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박찬경 -모임 Gathering》전 개최 2019. 10. 26.(토) ~ 2020. 2. 23.(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전시실에서 출품작: 영상, 사진, 병풍, 슬라이드 필름 등 총 9점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후원: ㈜현대자동차 미술언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이다. 관습적 미술제도의 그 자체에 대한 주체적 돌아보다. 여기서 모임이란 과거의 긴장되고 무거운 분위기를 주는 민중이나 군중과는 다른 캐주얼 공동체 혹은 따뜻한 연대감을 뜻한다. <작성중>
"한국적 아름다움이란 음주가무이다" -박찬경. 음주하면서 가무가 없는 것은 진짜 문제다. 타인의 가무는 보지만 직접 하지는 않는 거다. 시위를 하면서 축제가 없는 건 진짜 문제다. 그러나 지난번 촛불은 이미 이런 점을 어느 정도 완성했다. 요즘은 시위가 축제의 바다로 출렁이고 있다. 춤이 없는 시위는 무효다. 피크닉처럼 가볍고 흥겹고 재미있는 캐주얼 공동체가 돼야 한다.
<박찬경 작가의 수상경력은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평영화부문 황금곰상' 등 화려하다. 2015년 들꽃영화상 다큐멘터리 감독상 / 2014년 토론토 릴아시안 영화제 파스켄 마르티노 최우수 장편영화상 / 2014년 무주산골영화제 뉴비전상 / 2012년 제7회 에이어워즈 지성부문 / 2012년 제44회 시체스 국제영화제 노브스비전스부문 작품상 / 2011년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부문 대상 / 2011년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평영화부문 황금곰상 / 2004년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 *<작품소장> 경기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선재센터,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미국), M+ Museum of Visual Culture(홍콩), Musée d‘arts de Nantes(프랑스), Kadist Art Foundation(프랑스) / 학력 박찬경 Park Chan-kyong (1965~) 198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96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박찬경 -모임 Gathering》전 개최 2019. 10. 26.(토) ~ 2020. 2. 23.(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전시실에서 출품작: 영상, 사진, 병풍, 슬라이드 필름 등 총 9점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후원: ㈜현대자동차 박찬경은 역시 형을 닮아서 그런지 영화에서 번뜩이는 능력을 발휘하다
우리는 근대화를 한번도 스스로 해본 적이 없다. 100년간 식민시대와 그 연장인 분단시대를 살고 있다. 식민시대에는 일본 것을 빌려 썼고, 분단시대에는 미국 것을 빌려 썼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적인 것이 뭐지라고 물으면 답이 안 나온다. 과연 한국적인 것, 한국적인 상상력, 한국적인 판타지가 존재하는가? 내일 박찬경 작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박찬경 작가의 <시민의 숲> 주제가 아닌가 싶다. 사실 우리가 그나마 건질 수 있는 것은 만신(신 중의 신) 뿐이다. 박찬경 작가의 키워드 중 하나는 만신이다. 그리고 우리의 발명품 중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한글도 있지만 온돌이라는 스팀 시스템도 있다.
박찬경과 지나가다 건진 아주 짧은 인터뷰, 그 핵심 내용은 바로 근대성에 대한 문제였다. 박찬경은 근대성의 핵심은 바로 죽음에 대한 저항이라고 죽음을 수용하기보다는 죽음에 대한 반발 즉 의학적으로 치료를 통해 죽기를 거부하는 것 그리고 목표를 어떤 수단 방법을 가지리 않고 달성하려는 자세가 바로 소위 근대화의 핵심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가 '제의'라고 할 때 그것은 결국 죽음을 수용하는 것인데 근대화는 이걸 잘 하지 못한다. 우리민족은 원래 죽음을 축제로 바뀌는 천재들이었고 그런 면에서 반근대적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친근하게 봤고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태어난 본향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우리시대는 이런 걸 거부하고 있다고.
엘리아슨이 삼성 리움에서 전시할 때 작가와의 대화에서 "미술관은 국회(parliament 이 말의 어원은 parler 말하다)와 같은 곳이다. 그 이상이다. "미술관은 자신이 하고 싶은 그 어떤 말도 다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박찬경은 이런 메시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군요. 미술은 미술에 대한 대화다. 이번 전시와 관련해서 심포지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심포지엄이나 포럼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포럼이나 학술발표를 작품 속에 집어넣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정리> 박찬경, 미술 혹은 미술관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다 -미술은 미술에 대한 대화 <관습적인 미술제도, 그 자체에 대한 주체적 반성> 박찬경의 결론은 근대성이 망쳐놓은 피크닉 같은 모임의 회복 즉 축제성과 개주얼한 공동체의 회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 제의와 제전의 환희를 열망한다(First of all, he longs for the joy of rituals and festivals). <미술관 전시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으면 축제와 환희는 맛볼 수 없다>
<Section 작은 미술관>
이번 박찬경 작가 전시 모든 게시물은 작가의 몸으로 쓴 육필이다. 일종의 서예작품이다. 포퍼먼스이기도 하다. 서체가 너무 정겹고 아름답다. 요즘 이렇게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조선의 젊은 여학생들은 일제 식민시대에 서양미술에 심취해 있고 일본의 민예학자는 한국의 그림에 심취했다는 역설적 모습을 대조시키고 있다>
한복을 입은 학생들이 유럽의 19세기 살롱처럼 전시된 그림을 올려다본다. 일본의 미술사가 야나기 무네요시 정작 조선인에게는 생활용품이었던 것은 민예품이라 올려 부르면 이를 미술 작품 디스플레이한다. 식민지인 제국문화 선망할 때, 제국의 지식인은 식민지 문화를 찬양한다
<이 두 장의 사진을 제시하면 관객에게 이 사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다>
한복을 입은 학생들이 유럽의 19세기 살롱처럼 전시된 그림을 올려다본다. 일본의 미술사가 야나기 무네요시 정작 조선인에게는 생활용품이었던 것은 민예품이라 올려 부르면 이를 미술 작품 디스플레이한다. 식민지인 제국문화 선망할 때, 제국의 지식인은 식민지 문화를 찬양한다.
<이응노화백은 60년대 민중이라는 집단적인 의미로 보지 않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유로운 하나의 모임으로 봤다는 점은 상당히 앞선 생각이었다 이번 전시 제목은 여기서 왔다 바로 축제의 삶의 원형으로서의 모임을 말한다>
박찬경은 이응노 화백의 이 그림에서 이들을 집단적인 대중의 무리인 민중으로 보지 않고 마치 소풍이나 피크닉가는 사람들처럼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유로운 모임(연대)>으로 봤다는 점에서 앞선 선구자였다고 해석한다. 게다가 그것을 수묵화로 그렸다는 점이 놀랐단다. 아래 작품 원화가 아니다 복제품이다.
이번 박찬경 전시의 제목 모임은 이응노 화백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는 것이다 이응노 화백은 80년대 민중이나 군중이라는 의미(집단적인 의미 )에서 탈피해 바로 그들은 모임에 온 사람으로 봤다는 것이다. 여기 개인들이 자유롭다 하나의 모임 을 구축하고 있다. 68혁명의 자유로운 개인 들이 자유로운 연대를 그렸다고 보니 이 공부를 하다 보니 그가 어디서 어떻게 그림을 시작했는데 그림을 그린다고 집에 쫓겨나고 다 버려진 하루에 1원에 받고 그림을 그렸다 한국의 근대 중요 작가 이응노 화백이 어디에서 그림이 시작하게 되었는가 그림의 시작이 어디서 이루어지는 것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이곳은 이응노 화백이 집에서 그림을 한다고 하니까 거의 쫓겨나다시피하고 여기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박찬경 작가이 이응노 화백의 처음 그림을 그린 장소를 발굴한 것이다 1922년과 1924년 이응노 화백은 여기에 머물렀다
<작은 미술관> 박찬경은 정말 미술을 사랑하는 작가다. 그의 모든 작품은 오직 미술과 미술관에 관한 것이다. 아래 사진 작품의 제목은 바로 작은 미술관이다 이 세상에 미술관 아닌 것이 없다. 아니 옛날 뒷갈이 가장 정직한 미술관인지도 모른다 아래 사진은 작가가 인터넷에서 찾은 북한의 산신당 혹은 칠성각이다.
<미술관자료> '작은 미술관'은 개념적인 측면뿐 아니라 물리적으로 크기가 작은 미술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에 미술관이 생겨나기 전에 민간에서 미술을 체험하는 중요한 장소는 절이나 산신당이었을 것이다. 공적인 장소이면서도 사적인 기원이 모이는 이 공간들에서 그림과 조각은 개인과 공동체, 성(聖)과 속(俗)의 세계를 결속하는 중요한 매개였다. <작은 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낯선 시간대와 낯선 거리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작은 미술관>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건립 과정 영상이 포함되어 있다. 건립 당시 4명의 건설노동자가 화재로 숨졌으며, 영상에는 이들의 넋을 기리고 안전을 기원하는 굿 장면도 등장한다. 조선 시대 종친부, 일제강점기 병원, 군사정권 시대에는 정보기관으로 사용된 장소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한국의 정치사와 현대미술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미술관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작은 미술관>의 일부인 병풍들은, 미술관 미술의 관심 밖에서 전통 형식이 생존해 온 방식을 보여준다. 작가가 고물상에서 찾아낸 병풍은 오히려 현대사의 풍부한 기호들로 넘쳐난다. 작가가 “미술관에 침범한 야생덩굴”이라 칭하는 이 병풍들은 <작은 미술관>에 초대된 이응노의 병풍 <군상>과도 공명하고 있다.
박찬경 작가가 아마도 그의 기억이 많이 남는 작가는 바로 박이소가 아닌가. 그는 47세 요절한 한국의 천재작가로 불린다. 두 작가가 만나서 작품을 같이 한 기억도 있다고. 아래 작품은 과천관 전시 때 박이소 야외 설치작품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면 관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시선을 가능한 배제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아래> 2018년 과천에서 열린 박이소 <기억과 기록>전 전시품, 박이소의 '무제' 1994년 작품
<Section 해인(바다에 도장을 찍다)>
시멘트로 만든 작품 파도나 파동을 형상화한 것 같다. 한반도 근대화 요동치는 역사의 흐름을 상징할 수도 있다. 작업의 난이도가 높아 보인다. 마치 와당을 확대해서 만든 것 같다. 격한 운동감이 느껴진다. 시멘트로 만든 작품 파도나 파동을 형상화한 것 같다. 한반도 근대화 요동치는 역사의 흐름을 상징할 수도 있다. 작업의 난이도가 높아 보인다. 마치 와당을 확대해서 만든 것 같다. 격한 운동감이 느껴진다. 작품명 '해인' 바다에 도장을 찍다. 미술이란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삶의 상처와 애환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병풍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건 뭔지 모르겠다 <미술관자료> '해인'은 불교 개념으로, '바다 해(海)'와 '도장 인(印)'을 쓴다. 이 세계의 만물이 도장으로 찍은 듯 바닷물에 뚜렷하게 비쳐 보인다는 의미라 한다. 바다는 실제로나 상징으로나 끊임없는 변화의 원천이다. 반면에 도장은 단단한 나무나 돌로 만드니 해인은 모순의 단어다. 바다를 어떻게 도장에 담을 수 있나?
오늘날 우리에게 '계속해서 흐르면서 온 세상을 반영하는 것'은,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재생하는 인터넷 매체나 빅데이터일 것이다. 작가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빅데이터’ 대신 거의 전달하는 것이 없는 '스몰 데이터’, 가볍고 빠른 데이터의 재생 대신 지나치게 육중하고 단단한 시멘트 덩어리의 바다를 통해서 동시대의 데이터 만능주의에 재치있게 답한다. 사실 시멘트는 제작과정에서 물의 증발을 통해 단단히 굳기 때문에, 물의 네거티브, 가뭄의 표현에 더 가깝다.
<Section 늦게 온 보살>
<열반에 든 석가모니가 뒤늦게 나타난 애제자에게 두 발을 내밀어 보였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 이야기를 현재화해 영화언어로 펼치다> 박찬경이 가장 잘 하는 분야는 역시 영화 혹은 예술영화 이런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 어느 영화제에서도 수상이 가능할 것 같다 박찬경은 모든 예술을 다 담을 수 있는 것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화면인 네가티브라는 점이 그 특징이다 그의 형 박찬욱을 능가할 것 같다. 부처가 돌아가실 때 그의 애 제자가 늦게 도착하지 죽지 않고 그를 기다렸다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첨단 영상기술로 기막히게 연출하다. 작품 '늦게 온 보살' 55분 <미술관자료> 장편영화에 가까운 이 영상은 대부분 흑백 네거티브로 되어있다. <늦게 온 보살>은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와 짝을 이루며 광선, 대기, 방사능, 자연 등에 대해 우리가 관습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를 뒤집어보도록 자극한다.
[줄거리] 컨테이너가 대형 화물선에 실려 한 항만으로 들어온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수많은 컨테이너 중에 하나일 뿐이다. 중년의 여성 ‘보살’이 산에 오른다. ‘가혜’는 측정기를 들고 산속의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하고 다닌다. 청년들은 그림을 그리고 물건을 만든다. 보살은 컨테이너가 놓일 곳을 찾아간다. 가혜는 산중 사찰에서 자신의 전생을 본다. 보살이 마침내 컨테이너에 뒤늦게 도착한다. 또 다른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영화의 섬세하게 조절된 톤은 그 배경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장소라는 설정과 묘하게 마찰을 일으킨다. 등장인물들은 내러티브 바깥을 떠도는 것 같으며, 서로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뒤섞이는 산, 불교 신화, 원자력 발전소, 미술 등의 이미지는 줄거리의 개연성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개연성을 잃어버린 사회를 묘사하는 것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 위대한 성인의 열반, 각자의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생겨나는 ‘모임’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근대화를 한번도 스스로 해본 적이 없다. 100년간 식민시대와 그 연장인 분단시대를 살고 있다. 식민시대에는 일본 것을 빌려 썼고, 분단시대에는 미국 것을 빌려 썼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적인 것이 뭐지라고 물으면 답이 안 나온다. 과연 한국적인 것, 한국적인 담론, 한국적인 판타지가 존재하는가? 내가 이에 대한 대답을 드디어 발견했다 바로 백남준과 김순기 1982년 인터뷰 작품 <봉주르 백남준>에서다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 답을 여러분도 알아 맞춰보기를 바란다
<Section 맨발>
<맨발> 석가모니가 열반할 때 그의 양옆에는 두 그루의 사라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석가모니의 애제자 가섭존자가 뒤늦게 도착하자 이미 열반에 든 석가모니는 제자를 향해 양발을 내밀었다. 그때 비로소 석가모니의 관에 불이 붙어 다비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불경은 전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반복되는 ‘둘'의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다. 두 그루 나무, 두 발, 두 사람, 죽음(열반)과 삶의 두 세계 등이다.
전시의 마지막에 자리한 <맨발>은 불교 고사에 은은하게 깔린 ‘둘'의 도상학의 뼈대만 남겨놓고, 모든 문화적 풍부함을 제거한다. 잎이 풍성한 나무도, 고행자의 쓸린 발도, 위대한 초인의 이미지도 없다. 이로써 작가는 곽시쌍부 설화의 감동보다는, 이러한 설화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도 전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한다. 종교적, 문학적 ’분위기‘의 생략을 통해 ’둘의 미학‘이 갖는 시원적인 단순함, 맨발을 내보이는 사건의 사소함이 설화의 메시지를 더 명료하고 현대적인 것으로 만든다.
<Section 모임>
'모임'이라는 작품 여기서는 모든 동물들이 다 울고 있다. 애도공동체가 주제(?)인가. 개미도 울고 있다. 소도 울고 있다. 쥐도 울고 있다. 닭도 울고 있다.
작가는 국내의 여러 사찰을 다니며, 쌍림열반도에 등장하는 동물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다만 동물들은 원래의 장면에서 떨어져 나와 각각 프레임에 고립되어 있다. 여기 등장하는 동물의 모습은 대부분 최근에 조성된 사찰 벽화에 있는 것으로, 전통의 방식과 현대의 만화 스타일이 섞여 있다. 전시의 다른 작품과는 대조적으로 <모임>은 단청의 화려한 장식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시 전체에 흐르는 역설과 아이러니가 <모임>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식을 취한다.
<Section 5전시실>
<5전시실>은 이 전시가 물리적으로 완결된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의 기획이며 상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전시를 보고난 후 다시 전시장 전체를 조망함으로써, 이 장소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행위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징으로 만든 북두칠성
모델은 전시장의 역사와도 관련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지어지기 전 국군기무사령부로 쓰일 당시 이 건물의 지하가 얼마나 깊은지 아무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이 소문은 국군기무사령부에서 벌어진 정치범의 감금과 취조와 고문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모델 바닥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만들어 더했다. 모델 계단을 실제 전시장 바닥에 닿을 때까지 연장해, 계단은 상징(모형)과 실제(전시장 바닥)를 연결하기도 한다.
[과거 인터뷰] <음주는 하면서 가무가 없는 게 진짜 문제다. 타인의 가무는 보지만 직접 하지는 않는 거다. 음주와 가무는 하나여야 한다>질문: 박찬경 감독이 생각하는 한국적 아름다움의 뿌리가 궁금하다.
대답: 음주 가무를 즐기는 민족성이야말로 한국적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한류도 음주 가무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하지만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그 영향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 특히 같이 떼로 어울려 벌이는 음주 가무가 거의 없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술집에 모여 모르는 사람끼리 함께 합창도 하고 그랬다. 이후 그 문화가 노래방으로 이어졌다가 이제는 완전히 미디어로 갔다. 타인의 가무는 보지만 직접 하지는 않는 거다. 음주는 하면서 가무가 없는 것이 진짜 문제다. 타인과의 교류에는 대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진정한 소통은 음주 가무 속에서 이뤄진다. 사람들이 마음껏 춤추고 노래하지 못하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나. 우리 전통 속 <심청전>이나 <춘향전>을 보라. 그곳에서는 대단한 음주 가무의 세계가 펼쳐지고 사람을 휘어잡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질문: 이후 형은 대한민국 최고 영화감독, 동생은 최고 미디어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형제가 예술을 업으로 삼고, 동시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대답: 집안 분위기가 미술에 친숙했다. 아버지가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다. 큰아버지도 예술에 조예가 깊고, 외할아버지는 서화 컬렉션이 있을 정도였다. 미술 작품을 보고 자랐고 형도 나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보통의 한국 가정이 그러하듯 장남인 형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예술가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이름난 수재였기에 더욱이 예술을 시키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일전에 형이 어느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나는 판사나 교수, 동생은 미술가로 장래가 정해져 있었다. 그게 늘 불만이었다”고 말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형도 그림을 잘 그리고 안목도 있었으니, 지금 돌아보면 짜증이 날 법하다. 반면에 나는 형만 판검사를 바라는 집안 분위기를 보면서 ‘왜? 난 바보야?’ 하며 분개했다(웃음). 출처 http://luxury.designhouse.co.kr/in_magazine/sub.html?at=view&info_id=65699
<디자인은 美가 중요하지만 예술은 醜가 중요하다 -박찬경. 150-160년 전 보들레르와 생각이 비슷하다>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의 그늘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만신> 역시 무속을 앞세워 그 뒤에 감춰진 한국 현대사를 비추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충분한 의미를 갖지만 다들 회피하는 문제에 쉽게 끌린다. 특히 급속한 서구화 속에서 벌어진 기형적인 사건들에는 더더욱 그렇다. 작가마다 정의하는 ‘아름다움’이 다르겠지만 예술은 미美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예술가는 추醜에 관심이 많다. 디자인에서는 미가 중요하지만 예술에서는 추가 더 큰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것을 배격하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윤리적인 울림을 주는 것이 내게는 아름답다. 영화 <변호인>은 참 아름답더라.
<참고><박찬경, 박찬욱의 집안분위기는 한마디로 책에 둘러싸여 살았다. 부친이 광적인 독서가였기 때문(?) 잘 몰라도 어려서 좋은 음악을 많이 듣고, 좋은 그림을 많이 보고, 책을 많이 읽으면 당연히 창조적인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형이 철학을 공부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박찬경 역시 개념적이다 그러나 전혀 관념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귀신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가 2015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입구에서 조금은 비장한 모습으로 1인 시위를 할 때가 인상적이었다. 작가로써 멋진 퍼포먼스였다. 이제는 거기서 전시를 한다>
사실 박 작가는 영화감독 박찬욱 동생으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은 종종 공동작업을 한다. 영화감독 박찬욱과 현대미술 작가 박찬경 형제는 공동작업을 할 때 ‘파킹찬스(PARKing CHANce)’라는 이름을 쓴다. ‘파킹찬스’는 장르와 매체, 이윤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하기가 서울에서 주차할 기회를 찾는 것만큼 어렵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주차할 기회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을 뜻한다.
두 사람은 2018년 두 사람이 2010년부터 약 8년 동안 작업한 작품들을 총망라한 ‘파킹찬스(PARKing CHANce) 2010-2018’ 전시를 열기도 했다. 박찬욱·박찬경이 함께 만든 최초의 영화 <파란만장>(2011) 등 6편의 중·단편 영화와 70여점의 사진을 공개했다. 출처: http://www.khan.co.kr/allthatart/art_view.html?art_id=201902201752001
[국립현대미술관(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박찬경 제목 모임(gathering) 10월 25일부터 서울관에서 <경향신문> 국립현대미술관(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작가로 미술가 박찬경(54)이 선정됐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간 매년 1인의 우리나라 중진작가를 지원하는 연례 프로젝트다. 첫해 이불을 시작으로 안규철, 김수자, 임흥순 그리고 2018년 최정화에 이어 올해 박 작가가 선정됐다. 미술가 박찬경의 작업세계는 독특하다. 서울대 서양화가를 졸업했지만 그가 선보이는 작품은 전통회화와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주로 영상, 사진,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주제는 작품만큼이나 독특하다. 한반도 분단, 전통 민간신앙, 동아시아의 근대성 등 지리, 문화, 역사적 담론을 담아낸다.
박찬경 작가 말대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모임이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유로운 모임 즉 '캐주얼한 피크닉(소풍)'이 되어야 한다. 축제가 일어나지 않는 시위는 진정성을 상실한다. 옛날 시위와 다르게 웃음꽃이 끊이지 그런 시위를 말하죠. 박찬경의 이응노 화백의 아래 작품(1895년 '군상(부분화)') 대한 재해석이 그렇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유로운 모임(공동체)으로 본다는 점이 매우 독창적이다. 무거운 분위기를 주는 민중 같은 이념적 것과는 다르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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