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e(EBS기획)> 시리즈는 한국 방송사에서 대중지성 시대에 맞게 만든 가장 돋보이는 기념비적인 다큐였다. 여기에서 백남준 뺄 수는 없겠지요.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의 문명사 등을 균형감 넘치게 조명한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7월 20일 오늘 태어나다 백남준 식민지 시대 겪은 마지막 전쟁세대였다 그가 전쟁을 그렇게 싫어한 이유다 백남준보다 한 살 아래인 고은 시인은 자기 세대는 반이 죽었다고 했다. 전쟁세대의 비극을 상징하는 말이다. "백남준의 청년기를 보면 사실 거의 '전쟁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한국을 떠날 때까지 전쟁으로 점철됐다. 백남준이 태어난 지 1년 전인 1931년 만주사변이, 1937년 중일전쟁이,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다. (중략) 특히 6·25 피난 과정에서 겪은 상처로 삶과 예술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했다."
백남준은 아주 심미적인 사람이라 악시를 부슬 때 나는 소음도 너무나 아름답게 들렸을 것이다 굉장히 음감에서 예민한 사람이다. 그는 독일 최고 명문대학인 뮌헨 대학을 너무 보수적이라고 걷어차고 프라이부르크로 학교를 옮겼다 거기서 지도교사를 만났고 어느 날 그 교수가 백남준에게 작곡한 작품을 보여달라고 하니까 그다음 날 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교수가 당황해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백남준 나는 도끼로 피아노를 부슬 때 나는 소리가 나의 작곡이고 음악이라고 하자 그 교수는 백남준에게 항복하고 백남준은 쾰른 당시로는 전위적인 전자음악을 다른 방송국에 추천서를 써 준다. 그러면서 그 교수가 하는 말이 백남준을 보고 비상한(extraordinary) 현상이라는 말을 남겼다
백남준이 얼마나 엽기적인 예술가인가 하면 그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브라운관 모니터에 그림을 그린다는 개념을 현대미술에 처음 도입한 것이다. 모니터에 백남준 수직선과 수평선을 그리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비디오아트의 혁명은 시작된 것이다
백남준은 세계적인 작가이기 이전에 세기적인 작가였다 다시 말해 그 시대 지구촌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다 알고 있었다는 소리다 인터넷이 없는 시대 전 세계 신문을 다 본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좋은 작가가 되려면 자신의 작품 속에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은 비디오 아티스트 이전에 정보 아티스트였다 그는 미국 CIA보다 100배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다녔다 게다가 그는 6 개국을 했고 전 세계 내노라는 유명 과학자 철학자 석학과 미디어학자 예컨대 하버드대 미생물학과 교수 나사 항공 물리학자 등등 2400명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는 정보통이었던 것이다.(박만우 관장의 증언) 그러니 백남준이 미디어의 속임수를 모를 리 없다 가짜 뉴스의 본질을 다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미디어를 섹스 폭력 탐욕 허영 속임수라는 5 단어로 요약하다
백남준의 혁명은 인간이 브라운관에 전자붓 으로 모니터에 수직선(수평선)을 그을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1963년 작품으로 TV Zen이다. Nam June Paik. Zen for TV. 1963 (executed 1975/ 1981). Altered television set. overall: 22 (58 ×43 ×36 cm). Edition: 12. The Gilbert and Lila Silverman Fluxus Collection Gift. © 2013 Estate of Nam June Paik
어기여차 어기여차 이런 소리가 작품 가까이 가면 들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순신의 거북선 발명과 급이 같은 전자아트로 번역한 예술품 거북선이다
백남준 프랙탈 거북선 이순신 장군의 과학적인 창의성과 뜨거운 충정의 애국심에 대한 오마주가 없었다면 이런 기상천외한 작품이 나오기 힘들었겠죠. 백남준은 이순신의 지략으로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일에 큰 감동을 받은 것 같다. 하여간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엽기적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 그는 역시 천재다 거북선은 이것 말고도 또 다른 시리즈가 있다고(이정성 대표 말)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는 소리다
늘 7월 20일 백남준 생일 오늘 동대문 백남준 기념관에서 그의 생일 축하 행사가 있다. 그는 인류가 달에 도착한 날이 자신의 생일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위성 아트를 1984안에 창안한 백남준 그는 확실히 달의 작가 월인천강지곡에서 영감을 받았다. 백남준은 자신의 생일에 일어난 세기적 사건, 예컨대 1929년 케네디 미 대통령 부인 재클린 여사 탄생, 1944년 히틀러 암살 시도, 1969년 미국 우주비행사의 달 착륙 등을 재치 있게 작품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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