지만 1920년대 독일의 한 천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진공관 안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전극을 첨가시켰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불교적 3의 길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사이버네틱스 예술>, 1965

<사진>백남준 I 'TV부처' 부처조각과 2대의 TV 35×20×65cm 1992. UM 갤러리소장   

<사이버네틱스는 결국 관계미학> '인터미디어'로 경계 넘기 더 나아가 인터사이언스서양하이테크와 동양사상을 만나게 하는 관계미학이다. 'TV부처' 버전은 다양하다. 백남준은 프랑스수학자 '앙리 푸앵카레(H. Poincaré 1854-1912)'가 "지난 세기의 전환점에서, 소위 말하는 물적 진보와 신문명을 이뤘지만 난 여기서 새로운 무엇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한 것뿐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동과 서, 과거와 미래, 기계와 예술의 '인터미디어'를 추진한다

백남준은 '전기시대(Control Machanism)'에서 '전자시대(Communication Process)'로 넘어가는 과정을 1948년에 발명한 니버의 사이버네틱스 개념을 통해 전자아트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붙여1965년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서 열다.

9 60년대 사이버네틱스와 철학, 예술 <사진>'사이버화된 세대(Cybernated Generation)'라는 제목이 붙은 1965년 4월 2일 타임지표지. 그 부제가 '컴퓨터사회(The Computer in Society)'다 당시 '사이버네틱스'가 대유행이었음을 알 수 있다;

뉴욕 간지 1년 후 1965년 뉴욕 보니노갤러리에서 <백남준:전자아트>전 열다. 백남준. 기존 과학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20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이버네틱스'로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라는 새 장을 열다.


백남준은 위너와 맥루언이라는 글에서 미디어(차거운 미디어와 뜨거운 미디어가 있다)가 지구를 연결하는 거대한 신경계인 것처럼, 맥루언의 미디어이론을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과 연결시키다.

1963년 이후 일본의 형님댁에 갔다가 뉴욕으로 건너간 백남준은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과 각종 퍼포먼스를 펼치며 예술가로 자리 잡아 갔다. ‘작가들의 작가였던 백남준에게 뉴욕의 유력화랑인 갤러리 보니노(Galeria Bonino)가 개인전을 제안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알프레도 보니노가 대표. 뉴욕 외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브라질의 상파울루 등에도 전시장을 두다.

뉴욕에서는 1960년부터 활동했다. 보니노 덕분에 백남준은 1965년 처음으로 ‘전자예술(Electronic Art)’ 전시를 열었다. 첫 개인전 이후로 전자예술에 심취했다. 그해 1뉴스쿨(New School social Research)에서 무어맨과 공연하며 선보인 자석TV’는 자석이 전자의 흐름을 바꿔 유기적 형태의 영상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한 작품이었다.

독학으로 전자공학을 연구한 백남준은 TV를 왜곡시켜 물속을 다니는 해파리 같은 이미지, 흔들리고 지직거리기를 반복하는 영상 등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화가가 세상에 없던 새로운 필법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니노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에서는 TV모니터에 덩그러니 달 하나 뜬 것 같은 작품도 선보였다.

그리고 백남준은 또 '랜덤액세스'나 '사이버네틱스'도 좋아했다. 이 이론은 60년대 유행한 '3의 과학체계'로 놀랍게도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신물리학이다. 아래를 보면 백남준이 왜 이런 역발상적인 이론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조상인 기자 글 인용

하이젠베르크

하이젠베르크 누구인가? <양자역학> 과학자들은 19세기 말에 뉴턴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만 있다면 물리학의 모든 법칙들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뉴턴역학은 입자 즉 눈에 보이는 역학을 담당하였고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파동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 이 시절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은 파동과 입자 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입자와 파동은 서로 다른 것으로 취급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에는 치명적인 문제, , 흑체복사가 있었다. 흑체란 모든 전자기파를 흡수할 수 있는 물체인데 이로 이루어진 상자를 가열하였더니 흑체 안에 무한히 많은 파동들이 제각각의 에너지를 가지고 존재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플랑크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데 이것이 양자역학의 시발점이 되었다. 플랑크는 실험 내용을 이용하여 강제로 수식을 만들었는데 이 수식이 의미하는 것이 파동 자체가 불연속적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믿어 왔던 진리가 깨어지게 된 것이다.

얼마 후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이론을 발표한다. 이 이론은 빛이 입자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이었다. 이로 인하여 빛은 파동이자 입자인 것이 되었다. 이러한 불연속적인 값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양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물리량이 연속 값을 취하지 않고 어떤 단위량의 정수배로 나타나는 비연속 값을 취할 경우, 그 단위량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즉 모든 물리량이 불연속적인 값을 가지며 이 불연속적인, 즉 양자화된 것들의 움직임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사이버네틱스 아트

사이버네틱스 또는 인공두뇌학(人工頭腦學)은 기계나 조직의 조합을 통해 통신과 제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오토마타와 로봇과 같은 컴퓨터로 제어된 기계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 사이버네틱스라는 어원을 보면 키잡이, 조절기(governor), 방향타, 결정타에서 기원한다.

예로부터 현재까지 이 용어는 인공지능 복합성 이론 제어계 정보이론 시뮬레이션 시스템 공함을 통칭하기도 한다. 1956년 철학자 루이 쿠피냘(Louis Couffignal)에따르면 사이버네틱스는 '행위의 유효성을 보증하는 기예'로 정의된다

[9] 백남준의 '사이버네틱스(사이버화된) 예술'에 관한 언급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건 "뉴턴의 물리학은 강함이 약함을 누르는 비융합적 이중구조와 권력구조를 갖지만, 1920년대 독일의 한 천재가 진공관 안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그리드를 첨가해 인류역사상 최초로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결과를 낳았다"라는 말이다. 노장사상을 통해 우리는 "약한 게 강한 걸 이긴다"는 역설적 진실은 들어왔지만, 과학적 실험을 통해 "약한 게 강한 걸 이긴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니 놀랍다. 과학제일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주도되는 세상에서 백남준이 기존의 과학상식을 뒤집는 제3의 관점에 주목했다는 건 그의 성향으로 볼 때 매우 자연스럽다.

<사이버네틱스:전자관계망>
백남준, 사이버네틱스를 순수관계망(NETWORK OF PURE RELATIONS)으로 보다. 다시 말해 '제어-통신 및 피드백'으로 본다. 백남준은 이것을 선불교와 카르마와 연결 그만큼 동서사상과 과거 현재를 연결시키고자 한다. 모든 예술을 수렴하려면 사이버네틱스 기술이 필요하다.

불교의 제3의 길(환생)이기도 하다. 인류문명에서 우리의 상식과 다르게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제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사이버네틱스는 과학기술 인간화 예술화 연결화의 한 방편이다. 끊임없는 (상호의존적) '인과의 그물'이다. 사이버네틱스의 기술보다 예술 즉 삶이 더 중요하다. 사이버는 무엇보다 열린 회로.

[기계의 인간화 & 전자예술화]

1965년 샬럿 무어먼과 '로봇 K-456'이 백남준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다. 두 사람 모두 백남준의 악곡을 (다소 다른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24시간 해프닝'에 참여하다.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은 그녀의 유명한 투명 플라스틱 드레스를 입고 첼로를 연주하며 때때로 물통에 잠수한 다음 계속해서 물을 흘리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백남준 등을 올라타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기계와 소통하며 친하게 지내기,'로봇 K-456' 전자장치 철 알루미늄 고무 70*55*18cm 1964. 슈아 아베와 공동작, 백남준은 기계와 인간이 친하게 지내는 시대를 예견했다. 이제 인간은 기계와 같이 살아갈 운명이다. 그는 기계를 만드는데 기계적으로 만들지 않고 인격을 부여하였다. 그래서 인간적이다.

그는 또 기계의 예술화도 꿈꾸었다. 기계와 소통하고 대화하고 친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그리면서 로봇작품이 많이 만들었다. 기계에 신명나는 기와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그래서 기계가 예술이 되었다. 동양예술의 핵심인 '신령기화(神靈氣化)'가 여기에 적용.

<사이버그[사이버버그사이버네틱스&] 이러 기술의 대표작이 바로 K-456 역사에서 과거가 필요하듯 이 기술에서 피드백이 필요하다. 선순화 메커니즘 TV부처는 피드백이라는 사이버네틱스 개념이 내장되어있다. 우연성 비결정적 비선형성을 갖추고 있다.

백남준 전시의 단골손님으로 1964년 일본에서 태어나 1982623일 휘트니미술관 앞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선고를 받은 휴먼로봇 K-456

백남준은 비디오가 시간의 매개변수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의 직선성을 빠르게 하거나 늦출 수 있고 뒤바꾸거나 뒤집을 수 있으면 변형하고 변조할 수 있다고 봤다.

백남준은 6·25 중 일본으로 가 현대음악을 공부했고, 1956년부턴 독일에서 현대철학을 연구했다. 거기서 '존 케이지'를 만나 동양사상을 새롭게 인식한다. 그에게 보낸 편지에선 TV가 미래매체가 될 거라 말한다. 1964년 미국으로 간 백남준은 인간을 위한 기술과 과학을 모색한 미국의 수학자 '위버(N. Wieber 1894-1964)'에 빠진다.

'하늘의 별이 지구상의 중국인보다 많다는 사실'

'하늘의 별이 지구상의 중국인보다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라'는 작품 역시 12대의텔레비전 모니터를 벽면과 천장에 배치하여 하늘과 천체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해학적 제목이 재미와 관심을 더하는 이 작품은 중국의 인구와 하늘의 별을 많고 적음의 수개념에 연결시킴으로써 과학기술시대 테크놀러지와 영상, 상징적 해학성 등이모두 어울린 작품이다  


보충수업 I

1 전자공학(물리학)을 프로처럼 구가하는 공학도로서의 백남준: 전자공학을 독학하다 학창 시절 물리학을 좋아한 백남준:백남준이 이런 과학이론에 빠질 수 있는 이유는 그와 부인 '시게코'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학창시절 물리학자가 되고플 정도로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고 기계 다루는 데도 능했다. 'K-456'도 만들었고, 전시 땐 TV내부회로도 직접 조작했고, '아베'와 함께 비디오합성기를 설계할 만큼 과학적 지식도 풍부.

2 <노버트 위너와 마셜 맥루한> 백남준은 1967년 <신동아> 12월 호에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60년대를 읽은데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인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노버트 위너'와 미디어의 권위자 '마셜 맥루한'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

3 비디오'를 등장시킨다. 위와 아래 다이어그램은 그 당시 전시도록에 공식적으로 적어놓은 전자예술론이다.
백남준에게 큰 영감을 준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와 미래사회를 미리 내다본 탁월한 미디어 학자 맥루언 그러나 백남준이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위너를 만나지 못했다면(나누기 하지 못했다면) 1965년 뉴욕 전시 전자아트 전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4 <테크놀로지의 인간화 모색>서양인들 비디오를 예술화 꿈도 못 꿨죠?" 이를 잘 설명한 게 이어령 선생의 탁월한 비유인데요, "비디오를 발명한 건 미국이고 이를 소형화(상업화)한 건 일본이고 이걸 예술화시킨 것이 백남준이다" 너무나 맞는 말이죠.

5 테크놀로지의 인간화를 통해 기술에 대해 새롭게 접근한 건데 사람이 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 그래서 1965년에 '로봇 K-456'을 만들고 사람이 배설을 하듯 길거리를 걷다가 리모컨을 작동하면 콩이 똥처럼 떨어지고 또 오페라도 부르고 정말 환상적인 작품이었죠. 이게 백남준 최초의 로봇이에요. 나중에 구형 카메라, TV, 전축을 가지고 만든 TV로봇조각의 원형이죠." -김홍희
<<1965년, 백남준 본격적 사이버네틱스 전자아트 실험>>

6 샬럿 무어먼과 '로봇 K-456'이 1965년  백남준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다. 두 사람 모두 백남준의 악곡을 (다소 다른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24시간 해프닝'에 참여하다.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은 그녀의 유명한 투명 플라스틱 드레스를 입고 첼로를 연주하며 때때로 물통에 잠수한 다음 계속해서 물을 흘리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백남준 등을 올라타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7 르네상스 인간으로서 백남준: "과학자에게는 예술이 마법이고, 예술가에게는 과학이 미스터리다"라며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려 했다. 그래서 백남준이 '현대판 20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8 인류학자로서의 백남준 "백남준 사상이 동서양을 통틀어 독보적이잖아요. 그의 사유방식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인류학적 관점. 백남준의 앞면은 테크노롤지지만, 뒷면은 식민지 시대의 인류학이 아닌 새로운 인류학인 거죠. 신화와 역사를 하나로 보는 그의 관점을 파악하지 못하면 그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국내에서 백남준 연구가 계속 맴돌고 오랜 세월 학문의 안테나에 안 잡힌 이유이다. -이영철

인류학자로서 백남준 신화적 상상력 없이 미래를 볼 수 없다는 그의 말이 맞아요. 과거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미래는 기술과학으로, 현재는 정치적 판단으로 세상을 그려나간다고 봐요. 서양인이 주도한 지난 200년 역사를 더 이상 믿지 않았기에 새 그림을 그린 거죠. 백남준은 20대에 그걸 알았고, 뒤돌아보지 않고 실행했고 혼자 나간 겁니다."

10 60년대 '사이버네틱스(키잡이)' 개념은 '위버' 혼자 만든 게 아니라 광범위하다. 여기엔 수학자, 공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생태학자, 사회학자, 신경생물학자 등이 망라된다. 과학에 대한 민주적 사고라고 할까. 과학을 '자연정복론'이나 '기술결정론'에서 보지 않고 인간과 기계와 자연을 공생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놓았다.


보충수업 II

1 백남준의 사이버네틱스 아트는 결국 1992년 자신을 동서 문명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 작가 중 하나라고 평한 적이 있는 '오토 한(O. Hahn)'과 인터뷰에서 "비디오는 우리가 시간을 변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체로 현재를 과거로 과거를 현재로 되돌릴 수 있다"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프레드릭 제임스(F. James)도 그에 걸맞게 "그의 비디오아트는 시공간의 궁극적 경계선을 탐색하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논평했다.

이불  I '사이보그_W5' 1999

2 인간·동물·기계의 혼종, 사이보그 이불 I '사이보그_W5' 199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식 사진 그즈음인 1967년에 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D. Haraway 1944-)'는 본능이 없는 동물을 상상하기 어렵듯 기술이 없는 인간을 상상하기 어렵다며 '암컷·수컷'의 법칙을 체계화한 근대 과학주의를 해체하고 유인원과 인간, 인간과 기계, 남녀경계를 없애고 성차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변종과 괴물 같은 '사이보그'를 등장시킨다.

그녀는 사이보그의 지능과 잠재력이 인간 이상이라며 <사이보그 선언(1985)>에서 "여신이 되기보단 사이보그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고 또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우리는 저항과 재결합을 달성하기 위해 이보다 더 강력한 신화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3 백남준도 인간과 동물과 기계가 혼합되는 사이버네틱스 잡종인 이런 사이보그 출현에 동조했고, '무어먼'을 '뮤즈여신'보단 '전사여신'으로 변신시켜 백남준식 사이보그를 선보였다. 한편 한국에선 페미니스트 작가 이불이 이 '연작'을 발표해왔다.

4 <<색에서 빛으로 전기에서 전자로 전환>> '기술의 인간화'로 사이버세계 추구 <사진> 백남준 I '테크노 보이(Techno Boy) II' 라디오, TV, 카메라, 조합(Antique Radios, Antique TVs, Antique Cameras) 2000. 미래전자소년을 형상화하다

5 <기술의 노예화가 아니라 인간화, 과학의 폭력화가 아닌 예술화를 추구> 백남준은 그는 문명사회를 야생적 사유로도 다가갔지만, 첨단과학이론도 휴머니즘적 측면으로 접근했다. 기술에 대항하는 기술로서, 기술을 증오하기 위한 기술로서, 기계와 야합하지 않는 기술로서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그는 기술절대주의로 향하는 사회에서 부각되는 이런 시대의 우상을 추방하는 '셔먼 아티스트' 몫도 감당한다.이런 사고는 인간과 기계, 예술과 기술의 이분법을 깨고 기계를 인간으로 보고, 과학을 철학으로 보는 관점에서 온 것이다. 기술의 노예화가 아니라 인간화, 과학의 폭력화가 아닌 예술화를 추구한 셈이다. 그래서 색에서 빛으로 전기에서 전자로 전환시켜 기술의 인간화를 위한 예술적 실천을 가감하게 시도한다.

6 <사이버네틱스는 결국 관계미학> '인터미디어'로 경계 넘기 더 나아가 인터사이언스 <사진>백남준 I 'TV부처' 부처조각과 2대의 TV 35×20×65cm 1992. UM 갤러리소장 서양하이테크와 동양사상을 만나게 하는 관계미학이다. 'TV부처' 버전은 다양하다. 백남준은 프랑스수학자 '앙리 푸앵카레(H. Poincaré 1854-1912)'가 "지난 세기의 전환점에서, 소위 말하는 물적 진보와 신문명을 이뤘지만 난 여기서 새로운 무엇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한 것뿐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동과 서, 과거와 미래, 기계와 예술의 '인터미디어'를 추진한다.

7 이 인터미디어'는 백남준의 친구 '딕 히긴스(Dick Higgins)'가 1965년 창안한 것으로 '기존예술과 새로운 미디어 예컨대 시와 그림, 미술과 연극 같은 장르와 경계를 넘어 관계미학으로 예술(주술)과 기술을 융합시키는 총체예술(비빔밥)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백남준의 이런 시도는 사실 첫 전시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기존음악에 만족하지 않고 피아노와 피아노 사이의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없을까 고민했다. 작곡된 걸 연주하는 게 아니라 연주하다 작곡이 되는 '랜덤액세스' 방식의 '무조음악'을 추구했다. 창작에서 그 과정과 거기서 유발되는 우연성도 중요함을 암시한다.

8 백남준은 이렇게 "과학자에게는 예술이 마법이고, 예술가에게는 과학이 미스터리다"라며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려 했다. 그래서 백남준이 '현대판 20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9 로봇아트에서 인공생명아트(생명재창조)로 발전해야 한다. 예술은 더 이상 마술적, 종교적,상징적, 정치적이지 않다. -자크 엘루엘. 발명가로서의 예술가의 시대가 도래. 우리예술가들은 사회가 닌텐도보다 더 좋고 심오한 것을 발명하도록 도와줘야 -남준.

10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매스메틱스(mathematics)의 전자화? 사이버네틱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생물의 자기 제어(自己制御)의 원리를 기계 장치에 적용하여 통신·제어·정보 처리 등의 기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두한 것으로 미국의 수학자 위너(N. Wiener)에 의하여 창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인공두뇌의 실현과 오토메이션의 개량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두뇌(인공지능)이라고 요즘 그런 시대가 온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사이버네틱스라는 말보다는 사이버 세상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보충수업 III

1 [사이버네틱스 예술과 백색소음(불확정성의 예술)] "백색소음 혹은 임의의 구조는 최대치의 정보를 담고 있다. 아래 1959년 마리 바우어마이스터의 유화는 흥미롭게도 백색소음의 다양한 색채의 눈송이를 닮았다." -백남준

2 백남준에게 큰 영감을 준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와 미래사회를 미리 내다본 탁월한 미디어 학자 맥루언 그러나 백남준이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니버를 만나지 못했다면(나누기 하지 못했다면) 1965년 뉴욕 전시 전자아트 전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래> 공식은 1965년 뉴욕 전자아트 전시 도록에 나오는 것이다. 백남준은 앎보다 삶을 중시했다. 사이버네틱스한 예술보다 사이버네틱스한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3 <테크놀로지의 인간화 모색모색> 서양인들 비디오를 예술화 꿈도 못 꿨죠?" 이를 잘 설명한 게 이어령 선생의 탁월한 비유인데요, "비디오를 발명한 건 미국이고 이를 소형화(상업화)한 건 일본이고 이걸 예술화시킨 것이 백남준이다" 너무나 맞는 말이죠.

4 테크놀로지의 인간화를 통해 기술에 대해 새롭게 접근한 건데 사람이 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 그래서 1965년에 '로봇 K-456'을 만들고 사람이 배설을 하듯 길거리를 걷다가 리모컨을 작동하면 콩이 똥처럼 떨어지고 또 오페라도 부르고 정말 환상적인 작품이었죠. 이게 백남준 최초의 로봇이에요. 나중에 구형 카메라, TV, 전축을 가지고 만든 TV로봇조각의 원형이죠." -김홍희
<<1965년, 백남준 본격적 사이버네틱스 전자아트 실험>>

5 백남준의 '사이버네틱스(사이버화된) 예술'에 관한 언급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건 "뉴턴의 물리학은 강함이 약함을 누르는 비융합적 이중구조와 권력구조를 갖지만, 1920년대 독일의 한 천재가 진공관 안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그리드를 첨가해 인류역사상 최초로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결과를 낳았다"라는 말이다. 노장사상을 통해 우리는 "약한 게 강한 걸 이긴다"는 역설적 진실은 들어왔지만, 과학적 실험을 통해 "약한 게 강한 걸 이긴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니 놀랍다. 과학제일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주도되는 세상에서 백남준이 기존의 과학상식을 뒤집는 제3의 관점에 주목했다는 건 그의 성향으로 볼 때 매우 자연스럽다.

6 백남준은 비디오가 나오기 전부터도 TV를 이렇게 창조적 매체로 본 것이다. 백남준 연구가 이용우 씨는 백남준 예술에 대한 평가에서 "관객 참여방식에 의한 그의 미적 실험은 백남준 미학의 하이라이트다. 그는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적 실천을 독재 또는 독백예술로 봤고, 고급예술로 변질된 모더니즘이 관객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아 결국 예술의 계급화를 초래했다"라고 논평했다.

7 백남준의 사이버네틱스 아트는 결국 1992년 자신을 동서 문명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 작가 중 하나라고 평한 적이 있는 '오토 한(O. Hahn)'과 인터뷰에서 "비디오는 우리가 시간을 변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체로 현재를 과거로 과거를 현재로 되돌릴 수 있다"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프레드릭 제임스(F. James)도 그에 걸맞게 "그의 비디오아트는 시공간의 궁극적 경계선을 탐색하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논평했다.

8 <기술의 노예화가 아니라 인간화, 과학의 폭력화가 아닌 예술화를 추구> 백남준은 그는 문명사회를 야생적 사유로도 다가갔지만, 첨단과학이론도 휴머니즘적 측면으로 접근했다. 기술에 대항하는 기술로서, 기술을 증오하기 위한 기술로서, 기계와 야합하지 않는 기술로서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그는 기술절대주의로 향하는 사회에서 부각되는 이런 시대의 우상을 추방하는 '셔먼 아티스트' 몫도 감당한다.이런 사고는 인간과 기계, 예술과 기술의 이분법을 깨고 기계를 인간으로 보고, 과학을 철학으로 보는 관점에서 온 것이다. 기술의 노예화가 아니라 인간화, 과학의 폭력화가 아닌 예술화를 추구한 셈이다. 그래서 색에서 빛으로 전기에서 전자로 전환시켜 기술의 인간화를 위한 예술적 실천을 가감하게 시도한다.

9  인간·동물·기계의 혼종, 사이보그 이불 I '사이보그_W5' 199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식 사진

그즈음인 1967년에 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D. Haraway 1944-)'는 본능이 없는 동물을 상상하기 어렵듯 기술이 없는 인간을 상상하기 어렵다며 '암컷·수컷'의 법칙을 체계화한 근대 과학주의를 해체하고 유인원과 인간, 인간과 기계, 남녀경계를 없애고 성차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변종과 괴물 같은 '사이보그'를 등장시킨다. 그녀는 사이보그의 지능과 잠재력이 인간 이상이라며 '사이보그 선언(1985)'에서 "여신이 되기보단 사이보그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고 또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우리는 저항과 재결합을 달성하기 위해 이보다 더 강력한 신화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백남준도 인간과 동물과 기계가 혼합되는 사이버네틱스 잡종인 이런 사이보그 출현에 동조했고, '무어먼'을 '뮤즈여신'보단 '전사여신'으로 변신시켜 백남준식 사이보그를 선보였다. 한편 한국에선 페미니스트 작가 이불이 이 '연작'을 발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