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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미국 외면하다 대중문화 보고 새 인식

1964년 뉴욕에서 첫해 무어먼과 함께

<백남준 1964(32살)년 뉴욕 처음 갔을 때 만난 무어먼과 함께 찍은 사진 샬럿 무어먼(뉴욕 줄리아드 음대졸업)은 백남준을 유혹해서 제2회 뉴욕전위예술제에 초대했다 그녀는 백남준의 독일에서 혁혁한 전위예술 활동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자신이 주관하는 축제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뉴욕 케네디 공항에 백남준을 직접 마중 나갔다. 자신의 예술 패로 만들기 위해서. 두 사람은 평생 코드가 너무 잘 맞는 환상적인 예술파트너로 활동했다. 백남준이 한 살 위 그리고 아베와 함께 만든 전자로봇 K456을 자신의 아들인 양 늘 가지고 다녔다 사실 백남준도 대단한 작가였지만 무어먼은 백남준보다 더 한 쉬 위였다>

오른쪽에 3잔의 사진은 1965년에 찍은 것이다. 백남준의 life style 무소유주의자 즉 몽골로이드의 인생관 그 어떤 소유에 쌓아두지 않는다. 항상 몽골 유목민처럼 산다는 것이었다. 백남준 초기 미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미국에 잠시 여행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1964년부터 미국에 머물게 된 것은 바로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유준상 선생의 지적)때문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인터넷의 전신 사이버네틱스 의 발명가 '노버트 위니'와 정보이론의 개척자 '맥루언(캐나다 학자)'을 집중 연구함으로써 미국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또한 미국이기 때문에 백남준의 비디오아틀 인정해 준 측면도 있다. 백남준이 독일에서 청각(쇤베르크의 12음법과 슈톡하우젠의 전자음악)에 끌렸다면 미국에서는 시각(TV 비디오 등 광고문화 대중매체)에 끌렸다. 내가 뉴욕에 가서 한 가지 느낀 점은 정말 미술작가 화가가 수적으로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미술대학에 우리나라처럼 많다 졸업생수가 많은 것이다. 일단 양적으로 많기에 질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