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위해서 예술을 한다" 잔-클로드&크리스토
대지 미술은 무엇보다 그 스케일에서 관객을 압도한다. 예술이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을 상상하는 것. 불가능한 것을 도전하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다.
무소유미술가의 상징인 크리스트와 잔 클로드 참으로 두 사람은 아름답고 경이롭다.
관련 사이트 https://seulsong.tistory.com/1055
'포장된 독일 의사당' 라이히슈타크(Reichstag)에서 잔-클로드(Jeanne-Claude)와 크리스토(Christo), 1995까지 잔클로드 및 크리스토 23년 동안 협업했다.
<국회 의사당 건물>
독일 의사당 건물이 베를린이 된 1995 년에 싸여 . 당시 연방 하원 의장인 리타 쥐스무타(Rita Süssmuth)의 지원으로 Christos는 독일 연방 하원의원 들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662명의 모든 의원에게 편지로 설명을 썼다. 그들은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전화와 협상을 했다. 베일의 가장 저명한 반대자는 헬무트 콜(Helmut Kohl)과 볼프캉 쇼이블레(Wolfgang Schäuble) 이었다.
그들은 독일 의회가 그것을 은폐함으로써 재평가될 필요가 없다고 확신했고 그 제안이 모욕임을 발견했다. 1994년 2월 25일, 길고 때로는 매우 감정적인 토론 후에 독일 연방의회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투표를 통해 찬성 292표(반대 223, 기권 9표, 무효 1표)로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내화 이상 100,000 규모의 폴리 프로필렌 직물은 피복과 알루미늄 층 및 로프 15,600m가 요청되다. 나중에 가려진 나무 , The Gates 및 The Floating Piers의 경우 와 마찬가지로 직물은 Münsterland 지역의 Emsdetten에 있는 Schilgen 회사에서 만들었다. 제조. 직물 길이의 큰 부분은 회사의 "Bieri-Zeltaplan"함께 수놓다. Taucha의 근처 라이프치히. 포장은 1995년 6월 17일에 시작하여 6월 24일에 완료되었다. 90명의 전문 등반가와 많은 다른 도우미들이 어셈블리에 참여했다. 해체는 7월 7일에 이루어졌다. 캠페인 기간 동안 500만 명의 방문객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한편 크리스토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예술가 백남준(1932~2006년)과도 각별한 인연을 쌓았다. 크리스토가 백남준에게 빌린 피아노를 흰 천으로 휘감은 채 돌려주자 백남준은 투덜거리며 그 천을 걷었는데, 훗날 “두 거장의 젊은 시절 초기 협업 작품이니 돈으로 따지자면 수백만 달러가 됐을 것”이라며 농담 섞어 말했다고 한다. 크리스토는 앞서 백남준의 장례식에서 연사로 서 이 일화를 언급한 바 있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Z3UY6ESK6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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