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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국립현대] 문신, 생명이 약동하는 독보적 조각으로 세계적 명성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창원특례시(시장 홍남표)와 공동주최로 조각가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91()부터 내년 129()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전시개요]ㅇ 제목 : (국문)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 (영문) Moon Shin Retrospective: Towards the Universe ㅇ 기간 : 2022.9.1.() ~ 2023.1.29.() ㅇ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ㅇ 주최 : 국립현대미술관, 창원특례시 ㅇ 출품 : 조각, 회화, 판화, 드로잉, 도자 등 230여 점 및 아카이브 100여 점 ㅇ 관람료 : 2,000(덕수궁 입장료 1000원 별도)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회고전은 조각, 회화, 공예, 건축, 도자 등 다방면에 걸친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 전모를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문신(文信, 1922-1995)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귀국 후 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조각가로 이름을 얻은 작가로,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흐름 안에서나 195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한국 추상조각의 맥락에서도 이례적인 작가이다.

또한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작가의 자유, 고독, 열정, 긴장이 동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문신은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의 탄광촌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창원특례시)에서 보내고 16세에 일본에 건너가 일본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촉망받는 화가로 활동하던 그는 1961년 불혹 무렵에 프랑스로 건너갔고, 1980년 영구 귀국할 때는 조각가로 이름을 떨쳤다. 파리 체재 기간 동안 그는 살롱 드 메’(Salon de Mai, 5월 살롱),‘살롱 그랑 에 죈느 도주르디’(Salons Grands et Jeunes d’Aujourd’hui, 동시대 대가와 청년작가 살롱),‘살롱 데 레알리테 누벨’(Salon des Réalité Nouvelle, 신사실주의 살롱) 등 당시 주요한 살롱에 초대받아 활동했다.

귀국 후 마산에 정착해 지연, 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에만 몰두하다가 직접 디자인, 건축한 문신미술관을 1994년 개관하고 이듬해 타계했다.

한국과 일본, 프랑스를 넘나들며 인생 대부분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작가의 삶은 그가 감수해야만 했던 불운이 아니라, 진정한 창작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었다.

이방인으로서 지리적, 민족적, 국가적 경계를 초월했을 뿐 아니라, 회화에서 조각, 공예, 실내디자인, 건축에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삶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나아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유기체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 깎아 들어감()과 붙여나감(), 형식과 내용, 물질과 정신 등 여러 이분법적 경계를 횡단하고 이들 대립항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찾아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신 조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대칭은 단순한 형태적, 구조적 좌우대칭을 뛰어넘는다. 자연과 우주의 생명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독창적인 추상 조각은시메트리(Symmetry·대칭)’가 바탕이 된 균제미, 정면성, 수직성, 고도의 장인정신 등을 특징으로 한다.

전시의 부제 우주를 향하여는 문신이 다양한 형태의 여러 조각 작품에 붙였던 제목을 인용했다.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우주)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던 작가에게 우주는 그가 평생 탐구했던 생명의 근원이자 미지의 세계’,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고향과도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를 향하여는 생명의 근원과 창조적 에너지에 대한 그의 갈망과 내부로 침잠하지 않고 언제나 밖을 향했던 그의 도전적인 태도를 함축한다. 문신의 조각 작품은 단순한 선형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지 않는다.

특정 시기에 특정 형태를 집중해 제작하기도 했지만 1960년대 제작한 드로잉을 1980, 1990년대에 다양한 크기와 재료의 조각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연대기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크게 회화, 조각, 건축(공공미술)으로 나누고 전시의 중심이 되는 조각 부분에서 형태의 다양한 변주를 감상하고 창작과정을 살펴본다.

드로잉은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었던 문신의 예술 사상과 실천의 독특한 면모가 직관적으로 발현된 장르로서, 4개의 전시실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전시는 다음과 같이 4부로 구성된다.

1<파노라마 속으로>는 문신 예술의 시작인 회화를 다룬다. ‘지금 여기의 삶을 성찰하는 구상회화에서 생명과 형태의 본질을 탐구하는 추상회화로의 변화가 그의 드라마틱한 삶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50여 년에 걸쳐 제작된 문신의 회화는 작가를 대표하는 조각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조형미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2<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은 도불 후 1960년대 말부터 그가 본격적으로 제작한 나무 조각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조각에서 형태를 가장 중시했는데 문신의 조각은 크게 구 또는 반구가 구축적으로 배열되어 무한히 확산되거나 반복되는 기하학적 형태와 개미나 나비 등 곤충이나 새, 식물 등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문신 조각의 모든 형태는 생명의 리듬’, 즉 창조적으로 진화하는생명또는 약동하는생명력을 내포한다. 2부에서는 다수의 나무 조각 작품들과 드로잉을 통해 문신의 조각이 지닌 상징, 의미를 찾기보다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추상 형태 그 자체를 감상할 것을 제안한다.

3<생각하는 손: 장인정신>은 브론즈 조각의 작품을 주로 소개한다. 작가는 같은 형태를 다양한 크기와 재료로 제작했는데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지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했다.

다양한 재료와 조각 기법을 능숙하게 구사했고 이를 통해 관람객은 작품에서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 그리고 부단한 노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3부에서는 <개미(라 후루미)>(1985), <우주를 향하여3>(1989) 등 다수의 브론즈 작품들과 드로잉을 선보인다.

4<도시와 조각>은 도시와 환경이라는 확장된 관점에서 조각을 바라본 문신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소위 환경조각이라고도 불리는 야외조각과 체불 시절 작가가 시도했던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 ‘공원 조형물 모형등 공공조형물을 소개한다.

이 작품들은 현재 사진과 드로잉만 남아 있어, 남겨진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VR, ‘공원 조형물 모형3D 프린팅으로 구현해 대중에게 최초로 선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은 작가가 직접 디자인하고 지은 건축물로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이자 작가의 50년 예술 경력의 종합이라 할 수 있다. 영상과 함께 미술관 건축을 위한 드로잉도 함께 소개된다.

한편, 전시 기간 중 미술관교육과에서는 작품명이 <무제>3점의 작품을 감상하고 참여자가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을 직접 지어보는 <전시를 말하다: 무제 워크숍_제목 짓기>를 진행한다.

이 워크숍은 전시된 작품 옆의 QR코드를 통해서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워크숍이며, 참여자 중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제목을 선정해서 소정의 기념품을 증정할 예정이다.

2전시실 앞 교육공간에서는 전시를 감상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드로잉, 그리고 조각> 워크숍을 운영한다. 연필과 스티커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조각 드로잉을 제작할 수 있으며 참여자들의 작품은 향후 미술관 공식 SNS에 공유될 예정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국립현대미술관과 창원특례시가 공동주최하고 여러 기관과 연구자, 소장자의 적극적인 협조로 만들어진 대규모 전시라며,“이번 전시를 통해 문신만의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고, 삶과 예술이 지닌 동시대적 의미를 재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1922년 일본 규슈(九州) 사가켄(佐賀県) 다케오(武雄) 탄광지대에서 출생(1.16.)(행정상으로는 1923년, 본명 文安信) 1927년 부친과 함께 귀국 1938년 도일(渡日) 1939년 도쿄 일본미술학교 양화과 입학 1945년 일본미술학교 수료, 귀국 1945-56년 마산, 부산, 서울 등에서 10여 회 개인전 개최 및 다수의 전시 참여 1957-59년 모던아트협회 참여 1959-60년 마산, 부산, 서울 등에서 도불기념전 개최 1961년 1차 도불 1961-64년 파리 북부 라브넬(Ravenel)에서 고성 수리, 아카데미 뒤 포(Academi du Feu)에서 강의 1965년 귀국 1966-67년 홍익대학교에서 강의 1967년 신세계화랑에서 도불전 개최, 2차 도불 1970년 ‘국제조각심포지움’(바르카레스, 프랑스)에 13m 나무조각 <태양의 인간> 출품 1971년 파리 도마가(Rue Domat)에 갤러리 오픈 1971-79년 ‘살롱 드 메’(Salon de Mai, 5월 살롱), ‘살롱 드 마르스’(Salon de Mars, 3월 살롱), ‘살롱 콩파레종’(Salon Comparasions, 비교 살롱), ‘포름 에 비’(Forme et Vie, 형태와 삶), ‘살롱 그랑 에 죈느 도주르디’(Salons Grands et Jeunes d’Aujourd’hui, 동시대 대가와 청년작가 살롱), ‘살롱 데 레알리테 누벨’(Salon des Réalité Nouvelle, 신사실주의 살롱) 등 100여 회 전시에 초대 1979년 오를리 쉬드(Orly-Sud) 공항 갤러리 초청 문신 개인전 개최 1980년 영구 귀국, 마산에 문신미술관 건립 착수 1988년 서울올림픽 국제 야외조각 초대전 참여 1990-92년 유럽(파리,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 사라예보,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 순회전 19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 훈장(레종 도뇌르 오피시에) 수훈 1994년 문신미술관 개관(개관전: 문신 예술 5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 훈장(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수훈 1995년 경남대학교 명예 문학박사 타계(5.24.)

[붙 임] 3. 전시 구성 및 주요 작품 소개

1. 파노라마 속으로

1938, 밀항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문신은 이듬해 일본미술학교 양화과에 입학했다. 그는 일본 각지에서 모인 청년 예술가들이 각자의 다양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교류하고 작업했던 도쿄(東京) 이케부쿠로(池袋) 시나마치(椎名町) 예술인촌에 거주하면서 화가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다졌다. 광복과 함께 귀국한 문신은 마산 추산동 언덕(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위치)에 터를 잡고 부산, 대구, 서울 등을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했다. “화면의 기교를 위한 낭만보다 현실 생활의 체험을 중시한 그는 온화한 기후에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마산의 풍경과 평범한 주변 사람들의 소박하고 거친 삶, 그리고 향토성 짙은 정물을 화폭에 담았다. 1957, 문신은 아카데미즘을 내세운 모던아트협회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울을 활동의 장으로 삼았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고층 건물과 가로수가 즐비한 도시풍경으로 이동했고 화면은 도시적 감각으로 충만해졌다. 이 무렵 그는 미술계의 흐름을 반영하여 평면화, 단순화 등 추상적 요소를 접목했다.

문신의 회화에서 구상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로, 그는 외부 세계를 재현하는 대신 점, , 면 등 순수 조형요소와 마티에르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프랑스에서 목격한 앵포르멜(Informel)과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 등의 영향도 있었지만, 도불 직후 생계를 위해 파리 북쪽에 위치한 라브넬(Ravenel)에서 고성(古城)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대상의 추상적 형태와 구조, 재료의 물성에 대한 감각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그는 조각으로 영역을 전환하지만 회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문신의 회화는 우리에게 그의 삶과 예술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준다.

도쿄 일본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던 시절 그린 자화상으로 해부학에 근거한 인체 표현과 자연스러운 색감의 온건한 화풍을 보여주며, 화면을 과감하게 나누는 구도나 인물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작가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재야 공모전인 이과전(二科展)에서 떨어지고 그 이듬해 제작한 작품으로 20대 초반의 조선인 청년은 자신을 마치 타인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 중년의 거장처럼 묘사했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예술인들이 거주하는 이케부쿠로(池袋) 몽파르나스예술인촌에서 작업하던 작가가 민족적 정체성보다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중시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자화상, 1943, 캔버스에 유채, 94×80cm, 개인소장

19481회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마산에 정착한 문신은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마산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근원 김용준은 문신의 회화가 내 나라의 현실과 자연에서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현상을 예술적인 관조를 통해 구현한다고 보았다. 화폭은 평온하고 아름답기만 한 바다가 아니라 여기에 생계와 목숨을 건 어민들의 거칠고 활기찬 삶으로 가득하다. 당시 문신은 물감을 제외한 화구, 즉 캔버스와 캔버스틀, 붓과 액자까지 손수 제작했다. 볼륨감 넘치는 해녀들이 조각된 아름다운 나무 액자는 회화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완벽한 부조 작품이다.

고기잡이, 1948, 캔버스에 유채, 53.5x131.5cm(액자 포함), MMCA 소장

1957년 제2회 모던아트협회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많은 화가들이 소를 주로 민족적, 향토적 소재로서 다뤘는데 문신은 여기서 탈피하여 철저히 조형적인 관점에서 대상에 접근하고 있다. 갈색 선은 어미소와 송아지의 밀착한 몸체를 가로지르며 그 골격을 드러내는 윤곽선이 되기도 하고, 투시된 어미소의 갈비뼈가 되기도 한다. 대상의 단순화 또는 평면화, 복수(複數)의 시점, 한정된 색채 등에서 입체주의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읽어낼 수 있다. 실제로 문신은 일본 유학 이전부터 피카소(Pablo Picasso)를 즐겨 모사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 1957, 캔버스에 유채, 76×102cm, MMCA 소장

2. 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

1960년대 후반부터 문신은 최소한의 조형 단위인 구() 또는 반구(半球)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 구축한 추상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70년 프랑스 남부 페르피냥(Perpignan)에 위치한 바르카레스항(Port-Barcarès)사장(沙場) 미술관(Musée des Sables)’에서 열린 국제 조각 심포지엄에 출품한 13미터 높이의 나무 조각 <태양의 인간>은 문신이 조각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살롱 드 메(Salon de Mai), 살롱 콩파레종(Salon Comparaisons), 살롱 데 레알리테 누벨(Salon des Réalité Nouvelle)등 다양한 전시에 초대받았고 그가 선보인 석고, 나무, 브론즈 조각은 프랑스 미술계로부터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2전시실에서는 특히 제작에 고도의 공력(功力)을 요구하고 복제 불가능한 문신의 나무 조각과 관련 드로잉을 소개한다.

문신은 조각을 제작하기 전에 무수히 드로잉을 그렸다. 그는 원과 선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만물이 원과 선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반복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지닌 다양한 형태가 창조되는 것에 매료되었다. ‘개미로 불리는 그의 조각은 이렇게 탄생했다. 문신의 조각은 크게 <태양의 인간>처럼 구 또는 반구가 구축적 배열되어 무한히 확산되는 듯한 기하학적 형태와 <개미>처럼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생명주의적 또는 유기체적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 형태는 무언가의 이미지나 의미를 지닌 기호, 또는 추상적 본질의 표상이 아니라 그 자체의 삶을 지닌, 즉 시간과 공간, 정신, 물질 등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하는 구체적인 존재였다. ‘대칭’, ‘정면성’, ‘수직성등을 특징으로 하는 문신 조각의 형태는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생명 또는 약동하는 생명력 그 자체다.

개미 시리즈는 문신이 평면에서 벗어나 구와 선의 조합에 관심을 가지면서 제작한 초기 추상조각 중 하나다. 사실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에는 <무제>였으나 전시장에 놓인 작품을 두고 프랑스 관람객들이 개미를 닮았다고 해서 이후 유사한 형태의 작품에 <개미>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 전체적으로 문신 특유의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지만 두 개의 구를 가로지르는 선의 길이와 방향이 미세한 차이를 지님으로써 단조로움을 깨뜨린다. 작가는 좌우의 미세한 차이를 성장하면서 환경에 의해 달라지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미, 1970, 참나무, 119.5x30x19.6cm, 개인소장 Photo [Suryusanbang] Lee Jheeyeung

지금까지 1960년대 말 제작된 개미시리즈 중 하나로 표기되었으나, 가는 선이 세 개의 타원을 자유롭게 가로지르며 휘감는 모습이 1970년대 중반 살롱 드 메에 출품된 우주를 향하여시리즈 중 하나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선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반면 몸체가 되는 타원은 작은 끌의 흔적을 뚜렷하게 남긴 점이 흥미롭다. 유독 장인적인 정교함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작가가 도구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단단한 재료의 저항을 완전히 극복한 경지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중심을 벗어나 비스듬하게 서 있는 가는 지지대 위에 수평의 덩어리가 안정적으로 올려져 있어 작가의 건축적인 균형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은 이와 관련한 드로잉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데, 최초 아이디어 단계의 드로잉은 괴량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선이 자유롭게 유영하는 무중력의 우주 공간처럼 느껴진다.

무제, 1977, 흑단, 54.6×128.5×23cm, MMCA 소장 Photo [Suryusanbang] Lee Jheeyeung

중앙에 선적인 요소가 강조되어 구성적 리듬이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정교함과 세련됨을 갖춘 문신 조각 특유의 관능미가 돋보인다. 현악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갑충류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신의 조각은 그 형태와 질감으로 인해 곤충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다. 곤충은 인류 이전부터 존재해 온 강한 생명체로서 토템으로 숭배되기도 하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문신 조각에서 원시성을 감지할 수 있다. 풍만한 볼륨과 함께 표현되는 날카로운 선과 예리한 각에서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작가의 욕망과 터부를 읽어낼 수 있다.

무제, 1978, 흑단, 113,2×35×20cm, MMCA 이건희컬렉션 Photo [Suryusanbang] Lee Jheeyeun

3. 생각하는 손: 장인정신

문신은 하나의 작품을 시작하기 전부터 긴 준비 기간을 가졌는데 재료와 도구를 잡는 순간 계획에 의존하지 않고 손의 물리적인 동작에 철저히 몰입했다. 반복을 통해 숙련된 기술과 촉각적인 직감을 통해 손의 감각이 향상되면 동작은 즉흥적으로 리듬을 타게 되고 작가는 더이상 기술에 함몰되지 않고 상상력을 매개로 직관적인 도약에 다다랐다. 이와 같은 제작의 즉흥성은 예상치 못했던 형태가 스스로 창조되는 과정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흥미롭게도 문신의 조각은 즉흥의 과정을 거친 후 고도로 섬세하고 치밀한 세부처리로 마무리되었다. 형태를 중시한 그는 조각에서 마티에르를 부차적인 요소로 간주했고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했다. 문신은 같은 형태를 다양한 크기와 재료로 제작했는데, 어떤 형태가 주어진 재료에서 다른 재료로 옮아가면 변형을 겪게 마련이다. 때론 미묘하고 때론 드라마틱한 이 변형은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지 세련되게 마감된 문신의 조각을 감상하는 묘미 중 하나다. 3전시실에서는 브론즈 조각과 관련 드로잉을 소개한다.

문신은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창조의 고된 물리적 행위를 즐겼고, 감상자는 그의 작품에서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 그리고 부단한 노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근대 이후 만들어진 예술가와 장인의 구분, 즉 독창성과 상상력, 자유를 지닌 전자와 기술, 노동, 서비스를 중시하는 후자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사실 문신의 조각은 완벽한 좌우대칭이 아니다. 마치 생명체가 정확한 대칭이 아니듯 그의 조각 역시 미묘한 차이를 지닌다. 문신의 조각에서 대칭은 엄격한 법칙이나 그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자 변화의 동력으로 작동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마치 배아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성이 다양하게 분화되는 생명체처럼, 또는 원형에서 변형된 변이처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의 조각은 엄격하면서 동시에 유머러스하고 환상적이다.

문신은 브론즈 제작을 위해 새로운 형태를 고안하기보다 대개 나무나 석고 작품의 형태를 살리고 크기를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문신의 브론즈 작품은 점토로 형태를 만드는 과정을 생략, 즉 원형을 직조(直造)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는 점토로 형태를 빚는 과정이 작품을 세밀하고 날렵하게 만드는데 불필요하다고 여겼고, 석고를 보다 견고히 만들기 위해 철근으로 뼈대를 잡은 후 철망 등을 이용해 대강의 형태를 만든 후 석고를 붙여가며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는 조각을 자체의 생명을 지닌 사물로 간주한 작가에게 생명체의 생성-뼈대에 근육과 피부가 입혀지는 방식-에 가장 가까운 방식이었을 것이다.

개미(라 후루미), 1985, 브론즈, 119.5×30×28cm, MMCA 소장 Photo [Suryusanbang] Lee Jheeyeung

타오르는 불길,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려는 씨앗 또는 날아오르는 새 등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비상(飛上)’의 느낌으로 충만하다. 영구 귀국 후 문신의 작품에는 세포분열된, 또는 복제된 배아처럼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구가 유선형에 모서리가 뾰족한 날개를 달고 상승하는 형태가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우주를 향하여 3>은 제목과 더불어 금속 특유의 물성으로 인해 우주에서 마주하게 된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날렵한 평면과 팽팽한 볼륨의 긴장이 극대화되어, 지상에 뿌리 내리고 있지만 무한한 창공을 꿈꾸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우주를 향하여 3, 1989, 브론즈, 67.8x38.5x22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Photo [Suryusanbang] Lee Jheeyeung

대칭에서 벗어난 극히 소수 작업 중 하나지만 이 작품은 여전히 절대적인 균형을 지닌다. 이 균형은 불규칙한 요소를 주의 깊게 배열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데서 온다. 동일한 형태가 흑단으로도 제작되었지만 브론즈로 제작된 이 작품은 금속이라는 재료가 지닌 유연성을 특히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 양식화된 질서에서 벗어나 닫힘과 열림, 가득 참과 비어 있음, 움직임과 멈춤, 단순함과 복잡함, 팽팽함과 느슨함,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등이 자유롭게 교차하면서 또 하나의 생동하는 리듬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관련 드로잉은 불완전한 형태가 조각으로 완성되기까지의 흥미로운 과정을 보여준다.

무제, 1990, 브론즈, 69x45x23.4cm,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 Photo [Suryusanbang] Lee Jheeyeung

4. 도시와 조각프랑스 체류 시절 문신은 도시와 환경이라는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조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의 조각은 미술관뿐만 아니라 지하철역, 공원, 광장 등에 전시되었고 그는 조각이 미술관을 벗어나 도시인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1965년 잠시 귀국했던 작가가 19672차 도불전에 발표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은 그가 환경으로부터 분리된 자주적인 오브제’, 즉 자기지시적인 모더니즘 조각의 경계를 뛰어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단체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그가 현대도시 미학에 관심을 다양한 전공의 예술가들이 만든 단체에 참여한 점 역시 도시환경에 대한 문신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전해지는 드로잉은 실제로 구현되지 못했지만 문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조각의 이상을 보여준다.

1980년 문신이 영구 귀국했을 무렵, 한국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1950-60년대 한창 제작되던 계몽적이고 권위적인 기념 동상과 다른 종류의 야외 조형물이 활발하게 조성되기 시작했다. 작가는 당시 국내 브론즈 주조 기술이 프랑스보다 떨어져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자 이에 해결 방법을 찾던 중, 비교적 가볍고 부식이나 녹에 강해 야외조형물 재료로 이상적인 스테인리스 스틸을 발견했다. 그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은 나무나 브론즈 조각과는 또 다른 현대적 감각을 발산한다. 완성된 조각의 매끄럽고 광택이 나는 표면은 빛을 흡수하기도 하고 반사하면서 보는 이를 포함한 주변 풍경을 반영한다. 거울과 유사한 효과를 지니지만 불룩한 곡면에 의해 왜곡된 대칭은 감상자로 하여금 특별한 시공간을 체험케 한다.

비록 문신이 풍경과 건축 사이에 위치하는포스트모던한 조각을 적극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의 조각은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문신 예술의 본령은 조각, 건축, 공원, 도시 등 보다 확장된 맥락에 위치할 때 보다 풍부하게 발휘된다. 창원시립마산미술관은 그의 50년 예술 경력의 종합으로 비록 독특한 형태의 조각과 달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이지만 그야말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이다. 작가는 영구 귀국 후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열정으로 14년간 직접 산을 깎고 돌을 쌓아 옹벽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들었으며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했다.

문신은 이 작품과 같은 형태를 1972년 파리 생토귀스탱(St.Augustin) 지하철역에서 열린 살롱 드 마르스<태양의 사자>라는 제목의 대형 석고조각으로 출품했다. 브론즈의 무게감을 완전히 극복한 이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은 그의 조각 가운데 정면성이 강하지 않고 열린 공간감을 지닌 소수에 속한다. 풍만한 볼륨과 그 속에 마치 빛이 없는 것처럼 검고 텅 빈 구멍의 공존이, 안팎 구분 없이 무한히 팽창하고 또는 수축하는 우주 그 자체를 표현한 듯하다. 중심을 가르는 네 개의 면은 마치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 또는 고대인들이 우주의 기본 요소라 믿었던 4원소를 연상시킨다. 별처럼 빛나면서 생명의 모든 에너지를 응축한 듯 힘이 느껴지는 수작이다.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현대미술초대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37년 만에 같은 장소(덕수궁)에 전시된다.

우주를 향하여, 1985, 스테인리스 스틸280×120×120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Photo [Suryusanbang] Lee Jheeyeung

미술관 건축을 위한 구상 및 설계 드로잉, 평면도 등이 400여 점 이상 전해진다. 원과 사각형, 직선과 곡선 등 간단한 도형과 선으로 이루어진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에서부터 경사진 지형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경까지 섬세하게 묘사한 완성도 높은 드로잉까지 문신의 미술관 건축 드로잉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의 건축적 역량을 드러내고 그가 꿈꾼 미술을 위한 전당을 만들기 위한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특히 대칭 및 동일한 패턴의 무한 반복과 확장이 만들어내는 수학적 아름다움을 마음껏 펼친 바닥 드로잉은 백미로 꼽을 수 있다.

무제, 1995, 종이에 펜, 29.5x84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