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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손가락이 아니라 손등으로 피아노 치는 백남준

[백남준아트센터 국제학술대회심포지엄 백남준의 선물3-뉴미디어의 고고학] 
International Symposium Gift of Nam June Paik 3 Archeology of New Media - [리뷰] 골짜기 미학으로 서양미술을 해체하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2010.12.17 눈오다


손가락이 아니라 손등으로 피아노를 치는 백남준

 

백남준아트센터 전시장에 설치된 국제심포지엄 

왜 고고학인가? 푸코의 언어이기도 하지만 21세는 철학보다는 미학 역사학보다는 인류학이나 고고학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바로 선사시대 원시적 생명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원시의 창조성을 회복하려면 이런 고고학이 필요하다. 

이런 사상가의 대표는 야만을 찬양한 레비-스트로스다. 그는 프랑스의 인류학자로, 인간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구조주의를 개척하고 문화상대주의를 발전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슬픈 열대에서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긴 해도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고 야만적인 문화는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서구중심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서구의 오만과 편견을 깨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뉴미디어라는 말이 그 앞에 붙었다. 소통의 시대 가장 빠른 소통은 철학보단 미학이고 역사보다는 인류학 고고학이다. 고고학이란? 푸코의 용어로 어떤 지적체계에 대한 심층적 성찰로 그것이 형성된 조건과 사회적 정황을 캐내고 아이러니와 불확실성을 표면화하여 피상적 결론에 반대하고 담론이 생산되는 곳에 균열을 주는 지적 행동(action)이다. 

TV부처 1974 

백남준은 부처가 아니라 TV부처를 통해서 우주와 인간과 자연과 기계와 하이테크를 하나의 회로로 통합시켰다. 21세기 신인간형을 출현시킨 셈인데 백남준은 이 작품을 1974년 뉴욕 보비노갤러리에 선보인 이후 그의 명성은 뉴욕예술계의 지축을 흔들기 시작하는 신호였다. 

동서문명의 혼합한 만든 퓨전작품이다. 비빔밥의 미학으로 융합과 공존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서로 상극인 종교와 과학이 여기서는 상생한다. 백남준은 바로 상극을 상생으로 코드전환하는 예술이다. 

그런데 백남준의 비빔밥은 미국의 용광로와는 다르다. 비빔밥의 개체의 특성을 그대로 두고 하나가 되는 것이고 용광로는 개채의 특성이 사라지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융합과 통섭은 어떤 것일까? 

'칭기즈칸의 복윈 1993' 

백남준이 북방유라시아 초원을 누비며 몽골세계제목을 열었던 칭기즈칸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백남준의 동서와 남북의 경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바로 경계 없는 사회 변방이나 중심이 없는 사회 전 세계를 하나의 미디어로 공존시키는 사회 백남준은 이런 세상을 여는 장본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스키타이 오토바이 

스키타이 스쿠테스 스쿠타이 다 같은 말이다. 오토바이의 원조인데 속도의 상징이다. 통신과 소통이 빠른 것을 상징한다. 종횡 무진하는 비디오오토바이다. 유목민 전사의 전형이다. 

그런데 백남준은 1962년 한국이 아프리카와 비슷한 세계 최고의 빈곤국이었는데 그는 그 때 자신이 유럽을 정복한 칭기즈칸의 후예로 전 세계를 문화로 지배하는 정복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패기를 영어와 프랑스어 쓴 "Yellow Peril, c'est Moi"[황색재앙, 그는 바로 나다]라는 말에 다 담고 있다. 이것은 루이14세가 한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칭기즈칸의 전사들 

이영철관장은 백남준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말 이야기를 한다. 말(馬)이 바로 비디오라는 것이다. 비디오란 이 세상에서 교신 혹은 소통이 가장 빠른 것을 뜻한다. 그런데 전보와 전화가 나오기 전, 자동차가 나오기 전 말을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다. 말의 속도를 다스리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Key to the Highway) 1995 

백남준은 여기에 고대형상문자의 해독하는데 첫 열쇠가 되었던 로제타스톤석의 형태를 빌어 자신의 예술철학을 6개 국어로 적어놓고 있다. 그의 사상에 담긴 비밀과 수수께끼를 풀려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테지만 이것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창조적 재해석을 할 수 있는 탁견을 가진 미술평론가나 미래를 내다보는 문화비평가가 나와야 한다. 

백설공주가 된 백남준아트센터 2010.12.17 

백남준아트센터 뒤뜰에 하얀 눈이 내려 오랜만에 낭만적이면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온통 건물이 TV 켜질 때 그런 인상을 주기에 눈발이 그렇게 직직거리는 것 같았다.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를 맛보는 충만한 시간이었다.

[발표자] 존 라이크먼(John Rajchman) 콜럼비아대학 철학, 미학교수(미국). 장-폴 파르지에(Jean-Paul Fargier) 영화학 교수 및 제작자 소르본대 교수(프랑스). 리샤르 팽아(Richard Pinhas)  철학자, 전자음악가(프랑스) 김재희 베르그송 및 들뢰즈의 스승인 시몽동 전문가(한국) 박영욱 연대 숙대교수, 미디어학(한국) 기조발표: 이영철(백남준아트센터 관장) 토론진행: 헹크 슬래거(Henk Slager, 유트레흐트 예술대학원 대학장) [이벤트] 리샤르 펭하 미니콘서트 홈페이지 www.njpartcenter.kr 

발제자 존 라이크먼과 사회자 헹크 슬래거 

왼쪽은 존 라이크먼(John Rajchman) 콜럼비아대학 철학, 미학교수이고 토론을 진행하는 헹크 슬래거(Henk Slager)는 네덜란드 유트레흐트 예술대학원 대학장이다. 존 라이크먼은 광주에도 방문하여 한국작가 이이남 작업실을 찾아가 그를 격려하기도 했다. 존 라이크먼 교수는 들뢰즈(Deleuze)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었는데 서구에서 들뢰즈는 니체 정도의 사상의 대가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21세기 모니터 전성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의 모니터를 보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컴퓨터의 모니터를 켜고 저녁에 집에 도착하면 TV모니터를 보는 시대 그야말로 <모니터시대>에 백남준은 이를 미리 예술의 도구라 삼아 <비디오(모니터)아트>를 창시한 것이다. 그래서 '종이의 죽음'을 이야기 했는데 이는 어마어마하게 생태보전과 환경보호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손가락이 아니라 손등으로 피아노를 치는 백남준 

그는 기존의 서구적 사고체계를 해체시키는데 일등공신이었다. 그가 서구의 음악과 미학을 충분히 섭취하고 이를 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능가하는 시도를 여러 가지로 시도하였는데 이 장면에서도 바로 그런 점을 한눈에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이영철관장 

백남준아트센터관장을 맡기 전 백남준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는데 그는 내가 만난 미술평론가 중 가장 탁월한 식견과 안목 그리고 날카로운 지성과 감성까지 겸비한 영상미디어언어 해설가이다. 제2회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아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그의 출중한 안목과 비전으로 광주비엔날레를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가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 

심포지엄 참가자를 위한 간소한 간식 

백남준의 일거수일투족은 바로 무질서의 창조였다. 뒤에 보이는 그의 퍼포먼스 역시 그렇다. 그는 이 세상을 살맛나게 했다. 나치즘의 질서는 결국 유대인대학살을 낳았고 인류에게 전쟁이라는 재앙을 낳았는데 역시 인간의 행복은 선사시대의 알몸주의와 원시적 에너지를 문명 속에서 새로 적용하여 창조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심포지엄 중간 점심시간 

점시시간이 15-20분 정도였다. 강연이 늦어져서 그랬지만 머리에서 지진이 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렇지만 국제심포지엄은 상당히 축제적이었다. 이 세상에서 배움만큼 즐겁고 신나는 일은 없다. 한국에서 입시 교육을 받으며 이런 것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원래 새로운 지식과 특별한 정보를 접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뇌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뇌를 새로운 정보나 신선한 지식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샌드위치 점심식사 무료제공 

이 날 점심은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완벽하게 평등했기 때문에 정말 위화감이 없이 그 분위기가 좋았다. 성서의 기록에도 하느님나라를 비유하면서 그런 완벽하게 평등한 밥상공동체가 이야기가 나오는데 종교에서는 나눔을 없어짐이 아니라 무한대로 많아짐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다만 아주 짧은 시간 몇 분 몇 시간 하루 종일은 그런 이상적 세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2010년 12월17일 점심만큼은 모두가 천국의 행복한 사람들이 되었다.   

김재희박사 외 많은 심포지엄 참석자들 동시통역은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로 서비스하고 있었다. 

박영욱 숙대교수, 미디어학(왼쪽). 들뢰즈의 스승 격인 철학자 시몽동(G. Simondon)연구가 김재희박사 

[예술사의 맥락에서 사운드아트의 의미] 음악을 전공한 백남준에게 존 케이지의 음악은 충격적이었다. 그 충격은 케이지의 엉뚱함이나 괴기함이 아니라 사운드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이다. 존 케이지는 오선지의 악보에 의존하는 과거의 음악적 관행은 일상의 음악적 관행과 거리가 먼 것으로 봤다. 말하자면 그것은 현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음악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예술이 일상과 연결되고 참여하는 방식을 촉구하는 면모를 보인다. 기존의 음악적 관행과 형식이 얼마나 현실과 똥떨어져있는가를 지적한다 - 박영욱교수의 강연 중 일부 

[시몽동소개] Gilbert Simondon (Oct. 2, 1924–Feb. 7, 1989) was a French philosopher best known for his theory of individuation, a major source of inspiration for Gilles Deleuze and, today, for Bernard Stiegler. 

[Career] Born in Saint-Étienne, Simondon was a student of philosopher of science Georges Canguilhem, Martial Guéroult, and phenomenologist Maurice Merleau-Ponty. He studied at the Ecole Normale Supérieure and the Sorbonne. He defended his doctoral dissertations in 1958. His main thesis, L'individuation à la lumière des notions de Forme et d'Information (Individuation in the light of the notions of Form and Information), was published in two parts, the first in 1964 under the title L'individu et sa génèse physico-biologique (Individuation and its physical-biological genesis) at the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while it is only in 1989 that Aubier published the second part. 

 
그는 기계를 사람의 진정한 친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L'individuation psychique et collective(Psychic and collective individuation). While his main thesis, which laid the foundations of his thinking, was not widely read until it was commented upon by Gilles Deleuze and, more recently, Bruno Latour and Bernard Stiegler, his complementary thesis, 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On the mode of existence of technical objects) was published by Aubier immediately after being completed(in 1958) and had an instant impact on a wide audience. It was only in 2005 that Jérôme Millon published a complete edition of the main thesis. 

[Individuation and technology] In L'individuation psychique et collective, Simondon developed a theory of individual and collective individuation, in which the individual subject is considered as an effect of individuation, rather than as a cause. Thus the individual atom is replaced by the neverending process of individuation. Simondon also conceived of 'pre-individual fields' as the funds making individuation itself possible. Individuation is an always incomplete process, always leaving a 'pre-individual' left-over, itself making possible future individuations. [...] Wikipedia 

리샤르 팽아(Richard Pinhas) 철학자, 전자음악가 

들뢰즈에게 직접 배웠고 철학박사이면서 동시에 전자 음악가이다. 그는 사운드아트의 한 단면을 강연과 음악연주로 직접 보여주었다. 철학에 있어 사건과 반복이라는 강연도 했다. 사실 백남준의 모든 예술행위는 사건이었는데 사건의 행위가 반복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개념인 반복을 연주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장-폴 파르지에(Jean-Paul Fargier) 영화학 교수 및 제작자 소르본대교수(프랑스) 

내가 그에게 당신은 제2의 백남준(deuxieme Nam June Paik)이라고 하니까 그는 우리 모두가 백남준이라는 엉뚱하면서 참신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와 직접 대면해 보니 왜 백남준이 그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 

Jean-Paul Fargier habite et travaille à Paris en tant que réalisateur et producteur de télévision, auteur et journaliste, critique d'art et de cinéma et professeur de cinéma. 
Il a écrit pour La Tribune socialiste(1967-70), Cinéthique(1968-73), Les Cahiers du cinéma (1978-89), Le Monde(1980-82), Libération(1982-83), et écrit aujourd'hui pour Art Press et Le Monde. 

Il a publié Atteinte à la fiction de l'état(Gallimard, 1978), une fiction satirique contre la nouvelle droite, Les Bons à rien (Gallimard-Presses d'aujourd'hui, 1980), l'essai Jean-Luc Godard en collaboration avec Jean Collet (Seghers, 1974), une monographie sur Nam June Paik(Art Press, 1989) et des textes collectifs variés, comme Où va la vidéo ? qu'il a par ailleurs édité. Il a également organisé une exposition du même nom au festival d'Avignon en 1986. - Wikipedia 

강연 중인 장-폴 파르지에(Jean-Paul Fargier) 

샤롯은 문화테러리스트(박수무당)인 백남준에게 신명과 영감을 넣어주는 여신(미국무당)이었다. 그런 면에서 샤롯은 백남준이 비디오아트의 창시자가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 장-폴 파르지에(Jean-Paul Fargier) 강연 중에서 

그의 강연은 매우 시적이고 간결했는데 백남준에 대한 찬사를 아낌없이 보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샬럿이라는 여신이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봤다. 샬럿은 줄리아드 출신으로 첼로와 고전음악을 공부한 재원이었지만 그는 첼로를 연주할 때 악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몸으로 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파르지에는 상징적으로 그의 허벅지로 그의 몸 악기로 연주했다고 봤고 백남준이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비디오아트가 탄생시켰다는 뜻인가.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낯선 발설이었다. 

'생상스를 위한 변주곡' 1964. 백남준과 샬럿은 신체음악(TV자궁 혹은 TV브라) 즉 몸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거대한 여성 성기인 우주 그 질 속에 들어가야 가장 행복하고 창의적 예술이 잉태할 수 있다는 뜻인가. 백남준은 거기에 비디오를 본 것인가. 그가 비디오(모니터)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은 바로 그가 미래문명의 예언자로 <지구적 이미지의 제왕(King of Image Globalisation)>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백남준은 제임스 조이스, 로댕, 잭슨 폴락, 피카소와 동급의 인물로 비디오아트의 교황이다. 그는 또한 TV성당의 미켈란젤로다. 1963년 백남준은 첫 전시회에서 실험적 TV를 발명했다. TV는 다만 TV일 뿐이지만 백남준은 TV에 호흡과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과 소통하는 기계인간으로 진화시켰다. 

루이스 부르주아 I '꽃(Les fleurs)' 2010년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이영철관장의 강연을 듣고 영감을 얻어 정리한 미술사에서의 혁명] 1866년 쿠르베도 미술사에 <세상의 기원>을 들고 나와 혁명을 일으켰다. 리얼리즘이다. 그러나 그 약효가 다 되었다. 그리고 피카소가 나왔다. 이 세상에 피카소보다 더 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것도 약효가 다 되었다. 회화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뒤샹은 1917년 미술사의 혁명을 일으켰다. 변기들 들고 나왔다. 머리로 그림을 그렸다. 바로 개념미술이다. 이것을 바로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림의 내용은 다 같다. 그런데 이 역시 그 약효를 다 했다. 그래서 백남준이 이를 해결하려 그의 예술적 파트너인 샬롯의 TV자궁 즉 신체음악을 들고 나왔다. 드디어 비디오아트를 창시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떤 현대판 <세상의 기원>이 나올지 궁금하다. 그런데 여성작가 루이스 부르주아도 바로 이런 흐름의 작가다. 그는 99세까지 살면서 금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칭송받았다. 

'살아있는 조각상을 위한 TV 브라' 1969 사진(피터무어). 샬럿의 질은 남준의 집이다. 

 
사운드아트를 연주하는 팽아박사 

팽아의 음악은 분명 사운드가 아닉 노이즈인데 그럼에도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깊은 명상에 빠지게 한다 

심포지엄참가자들의 이모저모 

심포지엄참가자들의 이번 심포지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문이라는 것이 엄숙해 지기 쉬운데 이곳의 분위기는 난해하기는 했지만 무겁지는 않았다. 참가자들이 마치 백남준아트센터 건물이 만든 TV자궁 안에 들어와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인가 모르겠다. 

박영욱교수, 김재희박사, 성완경교수, 팽아박사, 이경희여사, 이영철관장, 장-폴 파르지에교수, 헹크 슬래거교수, 존 라이크먼교수 등등 (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