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개인전] ‘철학의 부재’ 리서울 갤러리(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45 메세나폴리스몰 178호) ·전시기간: 2020년 10월 20일(화)~31일(토) ·관람시간: 오전 11시- 오후 7시(작성 중)
<삶이란 결국 밥으로 시작해서 꿈틀거리는 춤으로 끝난다> 김영미 작가는 어떤 고뇌도 축제로 바꾸는 놀라운 삶의 기술이 있다. 이번에는 특별히 BTS 열렬한 '아미'로 세계 호령하는 한국 젊은 일곱 스타 그리다.
어딘지 모르게 표현주의 풍이다. 생의 고뇌와 일상의 고단함을 극복하는 몸부림으로서 회화다. 연로한 어머니 모시며 살아낸 삶의 전사로서의 처연함이 애달프게 보인다. 그것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선과 색이 되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된다. 그런 추동력이 화폭 속에서 춤이 되고 노래가 되고 결국 그림이 된다. 날마다 마주치는 심연 같은 고통과 좌절과 절망도 그러나 한판 그림 축제로 바꾼다. 죽을 판 살 판에서 그 어떤 난관도 엎어치기 한다. BTS 노래로 들려주는 메시지와 삶의 태도와 닮았다.
심연 같은 고뇌도, 한판 그림 축제로
올래 코로나로 해외전시 3곳 취소되고, 작가로서는 우울하다. 마음도 달래며 관객도 만나는 전시다.
그녀의 창작 동기는 남에게 말하기도 거북한 경험을 털어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라 다름 아니다. 그래서 그림 화복에 절규가 몸의 떨림 그것이 화폭 속에 몸서리치는 모습이 그러나 역동적 리듬감 승화되어 관개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그녀의 기술적인 접근보다 온몸으로 그린다. 붓이 아니라 손으로 그린다. 손의 감각으로 터치로 그린다. 그녀의 작품은 여러 개의 레이어 수없이 포개진다. 그래서 운동성과 함께 입체성이 난다. 회화의 본질인 평면성보다는 그것을 지우기 위해서 그리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이 세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가적 본능적 몸짓이다.
“필선에 한 가득 차 있는 인체는 비록 한 사람을 그려낸 작품이지만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생생한 운동감의 회화이자 시각적 테크노 바디로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도록 제작한다” -작가의 말
김 작가는 작년 백남준 런던 회고전과 함께 열린 런던 영상축제에 동아시아 영화제(집행위원장 전혜정, 10월 24일~11월 3일)의 기획전에 참가해 딸림 행사에 노인의 신체적 변화 차별 등의 문제를 담은 <할머니의 점심> 영상 작품도 출품했다.
이 행사는 2019년 10월 26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테이트 모던 영화관 스타 시네마에서 열리는 필름 앤 아트(Film and Art) 부문 상영 행사에 선보였다. 한국의 이이남 작가와 함께 참가해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이 8,27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렸던 37회 2020 부산 국제 단편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 올랐다.
김영미 / KIM Young-Mi 홍익대 대학원(MFA) 원광대학교 학부(BFA) 공부했다. 최근 개인전 2020 룩셈부르크 Artkoco 개인전, 룩셈부르크 2020 Onyx Gallery, Englewood Cliffs, New Jersey, NY, 미국 2019 상하이 윤 아르테 개인전, 중국 2018 Space 766 Gallery, Blooklyn New York, 미국 외 22회 최근 공동 초대전으로: Tate Modern Museum, Painter & Mom 미디어 초대, 런던 개인 전시로 Never Ending Stories 전, 뉴욕 JSA gallery, New York, 미국 / 뉴욕 art mora 갤러리 초대전, 뉴욕, 미국 / Voyage, L, Concept Gallery 파리, 프랑스 외 다수
수 상:1991 대한민국 미술대전 외 다수 그녀의 작품 소장 :상하이 장가항 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외교통상부, 베를린 한국대사관, 이외 다수 강의 경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가톨릭의대, 한서대학교 강사 역임 현재: 룩셈부르크 아르코 전속작가
“완벽한 인간을 그리는 작업은 그래서 내게는 불완전한 이상이다. 따라서 완전한 상상은 그림 위에 뭉개지고 덧칠되어 켜켜이 쌓인 부조리한 인체들이다. …그리고 지우고,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하며 부조리한 이중성을 넓혀가는 중이다" -작가의 말
이번 전시에 30여 점의 출품된다. 동물을 의인화하는 작업이 많다. 뭉개지고 해체되는 인체 묘사가 그녀의 특징이다. 김 작가는 국내보다 영국, 유럽, 중국, 미국 등 해외 컬렉터에게도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인간 실존과 사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한다. 그런 사유의 탐색의 과정이고 작품에 스며 있다 그는 때로는 우울하고, 암담한 현실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으로 예리하게 본다 그럼에도 그런 현실을 넘어서는 극복의 끈을 놓지 않는다. 희망의 눈길을 보낸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작가는 어떤 제목을 붙일까 고민이 많았다. 신자유주의 시대 역시 철학의 부재를 보다. BTS는 바로 그런 부분을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정신적 깃발처럼 높이 쳐들고 있다.
부조리한 코로나 시대 해외전시가 막혀 우울하기도 하지만 그런 작은 돌파구로 이번에 전시 기획 그녀의 그림은 때로 어둡고 슬프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만의 특유의 위트와 해학이 그런 분위기가 뒤바꾼다. 관객들이 위로와 재미를 주려 한다. 현대의 우화를 무한한 세계를 펼칠 수 있는 화폭에 펼쳐진다. 짭짤한 소금 같은 위트와 유머 담아 이야기보따리로 푼다.
작가의 고뇌와 작업의 행복이 뒤섞여 한판 그림이 되다 '죽음마저 축제로 껴안는 사람들'을 그리다
김 영미는 외길 30년간 그림만 그렸다. 그녀는 무엇보다 사람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인물화가다. 그럼 누구를 그리는가? 최근작 '우울을 이기는 사람들', '상처 받는 사람들', '기쁨을 알게 된 사람들', '희망적인 사람들' 등에서 보듯 그녀는 '죽음과 같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 삶의 고통을 축제로 바꾸는 사람들'을 그리다.
그림의 어원을 찾아보면 '죽음의 그림자'라는 뜻이다. 즉 죽은 혼을 살려내는 것이 그림이다. 그런 면에서 그림이란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죽음과 같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삶의 축제를 살려내듯 그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물화가 김영미는 회화의 본래 정신(essence)에 충실하려 한다.
작가는 성장기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한국의 가부장적 악습으로 큰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외아들인 오빠가 중2 때 심장병으로 죽었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집안 혈통(DNA)을 이을 상속자를 잃었다고 밖으로 나돌았고 온 가족은 이런 아버지에 상처를 입었다.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젊은 대리모(씨받이)까지 집안에 들여와야 했으니 얼마나 참담했겠는가.
작가는 이런 슬픈 가족사를 극복하기 위해 그림에만 정진했다. 작가의 가족사는 어찌 보면 한국 근현대사와도 꽤 닮았다. 작가는 말한다. "내 작품은 부조리한 인간 내면의 처절함을 그린 것이다. 내 해체된 가족사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을 그린 것이다 그려야 한다.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그린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 삶에 대한 절망보다 열정이 더 컸다. 전화위복이라고 그녀는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와 삶의 무게를 걷어내면서 더 큰 힘과 에너지를 얻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색채도 밝아진다. 경쾌한 율동감으로 넘치는 춤을 보는 것 같다
왜 그리냐? 고 물으니 그리는 게 너무 재미있단다. 그림에 몰입하면 세상만사 시름과 걱정을 다 잊어버린단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지극히 행복하단다. 그래서 일상이 날마다 소풍이 된다. 그래선지 그림 속 인물들이 하늘을 붕붕 날아다닌다.
그러면 그녀는 어떻게 그리는가? 물론 스케치를 하고 그린다. 모델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드로잉을 연필로도 하지만 손으로 그린다. 그러다가 최근 5년 전부터는 회화에도 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개발한 이것이 바로 '핑거페인팅(finger painting)'이다. 그래서 그녀의 종이 위에 회화는 손맛이 난다.
종이에 작가의 살결이 격하게 부딪치면서 어떤 친밀한 몸의 접촉이 흔적을 남기면서 화폭에 생동감이 넘친다. 고흐의 그림처럼 꿈틀거린다. 작가라는 사람과 종이라는 사물(오브제)이 친밀하게 정을 나누며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동양미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물아일체'가 이뤄진다.
그녀가 겪은 삶의 우여곡절이 그림에서는 리듬과 선율이 된다. 일상의 경험한 희로애락이 그림 속에서 시가 되고 음악이 된다. 그러니 이런 인물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라도 꾸물거리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절박한 몸짓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작가는 로버트 슈만(Robert Schumann)의 "예술가의 사명은 인간의 내면의 어두운 곳에 불을 비치는 것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렇듯 자신의 내면에 슬픔 고뇌 번민을 그리기를 통해 다스리고 정화시킨다. 속에 담아둔 상처와 고통을 씻어내듯 작업을 통한 역설적으로 치유를 한다
그녀의 랜덤 한 손 페인팅은 제멋대로 화풍이다. 한국인의 그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기질이 보인다. 매우 다이내믹하다. 그런 에너지가 온몸에서 나온다. 한국에서 이걸 '신명'이라고 한다. 그런 기질을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거친 강인함도 보인다.
그의 화풍은 장 뒤뷔페의 '아르 브뤼(Art Brut)'가 독일의 표현주의 화풍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거칠어 보이는 붓질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인다. 거기에는 작가가 태어난 군산의 파도소리와 자란 김제평야의 드넓은 바람의 숨결이 담겨 있다. 그의 터치는 한국어에 '어루만진다' 말을 떠올린다. 이 뉘앙스에는 작업을 통한 치유(clinic)의 의미도 있다.
물론 그는 작품을 할 때 서양화에서 쓰는 재료를 사용하지만 정서는 매우 한국적이다. 대지적 모성애에서 유발된 따뜻함과 강인한 삶의 의지가 약동한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그릴 수 없는 독특한 화풍을 연출하듯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다. 처절한 고립감과 겨울철 냉기 어린 작업실에서 언 손을 녹여내며 자산과 싸워 이겨낸 자의 강인한 의지도 보인다.
작가는 인간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와 철학에도 관심이 많다. 세계시민으로 살다 보니 시대의 흐름과 문명의 방향에도 관심이 높다. 돈이 최고로 숭배되는 세상에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문명 비평적이다 그녀는 누구 못지않게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이 낳은 문명의 타락과 인류의 위기에 대해서 집요할 정도로 예리하고 날카롭게 비평한다.
사람들이 도가 넘는 경쟁과 분주함 속에서 살다 보면 제정신으로 사는 사람이 적다. 정신분열자가 되기 쉽다. 그래서 이들에게 경고로 인간을 동물로 비유해 희화한다. 그런 그림이 바로 '동물 우화'이다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 거기에 함께 도사리고 있다. 하늘로부터 받은 천진함과 선량함으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는 사회적 약지와의 연대감도 높다. 집단지성 시대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이런 시대의 어려움 헤쳐 나가려고 한다. 그런 점은 그녀의 집단 춤 즉 군무의 형식으로 표현된다. 도시 속에 쳇바퀴처럼 바쁘고 살아가는 사람의 힘든 일상에 기와 활력을 넣어주려 한다. 사람들에게 자아를 최소화하고 타자를 최대화하는 마음의 여유를 심어주려 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가란 무엇보다 시대의 지성인으로 50년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본다. 나름 작가의 사회적 책임도 깊이 되새기고 있다. 그녀는 내년에도 해외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잠시도 손을 놓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다. 글 솜씨도 그림 못지않게 훌륭하다.
[인터뷰] <나는 누구인가? 취향은 뭔가?>
1, BTS 열렬한 ‘아미’. 이것 때문에 최근 BBC 기사화 왜 BTS 좋아하나?
BTS는 음악에서 주는 메시지와 그들의 삶이 거의 동일하고 철학도 굉장히 깊다. 그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음악에서 보여주는 뮤직비디오도 한 편의 드라마 같기도 하고 그 안에 숨겨진 코드의 회화적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 작가 생활 몇 년인가? 대학시절을 제외한 34년 정도 된거 같다
3,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나? 그리고 언제 작가 결심했나?
작가가 되기로 한건 초등학교 시절이다. 그리고 가장 큰 보람은 내 그림을 보고 좋아해 주시는 개인 컬렉터들이다. 그들은 내 작품을 소유하고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진짜 마니아들이기에....
4, 영화도 좋아하나? 영화 굉장히 좋아한다, 1주일에 2-3번 우리 동네 지금은 메가박스로 바뀌었지만 저녁 늦은 시간 작품 다 마치고 미리 예약해 두고 그 영화를 즐겼다. 어떤 때는 혼자서 보는 경우도 있었다. 광이다.
5, 자신을 3가지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오픈마인드, 열정,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
6, 고야 풍이 느껴진다. 좋아하는 작가? 독일의 표현주의 작가들과, 프랜시스 베이컨, 루치안 프로이트 등
7, 독서취향이나 감동적인 책? 감동 받은 책은 너무 많지만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드로잉 집에 나오는 글과 그림이다. 인간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8 작년 런던 테이트모던 백남준 전 때 관련 행사로 영상축제 다녀왔다?
작년 런던에서의 시간은 꿈만 같았다. 일단 날씨가 너무 좋았고 매일같이 그림을 볼 수 있는 런던의 상업 화랑과 뮤지엄 등 걸어서 모든 곳이 그림과 연결되는 것이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그들은 전시를 알고 그림을 다룰 줄 아는 진짜 문화적인 심성이 깊고 단단해 보였다. 그들의 문화성을 보며 다시금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숭고함이 어떤 것인가를 느꼈다. 특히 영화제 첫날 레드카펫 밟으며 걸어 들어가 최고의 앞자리에 앉아 무대 위로 불려 올라가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동시통역자와 함께 한국인으로서 내 작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예술의 가치에 대한 설명을 하는 순가 참으로 행복했다.
예술은 보편적임을 넓고 편리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된다. 백 선생의 작품을 개괄적으로 정리해 놓아 룸마다 그 시대를 표방한 세션을 준비해 관람자들로부터 이 분에 대한 작품을 이해하는 밀도가 굉장히 깊어 인상적이었다. 그분을 통해 과거는 물론이고 현대인의 삶에 나타난 과학과 예술의 병합을 보는 거 같은 시공을 초월한 재발견을 주는 거 같았다. 모두 동의하고 이 천재에 대해 경의를 표현하는 거 같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이 분에 대해 아직도 저평가된 사실이 후배로서 진정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이탈리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소유하고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가졌다면 우리는 백남준을 가진 셈이다.
<김 작가에 전시란?>
1, 지금까지 몇 번 전시?
지금까지 온오프라인 포함 34번은 한 거 같다. 오프라인만 30여 회다.
2, 지금까지 많은 행사 중 기억나는 사건이나 전시?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국에 왔던 부르델 전과 예전 워커힐 미술관에서 한 케테 콜비츠 전이 기억에 나는다. 그때 젊은 시절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지금도 그 당시 앓고 있던 것 대한 갈증을 해결해준 충격적 전시였다. 스탕달이 펙트를 경험한 전시였다.
3, 최고의 즐거움 주는 사건 최고의 괴로움을 주는 사건? 최고로 고통은 아버지의 죽음이었고, 즐거움은 외국에서 처음 전시한 독일 개인전이다. 한국문화 예술인들 김남조 선생과 문덕수 선생 등을 포함해 나는 독일 예전의 수도 통일 독일 이전 라인 강이 굽이치는 본 대학에서 1달간 전시한 경험이다. 33살이었는데 당대 유수한 지식인들과 함께 참여하여 희망을 주던 시절이었다.
4, 몇 건의 해외전시가 취소되었나? 그것 때문에 우울하다고 들었다.
3건이다. 미국의 뉴욕 뉴저지 오닉스 갤러리 전 하다가 중단 그리고 4월 말일 경 룩셈부르크 개인전, 영국의 라이트박스 뮤지엄 등 3개가 취소되었다.
<그림에 대해서?>
1,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지우고 뭉갠다. 왜?
그리고 난 이후 마르기 전에 지우고 뭉개기를 하면 인체를 해체시키는 해방감을 느낀다. 그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다. 그런 가운데 의도치 않은 작품의 해체가 일어나기에 하는 일이다. 나만의 작업에서 느끼는 해방감이다. 나와의 진정한 놀이이다. 장난감을 주고 그 장난감으로 이거 저거 만들어지는 아이들의 놀이처럼 새로운 이미지를 창안하고 창작하는 과정에 대한 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2, 사람을 동물의 우화로 그린다. 어떻게 해석?
사람이 직접적으로 인간을 그려지는 과정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을 동물로 순치시켜 그 동물을 통한 이간의 또 다른 시선을 보는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 우리는 어쩌면 모두 동물이다. 작품에 대한 새로운 변주를 의미한다. 일종의 음악적인 요소를 끌어들여 비틀어 작업하는 것이다.
3, 재료의 차별성 붓보다 몸으로 그린다. 왜?
붓보다 손으로 그리는 과정은 직접적인 소통을 의미한다. 붓은 중간에 영매처럼 한 꺼풀 씌워져 직접적인 소통을 못하지만 종이나 다른 매체에 손으로 그리는 과정은 수도자처럼 매체를 통한 직접적인 소통을 의미한다.
4, 모든 그림이 춤으로 끝나는 것 같다. 왜? 집단 군무 연상시킨다. 고구려 벽화?
정적인 움직임 없는 작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물은 별로 그리지 않는다. 사실 2-4점 정도 정물을 그리긴 했으나 내게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여하튼 인체는 살아 움직이고 뭔가 변화를 무한히 반복하는 습성이 있기에 그런 작업을 좋아하는 스타일이거니와 인체를 연구한 작가로서 무브망이 극도로 많은 작업을 지향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우리 삶과 상당히 닮아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현시대의 상황들을 가장 극적으로 대변하는 그 무엇이 있기에 작업을 하는 것이다.
5, 외국의 화풍 중 관심이 있는 분야는?
외국의 젊은 작가들이 시도하는 미디어에 대해 관심이 많다. 특히 작년 상하이 개인전에 가 상하이 큰 뮤지엄 전에서 모든 작품이 미디어로 전시를 하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작품도 그처럼 미디어까지 총괄하는 작업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과 교류하고 싶고 이 코로나 19 상황이라 못 만나지만 가끔 연락하며 지낸다. 작년 12월에 그 작가들 중 한 사람이 서울을 다녀갔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단한 스케일의 굉장한 미디어 작품이었다.
6, 그림이 랜덤하다. 무의식적 무정부적?
나는 아나키스트는 아니지만 늘 그쪽에 관심은 많다. 정부주의자 민족주의자 이런 말은 이제는 이 글로벌한 지구촌에서는 더 이상 식상하다. 무의식적을 어딘가를 여행하고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다시 새로운 역발상을 하기도 한다. 사람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삶과 인생이 어차피 변한다. 사실 그래서 지금은 없다. 지금이라고 하는 순간 시간은 이미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노마드와 아나키스트 이런 거 다 해당되는 일이다. 내 작업도 결국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BTS인지 아닌지? 그렇게 그리다가 닮은걸 빼고 어딘가에 소속되진 않는 그런 인간 따로 또 같이 만나 흩어지는 그 순간을 도모하는 작업들이다. 나는 이를 적극적으로 즐기는지 모르겠다.
7, 그림이 동영상 같다. 볼 때마다 다르게 움직인다. 디지털? 누구의 영향?
무브망이 있는 작업들을 워낙 좋아해 내 스스로도 그런 작품을 지향하고 원하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하여튼 시간은 변하고 작품도 변한다. 디지털은 여전히 변할 것이고 앞으로 이 혁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안 될 일이다. 이 꾸러미를 결국 가지고 가는 수밖에 없다. 늙었다고 언제나 아날로그로 살아야 하나? 젊은이들보다 더 혁신을 이루어야만 그들과 동등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8, 도자기 만들 듯 그린다. 손맛이 난다?
손맛은 진짜 드로잉 작업을 많이 한 사람에게 있다. 그들은 스스로 안다. 드로잉 작업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작업을 한 작가만이 그 맛을 느끼고 즐기며 작업하는 힘이라고 본다. 그래서 손을 많이 사용한 인간 특히 예술가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회화적인 작업은 제스처만으로 감지가 안 되는 이유다.
9, 회화는 평면성이 본질이다. 그런데 입체성도 살리나?
평면적인 회화에 길들여지면 안 되고 그게 재미가 없어 이토록 회화적인 작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설치나 조각 작품까지 섭렵한 것이다. 게다가 미디어의 확장까지 했으니 간단히 한 작업만을 한 작가로 보기에는 아닐 것이다. 회화의 평면성도 때로 중요하지만 자신의 작업이 더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또 다른 확장을 꿈꾸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일례로 세계적인 BTS가 이토록 수많은 청중들 그들을 사랑하는 일반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디스코 리듬만이 아니고 힙합 레게 메탈 등 모든 영역의 확장이라고 본다. 이거인 줄 알았는데 저것이고 이렇게 수많은 작업을 넓혀나가고 그들을 그것을 즐기는 소비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하는 힘이다. 이제 유행병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이미 비틀스 이상을 뛰어넘은 그들이다. <>
<고향이 나의 작업에 준 영향은?>
1, 과거 군산 바다와 김제평야가 작가에게 준 지리적 상상력?
과거 군산 김제 지리적 상상력 당연히 있다. 나는 군산에 잠시 귀향 가다시피 본가를 탈출한 아버지가 나를 대야라는 곳에서 나았다. 그리고 김제평야에서 자랐다. 끝도 없이 펼쳐진 평야지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자라서 그런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고갈은 없는 편이다. 이걸 하다 보면 이게 떠오르고 저걸 생각하면 이게 생각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다. 천재는 절대 아니지만 창의력만큼은 소진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본다.
2, 코로나 시대 모두 힘들다. 작가 더욱 그렇다 어떻게 이겨내나? 누구나 힘들게 가지만 작가들은 비대면 시대 사람들을 못 만나니 작품을 가져갈 사람들을 거의 못 보니 수입이 말이 아니다. 다른 결론으로 일을 하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다른 통로가 생겨 속을 웃었다.
3, 삶의 묘미는 전화위복에 있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나?
위기는 늘 그렇게 만든다. 가장 바보니까 처음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위기는 알고 보면 운 없게도 오지만 자신이 만든 것 같다. 일생동안 여러 번 경험해봤다.
4, 청소년기는 부친 때문에 분노했다고, 작가와 창작에 준 영향은?
부친은 늘 밖으로 돌았다. 물론 그런 가운데 엄마는 더 단단한 여인이 되었고 악바리가 되었다. 집에 씨받이도 들어왔으니 그로 인해 불화가 잦은 가족사에서 늘 불안했다. 그래서 땅에 대고 그림을 그렸다. 그게 나의 탈출구이고 밖으로 표출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면서 일찍 꿈을 꾼 것이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화가로 된 것이다.
<나의 예술철학?> 1, 예술가란 누구?
나에게 예술가란 삶이다. 그림을 안 그렸으면 아마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지도? 늘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치유하는 거 같다. 완전한 메디슨이다. 고통을 처방하는 그 이상의 의술이 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들이다. 그 순간만이 제일 행복하다. 표현은 그래서 나에게 매직이다.
2, 이번 전시 <철학의 부재>란 쉽게 설명! 신자유주의 비판인가?
신자유주의 비판은 아니고 전시 목적이 늘 무언가에 주제를 달고 하는 것 그러나 이번 전시는 철이 있는데 그 철학을 내보내 부재중이다. 전염병처럼 힘든 상황 하에 복잡하게 그림을 보거나 즐기지 말고 그냥 즐기고 보자는 뜻에서 정물 1점도 나가고 그간 의인화시킨 인간들도 출동하고 직접적인 인간 모습도 설명하고 그리고 이거 저거 철학이 부재중인 전시로 잡은 것이다. 철학이 과거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출장 중인 것으로 보면 된다.
3, 역사 이상으로 시사에도 관심이 많다. 왜?
역사와 시사는 맞물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시대 인간으로서 우리의 본모습이기도 하다. 어떻게 역사와 시사를 달리 보고 유리되게 바라보나. 내가 그 안에서 유기적으로 같이 존재하고 같이 공존하는데 오죽하면 역사를 잊은 사람은 독재자에게 이용당한다고 개·돼지로 취급하지 않던가? 매일매일 일어나면 벌어지는 게 정치이고 시사다. 들리고 보이는데 바보처럼 당할 수 없으니 늘 깨어 있는 시민이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거 같다.
4, 룩셈부르크 아르코 전속작가란?
룩셈부르크 개인전은 내가 가장 빨리 했다. 이 연결고리로 보면 된다. 그건 큰 의미는 없다.
5, 이미지 어원이 죽음을 애도한다는 뜻이라고, 작가에게 그림은 뭔가?
그림은 생명이고 희망이라고 본다. 그 희망을 따라 신기루처럼 작업한다.
<컬렉터와 그림 판매는 어느 정도?>
1, 주변에 좋은 컬렉터가 많다. 인맥이 좋다 비결은?
인맥은 다른 작가에 비해 그다지 좋지 않다, 다만 그 순간마다 누구를 만나도 최선을 다하는 습성 성격이라고 본다. 적당히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2,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호응이 좋다. 어떤 평가를 들었나?
국내 국외 그보다 국외에서 작품이 팔려나가니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물도 좋아한다. 한국인들은 자신이 아니면 남의 인체 얼굴을 집에 걸어놓지 않는다. 그러기로 말하면 루시안 프로이트나 프란시스 베이컨은 절대 작품을 팔지 못할 것이다. 참으로 우습다.
3, 국내의 국외의 차이가 있나?
국내 국외 차이가 있다, 아주 많이 전반적으로 다른 나라 서구인은 그림을 보는 것이 일상화되거나 예술가에 대한 기본 매너가 깊다. 한 우물을 파는 그들에 대한 다른 시선을 경이롭게 본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이성 상식이 경제력으로 모든 사람을 재단한다. 그게 너무나 상이하다. 따라서 여기에서 아직도 작가로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돈이 많거나 엄청난 후원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도 저도 쉽지는 않다. 그게 이 나라 현실이다.
4, 해외 소장품은 몇 점인가? 해외 소장품은 독일, 미국, 중국 등 10여 점에 이른다.
5.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산다고 생각하는가?
어렵고 힘든 시대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그런대로 해결된 듯하지만 공허하고 늘 불안전한 시간을 보낸다. 그게 우리들의 삶이다, 그래서 자살자도 많고 목표지점이 흔들린다. 이 문제는 깊은 문화 소양과 인문학적인 지식이나 사람에 대한 애정을 표피적으로만 판단해 생기는 문제다. 늘 고민하는 문제다. 나만 잘 살면 안 된다. 서로 보듬어주고 밀어주고 당겨주고 그래야 진일보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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