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간을 풍경의 연장선으로 보는가, 아니면 투시도적 공간과는 별개인 행동의 장으로 이해하는가? 나는 둘 중 그 어느 것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일적인 특성이라기보다 두 가지 측면 모두 동시에 고려될 수 있다고 여긴다. - 제이슨 마틴
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박주환 건축가의 설계로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서울특별시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한 포트힐 건물 2층에 자리 잡았다. 2022 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오는 2월 24일부터 4월 16일까지 영국 현대미술가 제이슨 마틴(Jason Martin, 1970년생)의 국내 첫 개인전 《수렴(Convergence)》을 연다.
이 영국 작가의 고향은 바다가 보이는 곳 그림 속에 파도가 일렁인다. 그 파도의 모아짐과 흩어짐의 경이로움을 화폭에 옮기다.
마틴은 1997년 영국의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s, Young British Artists)’를 탄생시킨 전설적인 전시 《센세이션(Sensation: Young British Artists from Saatchi Collection)》에 참여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간 작가는 회화의 정의에 대해 질문하며 강렬한 색채와 더불어 2차원과 3차원의 세계를 잇는 조각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회화 작품을 선보여왔다.
제이슨 마틴은 회화의 가능성을 역설하며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도전을 통해 작가만의 고유한 표현 기법을 구축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알루미늄 회화는 그의 지속적인 연구의 일환으로 내면으로 향하는 반복적인 붓놀림을 기반으로 하며, 유려하게 펼쳐지는 붓놀림은 작품 내 하나의 접점으로 수렴된다. 작가는 이러한 수행을 ‘공간과 시간의 합일’이나 ‘경계의 조우’로 설명하고, 한국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보자기’와도 그 유사점을 찾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모색해 온 마틴은 신작 회화 제작을 위해 10년 만에 다시금 붓을 들었다. 전작에서는 직접 제작한 빗 모양의 도구로 짙은 줄무늬를 형성하여 재료의 물성을 강조하는 데 그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은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붓을 사용함으로써 이전의 두꺼운 안료와 강렬한 색감으로부터 구별되는 가벼운 질감과 보다 섬세한 색의 표현이 돋보인다.
작가는 또한 본인만의 천연 안료를 제작하고 다양한 색을 조합해보는 등 꾸준한 작가적 실험을 행해왔다. 이러한 그의 부단한 연구는 <Untitled (Caribbean blue / Viridian)>과 <Untitled (Titanium white / Fluorescent orange)>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흰색의 색조를 근간으로 하는 마틴의 신작 회화는 마치 깃털처럼 가볍고도 부드러운 그의 붓놀림을 만나 선명하면서도 미묘한 색으로 거듭난다. 일련의 회화는 은은한 광채를 품고 있는데, 이는 작품의 밑바탕이 되는 알루미늄이 빛을 포착하고 반사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작가의 재료에 대한 고찰의 정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각 작품은 마틴의 절제적이면서도 반복적인 붓놀림을 축으로 형성되며, 이들은 작품 중심부에 위치한 하나의 점에서 만나 완성된다. 작가는 하나의 접점으로 수렴되는 명상적 행위에 대해 ‘제안된 하나의 특이점으로 외부의 움직임’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평면 구상화에서 공간감과 거리감을 표현할 수 있게 했던 선형 원근법의 도입은 당시 르네상스 시대 작품 내의 모든 선이 소실점으로 수렴되도록 하는 회화적 구성을 야기하였다. 마틴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단색 추상화는 구상의 전통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소개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각 작품 안에는 항상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긴장감이 존재하며, 나는 늘 이것을 찾고자 한다. 공간이 상상으로 형성된 것도, 묘사의 대상도 아닌 것처럼’.
제이슨 마틴 수렴(혹은 통섭 모아졌다 흩어짐) 서울 포트힐 서울특별시 용산구 독서당로 122-1(포트힐 빌딩), 2층 2022년 2월 24일-4월 16일 사각형 알루미늄 배경과 작품 내부로 향하는 마틴의 섬세한 붓놀림은 아시아 문화에서 주로 발견되는 보자기 특유의 포장 방식을 연상시킨다.
한국에서는 ‘복을 싸서 선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한 보자기는 정방형의 천으로, 물건을 싸거나 덮기 위한 용도부터 특별한 선물이나 의식을 위해 사용되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활용된 전통이 있다.
보자기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일본 레지던시 활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에 대해 그는 ‘대략 25년 전, 일본의 차(茶) 거장이 내게 기모노 보관을 부탁했다.
런던에서의 어느 날 일본 가마쿠라에서 온 야마다 소헨(Yamada Sohen)이 내게 보자기에 포장된 정장 기모노를 맡겼는데, 아직까지 찾아가지 않았다. 곱게 지어진 매듭을 내 능력으로는 다시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에는 역사적 의복을 담은 정교하고도 신성한 이 보호막을 망칠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다.’고 회상한다.
작품의 가장자리 표현, 색의 조합, 붓이 만들어낸 선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관계를 맺는 마틴의 작품은 회화를 제작하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반추이다. 작품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요소들은 이들을 규정짓는 운동감을 내포한다.
선회하는 붓놀림으로 극대화된 물결 모양의 곡선은 흐르는 듯한 연속적 움직임을 선사하며 보는 이의 시선을 모든 선이 맞닿아 있는 바로 그 접점으로 향하도록 안내한다. 마틴의 작품을 마주한 관객은 작품 저 너머의 상상의 공간을 경험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곳에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정신적 지형을 투영함으로써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된다.
[작가 소개] 1990년대 골드스미스(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 대학에 재학할 당시 마틴은 금속 또는 플렉시 유리위에 작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초기작인 이 일련의 작품은 작가가 직접 제작한 빗 모양의 도구와 유화 물감, 아크릴 젤을 사용하여 표현된 줄무늬 형상이 돋보이는데 이는 작가의 작업 세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그만의 표현 기법이다.
이러한 표현기법은 작품에 생동감 넘치는 물감의 높낮이를 부여하는데, 회화적 붓놀림을 극단적으로 확대하여 보여줌으로써 작품에 가해지는 움직임과 물성 자체를 강조하여 드러내고 이목을 집중시킨다.
금속 바탕에 얇은 유약 처리를 하여 어슴푸레 빛나는 표면이 돋보이는 작품에서부터 물감의 등고선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조각적 작품까지, 마틴의 작품 세계는 다양하고 폭넓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1970년 영국령 채널 제도의 저지(Jersey, Channel Islands)에서 태어난 제이슨 마틴은 현재 런던과 포르투갈을 오가며 작업 중이다.
마틴은 1997년 YBAs(Young British Artists)를 탄생시킨 전설적인 전시 Sensation: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Royal Academy of Arts, London)에 참여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후 2004년, 마드리드에 소재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에서 개최된 《Monochrome》에 참여하였다.
작가의 주요 개인전으로는 2005년 개최된 스페인 CAC 말라가(CAC Málaga, 2005) 미술관, 독일 고슬라르 묀히 미술관(Mönchehaus Museum, Goslar, 2008), 페기 베니스 구겐하임 컬렉션(Peggy Guggenheim Collection 2009), 독일 비대상 미술관(Museum object-free art, Otterndorf 2016) 등이 있다.
또한, 2017년 독일 샤우베어크(SCHAUWERK, Sindelfingen)에서 작가의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작품을 총망라한 회고전을 개최한 바 있다. Jason Martin, February 2022 © Mustafa Hulu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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