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포럼 부제 : 우리는 열린 회로 속에 (살고) 있다(We are in open circuit)

이번 포럼의 책 제목 : Something Old, Somethibg New (?)
"오래된 것을 앎으로써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 1990년 백남준 인터뷰에서
오늘 포럼의 요약 : <우리는 백남준의 전자적 선의 깨달음을 얻은 1965년(사이버네틱스 아트 개념) 이후 쌍방 소통인 열린 회로(인터넷 유튜브 스마트폰 인공지능 등) 속에 살게 되었다> //
1974년 12월 백남준은 이르멜린 리비어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르셀 뒤샹은 비디오만 제외하고 모든 걸 다 했죠. 그는 들어오는 문은 크게 만들었는데, 나가는 문을 작게 만들었어요. 그 문이 바로 비디오죠. 그 문을 통해 뒤샹에서 나올 수 있는 거예요.” //
바로 그 문은 인류사의 바퀴를 예술 오브제로 사용해 새 예술의 문을 연 뒤샹이 몰랐던 '회로 circuit'의 세계다. 백남준아트센터 로고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우리는 열린 회로 속에 있다 We are in open circuit'이다.년 MIT 출판사가 백남준의 이 말을 제목으로 그가 남긴 거의 모든 텍스트를 모으고 충실한 해설을 곁들여 책으로 펴냈다. - 이영철
백남준 '열린 회로' : 예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고, 변화하고, 확장되는 살아있는 생물체 같은 것이다. 쌍방소통 피드백 예상하기 힘든 불예측성에 있다
저자 : 디터 다니엘스(Dieter Daniels) 독일 라이프치히 시각예술 아카데미에서 미술사, 미디어 이론 및 미술사 교수로 재직 중. 또한 독일 마인츠 대학교의 구텐베르크 펠로우다. 그는 비디오 아트와 미디어 이론 분야의 전문가 Prof. Dr. Dieter Daniels is Professor of Art History and Media Theory and Art History at the Academy of Visual Arts, Leipzig, Germany. He is also the Gutenberg Fellow at the University of Mainz, Germany. He is an expert in the fields of video art and media theory.
[오래된 것+새로운 것] 1) 선사시대+30세기 / 2) 오래된 것+새로운 것 / 3) 아날로그(물리적 실시간겅)+디지털(생성적 실시간성) // 새로운 것이란? 1) 가변성+재개념화+일방대중참여+협력작업+비선형성+비연속성+토크쇼같은 생방송+유기적 생태적 접근방식+비예측성+우연성 +단순해보이나 복잡성이 많다+연속성보다 즉흥성도 등등이 뭔가 새로운 것이다 <작성 중>
<변화가 최고의 아름다움> 달리는 기차밖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단지 변하기 때문에 아름답다"라는 나이 든 선 불교적 케이지의 주장을 이해했다. 자연이 예술보다 더 아름답다면 그것은 자연이 강렬하거나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라, 변하기 쉽고 풍요로움이 넘쳐나며 무한하기 때문이다.

- 장소 : 용산도시기억전시관 세미나실(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7 (한강로 3가)
[1] <백남준 10년 주기로 도약하다> 제1기 80% 독일시대 / 제3기 20% 독일 교수 시절
열린 회로 (1965년 사이버네틱스 아트) 기계와 인간을 평등하게 보다 / 열린 마음 |
백남준 독일시절 7년(1956-1963년) 그의 예술적 처녀기, 치열하고 순수했다. 이때 키워드가 탈중앙화(들뢰즈 [땅바닥을 기는 리좀 개념]과 같다), 비선형적 피드백 시스템 즉 쌍방소통이다. 그리고 문화 칭기즈칸으로 기울어진 동서 운동장 균형 잡기,그 문화 권력의 지형도를 적어도 50대 50으로 만들기다.(예술은 텃세다 - 백남준) 엄청난 투쟁기
제1기: 1956-1964년 <서양에는 족보가 없는 TV를 현대미술에 도입하다> 백남준 30살에 "내가 바로 황색 재앙이다"라며 전 세계 미술을 쓸어버리는 문화 칭기즈칸이 되겠다고 선언하다.
제2기(사이버네틱스, 열린회로 시대): 1965-1973년 <쌍방소통과 시간을 베이스로 하는 예술 비디오가 들어오다> / 제3기: 1974년-1984년 <전 지구를 하나로 연결하는 위성아트 글로벌 네트워킹이 본격적으로 시작> / 제4기: 1985년-1993년 <인터넷년 상용시대를 열다> 그 결과물로 베니스비에날레에서 황금사장상을 받다. / 제5기: 뉴욕에서 대규모 회고전 <레이어>아트 선보이다 / 그리고 제6기 스마트폰 사용시대를 앞두고 마지막 생애를 마치다.
[1] "우리는 열린 회로 속에 살고 있다" - 백남준 / 백남준아트센터 로고가 여기서 나왔다. 뒤샹이 결국 열지 못한 현대미술의 회로를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로 연 것이다. 막혀버린 21세기 현대미술의 문을 여는 열쇠를 백남준이 만들어준 셈이다 1 백남준 그 자체가 문화인류학 대백과사전이다
[2] 1965년, 사이버네틱스 아트 선언=열린 회로의 시대(쌍방소통) // 20년 후 위성아트를 통해 글로벌 쌍방소통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이 굿모닝 미스터오웰(1984년)이다 1965년 열린 회로 개념을 가지기까지 1956년부터 독일에서 7년간 오래 실험과 모험의 시간을 거쳐야 했고 1963년 첫 전시를 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가서 2년이 지난 후에 드디어 열린 회로의 시대를 열다 그게 또 10년 후에 중간과정으로 1973년 인터넷 유튜브 스마트폰 아이디어를 내다. 그리고 마침내 1983-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탄생하다
[3] <백남준 전자디지털 시대를 맞아 뒤샹의 닫히고 막힌 회로를 열린 회로로 코드변경하다> 백남준은 기술 미디어를 활용한 예술 작업을 만들며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 열린 마음의 의미를 추적하고자 그가 쓴 “사이버네틱스화된 예술”의 마지막 부분에 적힌 "우리는 열린회로 안에 있다(1965년)"라는 문구와 그가 언급한 ‘인간화된 예술’이란 문구의 의미를 살핀다. 백남준은 플럭서스 멤버로서 콜라주에 관한 관심과 더불어 간학제적 학문으로서의 사이버네틱스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그의 예술에서 인터미디어적 접근을 추구하는데 큰 참조가 되었다.
그는 방대한 독서와 공부를 통해 통합적이고 훈련된 지식을 쌓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이 역시 그가 계속하여 혼합과 뒤섞음, 넘나듦의 체계로 예술품을 만들고 글을 쓰는 데에서도 반영된다. 본고는 백남준의 예술 및 글 작업과 표현 전반에서 드러나는 비결정성과 불확정성이, 서로 다른 대상을 우연적으로 결합하는 방법을 통해 이 열린 체계를 만드는 과정이자 그 효과로 드러난다고 본다.
[4] 1974년 TV부처 동서의 소통을 이야기했다면 10년 후 1984년 <굿모닝 미스터오웰>은 그 범위를 넓혀 동서를 넘어 지구촌 글로벌 소통 네트워킹을 구현한 것이다. 이 두 작품은 동서 문화의 합장(랑데부) 그리고 우주 오페라 대향연으로 봐도 별문제가 없다.
[5]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프랑스의 '레비-스트로스(인류학)'와 독일의 '하버마스(소통학)'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을 통해 문화에는 상하가 없다고 선언하다. 백남준도 같은 생각이다. 인류의 구원은 바로 야생적 사고와 생태 환경의 회복(백남준이 샤머니즘에 심취한 이유다)에서 찾았다.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TV정원>이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이런 사상을 학문으로 끝났지만, 백남준은 그걸 비디오 예술을 통해 철저하게 실천하다. /
[5] 또 '하버마스'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에서 온다고 보고 공론장 소통학을 선언했다. 그래서 세계적 철학자가 되다. 하버마스는 이런 사상을 학문으로만 끝냈지만, 백남준 이것을 예술로 승화시켜 구체적으로 실용화하는 매체와 도구(인터넷, 유튜브, 스마트폰 등)를 창안했다. 그러면서 미래지향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인류에게 큰 꿈을 주었다.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TV부처>이다. 위에서 보듯 철학과 예술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오는 것이다
[6] <Rembrandt TV>와 <Robot K-456>에서 보듯, 우연한 실수, 에러, 실패를 틈과 여백의 위트 있고 시적인 열린 시공간으로 뒤바꾸는 작품들을 창조한다. 우연적 결합과 뒤섞임 가운데 결합되는 대상들 사이, 즉 분리되어 있던 개체와 이미지들 사이에 드러나는 빈 공간은 열린 체계를 스스로 드러내며 작동하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시적 공백은 관객과 독자가 스스로 자유의지적으로 작품을 해석하게 만들며, 계속하여 창조적이 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의 열린 마음과 인간화된 예술은 이러한 틈과 여백을 여는 예술이며, 매 순간 이러한 시공간을 새롭게 의미화시키고 상상하게 만드는 예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 This paper examines the conceptual underpinnings and implications of Nam June Paik's advocacy for an 'open mind.' This concept is related to his phrase "we are in open circuits" in the last part of his seminal article "Cybernated Art" and his words of "humanized art." As a prominent member of the Fluxus movement, Paik's interest in collage was complemented by his engagement with Cybernetics—an interdisciplinary area of diverse disciplines that significantly influenced his pursuit of an intermedia approach in his art. Through a methodology characterized by collage, mixing, and intertextuality, Paik's creations and writings embody a system that integrates diverse knowledge bases facilitated by extensive reading. This study argues that the indeterminacy and accidental juxtapositions in Paik's works and texts instantiate an 'open system,' reflecting a deliberate embrace of unpredictability and error. This openness is exemplified in works such as <Rembrandt TV> and <Robot K-456>, where Paik took serendipitous mistakes, errors, and failures, transforming them into opportunities for poetic and temporal-spatial interludes. The paper contends that Paik's 'open mind' and his vision of 'humanized art' represent an artistic ethos that valorizes openness, voids, and interstices, thereby fostering spaces for imaginative and meaningful engagement from the viewers.
<폴 라이언과 백남준> 끼어넣기 이 책에서 소개되는 백남준 관련 인물 소개폴 라이언은 1969년 라이언은 하워드 와이즈가 큐레이팅한 획기적인 전시회 TV as a Creative Medium에 참여했는데 , 이는 1960년대의 키네틱 아트 운동과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매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비디오를 주제로 한 전시회인 TV as a Creative Medium은 급진적인 변화를 알리고 새로운 예술 운동을 정의했다. 1969년.1969 라이언은 아이라 슈나이더, 마이클 샴버그, 데이비드 코트, 베릴 코롯, 필리스 거슈니 등과 함께 Raindance Corporation을 공동 설립했다. Raindance는 문화적 소통의 대안적 형태로 비디오에 대한 급진적인 이론과 철학을 제안한 영향력 있는 미디어 집단이었다. <마셜 맥루한과 버크민스터 풀러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영향을 받은 이 집단은 사이버네틱스, 미디어, 생태학의 관계를 탐구하는 테이프와 글을 제작했다.
1 2008년에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 미술 기록보관소는 뉴욕시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선구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작가, 교수, 이론가인 폴 라이언(1943년생)의 서류를 인수했다. 아래는 그중 하나(사이버네틱스 게릴라 초안)다 그의 사진이 있는데 누가 폴 라이언인지를 모르겠다 //
폴 라이언 문서에는 라이언의 개별적인 기여에 대한 1차 자료와 뉴욕 비디오 운동의 초기 단계에 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이 컬렉션은 1971년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 기록 인수를 통해 처음 형성되었고, 최근에는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 기록 및 빌 비올라, 존 발데사리, 비토 아콘치 등 예술가들의 구술 역사 인터뷰 등을 통해 더욱 보강된 비디오 역사와 관련된 아카이브의 연구 소장품에 중요한 추가 자료이다. / 폴 라이언의 문서는 서신, 초안, 사진, 인쇄물, 스케치, 노트, 그리고 현재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원본 영상 연구 및 발췌본을 포함하여 총 29.4피트에 달한다

백남준 / 맥루언(캐나다출신)과 플루서(체코출신)의 미디어이론 차이 //
플루서의 주장: 플루서는 비디오를 자기 반영적인 '기억을 가진 거울'로 주의 깊게 살폈다. 그러면서 다음 세대 비디오 예술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디오는 철학적 사유를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비디오는 기술적으로는 매우 원초적일 수 있지만 지적으로나 미학적으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1 맥루언:. 그의 제자 라이언은 비디오테이프는 텔레비전이 아니다라며 그 차이를 강조했다 //
맥루언, 케이지, 위너로 구성된 이 이론적 조합은 1968년 갤러리 보니노에서 열린 백남준의 두 번째 개인전에서 실현되었다. <케이지에 갇힌 맥루언 McLuhan Caged>이라는 제목의 반복 재생되는 인터랙티브 비디오 설치 작품에서 백남준은 케이지가 전자음악을 활용하는 방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맥루언이 등장하는 짧은 장면을 만들었다. 백남준은 나중에 이 설치 작품의 구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1967년인가 1968년 초인가, 미국 NBC 방송에서 마셜 맥루언을 다룬 중요한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방송 중에 비디오로 녹화했다. 텔레비전 수상기에 다양한 전자석을 설치해 맥루언을 좌우로 돌렸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물은, 계속 반복해 재생되는 맥루언 비디오테이프였다."
1 백남준(Vilém Flusser 1920년 5월 12일~1991년 11월 27일)는 체코 프라하 태생(유대인 지식인 가문)의 브라질 철학자, 작가, 저널리스트, 백남준 비디오아트 이론가 / 수학과 물리학 전공 / 프라하 대학 철학 전공 / 그는 상파울루 (브라질 시민이 되다)와 이후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거주, 그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집필 // 그의 초기 작업은 마르틴 하이데거 사상에 대한 논의와 실존주의 및 현상학의 영향. 현상학은 그의 작업 후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 그는 소통 철학과 예술 생산 철학에 관심. 그는 역사를 통해 이분법 논리 이론, 즉 이미지 숭배 시대와 텍스트 숭배 시대를 아우르는 이론에 기여 / 사진 철학자

1 백남준<폴 라이언: 2008년 미국 국립미술관 스미소니언 협회 미국미술 기록 보관소에 그의 문서, 1943-2008 컬렉션되었다컬렉션 되었다> <맥루언의 제자(대학에서 맥루언 조교 하다)) 사이버네틱스 예술가 / 미국 전 하원위원장과 이름이 같다> (Paul Ryan, 1943년 뉴욕 출생 , 2013년 12월 17일 펜실베이니아에서 사망)은 미국의 비디오 아티스트였다 //
라이언은 뉴욕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포드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마셜 맥루한의 지도를 받았다. 폴 라이언은 사망할 때까지 여러 대학 말년에는 뉴스쿨에서 가르쳤다. Ryan의 작품은 1969년 뉴욕의 Howard Wise Gallery에서 열린 획기적인 전시회 'TV as a Creative Medium'에서 선보였다. 다른 참가자로는 백남준, 샬럿 무어먼, 아이라 슈나이더, 프랭크 질레트, 에릭 시걸이 있었다. Ryan은 Raindance 미디어 콜렉티브의 멤버 /
1971년부터 대인관계와 인간과 생태계의 관계에 집중해 왔다. 그 결과, Threeing(1976)과 Earthscore Notation(1991)이 탄생, 두 전략 모두 인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 Threeing은 "2 대 1"의 역학 관계를 종식시키고,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3명 이상의 협력 수준을 안정화. Earthscore는 환경 현실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가졌다
1 <텔레비전 만지기 맥루언 존 케이지 백남준과 함께 하는 참여 미디어(Touching Television : Participation media with M. McLuhan, J. Cage and NJ Paik)>

<나는 오로지 존 케이지 때문에 독일(다름슈타트)에서 만났던 그 사람 때문에 미국에 갔다> - 백남준 미국에는 문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에게 큰 영감을 준 사람은 미국의 존 케이지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미국을 인정하다. 백남준이 존 케이지를 만난 1958년을 기준으로 그의 전기와 그의 후기가 나눠진다. 존 케이지를 만난 1년 후인 1959년 그에게 바치는 작품(존 케이지 오마주 작품) 발표하고, 또 1년 후 1960년 그에게 바치는 2번째 작품 발표 전시(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에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다 <위 1960년 사진>
백남준의 테이프 작업 중시

<위 사진 오른쪽 1959년 10월 쾰른 아헨거리 687번지에 있는 백남준 홈 스튜디오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테이프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 리허설. 사진: 만프레드 레브>
대부분 백남준 연구자들 그의 1963년 첫 전시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끝난다. 약간 과장하면 그렇다 //
반면에 백남준은 1963-4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의 후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TV에서 충격, 표현주의, 낭만주의, 절정, 놀라움 등 이전 작품에서 영광스럽게 칭찬받았던 것을 기대하지 마라." 이러한 변화는 백남준이 케이지를 대하는 태도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드러낸다. 이는 액션 음악 이후부터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이전까지에 해당하는 1961년에서 1963년 사이에 백남준이 쓴 세 편의 개념적 글을 살펴보면 단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61년 초 티티제 Titisee Titisee에 있는 휴양지로 가는 길에 백남준은 케이지를 떠올렸다.
달리는 기차의 창밖을 바라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단지 변하기 때문에 아름답다”라는 오래된 선 불교적 케이지(Zen-Cage)의 주장을 이해했다. 자연이 예술보다 더 아름답다면 그것은 자연이 강렬하거나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라, 변하기 쉽고 풍요로움이 넘쳐 나며 무한하기 때문이다. /
백남준은 특유의 글쓰기 방식으로 여러 층위의 생각을 단단하게 엮으며, 질(quality)을 상대적인 값 또는 절대적 특성으로 고찰했다. 그리고 비로소 선(Zen)과. "나는 <변화의 음악>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데, 그것이 케이지의 작품 중 가장 지루하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썼다.
존 케이지와 백남준이 창의적 도구로서의 재생산 미디어를 추구했다면 / 맥루언과 백남준은 랜덤액세스가 가능한 촉각적 텔레비전 개념을 도입했다 /
백남준 이런 미디어이론을 실현하기 위해서 아베와 함께 비디어 합성기를 피똥을 싸며 발명했고 이런 이론이 실제로 구현이 가능해졌고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비디오 코뮌>이고.
이런 기술을 더욱 세련되게 지금의 유튜브처럼 만든 것 중 하나가 1973년에 나온 백남준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글로벌 그루브>다. 백남준이 참여TV에서 추구한 여러 가지 이상향 인터넷(WWW) 새로운 미디어에서 나타났다. 백남준 유튜브와 인터넷을 합치면 아주 많은 발전이 올 것으로 봤다.
오늘날에서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들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요즘 보면 쌍방소통에서 유튜브는 아주 돋보인다 더 나아가 수많은 방송관계자를 만족시키고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선물하고 시청률 높이고 수익도 창출한다 이런 것을 더 대중화한 것이 2010년부터 등장한 인스타그램이다.
결국, 인터랙티브 서비스라는 것은 민주주의 언어로 표현된 사업이다. 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이념과는 상관이 없는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1 백남준의 랜덤액세스는 케이지의 다원주의와 불확정이 주는 능동적 다차원성과 다매체성으로 전환함으로써 전자미디어가 지닌 자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했다. 백남준 역시 1960년대 전반에 거쳐 존 케이지의 작품이 관객 참여에 개방적이었던 것을 두고 "차가운 미디어는 관객의 참여도가 높다"라고 말한 맥루언의 주장을 소환했다.
1 백남준이 중시한 탈중앙화 비선형적인 피드백시스템은 오늘날 전자장비와 관련된 생활양식에서 매우 중요한 범주이며 계몽예술가와 경제 학자 도시계획자 전략위원회 구성원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왜 촉감 미디어가 나오나 기계의 인간화>
1 백남준 기계에 인간의 두뇌를 옮기면 기계도 인간이 되고 인간처럼 친구가 되고 그래서 기계에도 촉감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인터페이스가 바로 그런 개념이다.
이런 촉감의 미학(시각 미디어의 촉각성)을 펼친 사람으로는 1) 발터 베냐민이 있고 2) 마셜 맥루언(1964년, 미디어의 이해)이 있고 3) 백남준(1963년, 첫 전시 백남준이 맥루언의 영향을 받았지만 촉각 미디어는 백남준이 먼저다)이 있고 4) 존 케이지가 있다. 맥루언의 그 유명한 말은 <미디어는 마사지(촉각)다>라고까지 했다.
오늘날 디지털 테크의 실현 다중 감각 지각 터치-인터페이스 등 개념을 예견한 것이다. 맥루언과 존 케이지는 지각의 확장으로서의 매스미디어론을 펼쳤다. 존 케이지는 12대의 라디오와 24명 연주자 그리고 한 명의 지휘자가 함께하는 작곡 <상상의 풍경 4번>은 주역에 나오는 우연의 요소를 추가해 구체적으로 음조를 설정한 작곡가보다 소리를 수용하는 특정한 환경을 설정한 청취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런 작품은 개인적 취향과 기억에서 벗어난다고 했다. <4분 33초>처럼 이 작품은 관객도 4분간 감각이 고조되는 경험을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미디어의 확장과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바로 관객이 참여하는 것이다.
<백남준의 시간론과 하이데거의 시간론> 하루 중 진짜 시간은 몇 시간?
[하이데거] 인간실존은 근본적으로 '시간적' //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참된 시간(True Time) 4차원 특성; "미래 또는 과거의 것은 나름대로 현재로 이동합니다. 그러므로 3 3차원의 시간성에서 하이데거가 시간은 4차원이다. 백남준의 5차원 사기와 하이데거의 4차원 시간 하이데거는 서양철학은, 플라톤 이후로부터 시간과 상관없이, 시간이 흘러도 변화하지 않는 본질을 찾아 쓸데없이 헤맸다고 비판하였다. 그가 보기에 진정 중요한 철학의 주제는, 본질에서 시간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가? 문제였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시간성'에서 찾는다. 인간은 '시간성'으로 존재하며, "시간성이란, 있어 오면서(과거), 마주하면서(현재), 다가감(미래)이다."
<결국 백남준의 가변성은 '영원히 고정된 것은 없다'는 그의 철학을 말한다, 기술 발전에 따라 예술도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품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 똑같은 작품이라도 늘 새로운 경험을 주는 작품이 매력적이다>
가변성은 백남준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엄청 중요한 부분이다 / 쉽게 말해, 백남준 '작품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할 수 있다'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냐면 우리 삶이나 시간 자체가 늘 흐르고 변하기에 예술 작품에도 그걸 담고 싶었서다/ 특히 비디오 아트나 미디어 설치 작품에서 이런 가변성이 표현하는 좋은 도구다
비결정성과 가변성: 초기 플럭서스 활동 때부터 비결정성(indeterminacy)과 가변성(variability)에 관심이 많았다 / 음악에서 작곡가 중심에서 벗어나 음악의 가변성을 표현하는 연주나 수용자의 역할이 크다 /
기술 매체의 활용: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같은 기술 매체를 쓰면서 작품이 실시간으로 변하거나, 관객의 참여에 따라 달라지거나, 아니면 설치될 때마다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될 수 있게 만드는 것 즉 관객의 참여로 가변성이 높아진다 / 다시 제작되는 작품: 어떤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이 바뀌거나 부품이 노후가 되면 계속해서 '다시 제작'되어야 하듯이 작품을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작품이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
탈영토화: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들고 '끊임없이 이동하는(변화하는) 정신'이 중요하다. 예술에서도 예술의 전통적인 장르나 개념을 해체하는 것도 가변성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작품 자체가 한 곳에 묶여 있지 않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새롭게 해석될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결론] <'우연성-가변성-유연성-역동성-불예측성' 예술 진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핵심>
백남준 작품의 '가변성'은 단순히 형태가 변하는 걸 넘어서 민주주의 원리처럼 <관객이 참여>함으로써 작품 경험이 달라지고, 첨단 기술을 활용하고 그 변화에 맞춰 작품이 진화하면서 일어나는 '살아있는' 특성이 완성 완전 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백남준 전시에서 '관객의 참여'를 엄청나게 중시하는 이유] 작품의 주인공을 작가가 아니라 관객이기도 하지만 관객 참여는 가변성을 더욱 촉구된다: 쌍방 소통적인 예술: 백남준은 해프닝이나 비디오 아트를 통해 관객이 작품에 직접 참여하게 하다. 민주주의의 원리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카메라 앞에 서면 자신의 모습이 TV 화면에 나오거나 조작을 통해 영상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1] 경험의 다양성: 관객이 작품에 참여하거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작품은 그 순간 관객의 행동, 위치, 시점에 따라 계속 변하는 거야. 보는 사람마다, 보는 시간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거지. 이게 바로 작품의 가변성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야. 작품이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관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질 수 있다. /
[2] 가변성 기술 변화: 새로운 기술을 예술에 재빠르게 끌어들여 가변성에 엄청난 영향을 주다. 기술 자체의 속성: 비디오나 전자 매체는 그 자체가 이미 '시간'과 '변화'를 내포하고 있어. 아날로그 신호든 디지털 신호든, 조작하고 편집하고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과정에서 이미지가 계속 변하잖아. 백남준은 이런 매체의 속성을 그대로 작품에 활용했어. TV 신호를 왜곡하거나 비디오 신시사이저 같은 걸로 다양한 영상을 뒤섞으면서 작품이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고 변하는 동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
[3] 매체의 확장과 재해석: 백남준은 텔레비전처럼 일상적인 기술 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다양한 미디어들을 넘나들며 작업했어 (미디어와 미디어를 넘나들다 인터미디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그걸 또 작품에 적용하고, 기존 작품도 새로운 기술로 다시 구현하기도 했지. 이렇게 기술 변화 자체가 작품의 형태나 구현 방식을 계속 바꾸고, 작품의 수명이나 존재 방식에도 가변성을 부여하게 되는 거야.
[4] 결론: 백남준 작품의 가변성은 단순히 형태가 변하는 걸 넘어서 관객이 참여함으로써 작품 경험이 달라지고, 첨단 기술을 활용하고 그 변화에 맞춰 작품이 진화하면서 일어나는 '살아있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어. 완전 유기체처럼 되는 것이다
백남준의 <가변성> 잘 보여주는 작품의 예 <백남준 작품, 끊임없이 변화하는 운동성-파동이 필수>

[1] <참여 TV: 전자 텔레비전 (Electronic Television)> (1963년): 이 작품은 백남준이 TV 수상기를 그냥 '보는' 도구가 아니라 '예술 재료'로 써먹기(예술화) 시작한 초기작 중 하나다. TV 내부를 해킹하거나(회로를 변경) 자석 같은 걸 갖다 TV 가지고 노는 것이다. 방송 영상이 아닌 이상하고 변형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정해진 이미지가 아니라 그때그때 다른, 예측 불가능한 전자 이미지의 변화 자체가 이 작품의 핵심 가변성이라고 할 수 있다.

[2] <TV 부처 (TV Buddha)> 과거와 현대와 미래를 동시에 제시 (1974년 다양한 버전): 백남준의 대표작이다. 부처가 카메라를 보고 있고, 그 카메라가 찍은 불상의 모습이 바로 앞에 놓인 TV 화면에 실시간으로 나온다. 부처 자체는 고정적이지만, TV 화면에 나타나는 불상의 모습은 카메라 각도나 주변 환경,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시간성에 따라 미묘하게 계속 변한다. '과거(부처)가 현재(실시간 영상)를 보고, 현재는 과거를 비춘다'는 시간과 존재의 가변성을 철학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같아. 버전이 여러 개인 것도 흥미롭고.

[3] <물고기 하늘을 날다 (Fish Flies in the Sky)> (1975년): 이건 천장에 수십 대의 모니터를 설치하고, 거기에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 영상을 틀어주는 작품이다. 관객들은 바닥에 누워서 이걸 올려다보게 되는데, 이렇게 물리적인 시점 자체가 바뀌는 경험도 가변성이고, 수많은 모니터에 나오는 영상의 조합이나 흐름도 계속 변하면서 보는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고정된 사고방식에 대한 도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4]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 (1973년): 같은 작품들처럼 여러 대의 모니터를 빼곡히 채우는 대형 설치 작품들도 가변성이 엄청나다. 다양한 영상 소스(세계 각국의 문화 영상, 퍼포먼스 기록 등)들이 여러 모니터를 통해 동시에 재생되면서 끊임없이 시각적 정보의 흐름이 화면이 바뀐다. 설치될 때마다 모니터의 배치나 영상 조합이 달라지기에 매번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다.
80년대 '다다익선'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1) 상호작용하는 미술 (Interactive Art): 이게 진짜 재밌는데, 관객이 작품에 참여해야 비로소 완성되거나 변화하는 작품들이에요 센서나 카메라 같은 기술을 써서 관객의 움직임이나 소리, 심지어 감정에 반영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관객이 지나가면 벽에 걸린 영상이 바뀐다거나, 특정 소리를 내면 조형물의 색깔이 변하는 식? 관객이랑 작품이 마치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신선해요.
2) 몰입형 설치 미술(Immersive Installation): 프로젝션 맵핑이나 대형 LED 스크린 같은 기술을 이용해서 관객을 완전히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가는 작품들도 많아요. 막 사방이 영상으로 둘러싸여서 그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경험을 주는 거죠. 디지털 기술로 만든 환상적인 세계를 직접 체험하는 느낌
3) 빅 데이터 시각화 아트 (Big Data Visualization Art): 복잡한 데이터나 정보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예술도 있어요. 특정 지역의 날씨 변화나 SNS에서 오가는 대화 같은 데이터를 수집해서 그걸 그림이나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거죠. 과학이랑 예술이 만난 느낌?
4) 로봇이나 인공지능 활용: 더 나아가서 로봇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만들기도 하고, 인공지능이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걸 예술 작품으로 선보이기도 해요. 인공지능이랑 협업해서 작품을 만드는 시대, 기술이 예술의 '도구'를 넘어 '창작 주체'나 '협력자'가 되는 단계까지 온 거죠. 좀 소름 돋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요. 있죠
5) 기술이 발전할수록 예술 표현 방식도 끝없이 확장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이 현실이 되고, 예술가들은 그걸 또 기가 막히게 작품으로 만들어내니 진짜 흥미진진한 시대에 살고 있다
미술사와 음악학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하느라 너무나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다. |
기술적인 노동 분업, 다윈주의적(?) 발전 개념 / 스타일에 대한 하인리히 뵐플린식(1864-1945 미술사의 기초 개념) 집착,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내려고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계속해서 캐내는 일이다 / 이 모든 노력은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연구 대상 자체를 지워버렸다(백남준, 1967) / 존 케이지와 백남준은 다양한 차원에서 여러 관계를 맺고 있다.

첫째, 그들의 일대기는 다음의 것들을 통해 연결(케이지 1958년부터 1992년까지) 이어진 수많은 만남과 방대한 서신 교환. / 이따금씩 이루어진 예술적 협업. / 1959년 백남준이 케이지에게 바친 여러 예술적 경의. //
둘째, 그들은 다음과 같은 배경을 공유했다. - 아시아 철학과 선 불교를 연결 짓고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함 / 두 사람 모두 아르놀트 쇤베르크, 마르셀 뒤샹, 마셜 매클루언,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등을 롤 모델로 삼음. / 다음 세대 예술가와 음악가들에게 롤모델이 되다. 음악가 미술가 뒤섞이다.
셋째, 이들의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유사점이 있다. 우연성과 불확정성, 무작위성을 이용함. 음악과 시각 예술의 상호작용. 미디어의 특성에서 비롯된 기법이 결정적 역할을 함. //
넷째, 이들은 개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백남준에 관한 케이지의 글 또는 케이지에 관한 백남준의 글을 통해서. 이러한 주제 각각에 대해 별개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백남준의 말이 지닌 의미를 생각할 때, 우선 예술에 대한 케이지와 백남준의 접근 방식을 구조적, 개념적으로 비교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이 글에서는 그들 각자가 미술과 음악 사이에서 미술과 작곡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술이 상호 매체성의 토대로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술사와 음악학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하느라 너무나 오랫동안 서구가 고통을 겪었다 백남준(TV로 작곡하는 미술가) 이걸 합치다> I 공간이 시간이 되다 백남준 미디어 기법(Concepts : Here Space Becomes Time) / 서구는 공간과 시간을 분리하는 데 2000년 걸리고 백남준 공간과 시간을 결합하는 데 100년이 걸리다 / 액션 음악: 독일(서양)-몽골(동양) 합치는 표현주의

심플(simple) 0분 21초(1962년)
백남준의 테이프 아트 대표작 60년대 초 / 1)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4분 10초 (1959년) /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 2분 29호 1960년 / 심플(simple) 0분 21초(1962년) 플럭서스 새로운 문 열다 //
백남준 I '심플' 1962. 비스바덴에서 열린 '플럭서스 국제 신음악' 중 허긴스의 '위험한 음악 2번' 퍼포먼스. 사진: 하르트무트 레코르트. 오른쪽에 "살아있는 암 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위)"는 영문이 보인다 ⓒ 백남준아트센터 //
이 녹음 기록은 테이프 작곡에 대한 백남준의 접근 방식이 동시대 유럽인과 명백하게 달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나 현대 노래, 라디오 소리 등 라디오 방송 자료나 대중음악 녹음 자료 등을 사용했고, 이 자료를 강렬하고 때로는 극도로 왜곡된 목소리 녹음 자료와 결합해 여러 요소가 서로 대비되는 콜라주를 만들었다.
당시 유럽의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과 비교해 보면 백남준의 테이프 콜라주는 소리의 구조나 구체음악의 대표적 개념 중 하나인 '매력 allure'이 상대적으로 명확하지 않으며, 소리가 빠르게 전환되고 강한 인상을 준다. 그 콜라주들은 케이지의 <윌리엄 믹스>(1953)와>(1953) 같이 개념이 주가 되는 테이프 몽타주를 연상시키지만, 형식을 고려하기보다는 관객의 정서적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특정한 연출 기법을 따르고 있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파운드 푸티지를 두드러지게 참조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파운드 푸티지란, 대중매체 환경에서 사용하는 사전 녹음된 자료, 예를 들어 바이닐 레코드나 라디오 방송 등의 자료를 말한다.
이러한 자료가 새로운 음악적 틀 안에서 기존의 맥락을 벗어나 새로운 맥락을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백남준은 제임스 테니의 1961년 작품 <콜라주 1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초기 샘플링 기법이나 플런더포닉스(Plunderphonics: 여러 기존 오디오 소스를 샘플링하여 새로운 곡을 만드는 음악 장르)를 미리 보여주었다.
Nam June Paik 'Random Access' reconstruction Guggenheim Museum NY 2000 /

백남준 구겐하임 전시 '랜덤 액세스' 2000년 Tape Assemblage Art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재설치> / 이 주제는 민주주의 / 시민 참여주의를 상징하다 / 전시의 주인공은 관객이고 나라의 주인공은 시민이다 / 무작위와 비선형방식으로 접근하다 // 어떤 소리가 재생되기도 전에 벽에 전시된 테이프 파편들의 독특한 아상블라주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백남준은 나중에 이 테이프 아상블라주를 "도시의 지도이자 추상회화, 관광지, 액션"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특정한 추상주의 사조를 염두에 두었는지 여부는 그저 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남준의 테이프 아상블라주는 칸딘스키의 선형 추상주의와 1925년에 칸딘스키가 「점-선-면」에서 서술한 공감각적 연상 작용을 떠올리게 한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책에서 선들을 중심 없이 배치함으로써 나타나는 '극적인 소리'에 대해 논한다
<참고사항> 1.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영화 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장르의 하나로, 모큐멘터리의 일종이다. 이 장르는 허구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실제 촬영된 영상을 마치 발견된 것처럼 사용한다. 즉, 영화 속 등장인물이 찍은 영상이나, 행방이 묘연한 촬영자가 찍었던 영상이 마치 발견된 것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2. 상상적 풍경(케이지 작곡) 뒤샹의 영향도 / 이 작품 중 4분 33초가 유명하다 / 존 케이지는 ‘상상적 풍경 4번’이라는 작품도 발표했다. 이 작품 역시 악기 연주 대신 라디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향을 들려주는 게 전부였다. 당시 음악평론가들은 음악계의 이단자라며 그의 작품 세계를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는 기존의 관습적인 음악에서 탈피해 자기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펼친 새로운 음악의 선구자임이 틀림없다.
3. [60년대 실험 TV 아트의 확장] 1984년 굿모닝 다중시간(다양한 시간대)+다중공간 너머 창공에서 위성으로 연주하는 오페라 교향곡 <여러(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연결 <손에 잡고>와 같은 인류 통합주의) 반식민주의>
4. 백남준은 한 번도 존 케이지의 제자인 적이 없었다. 1958년부터 사회 연구를 위한 뉴 스쿨(뉴욕 실험 예술대학)에서 케이지의 실험적인 작곡 수업을 받았던 조지 브레히트나 앨런 캐프로, 딕 히긴스, 라 몬테 영과는 달랐다. 다만 백남준은 1958년 케이지가 자신에게 미친 결정적인 영향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1959년 그에게 바치는 헌사가 나왔고 1960년에는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협주곡(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2번째 헌사)이 나왔다
[1] '랜덤 액세스' 백남준의 중요개념: 상호작용, 참여, 우연, 비결정성 <주역을 연상시켜 주는 개념>
1963년 첫 개인전 때 나왔던 개념인데, 쉽게 말해 '임의 접근' 보통 우리가 책을 읽거나 TV를 볼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보잖아? 근데 백남준은 그런 고정된 순서나 규범을 깨려 했다 / '랜덤 액세스'는 바로 거기서 오는 거야. 관객이 작품에 '직접' 참여해서, '우연'이나 '비결정성'을 통해 자기만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
1963년에 내놓은 작품 중에 진짜 이름이 <랜덤 액세스>인 것도 있다.. 벽에 오디오 테이프를 막 펼쳐놓고 관객들이 직접 마그네틱 헤드로 원하는 곳을 문질러서 소리를 듣게 한 것이다. 이게 바로 관객이 '임의로 접근'해서 '랜덤 하게'소리를 만들어내는 경험인 것이다 /
백남준은 이런 랜덤 액세스 정신을 TV 실험에도 가져온 거야. 선형적으로 정해진 방송이 아니라, TV 매체를 가지고 관객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거나, 우연적인 이미지를 만나게 하거나, 규범화된 개념을 탈피하는 실험을 하다 / 결국 '랜덤 액세스'는 백남준 예술의 핵심 철학 중 하나로, 상호작용, 참여, 우연, 비결정성을 통해 미디어와 예술을 새롭게 경험하게 하려고 시도하다 / 책도 랜덤 액세스의 가장 오래된 형태라고 언급하다

[2] '랜덤 액세스' 개념은 컴퓨터의 '랜덤 액세스 메모리(RAM)'에서 따온 것이다 / 컴퓨터에서 RAM은 뭐냐면, 정보를 순서대로 읽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어디든지' 바로 접근해서 읽거나 쓸 수 있는 기억 장치다. 그래서 엄청 빠르고 유연하게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
백남준은 바로 이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접근하는' 특성에 주목한 거야. 당시 미디어라고 하면 대부분 '선형적'이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봐야 하고, 방송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순서대로 나왔다 / 이런 '선형성'을 깨려 했다. 관객이 수동적으로 주어진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임의로' 예술 작품과 상호작용하면서 자기만의 경험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
대표적인 예가 아까 말했던 1963년 작품 <랜덤 액세스>야. 벽에 오디오 테이프를 붙여놓고 관객들이 직접 마그네틱 헤드를 가지고 원하는 부분에 갖다 대서 소리를 듣게 했다. 이건 마치 컴퓨터 RAM처럼, 저장된 데이터(소리)에 '임의로', '랜덤 하게'접근하는 경험을 현실 공간에서 구현한 거라고 볼 수 있다 /
그러니까 RAM은 단순한 기술 용어가 아니라, '비선형적인 접근', '관객의 참여와 주체성', '우연과 비결정성'을 상징하는 예술 철학의 핵심 개념이었던 것이다. 기술의 원리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해서 새로운 경험 방식을 제시하다.
[3] <랜덤 액세스 비선형 방식 순서가 뒤죽박죽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방식>
1. 비선형적 서사의 가능성 2. 인터랙티브 아트의 발전 3.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지평 4. 예술과 기술 융합 가속화 5. 관객이 '참여'하고 '우연'을 경험하며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
1. 비선형적 서사의 가능성 열림: 예전에는 영화나 비디오처럼 정해진 시간 순서대로만 감상할 수 있다. 근데 RAM처럼 '임의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예술가들은 관객이 작품의 특정 부분으로 바로 이동하거나, 순서를 바꿔서 보거나, 자기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 이게 바로 '비선형적 서사'의 시작이다 / 마치 게임처럼,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
2. 인터랙티브 아트의 발전: RAM의 즉각적인 접근성은 관객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했어. 관객이 작품에 어떤 행동을 하면, 작품이 즉시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아트'가 등장하고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주다. 센서나 카메라 같은 기술과 결합해서, 관객의 움직임이나 소리에 따라 영상이나 소리가 변하는 작품이 많이 나왔다. 이건 관객을 단순히 보는 사람에서 작품 일부로 끌어들인 혁신적인 변화다. //
3.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지평: RAM 기술은 비디오 아트나 디지털 아트 같은 미디어 아트 분야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어. 영상을 편집하거나,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거나, 복잡한 데이터에 기반한 작품을 만드는 게 훨씬 쉬워지고 다양해진 것이다. 빠른 데이터 처리 속도 덕분에 실시간으로 변하는 데이터를 시각화하거나, 복잡한 알고리즘을 이용한 생성 예술도 가능해졌다. //
4. 예술과 기술 융합(요즘 AI 기술을 활용한 예술) 가속화: 결정적으로 RAM과 같은 디지털 기술은 예술가들이 과학기술과 협력하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었어. 예전에는 상상만 했던 것들을 기술 덕분에 실제로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예술의 영역이 훨씬 확장된 거지. 요즘 AI 기술을 활용한 예술처럼 말이다.
5 요약하면, RAM 기술은 예술가들에게 '고정된 순서'나 '일방적인 전달'에서 벗어나, 관객이 '참여'하고 '우연'을 경험하며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중요한 기술적 영감이자 도구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게 현대 예술과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음악가 미술가 동양과 서양 뒤죽박죽> 융합적 사고 통섭의 세계가 열리다

<라우센버그의 '화이트 페인팅'-존 케이지의 '침묵(4분 33초)'-백남준의 '영화를 위한 선'은 맥락을 같이하는 작품> 백남준은 1962-1964년에 작업한 <영화를 위한 선>에서 케이지의 침묵을 직접적으로 참고했다. 그는. 케이지와 머스 커닝햄을 초청하여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은 필름을 한 시간 동안 보게 했다.
이 작품은 음악과 회화, 영화, 텔레비전에서의 침묵 또는 비어있음의 다양한 물질성 및 매체성에 관한 흥미로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케이지는 백남준의 <영화를 위한 선>을 자신의 <4분 33초>, 그리고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흰< 그림(White Painting)>과 비교하며 이 작품들이 주변 환경과 맺는 다양한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 디터 다니엘스
In <Zen for Film>, from 1962-1964, Paik directly referenced Cage's silence. He invited Cage and Merce Cunningham to watch the our-long blank film. 25 This resulted in an interesting debate between Cage and Paik concerning the various forms of materiality and mediality in silence and/or emptiness in music, painting, film and television. In one statement, Cage compared Paik's <Zen for Film> with his own <4'33"> and Robert Rauschenberg's <White Paintings> and their various relationships to their surroundings: - 디터 다니엘스 https://seulsong.tistory.com/1191
라운센 버그의 무미술(이미지 없는 페인팅 White Painting)과 백남준의 무음악(혹은 무영화 이미지 없는 영화)은 통한다. 백남준은 존 케이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존 케이지 주변 환경의 성질이 영화나 회화보다 텔레비전에 훨씬 많이 담깁니다. 사실 전자의 무작위적인 움직임인 텔레비전은 그 자체가 오늘날의 환경이지요 "In 1971, Paik replied to this 1968 statement by saying, 'N. B. Dear John: The nature of the environment is much more on TV than on film or painting. In fact, TV (its random movement of electrons) IS the environment of today

[제18회 백남준포럼 (독서모임)] 위내용 아래 책에서 발췌

-일시 : 5월 24일(토) 오후 2시-5시
-도서 : 백남준 : 오래된 것, 새로운 것(작가 디터 다니엘스)
-장소 : 용산도시기억전시관세미나실 용산구 서빙고로 17(한강로 3가)
-북리더 : 김형순 오마이뉴스 기자
-참가비 : 1만 원 공식블로그
[백남준] 라우센버그, 두 사람 어떤 관계(?)
[존 케이지] 1952년 8월 29일 뉴욕 우드스탁에서 초연 [라우센버그] 1953년 뉴욕 Stable Gallery에서 전시 백남준(1932년생),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년생)에게서 많은 영감
seulso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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