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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백전] 최소의 선으로 최대의 공간 창출

[프레드 샌드백_오방색] 갤러리 현대 2019년 8월 28일-10월 6일

<오마이뉴스> http://omn.kr/1ko09

 

난해한가요? 이 작품을 감상하는 특별한 방법

'프레드 샌드백_오방색 전', 갤러리현대에서 10월 6일까지

www.ohmynews.com

샌드백 아카이브 https://www.fredsandbackarchive.org/

 

Fred Sandback Archive

 

www.fredsandbackarchive.org

샌드백 전 열리는 갤러리현대 앞 대형 전시홍보 포스터

갤러리현대는 내년에 50주년을 맞는다. 1970년 4월 김기창-박래현 화백의 권유로 인사동에 '현대화랑'을 열었고, 1975년 종로구 사간동으로 이사한 뒤 1995년 '갤러리현대'로 개명했다. 2008년 갤러리현대 강남으로 확장하고, 2010년 2월에는 젊은 실험적 전시공간 16번지도 개관했었다. 이제는 사간동(신관, 구관) 전시에 집중, 새로운 반세기를 다지고 있다.

50주년을 앞두고 이번에 미국 작가 '프레드 샌드백(Fred Sandback 1943-2003)_오방색' 전 개성이 넘치는 독특한 전시가 소개된다. 작가는 예일대 철학과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독일어에 능통한 조각가라니 흥미롭다. 그는 뉴욕 '브롱스 빌'에서 태어났다. 상업미술가인 부친과 어려서 여러 곳을 다닌 영향인지 그는 북극여행까지 감행한 탐험가다.

이번 샌드백 서울전이 특별한 것은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있고 또한 한국에서 그의 작품과 판화가 일부 소개되었으나 이번처럼 그의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다양하게 작품을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그래서 회고전 성격을 띤다. 게다가 '루이뷔통' 전과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등 그의 전성기 시절 작품도 고루 감상할 수 있다.

사실 그의 예술은 '최소의 것으로 최대의 것'을 표현하는 미니멀리즘 작가 계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지 그를 그런 작가만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보적 개념미술가하는 게 옳다. 그러나 관객이 그의 천재성과 독창성을 예술작품으로 보는 게 쉽지 않다. 1950년대 말 이런 작품이 발표된 건 유례가 없다. 유명 미술관에는 그의 작품이 두루 소장하는 이유다.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Two-part Cornered Construction)' 아크릴 황실, 적실 1982-2006

그의 작품을 잘 감상하려면 관객이 숨겨져 보이지 않는 것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심미안이 요구된다. 선으로 공간을 드로잉하는 작가라는 점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의 작품은 보고 있으면 마치 연주장에서 하프 연주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왜 그런가 하고 알아봤더니 그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현악기를 직접 만들어 연주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번 샌드백의 한국전 전시 제목이 '오방색'이라 흥미롭다. 갤러리 측의 설명에 의하면 샌드백 재단(Estate)은 한국에서 그의 개인전을 역사적으로 기념하고 한국 관객에게 특별한 자리의 마련하고 축하하고자 오방색(청·적·황·흑·백)이라는 제목을 붙였단다. 작가가 생존에 혹시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아 그런 제목을 붙였나 싶었다. 사실 그의 작품은 동양적이다.

그런데 내가 우연히 화담 '서경덕'의 관련 글을 읽다가 샌드백의 실(原絲) 조각이 화담의 철학 언어를 시각언어로 그대로 옮긴 것 같아 놀랐다. 16세기 한국의 사상가인 서경덕과 20세기 미국의 조각가인 샌드백은 시공을 넘어 상통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화담의 말이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샌드백의 이미지를 보니 이해가 된다. 화담의 본문을 여기 옮겨보자.

"비어있으면서 비어있지 않다.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 보이지 않는 우주의 기로 충만하다. 이는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하다. 그 ‘작용(用)’은 내적 필연과 상황의 영향에 따라 때로 응집하고 때로 분산된다. 그런 점에서 태허는 결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나 허무가 아니다." -서경덕의 태허론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 인용)

프레드 샌드백 I '무제(Untitled)' 백고무줄 1971

게다가 샌드백은 세계적인 명성을 높이고 있는 한국의 이우환 작품과도 통한다. 이우환은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공간을 연출하는 작가다. 샌드백도 역시 최소의 선으로 최대의 공간을 창출하는 조각가다. 그런 면에서 통한다. 또한, 두 작가는 개념미술적이고 미니멀리즘 측면에서도 비슷하다. 또 자연과 문명 대한 성찰과 사유가 깊다는 면에서도 같다.

샌디 백은 일반 전시장에서는 별로 중시하지 않는 벽과 벽이 만나는 코너를 중시한다. 거기에 설치하는 걸 선호한다. 구석이라는 면이 주는 입체적 그림자 효과가 있다. 거기에 풍부한 부피감을 만끽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미적 환영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공간 속에 또 하나의 공간을 열어주는 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좋다.

이제부터 샌드백의 초기 전시를 보자. 68년 예일대 미대 재학 중 독일 뒤셀도르프 '콘라드 피셔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노크했고. 69년 대학원 학위 전을 뉴욕 드완갤러리에서 선보였다. 그해 또 독일 '하우스 랑게'에서 전시도 열었다. 여기는 갤러리가 아닌 규모 있는 미술관이다. 그는 2-3일 간 침묵 속 의자가 앉아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작업을 시작하는 방식이란다.

그리고 그는 운 좋게 그해 69년 서양미술사에서 전설이 된 '하랄트 제만'이 기획한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전에도 참가했다.

당시 '베른 쿤스트할레' 관장이었던 제만은 전시에서 완성된 작품을 모아놓는 관행을 벗어나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획기적 전시를 주도했다. 작업에 있어 결과보다는 그 과정과 개념을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회화보다는 신개념의 설치, 개념, 사진, 포퍼먼스 등을 많이 소개했다. 샌드백은 그런 개념에 맞는 작가였다. 이 전시가 그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됐으리라.

갤러리현대 한옥 레스트랑에 설치한 샌드백의 '선 조각' Courtesy of Fred Sandback Estate and Gallery Hyundai

그리고 이번에 유족 측 제안으로 현대 두가헌에 야외작품으로 8월 31일까지 선보인다. 장소특정적인 작품이라고 할까.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너무 우아하고 아름답다. 황홀하게 심금을 울린다. 한옥이 가진 미니멀한 선과 샌드백의 실 조각이 주는 아련함이 돋보인다. 고풍스러운 한옥과 고아한 삼색 실색의 기막힌 앙상블이다. 그의 작품이 건축과도 잘 어울린다.

그의 이런 실 조각은 어린 시절 사내애, 계집애 구별 없이 소꿉놀이 친구들이 다양한 실뜨개 놀이를 놀던 시절을 어린 시절의 판타지와 노스탤지어를 연상케 한다.

프레드 샌드백 I '무제(Vertical Corner Piece)' 1/32인치 지름의 스피링강과 고무줄 1968

이제 그의 작품을 좀 감상해 보자. 1968년 초기작도 코너를 활용했다. 이 작품은 멀리 보면 선처럼 보이는 데 가까이 가서 보면 정사면체다. 'ㅁ'자형으로 길게 연장되어 있다. 선의 윤곽은 뚜렷하다. 좌대에 작품을 올리는 기존 방식과는 180% 다르다. 기존 전시에서 강조하는 고귀함이나 숭고함을 생략하고 작품을 바닥에 놓아 관객 위주의 눈높이에 맞췄다.

다음 작푸을 보면 아래층 전시장에서 2층까지 연결된 위 작품은 전시장 전체를 가는 삼색 실 연결한다. 난도가 높아 보이나 실제로 문제는 없어 보인다. 전시장 맨 아래에서 맨 위층까지 시공간을 통째로 소통시키는 방식이다. 큰 공간에 가는 실로 연결했음에도 전시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면서 전시공간을 압도한다. 쉬워 보이지 않은 이번 설치는 이탈리아 테크니션 팀이 와서 했단다.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Three-part construction)' 아크릴 실 3색 1986

이 작가의 또한 미덕은 재료의 독창성이다. 회화에서 쓰는 아크릴 물감이 아니라 여기 선 조각에서는 아크릴 끈을 사용한다. 물론 장소의 상황과 특성에 따라서 철사, 고무줄, 밧줄 등도 쓰인다. 설치장소에 따라 작품의 크기가 변해 '상황특정적(Situational)'이라 부른다.

이런 샌드백의 실 조각은 공간에 흐름과 울림과 리듬감을 준다는 면에서 음악적이고, 환영과 부피감을 준다는 면에서는 미술적이다. 그만큼 공감각적이다.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선이 기막히게 연결되면서 탄탄한 긴장감과 짜릿한 현기증마저 일으킨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면과 살짝 유쾌하게 달래주듯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기존의 회화나 드로잉이나 판화라는 고정된 틀을 벗어난 대칭과 비대칭을 오가는 다각형 수직 조각을 즐겨 작업했다. 작가는 이런 조각을 인간의 몸동작과 일치한다고 봤다. 1차원의 선이 있고 2차원의 물질적 실재감 그리고 3차원의 입체감도 드러내 다차원이다. 게다가 관객이 관람하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면에서 기존 조각과 다르다.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Five-part Freestanding Piece)' 아크릴 흑실 1975-2015 상황특정적

그리고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에서 강조하는 관객참여적 요소가 많다. 무엇보다 관객이 작품으로 들어가 보행이나 산책을 할 수 있게 한다. 작가는 이걸 '보행자 공간(pedestrian space)'이라고 칭한다. 작가 아카이브를 보면 이 아이디어를 1968년 친구와 함께 만들었다. 조각 공간은 독점적 공간이 아니라 공유적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착안한 것이다.

관객이 작가의 작품 안으로 들어가 각도에 따라 색다르게 볼 수 있다. 예상 밖 우연한 환영을 경험할 수도 있다. 또한, 관객에게 단순한 외양과 달리, 선과 선이 교차하면서 면이 형성되는 움직임과 공간의 구조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을 선사하게 된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고정되지 않고 탄력적인 가변성과 유연성을 준다. 그런 공간 속에서 작품과 관객이 우발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작품과 공간, 작품과 관객, 관객과 공간, 그리고 공간과 시간 사이의 상호 작용을 일으킨다.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려는 장치로 보인다. 이런 점은 동시대에 조각가와 설치미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리라.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Seven-part Construction)' 아크릴 흑실, 황실, 백실 1993-2019 

현대작품이 되려면 현장에서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하찮게 볼 수도 있지만 여기서 흑백 사각형이 겹치면서 입체공간이 조각된다. 작가는 이에 대해 "한 줄의 실은 선 이상을 의미한다. 단순히 하나의 면을 이룰 뿐 아니라 그 경계선 밖의 모든 걸 규정한다"라고 설명한다. 데뷔하던 시절 아직 완성하지 않는 작품의 드로잉도 2층에 전시되고 있다.

지하 전시장엔 유희적이고 직관적인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 많다. 얇은 나무 막대기를 바닥에 흩트린 후 다른 막대기를 건드리지 않고 한 명씩 돌아가며 막대기를 빼는 픽업 스틱(pick-up stick)’ 유럽의 게임을 응용한 '7개 파트 구조(Seven-part Construction)' 연작 우연성에 기반한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됐던 벽면의 '벽 구조'도 선보인다.

아무튼, 실 하나가 이렇게 조각이 되어 공간을 무한정 확장하다니 경이롭다. 끝으로 그의 작품에 에디션이 있는지 가격에 대해서 기자들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이번 전시를 기획한 '손유경' 큐레이터는 에디션은 없고 대신 시리즈 물이 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작품가격은 밝히기는 어렵고 작품마다 차가 있지만 적어도 2-3억대는 넘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