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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피카소와 큐비즘'_예술의전당] 3월 31일까지

[피카소와 큐비즘] 20세기 초 회화위기, 입체파로 돌파 한가람미술관(1)에서 2019년 3월 31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1)에서 12월 28일부터 [20세기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입체파 전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http://omn.kr/1hcm5

파블로 피카소 I '무용(La Danse)' 296×206cm 태피스트리 1975년 작

서양미술사의 주요 사조와 미술사의 거장을 소개하는 15번째 전시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1228일부터 2019331일까지 열린다. 20세기 미술의 보고 파리시립근대미술관 소장의 진품 명작 90여 점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총감독': 서순주 박사 '책임큐레이터': 파브리스 에르고트(파리시립미술관장) 카트린 멍크, 줄리아 가리모르(파리시립미술관수석 큐레이터) 전시 도슨트 시간 11:30/14/16/18 https://youtu.be/ge4qghAS1qs

서순주 총감독(샤갈, 피카소, 모네, 고흐, 르누아르, 고생 모딜리아니 전시감독)

20세기 현대미술의 문을 연 회화의 대혁명 큐비니즘 탄생 110주년을 맞아 이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그런 타이틀 속에서 피카소와 브라크 등을 다시 조명한다. 서양미술 역사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명화 90여 점과 80년 만에 최초 해외 전시되는 초대형 작품들까지 5미터가 넘는 압도적 크기와 화려하고 율동적인 색채구성으로 입체파 회화의 절정기를 보여준다. 

지금 퐁피두센터 근대미술관에서 형태 파괴를 통해 20세기 미술의 모험의 장을 열어준 입체파(Le Cubisme) 2018.10.17-2019.2.26) 전시도 마침 열리고 있어 뭐가 다르고 같은지 알아보는 일도 흥미로운 일이다. 

<1907년 서양미술사에서 일어난 대혁명>

로제 드 라 프레네 I '새 개의 손잡이가 달린 찻잔 정물' 1912 근접 촬영

입체파는 근·현대미술의 모험적 시대를 연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사의 가장 획기적인 미술사조이다.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사의 가장 위대한, 획기적인 미술혁명인 입체파운동이다. 

1907년은 서양회화사에 대혁명이 일어나다. 20세기 미술이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의 모험의 시대는 입체파 화가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샹의 변기와 백남준의 비디오와 함께 세계미술의 3대 사건이다. 

<원시미술과 세잔 그리고 입체파>

 폴 세잔 I '햇살을 마주본 레스타그의 아침(L'Estaque le matin vu a contre jour)' 1883 

"
세잔은 우리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피카소 세잔은 유명한 말을 했다. "자연을 원형과 원통과 원추로 그려야 한다" 세잔은 새로운 회화의 문을 열고자 하는 피카소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작가 미상 코트디부아르 가면(단족)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그림이 될 수 없는 그림을 그림으로 그리는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피카소는 1907년부터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민속품을 구입하기 시작하다. 

앙드레 로트 I '기항지' 1913 근접 촬영

서양미술이 막다른 골목까지 갔을 때 그 비상구는 과연 무엇이었나? 역시 맨 처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아프리카 원시미술이다. 결국 입체파는 아프리카의 모태(매트릭스)로 돌아간 셈이다. 그리고 서양화가 중에서는 세잔이 서양미술의 위기를 극복한 장본인이다. 그는 원통, 원추, 원형으로 구성하는 회화의 3차원 세계를 새로 개척한 것이다. 

세잔 I '사과 시리즈'

입체파의 기원은 아프리카 원시미술과 후기인상주의 대가이자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 (1939-1906)으로부터 시작된다. 위에서 언급한 세잔의 근대회화이론은 피카소를 비롯한 후배화가 들로 하여금 입체파의 단서를 제공했다.

위 세잔 그림은 그림이 될 수 없는 그림이다.  그건 눈속임 없는 원시적 그림의 한 시도인 셈이다 그림대로라면 모든 사과는 다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그는 500년 묵은 원근법에서 그림을 해방시켰다. 그래서 한 작품에서 초점이 여러 개다. 

세잔의 유산은 서양미술사에서 너무나 크다. 1906년 세잔이 죽은 이후, 1907년 9월에파리에서 그의 작품을 모아 큰 박물관 같은 회고전이 열렸을 정도다. 1907년 '가을(오톤)살롱'에서 열린 세잔 회고전은 파리에 있는 아방가르드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그의 위치를 19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로 격상되었고입체파의 아버지로 평가받았다.

여기가 피카소의 그 유명한 작품 아비뇽 처녀들이 탄생한 '바토-라부아르' 1907

파리 몽마르트르 바토-라부아르(Bateau Lavoire Montmartre Paris) 벌써 111년이 지났다. 바토-라부아르(일명 세탁소) 이 이름은 피카소의 친구인 시인 '막스 자코브'가 지운 것이다. 이곳은 원래 160년 동안 피아노제조공장이었다. 

이 낡은 건물은 당장이라고 쓰러질 것 같이 흉물스럽게 보여 마치 세탁부들이 빨래터로 쓰는 강변의 배 같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이곳은 당시 가파른 언덕의 달동네라 집세와 물가가 싸서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된 곳이다. 

피카소 고향 친구인 시인 '앙드레 살몽' 피카소 첫 애인 '올리비에'를 만난 곳도 바로 여기고 동향인 가까운 친구였던 '사르벤테스'가 죽은 곳도 여기였다. 그 밖에도 피카소와 같이 입체파를 만든 '조르주 브라크'와 '후안 그리스'도 가까운 곳에 살았다. 그 밖에도 '르베르디', '플라맹크', '모딜리아니'도 여길 자주 놀려왔다고 한다.

피카소 I '아비뇽의 처녀들' 유화 1907년. 뉴 모마(MoMA)에서 찍은 사진(2015년) 

1907년 바르셀로나의 여인들을 묘사한 피카소의 기념비적인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다. 현재 뉴욕근대미술관[MoMA] 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이 입체파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예술표현의 형식적 한계를 과감히 파괴한 점이 높이 평가받는다.  바로 이 작품이 태어난 곳이 바로 여기 몽마르트프의 세탁선이다

있는 그대로보이는 그대로를 묘사하는데 국한되었던 전통회화는 복합적인 화면 분할과 조합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 나아가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까지 표현 가능한 영역으로 이끌어낸 입체파 화가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본질적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적인 모사를 과감히 파괴한 입체파 화가들의 획기적인 표현은 추상미술의 탄생뿐만 아니라 20세기의 다양한 창작의 시대를 여는 모태가 되었다. 입체파 미술운동의 흥망성쇠를 더듬어보는 이 전시는 입체파의 모든 것을 공간분할과 색채구성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다양한 작가들의 풍성한 진품 명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후안 그리스 I '책' 1913, 41×34 cm, 캔버스에 종이 콜라주 및 유화 Juan Gris, Le livre 근접 촬영 후안 그리스는 입체파의 화풍에 시적 차원을 가미한다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여 보다 순수한 조형의 분위기를 연출하다

블라맹크 I '부지발(Bougival)' 1911년경 근접 촬영

<입체파 발명가: 브라크와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I '여인의 두상(Tête de femme)' 41×33cm, 캔버스에 유화 1909

위 브라크 작품은 세잔풍의 초기입체파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입체파의 들어서면서 모델을 기하학적으로 변형시켜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입방체 회화의 진면목을 잘 보여준다.

브라크는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를 발명한 장본인이다. 원시미술과 세잔으로부터 시작되는 입체파의 기원에 대해서는 미술사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나 입체파의 발명이 피카소와 브라크 두 화가 중 누가 먼저였는가에 대한 사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세잔의 후기 풍경화 작품과 파리시립미술관 소장의 아프리카 원시 조각품은 입체파 탄생의 기원에 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도울 것이며 입체파를 이끈 두 거장 피카소(1881-1973)와 브라크(1882-1963) 의 절정기 작품들은 입체파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거의 동급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이번 전시는 1907년에서 1918년에 이르는 초기입체파 회화의 탄생과 발전과정을 두 선구자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피카소 I '머리의 두상(Tête d'homme)' 1912년 근접 촬영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만드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서양 회화가 매우 지적인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다. 사물에 대한 인지력을 화폭에 담다. 수학적이고 기학학적이고 과학적인 그림을 시도한 셈이다.

피카소 I '르 비유 마르크 술병(Le Vieux Marc)' 38.5×55.5cm, 1914. 근접 촬영. 이 작품은 모래 같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입체파적 회화의 효과를 더욱 높였다. 

입체파 미술에 대한 탐구 없이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입체파는 근-현대 미술의 출발점이다. 

<왜 입체파가 일어났나?> 

루이 마르쿠스 I '푸른 물고기' 1928년

1905년으로 기록되는 야수주의 회화가 전통회화의 틀을 고수하면서 강렬한 색채의 자유로운 구사를 통해 색채사용의 혁신적 변화를 이룩한 미술운동으로 기억된다. 

그로부터 2년 후 탄생한 입체파는 전통회화의 형식파괴를 통해 표현의 일대 혁명을 일으킨 미술운동이었다. 입체파로부터 시작된 전통규범에 구애받지 않는 표현의 자유는 추상미술의 탄생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20세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창작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작가의 자유로운 손놀림을 통해 사물에 대한 인지력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전통회화가 강요한 한계와 틀을 과감히 파괴한 입체파 예술가들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입체파 미술에 대한 탐구 없이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입체파는 근-현대 미술의 출발점이다.

<입체파와 시대상황> 

로베르 들로네 I '볼레리오에 대한 경의' 1913 근접 촬영

입체파는 왜 등장했나? 20세기도 21세기처럼 유래 없는 변화의 시대였다 정신분석(프로이트)-상대성이론(아인슈타인)-창조적 진화(베르그송)가 발명되는 시대였다(서순주 총감독의 말). 입체파는 눈속임 회화에서 눈속임 하지 않는 회화로 돌아간 것이다. 사물의 껍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알맹이 즉 본질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본질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세잔은 그림을 선··형보다는 원·통·뿔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시 원시미술로 돌아간 것이다. 눈속임 하지 않는 천진함, 단순함, 순수함 그리고 원시성, 야생성, 역동성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루소의 사상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이다. 전혀 가식과 꾸밈이 없다. 그럴듯하게 잘 그리려고 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그것이 미술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입체파에 속하는 화가인가?> 

알베르 글레즈 '구성' 1930-1931 / 앙드레 로트 '작업실' 1930-1935 / 장 메챙제 '초록 드레스' 1950년경[맨오른쪽] 

입체파 화가 총 출동: 세잔, 피카소, 브라크, 드랭, 그리스, 들로네, 레제 등 20여 작가 입체파는 19세기 대량으로 유럽에 들어온 아프리카 원시미술과 세기말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폴 세잔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 회화에서 처음으로 비정형성이 등장한다. 

입체파 미술운동은 좁게는 1907년에 시작하여 1차 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 국한되지만 분석적 입체파, 종합적 입체파를 거쳐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형태 중심적 표현에서 색채 중심적 표현으로 변화하면서 1930년대까지 그 흐름과 영향은 계속된다. 

<입체파 없이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추상, 미니멀리즘 등도 없다> 

-1차 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라울 뒤피 I '프로방스 풍경' 60×73 1905년. 시인 아폴리네르는 그를 '피카소 드랭과 버금가는 중요 화가'로 여겼다. 

칸딘스키의 추상화가 여기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14세기 이탈리아에 르네상스 있었다면 20세기는 입체파가 있었다. 형태의 표현방식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입체파가 없었다면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 미니멀리즘, 팝아트, 개념미술 등도 없었던 것이다. 

라울 뒤피 I '작은 방목장' 1913 근접 촬영

그리고 수많은 '콜라주 기법', '파피에 콜레'도 마찬가지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미술시간에 배운 첫 단어가 바로 '파피에 콜레'다. 미술시간에 잡지사진을 찢어 새로운 조형을 만들어보는 미술실기연습을 했던 기억난다. 그것이 입체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라울 뒤피 I '버려진 정원' 1913 근접 촬영. 화면 전체에 회화적인 생기로 그득 넘친다

그리고 경쾌한 '뒤피'가 좋다

라울 뒤피 I '정물' 30×36cm 1910년 근접 촬영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I '에펠탑' 캔버스에 유화 170×104cm, 1926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를 응용 발전시킨 비정형적 색채주의 오르피즘(Orphism)의 작가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와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가 있다. 

르낭 레제(Fernand Léger) I '파이프를 든 남자(L'homme à la pipe)' 91×65cm, 1920년 캔버스에 유화 근접 촬영

개인적으로 '레제'도 좋다. 기계와 사람과 사물을 구별하지 않는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그리는 작가다.

페르낭 레제 I '거울 앞의 여인(Femme au miroir)' 캔버스에 유화 35×27cm 1920. 근접 촬영

기하학적 입체파 화가 페르낭 레제 (Fernand Léger)의 걸작은 이번 전시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입체파 회화의 색채감 넘치는 명화들이다. 

페르낭 레제 I '형태의 대비(Contrastes de formes)' 캔버스에 유화 41×26.5cm, 1918 근접 촬영

페르낭 레제는 전쟁이 가져온 익명성에서 영감을 받아 실제 세계를 작품 속에 표현하는 작업을 멀리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가라앉은 예술계 분위기는 입체파 종말을 알리는 듯 침울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전쟁에 동원되어 파리를 떠났고 예술 작업을 중단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 활동을 재개했다. 

레제 작품들은 점점 더 추상화에 가까워졌다이들은 본래의 입체파가 추구하던 생략과 단순화의 원칙은 버렸지만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입체파가 남긴 깨달음을 간직한 채로 자신들의 직관과 시대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면서 새로운 예술적 활로를 모색해 나갔다. 

에밀 오통 프리즈 I '봄(Le printemps)' 1908. 

프리즈는 브라크와 만남으로 그의 작업에 결정적 영향을 주다 거기다 야수적인 경향도 함께 섞여 있다. 1913년 뉴욕 아모리쇼에 초대받기도 했다.

오귀스트 에르뱅(Auguest Herbin) I '정물' 1913. 입체파의 통합적 단계를 잘 보여주다. 입체파란 그야말로 그림을 만드는 것, 형태를 원형, 삼각형, 사각형, 타원형으로 단순화하면서 대신 순수한 색의 대비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다

많은 예술가들은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고전주의에 대한 찬사를 통해 전쟁으로 무너진 국가의 위계와 질서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을 시도하고자 했다. 들로네와 레제와 같은 예술가들은 추상주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리아 블랑샤르 I '글 쓰고 있는 학생(펜을 든 소녀)' 1920년경

그녀는 1920년  태어날 때 부터 선천적 불구라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장학금을 받고 미술학교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면서 그런 난관을 극복하다. 화가 그리스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지 신비철학에 빠지기도 했다. 그녀는 입체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다. 

레제, 들로네 마르쿠시, 발미에, 쉬르바주, 크로티 등은 그 시점 이후부터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내면서 오늘날 입체파의 다양한 분파를 발전시켜 입체파를 비로소 완성시킨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총정리] 입체파 이 미술운동이 30년 정도는 이어지다.

<황금분할(섹시옹 도르 Section d'or)> 

소니아 들로네 I '색채 리듬(Rythme couleur) 1번' 97×195cm 1964 근접 촬영 리듬감 넘치는 시간의 흐름을 그리다.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해 주도되었던 입체파는 1911년경에 두 대표작가와는 개념을 달리하는 동시대작가들에 의해 광범위한 형태로 발전해나가는데 마르셀 뒤샹을 중심으로 이 그룹에 참가한 십여 명의 작가들 '퓌토그룹(Puteaux)' 또는 황금분할파로 통칭한다. 

펠릭스 오블레 I '철도건물 외관 벽화를 위한 습작' 1937

파리근교 서쪽마을 퓌토에 있는 뒤샹의 집에서 시작된 후기입체파 작가들은 예술에 수학공식을 접목함으로써 엄격한 화면구성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기하학의 완벽한 대칭을 의미하는 고대 황금분할법을 예술에 접목하려 했던 그룹운동으로 1920년대 말까지 지속되어 흔히 후기 입체파 화가들이라 통칭되기도 한다레제와 들로네는 입체파회화의 정점을 찍은 대표적인 화가이다. 

소니아 들로네 I '색채 리듬(Rythme couleur) 1번' 97×195cm 1964

회화에 기하학적 공식을 도입한 두 화가는 화면 구성에는 황금분할법을 응용했고 채색은 야수주의적 강렬한 원색을 사용함으로써 추상회화의 탄생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들이다. 

로베르 들로네와 그의 아내 소니아 들로네는 화면에 시간개념을 도입하고자 선명한 원형의 선과 율동적인 색채를 사용해 감각적이고도 환상적인 화풍을 구축했는데 고대 그리스의 오르페이즘을 본따 오르피즘이라고도 지칭되는 이들의 화풍은 입체파 종말과 추상의 시작을 알리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대형장식화 1937-1938]>

로베르 들로네 & 소니아 들로네 I '리듬 1-2-3-4번' 1938

작품 사이즈 1번 529×592cm, 2번 538×396cm, 3번 538×396cm, 4번  536×595cm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피카소가 아니라 들로네 부부의 5미터가 넘는 최대형 시리즈 1-2-3-4 작품 

로베르 들로네와 그의 아내 소니아는 화면에 시간 개념을 도입하고자 선명한 원형의 선과 율동적인 색채를 사용해 감각적이고도 환상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고대 그리스의 오르페이즘을 본따 오르피즘이라고도 지칭되는 이들의 화풍은 입체파 종말과 추상의 시작을 알렸다. 

당대의 회화작품으로는 드문 압도적 크기와 화려하고 율동적 색채구성 은 입체파 회화 절정기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초대형 명화의 생생한 감동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입체파와 오르피즘(Orphism)> 

로베르 들로네, I '리듬 2번' 튈르리 살롱전 장식화 캔버스에 유화 538 x 396 cm, 1938 근접 촬영

들로네 부부는 30년대부터 작품 대형화화면에 시간 개념을 도입하고자 선명한 원형의 선과 율동적인 색채를 사용해 감각적이고도 환상적 화풍 구가하다. 

오르피즘
(Orphism)1912년 로베르 들로네를 주창자로 하여 발족한 큐비즘의 한 분파이다. 이 명칭은 그리스의 악신(樂神) 오르페우스에서 연유한 것인데, 시인 아폴리네르가 명명(命名)하였다. 뒤샹도 이에 잠시 동조하다. 

뒤샹 I '자전거 바퀴' 1913 

들로네의 리듬2처럼 뒤샹의 자전거 바퀴는 '키네틱 아트'를 낳게 하는 모멘텀을 제공한다기계적인 리듬감으로 움직임의 환영을 발생시킨다. 

로베르 들로네 I '리듬 1-2-3-4번'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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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터가 넘는 초대형 작품 80년 만에 최초 해외 전시 특히 1938년 파리국제전람회에 출품된 로베르와 소니아 들로네 부부의 5미터가 넘는 초대형 작품과 알베르 글레즈의 화려함이 넘치는 초대형 작품은 파리시립미술관이 서울에서의 특별전을 위해 80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반출했다. 

후기 입체파 운동에 가담했던 레제와 들로네는 입체파 회화의 정점을 찍은 대표적인 화가이다. 회화에 기하학적 공식을 도입한 두 화가는 화면 구성에는 황금분할법을 응용했고 채색은 야수파적 강렬한 원색을 사용함으로써 추상회화의 탄생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들이다.

로베르 들로네 I 리듬 1번, 튈르리 살롱전 장식화(Décoration pour le Salon des Tuileries), 캔버스에 유화 529x592cm. 1938 근접 촬영

'들로네 삼각분할(Delaunay Triangulation)' 정의 <미술과 수학도형의 관련성>

들로네 삼각분할은 계산과학의 다양한 응용 분야에 널리 사용된다삼각분할 계산에 사용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많이 있지만 들로네 삼각분할의 기하학적 특성을 사용하는 것이 유용하다기본 특성은 들로네 기준(Delaunay criterion)이다.

https://kr.mathworks.com/help/matlab/math/delaunay-triangulation.html?fbclid=IwAR3yYHiZt9_9dQ2t3bSGfiip_SQhvUm1bN_nlUryuK3b4U5hAIzy5mbYh9E

<부록> 눈을 즐겁게 하는 아트 숍 

예술의 전당 1층 아트 숍 1장면

예술의 전당 1층 아트 숍 2장면

예술의 전당 1층 아트 숍 3장면 휴관일 : 매주 월요일 관람료 15,000원 청소년 12,000원 전화)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