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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미술사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종교재판 회부된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최후의 만찬'> 규범 깨부순 틴토레토,역동적 화면 창조 -이주헌

틴토레토 I '최후만찬'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아래> 틴토레토의 '최후만찬'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티치아노와 달라지고자 한 틴토레토의 노력은 그의 개성과 맞물려 그를 매우 진취적인 화가로 만들었다. 스승 티치아노는 정연한 구성과 풍부하고 부드러운 색조가 특징이었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르네상스 고전주의 미학을 계승한 것이다.

하지만 틴토레토는 이런 고전주의적인 규범을 깨버리고 비대칭적이고 역동적인 구성과 강렬한 명암 대비, 격정적인 정서의 표출을 선호했다. 오늘날의 관객이 봐도 매우 당차고 개성적인 그림이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틴토레토를 “최초의 영화감독”이라고 평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넘친다는 것이다.

틴토레토의 혁신성을 잘 보여주는 그림의 하나가 ‘최후의 만찬’(1592∼1594)이다. 유명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1495∼1497)과 비교해 보면 틴토레토의 그림이 얼마나 튀는 그림인지 금세 알 수 있다. 다빈치의 작품은 테이블이 화면과 수평이다. 당연히 공간이 매우 정적이고 인물의 배치도 균등한 편이다. 티치아노 역시 다빈치와 유사한 형식으로 ‘최후의 만찬’을 그린 적이 있다. 그러나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은 도저히 그 선례를 찾기 어려운, 매우 혁신적인 그림이었다.

틴토레토 I '노예를 구출하는 성 마르코의 기적' 사진저작권 박용은

일단 보는 이의 시선이 예수와 제자들보다 위에 있다. 그리고 테이블은 화면과 수평이 아니라 대각선을 이루고 있고 과장된 원근법으로 인해 뒤로 갈수록 급격히 물러선다. 화면이 전체적으로 지극히 어둡고 대부분의 인물은 윤곽 부분만 밝게 빛난다. 극단적인 명암법이다. 터치도 상당히 거칠다.

당시에는 지나친 표현 과잉, 감정 과잉으로 여겨졌지만, 바로 이 개성적이고 현대적인 표현이 그의 그림을 매우 역동적인 드라마로 만들어줬다. 그 역동성은 17세기 바로크의 대가 루벤스(1577∼1640)를 거쳐 19세기의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1798∼1863)와 제리코(1791∼1824), 그리고 드 쿠닝(1904∼1997)을 비롯한 현대의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이어져 서양미술사의 중요한 조형전통이 됐다.

틴토레토 I '동물창조'

역동적인 화면의 창조자답게 틴토레토는 그림을 매우 빨리 그렸다. 이 성향 또한 매우 뜸을 들이며 천천히 그리는 스승 티치아노와 대비됐는데, 그림을 얼마나 빨리 그렸는지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1485∼1547)란 화가는 “내가 2년은 걸렸을 양의 작품을 틴토레토는 단 이틀 만에 해냈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프레스테차’(prestezza·신속하다는 뜻)가 그의 별명이 됐다. 물론 그림을 빨리 제작하다 보니 거친 터치가 그대로 드러나 그만큼 미완성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거친 붓놀림은 훗날 인상파 화가들이 적극적으로 구사하게 되는,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적 표현이었다.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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