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현대미술관,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개최
◇ 유화 120여 점과 아카이브 등 약 70년 화업 총체적 조망 대규모 회고전 1. 1930년대 초기작부터 말년의 5미터 크기 대작 〈담〉(1986), 〈농원〉(1995) 등 / 2. 작가·미술교육·문화행정·외교까지 한국 미술계 기반을 다진 문화적 지식인 면모 / ◇ ‘색채의 마법사’, ‘화단의 신사’로 기억되어 온 이대원 다시 읽기 1. 이대원의 밝은 화면을 ‘전통 공예와 동양화의 조형 원리’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 2. 자수·나전·목기 등 한국 공예와 동양화법을 서양화로 구현한 독자적 회화 세계 ◇ 8월 6일(목)부터 11월 8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대원의 최초 대규모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를 8월 6일(목)부터 11월 8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이대원(李大源, 1921–2005)은 ‘화단의 신사’, ‘색채의 마법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라는 수식어와 함께 과수원과 산, 연못을 원색의 점과 선으로 채운 작품으로 익히 알려져 온 작가로 밝음이 작가의 타고난 낙천성으로 해석 되어왔다. 전시 제목인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1922-1993) 박사의 그림평에서 차용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동감 넘치고 명랑한 색채가 작가의 기질 때문이라는 해석을 넘어 한국의 전통 공예와 동양화의 조형 원리를 오래 연구하고, 화면 안에서 변용해 얻은 작가의 회화적 성취임을 새롭게 조명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전시는 이대원의 학창 시절 초기 작품부터 말년의 대형 〈농원〉 연작에 이르기까지 유화 120여 점과 아카이브 100여 점, 작가수집 고미술품 및 자료를 통해 약 70년에 거친 그의 화업을 총체적으로 살펴본다.
작가로서의 이대원은 당대 서구 미술의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수와 나전, 화각 등 전통 공예의 색과 빛, 동양화의 운필과 기법을 유화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냈다. 색점과 색선, 색면을 거듭 쌓아 올리며 ‘한국적인 현대 회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평생 탐구한 화가이자 문화적 지식인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계의 기반을 만들었다.
또한 1959년부터 약 8년간 한국 최초의 상업 화랑 격인 반도화랑을 운영하며 척박한 국내 화랑가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5개 국어에 능통한 당대 유일한 지식인으로서 박수근, 장욱진, 김기창, 김환기, 유영국 등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학장과 대학 총장으로 미술교육의 토대를 다졌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외교통상부 문화홍보대사 등을 맡아 지속적으로 한국 미술을 알리는 것에 힘썼다.

이처럼 본인의 작품 활동을 지속하면서도 전시와 교육, 문화행정과 문화외교를 아우르며 한국 미술계의 여러 영역을 연결했고, 평생 공공의 가치를 자신의 창작만큼이나 중요한 책무로 여겼다. 이대원은 한국 미술사에 있어 단순한 풍경화가가 아닌, 삶과 예술이 하나였던 현대의 지식인 화가이자 전통 문인의 정신을 현대 회화 속에서 실천한 예술가였다.
1부 “배우되 갇히지 않다”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이대원이 화가로 형성되어 간 시기를 살펴본다. 청운공립보통학교 때 처음 유화를 접한 그는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 1897-1945)를 만나 서양미술과 조선 공예를 함께 배웠다.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 서양화부에서 모두 입선하며 공예와 회화 양쪽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1부에서는 이대원, 장욱진, 유영국을 가르친 사토 구니오의 희귀 회화 〈설정(雪庭)〉(연도미상)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조선풍경, 민예품 등을 그린 사토 구니오의 여러 드로잉과 함께 이대원의 초기작을 동시에 선보여 맑은 색면과 단순화된 형태, 공예에 대한 관심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본다. 아울러 이전까지 〈북한산〉(1938)으로 알려졌던 초기작의 원제가 〈가을 산〉(1938) 이었음을 새롭게 밝힌다. 한편, 1957년 미국과 유럽의 미술 현장을 경험한 뒤 제작한 작품을 통해 서구 모더니즘을 직접 마주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을 조망한다.
2부 “이어가되 휩쓸리지 않다”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앵포르멜이 확산하던 시기에도 이대원이 유행에 편입되지 않고 한국적인 조형 언어를 모색한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1959년부터 약 8년간 이대원이 운영했던 반도화랑 운영과 관련된 희귀 자료 등을 통해 이대원이 화가이자 경영자로서 한국 미술을 어떻게 매개했는지 살펴봄과 동시에 작가가 소장했던 자수·나전·화각·목가구, 변관식의 산수화 등을 회화와 함께 전통 공예와 동양화의 원리가 그의 화면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3부 “쌓아 올리니 자유롭다”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색점·색선·색면을 거듭 쌓아 올리며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대원은 전통 회화의 준법과 수지법, 태점과 적묵법을 연구하고 이를 유화의 붓질 안에서 새롭게 변용했다. 파주 농원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제작한 〈농원〉(1987), 〈산〉(1978), 〈나무〉(1983)를 통해 ‘산수에서 풍경으로’가 아니라 ‘풍경에서 다시 산수로’ 나아간 이대원의 회화 세계를 조명한다.
4부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평생 축적한 색과 빛의 언어가 대형 회화로 완성되는 말년의 작품을 선보인다. 평생 축적한 색과 빛의 언어가 5미터가 넘는 대작들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며 〈과수원〉, 〈사계절〉 연작, 〈인왕산〉 등을 통해 풍경에서 산수로 확장된 그의 회화 세계를 보여준다. 대형 작품들과 바닥의 반사면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은 관람객에게 마치 농원에 둘러싸인 듯한 몰입감을 선사할 것이다.
아울러 9월 10일(목)에는 국내외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전시 연계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된다. 홍선표 한국미술연구소장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정무정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이민수 한국미술연구소 연구원, 이우치 가쓰에 홋카이도미기시 고타로 미술관 큐레이터, 최경현 천안시립미술관장 등 국내외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이대원의 회화 세계와 미술사적 위상을 다각도로 살펴보며 연구의 지평을 확장할 예정이다. 참가 신청 및 상세 안내는 추후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대원은 한국 미술을 전시하고 가르치며 세계에 알리는 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한 문화적 지식인이자, 자신의 회화에서는 한국적인 현대 회화의 가능성을 평생에 걸쳐 탐구한 화가”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던 이대원의 미술가적 위상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한국 현대회화의 중요한 성취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일반 전화 문의: 02-2022-060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작가 연보
192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출생.1933 동아일보 주최 《제4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에서 입선.1934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 입학.미술반 교사인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1897-1945)의 지도를 받음.1935 혜화동으로 이사.1936 조선일보 주최 《제1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 입선.《제8회 선만鮮滿중등학교미술전람회》에서 입선.1937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에서 입선.《제9회 선만鮮滿중등학교미술전람회》에서 입선 및 특선.1938 《제17회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와 공예부에서 동시 입선.《제10회 선만鮮滿중등학교미술전람회》에서 입선 및 특선.1939 경복공립중학교(구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우등졸업 및 경기도지사상 수상.《제18회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서 입선.1940 경성제국대학 예과 입학.《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서 입선.1942 경성제국대학 본과 진학.《제2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1945 소아과 의사인 이현금과 결혼.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졸업.1955 《제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1956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1957 동화화랑에서 첫 개인전 개최.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의 추천으로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개최된 〈제7차 국제 세미나〉 참석. 발터 횔레러(Walter Höllerer, 1922-2003)의 지원으로 독일에서 작품 제작 및 개인전 개최.1958 《제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1959 반도화랑 운영.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이대원 개인전》 개최.1961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동문들과 2.9 동인회 결성 및 《제1회 2.9 동인전》에 출품.《제1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1962 신상회新象會 결성. 《제1회 신상전》과 《제2회 2.9 동인전》에 출품.《제1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1964 《제3회 신상전》과 《제4회 2·9 동인전》에 출품.1965 홍익대학교 대학원 출강.196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외서강독 담당) 임용.1969 홍익대학교 공예학부장 취임.1970 홍익대학교 대학원장 및 도서관장 취임.1971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장 및 교육학부장 취임.미국무성 초청으로 미국 내 미술학교와 미술관을 시찰.1972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장 부임.국민훈장 목련장 수훈.1973 파주 농원에 화실 마련.1974 『한국과 그 예술』(야나기 무네요시 저) 번역서 출간.1980 홍익대학교 총장 취임.1981 회갑 기념 《이대원 작품전》 개최 및 『이대원 작품집』 출간.아시아태평양 지역미술교육연맹 창립총회에서 이사로 선출.1986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직 정년퇴임. 《이대원 '86년전》 개최.1987 제3대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장 선출. 《'88세계현대미술제》 국내 운영위원 선임.1989 화문집 『혜화동 50년』 발간 기념 《이대원 '89년전》 개최.1990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장 선출.1991 대한민국예술원상(미술부문) 수상.1993 대한민국예술원 26대 회장.1994 ‘95미술의 해 조직위원장 위촉.대한민국문화예술상 미술부문 수상.1995 〈제4회 오지호미술상〉 수상.국민훈장 금관 문화훈장 수훈.1996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다카사키 소지 저) 번역서 출간.1997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샤를 5세 홀에서 열린 《한국작가 3인 초대전 Trois artistes coréens》에 문신, 이종상과 함께 참여.2002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문화홍보외교사절 위촉.2003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회 위원장 역임.2005 화문집 『혜화동 70년』 발간 및 《이대원 개인전》 개최. 11월 20일 타계.[붙 임] 3. 전시 구성 및 주요 작품 소개
1부. 배우되 갇히지 않다 : 1930년대–1950년대
첫 번째 장은 이대원이 화가로 형성되어 간 시기를 조명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환한 색채와 자유로운 화면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그 출발에는 십대 시절부터 이어진 배움과 모색, 그리고 회화와 공예를 함께 바라본 넓은 조형적 시야가 있었다.
청운공립보통학교 시절 처음 유화를 배우고,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는 일본인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에게 서양미술과 조선 공예를 함께 익혔다. 이 시기 그는 염색공예와 유화를 나란히 시도했고, 1937년과 1938년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와 서양화부에 잇달아 입선하며 회화와 공예 양쪽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는 그의 출발이 처음부터 순수회화 한 갈래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대원·장욱진·유영국을 함께 길러낸 스승 사토 구니오의 회화 〈설정(雪庭)〉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또한 그동안 〈북한산〉으로 알려졌던 1938년 작품의 출품 당시 제목이 〈가을 산〉이었음을 새롭게 확인하여 소개한다. 미국과 유럽을 여행한 뒤 제작된 작품에서 오히려 어둡고 절제된 색조가 나타나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서구 모더니즘을 모방하기보다 자신의 회화가 서야 할 토대를 다시 고민했던 이대원의 출발을 보여준다.
1 <북한산〉, 1938, 캔버스에 유화 물감, 80 × 100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북한산〉은 《제10회 선만중등학교미술전람회》 특선작으로, 본래 〈가을 산(秋の山)〉이라는 제목으로 출품되었음이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확인되었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작품의 중심은 북한산의 지형을 충실히 재현하는 데 있기보다 가을 산의 색채적 인상을 표현하는 데 있다. 이대원은 백운대와 인수봉의 흰 화강암 봉우리를 진홍과 자주로 바꾸어 짙푸른 하늘과 강하게 대비시켰다. 대상의 고유색을 따르지 않고 계절의 인상을 색채로 재구성한 것이다. 화면을 지배하는 붉은색은 산의 형태를 묘사하는 수단을 넘어, 화면의 구조와 정서를 이끄는 중심 요소로 작용한다.
2 〈납힐조선문이매병풍臈纈朝鮮紋二枚屛風〉, 1938, 천에 염색, 88.9 × 65.4cm, 개인 소장, 《제17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이 작품은 이대원이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재학하던 1938년 《제17회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에 출품하여 입선한 염색 병풍이다. 같은 해 서양화부에도 입선한 사실은 그가 학생 시절부터 회화와 공예를 병행하여 익혔음을 보여준다. 전통 십장생도를 바탕으로 학을 봉황으로 대체하고 해태를 추가하여 길상 도상을 새롭게 구성했으며, 밀랍으로 방염한 뒤 염색하는 납힐(臘纈) 기법을 사용해 천에 스며드는 색의 깊이와 장식적인 평면 구성을 구현하였다.
1930년대 조선의 염직공예는 부산과 경성을 중심으로 전람회와 학교 교육을 통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병풍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회화와 공예를 함께 가르친 경성제2고보 미술교육의 성격을 보여주는 드문 현존작이다. 아울러 색의 병치와 반복, 평면적 구성에 대한 관심이 이후 이대원의 회화로 이어질 조형적 토대가 학생 시절부터 형성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3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 〈설정(雪庭)〉, 연도 미상, 캔버스에 유화 물감, 90 × 130cm, 홋카이도립근대미술관|
〈설정(雪庭)〉은 눈 덮인 뜰을 배경으로 인체 조각과 여러 사물을 비현실적으로 결합한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는 하반신 형태의 토르소가 놓여 있고, 그 앞에는 붉은 장갑 한 쌍과 여성의 신체를 본뜬 작은 조각이 자리한다. 서로 뚜렷한 연관이 없는 인체와 사물을 한데 모으고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모호하게 구성한 화면에서, 사토 구니오의 초현실주의적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화면은 강렬한 대비보다 흰색과 보라색, 분홍색, 청색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미묘한 색조의 변화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의 토르소와 눈 위에 드리운 그림자, 오른쪽 식물과 하늘의 색채가 서로 호응하며 낯선 장면을 고요하고 균형 잡힌 화면으로 이끈다.
당시 경성에서는 사토를 ‘색채의 마법사’라 부르고,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룬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에 비견할 만큼 그의 섬세한 색채 감각을 높이 평가하였다. 〈설정〉은 도쿄미술학교 졸업작품인 자화상을 제외하면 현재 현존이 확인된 사토의 유일한 회화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작품의 제작 시기와 활동 이력으로 보아 당시 독립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추정되며, 사토가 조선에서 펼친 초현실주의적 실험과 특유의 파스텔 색채를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사례이다. 현재 이 작품은 홋카이도립근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4 〈콜럼비아 거리〉, 1959,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9 × 53cm, 개인 소장
작품 뒷면의 영문 표기로 미루어 워싱턴 D.C.의 콜럼비아 로드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대원이 1957년 미국과 유럽에 체류한 사실을 고려하면, 당시 경험한 도시 경관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보인다. 화면 중앙에는 탑처럼 솟은 건물을 배치하고, 도로와 담장의 사선을 V자형으로 모아 시선을 집중시켰다. 회청색 하늘과 주황빛 건물, 좌우 나목의 검은 가지가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날카로운 윤곽선과 단순화된 색면은 도시의 구조를 한층 선명하게 드러낸다. 구체적인 경관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굵은 선과 절제된 색채로 재구성한 화면은 구미 체류기 이대원의 달라진 도시 풍경 해석을 보여준다.
2부. 이어가되 휩쓸리지 않다: 1950년대–1970년대
두 번째 장은 서구 미술을 경험한 이대원이 당대의 유행에 편입되지 않고 한국적인 현대 회화의 길을 모색한 과정을 살펴본다.
1959년부터 운영한 반도화랑은 당시 한국 미술이 외국인 수집가와 해외 미술계, 국내 작가들이 만나는 중요한 문화 플랫폼이었다. 화가인 동시에 화랑 운영자였던 그는 한국 미술을 세계에 소개하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반도화랑 운영 약정서와 활동보고서, 사진자료 등을 통해 이대원이 한국 미술의 전시와 유통, 국제교류를 어떻게 이끌었는지를 조명한다.
이 시기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전통 공예와 동양 회화로 향한다. 〈천장〉, 〈반닫이〉, 〈산〉과 함께 자수·나전칠기·화각·목가구 등 작가가 평생 가까이했던 공예품을 함께 전시한다. 공예의 색과 빛, 표면의 질서가 회화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조형 언어로 바뀌는지를 직접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변관식의 산수화를 함께 소개하여 전통 회화의 조형 원리가 이대원의 화면 안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1〈반닫이〉, 1965, 캔버스에 유화 물감, 92 × 73cm, 국립현대미술관
<반닫이〉는 이대원이 곁에 두고 아끼던 강화도 반닫이 위에 소장하던 백자 접시를 올려 그린 실내 정물이다. 앞선 〈감〉이나 〈천정〉보다 배경의 비중이 커지고, 물감이 겹쳐지고 벗겨진 듯한 표면 처리가 한층 두드러진다. 회색조를 불규칙하게 덧입힌 흰 바탕 위에 갈색과 미색, 남색과 암청색을 묻힌 붓끝을 짧게 눌러 작은 색면을 만들고, 이를 화면 전반에 흩어 놓았다. 파편화된 색면들은 겹겹이 벗겨진 한지처럼 보이며, 오래된 목가구와 종이에 시간이 스며든 듯한 깊이를 형성한다. 전통 공예품의 형태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닫이의 색과 질감, 세월의 흔적을 회화의 표면으로 옮겨 그 깊은 고색(古色)을 드러낸 작품이다.
2오른쪽 아래에서 뻗어 나온 굵은 나뭇가지는 화면 위쪽으로 굽이치며 이어지고, 가지 끝에는 분홍빛 매화 봉오리가 맺혀 있다. 작은 화면이지만 나뭇가지의 굵은 형태와 과감한 배치가 화면 전체를 장악하며 강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가지의 윤곽은 먹으로 그은 듯한 거친 검은 선으로 처리되었고, 가장자리에 돋아난 짧은 선들은 자수의 실선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 전체를 묘사하지 않고 굽이치는 가지의 일부만을 확대해 포착한 점도 주목된다. 대상의 외형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 가지가 만드는 선과 형태에 집중한 구성으로, 이전의 산수나 정물과는 다른 이대원의 새로운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3(상) 〈매화〉, 1963, 캔버스에 유화 물감, 45.5 × 37.9cm, 개인 소장(하) 반도화랑에 걸려있는 모습
반도호텔 1층에 자리했던 반도화랑은 외국인 이용객이 많은 장소의 특성상 한국의 회화와 민예품을 함께 소개하는 공간이었다. 전시장이 협소하여 주로 10호 안팎의 소품이 전시되었으며, 〈매화〉 역시 반도화랑의 한쪽 벽에 걸렸던 작품이다.
4〈천정〉,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89.5 × 59cm, 홍익대학교박물관 이대원의 파주 농원에는 그가 수집한 민예품을 두었던 한옥 공간이 있었다. 이 작품은 마루에서 올려다본 한옥의 천장을 소재로 한다. 작가는 위로 깊어지는 실제 공간을 거의 지우고, 중앙의 굵은 골조와 좌우로 뻗은 서까래를 정면적인 평면 구성으로 재편하였다. 강한 수직축을 이루는 중앙 구조와 사선으로 반복되는 서까래가 화면 전체를 견고하게 조직하며, 그 사이의 흰 천장 면은 크기와 방향이 다른 기하학적 색면으로 나뉜다. 이로써 한옥의 내부 공간은 실제 건축의 재현을 넘어, 선과 면의 관계가 강조된 거의 추상적인 화면으로 바뀐다. 전통 건축의 구조를 대담한 평면 구성으로 전환한 이 작품은 이대원의 뛰어난 조형적 구성력을 보여준다.
5〈전설의 마을〉, 1964, 캔버스에 유화 물감, 129 × 79cm, 한솔문화재단, 《제3회 신상전》 출품작
〈전설의 마을〉은 십장생도의 길상 도상을 현대적인 화면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마치 전통 자수병풍의 한 폭을 회화로 옮겨 놓은 듯하다. 산과 나무, 사슴과 구름 등의 소재는 깊이 있는 공간을 이루기보다 화면 위에 문양처럼 펼쳐지고, 붉은색과 청색, 녹색, 황색의 선명한 색채는 서로 섞이지 않은 채 또렷하게 병치되어 있다. 형태를 굵은 선으로 구획하고 내부를 크고 작은 색면으로 채운 방식 역시 색실로 윤곽과 면을 촘촘히 수놓은 자수의 구성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화면 상단 한쪽에 해가 배치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달을 그린 또 다른 한 폭과 짝을 이루어 일월이 서로 대응하는 병풍 형식으로 구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57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과 유럽을 여행한 이대원은 귀국 후 서구 현대미술을 답습하기보다 전통 회화와 민예에서 자신만의 회화적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1964년 『Korea Journal』에서 아서 J. 맥태거트(Arthur J. McTaggart)는 그를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점을 함께 소화한 작가”로 평가하며, 한국적 소재를 현대적인 회화 형식으로 구성한 점에 주목하였다. 〈전설의 마을〉은 십장생도의 도상과 자수병풍의 선명한 색채, 평면적인 문양 구성을 유화로 새롭게 펼친 작품이다.
3부. 쌓아 올리니 자유롭다: 1970년대–2000년대
세 번째 장은 색점과 색선, 색면을 거듭 쌓아 올리며 이대원만의 독자적인 회화 언어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70년대 파주 농원에 작업실을 마련한 이후 그는 수십 년 동안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그렸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한 번도 같은 풍경을 그리지 않았다. 계절과 빛, 시간과 기억이 달라질 때마다 화면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대표작 〈농원〉, 〈산〉, 〈나무〉 연작은 오랜 관찰과 축적이 어떻게 하나의 조형 세계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이대원의 색점을 서양의 점묘법과 구별하여 바라본다. 그의 색은 눈에서 섞여 사라지는 색이 아니라, 자수의 색실처럼 각자의 색을 유지한 채 화면 안에 축적된다. 또한 전통 회화의 준법과 태점, 적묵법을 유화의 붓질 안에서 새롭게 변용한 색선은 화면 전체에 속도감과 공간성, 기운생동을 형성한다. 이를 통해 이번 전시는 '산수에서 풍경으로'가 아니라 '풍경에서 다시 산수로' 나아간 이대원 후기 회화의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1〈농원〉,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150 × 230cm, 개인소장
〈농원〉은 분홍빛 꽃나무가 줄지어 선 봄의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붉게 물든 전경의 들판과 만개한 꽃나무, 그 너머 여러 색으로 이루어진 산이 삼단으로 이어지며 공간이 원근에 따라 뒤로 물러난다. 나무들은 화면을 압도하기보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고, 산자락과 하늘에는 강렬한 원색의 색점이 촘촘히 놓여 있다. 이 시기의 색점은 뚜렷한 방향성을 띠기보다 화면의 각 자리에 머물며 저마다의 색을 드러낸다.
색을 나란히 찍어 관람자의 눈에서 혼합되도록 한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의 점묘와 달리, 이대원의 색점은 서로 섞이지 않은 채 화면의 표면에 고정되어 빛을 낸다. 산과 꽃, 들판은 순색의 병치로 촘촘히 채워지고, 물러나는 풍경의 깊이와 색점으로 조직된 평면성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농원〉은 원근에 따른 공간 구성과 색점 중심의 화면이 균형을 이루는 1970년대 후반 이대원 회화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2〈농원〉,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112.1 × 162.2cm, 가나문화재단
〈농원〉은 이대원의 색선이 한층 자유롭고 유연하게 전개된 작품이다. 분홍·초록·노랑의 길고 짧은 색선이 들판과 꽃나무, 하늘의 경계를 넘나들며 화면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다. 이전 작품에서 색점과 색선이 대상의 형태를 촘촘히 구성했다면, 여기서는 색선이 여러 방향으로 뻗고 휘어지며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봄 풍경의 움직임을 만든다. 서로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채 나란히 이어지는 모습은 색실로 문양을 수놓은 전통 자수를 떠올리게 한다. 〈농원〉은 구체적인 풍경의 경계를 점차 느슨하게 하고, 색선의 움직임과 화려한 색채로 계절의 변화를 화면 전체에 펼쳐 보인 작품이다.
3〈농원〉,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90 × 194cm, 개인 소장
〈농원〉은 1980년대 후반 이대원의 색선이 한층 길어지고 자유로운 방향성을 띠는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랏빛 하늘 아래 붉은 억새가 곧게 솟고, 그 아래로 파란 연못과 초록 들판이 이어진다. 앞선 시기의 짧은 색점은 이 무렵 길고 빠른 색선으로 확장되어 위로 치솟거나 사방으로 뻗으며 화면 전체에 강한 흐름을 만든다. 보랏빛 하늘과 파란 연못 역시 하나의 순색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분홍빛을 머금은 푸른색과 붉은 기운이 감도는 보라색 등 미세하게 조율된 여러 색조가 겹쳐 형성된다. 선명한 색들은 서로 섞이지 않은 채 저마다의 빛을 유지하면서도 화면 전체에서 긴밀히 호응하여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색채 구성을 이룬다. 〈농원〉은 색점이 색선으로 확장되고, 색점·색선·색면이 서로 맞물려 풍경의 형상과 화면의 표면을 함께 조직하는 이대원 회화의 원숙한 단계를 보여준다.
4〈농원(秋)〉, 1994, 캔버스에 유화 물감, 111 × 161cm, 한솔문화재단
이 작품은 화면 전체가 타오르는 듯한 노란빛으로 뒤덮인 가을 농원의 풍경이다. 이전 시기의 ‘농원’에서 하늘과 산, 들판의 층위가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면, 이 화면에서는 그 경계마저 무수한 노란 색선 속으로 흩어진다. 원근에 따라 뒤로 물러나는 공간은 거의 사라지고, 화면은 위아래의 구분 없이 하나의 평면으로 펼쳐진다. 그 위로 붉고 푸른 색선이 촘촘히 교차하며, 서로 섞이지 않은 원색은 각각의 선명함을 유지한 채 화면 전체에서 강하게 호응한다. 왼편에 곧게 선나무 한 그루가 수직축을 이루지만, 이마저 주변을 휘감는 색선에 잠기며 독립된 대상보다 화면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바뀐다.
서양 풍경화의 원근법에서 출발한 이대원의 화면은 이 작품에 이르러 깊이를 거의 지우고 색선으로 가득 찬 표면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 평면은 대상을 비워 낸 추상적인 표면이 아니라, 나무와 들판, 계절의 색채가 촘촘히 축적된 풍경의 표면이다. 자수와 나전의 색채 구성, 수묵 산수의 점과 선을 오랫동안 자신의 회화 안에서 다듬어 온 결과가 이처럼 충만한 평면으로 펼쳐진다. 이 작품은 이대원이 평생 탐구한 한국적 평면성과 색채의 관계를 가장 대담하게 보여주는 말년의 작품이다.
4부.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마지막 장은 이대원 회화가 도달한 조형적·정신적 성취를 보여준다. 평생 축적한 색과 빛의 언어는 말년의 대형 작품에서 가장 크고 자유롭게 펼쳐진다. 다섯 미터를 넘는 〈과수원〉, 사계절 연작, 〈인왕산〉 등은 화면을 바라보는 풍경화가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 거닐게 하는 산수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 시기 작품에는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주말마다 파주 농원 한가운데 앉아 그림을 그렸던 화가 자신이 이미 그 풍경 속에 있었고, 이제 그 자리는 관람객에게 이어진다. 전시장에는 대형 작품들이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되고 바닥의 반사면을 통해 화면 속 농원이 관람객의 발밑으로 이어진다. 관람객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을 넘어, 풍경 속 한 사람이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이대원을 단순한 풍경화가가 아니라 한국 미술계를 만든 문화적 지식인이자, 삶과 예술이 하나였던 현대의 지식인 화가로 새롭게 조명한다. 그의 그림에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이유는 슬픔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연구와 수행, 절제와 축적을 통해 삶의 무게를 예술로 승화했기 때문이다.
1〈담(祕苑)〉,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208 × 504cm, 외교부 주미국 대한민국대사관/〈담〉은 가로 5미터가 넘는 대작으로, 외교부가 소장한 이대원의 대표작이다. 작가는 1986년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에 설치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현지를 찾을 만큼 이 작품을 각별히 아꼈다.
멀리서 보면 흰 담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흰 담은 하나의 흰색으로 칠해진 것이 아니다. 미색과 분홍빛, 푸른빛이 감도는 여러 흰빛이 나란히 놓여 있으며, 각각의 색은 서로 섞이지 않은 채 고유한 발색을 유지한다. 이는 색실이 서로 인접해도 저마다의 색을 잃지 않는 전통 자수의 방식을 연상시킨다. 또한 색은 표면 위로 떠오르기보다 화면 안쪽에 가라앉아 자리한다. 어두운 옻칠 바탕에 박힌 자개가 제각기 빛을 내듯, 화면의 색들도 서로 뒤섞이지 않은 채 깊이 있는 표면을 이룬다.
이대원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외교통상부 문화홍보 외교사절로 활동했다. 외교부가 소장한 그의 작품은 스무 점이 넘으며, 여러 재외공관에 설치되었다. 〈담〉 역시 오랜 시간 한국대사관에 자리하며 한국 회화의 고유한 미감을 전해 왔다.
2〈인왕산〉, 2000, 캔버스에 유화 물감, 200 × 500cm, 개인 소장/이대원은 반도화랑 운영 시절 직원으로 함께했던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과 오랜 인연을 이어 갔으며, 현대화랑에서만 열한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이 작품은 이대원이 박 회장에게 종로 갤러리현대 옥상에서 바라본 인왕산을 여러 장 촬영해 달라고 부탁한 뒤, 그 사진들을 이어 보며 가로 5미터에 이르는 대작으로 완성한 것이다. 잎을 떨군 나무 두 그루가 화면 양쪽에 서 있고, 그 사이로 남청빛 산줄기가 낮게 이어진다. 화면 전체를 감싼 청색 위로 붉고 푸르고 흰 색점과 색선이 눈발처럼 흩날리며 산과 나무, 하늘의 경계를 고르게 채운다.

이 화면의 청색과 백색은 하나의 단순한 색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랏빛과 회색을 머금은 청색, 주변의 여러 색조를 받아들인 백색이 미세하게 조율되어 깊고 투명한 빛을 만든다. 유화임에도 물감의 두께나 광택을 앞세우기보다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담백한 발색을 보여주는 점은 이대원 특유의 재료 운용과 채색 방식을 잘 드러낸다. 원근은 거의 사라지고, 굵고 자유로워진 색점과 색선이 화면 끝까지 퍼져 나간다. 평생 색과 붓질을 정교하게 다스려 온 이대원은 만년에 이르러 그 오랜 통제를 한층 자유로운 화면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왕산〉은 치밀한 축적 끝에 도달한 졸(拙)의 경지와 그의 원숙한 색채가 겨울 산의 풍경 속에 펼쳐진 작품이다.
3〈도리화(桃梨花)〉, 2001,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0 × 700cm, 개인 소장/도리화〉는 강렬한 색채와 굵고 자유로운 붓질로 꽃이 만개한 과수를 화면 가득 펼친 이대원 말년의 대작이다. 그는 파주의 자연이 계절과 시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보이는 것을 경험하며 자연에 대한 외경을 품게 되었다고 회고하였다. 또한 아무리 그려도 나무의 모습은 끝이 없으며, 계절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수가 자신이 하나의 소재를 오래도록 그려 온 이유라고 밝혔다. 이대원에게 나무를 반복해서 그리는 일은 동일한 형상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거듭 바라보고 그 차이를 색채와 붓질로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도리화〉는 자연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그의 오랜 관찰이 환한 색채와 자유로운 색선으로 응축된 작품이다.
4〈사과나무〉, 2000, 캔버스에 유화 물감, 200 × 500cm, 서울미술관/〈사과나무〉는 화면에 늘어선 네 그루의 사과나무를 서로 다른 형태와 색채로 그려, 마치 저마다의 성격을 지닌 존재처럼 보이게 한 작품이다. 이대원은 파주에 화실을 마련한 뒤 약 30년 동안 거의 매주 농원을 찾아 그림을 그렸으며, 아버지가 심은 60년 된 사과나무가 꺾이고 쇠잔한 뒤에도 베어 내지 않고 오래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는 10년, 20년, 60년을 살아온 나무에서 느껴지는 것이 각각 다르다고 말하며, 썩어 죽은 듯한 줄기에서 다시 잎이 나고 꽃과 열매가 맺히는 모습에 주목하였다. 화면에서 굵은 나무줄기와 가지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고, 그 위에 놓인 선명한 색점과 색선은 나무마다 서로 다른 움직임과 표정을 만들어 낸다.

이대원에게 사과나무를 반복해서 그리는 일은 하나의 소재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연을 바라보며 그 안의 변화와 지속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이를 위해 매일 붓을 움직이는 성실함과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사과나무〉는 오래된 나무에 축적된 시간과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자연의 힘을 서로 다른 색채와 형태로 펼쳐 보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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