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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현대철학을 깡마른 조각으로 각인

[알베르토 자코메티(A. Giacometti, 1901-1966)]전,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2017년 12월 21일부터 2018년 4월 15일까지

전시포스터

"내가 보여주 려는 건 바로 그것, 그 가벼움이다" -자코메티. 그가 만든 조각품을 보면 하도 가벼워 하늘을 날 것 같다. 그렇게 가볍다. 존재의 가벼움을 조각하다.

<삐쩍 마른 인체 조각으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 구현> “조각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일으킨 작가” -문소영(중앙선데이)기자 http://news.joins.com/article/22230043

전시장 입구

그는 자신의 삶에서 쓸데없고 부질없는 걸 매일매일 깎아내는 인간이다 그에게 '그린다'라는 건 '지우기'에 해당한다 즉 '빼기'다. 최고로 앙상한 몸만 남았다.

자코메티 작업실

[자코메티의 독창성은 빼기의 조각] “내가 작업하는 이유는 이처럼 고통스럽고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자코메티


[덜어내고 비워낸 형태에서 본질을 만나다] 일반적인 조각의 특징은 붙여나가면서 형태를 만들어 이미지를 달성하는데 반해 자코메티는 완성된 형태에서 시작하여 하나하나 떼어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작품을 완성시키는 남다른 작가만의 방식은 세상과 사물에 대한 작가만의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자코메티적 완성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른 채 많은 작품들이 허망하게 작가의 손에서 깨뜨려졌다. 그가 추구한 예술세계는 그만큼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도구로서 존재했다고 여겨진다.인간존재의 허약함과 덧없음, 소외에 기인한 내면의 고독에 초점을 맞춰 형상을 응축시킴으로써 부스러질 것 같은 현대인의 불안과 고뇌를 직관적으로 응시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다] 사물과 자연을 예술가의 감정으로 해석해 표현한 인상주의, 그리고 그 다음세대인 자코메티는 보이지 않는 가치, 즉 본질을 움직이는 실체로서 근원적인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탐색자로서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쳐냈다.


자코메티 그는 피카소도 능가하는 예술가 중의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렇게 대중적이지는 않다. 그의 조각을 실제로 보면 너무 가늘고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아슬아슬해 금방 부러질 것 같다. 그런데 거기에 역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그의 작업실을 정말 초라하고 그의 삶을 보면 아주 평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는 인간 존재의 위기 혹은 실존의 위태함과 인간의 고독한 실존 그처럼 제대로 읽어내고 탐구하고 그것을 예술로 표현한 작가는 드물다 그의 차별성과 위대함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이번에 '걸어가는 사람'이 서울에 왔는데 이 작품을 보면 그의 작품세계가 한 눈에 알게 된다 아니 깨닫게 된다. 일종의 득음처럼 '득미'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런데 사진으로 찍어서 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래 브레송이 찍은 자코메티 모습이 얼마나 볼품이 없는가. 그러나 그의 예술을 또한 얼마나 탁월한가.

무엇보다 이 전시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작가가 죽기 바로 직전 작업한 가장 마지막 작품인 로타르 흉상과 작가의 상징적인 작품 “걸어가는 사람”의 유일무이한 원본 석고상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는 점이다.

“걸어가는 사람”은 사람 실물 크기의 작품으로 자코메티 청동 작품 중에서 가장 매력 있고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경매 중 가장 비싼 금액을 기록하였다.

자코메티와 그의 아내 아네트 1951

자코메티와 그의 아내 아네트 그의 모델이기도 했다. Photo: Ernest Scheidegger

작업실에  앉아있는 아네트 캔버스에 유화 92*73cm 1960년경


그의 모델 중에는 일본인도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무대를 자코메티가 맡다 2명의 천재가 만들어낸 이런 멋진 협업이 있었다니 경이롭다.


두 작가는 덧없음의 부조리라는 미학이라는 점에서 완벽하게 통한다.  고도를 기다리면서

1951년 자코메티 절친인 피카소와 의절 그럴 만하다. 자코메티가 피카소보다 더 위대한 천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만을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춰준다.

그는 이토록 절박하게 무엇을 이겨내려 했는가? - 장 주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이자 조각가로서 모더니즘 정신의 정수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또한 그가 남긴 작품들은 현대미술사에서 손꼽히는 불후의 명작으로 매우 유명하다.


자코메티는 20세기 현대미술의 주인공 중 한 사람으로서 전후 현대미술과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예술가 중의 예술가”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초기 시절부터, 말기의 작품 120여 점 이상을 조명하는데, 그의 고향 스위스 스탐파에 있는 그의 아버지 작업실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마지막 기간(1960-1965) 동안의 그의 예술적 성취 과정을 모두 보여준다.


자코메티, 쓰러질 것 같은 인간의 허약함이 주는 낯선(뜻밖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다(인간의 허약함 내 조각과 유사하다 -자코메티) 그것은 또한 작가의 치열한 존재에 대한 물음과 삶의 부조리에 대한 고민 등을 담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로타르 좌상은 작가가 평생을 통해 깨달은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이 녹여져 있으며 마치 작가 자신을 빚어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치 죽기 전 해탈한 구도자의 면모가 보여지는 듯하다.


인간존재의 의미와 (연민), 그리고 비장한 존엄성까지 한눈에 보여주는 “로타르 좌상”과 “걸어가는 사람” 이 두 작품 모두 작가의 위대한 통찰이 느껴지는 20세기 최고의 걸작이다.


이번 전시는 조각 작품 외에 자코메티 재단의 훌륭한 컬렉션의 일부로서 인물 드로잉, 페인팅, 사진, 원고 및 기타 보관 자료와 함께 보이며 널리 알려진 자코메티 작품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다양하게 전시되는 이번 주요 작품들은 작가의 결정적인 시기에 모색한 여러 가지 탐색을 보여준다. 또한 자코메티가 1926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머무르며 작업했던 약 7평 정도의 작업실 공간을 재구성하여 자코메티의 작업세계와 그의 삶의 철학 또한 엿볼 수 있다.


이 전시 특징 중 또 하나는 작가의 전성기, 즉 작가의 후기 활동이 더욱 강조된다. 자코메티의 명성은 1920년 이후로 형성되었고, 1960년대에 스스로 자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확립하는 예술가로서의 최고의 시기를 보냈다.​
이 시기의 주요 모델인 아내 아네트와 동생 디에고와 함께, 새로운 인물들은 그를 위하여 모델이 되어주었고, 그 모델들의 얼굴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근원적 존재에 대한 물음과 답을 이야기한다.

또한 예술로서 세상과 사회의 정신을 깨울 수 있다는 작가의 치열한 고뇌를 공감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로댕 이후 가장 위대한 조각가다. 덧없는 삶의 부조리함과 그 본질을 묻는 조각이다. 자코메티의 작품을 찍을 때 작가의 혼이 카메라 안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다 쓰러질 것 같은 인간의 허약함의 가진 뜻밖의 아름다움이 표현하다.


서양예술의 원천은 분열증에서 온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이분법 때문이다 자코메티와 같은 조각가는 이런 모순과 갈들을 해결하려고 한다.


미술 감상의 최고 비법은 작품을 내 살과 섞는 것이다 그의 조각이 내 온몸으로 들어온다 자코메티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간존재의 절박성으로 살을 파내듯 피를 흘리듯 그렇게 조각작업을 하고 있다. 자코메티는 당시의 최고의 예술가 피카소를 내치다 그만큼 자신의 예수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20세기 부조리의 철학의 시대 등장한 자코메티는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와 도둑일기로 유명한 장 주네 그리고 부조리 연극의 거장인 아일랜의 사무엘 베케트가 한 몸이다.


*자코메티, 실존의 고독을 웅시하는 깊은 통찰력(Insight), 20세기를 작품으로 이렇게 잘 요약해서 만든 작품도 드물다 현대인의 부조리하고 노골적인 고독한 실존을 그대로 드러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내적 불안을 통해서 존재의 본질을 응시하다.

1950년대 자코메티 작업실

[1] 실존주의는 행동 행위 예술철학 담론 등 삶의 방식을 통해 실현되고, 1950년대 대서양 양안의 문화·반문화 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비트세대는 불온적 태도와 언어를 구사하며 당시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부르주아적 삶의 방식에 반발하는 움직임의 첫 시작을 알렸다.


전시장 홍보판

[2] 뒤이어 1960년대의 히피 운동은 이전 세대의 비관주의에 반발하며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비트와 히피 두 세대 모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사용했다.

[3] 프랑스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자면, 자코메티는 실존주의가 정의하고, 인도하고, 표현하고자 시도했던 인간의 상태를 실존주의 그 자체보다 잘 표현한 예술가였다.

[4] 그의 조각품은 인류의 기념할 만하거나 영웅적인 면모에 주목하거나, 인생의 행복이나 기쁨 풍요로움을 표현하지 않는다. 실상은 그 정반대이다. 그의 작품은 때로는 인간의 신체와 얼굴과 영혼의 퇴화가 새로운 형태의 그로테스크와 동일시될 수 있는 부조리(absurdity)한 분위기 속에서 비관주의로 점철된 인간상을 보여준다.

[5] 자코메티를 둘러싼 1950년대에는 재즈의 대중화나 프랑스 문학 및 영화 분야의 누벨바그운동, 사뮈엘 베케트와 잭 케루악의 명문, 그리고 ‘부조리’를 문화적 수준까지 끌어올린 예술가들의 등장에 비견할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 출현했다.

[6] 활동 초기 자코메티는 초현실주의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인주의의 길에 접어든다. 그는 기존의 정통 신조와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당대 세대를 사로잡았던 비관주의 부조리 비극성 공허함 무의미함 그로테스크함과 같은 감성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해 냈다.

[7] 1950년대에는 자코메티나 사르트르, 카뮈와 대조적으로 인간의 노력 및 의지에 따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인간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 이들도 등장한다. 기 드보르를 필두로 한 문자주의인터내셔널, 코브라 그룹, 콩스탕 뉘베니, 국제상황주의, 독립그룹의 구성원들이 이에 해당한다.

[8] 1950년대 후반부터 유럽에는 창조성과 반항성, 인류에 대한 믿음, 진보와 성장에 대한 자신감, 미(美)와 열정의 추구를 강조하는 메시지가 전파되기 시작했고, 이런 문화와 사르트르, 자코메티, 실존주의자들 간의 대조적 면모는 1960년대에 들어 보다 극명히 부각된다. 그러나 자코메티의 작품은 흐름의 변화와 무관하게 여전히 현대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