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展, 대한 콜랙숀] "5년간 이어온 동대문 나들이를 마무리하는 13번째 마지막 전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2019년 1월 4일부터 3월 31일까지 주최: 서울디자인재단(대표이사 최경란)+간송미술문화재단
"돈이 얼마가 들어가도 상관없다. 우리의 문화재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간송 전형필
그 결과 우리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2000년 동안 관광수입 등 로마문명으로 이한 경제적 이익 즉 이자를 받듯이 무한대의 문화이자를 받게 되었다 "문화자본 혹은 문화유산이 주는 경제적 이익 혹은 그것이 주는 무한정의 이자는 끝이 없다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 아닌가!!"
이번 전시는 [하나] 고려청자의 대명사, 국보 제68호 운학문매병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다. [둘] 일제강점기 중 수많은 국보, 보물들을 수집하기까지의 긴박했던 시간 속 숨겨졌던 이야기들 들려준다. [셋] 31운동의 중심에 섰던 보성학교의 이야기, 이를 인수하여 미래를 위한 민족교육에 힘쓴 간송의 면모를 제대로 알게 해준다.
DDP(디자인박물관 2층)에서 새해 1월 3일 있었던 기자간담회
최경란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는 “지난 2014년 3월 DDP 개관 및 간송미술문화재단 설립 기념 전시인 <간송문화: 문화로라를 지키다>를 시작으로, 지난 5년간 12회의 간송 전시가 DDP에서 진행됐다. 그간 간송미술관(구 보화각)이 아닌 DDP라는 공간에서 12회의 간송 전시를 펼치며 간송 컬렉션의 대중과의 공유의 물꼬를 트고, 문화재 공동 활용 방식을 개발하는 등 간송 컬렉션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다.”라며 말했다.
또 “이번에는 시민들에게 삼일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뜻깊은 전시를 준비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향후 DDP는 디자인박물관에서 국내외 기획자와 협업해 디자인 산업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국제적 수준의 현대 디자인의 다양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사장 전영우)이 DDP에서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 이다 그동안 5년간 전시를 해왔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인건' 사무국장은 빠르면 이번 가을부터 늦어도 내년 봄부터는 다시 간송미술관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대 차이는 있을지언정 문화재를 보고 받는 감동에서는 차이가 없다"
간송특별전 제1공간은 '알리다' 지금까지 5년 간 있었던 간송전을 디지털화해서 요약해서 보여준다. 이 코너에서는 지난 5년 간의 DDP 나들이를 갈무리함과 동시에 디지털화된 주요 유물 15점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현재 가볼 수 없는 간송미술관의 모습을 가상현실(VR)로 둘러볼 수 있다
한만호 간송미술문화재단 실장이 전시 전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1.알리다 2. 전하다 3. 모으다 4.지키다 5. 되찾다의 순서로 되어 있다 간송은 일본의 문화말상정책에 맞서 문화로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우리의 문재화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막강한 권력과 자금을 거머쥔 일본수집가에 맞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우리문화를 되찾아오는 쾌거를 이룬 셈이다 작품과 함께 가슴 속에 터져나오는 감탄의 글과 평설이 작품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일본에서 돌아온 소중한 청자 시리즈>
1937년 간송이 영국 출신 존 개스비(변호사) 컬렉터가 가지고 있는 청자유물 20여 점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뒷이야기가 많다 <간송 전형필: 조선 제일의 수장가 간송의 삶과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Celadon Prunus Vase with Inlaid Cloud and Crane Design 13세기, 높이41.7cm, 국보 제68호 간송이 지금으로 치면 1935,년 일본인 골동상 마에다 사이이치로에게 기와집20채 값에 해당하는 거금 2만원을 주고 구입한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화려한 듯하지만, 그러나 화려한 그 속에는 여전히 따뜻하고 고요한 맛이 있다 -고유섭
그윽한 향기 흐르는 선에/숨은 듯 푸른 피어난 미소
안개 속에 핀 하얀 꽃처럼/나래핀 학은 훨훨 날으네 너울거리네
고이 앉은 네 모습 가까이 피어난 쑥내음/바라보는 네마음 적시는 따뜻한 너의 입김
사실 내가 이 청자를 봤는지는 잘 모르지만 처음 본 것 같다. 과거에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보니 밀려오는 그 감동의 물결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지난번 고려전을 보고 나서 더 그렇다. 최고예슬품이라는 생각에서 주저함이 전혀 없다. 나이가 좀 들어야 감상이 되는 것인다 고려인의 당시 최고의 하이테크(High Tech) 도자기기술에 고려인의 수준높은 심미안 그리고 학과 구름의 문양으로 기반으로 한 고차원 디자인 감각이 합쳐져 인류사에 빛낼 작품을 낸 것 같다. 인간의 예기와 하늘의 도움(천기)이 합쳐진 것 같다.
이 청자매병은 짧고 좁은 목과 반구(盤口)형 구연부,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에서 굽까지 내려오는 유려한S자 곡선을 지닌 전형적인 고려 매병이다. 문양은 학과 구름을 주제로 시문하였는데, 이 운학문은 장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고대의 신선사상과 관련이 있다.
흑백으로 상감된 이중 원문 안에는 상공을 향해 날아가는 학을, 원 밖에는 지상으로 내려오는 학을 배치하고, 여백에는 영지 모양의 구름을 가득 시문했다. 구연부 바로 아래에는 연꽃을 백상감으로 시문하였고, 저부는 가늘고 길쭉길쭉한 이중 연판문대를 흑백상감으로 둘렀다. 연판 안쪽에는 백색의 원 안에 흑색 점을 찍은 연주문을 베풀어 화려함을 더하다.
'청자 오리모양 연적(靑磁 鴨形 硯滴) Duck-shaped Celadon Water Dropper' 12세기 국보 74호.
맑은 비색유 등으로 보아 고려 귀족사회의 세련된 문방 취미를 엿볼 수 있다. 오리 모양으로 만든 고려시대의 청자 연적이다. 사실적 기법으로 오리 형태와 깃털까지 세밀하게 나타낸 정교한 작품이다.
오리가 연 줄기를 꼬아 입에 물고 있고, 이 연 줄기에 달린 연잎과 꽃봉오리를 오리의 등에 자연스럽게 붙여 조화시켰다. 오리의 등 한복판에 붙어 있는 연잎에는 안으로 뚫린 구멍이 있어 물을 넣도록 되어 있고, 꽃봉오리 모양의 작은 마개를 꽂아서 덮게 되어 있다. 물 따르는 구멍은 오리 주둥이의 오른쪽에 붙어 있는데, 지금은 그 부분이 부서져 있어 원형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맑은 담녹색의 비취색 유약이 전면에 고르게 씌워져 있으며, 바닥에는 규석받침으로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12세기 강진 사당리요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오리의 세련된 조각 기법, 알맞은 크기, 맑은 비색유 등으로 보아 고려 귀족사회의 세련된 문방 취미를 엿볼 수 있다.
'청자양각운문병' Celadon Bottle with Cloud Design in Relief 12세기 높이 27cm
목이 길고 구연부(주둥이부분)가 외반된 전형적인 고려 전기의 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연판문, ㅜ름문, 여의두문, 당초문 차례로 조각되어 있다 몸체 주 문양을 이루는 구름문은 여지가 하늘로 승천하듯 드문드문 몸체 전체에 돌아가며 조각되었다.색상은 청초록으로 소위 비색청자로 불리는 대표적인 유색과 형태에 속하는 것이다
'청자상감운학문유개대발' 13세기 전체높이 19cm
상감청자(象嵌靑瓷)는 고려시대 12세기 중엽부터 만들기 시작한 독특한 청자이다. 상감청자 제작에 사용된 상감기법은 고려시대 도공들이 처음으로 개발한 기술이었다. 상감(象嵌)기법은 금속, 목재, 진흙 등 원료의 바탕 표면에 여러 무늬를 새기고 그 속에 금, 은, 보석, 뼈, 자개 등 다른 재료를 박아 넣는 공예술이다.
상감청자 문양은 운학(雲鶴), 양류(楊柳), 보상화(寶相華), 국화(菊花), 당초(唐草), 석류(石榴) 등 다양했다. 그 중에서 운학무늬와 국화무늬가 가장 많이 애용됐다. 상감청자 특징은 공간적 여유에 있다. 상감문양을 전면적으로 활용하더라도 배경에는 충분한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
'청자모자원수이형연적' 12세기 중기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 원숭이의 모습을 형상화한 연적이다. 모자 원숭이의 몸체는 간략하게 표현하였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칼로 조각하여 도드라지게 하였다. 어미 원숭이의 얼굴은 섬세하게 이목구비를 모두 조각하여 원숭이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기포가 있는 맑은 비색 유약을 시유하였다.
어미 원숭이의 등에 가로로 균열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매우 뛰어난 작풍을 보인다. 어미 원숭이의 눈과 코, 새끼 원숭이의 눈은 철채로 까맣게 칠해 생기를 부여하였다. 어미 원숭이는 쪼그리고 앉아 두 팔로 새끼를 받쳐 안고, 새끼는 왼팔을 뻗어 어미의 가슴을 밀고 오른손은 어미의 얼굴에 갖다 대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자간의 애틋한 정을 느끼게 한다.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 국보 제66호. 높이 37㎝, 밑지름 8.9㎝. 간송미술관 소장.
정병은 원래 중국을 통해 전해진 서쪽에서 온 양식(西來樣式)이었으나 고려에 와서 가장 세련된 형태의 정병이 만들어졌다. 또한 불교에서는 비구(比丘)가 지녀야 하는 18물중의 하나로서 정병을 들고 있다.
정병이라는 명칭은 원래 깨끗한 물을 담는 여러 형태의 물병을 모두 포함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긴 목에 나팔 모양의 주입부가 달려 있고 타원형의 몸체에 굽이 달린 형태의 병만을 정병이라 통칭하는 것은 아마도 사찰에서 주로 사용된 정수병이 대부분 이러한 형태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정병은 목과 어깨의 선이 부드럽고 입구의 뚜껑은 없어진 상태이나 세련된 형태를 보인다. 문양은 모두 백상감 기법으로 평화로운 연못가의 정경이 회화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담녹회청색의 맑고 고른 유조를 보인다. 밑에 규사(硅砂)를 받쳐 구워졌다. 전라남도 강진가마터에서 이와 유사한 파편이 수집된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白磁靑畵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 18세기, 높이 42.3cm, 국보 제294호
조선백자의 모든 요소를 다 총집결시킨 조선백자의 다다익선이다 청자가 만들어진 후 500년이 지나서 나온 작품이다 .1936년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일본의 거상 야마나카 상회를 물리치고 14580원에 낙찰 받은 최상의 백자이다.
단정하고 당당한 형태를 가진 병의 몸통에 우측으로 비스듬히 올라간 국화문과 좌측으로 가느다랗게 뻗은3줄기 난초를 시문했다. 양각으로 처리한 국화는 동화로 채색되었으며, 국화 줄기와 잎은 철화로 장식되었다. 난초는 청화로 장식되었는데, 운필이 능숙하고 발색 또한 선명하다.
'백자청화철채반룡롱주형연적' White Porcelain Dragon-shaped Water Dropper in Underglaze Cobalt Blue and Iron 19세기 높이 13cm
공간을 구획하는 선이나 종속 문양대가 없으며, 대형 병임에도 목 위로는 문양을 생략해 번잡함을 피했다. 국화 좌측 상단에 동화로 채색된 곤충은 여백을 갈무리하며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려한 채색 문양과 정갈한 유백색(乳白色) 유약이 대비와 조화를 이루며 조선 사대부의 품격과 흥취를 오롯이 전해주고 있다.
'해악전신첩' 일제시대 불 쏘시개가 될 뻔 했던 겸재의 산수화작품집
친일파의 집에서 불쏘시개로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뻔한 겸재정선의 화첩이다 진수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신이 72세대 즉 1747년에 제작한 화첩이다. 금강내산 등이 여기에 들어있다 2017년 진경산수화를 개척·확립한 겸재 정선(1676~1759)이 금강산을 진경화풍으로 담아낸 명작 화첩 ‘해악전신첩’, 도난당했다가 회수된 불화인 ‘청도 용천사 영산회상도’ 등 20건의 문화재를 문화재청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다.
이 화첩에는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의 명승지 그린 21점의 산수화와 제화시(題畫詩: 그림 속에 들어가는 시) 41수가 76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화첩을 소장케 된 기막힌 사연과 수장 비화는 각자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시기를 바란다.
정선 I '금강내산'' 63세 때 그린 '정자연(亭子淵)'이다.
[나머지 사진들] (3-4번째) 과 금강산 내 '불정대(쓸어버리듯 휘둘러 빠르게 그리는 정선 휘쇄법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선 I 금강산 내 '불정대'
간송의 생애와 31운동 때 사라질 뻔한 보성학교 인수 미래를 위한 민족교육에 힘쓴 이야기면 문화재 수집의 과정의 기막힌 뒷이야기... 간송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사학인 보성하교가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재정난에 처해 폐교될 뻔 했는데 이를 인수해 동성학원을 설립했다 1940년 5월 30일 경영권을 인수받다.
[보성학교 출신 중 모교를 빛낸 사람들] 설립자 손병희(동학지도자) 그리고 간송이 뒤를 이었다. 보성출신으로 국어학자로는 주시경이 있고 미술가로는 도상봉(1902-1977)이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시인으로는 이상(1910-1937)이 있다 그는 건축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인으로는 임화(1908-1953)와 김상용이 있다. 소설가로는 염상섭(1897-1963)이 있다 그리고 현진건(1900-1943)이 있다.
간송문화재단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있는 백인산(한국민족미술연구소소장) 즉석 해설 성북동 전시 시절 기자간담회 때 만난 기억이 난다 고려의 귀족과 조선의 양반 그 미적 취향의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하다.
'경성미술구락부(京城美術俱樂部)'
회화단체 1922년 9월 설립된 일제강점기 최대의 미술품 매매 기관. 일본제국 5개의 미술구락부 나고야, 도쿄, 교토, 오사카, 가나자와에 이어 1922년 경성에 이 구락부가 6번째로 생겼다.
경성미술구락부는 각국에 신구서화(新古書畵), 골동의 위탁판매. 경성미술구락부는 미술구락부, 친교회(親交會), 고미술상조합(古美術商組合)으로 이루어졌는데, 경성미술구락부는 미술품 경매를 개최하였고, 경성미술구락부의 주주로 구성된 친교회는 미술구락부의 제반운영을 담당하고, 고미술상조합은 고미술동업자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였다.
보성중학교 제1회 졸업생 사진
보성학교 출신 독립운동가들 면모
그리고 독립운동가로는 노백린, 임규, 김두봉(선각자), 윤기섭, 31운동 참여 송계숙, 31운동 중 체포 옥사 엄항섭, 김구 판공비서 이인식, 31운동 참여 김봉준. 흥사단 참여한 김사국 등등이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 삶의 발자취] 1906년 7월 29일 대부호인 서울 종로구 종로4가 112번지에서 중추원의관 전영기와 밀양 박씨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 본관은 정선). 1926년에 휘문고와 1929년에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간송 전형필 선생
1932년 서울 관훈동의 한남서림(고서, 고서화를 취급하던 서점)을 인수하고, 우리 문화유산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를 구입하기 시작한다. 문화재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휘문고 스승이었던 춘곡 고희동과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1934년에 서울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매입하여 터를 잡다.
33세가 되던 1938년에는 자신의 소장품으로 북단장 안에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세웠다. 1940년 보성고보를 인수했다. 1945년에는 1년 동안 보성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1960년에는 이전부터 그를 돕던 김상기, 김원룡, 최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고 <고고미술(考古美術)>이란 동인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의 전신인 고고미술동인회는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회이다.
1962년 1월 26일 서거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문화포장 과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66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수집품을 연구를 박차를 가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로 개편했다. 1971년부터 성북동에서 최근 5년 간은 DDP에서 유물을 공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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