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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보이스

[백남준] 서양미술판 깬, '문화 테러리스트'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 백남준 1959년, 1961년 백남준은 굳건한 위상을 자랑하는 서구미술계의 근간(고대부터 뒤샹까지 미술)을 쓸어버리다(?) 일종의 가상 액션이죠 그걸 제로 그라운드로 만들고 다시 전혀 새로운 전자TV 미술을 시작하겠다는 각오 정도. 백남준은 생각하면 할수록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 뒷감당을 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과 대안과 비전을 갖추고 있는 예술가였다. 5천년 동안 쌓인 우리의 답답한 체증을 막힘 없이 시원하게 확 풀어주는 그런 통쾌한 기란아였다. 피아노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 비싼 피아노를 마구잡이 때려부셨나. 피아노는 서구인에게 있고 중산층 높은 문화 가치를 대변하는 신성불가침의 상징물이었다. 동시대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는 서양인으로 서양의 문화를 파괴하는 테.. 더보기
[백남준] 플럭서스, 그의 작업 공장 '솔웨이' 볼프 보스텔(Wolf Vostell), 독일 플럭서스 회원. 그도 백남준처럼 예술 작품으로서의 텔레비전 작업을 했다 그도 백남준처럼 예술 작품으로서의 텔레비전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의 이름은 decollage 시도 백남준 같지는 않아도 같은 해 백남준처럼 TV를 예술에 활용하다. 멋지다. [데콜라주(Décollages)?] 잘 구성된 일부 혹은 전체 이미지를 차례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일부(전부)의 원본을 잘라내거나 찢거나 제거하여 이미지를 작가의 의도대로 만든다. 그러니까 이런 이미지 작업에서 작가가 자신의 의도대로 조정하거나 개입할 수 있다. 아래 1963년 독일 볼프 포스텔 작품, 이미지의 전자화 Vostell's large-scale happening '9 Nein Décollagen' ('9 N.. 더보기
[백남준] 동서양 예술가 구분 없애 with Beuys "예술가면 그냥 예술가지, 동양의 예술가, 서양의 예술가 이런 구분을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가 없애 버렸다. 서양의 이분법을 극복한 것이다 그래서 유라시아 작가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1961년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는 같은 장소에 있었다. 여긴 슈멜라(Schmela) 화랑 그러나 둘은 서로 몰랐다. 나중에 사진에서 같이 있었다는 게 확인되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독일에서 만남은 20세기 현대미술사에서 최고의 사건이다. 왜냐하면 두 예술가는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연결하는 유라시아 작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키워드는 네트워킹 도킹 둘 사람이 예술가에서 서양과 동양의 구분이 없어진 것이다. 다른 것에 비유하면 미술 장르에서 동양화 서양화, 이런 구분이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왼쪽: 백남준 .. 더보기
[백남준] '장 폴 파르지에' 백남준/보이스 비교론 프랑스의 백남준 전문가인 장 폴 파르지에가 나에게 보내준 원고(프랑스어로 3만 5천자)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차이점 여기서 그는 백남준이 보이스보다 한급 더 높은 예술가로 평가하고 있다. 2016년 1월 말에 갤러리현대에서 백남준 연구가 장 폴 파르지에와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요셉 보이스 모자이야기가 하다가 못 다한 내용을 불문 3만 5천자로 다시 보내주었는데 이제야 겨우 알았네요 나는 프랑스어에 능하지 못한데 큰일났다. 그의 결론은 백남준이 요셉 보이스보다 한수 위다라는 것인데 백남준은 마이너스 셔먼아티스트 보이스는 플러스 셔먼아티스트 -(음)이+(양)을이긴다는 것이죠. 이 분은 백남준 과에 속한다. 그는 백남준을 자신의 어머니라고 하던데 놀라울 정도의 지성을 갖춘 분인데 정말 겸손하면서도 유머가 넘치.. 더보기
[백남준] 그의 절친 '보이스'의 마지막 퍼포먼스 [요셉 보이스가 독일에서 문화대통령이 된 것은 그의 평생에 퍼포먼스 등을 통해 니체가 말하는 초인적인 자기헌신과 예술적 순교자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독일인의 존경이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래 살지는 못했다] 요셉 보이스 피아노 산소(Joseph Beuys Clavier Oxygen) 1985년. 평화 비엔날레 함부르크 이 퍼포먼스는 백남준과 함께 했지만 당시 보이스는 병중이라 전화로만 참가하다. 보이스의 마지막 퍼포먼스라고 한다. 아래는 헝가리 언어 헝가리 언어가 우랄 알타이 계통이라 우리와 비슷하다고 하네요 그런데 지난 번에 헝가리 여대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헝가리는 유럽과 다르게 이름을 쓰는 순서가 한국과 똑 같다고 하네요 어찌나 반가운지 ㅎㅎ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대상언어.. 더보기
[백남준] 보이스 고인돌과 백남준 고인돌 뮌헨 시립 미술관(구관 & 신관 중 신관:현대미술)에서 본 보이스 작품을 봤을 때 "바로 이게 미술이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고인돌이다. 선사시대 인류가 만든 최고의 설치미술, 그것을 보이스는 현대미술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남준의 고인돌은 전자 고인돌이죠. 좀 다르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하네요 전라남도 나주에 가면 고인돌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받는 영감은 정말 크다. 이곳이 바로 우리민족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의 든다. 천지인 기운이 웅장하게 느껴진다 또 다른 비교 보이스의 샤머니즘이 동물의 정령과 통하는 '탈혼'의 방식이라면, 백남준의 샤머니즘은 춤과 음악을 통한 '빙의(접신)'의 방식이다. 탈혼이 무당의 혼이 능동적.. 더보기
[백남준] 그의 형뻘인 요셉 보이스 상호작용 요셉 보이스는 천재다. 선사시대를 그렸다. 그런데 여기서 백남준 보이스는 상호동화작용을 한 면이 있다. 보이스의 오브제아트에서 백남준이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 아마도 놋그릇(놋주발)과 지게 아닌가 싶다. 어려서 큰집에서 제사 지낼 때 보면 놋주불이 상당 수 등장하는데 그 그릇의 품격이 드높아 보였다. 정말 눈부시게 빛났다. 1-2번 사진 백남준과 보이스 연결되어 있다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김수영 "세계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는 나의 욕망과 철학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것을 만족시켜 준 것이 이 포로 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수영 // 근대라는 시간이 “더러운.. 더보기
[백남준] 요셉 보이스, 앤디 워홀의 차이 왜 백남준이 요셉 보이스보다 한수 위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다 가장 정치적 예술가다. 정치의 예술화(민중미술)가 아니고 예술을 정치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보이스는 독일 녹생당 창시자로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하면서 정치적 예술가였다면, 백남준은 전혀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정치적 예술가였다. 그런 면에서 요셉 보이스보다 한 수 위다. 앤디 워홀은 보이스보다 한 수 낮은 정치 예술가 왜냐하면 낫과 망치를 노골적으로 그렸기에. 양혜규는 백남준과에 속한다. 한국에서 이런 그림 그리면 제재받겠죠 더보기
[백남준] 보이스 그리고 이성과 자유의 관계 보이스는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똑똑하다고 고집하는 인간과는 말이 전혀 통한다며 오히려 평화의 상징인 온순하고 선량한 토끼와 대화가 잘 된다고 주장하다. 그걸 퍼포먼스 아트로 보여주다. 서구의 어리석움을 풍자한 것이다 백남준은 로봇을 만들면서 정말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간과 기계를 동급으로 본 것이다. 서로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존재로 봤다. 보이스는 사람보다 동물이 낫다고 했고, 백남준은 사람 못지 않게 로봇이 훌륭하다고 본 것이다 백남준 로봇에 적혀 있는 '자유와 이성'이라는 단어가 많은 생각을 유발시키네요 여기서는 결혼에 대한 서구적 환상주의를 여지없이 뭉개버리다. 그때가지만 해도 결혼이란 사실 남성용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소유되는 절차를 정당하게 합법적으로 문서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들통내는 포.. 더보기
[유럽5개국 아트투어] 대표적 5 작품 소개 [유럽5개국 아트투어] 대표적 다섯 작품 소개 요셉 보이스의 이 작품은 보고 또 봐도 감동적이다. 인류의 구원은 문명이 사라진 선사시대로 돌아가야 가능하다는 메시지 같다. 뮌헨시립미술관 현대관 소장 역시 20세기 고전이 좋다. 미니멀리즘 창시자 도널드 저드(Donald Judd)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모든 디자인의 기본(근간)이 담겨 있다. 남자의 양복 정상 속에 미니멀리즘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소장품 이런 미술은 개념미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저드의 친구 중 윤형근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역시 대가는 대가를 알아보는 것이 아닌가. 이 작품의 주제는 성서에 나오는 예수와 당시 지식인인 종교지도자의 만남을 그린 것 같은데 화가명을 잘 모르겠다. 카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