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미술은 선과 점에서 시작한다. 이우환의 그림은 선사시대 그림 연상 작품이 마치 고인돌 같다 베르사유 궁전에 고인돌이 등장하자, 초라해 보이는 베르사유 궁이 고인돌로 인해 과거의 그 빛나는 영광을 되살아오는 것 같다
서구 사고를 보면 숨 쉴 여유가 없을 정도로 합리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합리가 맞다. 너무 합리적이면 답답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탈리아 폰타나가 맞을 수도 있다. "도시의 인심이 시골에 비해 삭막하다"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지만, 서양의 조각을 보면 사실 삭막하다. 우리는 비삭막을 추구한다. 칼 안드레도 그렇지만 세계적 대가인 리처드 세라 작품을 보면 다 그렇지는 않은데 우리 눈에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영국의 곰리는 그렇게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여간 이우환 작품을 보면 작품이 좋든 나쁘든 간에 삭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추신>
<베르사유 공간에서 돌과 쇠라는 최소의 물질과 최소의 작가 개입으로, 서양의 최고 건축술과 세련된 미와 위엄을 자랑하는 서양문명사의 대표건물을 완전히 압도하다> 지구라는 공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지도를 그릴 것인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려낸 이우환의 설치와 회화양식 즉 관계미학과 조응미학은 전 세계 지성계를 설득할 만한 요소가 분명히 있다. 돌과 쇠 즉 자연과 문명의 배치를 통해 울림을 만들어 내고 그런 음악적이고 시간적 요소는 그의 장소적이고 시각적 상상력과 만나면서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
<자연을 능수능란하게 잘 다룰 줄 아는 작가 이우환, 서양인들은 자연을 이렇게 편안하게 놓지도 못하고 가지고 놀지도 못한다> Lee Ufan with Relatum—Holzwege II (2000) Situation Kunst Foundation, Haus Weitmar Park, Bochum, Germany Photo: Silke von Berswordt-Wallrabe, courtesy Silke von Berswordt
"타자와의 관계는 분리를 지향하지 않는다. 이 관계는 총체성의 틀 안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타자와의 관계는 자아와 타자를 융합하는 총체성을 실현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얼굴과 얼굴로 만나는 위상은 주관성을 소멸시킬 수 있고, 그것에 대한 숙고만으로도 자아와 타자를 결합시킨다는 보편적 진리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다" -이우환 *타자를 결코 지배하지 말고 각자의 고유한 특성 속에 그대로 둘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타자를 최소한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받아들이고 비위계적이고 개방적인 만남을 실현할 것을 요구한다.<> https://www.hancinema.net/weekender-lee-ufan-art-of-encounter-in-new-york-33984.html
"내 작품은 내가 타자와 만나고 관계 하는 장소이다. 나는 장소의 성립을 어떤 사물과 또 다른 사물 사이. 그리고 사물들과 장소 사이의 상호 개입을 통해 열리고 반응하는 공간이라는 견지에서 보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다. 그러나 장소는 고정된 위치가 아니다. 보는 사람과 개별 사물, 장소는 모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우환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작품의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종의 진동(vibration)이 창조된다. 이 진동은 예술작품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열어 놓으며 하나의 장소를 창조한다. 장소란 사건의 공간이고 사물이 이러한 현상적인 확장으로 인해 무한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우환
"나는 호흡을 조절하고 몸 안에 있는 리듬을 느끼면서 캔버스 위에 어떤 지점에 붓을 내려놓는다. 그런 다음 첫 번째 흔적에 응답하면서 자연스럽게 붓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자 한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또 다른 장소가 붓을 부른다. 바둑판에 한 수 한 수 돌을 놓는 것처럼 긴장으로 가득한 상황이 단계적으로 창조된다" -이우환
<추신> 백남준과 이우환은 '좌우'라는 너무나 편협한 사고의 경계를 확실하게 헐어버린 작가 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비인간적인 이원론이 가져온 인간을 혐오하는 냉전적 사고와 정신적 불안감과 공포감을 주는 폐해를 최소화하는데 기여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백남준 'TV 코뮌'이나 1971년 이우환 파리 비엔날레 출품작 '관계항' 거리두기 미학이나 다 그런 것이다.
이우환, 모두가 빛나는(소외 없는) 마당의 창출, 우월과 열등, 지배와 종속, 안과 밖, 중심과 주변이 없는 그래서 모두가 주인 되는 장을 창안하다. - 조원재
이우환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21세기 현대작가 답게 최소한의 개입, 최소한의 재료, 최소한의 행위를 통해서 최대한 관객이 작업에 참여하는 여지를 주고, 최대한 자연과 문명의 관계망(관계항)과 최대한 너와 나(동양과 서양)의 교감력(Communication)과 점과 선의 조응력(Correspondence)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가 플러스라는 미학을 완벽하게 구현한 셈이다. 이것은 서양미술의 막다른 골목에서 나온 미니멀리즘보다 더 깊은 곳까지 현대미술을 이끌고 간 셈이다.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을 이원론으로 본 서양의 세계관을 해체시키고, 우리시대 주변부도 없고 중심부도 없는 설치미술로 시를 쓰고 철학을 하는 예술가가 된 셈이다.
<추신> 서양의 근대주의는 곧 제국주의이자 식민주의를 낳았다 이런 근대주의를 처음으로 비판한 사람은 랭보이다. 유럽문명은 야만문명이라고 선포하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저주받은 시인이 되었지만 그의 말은 맞았다. 이런 근대주의 비판은 서양이 아니라 동양에서도 일어났고 그런 대표적 작가로는 백남준 그리고 이우환이다. 독일에도 이런 생각을 한 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요셉 보이스다. 그는 결국 샤머니즘 예술가가 된다. 프랑스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유럽은 한번도 근대인 적이 없다>는 책을 통해서 서구의 근대주의를 비판하다. 그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백남준아트센터네서 주는 백남준 국제상을 수상자였기 때문이다
이우환 <자연>의 일부인 '돌'과 <문명>의 산물인 '철판'의 대화와 조응 1) 마르스와 비너스 2) 로고스와 파토스 3) 에로스와 파나토스 조응과 관계항 맺기 이우환은 돌과 쇠로 우주만물을 그리다. 음양오행의 순환계를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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