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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미술사

[뒤샹] "게다가 죽은 건 언제나 타인들"

1 마르세 뒤샹,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일명 큰 유리 작품' 종이 위에 연필과 수채화 23.8*32.1 1912년 <아래 블로그> 이 작품에 대한 상세한 해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anwoolee...

마르셀 뒤샹 - 심지어,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La mariée mise à nu par ses célibataires, même), 일명 "큰 유리(Le Grand Verre)"(1915-23)

2 뒤샹은 동시대에 주변에서 수천 명 수만 명의 유명인사들 죽어갈 때, 그는 예술가로 혼자 살아남았다. 내 생각이다. 그는 파리에 있는 페르 라셰즈(Pere Lachaise)화장터에서 화장되었고 그의 재는 고향 루앙으로 옮겨졌다. 거기 비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게다가 죽은 것은 언제나 타인들이다(D'ailleurs, c'est toujours les autres qui meurent)"

3 <뒤샹의 일거수일투족은 자연스럽게 예술 그 자체였다. 나는 행복한 예술가 내 삶을 예술 자체로 만들 때 그렇다> 그림을 그리거나 삶을 이해하는 요인으로 삶의 방식을 창조하기 위한 예술을 즉 살아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 형태의 예술품 창조하는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 날 행복하게 한다. 살아있는 그림이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다른 사람들과 숨 쉬는 것 같은 상호작용, 나의 결론은 이렇다. 나는 15살 20살 이런 짓을 하겠다고 계획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러나 오랜 시간일 지내고 난 후 근본적으로 내가 하기로 계획했던 것임을 깨닫는다 -뒤샹

4 <워홀 만남 후기> 최근 코르디에 액스트룸(Cordier-Ekstrom) 집에서 워홀을 만났다.전시가 끝날 무렵이었다.워홀은 카메라를 가지와 내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고 입을 꼭 다문채 20분동안 있으라는 거였지 내 무릎 위에 한 소녀를 앉혔어 아니 거의 다 그런 셈이라까 어리광 피우는 어린 배우가 내 옆에 안으러 와서 거의 내 위로 눕다시피했지 나는 워홀의 에스프리가 마음에 들었어 - 뒤샹

5 <뒤샹의 아모리쇼에 대한 생각> 일생동안 아모리쇼에서 대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마침내 내가 그 전시를 보게 되어 정말 감격스럽다. 나에게 콜럼버스의 날은 바로 아모리쇼에 참가하게 된 1915년 6월 15일이다 -뒤샹 <아래 아모리쇼에 데뷔한 지 2년 후 1917년 사진>

6 예술은 없다. 예술가가 있을 뿐이다. 학파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몇몇 이름 몇몇 사람들이 스스로 작품을 인정받을 만큼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에 머무를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을 가진 사람들은 세월도 이겨낼 수 있는 매우 견고한 재료(materiau)로 작업한 이들이다. -뒤샹

7 그에게 도전적인 삶에 대해서 묻자 "나는 한 젊은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하지 않는 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일하지 않고 살 수 없다 끔찍한 일이다. <나태할 권리>라는 책도 있지만 이 권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면 일 해야 한다 " -뒤샹

8 나는 팝아트를 열렬히 지지한다. 위대한 예술의 지극히 신성한 분야에 만화책의 이미지를 넣은 그림을 보는 것은 즐겁다. 관객에게 이런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기술에 매료된다. 정말 다정한 모리스 밥 그리고 이본 라이너(Yvonne Rainer)를 잘 지낸다. 나는 그들은 매우 좋아한다. 존 케이지는 무척 중요한 작가다. 올덴버그 자기 방식으로 잘 나간다. 나는 이따금 해프닝을 보러가기도 한다. 이건 즐거운 일이다. -뒤상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사진 아상블라주

9 <페인팅도 결국은 레디메이드로 그림을 그린다는 소리죠> 어느 강연의 마무리 글 "나는 자아편집광적(egomaniaque) 강연을 결론짓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주목할만한 것은,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튜브 물감은 제조된 생산물이자 이미 완성된 물건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그림은 이미 도움을 받는 레디메이드이자 아상블라주 작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뒤샹

10 나는 미래의 작가들은 더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예술 혁명의 토대가 되는 '충격의 새로운 가치'가 빛을 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뒤샹 

11 나는 오늘날 예술가들이 그 어느 때보다 반종교적인 임무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술 작품은 신성모독을 가장 충실하게 드러내는 내면적 통찰의 불을 밝히는 것으로 그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 뒤샹

12 예술가만이 유일하게 창조행위를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다. 작품을 외부세계와 연결시켜주는 것은 관객이다. 관객은 작품이 지닌 심오한 특성을 해독하고 해설함으로써 창조적 프로세스에 고유한 공헌을 한다. 이런한 공헌은 후대가잊혀진 예술가들에 대해 결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명예를 회복시킬 때 더욱 분명해진다 -뒤샹

13 나는 언어를 믿지 않는다. 언어는 잠재적인 현상을 표현하는 대신 단어들에 의해서 그리고 단어들 위에서 생성되는 관념이다 -뒤샹

14 1968년 인터뷰를 보면 그의 예술세계는 명쾌하고 분명하다

15 [뒤샹에게 체스 두기는 그림 그리기보다 더 재미있는 그림 그리기였다]

<체스두기가 뒤샹에게 최고의 예술이 되는 이유 둘> 사실 체스를 둔다는 것은 펜화를 그리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예술가들은 형태를 창조하고 체스 기사는 이미 준비된 흑백 형태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체스판 위에 펼쳐진 그림은 시각적으로 미학적 가치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몇 번이나 다시 연줄할 수 있는 악보같이 보인다.체스의 아름다움은 그림처럼 시각적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가 주는 아름다움에 더 가깝다. 예술가와 체스 기사를 만나 친하게 지내면서 내린 결론을 정리한다면 모든 예술가들이 체스 기사는 아니지만 모든 체스 기사는 바로 예술가이다.>

16 <체스두기가 뒤샹에게 최고의 예술이 되는 이유 하나>

체스를 둔다는 것은 일종의 시각적인 조형적인 활동이다. 그것은 기하학이 아니고 역학이다. 이유는 그것이 움직이기 때문이다.하나의 그림은 상당히 역학적인 리얼리티가 있다. 예를 들면 칼더가 그렇다. 체스게임은 움직임의 차원에서 극단적인 아름다움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움직임이나 태도에 대한 상상력에서 온다 이것은 완전히 회색물질과 같다 ... 시각적인 면에서 회색물질은 변화되고 같은 현상은 미술에서도 일어난다 -뒤샹

17 예술을 창조하는 것은 관객이다(나는 그 자체로서의 미술을 믿지 않아 모든 그림은 화가가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며, 사람들의 호의가 역시 그림을 향하지 달리 표현한다면 자기 자신을 알고 있거나 자기만 만든 것을 알고 있는 화가는 존재하지 않아 어떤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90-1455)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파의 대표적인 화가 프레스코화에 뛰어났으며 <수태고지> 등 있다>와 어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똑같이 인정받는지 설명해주는 외식적 표식은 전혀 없어. 모든 일은 되는 대로 벌어지지) -뒤샹 <아래작품>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수태고지' 프레스코화

18 나는 오늘날 예술가들이 그 어느 때보다 반종교적인 임무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술 작품은 신성모독을 가장 충실하게 드러내는 내면적 통찰의 불을 밝히는 것으로 그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 뒤샹

https://seulsong.tistory.com/522

마르셀 뒤샹은 이미 그 가문이 대단했다. 예술가 가문이었다. 

<블랭빌 성당 앞을 지나가는 뒤샹 1902-1903(15-16살)>

그의 할아버지는 열정적 판화가였다 그는 총명한 학생이었다 고1 때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으로 입상을 했다. 그는 바칼로레아 1차 2차 합격 후 미술애호가 최우상을 메달을 받다. 그러나 보자르 시험에서 떨어졌다. 너무 천재는 받아주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너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것인가? 흥미롭다. 예술품으로 승부를 걸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예술품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예술품이었기에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지도 않았다. <아래 블랭빌 성당 앞을 지나가는 뒤샹 1902-1903(15-16살)>

뒤샹은 미술계의 위험한 지뢰를 제거하는 사람 같다. 미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면서 위험한 함정을 사람들이 안전하게 통과하는데 도와주는 보증서 같다

마르셀 뒤샹은 전복과 유희로 현대예술의 성질을 바꾸다 [평] 딱딱하고 고집불통으로 똘똘 뭉친 융통성 없는 기존 예술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다

"나는 나를 유혹한다" 뒤샹이 한 말인가. 그의 생애는 바로 그랬다. "살아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 등을 만드는데 시간을 보내기보다 차라리 내 생애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 -뒤샹

Using painting, using art, to create a modus vivendi, a way of understanding life; that is, for the time being, of trying to make my life into a work of art itself, instead of spending my life creating works of art in the form of paintings or sculptures. -M. Duchamps

1934 년 Marcel Duchamp의 그린 박스(La Boîte verte), 여기에는 뒤샹의 대표작인 Grand Verre("큰 유리 혹은 그녀의 독신자들의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준비하고 제작하면서 사용된 총 93 개 문서 (창작 노트 등 필기 메모, 그림, 사진). "8 년, 아이디어, 반성, 생각", 그의 원고는 석판화로 인쇄된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개인 소장

Marcel Duchamp, en 1965, devant son œuvre « Le Grand Verre ». Mark Kauffman/The LIFE Images Collection

[르 몽드] 예술 : 예사롭지 않는(unusual) 신부, 뒤샹의 미스터리한 작품 "큰 유리 혹은 그녀의 독신자들의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품]" 이 작품이 완성된 후 오랫동안 미술 전문가를 논쟁을 유발했다. 뒤샹의 이 작품은 1915 년에서 1923 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뒤샹의 이 작품은 판테온(프랑스 유명인이 묻혀 있는 만신전) 눈에 띄는 장소에 놓여있다. <사진> 뒤샹 자신의 작품 '대형 거울' 앞에서 1965년에 찍은 사진

https://www.lemonde.fr/festival/article/2019/08/08/arts-le-grand-verre-de-duchamp-une-insolite-mariee_5497731_4415 198.html?fbclid=IwAR1R1c4F_JpUdeJblervj0ZvqNRb0Br8hJVCb0LLOq5cmtyS-T_js0GSA4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