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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비엔날레

[이은화 인터뷰]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총평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1li4o

<선생님에 대하여> 

1. 이은화 선생은 미술가, 평론가, 컬럼니스트, 독립 큐레이터, 현대미술전도사 뭣보다 '뮤지엄 스토리텔러' 역할을 하시죠. 하긴 다 미술과 관련된 일이죠. 간단 자기소개를?

안녕하세요? 알고 계시듯 저는 미술작가, 평론가, 독립큐레이터, 신문 칼럼니스트, 미술전문 강사, 뮤지엄스토리텔러 등 미술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저처럼 멀티플레이어가 되지 않으면 치열한 미술 동네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직업은 뮤지엄 스토리텔러인데요, 왜냐면 제가 대한민국 1호이자 유일한 뮤지엄스토리텔러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만든 직업명이거든요. 제가 다녀온 미술관과 그곳에서 만난 작품들을 소개하는 일인데, 이걸 말로 하면 강연이 되고 글로 쓰면 책이 되더라고요. 그 덕에 전국구로 강연을 다니고 있고, 작년부터는 KBS1 라디오 <문화공감>에 매주 출연해 세계의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술관만 소개하는 건 아니고 명화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미술칼럼도 매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2. 미술 작가와 미술평론을 겸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어떤신지?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씩만 합니다. 죽을 만큼 힘들어하면서 일을 하진 않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인데 스트레스가 더 크다면 당장 그만둬야죠. 저는 대략 2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편인데요. 출간 예정인 책이 있으면 그 해는 글쓰기에 더 집중하고 전시가 잡혀 있으면 작업에 더 시간을 씁니다. 다른 프로젝트들도 마찬가지고요. 제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3. 선생님의 모든 미술에 대해 허기진 사람처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미술사, 런던 예술대학에서 순수미술 석사 그리고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 현대 미술학 공부하셨네요.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미술은 선생님에게 뭔가?

제가 호기심도 많고 부족한 것도 참 많아요. 그래서 그걸 좀 채워보려고 유학도 간 건데, 공부라는 게 끝이 없더라고요. 한 분야를 공부하면 또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싶고... 결과적으로는 한국, 독일, 영국에서 학부, 석사, 박사과정까지 총 6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어요. 그 중에는 학위를 못 받고 수료만 한 곳도 있고요. 전공도 다양해요. 회화에서부터 그래픽 디자인, 미술사, 현대미술, 아트비즈니스까지. 학과는 달랐지만 큰 틀에서 보면 다 미술이에요. 미술을 다각도로 이해하기 위한 공부였어요. 근데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이 공부를 왜했냐? 그만한 가치가 있냐?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어요. 미술은 제게 늘 물음표 같은 존재였어요. 미술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 이 두 질문은 제가 처음 미술대학에 지원했을 때부터 미술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까지 계속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에요. 과거의 미술은 과거의 미술대로 새로운 미술은 새로우니까 계속 궁금한 부분이 생겨요. 궁금하니까 알고 싶고, 그래서 계속 공부하는 거죠. 제 공부의 원동력도 결국 미술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인간의 본능 중 미에 대한 욕망은 강렬하죠. 이런 걸 가이드할 분이 절실하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은 소중해요. 선생님의 최근 저서 <그랜드 아트 투어> 많이 팔렸는지? 지금까지 몇 권 저서를 쓰셨는지?

2005년 첫 책을 낸 이후로 지금까지 총 13권을 썼는데요. 국내에서 출간된 단행본은 6권이고 영국에서 출간된 책이 한 권, 나머지는 어린이를 위한 전집들이에요. 대부분 유럽의 미술관이나 작가를 소개하는 교양서들이고 영국에서 출간된 책은 한.중.일.영국 저자 4인의 공동저서인데 아시아 현대사진을 다룬 전문서였어요. 가장 최근에 낸 책이 <그랜드 아트투어>인데 2017년 그랜드 투어 해에 맞춰 출간한 책이에요. 유럽 4대 미술축제와 함께 주변 미술관들도 함께 소개한 책인데, 그해에 그랜드 투어 가신 분들은 거의 다 사 보셨을 거예요.

현대미술책이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팔리진 않은 걸로 알아요. 출판시장이 어렵고 특히 현대미술이나 현대미술관을 다룬 책은 수요가 한정돼 있어서 책을 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제 책들은 고정 독자들이 계셔서 평균 3쇄 정도는 나가는 거 같고 제일 많이 팔린 책이자 스테디셀러는 2011년에 출간된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이고요.

베니스 공식 홈페이지 https://www.labiennale.org/en

<서문> 그러면 이제 올 베니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1. 유럽 4대 미술 축제(베니스, 카셀, 뮌스터, 아트바젤) 간단 비교한다면?

일단 행사주기가 다릅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의 미술행사고, 카셀도쿠멘타는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가장 권위 있는 현대미술 전시회입니다. 또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독일 뮌스터에서 10년마다 열리는 공공미술축제고 아트바젤은 스위스 바젤에서 해마다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 아트페어이고요. 이 모든 행사가 동시에 열리는 해가 10년마다 찾아오는데, 이를 그랜드 투어의 해라고 합니다. 지난 2017년이 바로 그랜드 투어의 해였죠.

2. 그럼 지금부터 베니스비에날레에 관해 물을게요. 베니스 몇 번 정도 다녀오셨는지? 베니스는 현대 미술가들 성지 같다. 베니스는 선생님에게 어떤 도시인가? 다운 타운에는 차가 없다. 그런데 길 찾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가?

정확히 세어 본 적은 없는데, 열 번 정도는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한테 베니스는 미술축제의 섬이에요. 비엔날레 시즌에만 베니스를 갔었거든요. 매 행사 때마다 50만 명 이상이 찾는 거대한 미술 축제의 장입니다. 미술인들과 미술애호가들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행사죠. 베니스는 100개가 넘는 작은 섬들이 400개가 넘는 다리로 이어져 있는 수상도시입니다. 느려터진 수상버스로 이동하거나 좁은 다리와 골목들을 걸어 다녀야하니 길 찾기도 쉽지 않고 이동에 시간도 많이 걸리죠. 하지만 느려도 괜찮고 길을 잃고 헤매도 행복한 곳이 바로 베니스예요.

3. 왜 경제대국 미국은 베니스비엔날레 같은 미술행사를 유치하지 못하나? 유럽의 오랜 전통과 이탈리아의 막강한 문화의 힘 때문인가?

미국에도 아모리쇼 같은 게 있죠. 1913년에 시작된 미국 최초의 국제 현대미술전시회입니다. 1932년에 설립된 휘트니 비엔날레도 있고요. 근데 이 행사들은 다 유럽에서 베낀 거죠. 얼마 전에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가 왜 한 번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는가’라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아카데미는 로컬 시상식이다”고 답했잖아요. 비슷한 것 같아요. 휘트니는 미국의 로컬 행사고, 베니스는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진 글로벌 아트 이벤트인 거죠. 그것도 124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역사와 전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4. 비엔날레는 무기고의 해상도시, 전쟁터 그런데 어떻게 평화의 축제장으로?

평화의 축제장이라고요? 저는 완전 문화전쟁터 같던데요. 아시다시피 비엔날레는 섬의 남동쪽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두 지역에서 열립니다. 행사는 크게 감독이 기획한 본전시와 각 국가들이 참여하는 국가관 전시로 나뉘죠. 본전시가 열리는 아르세날레가 옛 국영조선소와 무기고가 있던 자리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만해도 해상 무역의 본거지로 유럽에서 제일 부강한 무역도시였기에 지키기 위해 늘 전쟁을 치렀지요. 지금은 비엔날레에서 작가들끼리 국가들끼리 서로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마치 올림픽 경기 처럼요. 총만 안 들었을 뿐 예술을 무기로 치열하게 싸우는 문화전쟁터입니다. 그런데 일반 전쟁과 다른 건 패배자가 없고 그 전쟁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즐겁다는 거예요.

1895년 이탈리아 국왕 부부 은혼식을 기념하기 위한 이벤트로 시작된 미술전시회가 지금은 세계미술인들이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된 건데,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탈리아 정부뿐 아니라 참가국과 기획자들, 참여 작가들 모두의 노력으로 이룬 전통이고 역사인 거죠.

5. 올해 비엔날레가 이전 행사들과 큰 차이점이 있는가? 이번엔 회화작품도 많았다. 그러나 신선하지 못했다. 이론적, 상업적, 개념적, 냉소적이다. 상업주의를 배격 못 했다는 평도.

비엔날레에 대한 평가는 항상 다양합니다. 어떤 미술작품이나 행사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우는 없습니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의견이 같을 수 없고 전문 미술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존재합니다. 미술은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 도처에서 열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전시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보여주는 메머드급 미술행사입니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술전시다보니 총감독의 역할이 중요하고, 감독의 성향에 따라 전시 주제나 보여주는 방식, 초대되는 작가나 작품의 성향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죠.

예를 들면, 지난 2015년 행사는 총감독 때문에 더 화제가 되고 기대도 컸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120년 역사에 아프리카계 출신 감독이 처음 등장했었으니까요. 나이지리아 출신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가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주제로 행사를 이끌었는데, 이분이 정치학을 전공한 분이라 그런지 그때는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전면에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았어요. 한 눈에 감상이 어려운 영상 작품들도 유독 많았었고. 그래서 너무 이론적이고 정치적이고 어렵다는 평이 많이 나왔었죠.

2017년 전시는 파리 퐁피두센터 수석 큐레이터 출신의 프랑스인 크리스틴 마셸 감독이 진두지휘했는데요, 이전 행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였는지 전시 주제가 참 인상적이고 쉬웠어요. 이탈리아어 비바 아르떼 비바(Viva Arte Viva)였는데, 우리말로 하면 ‘예술 만만세’ 이런 뜻이에요. 특정 주제에 맞추는 게 아니라 각 예술가들과 예술품 자체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던 전시였죠. 본전시의 경우는 밝고 심미적인 작품들이 많아서 그런지 세련되게 잘 기획된 갤러리 전시 같다는 평도 있었고, 전반적으로 모호하고 밋밋하다는 의견도 있었죠. 확실히 비엔날레의 전위성이나 새로운 시대담론을 제시하는 작품들은 엔위저 감독 때 보다 적었죠. 이전 두 행사가 워낙 성격이 달랐기 때문에 올해 행사는 어떻게 꾸며질지 미술계의 기대와 궁금증이 매우 컸습니다.

<이번 베니스 총감독과 주제에 대해서>

1. 그랬을 것 같다. 올해 행사는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관장인 '랄프 루고프'가 총감독에 임명되었다. 기호학자라고 하는데 그는 누구인가?

랄프 루고프는 뉴욕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다 2006년부터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관장을 맡고 있는 베테랑 기획자입니다. 헤이워드 갤러리는 이름과 달리 영국의 중요한 국립미술관 중 하나인데요, 상설 소장품은 없지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획기적인 전시를 여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특히 루고프가 관장으로 온 이후 관객지향적이고 혁신적인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을 많이 선봬 런던 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미술관입니다. 작년에는 개관 5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이불의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어요. 아마 그 인연으로 루고프 감독이 이불 작가를 올해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하지 않았나 싶어요.

2. 이번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지옥 같은 세상(지옥도)이라도 재미있게 살자 흥미롭다. 이 주제는 중국의 고전(寧為太平犬, 莫做亂離人(Better to be a dog in a peaceful time, than to be a human in a chaotic warring period)에서 나왔다고 "난세에는 인간보다 개로 사는 게 낫다"는 다소 시니컬하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해요. 감독이 쓴 전시 선언서 중에 예술은 정치 영역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않지만 이 난세에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에 대한 지침서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부분이 굉장히 공감이 가더라고요. ‘미술은 혁명의 도구다’ ‘미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뭐 이렇게 주장하는 건 불가능한 시대잖아요. 그럴 필요도 없는 거고. 감독 말처럼 미술이 우리 삶이나 생각의 약간의 지침서 정도만 되도 좋은 거죠. 미술이 그 정도 역할만 해도 충분하지 않나 싶어요.

"난세에는 인간보다 개로 사는 게 낫다"는 말은 지금의 세상에서 인간다운 사고를 하면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거겠죠. 공감이 되지 않나요?

3. 다르게 보면 이 주제는 시대를 저주하듯 그 위험과 불안과 불확실성을 지적한 말이나 어느 시기보다 인간의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시기라는 말도 된다고(?).

그런 면도 있죠. 역사적으로 봐도 가장 어렵고 고통스런 시기에 예술가들은 명작이 탄생시킨 경우가 참 많거든요. 편안하고 안락하면 작업 동기가 별로 안 생기죠. 하지만 분노, 좌절, 불안, 공포 등 극단적인 상황이나 상태를 겪고 나면 이걸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시인이라면 시를 쓰겠지만 예술가들은 그걸 조형의 언어로 표출해 내는 거죠.

4. 올해 전시도 보고 왔다면 관전평은?

올해 비엔날레는 한마디로 ‘New Face, New Art, High Risk’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이번 전시는 여러모로 실험적이었고 그만큼 리스크도 큰 행사였습니다. 감독이 미국 출신이면서 영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서 그런지 작품들의 밸런스는 잘 맞춘 것 같았어요. 사회 비판을 하되 이전처럼 공격적이거나 전면적이지는 않고 대체로 한톤 낮추거나 세련되게 연출한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띠었어요. 전반적으로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전시였다고나 할까요? 여전히 난민, 환경, 기후변화, 인종차별, 성소수자, 빈부격차 등 이 시대의 첨예한 이슈들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지만 연출방식들이 이전 행사 때보다 훨씬 세련되고 다양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회화나 조각, 사진, 영상, 설치 같은 기존 매체들이 여전히 주를 이루었지만 홀로그램, 3D 프린팅, VR, AR 등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뉴아트들이 늘어난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고요.

5. 2019년 행사가 과거와 다른 점도 많지 않았나? 참가 작가 수도 많이 줄었고 여성 작가들 비율이 높아졌고 등등

이번 전시는 여러모로 파격적이었어요. 그동안 참여 작가수가 120~160명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작가수가 거의 반으로 줄었고, 그중 절반이 여성, 그리고 다 생존 작가로 구성됐습니다. 게다가 79명 중 29명이 1980년대 생이에요. 심지어 1990년생 작가도 있었어요.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2010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고요. 작가들의 국적도 아프리카나 아시아, 발틱 국가 등 제3세계 출신들이 많이 포함되었고요. 결과적으로는 모르는 작가, 모르는 작품이 태반인 전시가 됐죠. 한마디로 더 젊어지고 새로워지고 공평해진 전시였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국제 전시 경험이 적은 젊은 작가들이 많으면 사실 전시 퀄리티를 보장하기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리스크가 큰 전시였다고 말씀드렸던 거에요. 감독과 큐레이터팀의 역량이 그 어느 해 보다 중요했던 행사였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비엔날레 124년의 역사 동안 중심의 축이 너무 한쪽으로 쏠렸던 것을 이제야 바로 놓으려는 시도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엔날레가 그동안 미국과 서유럽 중심, 백인 남성 중심, 유명 화랑이 후원하는 유명 작가 중심으로 흘러왔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한국관 작가와 주제에 대해서>

1. 그런데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주제는 약간 의역을 하면 "남성 중심의 역사가 우리 여성의 삶을 망쳐 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원래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였죠. 미국에서 뜨고 있는 한국계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이라는데, 비엔날레 전체 주제와 결도 같고, 문학적 표현도 인상적이었어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의 처절했던 삶과 슬픔, 분노를 담은 소설인데, 본전시의 주제와도 서로 통하는 제목이죠. 단점은 이런 긴 제목은 사람들 머리에 입력이 잘 안 된다는 거죠.

2. 이번 주제는 디아스포라(근대화)에서 희생된 여성의 주제인 것 같다. 이에 대한 생각은? 격동기 가려지고 잊히고 차단되고 비난받기만 했지 여성의 목소리 내지 못했다. 젠더 미학 등등 한 마디로 히스토리가 아니라 허스토리다. 역사 기록에 나오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한 것인가?

어떤 글이든 글을 쓸 때는 저자의 관점으로 쓰죠. 우리가 배운 역사는 백인, 엘리트, 남성이 쓴 His Story(그의 이야기)였습니다. 때문에 여성은 늘 타자였고 배재되어 왔었죠. 그래서 여성들의 이야기 즉 허스토리(Her story)가 빠진 반쪽의 역사였습니다. 여성뿐 아니라 민중, 유색인, 성소수자 같은 약자들은 역사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죠. 미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인 화가 이름 다섯 명만 대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 머릿속에 여성 작가는 떠오르지 않을 거예요. 없어서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거죠. 미술사 책에 기록되지 않았거나 극소수만 기록되었으니까요. 1960년대 페미니즘의 등장과 함께 여성작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성 작가에 비해 여성 미술은 저평가되어 왔었죠. 최근 몇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분 미투운동 이후 미술계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그동안 한쪽으로 너무 심하게 기울어졌던 역사의 밸런스를 맞추려는 목소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불공정했던 역사가 조금씩 공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3. 한국관 김현진 예술감독을 누구?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안공간부터 공공미술관, 국내외 미술계를 두루 거친 역량 있는 전시 기획자입니다. 그동안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나 젠더 문제를 다룬 여러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전시 기획자라 생각됩니다.

4. 한국 작가 3명(남화연, 정은영, 제인)에 대한 간단한 총평

작품들을 하나 하나를 따로 보면 호평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와 젠더 담론을 다룬 주제들도 시의 적절했고요. 정은영은 잊혀진 국극부터 현대의 퀴어 담론까지 다뤘고, 남화연은 국제적으로 활약한 뛰어난 무용가였지만 친일.월북인사로 낙인찍혀 재평가 받지 못한 최승희를, 제인 진 카이젠은 바리설화를 키워드로 해서 한국 여성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모두 한국이라는 특정한 지정학적 맥락 속에 있지만 근대화의 반성이나 젠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비엔날레 전체 주제와 맥을 같이한다고 봅니다. 3인 모두 역량 있는 작가들이고 앞으로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작가들입니다.

5. 한국관 주제는 좋은데 아쉬운 점은 너무 무겁다. 너무 어렵다는 평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수상을 기대했지만….

참가국 모두 다 수상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상하면 좋겠지만 대다수 국가관이 못 받기 때문에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도 운이니까요.

저는 솔직히 이번 한국관 전시 보고 수상을 못한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이번 한국관 전시는 모두 여성 작가들의 영상 매체로 꾸며졌고,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파생한 개인의 희생이나 시련, 아픔을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아무래도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으면 소화하기 힘든 주제인데다가 감상에 많은 시간을 요하는 영상이다 보니 외국 심사위원이나 관객들에게 어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해가 안 되면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게다가 안 그래도 구조적 한계를 가진 좁은 한국관 내부를 갤러리 부스처럼 여러 개로 쪼개고 비슷한 주제의 영상 작품들만 보여주니 관객들 입장에선 지루하고 답답한 면도 있었을 거고요. 아무리 개별 작품들이 좋다고 해도, 수백 점의 작품들이 경쟁하는 비엔날레에서 주목 받기 쉽지 않은 전시 전략이지요. 90개나 되는 국가관이 있는데 관객들이 과연 한국관에 와서 최소 2시간에서 4시간을 머무르며 이 무거운 주제의 영상들을 볼 수 있을까? 글쎄요. 3명은 좀 많다는 느낌과 전시 연출의 아쉬움이 큰 전시였습니다.

<본 전시에 대해서>

1.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 열린 본전시에 '강서경(땅 모래 지류)·이불(오바드V)·아니카 리(Biologizing the Machine: 기계의 생물화)' 등 3명 작가가 참여했다. 간단하게 평을?

한 마디로 존재감이 크지 않았죠. 저는 이불 작가를 좋아하는데 이번 출품작 ‘오바드V’는 좀 실망스러웠어요. 남북문제를 다룬 주제까지는 납득이 가는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좀 진부했어요. 작품 크기도 애매했고 DMZ에서 수집한 재료로 구현한 작품의 형식도 좀 식상해 보였어요. 작품 크기라도 압도적이었으면 좀 더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강서경이나 아니카 리의 작품들은 환경문제나 생명문제를 다루고 있어 분명 의미 있는 작품들이긴 하나 최종 전시된 작품들 자체는 그냥 무난해 보였어요. 아니카 리 작품은 서정성이 있어 인상적이긴 했지만 시선을 끌기엔 역부족이었죠. 이런 국제 전시에선 작품 자체가 완전히 차별적이고 독창적이거나 아니면 작품을 좀 더 돋보이게 할 획기적인 연출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좀 아쉬운 면이 많았어요.

<수상작과 심사위원에 대해서>

1. 2019년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리투아니아 '태양과 바다(Sun & Sea)' 거머쥐었다. 기후 변화로 우리가 이런 평범한 휴가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 애틋함에서 이런 작품이 나왔다고 예상 밖이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참가국 90개 중 자르디니 공원 내에 위치한 29개 국가관만 다 둘러보는 것도 사실 버거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리투아니아관은 자르디니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임시 건물을 빌려서 꾸민 전시였는데, 그렇게 주목을 받게 될 줄 상상도 못했죠.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과 함께 재밌고 특별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1시간~2시간씩 줄서야 볼 수 있는 화제의 국가관이 됐죠. 마치 소문난 맛집은 외진 곳에 있어도 사람들이 다 찾아가는 것처럼.

2. 미술 전시장이 인공해변이었다. 아래층에 모래사장이 있고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긴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공놀이도 한다. 그런데 장송곡이 흐르고 몇몇 사람들은 환경 재앙을 경고하는 합창을 한다. 왜(?)

건물 1층에 인공해변을 만들고 20명의 배우들이 휴양객 연기를 하잖아요. 오페라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배우들이 돌아가면서 환경 재앙을 경고하는 노래도 부르고. 그걸 2층에서 관객들이 내려다 볼 수 있는 하나의 극장처럼 만들어 놓은 퍼포먼스 설치 작품이었죠. 우리가 누리는 이 일상의 행복과 휴양지에서의 저 여유로움이 과연 미래에도 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었죠.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여유롭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대로 가면 미래에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의 행복을 꿈도 꾸지 못할 거라고 경고하는 거죠. 심각한 주제인데 그걸 목소리 높여서 웅변하는 게 아니라 뒤틀어서 위트 있게 표현하니까 사람들이 감동하는 거죠. 어린아이와 강아지까지 포함된 20명의 퍼포머들이 하루 종일 연기하는 것도 대단한 발상이죠.

3. 눈을 즐겁게 하면서도 이 무거운 메시지를 재기발랄하게 풀었다는 평이 나온다. 선생님의 생각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오랜만에 기분 좋게 감동적으로 본 작품이었어요. 환경이나 기후문제를 다루는 작가들은 사실 많습니다. 역대 카셀 도쿠멘타나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 상당수 작가들이 다뤘던 주제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거운 주제를 그렇게 유머러스하고 신선하게 풀어낸 작가는 지금까지 없었죠. 솔직히 저는 현대미술 작품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신선하고 독창적인 작품이 더 이상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진 1인입니다. 그런데 이번 리투아니아관은 정말 신선하고 독창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완전 한 방 먹은 느낌이랄까요.

4. 2017년에도 독일 이번에는, 리투아니아가 퍼포먼스로 수상했다. 사운드아트가 유행하더니 요즘 퍼포먼스 아트가 동시대 미술의 주류인가? 그 이유?

동시대 미술의 주류라기보다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매체 중 여전히 각광 받는 한 장르라고 봅니다. 퍼포먼스 아트는 미술에서 비교적 늦게 등장한 매체입니다. 1945년 이후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퍼포먼스라는 용어 자체는 1970년대 초에 미술계에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 작가들은 해프닝, 액션(악치온), 바디아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자신의 퍼포먼스를 불렀고요. 퍼포먼스는 시각예술 가운데 자본주의나 미술시장, 또는 미술제도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미술의 경향이기도 하죠. 베니스 비엔날레가 그동안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심사위원들 입장에서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비상업적인 영역에 더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미술제도나 상업주의의 영역을 거부하는 작품들을 하려는 작가들도 점점 늘고 있고요. 물론 퍼포먼스 아트도 미술시장에서 점점 인기를 얻고 있기는 하지만요.

5. 심한 가뭄에 얼음이 사라지고 바다가 뜨거워지거나 극심한 폭풍과 쓰나미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 유럽의 언론을 보면 독일이 특히 환경에 관심이 많다.

기후변화, 이상기온 등 환경 문제는 지금 전 세계적인 화두죠.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할 과제고. 독일은 환경정당인 녹색당의 파워가 큽니다. 이미 70년대 말에 선거에서 주의원 4명을 당선시켰죠. 1990년대엔 연정을 통해 정권을 잡기도 했고, 요슈카 피셔 같은 장관급 정치인들도 여럿 배출했죠. 우리나라는 2012년에 녹색당이 창당되었지만 아직 존재감이 없잖아요. 원내 교섭단체는 아직 꿈도 못 꿀 일이고. 독일인들은 전반적으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은 많아도 환경 문제에 관심 없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반대로 정치에 목숨 거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데 환경문제에 관심 두는 사람은 오히려 소수죠.

6. 2017년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국립미술관에서 초연된 작품이라는데 심사평에서 브레히트 풍 오페라로 풀었다고?

비엔날레 초대되는 작품들은 대부분 이전에 주요 전시회에 선보여서 호평을 받았던 작품들입니다. 브레히트는 서사극의 창시자로, 그의 연극의 특징은 서사적이면서 낯설게 보여주기입니다. 막과 장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연극이 아니라 장면들을 죽 나열해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게 바로 내러티브, 즉 서사성이죠. <억척어멈과 자식들> 같은 연극을 보면 인물들의 행동이 너무 도드라져서 낯설고 감정이입이 잘 안 됩니다. 그런 면에서 <태양과 바다>도 해변에 있는 배우들의 모습에 딱히 감정이입은 안 되는데, 보고 있으면 굉장히 강한 인상을 주죠. 서사적 구성, 낯설게 하기, 현실의 비틀기 이런 공통점 때문에 그런 평을 들은 게 아닌가 싶네요.

7. 역량 있는 젊은 작가에는 주는 황금사자상(은상)은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키프러스 출신인 하리스 에파미논다(39)에게 돌아갔다. 4년 전 임흥순 작가도 이 상을 받았다. 우리는 영상 쪽이 강한 것 같다. 백남준 후손이라 그런가.

영상 쪽 작가들이 점점 많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백남준 후손인 점도 있겠지만 우리가 IT 강국이다 보니 미디어나 테크놀러지를 빨리 습득하는 작가들이 많은 것 같아요. 미디어아트 작가로 국제적으로 활약 중인 이이남도 이번에 테이트 모던 시네마에서 전시하잖아요. 미술관에선 백남준의 회고전이, 미술관 시네마에선 백남준 후예인 이이남의 미디어 아트가 상영되는 거니까 기쁜 일이죠.

8. 국가관 중 특별상을 받은 벨기에관 흥미로웠다. 전시명 '몬도 카네(Mondo Cane 개 같은 세상)' 유럽 중세의 바보제를 연상. 감옥에 갇힌 온갖 존비들이 보인다. 사실 유럽은 70년대 우리가 유토피아였는데 요즘은 바보의 나라처럼 보인다. 브렉시트, 테러, 난민 극우정치 등 골머리, 독일은 좀 낫지만….

미술은 세상의 거울입니다. 민속박물관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어지럽고 요지경 같은 세상에서 별 생각 없이 살아가는 천태만상의 사람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민속박물관은 그 나라 고유의 전통이나 민속양식, 민족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이잖아요. 초국가적인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에 아직까지도 국가관 제도를 여전히 고수하고 근대적인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경쟁을 유도하는 베니스비엔날레에 대한 풍자 같기도 했습니다.

9. 심사위원 특별언급상 수상자는 멕시코 작가 테레사 마르골레스(56), 나이지리아 출신 벨기에서 활동하는 오토봉 엥캉가(45)에게 돌아갔다. 제3세계 소외감 줄이기 위한 조치인가?

오토봉 엥캉가는 2017년 카셀도쿠멘타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작가인데요. 나이지리아 태생이지만 벨기에에서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유럽 작가입니다. 국제적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발칸 등 제3세계 출신 작가들이 뜨고 있고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작가들이 크게 주목 받고 있습니다. 2017년 베니스의 스타작가였던 미국관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가 대표적이죠. 결국 출신지는 제3세계라도 현재 활동지는 선진국이어야 주목 받을 수 있다는 거겠죠. 겉으로 보면 미술계의 축이 수평을 향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선진 미술제도 속에 있는 작가들만이 선택될 수 있는 것은 매한가지인 거죠. 다만 이번 최연소 참여 작가인 아우구스타스 세라피나스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1990년생이니까 올해 28세로 리투아니아 출신이고 지금도 리투아니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8년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에서 열린 발틱트리엔날레에서 랄프 루고프 감독이 직접 픽업한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유능한 기획자라면 이렇게 뉴욕, 런던, 베를린을 넘어 세계 도처로 발품을 많이 팔아야 숨어 있는 좋은 작가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 79명(팀)이 참가한 본전시에는 미국 흑인영화감독 겸 작가인 '아서 자파(59)'가 황금사자상 받았다. 인종주의를 담은 영화 '화이트 앨범(50분)'과 초상화, 검은 트럭 타이어를 쇠사슬 조각 'Big wheel'을 선보였다. 그는 누구인가?

1960년 생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입니다.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작가인데 원래 대학 때 전공이 건축과 영화였어요. 이번에 황금사자상도 ‘화이트 앨범’이란 영상 때문에 받은 건데, 제가 보지 못해서 평을 하긴 힘들고요. 작가가 백인 지인들에게서 감지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르세날레에 설치된 쇠사슬에 에워싸인 대형 타이어 조각 작품들인 ‘커다란 바퀴Big Wheel’는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쇠락해 가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현재 모습과 이와 함께 고통 받는 흑인 노동자들의 고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는데, 트럭 바퀴 자체가 워낙 커서 시선을 압도하더군요.

11. 베니스를 보는 요령, 통찰력을 가지고 옥석을 가리는 기준이 있는지?

미술은 취향의 문제기 때문에 옥석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비엔날레에 초대된 작가들은 이미 검증된 작가들이기 때문에 나이가 어려도 아마추어 작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슬기롭게 베니스를 보는 팁을 알려드린다면, 사전에 베니스 비엔날레 홈페이지 들어가서 기본 정보는 챙기는 게 좋습니다.

이번 행사의 주제와 전시장 지도, 수상자 리스트 정도만 알고 가도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시간도 아낄 수 있고요. 기사 쓸 거 아니라면 수상작들만 챙겨보고 나머지는 그냥 편하게 둘러봐도 됩니다.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만 다 보는 것도 힘든데 국가관들이 베니스 섬 곳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다 살펴볼 수도 없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지쳐서 못 볼 거에요. 솔직히 제대로 다 보려면 일주일도 모자랍니다. 그냥 마음을 비우고 즐기다 오세요. 그게 최선입니다.

<비엔날레 특별전에 대해서>

1. 본 전시 말고 주변에 많은 전시가 공식적으로 본 전시와 연관성을 가지고 보게 하고 있다. 나도 한번 가봤는데 인산인해더라고요. Luc Tuymans 전시 등 광고 많이 보였고 그밖에도 세계적 작가 전시가 많았어요?

보통 비엔날레 본 전시와 별도로 30여개의 특별전이 섬 전역에서 열리는데요, 올해 카탈로그에 실린 공식적인 특별전만 20개가 넘더라고요. 그 외도 베니스의 성당이며 공공미술관, 갤러리, 공원, 운하 등 곳곳이 다 전시장으로 변합니다. 저는 이번에 4개의 특별전을 봤었는데요,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운영하는 팔라초 그라시에서 벨기에 출신 뤼크 튀이먼의 개인전이 열렸고, 푼타델라도가나에선 ‘Luogo e Segni (장소와 기호들)’이란 주제로 37명의 그룹전이 있었습니다. 프라다 재단에서는 그리스 출신 이탈리아 아르테 포베라 작가인 야니스 쿠넬리스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요. 인상적이었던 건 아카데미아 미술관 전시였는데요, 다빈치 서거 500주년 기념 전시가 열렸는데 다빈치 서명이 들어간 25점의 드로잉과 함께 그 유명한 <인체비례도Vitruvian Man>가 공개돼 화제가 되었습니다. 1층에서는 바젤리츠의 회고전도 열려서 주목 받았고요. 보지는 못했지만 윤형근 개인전도 현지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2. 관객을 최고로 참여시키려면 유혹이 필요하다. 21세기의 키워드는 유혹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베니스는 몇 점 정도인가?

베니스비엔날레 자체가 하나의 막강한 문화브랜드입니다. 124년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권위 있는 국제미술 전시회인데, 더 이상 유혹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볼 사람은 다 보게 되어있죠. 루브르 박물관처럼 오버투어리즘이 문제지 관객을 더 끌어들이기 위한 유혹 전략이 필요할까요? 관객 수를 더 늘리기 위해 이슈를 일으킬 만한 작품들로 꾸미면 그런다고 또 비판받을 걸요. 2017년 행사 때 60만 명 이상이 다녀갔고, 평소에도 베니스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비엔날레라는 이름에 맞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관객의 시각이 아니라 의식을 깨우는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행사여야 겠죠. 상업적인 아트페어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미술담론과 시대정신으로 반영하는 그런 예술들. 근데 자본으로 무장한 아트바젤에 전위적인 작품들이 더 많이 등장하고 있고, 비엔날레에 대형 상업화랑 지원을 받는 작가들의 세련된 작품들이 많아지는 게 문제죠. 랄프 루고프 감독도 그런 문제의식을 잘 알고 나름 획기적인 기획 전략을 짰을 텐데요, 작가 수도 줄이고, 여성이나 제3세계 출신, 젊은 작가 대거 참여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번 행사에 7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후한 점수죠.

3. 예술의 도시에는 어딜가나 화랑가나 뮤지엄 지구가 있다. 뉴욕 첼시, 런던의 이스트런던, 서울의 인사동 등. 베니스는 이벤트 성 축제만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자성의 목소리가 몇 년 전부터 베니스 미술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지금 베니스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주데카 미술지구(Giudecca Art District)가 있습니다. 조선소와 선박 공장이 있던 베니스 남쪽 주데카 섬에 새로 들어선 베니스 최초의 미술지구인데요, 올해 5월 베니스 비엔날레 오픈에 맞춰 개관했습니다. 비엔날레 같은 특정 기간에만 열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1년 내내 지속적인 전시와 이벤트가 열리는 베니스의 영구적 미술 지구이자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현재 11개의 갤러리와 작가 스튜디오들이 입주해 있는데 앞으로 계속 늘어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동안에만 60여 명 작가가 참여한 20개의 전시가 열렸다고 하니, 앞으로 베니스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더 바빠지게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