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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플럭서스, 그의 작업 공장 '솔웨이'

볼프 보스텔(Wolf Vostell), 독일 플럭서스 회원. 그도 백남준처럼 예술 작품으로서의 텔레비전 작업을 했다

그도 백남준처럼 예술 작품으로서의 텔레비전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의 이름은 decollage
시도 백남준 같지는 않아도 같은 해 백남준처럼 TV를 예술에 활용하다. 멋지다.

[데콜라주(Décollages)?] 잘 구성된 일부 혹은 전체 이미지를 차례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일부(전부)의 원본을 잘라내거나 찢거나 제거하여 이미지를 작가의 의도대로 만든다. 그러니까 이런 이미지 작업에서 작가가 자신의 의도대로 조정하거나 개입할 수 있다. 아래 1963년 독일 볼프 포스텔 작품, 이미지의 전자화 <https://www.youtube.com/watch?v=nURfYNB15gw> Vostell's large-scale happening '9 Nein Décollagen' ('9 No – Dé-coll/ages) took place on 14 September 1963 in nine different locations in Wuppertal, and was organized by the Galerie Parnass. The audience was ferried by bus from location to location, including a cinema that screened 'Sun in your head' while people lay on the floor. The film transfers to the moving image Vostell’s principle of ‘Décollage’. While up to then Vostell had altered TV pictures as they were being broadcast, he was now able to compose the temporal sequence. Since no video equipment was available in 1963, Vostell instructed camera-man Edo Jansen to film distorted TV images off the TV screen. The film was re-edited and copied to video in 1967. Made for Vostell’s '9 Nein Dé-coll/agen' (9 'No Dé-coll/ages') happening, the film was subsequently shown in a separate context, for instance in Amsterdam in 1964.

벤 보티에(Ben Vautier) 프랑스 플럭서스 회원

Parfois, je préfère les femmes à l'art. - Ben Vautier 나는 때로 예술보다 여자를 더 좋아한다. -벤 보티에 Read the latest news about Ben Vautier in our world famous magazine.

<퍼포먼스 저항 쇼> 예술가란 이 세상에 와서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가는 사람이다. 미학과 정치학 사실 아래에서 보듯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그러나 정치가 아무래도 급이 낮으니 예술가들은 정치를 말하지는 않죠. 그러나 이 세상에서 예술가보다 더 정치적인 사람은 없죠 “Any protest is a performance, any performance is a show and every show is a commodity” (Rancière 84)

<플럭서스는 반엘리트주의 , 또는 반카라얀주의죠. 과학적인 사고보다 야생적인 사고(레비스트로스)를 더 높이 평가하다 그리고 탈장르주의 여기에는 시각예술가 뿐만 아니라 작곡가, 시인, 소설가 에세이 작가 정치가 등 다양하다 플럭서스 출신 중 2명이 대통령이 되다. 공연 예술, 거리 및 낙서 예술, 그리고 대지 예술에 까지 영향을 미치다> 백남준은 플럭서스의 플럭서스였다. 최고의 아방가르드 예술가였다. 백남준은 정말 대단했다. 코쟁이 서양의 예술가들을 완전히 압도하다. 통쾌한 장면이다.

베토벤의 월광곡을 백남준 1966년 전자 월광곡으로 멋지게 편곡하다. Sound and image connected in a poetic ballet, Paik was an e-sound artist before playing with video images, if anything Electronic Moon no2 shows his time-based musical influence in exploring (visual) reality.. what a beautiful, funny, witty vision of the moon! <시간의 시각화> Literally, he had converted a television into the universe where he can show his infinite world of creativity.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3Kr4CoU3G04&fbclid=IwAR1gehHIwxPtj46YLcwczfXMKQCFxZFCJY8KRBTh6jsQn0gwRMI6lQ-fuGE

1995년 백남준 Duet Gallery 1995 백남준의 전자 페인팅에서 TV는 하나의 점 혹은 선이 된다. 백남준은 1980년 중반부터 1990년 중반까지 작업비를 만들기 위해서 로봇 등 이런 종류의 작품을 만들었다. 개인적인 돈벌이하고는 좀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사실 백남준 작품은 잘 팔리는 작품은 아니고 그 대신 작업바가 엄청나게 들어가는 작품들이다. 백남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손에 TV나 피아노에 닿으면 마치 살아움직이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가 말하는 기계의 인간화, 그런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아래] 백남준이 칼 솔웨이에서 만든 작품들칼 솔웨이 갤리리와 할리 솔로몬 갤러리 인연

-조상인 기자의 기사 중:위성예술 ‘굿모닝 미스터오웰’로 전세계적 인지도를 확보한 백남준은 1985년 칼 솔웨이(Carl Solway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갤러리, 1986년 할리 솔로몬(Holly Solomon 뉴욕) 갤러리와 일하면서 더욱 바빠진다. 칼 솔웨이 갤러리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공장지대에 있었다. 백남준은 Chicago Art Expo 출품을 계기로 만난 칼 솔웨이 갤러리에서 이듬해인 1986년 개인전을 열면서 TV를 사람형상으로 제작한 ‘TV 로봇’을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로봇 가족’은 고물 TV로 만들어진 할아버지부터 한창 발전하기 시작한 TV로 제작한 아기로봇까지 아우르며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인조인간의 시대상을 예고했다.

칼 솔웨이 갤러리와 일하면서 탄생한 작품들은 마무리가 깔끔하고 디자인적으로도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개인이 소장하기 좋은(collectable) 작품을 만들었으니 거래도 늘었다. 이를 통해 백남준에게 돈을 벌게해 줬다는 점이 칼 솔웨이의 공이다. 칼 솔웨이 화랑과의 작업에는 마크 파스팔, 그랜 다우닝 등이 조수로 참여했는데 이들의 미적 감각이 작품 완성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할리 솔로몬 갤러리의 설립자인 할리 솔로몬은 유대인 출신이며 뉴욕화랑협회 회장을 지낼 정도로 미국 내 영향력이 막강했다. 주요 미술관의 이사회 임원이기도 했던 솔로몬은 백남준을 미국 주류사회로 끌어넣은 공이 컸다. 백남준이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도 ‘뮤지엄 작가’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백남준이 공간 널찍한 그린 가(Green St.) 스튜디오를 구할 적에는 동양인이라 입주를 허락할 수 없다는 같은 층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가며 승인 사인을 받아준 이도 솔로몬이었다.

그녀는 1993년에 백남준이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선정됐을 때 베니스 앞바다에서 호화판 선상파티를 벌이고, 페기구겐하임 미술관 옥상에서 개막 전야제를 열어 그의 수상가능성을 드높여준 ‘든든한 뒷배’였다. 백남준의 온갖 실험적 작품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백남준이 1990년대에 몰입한 레이저 작품 전시를 위해 갤러리의 수도와 전기공사를 모조리 다시 할 정도였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해보는, 치기 어린 모습은 백남준과 솔로몬이 꼭 닮아있었다.물론 정 많고 반듯한 백남준도 자신을 지원해 준 보니노, 칼 솔웨이, 할리 솔로몬 등의 화랑주와 여러 조수들의 고마움을 높이 평가했고 절대 잊지 않고 되갚았다

백남준, 1986년 미국 오하이오 주(펜실베니아 주 왼쪽) 신시내티 칼 솔웨이 스튜디오에서 "TV 농장" 작업중. 여기가 바로 백남준의 팩터리였죠. 백남준의 복장(fashion)은 언제 어디서나 바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아주 편하고 헐렁한 복장 평생에 참 열심히 작업을 하시다

백남준과 칼 솔웨이 갤러리 관련 사진 오른쪽 1967년 작품(Peter Moore)

요셉 보이스 카셀 도쿠멘타 퍼포먼스 나무 심기 보이스의 모자는 완전히 예술화되었네요 Vernunft Baum

백남준 'TV정원(1974-2000)'

백남준 «TV정원(1974)» Kassel Documenta 6'에서 발표된 Paik의 첫 번째 대규모 설치 'TV-Garden' 수많은 열대 식물 속 바닥에 누워있는 30 대의 TV로 구성. TV 화면에는 편집된 'Global Groove' 를 볼 수 있다 백남준의 앞선 생태주의 아트 자연과 문명이 반반 씩이 최고의 하모니라고 백남준은 말하다.

[제 14회 국제 TV 심포지엄 포스터] 장소 : 스위스 몽트뢰(Montreaux), 1985년 6월 6일-12일 종이에 실크 스크린 빌보드 : 99,9 × 69,8 cm

앤디워홀 팩터리가 있었는데 백남준도 팩터리가 있었죠. 바로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있는 칼 솔웨이. 이 갤러리 딜러 분이 85세로 돌아가셨군요 이분은 1983년부터 백남준과 함께 일했죠. 인상이 좋다. The veteran Cincinnati-based art dealer Carl Solway, who supported visionary artists for more than 50 years, died in Ohio. The cause was cancer, his https://flipboard.com/article/carl-solway-dealer-who-welcomed-the-avant-garde-in-cincinnati-is-dead-at-85/a-Ridjw-s2TH6YcTwcKI9jOQ%3Aa%3A4236970-ac2ab4a47f%2Fartnews.com?fbclid=IwAR3-ryGgFBvUbF4IYf_hh4NBIr1z4lvLa62ov9_K6TXzRivwFDDiehEyLPs

 

Carl Solway, Dealer Who Welcomed the Avant-Garde in Cincinnati, Is Dead at 85

The veteran Cincinnati-based art dealer Carl Solway, who supported visionary artists for more than 50 years, died in Ohio. The cause was cancer, h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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