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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포럼(Forum)

[제11회 백남준포럼] 메타버스 가는 길 9월 27일, 15~17시(오후3시부터)

장소 폴리텍 대학교 정수 캠퍼스(이태원 근처) 2024년 9월 27일 금요일 오후 3시부터

주제 메타버스로 간 백남준 발제 유경란 파이커스코리아 대표 주최 백남준 포럼


 

[9월 백남준포럼] 11회 백남준 포럼 - 메타버스로 간 백남준

11회 백남준 포럼 - 메타버스로 간 백남준 - 9월 백남준포럼 - 2024년 9월 27일(금) 한국폴리텍대학교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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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1) 예술적 창의성과 미디어 확장 <작성중>
2) 모험정신(도전 정신) 그리고 3) 혁명적인 실천
은 죽는 날까지 이어졌다.


[1] <위성아트에서 백남준의 창의성과 모험정신>
우주 상업화 1969 우주에 도착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주의 예술화

백남준의 모든 기획은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1월 1일 전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머스 커닝햄, 샬럿 무어먼.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시인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등은 물론 대중 예술가도 포함 이브 몽탕 등등) 수십명을 그것도 1월 1일에 다 집합시켰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백남준의 카리스마는 여기서 나온다.

그는 아이디어만이 아나라 바로 혁명적이고 구체적 실천(Action)과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통신과 위성 기술로 하늘에서 오페라를 연주하고, 우주 쇼를 벌리는 위성 아트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구촌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된 것이 아닌가!! 앞으로 1000년 안에 이런 전시를 다시 열기 힘들다. 그야말로 시간 예술이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그의 만분의 1, 천만분의 1도 따라할 수가 없다. 그것도 자비로. 10년이상 고생하는 빚쟁이(약2억) 되다. 그런 메가톤급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가?

https://nam-june-paik13.tistory.com/162

 

[백남준]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야기 2024.04.25

백남준 유치원 동창이자 수필가 이경희 선생(1932 생) 오늘 12시에 / 향년 92세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삼가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내 몸이 그렇게 안 좋더니 결국 이

nam-june-paik13.tistory.com

https://seulsong.tistory.com/2517

 

[백남준아트센터]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특별전

[백남준아트센터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특별전] 《일어나 2024년이야!》, 《빅브라더 블록체인》 백남준, 〈과달카날 레퀴엠〉, 1977(1979) 과달카날 섬은 서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섬 중

seulsong.tistory.com


 

[이상미의 예술과 도시] 18.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의 도전정신

일상의 TV에 철학 담아 예술로 승화기술과 인간 공존추구…공감 끌어내미디어에 기술 결합해 신경지개척문화예술 다양성·글로벌화 앞당겨창의성과 혁신

www.etoday.co.kr

백남준의 도전정신이 주는 교훈 중에서 창의성도 손꼽힌다. 창의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은 백남준이 위성까지 활용해서 예술로 확장시킨 혁신적인 사례이다. 이 작품은 그해 1월 1일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동시 중계되었다. 특히 굿모닝 오웰 중계 당시 백남준은 총 지휘를 하느라 파리에 있었는데 KBS 인터뷰에서 TV가 독재 압박의 수단이 아니라 자유표현의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당대 저명한 예술가들이 출연해 시간과 공간 개념을 넘어 동양과 서양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그의 이런 획기전인 접근 방식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백남준은 전통적인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 기술과 미디어를 새로운 예술적 매체로 활용함으로써 창의성과 혁신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의 작업은 많은 후대 작가들과 학생들에게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도전정신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창의적 문제 해결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 2024년도가 벌써 두 계절을 보내고 이제 가을이 완연한 요즘이다. 하반기에는 백남준의 도전정신을 다시 한번 새기길 바라본다. 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


[2] 1963년 첫 전시 <백남준 창의성> 족보 없는 예술 장르를 발명

<서구예술, 백남준에게 항복> 전 세계에서 서구중심문화에 반란을 일으킨 사람은 거의 다 실패했다. 그러나 백남준만 서구 미술(문화전반)에 반란을 일으켰음에도 성공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백남준 부고 기사에서 평하고 있다. 백남준 말대도 그는 황색재앙이었다. 그리고 문화 칭기즈칸이었다. 맑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점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백남준은 에술적으로 서구주류문화에 반란을 일으키고도 성공한 매우 드문 예이다. 참으로 통쾌한 일이다. 왜냐하면 백남준은 서구주류문화에서도 전혀 족보가 없는 가장 비싸고 돈이 많이 드는 최고급예술인 비디오아트를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백남준] 1961년 작곡할 때부터 동서양 위계 50:50으로 잡다

<1961년 백남준이 작곡한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쾰른 악보를 보면 대부분 콘텐츠가 유럽과 아시아 반반씩이 들어간다>, <백남준은 1960년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동급으로 봤다. 다시 말해 백남준은 1961년부터 동양과 서양의 문화 비중을 50:50으로 배치하다> 이게 그렇게 쉬운 일 아니다. 예컨대 우리 교과서에 서양인 100명 들어와 있다고 치자, 그때 과연 서양 교과서에 한국 등 동양인 몇 명이나 들어가 있겠나를 생각하면 바로 이해가 된다. 특히 한국은 더 드물겠죠.

백남준 1961년 동서양 예술에 있어 그 위계(hierarchy) 50: 50으로 잡다 1961년이면 현실적으로 동서양의 예술적 위계 10:90 정도였으리라 이것을 적어도 50: 50으로 만들겠다고 서양미술을 기초부터 흔들다 백남준 1963년 첫 전시에서 서양미술판에 원자폭판을 떨어뜨리다. 초토화 시키다 어떻게? 그게 바로 서양에는 족보가 없는 비디오 아트를 창안한 것이다. 지금도 사실 동양과 서양의 교과서에서 한국 등 동양이 서양 교과서에 50% 차지하기 쉽지 않다 백남준 정말 단군의 후손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으로 넘치는 특별한 한국인이었다.

1961년 백남준이 작곡한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쾰른 악보를 보면 대부분 콘텐츠가 유럽과 아시아 반반씩이 들어간다 그리고 미국 것도 들어간다. 그러니까 백남준은 1960년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동급으로 봤다. 즉 유라시아 문화를 연결시킨 것이다. 첫 번째 자료에서 보면 프랑스, 미국, 한국, 일본, 인도, 러시아, 스페인, 중남미 노래 등등 그러니까 전 세계 음악을 골고루 집어넣다. 두 번째 자료에서도 미국이나 유럽 중심의 사고에서 벗아났다. 2번째 자료를 봐도 그렇다. 물론 소음과 비명을 존 케이지의 영향으로 음악의 확장으로 보다. 중국, 미국, 독일, 고대 로마, 중국 오페라 등과 같이 유라시아 소리와 음악을 거의 반반식 섞었다. 이런 발상을 1960년에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끝 부분에는 반드시 <관객 참여 프로그램(예를 들면, 나무 조각, 돌, 자갈, 금속 조각, 흙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고 관객이 거기에 발길질하라고 촉구한다)>을 집어넣는다. 요즘 말로 interactive art 를 실험하다


[백남준] 예술은 텃세, 서구 중심의 텃세 걷어차(Long story short)

<백남준 서구 미술에 사기를 치다. 그런데 성공하다(?) 아니 서양과 동양의 예술적 위계(hierarchy)를 90:10에서 적어도 50:50은 만들었다. 이것은 확실하다. 백남준 예술은 텃세라고 했는데 그 텃세를 걷어버렸다> 그는 독일에 가서 독일 대학을 시시하다고 발로 차버리고 피아노를 망치로 부수다. 건방진 것으로 치면 그보다 더 건방질 수는 없다. 그가 서구 문화 전통과 예술적 족보를 상징적으로 부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물론 비폭력이다.

그렇게 해서 서구 문화와 예술의 운동장을 zero point로 만들다. 다 부숴 버렸기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운동장 위에 백남준 서구에는 족보와 전통이 없는 비디오 아트로 세계 예술사를 새로 쓰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 / 그의 배경은 한국이라고 보다는 칭기즈칸(서양인도 칭기즈칸 하면 무서워한다)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문화 칭기즈칸(황색재앙)'이라고 떠들며 다녔다. 서구 미술 이제 다 죽었다고 선언하다. 백남준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을 하고 다녔다. 하도 그러니까 독일 친구들도 그렇게 받아주었다.

그러나 30년 후 그의 말을 현실이 되었다. TV가 INTERNET이 되었다. 백남준은 이 2가지를 비디오와 디지털로 예술화했다. 백남준의 이런 용기는 어디서 왔는지 미스터리다.

https://www.youtube.com/watch?v=rDy3GkZ7lBs

https://www.youtube.com/watch?v=RYj0rNL8f94

 


[3] 1982년 퐁피두 센터에서 <백남준 창의성>  1삼색기 2 인공지능

<백남준은 (서양에서는) 전례(족보)가 없는 새로운 표현양식(l'inventeur d'une forme d'expression nouvelle)인 비디오아트를 창안하다> <나는 추상적인 텔레비전(물리적 음악)을 발명했다 - 백남준>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교황 1982년 퐁피두 전시 텍스트 <Nam June Paik, « pape de l'art vidéo » au Centre Pompidou> Contexte historique Par Alexandre Boza / 인터뷰 영어와 프랑스어로 말하다

백남준은 여기 1982년 퐁피두와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을 예언하다 Nous essayons de mettre un nouveau cerveau(신개념의 인공지능) aux televiseurs. <백남준 미디어 조명 확장에 애쓰다 Éclairage média> 백남준은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신하는 것처럼 음극선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고 믿으며 “나는 추상적 텔레비전을 발명했다”고 했다. 텔레비전은 음극선관을 통해 사운드 주파수를 보내면서 발생하는 '줄무늬'를 투사한다 / 백남준은 베토벤과 비틀즈를 결합(?)한 것처럼 보인다.


[3] 광주비엔날레에서 백남준 창의성

1. 1995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연 <정보아트>를 보고 크게 영감을 받다 Daum (en coréen : 다음, KSE : 035720 [archive]) est un portail web sud-coréen, quatrième site du pays quant au trafic1. Elle a été fondée en février 1995 par Lee Jae Woong à partir du premier service coréen de e-mail en ligne Hanmail.net. Elle propose actuellement plusieurs services dont des services communautaires 'Daum Cafe', des services d'information et d'actualité 'Media Daum'.


<윈도우 95 나오다> 다음(Daum) 1995년 세계에서 4번째로 생긴 플랫폼[포털 사이트] 이것도 백남준 덕이다. 백남준이 


<백남준과 DAUM 그리고 NAVER> 백남준 세계 최초로 제1회 광주 비엔날레에서 미디어아트 전(인포아트 혹은 정보아트)이 열리다 우리나라 DAUM이 백남준 이 전시를 보고 영감을 받아 플랫폼 DAUM을 창업하고 이어서 NAVER가 나오다 당시 세계에서 내놓으라는 미디어아트 작가 총출동했다 큐레이팅은 당시 세계에서 미디어아트 최고 권위자 신시아 굿맨 박사가 맡다


백남준 제1회 광주 비엔날레는 국내외 총 관람객이 160만 동원에 성공 / 그 창의성?

 


1995년 백남준은 제1회 광주 비엔날레 태동의 산파 역할을 하며, 한국 미술이 국제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활력을 넣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제1회 광주 비엔날레는 국내외 총 관람객이 160만 명에 달하는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백남준이 직접 관여한 ‘INFO Art(김홍희 관장 여기서 처음 한국 측 큐레이터 미국 측 큐레이터는 미디어아트 최고권위자 미국 IBM미술관 관장을 지낸 신시아 굿맨)’전이 주목받았다. 또한 백남준은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전시관 부문에 한국관을 설치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계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마련되었다고 하겠다. 같은 해 그의 예술적 정수가 담긴 Electronic SuperHighway 전시를 진행했다.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세계’ 라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으며, 이때 백남준은 레이저 아트 ‘야곱의 사다리’, ‘삼원소’ 등을 전시하다.


<백남준 예언과 한국 선진국 도약을위한 창의성>

60년대 백남준 서구에 족보 없는 전자아트 창시 70년대 김민기 노래-노동자 희생과 산업화 기반을 닦다 80년대 백남준 위성아트(인터넷 예고) 90년대 삼성과 LG 전자기술-현대조선과 자동차와 IMF 극복 2000년대 김대중 광케이블 깔기(정보화사회 인프라)-남북평화정책-2010년대 중반 촛불평화민주혁명 2010년대 말기 코로나 대책(세계적으로 돋보이다)-2020년 BTS 등 선진국 도약의 발판 마련하다


[4] 광주비엔날레에서 백남준 창의적 충고 <백남준 후배들에게 창의성 모험성 도전성 추구>

 

1995년 백남준 한국의 젊은 작가에게 주는 충고 <선진국에 딴죽을 걸 수 있는 불확실적 선택과 도박술을 배우

자><그들에게 실험적으로 도전하고 대들고 도박하듯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자> / [백남준 1995년 후배 작가들에게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충고는 1) 강한 이빨론(동서의 문화가 어떤 것이든 다 씹어 잘 소화시켜라) 그리고 2) 선진국에서 하는 말에 대해 항상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반론(특히 서양의 이원론)과 딴죽을 걸고, 그들에게 실험적으로 도전하고 대들고 도박하듯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라] 백남준은 1963년 독일 첫 전시에 상징적인 몸짓이기는 하지만 서양미술의 목을 치다 //

<선진국에 딴죽을 걸 수 있는 불확실적 선택과 도박술을 배우자>“ 나는 청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려고 전람회를 끌어온 것은 아니다. 청년들에게 무슨 음식이나 깨뜨려 먹는 강한 이빨을 주려고 이 고생스런 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백남준은 1993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전 개막에 맞춰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한국문화와 지극히 이질적인 미국전시회일 뿐이다”란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휘트니비엔날레를 통해 “선진국에 딴죽을 걸 수있는 불확실적 선택과 도박술을 배우자”고 주장


백남준은 그에게 "예술가란 외줄을 타고 왼쪽 장대로는 과거 천년을 돌아보고 오른쪽 장대로는 미래 천년을 내다보면서 화두를 던지는 사람이라고" 했고 또 30세기에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를 물었단다. 강익중은 그래서 백남준은 "우주적 농담자로 낮에도 별을 보는 무당이고, 30세기를 떠도는 천재 여행자"라고 생각했단다.


<광주 홍보에서 백남준 기발한 창의성>

 

1995년 광주비엔날레 정보아트(InfoArt) 특별전 때 사진 미국 측 큐레이터(신시아 굿맨 미디아아트 박사, 당시 미디어아트의 최고 권위자)와 한국 측 큐레이터(김홍희 전 서울시립관장) * 백남준 광주비엔날레가 얼마나 좋았으면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해, 백남준 초록색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외국에서 온 유명 작가들(백남준의 친구들)에 캐시(현금)를 나눠 주었다고. 놀랍도록 기발하고 기이한 Performance였다. 아니 거의 미친 한국미술 홍보요원이었다. - 백남준 미국기술자 <폴 게린>의 증언(이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효과 인터뷰집 도록)


<창의적 사기> 정치해석에서 창의성

백남준 
80년대 보면 "군사독재가 하도 사기를 치니까 나는 예술로 고등사기를 친다" 이 정도로 표현하지 전두환등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는다 왜 그랬을까? 사실 전두환도 미국의 꼬봉이니 그의 사기도 독립적이 아니라고 보는 것인가? 그뿐만아니라 애국주의를 싫어해 애국주의적 표현을 매우 절제했다. 그러나 굿(한국인 신명과 삼국유사에서 보는 한국인의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나 한국 미술의 세계화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참았던 애국주의가 튀어나왔다/백남준처럼 정치적인 예술가는 역으로 현실 정치 이슈에 대한 언급에서는 최대로 절제한다


창의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독서에서 나온다?

서울대를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전 적어도 100권에서 1000권을 독파하면 상상력이 저절로 활성화된다. / 한국 학생들이 독일에서 가서 공부할 때 그들과 도서량을 비교 해 볼 때 10:1도 안 된다 학문에서 게임이 안 된다 서울대도 마찬가지다. 매형도 서울대 출신인데 한국 무역협회 독일지사에서 근무할 때 서울대 후배들이 와서 하는 하소연이 내가 서울대에 속았다고는 말을 많이 했다고 결국 도서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리다.


<백남준의 미디어 확장과 고고학>

 

백남준 (탈)영토 확장 30세기까지 진행 <탈영토제국주의(전쟁 필요 없다)>

1) 1963-64년 미술영토 확장 TV, 비디오, 음악 도입
2) 1973-74년 미술영토 확장 자연과 환경,
성의 예술화와 몸 철학과LebensWelt 현상학.
들뢰즈의 유통철학: '리좀' <바닥으로 기다>, 반전운동
3) 1983-84년 미술영토 위성과 창공 등 천문학 포함 <하늘로 날다>
4) 1993-94년 미술영토 전자초고속도로 인터넷 지구촌 전체를 포함
5) 2003-04년 미술영토 레이저아트 SNS 쌍방소통 포함
6) 2013-14년 미술영토 메타버스와 AI 등등 무궁무진 가상 영토 학장(초기)
7) 2023-24년 미술영토 메타버스와 AI 등등 무궁무진 가상 영토 학장 (중기)


 

[백남준 스쿨] 한국 대학, 과도한 실용성 추구와 대학 간 연구 실적 경쟁으로 본질 왜곡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2024-09-19

서울대를 왜 가요? 서울대가 산업화 시대에 최적화 / 정보사회에 맞지 않는다

유튜브에 다 있는데 10년 전부터 한국 대학들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

단순한 학령인구 감소나 대학 정원 축소 아니다

대학의 위기는 한국의 위기다 왜?

1) 혁신적 인재 대신 순응적 노동자 양성

매년 90% 넘는 국내 취업률을 기록대학들 스스로 자랑

1) 학생들은 실용적인 기술을 습득하는 데 몰두하느라 2) 고전문학이나 철학 같은 ‘쓸모없는’ 학문은 외면 3)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 상상력 잃다
4) 정해진 길을 따라 걷는 수동적인 존재

서울대는 대학이 아니다 고급 공무원 학교

노벨상 없다 한국 철학을 세계 철학회에서 논할 수 있는 교수가 없다

학문보다는 논문작성법만 배우다 학문적 성취 불가능

프랑스처럼 철학자 나오지 않는다

‌한국 1)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이나

2)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3) 현실에 순응적인 노동자를 생산하는 공장이 돼버렸다.
4) 정작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양성 못하게 된 것이다. 이는 5) 대학 교육 도약하는 선진국 한국 결정적 장애물

1) 백남준은 서양에는 족보가 없는 전자음악과 비디오아트를 결합한 예술

2) 창의성은 단순한 예술교육이나 기술적 이해에서 나오지 않는다

3) 창의성은 다양한 예술과 과학, 인문학을 융합

4) 미국식보다 독일식이 필요하다

5) 한국대학이 랭킹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랭킹을 만드는 대학: 인재배출

1) 인공지능(AI) 발달과 4차 산업혁명 도래는 프로그래머가 필요 없는 세상
2) AI가 정신노동의 거의 대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3) 경영학과 입학 정원을 줄이고 언어학과, 철학과, 인류학과, 수학과 정원을 늘려야
4) 예술·인문 교육이 ‘다빈치스쿨’ 정신을 살려야

5) 고전 번역이 주는 즐거움 가장 먼 미래를 알려면 가장 먼 과거 알아야

“21세기에 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구글 번역과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5) AI 시대일수록 그리스, 로마의 고전과 논어, 맹자, 중용, 사마천의 사기를

‌6) 바로 ‘시’이고 ‘음악’이고 ‘소리’라는 것을 말이다.

7) 한번 꽂힌 음악은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7) 일리아스의 첫 문단을 넘어 읽기

‌8) 번역 하다보면 ‘또 하나의 시’가 태어난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1] 20세기 전반부 세계 문화계 프랑스에서 [피카소]가 주도, 프랑스 지식인: 라캉, 사르트르, 카뮈, 시몬 드 보부아르, 엘뤼아르, 아폴리네르 등과 교류

[2] 20세기 후반부 세계 문화계 미국에서 [백남준]이 주도, 미국 지식인' 존 케이지(작곡가), 커닝햄(무용가), 문학가 시인 긴스버그(비트세대) 살렷 무어먼(행위 예술가) 그리고 독일 요셉 보이스 등을 이끌다

 


<구글이 포기한 한국의 미디어 시장 분야는 많다> 백남준 1960년대부터 무력을 사용한 칭기즈칸을 대신해서 무력을 쓰지 않고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하다. 전쟁 없이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내세운 것이 <탈영토제국주의>다. 쉽게 말해서 이제 강대국이 되는 길은 가상 공간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영토가 크다가 강대국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과 한번 붙어 볼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은 구글 제국주의에 감히 도전하는 나라가 없다 유럽은 이미 미국의 정보 식민지가 되었다 유럽인의 90% 구글을 사용한다 이런 판에 이에 도전장을 내라고 백남준 60년 전에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다


https://app.engagevr.io/events/gxbAq/view

 

ENG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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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m-june-paik13.tistory.com/247

 

[백남준] 아카이브전 판화, 백남준의 기록된 꿈과 대화

2024.9.24-11.30 도모헌(구 열린행사장) (부산 수영구 황령산로7번길 60) 연계전시, 2024.9.27-10.10 스페이스원지 @space__onez (부산 영도구 봉래나루로 214 원지)2024.9.24-11.30도모헌(구 열린행사장)(부산 수영

nam-june-paik13.tistory.com

[11회 백남준 포럼] 장소 폴리텍 대학교 정수 캠퍼스 사진 시간 9월 27일 오후 2시-4시 Metaverse with Paik /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보광로 73(보광동)

[제11회 백남준 포럼(대표 이상미)] 09월 27일 오후 2시 메카버스 여기 가상 공간에서는 지구촌 식구들 누구나 만날 수 있다 메일로 회원 가입하시고 참가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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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po.ac.kr

아래 약도 // 지하철/ 버스/ 도보 /

<1> 이태원역 4번 출구로 나오신 후 좌측으로 뒤 돌아서 보광동 방향으로 내려가시면 80m 거리에 405421번 버스가 있습니다. // 버스에서 하차후 50m 전방 우측에 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 정문이 있습니다.

<2> 이태원역 4번 출구로 나오신 후 좌측으로 뒤 돌아서 보광동 방향으로 내려가시면 도보로 5분거리에 횡단보도가 있고 단보도를 건너서 곧장 200m 정도 오시면 우측에 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 정문이 있습니다.

<3> 4호선 숙대입구역 7,8번 출구로 나오신후 421번 버스(보광동방면)를 이용하면 약 10분정도 소요됩니다. 버스에서 하차후 50m 전방 우측에 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정문이 있습니다. 숙대입구역에서 421번 버스(보광동방면)노선도 : 숙대입구역삼각지역전쟁기념관녹사평역이태원(용산구청)해밀턴호텔보광동입구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

양재역에서 421번 버스(보광동방면)노선도 : 양재역뱅뱅사거리우성아파트강남역신논현역논현역신사역한남대교전망대순천향병원입구한남역한남동하이페리온보광동신동아아파트기업은행보광동지점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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