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1993년 동네 미술 수준인 한국미술을 세계 미술로 끌어올리기 위해 백남준 사비 3억(현 시가로 하면 10억?)을 기부하면서까지 19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을 기획하다
1993년 백남준 해외생활 40년 넘게 한 세계미술의 증인이자 그 한복판에 서 있었다. 뒤샹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한국미술의 수준을 무조건 낮게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당시 첨단 현대미술은 휘트니 비엔날레를 한국에 직수입해 왔다. 물론 한국의 당시 미술 수준과 전혀 맞지 않는다. 게다가 몇 작품은 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해양성과 대륙성의 충돌지역은 한국인의 그 문화 소화력은 천재적이다.
한국 관객은 백남준이 직수입해온 이 난해한 세계미술을 너무나 좋아했고 대성황을 이루었다. 백남준이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국립미술관이 예산이 없다고 하자 백남준 휘트니에서 받은 기금 중 3억을 기부했다. 지금으로 하면 10억 정도 될까. 그는 그렇게 한국 미술의 세계화에 애착이 있었다.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위는 1992년 백남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역시 제목이 '세기말'이다. '세기말'이란 뭔가 이제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다시 시작된다는 뉴 밀레니엄에 대한 가득 찬 기대감을 담은 작품이다. 백남준은 1980년대 이미 21세기를 그려냈던 것이다.
아래는 1989년 백남준 의 작품 세기말은 한 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세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작품은 오래전 전에 해체되었다고 7년 간 긴 시간 수리 끝에 최근에 다시 휘트니미술관 소장품인 이 작품을 다시 전시하고 있다 <자료사진 김달진 저 <바로 보는 한국의 현대미술(1995년)> 도판 중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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