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_서기 2000년이 오면 4년 만 개인전] 국제갤러리 2019년 9월 3일(화) – 11월 17일(일) 1. 동차 연작 2점, 천장에 매달린 방울 조각 신작 4점, 공간 전면 벽지 작품 외 다감각적 요소로 구성 윤이상의 <영상>(1968) 연주, 드론 축구 비행, 전시 도록(10월 발간)에 수록될 에세이 저자 초청 강연 등 다채로운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운영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1l40k
K3 국제갤러리는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 중인 작가 양혜규(梁慧圭, Haegue Yang)의 《서기 2000년이 오면》전을 개최한다.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전시인 동시에 2015년 삼성미술관 리움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네 번째 국내 개인전이다.
양혜규는 흔히 연관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나 사건들을 실험적인 방법으로 읽어왔다. 이를 통해 사회적 주체, 문화, 시간이라는 개념에 다원적이고 주관적인 접근을 꾀한다. 이번 전시는 소리 나거나 움직이는 일련의 조각 연작이 다양한 감각적 요소와 조우하고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상상과 연대의 공간이다.
전시명 《서기 2000년이 오면》은 가수 민해경의 노래 <서기 2000년>(1982년 발표)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래를 향한 낭만적 희망을 담은 이 노래는 전시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관객은 이 노래가 가리키는 미래의 시점이 훌쩍 지나버린 위치에서 과거의 희망을 바라본다. 즉 2000년이라는 시간성에는 과거와 미래의 시점이 동시에 녹아 있다. 따라서 지금/여기의 우리는 노래에 담긴 당시의 정서를 더듬으며 시간을 보다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전시의 홍보 이미지로 공개된 <보물선>(1977년으로 추정)은 유년의 작가가 두 동생과 함께 그린 그림이다. 도깨비, 시조새 등 상상의 산물들이 유쾌하게 어우러진 이 크레파스 수채화 역시 상상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시공간을 원시-신화적 요소로 재현한다.
노래와 그림, 두 개의 시청각 기표는 저마다의 시간과 장소/공간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혹은 막연한 향수를 불러오면서도 시공간에 얽혀 있는 복합적인 감각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본 전시는 공간 전면을 감싼 벽지 작업, 움직임과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조각물들, 그리고 감각을 일깨우는 촉매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전시 공간에서 유기적이고도 입체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벽지 작업 <배양과 소진>(2018)은 독일의 그래픽 디자이너 마누엘 래더(Manuel Raeder)와의 협업으로 지난해 프랑스 몽펠리에 라 파나세 현대예술센터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이교도적 전승문화의 흔적과 근현대 이후 융성한 교육, 하이테크 산업 문화가 공존하는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아(Occitania) 지역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양파와 마늘, 무지개와 번개, 의료 수술 로봇, 짚풀, 방울 등 각양각색의 사물을 예측불허로 병치-배열한 작업이다. 지역적 경계를 넘어 과거와 현재, 기술과 문화, 자연과 문명이 융합된 <배양과 소진>은 이번 전시 공간에서도 문화와 민속에 대한 기존 분류법에 반하는 양혜규의 관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전시장에는 가로 9줄, 세로 10줄의 장기판이 바닥부터 벽으로 접혀 올려져 있다. 장기판 2개를 잇는 ‘중간 지대’는 빛을 반사하는 홀로그램 타공 시트지로 처리된다. 또한 안개가 걷힐 때 드러나는 격자는 조각물의 위치를 결정한다.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잇는, 다중 영역으로 상정되는 이 격자 위에는 향기 나는 짐볼이 놓이는데, 관객은 향을 담고 있는 짐볼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그 위에 앉을 수도 있다.
관객 참여를 이끌어내고 작품에 운동성을 부여하는 경향은 다차원적 공간에 위치한 <솔 르윗 동차動車>에서도 느껴진다. 전시장 중앙에 자리한 순백색의 <솔 르윗 동차動車>(2018-)는 기존의 블라인드 작업에 동적 요소가 더해져 탄생한 새로운 동차 연작이다.
작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바람, 빛, 온기 등을 전하는 감각적 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거의 같은 시기부터 공간을 양분하면서도 개방과 폐쇄의 양가적 특성을 지닌 블라인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왔다. <솔 르윗 동차動車>(2018-) 연작은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의 입방체 구조를 물리적, 개념적으로 확장시킨 <솔 르윗 뒤집기>(2015-) 연작, 그리고 조각물을 입듯이 사람이 조각 내부에 들어가 조각 자체를 움직이게 되어 있는 <의상 동차動車>(2011-) 연작이 혼종된 작업군이다.
한 면이 70 cm 입방체로 구성된 <솔 르윗 뒤집기>는 르윗의 모듈식 구조를 뒤집어 천장에 매단 블라인드 조각물인 반면 이번에 선보이는 <솔 르윗 동차動車> 두 점은 르윗의 모듈 구조를 위아래로 세우고 기립시켜 형식적 진화를 도모한다. 모체가 되는 두 연작의 개념적 맥락을 유지하되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동차를 조종하게 하였는데, 이때 2명 이상의 관객이 함께해야 가장 이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동차와 대각선상에 놓인 공간의 양 모서리에는 네 점의 <소리 나는 운동>(2019)이 천장에서부터 매달린다. 이 작업은 방울을 전면적으로 사용한 <소리 나는 조각>(2013-) 연작에서 유래한다. 매달린 조각의 원형 몸체를 손으로 회전시켜 독특한 시각적 문양과 청각적 울림을 자아내는 <소리 나는 운동>은 기존에 없던 손잡이, 인조 짚 등의 요소가 접목하다.
작품을 활성화되어 움직일 때 방울은 속이 빈 물체를 흔들거나 두드리며 침묵과 부동의 상태를 소리와 호출로 확장시킨 인류의 보편적 경험을 일깨운다. 또한 자연에서 문화로의 이행, 공예와 대량 생산으로 치환되는 문화와 산업의 결합을 형용한다. 원시 부족사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 구조에서 발현되어온 기능적, 제의적 부름의 매개체인 방울은 작품에 의식적 기억의 가치를 부여하고 신비한 울림으로 공명한다.
아울러 천장에 매달린 두 개의 스피커 묶음을 통해 흘러나오는 새소리는 공간에 청각적 입체감을 더해준다. 30분 가량의 이 음향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의 중계 영상에서 추출한 것이다.
당시 남북한의 지도자가 도보다리 끝에 함께 앉아 단둘이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먼 발치에서 포착한 영상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기자들이 누르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이 담겨 있다. 얼핏 평범한 소리처럼 들리는 이 음향은 비무장지대(라는 특이한 장소가 함의하는 인간 사회의 서사와 정치적 복선, 그리고 자연이라는 인류세를 벗어난 보편적 공간 사이의 비밀스러운 틈새를 연다.
대지의 내음과 음향, 안개와 빛으로 가득한 공간 한 켠에는 비시각적 작업인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 – 뒤라스와 윤>(2018)이 텍스트 묶음으로 비치된다. 이는 양혜규가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1914-1996)와 한국의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연대기를 주관적 관점으로 교차 편집한 것이다. 동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를 살아낸 두 인물은 양혜규의 작업에서 종종 직접적 혹은 우회적으로 참조되어왔다.
연대기는 두 인물의 생몰 전후의 역사적 상황을 시작과 끝으로 하여 펼쳐진다. 이들의 생애는 식민주의와 냉전시대 그리고 일련의 사회적 변혁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이어지고, 그에 내포된 드라마와 매혹, 그리고 이면의 고통과 소외의 정서가 도드라지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한편 이번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윤이상의 <영상>(1968) 연주, 드론 축구 비행, 그리고 전시 도록에 수록되는 두 에세이(김성원, 이진실)의 저자 초청 강연 등이 마련된다. 윤이상의 <영상>은 그가 1963년 북한 방문 당시 접한 강서대묘의 고분벽화 사신도(四神圖)에서 영감 받은 작품으로 벽화를 구성하는 상상의 동물들, 즉 현무(玄武=플루트), 청룡(靑龍=오보에), 주작(朱雀=바이올린), 백호(白虎=첼로)의 선과 색채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사중주다.
이 프로그램은 통영국제음악재단의 협조로 매달 한 차례씩, 총 3회에 걸쳐 진행된다. 또한 실제 드론 축구 경기에서 사용되는 드론이 정해진 시간마다 전시장을 비행하며 공간에 미묘한 진동과 생경한 풍경을 더할 예정이다.
이번 《서기 2000년이 오면》전은 양혜규의 독특한 어법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그는 일상적 어휘를 특유의 반복과 상호 교차, 혼성으로 뒤얽는 어법을 통해 인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의 다양한 파고와 너비를 아우른다. 이 과정에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개인적 기억을 되짚기도 혹은 관습적으로 분류되거나 의도적으로 간과된 집단적 의식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로써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과학적 합리성과 자본주의가 소거한 수공과 자연의 가치, 사변적 영역을 비롯해 야만의 역사가 폄훼한 원시 문화, 인간세계의 산물인 시스템이 소외하고 고립시킨 정치사회적 인물과 공간을 다시금 폭넓게 바라보기를 권유한다.
[작가소개]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베를린과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 중 단연 돋보이는 행보를 보여온 그는 1994년 독일로 이주 후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Städelschule)에서 마이스터슐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모교인 슈테텔슐레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8년에는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독일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볼프강 한 미술상>을 수상, 이어 10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 표창)’ 미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주요 전시 기관으로는 사우스 런던 갤러리(2019), 몽펠리에 라 파나세 현대예술센터(2018),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2018), 베를린 킨들 현대미술센터(2017), 파리 퐁피두센터(2016), 베이징 울렌스 현대미술센터(2015), 삼성미술관 리움(2015),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근현대미술관(2013), 독일 하우스 데어 쿤스트 뮌헨(2012), 미국 아스펜 미술관(2011)과 워커 아트 센터(2009) 등이 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단독으로 전시한 양혜규는 시드니 비엔날레와 리버풀 비엔날레(2018), 제12회 샤르자 비엔날레(2015), 타이베이 비엔날레(2014), 제13회 카셀 도쿠멘타(2012), 광주비엔날레(2010)와 같은 대형 국제전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다.
또한 10월 21일 열리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재개관전(현대카드)에서는 대형 설치작업인 <손잡이>를 선보이며, 연이어 11월 2일에는 마이애미 배스미술관에서 개인전 《불확실성의 원뿔 In the Cone of Uncertainty》을 개최한다. 2020년 여름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분관에서 예정된 개인전 등 양혜규의 활동은 북미와 유럽을 아우르며 폭넓게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그의 작업은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퐁피두센터 등의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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