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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국립미술관, 백남준에게 진 빚 '3억(현10억?)' 갚기를

[백남준 <다다익선이야기> 자료전]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 '다다익선' 램프코어 앞에서, 2018년 9월 4일(화)-2019년 2월 28일(목)까지 [1] 1986년 작품 구상, 1988년 설치 그리고 현재를 담은 <다다익선 이야기> [2] 드로잉, 사진, 영상모음(다다익선 상영장면, 소프트웨어), 다다익선을 수리해온 이력 등 소개된다.

백남준 다다익선 작동하지 않자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시물을 보고 있는 어느 관객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다다익선>의 탄생, 설치배경과 관련한 이야기를 담은 자료전인 '다다익선 이야기'를 연다. 다디익선은 2018년 2월부터 작품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 지금 국립에서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중이다 좋은 제보나 아이디어가 있는 분은 아래에 두 큐레이터에게 연락을 하면 된다. [1] '류지연' 소장품자료관리과장 02) 2188-6154 [2] '박미화' 학예연구관 02) 2188-6309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지난 2월 텔레비전의 노후화에 따른 작동 문제와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생산중단으로 작품 가동이 중단되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 30년 간 상설전시 해오던 <다다익선>의 전기 안전점검 후 작동을 중단하고 향후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다다익선>은 1986년 작품을 구상하여 1988년 설치하게 된 배경과 진행과정 그리고 완성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연도별로 정리하여 설치, 스케치, 개막식행사 등 사진과 함께 구성되었다.

두 대의 모니터를 통해 <다다익선> 상영장면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등록되어 있는 8개의 <다다익선> 소프트웨어가 각각 상영된다. 이번 자료전은 작품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관객에게 소개하고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고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국립현대미술관은 2019년 내에 국내․외 관련 전문가들의 면담과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구하고 그에 따라 보존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세계적인 작가 백남준의 기념비적인 작품 '다다익선'은 1988년 설치되어 30년간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 미술을 대표해 온 중요한 작품이다"며 "'다다익선'의 보존수복 방안은 미디어 작품 보존수복의 중요한 사례로서 미술관은 신중한 검토를 통해 국제 미술계에 담론을 제시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백남준 다다익선에 대한 기사가 추가될 예정이다>

1993년 백남준이 기획한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순회적 포스터(1993-whitney-biennial-in-seoul)

백남준은 한국미술이 아직 지역미술(동네미술)이라고 보고 세계미술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한국미술에 대한 지극한 애정 때문이겠죠) 미국의 첨단 비엔날레 전시를 직수입해서 서울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여기서 백남준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자금이 부족하다고 하자 그가 여기서 받은 상금 3억을 기부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에게 이렇게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이 전시는 동성애 등을 주제로 하고 있어 사실 당시 한국에서 전시하기에는 좀 껄끄러운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넘어간 것인가

[당시도록] 앞부분 인사말: 19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에 부쳐 I 이민섭(문화체육부 장관), 서문 미국현대미술의 다양한 방향을 시사하는 휘트니비엔날레 I 임영방(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미국현대미술에 대한 시각을 객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I 방상훈(조선일보), 네 자신을 알라.(네가 처한 곳을 알라) I 데이비드 A. 로스(휘트니미술관 관장), 부분의 통합: 1990년대 미술의 적극적 힘 I 엘리자베스 서스맨(휘트니박물관 큐레이터), 백색주의란 무엇인가? I 텔마 골든(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 무인지대: 천년왕국의 시발점에서 I 리자 필립(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 미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의 반목 I 이용우(미술평론가)


[01] 다다익선의 가치는 뭔가? 국립미술관의 다다익선과 루브르미술관의 모나리자는 동급이다

나는 다다익선과 모나리자는 동급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모나리자는 고전기 르네상스시대 회화장르의 대표작이라면, 다다익선은 디지털 르네상스시대 전자회화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다익선 보전은 그래서 모나리자의 보전만큼 공을 들여야 한다. 다다익선은 TV1004대가 들어간 당시로는 전자공학적 뒷받침해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첨단과학의 작품이다.

한마디로 최고급 작품이다. 대형작품에도 예민한 작품이라 고장 나기기 쉽다. 항상 돈과 정성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모든 전자 작품은 10년-15년 안에 반드시 고장이 난다. 그래서 그 보전을 위해서 감가상각비가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백남준 작품만이 아니라 앞으로 모든 뉴미디어 작품도 규칙이 적용되어야 한다.한국의 세계적 작가와 당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삼성의 합작이다. 백남준이 지금 살아 계셔서 국립미술관 과천관을 방문했을 때 뭐라고 하실까.

[02] 다다익선은 왜 보전해야 하나? 백남준의 대표작 중 하나로 한국인의 원류가 담겼다


다다익선은 서울올림픽 개막식(1988년 9월17일) 이틀 전에 완성되었다. 다다익선은 대한민국의 하늘이 열린 날을 기념한 작품으로 우리의 5천 년 역사를 상징적으로 응축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현대적 의미로는 오랫동안 군사독재국가로 갇혀 살던 우리가 1988년 세계올림픽을 계기로 전 세계에 처음 데뷔한 해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어찌보면 단군이다 곧 우리를 뜻한다. 다다익선은 TV모니터 1003대다 개천절 10월 03일을 맞춘 것이다 태초에 하늘이 열렸다는 상징이 담긴 우리역사의 기원을 새기는 작품이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서 출품작 중 '스키타이 단군'가 나오는 이유다. 백남준 작품의 계보로는 1982년 휘트니 미술관의 비라미드(비디오 피라미드)와 1984년 도쿄 메트릭스 그리고 1988년 이후에 만들어진 1995년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있는 전자초고속도로와도 연결되는 작품이다. [자료]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늘을 열었다는 '개천(開天)'이란 말은 환웅이 하늘에서 백두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온 것, 혹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처음 건국한 것을 의미한다.

[03] 다다익선의 설치했을 때 목적? - 백남준 왈, "이번에 큰 놈을 만들어 조국에 선사하겠다" 그러면서 "이 램프코어 공간은 나를 위한 공간 같다"며 대만족했다.

1988년 백남준

1988년 2월 국립현대미술관 배포한 홍보 자료에는 "다다익선의 설치목적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백남준 비디오아트 작품을 상설시설하고 전자영상매체를 통한 전위예술을 국내외에 소개함으로써 미술발전에 기여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한국의 노력에 대해 백남준의 반응은 이랬다. "이번에 큰 놈을 만들어 조국에 선사하겠다" 그리고 백남준의 최종목적은 "세계를 보자기로 싸듯 연결시킨다(Lapping around the world)"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최고 난제 2가지다. 첫째, 1003대의 모니터 하중을 지탱하는 것 두 번째, 과부화 방지 및 열 방열 문제였는데 당시 다 잘 해결되었다.

과천국립미술관이 1985년 11월 15일 상량식 아니 개막식

다다익선의 탄생하기까지 그 뒷이야기가 많다. 과천국립미술관이 1985년 11월 15일 상량식이 있었는데 이 건물이 구겐하임 미술관을 흉내를 낸 것 같다고는 비판이 일자 1986년 초 건축추진위원회에서 램프코어를 구겐하임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서 백남준 비디오설치작품을 전시하자는 아이디어가 냈고, 백남준 비디오 아트작품이 워낙 번쩍거리는 작품이라 램프코어에 대한 관심을 끌 수 없기에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 가운데 1986년 8월 25일 드디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완공이 된다. 백남준은 "이 공간(램프코어)은 나를 위한 공간인 것 같다"고 만족했다고 한다.

<사진>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장(이경성)과 삼성전자 대표(안시환)가 모니터 기증 약정서에 서명하다
<사진> 백남준 1988년 9월 15일 다다익선 제막식 장면 II 전원을 올리는 장면 같죠

[04] 왜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인가 : 1003개 모니터마다 1000개의 콘텐츠

다다익선이 만들어졌을 때 1988년 가을 <현대미술>지에서 당시 기획자였던 유준상(전 서울시립미술관장)씨는 다다익선의 개념을 이렇게 함축적으로 설명했다. "방송이라는 것은 물고기의 알과 같은 것이다 물고기의 알은 수백 만개씩 대량으로 생산되지만 그 가운데 대부분이 낭비되고 수정되는 것은 별로 안 된다. 그러나 나머지 수정에 성공한 것도 또한 대단한 양에 이른다"

왜 다다익선인가 내 생각은 이렇다. 첫째, 전자회화가 1003개인데 각 모니터마다 1000개의 콘텐츠가 담겼다. 그것을 곱하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다다익선이다. 둘째, 다다익선은 전자회화이면서 전자설치이면서 전자조각이면 전자벽화이면서 전자TV이면서 전자음악이기에 그런데 그런 그림과 음악이 하나가 되어 흐른다. 아니 움직인다. 그래서 다다익선이다. 셋째, 동서양미술사를 포함한 세계미술사와 거기다 또한 총체적으로 1988년까지 인류문명사가 다 들어있다. 그래서 다다익선이다. 넷째, 정보사회에서는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소통과 더 원활해지고 세계평화와 공존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다다익선이다.

백남준의 '비디오공동시장'이라는 개념은 그의 70년대 초기작품 TV코뮌(Commune)에서 시작하는데 그것을 바로 다중 커뮤니케이션을 향한 상상인 것이다. 그리고 정보와 지식을 자유롭게 접근(Access)하는 것이다. 아이폰이 그거다. 미국국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핸하르트의 아이폰은 백남준 아이디어라고 했다.

[05] 이정성 테큐니션은 어떻게 다다익선 설치가 가능했나?: 백남준아트센터와 인터뷰

<사진> 백남준 다다익선 전원을 처음 올리다

당시 TV 1004대를 전원을 올리는 것인데 한국기술로 누전이나 불이 나지 않았다면 대단한 성공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가구당 1대의 TV를 1004가구에 동시에 전원을 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세계미술사에 빅뱅과 같은 대사건인 셈이다. 세계미술사를 뒤집어놓은 기록적인 해프닝 아트의 극치였다. 정말 그 규모와 배짱이 대단했다 부잣집 아들이나 그랬나 보다 이런 것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한 사람이 바로 이정성 테크니션이다.

백남준이 이정성 선생을 백남준이 주목한 것은 1986년 코엑스 국제전자박람회에서 그해 삼성전자가 64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는데 수소문중 이런 정보를 듣고 이 설치를 이정성 테크니션에게 의뢰했고 무려 530대 모니터 동시설치를 성공적으로 마쳤기에. 그 이후 모든 작품설치는 이정성의 몫이었다.

백남준 작품에 뉴미디어를 미술관이 소장할 때 필요한 경고가 있다. 그것을 전자제품을 언제고 다시 고쳐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런 면에서도 백남준이 선구적이다. 그가 우리에게 어떤 문제의 해답을 주는 작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다다익선의 보존 수리 문제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 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 증거이다.


<질문> 1988년 다다익선을 어떻게 설치를 하셨죠?
<대답> 그게 참 사연이 깊어요. 우선 작품명은 다다익선으로 정했고요. 모니터 1003대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분배기가 필요해요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알지만 당시는 비디오분배기가 뭔지 몰랐어요. […] 그 부품을 가지고 회로도를 그려 1대 20 아웃풋 짤 리를 80개를 만들었어요. 다다익선에는 그런 비디오 분배기가 80대가 들어가요 처음 만든 것이라 힘들어죠. 당시 생방송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매일 거기서 매달려야 했어요. 미술관 공사 측 분배가가 뭔지 모를 정도로 당시는 무지했지요. 미국에 분주한 일정으로 못 오시다 백남준 드디어 오픈 생방송 때 오셨어요. 직접 전원을 작동시켰는데 깜짝 놀랐어요. 맨 처음 하시는 말씀이 "한반이라도 작동돼도 잘 했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너무 좋아했다고 했어요. […]

그렇게 만들어진 다다익선을 무려 25년간(2003년)까지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일분 선의 문제가 생겨 2003년 3월 17일-5월2일까지 다다익선 리모델링을 실시해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재공개하였다(전원방식이 110V에서 220V 변경) 이때 백남준이 미국에서 이정성 선생에게 전권으로 할 수 있는 리모델링 AS 할 수 있는 위임장을 보냈다.

[06] 한국에서 백남준 예술은 민중미술보다 더 대우를 못 받는다

한국에서 백남준이 민중미술보다 더 대우를 못 받는다. 다다익선 지나치게 소홀하다. 고장 난 후에 그 소중함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소품도 아닌 대규모의 다다익선이라는 세계미술사 유일무이한 작품에 대해 이렇게 홀대할 수 있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을 예술품이 아니고 설치물로 분류하다니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창피한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있는 백남준 작품 <다다익선>은 10대 불가사의한 작품이지만 여기에서는 예술품이 아니라 설치물로 등록되어 있다.

만약 워싱턴 국립스미소니언미술관에 백남준이 기부한 '전자초고속도로(미국전역)'작품이 고장이 났다면 우리처럼 이렇게 내버려둘까. 게다가 국립현대미술관 영혼과 심장과 같은 작품이 아닌가. 이런 작품이 죽으면 국립현대미술관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는 다다익선을 너무 오랫동안 거의 공짜로 본 셈이다. 다다익선이 고장 난 후에 관객들 그 소중함을 절감한다. 앞으로 입장권을 받고 그 돈으로 작품보전유지비로 보태야 한다. 아니면 국세에 교육세가 들어가듯 국립입장권에 백남준 세금을 받아야 한다. 500원이든 1000원이라도 받아야 한다. 그 기금으로 백남준 작품 작동에 이상이 없도록 해야 한다

[07]게다가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은 3억 현 10억 정도 빚지고 있다


1993년 국립미술관 전시(휘트니미술관 순회전)에 국립미술관 돈이 없다고 하자 휘트니 비엔날레서 상금을 받은 3억을 기부한 적이 있다. 지금 가치로 따지면 10억이 될 것이다. 국립미술관은 백남준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갚아야 한다. 공짜가 어디 있나. 국립미술관은 이런 백남준을 위해서 사진전 한번 열고 10여년 넘게 회고전 한번 그 흔한 도록 한번 만든 적이 없다. 도록도 한권 나오지 않았다.

이참에 경기도 용인에 백남준아트센터를 국립현대미술관로 전환해야 한다. 겨우 한 전시에 1주년 때 사진전을 했을 뿐이다. 나도 참석했지만 그때 시게코 여사도 초대를 받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아주 어두웠다. 김찬동 현 수원미술관 관장이 한국미술관계자가 뉴욕 소호 백남준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과연 국립현대미술관이 백남준을 위해서 뭘 했냐고 버럭 화를 냈다고 하는데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베를린 국립미술관 근처 미술전문서점

내가 2017년 작년 베를린에 갔을 때 미테 지역에 있는 독일 국립미술관(신관과 구관) 옆에 미술전문서점이 있다. 그 주인이 내가 백남준 책을 찾으니까 하는 말이 백남준은 한국보다 외국에서 훨씬 더 유명하죠. 라는 뼈아픈 말을 나에게 건넨다. 창피해서 죽을 뻔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백남준 전문가 아이리스 문 독립큐레이터는 '국민모금운동'을 벌리자고도 한다. 이제는 문화재급 예술작품 보호모금이 필요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전시)에 관한한 전과자다. 백남준이 사후 국립현대미술관은 1주년 기념 2007년 사진전이 유일하다 당시 시게코 여사도 왔지만 그녀의 표정은 너무 어두웠다. 나도 이 전시에 참석했었다. 이런 한국미술계에서의 백남준에 대한 외면(무관심)과 배제는 백남준 작품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백남준 장 조카 켄 백(Ken Hakuda)은 아예 한국미술계와 인연을 끊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백남준 전시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전시)에 관해서는 전과가 있다]

[08] '다다익선'이 워싱턴국립미술관에 있었다면 저렇게 내버려둘까

미국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백남준 작품 백남준은 이 작품을 워싱턴 스미소니언 국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작품명 전자초고속도로·미국전역](Electronic Super Highway) 1995년 작품. Nam June Paik, 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ntal U.S. Alaska, Hawaii(detail), 1995, fifty-one-channel video installation (including one closed-circuit television feed), custom electronics, neon lighting, steel and wood; color, sound,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Gift of the artist.

미국 워싱턴 국립스미소니언미술관 연구진에 의해서 재료가 연도확인 소재와 주제 등 분류되고 연구된 백남준 아카이브 카탈로그(Items on Paper)가 완성되면 바로 여기 워싱턴 국립스미소니언미술관 백남준 아카이브 캐비닛에 보관된다. 이 작업을 앞으로 10년이 지나야 끝날지 아직 잘 모른다. 이런 아카이브 관리하는데 돈이 엄청 많이 들 것 같다. Photo Source:Nam June Paik Global Visionary 178

백남준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 소호거리 머서 스트리트 110번지에 있는 백남준의 작품용으로 모아둔 모든 오브제 물건 낡은 TV 등 7트럭을 백남준 상속자 켄의 허락을 받아 미국 워싱턴 국립스미소니언미술관 아카이브로 옮겨갔다. 이 골동품 같은 물건과 여러 TV로 과연 무슨 작업을 하려고 한 것인가. 이 물건들은 이 미술관 연구진에 의해서 지금도 계속해서 분류되고 연구되고 있다

우리나라라면 아마도 버렸을 것 같은데 이 골동품 같은 물건과 여러 TV로 과연 무슨 작업을 하려고 한 것인가.  현재도 이 프로젝트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주년 때 백남준 회고전을 하면서 그 정리된 아카이브가 전시도 열었다 이렇게 그들은 작가에 대한 태도와 높은 존경심은 우리하고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Photo Source: Nam June Pailk Global Visionary 144. [사진설명] Object storage at the Nam June Paik Archive at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DC/Photo Source: Nam June Pailk Global Visionary [사진설명] Staffs members catalog object at Nam June Paik Archive at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DC.

[09] 다다익선 해체 이것은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이 뭘 모르고 하는 발언이다.

다다익선은 국립에 선물도 대단하지만 그 이후 베니스 한국관 건립과 휘트니 순회전과 1995년 광주비엔나레 등 그가 한국미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끝이 없다. 다다익선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은 주장은 정보부족으로 뭘 모르고 하는 경솔하고도 배은망덕한 발언이다. 큐레이팅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 사고 미달이다. 큐레이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고 존중하는 것이다. 작가가 없는데 무슨 큐레이팅 있나. 특히 다다익선 문제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주장이나 견해이다.

백남준 분명히 자신의 작품이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고쳐지기를 바랬다. 볼록 모니터로 꼭 해야 한다는 주장은 백남준을 모독하는 말이다 백남준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하드웨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의 오리지널한 창작의 요소인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큐레이터는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고 자기들의 주장을 먼저 내세운다. 이것은 큐레이터들이 할 역할이 아니다.

[10] 작가의 예술혼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달려 있다.

백남준 작품 다다익선에서 하드웨어인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껍데기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혼이 담긴 알맹이인 소프트웨어(컨텐츠)다. 우리가 야만국가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 5000년 역사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예술 상징물을 소중하게 잘 지켜야 한다. 국립은 국민에게 문화서비스를 제대로 해야 한다.

작가의 예술혼은 소프트웨어에 달려 있다. 이정성 테크니션의 말에 의하면 지금 중요한 것은 지금 구조물, 모니터, 전자회로, 플레이어 같은 하드웨어(껍데기) 즉 작품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그것은 영상이 잘 나오느냐 아니냐 하드웨어는 부차적 문제다. 백남준이 죽음을 재촉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소프트웨어(알맹이) 중요하지 이 문제에 시비를 거는 건 어불성설 작가정신과 예술가의 혼은 바로 소프트웨어가 담겨 있다 작가의 혼과 창조정신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문제다. 하드웨어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버린다는 것은 세계적 작가에 힘들게 생명을 줄이면서까지 노력하면서 발명한 '창조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사실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 개발인데 백남준은 사실 이런 것을 발명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그런 창조적 활동이 중요한데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하드웨어 껍데기 모습과 그 화면이 볼록하냐 평평하냐 이런 걸 가지고 따지는 일은 사실 너무나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11] <전자아트의 특징 100%고장> "인생을 길고 예술을 짧다" –백남준

백남준은 다다익선이 10년-20년 안에 고장 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백남준은 모니터의 생명이 8만 시간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작품설치 설계를 맡은 김원 건축가가 전하는 말이다. 성능이 아주 좋다는 LG 냉장고도 20년 쓰면 고장 난다. 그런 원리와 같다. 실제로 2003년 3월 17일부터 5월 2일 사이에 리모델링이 되었고 그해 5월 5일 어린이날 공개되었다 그래서 백남준은 이정성 테크니션에게 언제라도 고치라는 위임장을 써 주었다. 2003년에서 15년이 지났으니 이제 업그레이드 할 때가 됐다.

그런데 여기서 백남준의 기상천외한 말이 나온다. "인생을 길고 예술을 짧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보면 내 작품이 혹시나 고정이 나서 재설치를 못 된다고 해도 인류가 살아있는 한 나의 작품 나의 아이디어는 영원하다는 말을 뒤집어 말한 것이다 모든 뉴미디어아트도 마찬가지다 고장이 나면 버린다. 언어도단이다

이정성 테크니션의 말에 의하면 다다익선의 고장이 났다고 하는데 이 문제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고 해결의지가 문제이다. 어떻게 하든지 길은 있다. 비용과 시간을 들어서 문제다. 돈과 시간과 의지의 문제이다. 못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안 고치는 것이다. 2003년에 전기회로 수리한 적이 있다(?). 별 문제가 없었다. 펑 소리가 나면 담당자는 놀라겠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고치기 가장 쉽단다.

[12] 다다익선 100% 수리 가능성은 100%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다
<2012년 11월 23일 13:30-17:30 국립현대미술관 소강당에서 열린 다다익선 학술대회]>


국립미술관은 이런 현대미술의 특징이 모르거나 아니면 백남준 작품에 대한 반감인가 이명박 시절인 2012년 11월 23일 13:30-17:30 국립현대미술관 소강당에서 다다익선 보존 어떻게 할 것인가(How to Conserve The More, the Better)라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발표자로 국현 '장업' 학예연구2팀장, 테이트 '핍 로렌슨' 소중품 연구팀장, 퐁피두 '크리스틴 반 아쉬' 뉴미디어 학예실장, '이정성' 다다익션 테크니션이 참가했다.

이정성 기술자의 말의 의하면 이것은 다디익선을 개선하자는 게 아니자 오히려 그 보전 가치를 희석화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지자 반박해 불참하려고 했지만 주최 측 간절한 설득에 못 이겨 참가했단다.

[13] 과부화의 위험이 높은 1003개 TV로 구성된 다다익선은 수시로 고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니 다다익선은 수시로 고치는 것이 정답이다. 1003개 TV로 구성된 과-부하되기 쉬운 작품은 수시로 고쳐야 한다. '다다익선'은 1003개의 TV로 만들어졌다. 가정에 TV가 1003대 있다고 생각해 보라. 고장이 안 나겠는가. 그것도 동시에 켜야 하는데 고장이 안 나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전기도 많이 든다. 이런 작품을 16-17세기 르네상스 페인팅 시대의 고정관점으로 보면 안 된다.

특히 전자제품은 습기와 먼지에 약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전자 작품의 특징을 16세기에 탄생한 페인팅기준으로 들이대면 안 된다.그러면 정말 미술에 무지한 사람이 된다. 21세기에는 그런 고정관념을 수정되어야 한다. 백남준 작품은 앞으로 발전하는 뉴모델의 모니터로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14] 외국이 전자아트 수리 사례 2가지다 그래나 궁극적으로 수리하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이런 경우 처리방식 2가지가 있단다. 미국-일본은 주저 없이 교체하는 방식이다. 물론 뉴욕 체이스 맨해튼 은행에 있는 백남준 작품 이 고장 났을 때 은행은 돈을 많이 들여 원상 복구했단다. 그러나 이것은 약간 예외적으로 그냥 고친다. 독일은 가능한 미리 구식 TV를 확보했다가 고친다고. 나중에 그 한계점이 오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결국은 모니터의 원형을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다다익선을 만든 이정성 테크니션은 지금이라도 의지만 있으면 고칠 수 있단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고 의지의 문제다.

그 대안은 무궁무진하다. 이정성의 말에 의하면 한전의 기계적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는 성급한 결론이다. 당시 불가피해서 동양전자 10인치 600개(?)썼지만 LCD(평명 모니터) 교체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겉모양에서 반원형가 아니라 평형 되는 정도란다. 물론 국립미술관 이 작품 담당자는 10년 간 애환이 많다. 게다가 TV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도 애로사항이다. [참고] 미술관은 1988년 이 작품이 설치된 이후 2010년 244대, 2012년 79대, 2013년 100대, 2014년 98대, 2015년 317대를 교체했다. 그리고 그것을 수리할 기술자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깔려 있다.

[15] [국립현대미술관의 입장]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질문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질문이 좀 길었다. 이 문제에 대해 관장의 답변은 매우 성실했다. 내가 이미 한 질문에 그 대안이 다 들어 있었기 때문에 따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가 많은 사람의 관심거리라는 것은 인정했다. 바로 내 옆에 앉아있는 기자도 이걸 질문하려고 했다. 하여간 마리 관장은 나의 입장에 수긍하는 편이었으나 실제로 실천으로 옮길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질문은 가능한 짧게 하려고 했지만 길어졌다, 부연설명을 하면 아래와 같다. 가능한 빨리 시민들에게 돌려줘야-마리 관장 다다익선에 대한 입장을 언급하다. 마리 관장 다다익선에 대한 입장을 성실하게 대답했지만 특별한 대안을 없었다.

<참고> 이런 2015년 [다다익선 국정감사내용] 정 의원(진보당)은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 작품 42점 중 17점이 최근 5년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적 없이 수장고에만 있어 시민들이 작품을 볼 기회가 적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모니터 생산중단은 예견된 것이었는데도 그동안 예비모니터 확보를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 작품 42점 중 17점이 최근 5년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수장고에만 있어 시민들이 작품을 볼 기회가 적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보면 국립미술관은 백남준 작품의 보전이나 전시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16] 지난 2월부터 다다익선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각계 의견

*[초대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이영철] -천재예술가는 국가도 못하는 일을 혼자서 한다.

세계에서 정보통신이 가장 발달한 한국 삼성 LG와 같은 기업이 있는 나라에서 창피하게 모니터가 어쩌고저쩌고 정말 말도 안 된다. 이런 사건은 바로 백남준에게 물어봐야 한다.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큐레이터는 항상 작가가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 스스로 언제 고치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모니터가 부족하고 전기세 너무 나가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어처구니없어 격분하게 된다. 국립미술관과 그 관장과 책임자들 정신나간사람들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뒤샹이 만든 예술 랜드와 베어드랜드(TV발명자) 만든 하이테크 랜드 그 사이에 백남준은 세계미술사적으로 그 통로를 찾은 사람이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 아니다. 중요한 사건이었다. 백남준 같은 천재 예술가는 한 기관(국가)이 못한 일을 했다 이런 천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다다익선).

백남준은 이미지 생태계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예술가란 바로 그 시대의 이미지가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지 그는 그런 비밀을 캐는 어마어마한 일한 사람이다 다다익선이 뭔가 천지개벽 개천절이라는 새로운 하늘이 열린 것은 알린 것이다. 정보사회의 새로운 도래를 말이다. 그런 시대정신과 한국의 역사 등 모든 것을 집약한 작품으로 한국에 와서 가장 한국적인 작품을 만든 것이다. 세계의 이미지 생태계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모니터가 어떻게 전기세가 어떻게 너무 좀스러운 관료화된 사고가 아닌가. 모니터가 무슨 예배대상이나 숭대대상도 아닌데 이런 것은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영철 평론가 말처럼 백남준아트센터는 이제 국립 미술관이 되어야 한다. 물론 디렉터는 따로 뽑아야 한다. 국립이라도 독자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국가예산으로 백남준 예술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하긴 백남준 국가 도움 없이 혼자서 많이 알렸지만 이제는 보다 국가사업으로 알려야 한다.

*[정준모 큐레이터 전 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그는 당시 다다익선에 직접 관여한 실무자였다]


[배경설명] '다다익선'은 2002년 모니터 노후화로 화재가 발생했다. 당이 이 사업에 관련한 이러던 중 2002년 말 전면 TV교체계획을 세워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일은 순탄치 않았다. 세미나를 열고, 백남준과 의논하며 작업의 가닥을 잡았는데 소위 타임베이스 미디어아트(Time based Media Art)라는 점 때문에 작업은 조심스럽고 어렵고 더뎠다. 문제는 2003년 당시 1988년에 사용한 검은색 외관의 TV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백남준은 TV에 영상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니 모양이나 색에 구애받지 말고 ‘TV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결론은 지금의 TV외형에 브라운관을 빼내고 평면모니터를 안쪽에 고정시키면 볼륨감도 형상도 유지되니 그리하면 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와 새삼 또 무엇을 의논하고 검토할 것인가. 그의 작품을 생전의 백남준과 논의된 대로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작가’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길은 아닐까. 돌다리도 너무 두드리면 깨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7] <누전문제는 어떻게 해결 이정성 기술자의 대답> 백남준은 다다익선을 만들면서 가정용(1인용)으로 만든 TV를 예술용으로 만들다 보니 무려 1003개의 TV를 동시다발로 사용했는데 이것은 역시 백남준의 스케일을 읽어볼 수 있는 점이기도 하지만 누전의 위험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데 이것을 한전 누전 기준인 250K 이하로 만들려면 아주 간단하다. 전원을 멀티캡에 꽂지 말고 중간에 누전방지 트랜스를 하나 더 연결해 꽂으면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TV 1003대를 동시에 사용하다 보니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식구가 1003명이 되는 가정에 비유한다면 그 많은 식구 중 문제아 많은 자식도 꼭 생기게 마련이다 -이정성 테크니션의 의견>

[백남준의 테크니션은 국제적 5명 30년간 백남준과 동고동락했다]

[18] <비디오 아티스트 폴 게린(미국의 백남준 작품 테크니션) 다다익선 수리를 위한 2가지 제안

우선, 전기세 과잉에 대해서는 태양열과 풍력에너지로 하면 된다. 그리고 모니터 영상문제는 지금의 볼록 모니터(브라운TV)를 미래세대에 이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평면 화면(LCD모니터)으로 교체한다. 브라운관이 노후해 ‘다다익선’의 존속 여부조차  힘들어졌지만 미래세대에 이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평면 화면(LCD화면)을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남준이 살아있었다면 태양열과 풍력에너지로 ‘다다익선’에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을 것”이라며 “우리는 최신의 기기, 방법, 매체로 그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성대표> 같은 의견이다. 그런데 이 2가지 모니터의 차이가 있다면 브라운 식은 화면이 볼록하고 LCD 평평하다. LCD 화면이 더 화면이 선명하다. 그런데 혹자는 이것 때문에도 브라운 식은 LCD방식으로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백남준은 후기 작품은 LCD방식을 사용했다 그 당시 브라운식을 쓴 것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브라운식을 주장하는 사람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왼쪽 LCD(10인치), 오른쪽 브라운식(모니터 10인치)
백남준의 다다익선 TV 모니터가 고장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작품을 처음 만들었을 때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기에 백남준 당사자는 당연히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교체하라고 위임장을 써 주었지만 말이죠.

<이정성 의견>왼쪽 것이 LCD(10인치)이고 오른쪽이 지금 작품에 쓰인 브라운식(모니터 10인치)다 비교해 보니 LCD는 무게가 과장해서 브라운 식의 100분의 1이다 속이 텅 비어 열 받을 일이 없다. 그리고 브라운식은 10인치프레임 안에 온갖 것들을 쓰셔 집어넣은 듯 내부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여러 장치로 꽉 차 있다. 그러니 당연히 열을 받는다. 그래서 에어컨 가동한다. 게다가 마이컴이 부착되어 있기에 고장 나기가 더 쉽다. 이런 TV모니터가 여러 개 병렬식으로 연결하니 그만큼 문제가 많아질 확률이 추가로 높아지는 것이다 [고장난 브라운 TV를 1개만 따로 떼어 놓으면 다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단다.

<백남준 후기작품은 평면 LCD 모니터를 사용하다 다다익선을 이것을 바꿀 수 없다는 주장은 백남준의 랜덤하고 유연한 예술세계를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서울랩소디는 백남준의 후기작품 메카트론(전자벽) 시리즈 작품 중 하나로 백남준은 여기서 다다익선에서 사용한 볼록한 모니터를 쓰지 않고 평평한 모니터를 사용했다 [뒷줄]독일과 유럽 담당 요헨 샤유어라커, 마크 파스팔 미국 신시내티대 교수(백남준 테크니션) 미국 레이저아트 담당 노만 발라드 [앞줄] 미국 비디오와 방송 및 컴퓨터 담당 폴 게린 작가, 이정성 한국 아트마스터 대표

백남준은 다다익선을 만들면서 가정용(1인용)으로 만든 TV를 예술용으로 만들다 보니 무려 1003개의 TV를 동시다발로 사용했는데 이것은 역시 백남준의 스케일을 읽어볼 수 있는 점이기도 하지만 누전의 위험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데 이것을 한전 누전 기준인 250K 이하로 만들려면 아주 간단하다.

[19] 마무리: 백남준의 저작권자 하쿠다 겐 백과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협의도 따라야

미술관이 보존 방안을 마련할 때 백남준 작품 저작권자인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백남준의 조카 하쿠다 겐 백과 협의해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보존해야 할 이유는 많다.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라는 백남준의 세상에 현존하는 가장 큰 대표작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현대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외국에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몰라도 ‘백남준 타워’가 있는 미술관은 알 만큼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사실 ‘우리’ 백남준이라고 자부하지만 뒤셀도르프는 백남준 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저작권 관리는 스미스소니언이 하고 있어 다다익선마저 없다면 우리는 빈껍데기 백남준만 가진 셈이 된다. 다다익선을 살려야 하는 이유는 이외에도 부지기수다

백남준 움직이는 전자음악페인팅을 관객이 실제로 볼 수 있도록 구현하는 전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많은 테크니션들: 독일과 유럽 담당 요헨 샤유어라커, 미국 비디오와 방송 및 컴퓨터 담당 폴 게린 작가, 미국 레이저 아트 담당 노만 발라드

뒤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서울랩소디는 백남준의 후기작품 메카트론(전자벽) 시리즈 작품 중 하나로 백남준은 여기서 다다익선에서 사용한 볼록한 모니터를 쓰지 않고 평평한 모니터를 사용했다 백남준의 다다익선 모니터를 꼭 볼록한 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은 그런 면에서 전혀 설득력이 없다 당시에 그런 모니터밖에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으로 교체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너무나 옹졸하다 백남준적이지 않다

<마크 파스팔 미국 신시내티대 교수> “남준의 천재성이 빛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공동작업에 탁월했고, 비전을 현실로 실현해 줄 사람들을 가까이 뒀다는 것. 주변 이들에 대한 이런 신의와 우정이야말로 그가 가진 가장 훌륭한 재능이었죠. 이제 우리는 그의 업적을 지켜야 합니다.”


지금 다다익선 콘덴서(축전기)가 1가 뻥 터진 것으로 아는데 이정성 테크니션에 의하면 뻥 터진 것은 고치기 가장 쉬운 것이란다. 걱정할 것이 없단다. 사실 고치기 힘든 것은 소리가 없는 경우라고 그리고 요즘에는 콘덴서 헤드에 3개의 금이 가 있어 터지기 전에 공기압력 혹은 열에서 나오는 김을 빼주는 역할을 하기 그런 고장은 거의 없단다. 아래 자료 사진을 보면 큰 것은 금이 없는데 작은 것은 머리 부분에 3개의 금이 그려져 있다 작지만 이것이 터지는 것을 방지해준단다 그 아래 크기가 작은 콘덴서도 마찬가지다


<이정성선생이 보관하고 있는 백남준 아카이브> To whom it may concern 李正成(이정성) 씨에게 多多益善(다다익선) after service에 관한 전권을 일임한다. 백남준 미국 뉴욕에서 팩스(305-538-6445) 2002/6/03  백남준은 이정성을 장난기로 'LEE정成' 이런 방식으로 쓰기도 하다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Civilization-The Way We Live Now]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원형전시실에서 2018. 10. 18일-2019. 02. 17까지 32개국 135명 작가의 300여점의 소개 MMCA 과천 전시 이후 중국, 호주, 프랑스 등 순회전 예정 기획 국립현대미술관과 FEP(미니애폴리스·뉴욕·파리·로잔 사진전시재단(Foundation for the Exhibition of Photography) 디렉터: 토드 브랜다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가을의 한복판에 눈부신 햇살 속에 작품은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었다 브네의 야외조각도 벌써 12살이 되었다


https://www.flightradar24.com/46.41,58.18/3 이 사이트를 클릭하면 현재 전 세계 비행기의 이동상황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만대 이상의 비행기가 하늘에 떠 있는데 서로 충돌없이 잘 운행을 한다는 것은 기적처럼 보인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의 관점은 문명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인가 아니면 밑에서 위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내 바로 옆의 모습을 보는 것인가 사진은 번역없이 누구에게나 전달가능한 시각 언어이다.

기자간담회 '미리'관장과 '윌리엄 유잉'와 '홀리 루셀' 큐레이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원형전시실에서 2018. 10. 18일부터 2019. 02. 17까지 / 32개국 135명 작가의 300여점의 작품 소개 / MMCA 과천 전시이후 순회전 전시기획:윌리엄 A. 유잉(전 로잔 엘리제 사진미술관장), 홀리 루셀(아시아 사진 및 현대미술 전문 큐레이터) -문이번 전시는 이 지구상의 문명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문명은 잠들지 않는다 <아래 4번째 작품> 킨디다 회퍼 작품 고대유물이 이렇게 현대미술관에 전시될 것이라는 것을 과거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21세기 인류의 신세대 풍속화를 얼마나 어떻게 카메라 렌즈에 담고 있는지 알 아볼 일이다. 사진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재맥락화하고 재편집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진으로도 세상이 환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진을 아마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것인지 모른다. 문명(文明)은 바로 이 세상을 밝히는 것이리라 이번 주제는 거창했지만 그리고 아주 디테일안 부제가 붙었지만 전혀 지구촌의 모습을 제대로 밝히지는 못한 것 같다 그 시도는 좋았지만..

사진은 무엇보다 시간문화의 전위로서 시대의 흐름 보여준다. 사람과 사물의 이동만이 아니라 화폐의 흐름과 유행의 변화 산업 인프라 디지털 시대의 등장으로 사양 산업이 생기고 심각한 자연파괴 재해 지진 등 모습도 극적으로 포착한다. 사진은 문명의 실패 매정 비극을 또한 가장 리얼하게 보여주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결론 과거를 알려주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현재를 직시하게 역사가의 역할도 한다.

마리 관장은 “이번 전시는 동시대 문명을 보여주는 자리이자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토마스 스트루트 I 페르가몬박물관 하나 2001.윌리엄 유잉 큐레이터가 설명하다.

문명은 복잡한 기계와 같다 일종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권력구조 정부 군사 외교 이념 등의 메커니즘 속 통제라는 문제에 부딪치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도 창안해 낸다. 사진의 무한한 가능성의 기능은 일종의 권력과 맞서는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김도균 I 스페이스 팩션 연작 2005

사진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가를 정의할 수 있고 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전시는 작가들이 포착해낸 문명의 다양한 측면을 8개의 섹션주제 ‘벌집(Hive)’, ‘따로 또 같이(Alone Together)’, ‘흐름(Flow)’, ‘설득(Persuasion)’, ‘통제(Control)’, ‘파열(Rupture)’, ‘탈출(Escape)’, ‘다음(Next)’으로 구성된다.

리하르트 데 차르너 I '무관심 속에 공존' 수단연작 2010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역시 인간에게는 인지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 인간은 이야기 픽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과 이미지를 생성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마시모 비탈리 상 파울루 시장의 아날로그 디지털 두 폭 제단화 2012

사진은 인류문명을 관찰하는 거대한 만원경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계의 세상을 또한 망원경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 메커니즘은 우주탐사에 가능하는 네트워크가 되기도 한다 사진의 기적은 기술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그런 순간의 황홀함이 사람들오 하여금 밑도 없이 끝도 없이 사진을 찍게하는 동기가 아닌가도 싶다

칸디다 회퍼 I '장크트 플로리안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III' 2014

칸디다 회퍼(Candida Hofer)가 현대의 여러 도서관 내부를 수년 간 촬영해 왔지만 위 작품은 819년에 만들어진 오스트리아 장크트 플로리안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유명한 바로크 건축 양식의 도서관을 찍은 사진이다. 21세기 문명을 조망하는 전시에 포함된 것이 아마도 1300년 정도의 시간차가 있지만 그럼에도 상호 관련성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장엄한 천장 장식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화려하고 풍부한 바로크 양식은 형태가 기능을 따르는 현대적인 시각에 낯설지만, 그럼에도 이곳에서 우리는 시대를 막론하고 도서관이 인간 벌집에 핵심적인 장소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책 속에는 고대로부터 이어진 인간의 집단적 노력을 이끌어 온 과학과 기술, 예술과 철학의 열쇠가 되는 중요개념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언 골딘 크리스 쿠타나 발견의 시대 2016

문명에 대한 견해 도 나라마다 다르다 독일은 문명과 문화를 독립해 보는 반면 영국이나 프랑스 문명과 문화를 상호 의존적으로 본다 사진은 시대의 증인으로 21세기 풍속화를 파노라마 방식으로 순식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전파하면서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가 크다 이제 사진은 거대한 권력으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미래학자 제임스 마틴은 자멸할 수 있는 현대문명일 수 있다고 이런 인류의 위험과 멸망을 사전에 막을 줄 예방주사가 될 수도 있다

로버트 워커 뉴욕 타임스퀘어 2002

시간을 한계를 넘어 공간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확대할 수 있는 시각매체이기도 하다 8가지 섹션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멸종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주 그리고 교통과 통신과 소통의 문제의 장애를 뚫어야 하는 과제가 크다 이럴 때 사진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헤 보게 한다 사진을 진실을 증언하기 위한 인간이 만든 최고의 고발장치일 수도 있다 사진은 사람이고 사랑이고 삶의 한 스타일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해답은 없다

사진은 멋지게 보이지만 사실은 대인지뢰를 찍은 사진이다

로버트 워커 뉴욕 타임스퀘어 2002

이런 사진을 문명비평적으로 보면<21세기 사는 우리는 정보의 질주 속에 광고라는 버스를 타고 가는 혼과 뇌가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어 한다. 도망 욕망 점점 커지고 그것은 여행 욕망을 낳고 모르는 세상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의 보다 멀리 보다 높고 보다 깊은 곳을 탐색하려는 몸부림으로 사진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루카 차니에 I FIFA 취리히 집행위원회 권력의 통로 연작 2010FIFA 본부사진도 있다

그 이면에 치열한 전쟁이 있고 어마어마한 돈 거래도 이루어지고 비리가 많다 부패권력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을 감시하는 것이 또한 사진이다 올림픽은 2조가 왔다갔다 한다 그것을 유엔에 안전보장이사회도 다르지 않다. 약소국의 행복과 입장은 깡구리 무시된다. 안보리 결정은 카다피 같은 존재를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을 좌우하기도 한다

"문명이 문화를 파괴하지 않은지, 기술이 인간을 파괴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것은 오늘날 인류의 의무이다" 빌헬름 몸젠 역사가 사진가의 역할일 수도 있다


훌륭한 도록이 나왔다 문제는 좋은 작품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우라가 번뜩이지 않는다.

아래는 그의 다른 대표적 작품이다 젊어서 사진을 머리숱이 많았는데 이번 직접보니 너무 작업을 열심히 했는지 머리칼이 다 사라졌다.

왕칭송(WANG Qingsong, 1966~)은 중국의 사회개방 이후 자본주의와 서구문화 유입으로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 사회를 냉철한 시선으로 고발하며 화려한 문화 속에 가려진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나 현실에 감춰진 진실을 보여준다. 디지털로 합성해 작업한 초기 사진부터 2000년 이후 인간 군상을 등장시켜 중국의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소비사회의 근원과 인간의 깊은 내면을 표현한 작품 등 총 16점이 전시되어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왕칭송(중국작가), 'Work, Work, Work'.2012
왕칭송이 작품을 통해 발언하는 중국은 경제, 사회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고통 받거나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 군상의 집합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모순적 삶의 태도나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논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많은 인원을 동원해 마치 연극무대처럼 과장된 상황과 극적 요소들로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고 이를 촬영한다. 왕칭송의 차별화된 작품제작 방법과 작품에 담겨있는 특유의 풍자적 비판과 유머는 중국의 현실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사진이라는 다분히 객관적인 성격의 매체를 사용해 눈에 보이지만 망각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담은 그의 작품은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아시아의 대표적인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프란체스코 치촐라 한 배를 타고 2015
2018년 모든 전시에서 한반도 빠지지 않는 주제는 역시 난민에 관한 것이다 이번 사진전에 예외일 수 없다. 인류의 최고 과제로 난민을 우리가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 숙제로 남게 되었다 난민은 1990년대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등장한 신자유주의 30년이 낳은 인류의 비극이다 사진은 왜 신자유주의의 그 비인간적인 잔인한 폭력성을 밝혀내지 못한 것인가 일종의 직무유기다

조르지 비초브스키 작품 봉쇄된 국경에서 벌어진 이민자와 마케도니아 경찰의 충돌 2015 <난민주제사진>

한성필, <듀플리케이션>, 2010 © Courtesy of the artist, Art Space Ben in Seoul & Blanca Berlín Galería, Madrid 이번 전시에 좋은 작품은 드물다 한성필 작가가 매우 돋보인다

예술 역사를 통틀어 끊임없이 경쟁을 벌여온 두 갈래의 사조가 있으니, 바로 사실주의와 이상주의다. 현대의 도시라는 기계의 그을음 속에서 어떻게 이상을 이룰 수 있을까? 한성필의 ‘파사드’ 연작은 현대의 도시 풍경을 작품에 담아냄으로써 이러한 이중성에 간접적으로 접근한다. 사진가 한성필은 세계를 다니면서 뛰어난 관찰력으로 건설 현장이나 보기 흉한 건물 개축 현장을 숨기는 용도의 가림막에서 특이한 건축 파사드 사진이다.

그 대규모 이미지들 중에는 예전에 그 자리에 있었으며 앞으로 다시 그 공간을 차지하게 될 건물의 사진도 있고, 환상을 그려내는 낭만적인 이미지도 있다. 한성필에게 그러한 파사드는 실제하는 그 공간이 지닌 ‘새로운 기억’을 형성할 가능성을 지닌다. 건물을 이런 그림으로 가리는 것은 여러 문화권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한성필의 사진은 보기에 안좋지만 실제하는 모습을 반반하게 꾸민 이미지로 가리는 우리 문명의 집착에 의문을 던진다. 또한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지점을 담아냄으로써 진짜와 가짜의 모호한 경계를 강조하며, 매개체로서의 사진에는 근본적으로 언제나 원본과 사본이 존재한다는 것도 생각하게 만든다.

울라프 오토 베커 Super Tree Grove 싱가포르 2012년 10월

에드거 마틴스 I '충동실험용시험장' 뮌헨 2015***

<제목: 노동하는 자의 모습을 예술영화로 승화시킨 거장 '하룬 파로키'>

국립현대미술관,《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전 MMCA 서울 6, 7전시실, 미디어랩에서 2018년 10월 27일(토)- 2019년 4월 7일(일)까지 열린다. 노동자의 관점을 예술영화로 승화시키다 그는 영화학교에서 여러 번 퇴학을 당하다


김은희 큐레이터 설명 [1] 노동과 전쟁과 테크닉 이면 도사리는 미디어와 산의 폭력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폭로하고 고발하다 [2] 20세기 예술영화 시네마에 중요한 작가 중 하나 [3] 사회문화현상을 치밀하게 조사하고 추적하고 편집하며 비정상(이성상)사회를 정상(이성)사회를 회복시키는 데 관심을 두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하룬 파로키는 미술과 영화를 연결하는 훌륭한 작가"라면서 "지금은 하룬 파로키의 눈과 손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기자간담회 참석 안체 에만(가운데)

안체 에만(Antje Ehmann. 1968~)소개: 큐레이터이자 작가이며 예술가이다. 하룬 파로키와는 2001년 결혼했으며, 현재 하룬파로키GbR 대표이다. 최근 기획한 프로젝트로는 <Harun Farocki. What is at Stake>(2016년 발렌시아 현대미술관), <Labour in a Single Shot>(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등이 있다

[4] 영화를 통해서 관객이 진실된 면모를 사유하고 대상을 인식하며 그것을 넘어서 우리의 손과 문이 지금 어디에서 필요한지 살핀다 [5] 노동의 현장을 주제로 현장중심의 작품을 소개하다 [6] 48편의 영화가 소개되고 11월 4일부터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 [7] 이 작가가 작고했기 때문에 작업의 동반자였던 안체 에만그의 시리즈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파시즘과 산업경제와의 관계를 조사하면서 '두 전쟁 사이에서', '이미지-전쟁', '세계의 이미지 그리고 전쟁의 각인'과 같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하룬 파로키(아래사진)는 1944년 인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 인도네시아를 거쳐 서베를린으로 이주, 1966년 첫 단편영화 <두 개의 길>을 선보이고 베를린영화아카데미 1기 입학생으로 들어간다. 이후 작가는 영화를 통해 의미를 생산하는 이미지와 이렇게 생산되는 이미지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지속적으로 분석해왔다.

본 전시에서는 그의 첫 번째 전시작품 <인터페이스>와 컴퓨터 그래픽이미지의 세계를 분석한 <평행>시리즈, 그리고 2014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진행됐고 사후에도 큐레이터이자 작가인 안체 에만(Antje Ehmann)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노동의 싱글 숏>프로젝트를 포함한 총 9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5년부터 <필립 가렐>, <요나스 메카스> 등 현대영화사의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로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으며, 올해는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미디어아티스트, 그리고 비평가였던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1944~2014)를 조명한다. 노동, 전쟁, 테크놀로지의 이면과 함께 이미지의 실체를 추적해온 하룬 파로키는 이미 뉴욕 MoMA(2011), 런던 테이트모던(2009.2015), 파리 퐁피두센터(2017) 등에서 소개된 바 있다.

4부로 구성된 <평행>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이미지 장르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최근 들어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영화보다도 더 흔한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에는 불어오는 바람과 기계가 만들어내는 바람이 있지만 컴퓨터 이미지에는 이런 두 종류의 바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룬 파로키 I '평행 I – IV' 하룬 파로키 필름프로덕션, 2 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컬러, 사운드 , 16분(연속재생), 독일, 2012-2014 컴퓨터이미지와 영화이미지가 어떻게 상호영향을 주고 보완해주는가를 보여주다 인간의 극히 제한된 행동의 선택과 그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평행Ⅰ'은 컴퓨터 그래픽 양식의 역사를 연다. 1980년대 처음 나온 게임들은 수평선과 수직선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추상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늘날의 재현은 포토 리얼리즘을 지향한다. 
'평행 Ⅱ와 Ⅲ'은 게임 속 세상의 경계와 사물의 속성을 탐구한다. 많은 게임 속 세상들은 우주에 떠있는 디스크 형태로 나타나는데 헬레니즘 이전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연상시킨다. 게임 속 세상은 막 앞의 무대와 배경이 있는 연극 무대 같다. 게임 세상에 있는 사물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다. 이 사물들의 속성들은 각각 따로따로 만들어져서 배당되어야 한다.


'평행 Ⅳ'은 게임 플레이어들이 추종하는 게임 속 영웅들을 살펴본다. 그들은 1940년대 L.A., 종말 이후, 서부영화 또는 다른 장르의 세계 속에 등장한다. 영웅들은 부모나 교사가 없고 자신이 따라야 할 규칙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영웅들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호환가능한 수많은 짧은 문장들 안에서 매우 드물게 성격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이 창조한 인간의 모형,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이다. 이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창조자로서 자부심을 갖는다. - 하룬 파로키

하룬 파로키 I 비교 하룬 파로키 필름프로덕션 / 2 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 컬러 / 사운드 / 24분(연속재생) / 독일 / 2007

<비교>는 수공업 형태의 노동이 생산기계의 발명과 함께 대량생산 체재로 변화하면서 기계가 노동력을 대체하게 되는 산업혁명의 과정 속에서 공존하는 노동의 여러 형태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전통적 방식으로 벽돌을 생산하는 아프리카와 인도의 노동자들과 첨단기계로 벽돌을 대량생산하는 유럽의 벽돌공장 이미지를 비교해 볼 수 있다.

하룬 파로키
 <인터페이스>, 1995 프랑스 빌뇌브다스크 현대미술관, 하룬 파로키 필름프로덕션, 2 채널 비디오 설치, 컬, 사운드, 23분(연속재생), 독일, 1995

1995년에 나는 미술 전시회를 위한 작품을 제작할 것을 권유 받았는데, 이는 이중 채널 작품 <인터페이스>(Schnittstelle/Interface, 1995)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인 듯 했다. 비디오를 편집할 때는 이미 올라와 있는 이미지와 다음 이미지의 미리 보기, 두 장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영화를 편집할 때는 한 장의 이미지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작품의 출발점이었다.

고다르가 1975년에 (주로) 두 대의 비디오 모니터를 보여주는 35mm 필름, <넘버 2>(Numéro Deux)를 발표했을 때, 나는 이게 바로 비디오 편집의 새로운 경험, 즉 두 이미지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임을 분명히 발견한 것이다. 이 두 이미지는 무엇을 공유하는가?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와 어떤 공통점을 가질 수 있는가? - 하룬 파로키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미술관 설명문

하룬 파로키 I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12 채널 비디오 설치, 흑백과 컬러, 총 36분(연속재생) 2006년 작품 12편의 <영화콜라주 작품 혹은 비디오 설치미술>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2006)은 노동의 이미지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고고학적 시각으로 추적한다.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최초의 기록영화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모티브 삼아 영화사 110년간 제작된 수많은 영화 속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룬 파로키는 1895년 최초의 영화 발명가인 뤼미에르 형제가 찍은 노동자들 퇴근하는 모습의 영상(아래사진)부터 등 11명의 감독 1명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감독이 만든 일을 마치고 노동자들 공장을 나서는 작품 12채널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의 압권은 역시 찰리 채프린의 작품 <모던 타임스>다 모던 타임스를 보면 채플린이 아인슈타인 급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뤼미에르 형제의 카메라는 뷰파인더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묘사하는 광경을 확인할 수 없었다. 노동 구조는 노동자들을 동기화하고, 공장의 문은 그들을 하나의 무리로 만들며, 이러한 압축의 과정은 노동력이라는 이미지를 만든다. 이러한 묘사는 우리에게 문을 지나는 사람들이 근본적인 무언가를 분명히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하룬 파로키의 글>

이미지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기에, 이러한 시각적 비유는 수사적 형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를 다큐멘터리와 산업영화, 프로파겐다 영화들에서 발견하는데, 음악과 말들의 뒷받침을 받는 이미지는 ‘피착취자들’, ‘산업 프롤레타리아들’, ‘주먹이 된 노동자들’, 혹은 ‘대중 사회’와 같은 텍스트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공동체의 외양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서둘러 문을 지나자마자, 그들은 개인으로 흩어지는데, 대부분의 서사 영화들이 다루는 것은 노동자들의 바로 이러한 존재 양태이다. 공장을 떠난 노동자들은 시위를 위해 한 몸으로 단결한 노동자들 뒤에 남지 않기에, 노동자로서의 이미지는 흩어지는 것이다.

하룬 파로키에 이어 부인인 안체 에만이 작업 I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사람들' 지금도 계속 진행중인 작품 12 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컬러, 사운드 2012-2014 지금까지 자본주의에서 반은 자본 반은 노동이 합처져서 자본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파로키는 바로 거의 소외되어 있는 노동자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두고 영상작품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매우 흔한 풍경이자 하찮은 모습이지만 이것이 가지는 또다른 뜻밖의 사건을 부각시키고 있다 <개인의 정서나 모습이 아니라 사회적 정서나 풍경을 보여준다>안체 에만(지금은 혼자 작업),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은 그들의 노동현장, 시설, 근로조건을 상상하게 하는 한편, 군중의 모습으로 규합된 단체 이미지와 이내 흩어지게 되는 개인의 이미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안체 에만, 하룬 파로키 I '노동의 싱글 숏' 2011~2017 독일문화원 협력, 16 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컬러,/ 사운드 / 2011-2017<16개 영화를 동시에 본다 극장과 미술관에서 보는 영화의 큰 차이는

우선 미술관에서는 12채녈 16채널도 가능><노동의 싱글 숏>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각 15개 워크숍 도시와 지역의 특성에 응답하고 최대한 이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각 도시에서는 매일 갖가지 노동이 행해진다. 구두 수선공, 요리사, 웨이터, 창문 닦이, 간호사, 문신 예술가, 환경미화원 등.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은 닫힌 문 뒤에서 발생한다.

노동은 흔히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상상할 수도 없다. 따라서 면밀히 조사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디서, 어떤 종류의 노동을 볼 수 있나? 무엇을 숨기고 있나? 도심에서, 그리고 주변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도시들의 특성은 각각 어떠하며 특이한 점은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노동 과정이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도전 과제를 주는가?

비디오를 영화처럼...우리는 19세기 말 초기 영화 – 뤼미에르 형제의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과 <기차의 도착> – 의 방식을 따른다. 이는 이 영화들의 단호한 면들로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다. 하나의 연속된 숏으로 완성된 이 초기 영화들은 움직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세히 보고 카메라에 담을 만큼 가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로 촬영한 이 영화들의 시점은 고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종종 우유부단한 숏들을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싱글 숏 영화는 예정과 개방성, 구상된 것과 뜻밖의 사건을 결합한다. - 하룬 파로키, 안체 에만

4년 전에 작고한 '하룬 파로키'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7일부터 시작 전세계 노동 현장 필름에 담은 작품 등 선보여 전시와 연계하여 세계적인 영화학자인 레이몽 벨루(프랑스)를 비롯해 에리카 발솜(영국), 톰 홀러트(독일), 크리스타 블륌링거(오스트리아) 등의 강연이 진행된다. 11월 14일부터는 하룬 파로키의 영화 48편이 MMCA 서울 필름앤비디오(MFV) 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브랑쿠시전 Neverending Brancusi] 현대조각예술의 시원과 영원성 엄갤러리(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오굴길 37 www.ummuseum.com )에서 2018.1010-12.30까지 한국에서 브랑쿠시 전시는 처음인 것 같다.

무한주 작업과정

위 작품은 미국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무한주(Endless Column 브랑쿠시가 만든 에펠탑 같은 작품 당시 기술로는 상당히 난해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무한주 작업과정 사진 
높이는 지금의 아파트 12층 30미터 정도) 작업과정을 보여주는 사진들.

엄 갤러리 대표인 엄태정(80세 전 서울대미대교수 예술원회원) 브랑쿠시 강연

브랑쿠시를 60년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엄태정(80세 전 서울대미대교수 예술원회원)가 곡절 많은 삶을 산 조각가 브랑쿠시에 대한 강의 있었다. 엄 교수는 1990년 초에 어수선한 정치 상황과 불편한 교통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브랑쿠시의 고향인 루마니아를 2번이나 찾아간 적이 있단다. 그의 생가를 마치 성지순례하듯 말이다 그리고 2004년 대학정년을 하면서 그에 대한 연구서인 <조각과 사유>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무한주 작업과정 사진

브랑쿠시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3번이나 가출을 했고 12살[ 겨우 음식점 알바를 하다가 손재주에 놀란 주인이 공예학교에 입학을 시켜줘 그때 처음 문자를 배우고 읽기쓰기가 가능해졌다고 바이올린 제작에도 재주를 보여 21살에 오스트리아 빈 목조각 자격을 따고 당시 그가 만든 목가구는 지금도 높이 평가받는다고

무한주 작업과정 사진

마침내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아카데미에 입학 대학원까지 마치고 형성기를 지나 1904년 5개국을 지나 걸어서 파리에 도착 중간에 알바도 하면서 까지 그런데 피카소가 파리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1904년 이 2사건이 그해 미술사에 남는 대사건이었다.

무한주 작업과정 사진

파리에서 기적적으로 로댕의 조수로 발탁 그의 조수를 하다가 그러나 그는 결국 작가가 되기를 위해서 1년 만에 거길 박차고 나왔고 큰 나무 밑에서 잡초가 자랄 수 없기에

드디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키스[입맞춤]를 1907년에 발표하고 이를 필두로 유명세를 탔고 그 이후에 새 시리즈도 나오고 넘을 수 없는 산인 로댕을 넘어서고 로댕이 근대조각의 아버지라면 브랑쿠시는 현대조각의 아버지가 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조각을 개척하다.

그것은 바로 눈에 보이기 만드는 조각이 아니라 조각의 물성과 기법이 보이지 않는 조각을 창안했다. 근대조각을 초월하는 현대조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로댕과 다른 점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았던 것이다. 아래 동영상은 엄교수가 브랑쿠시에게 보내는 시이다 "여기 입맞춤(키스)조각은 / 성스러운 공성을 이루니 / 드넓은 곳에 /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됩니다"

무한주 작업과정 사진

브랑쿠시는 1913년 40세에 아모리쇼에 소개되면서 그의 명성은 높아졌고 컬렉터들이 몰려왔 고각광을 받았다. 우후죽순으로 작품이 팔리고 필라델피아 시카고 대도시에서 전시가 열리고 유명 미술관의 러브콜을 받고 명예와 위상이 높아지고 그의 작품가는 하늘로 치솟다.

당시 항공사정이 그렇게 좋은 때는 아니지만 파리와 뉴욕을 오가면서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들 사티, 제임스 조이스, 에즈라 파운드, 피에로 로사 등과 교류했다.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극도로 절제된 단순함 뒤에는 우주와 영혼이 담겨 있고 표정이 벗는 그러나 표정이 가장 풍성한 조각의 길을 열었다. 말이 없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는 관객이 그것을 찾아내게 하는 조각가가 된 것이다. 높은 이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종교적 차원까지 승화하는 그런 단계까지 간 것이다 "평생 나를 잡고 있었던 것은 비상(飛上)이다" -브랑쿠시

무한주 작업과정 사진

무한주라는 작품에서도 그런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는 정말 하늘을 나는 새가 될 수 있었다고 믿은 것 같다.

아래는 그가 50대 때 연인이었던 젊은 미국 여성,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브랑쿠시는 자녀는 없었고 그래서 모든 작품을 다 퐁피두에 기증하다.

그의 작업실에서 브랑쿠시 /

루마니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낙후된 농업국가인 루마니아에서도 시골에 태어난 브랑쿠시는 여느 시골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정규적인 교육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C. V.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를 영화화 한 안소니 퀸 주연의 <25시>를 떠올려보라.) 7살 때부터 목동으로 일해야 했던 브랑쿠시는 그 뒤에 카르파치아 산에서 우리말로 머슴살이 같은 것을 하게 되었는데 그가 처음 목각을 배우게 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브랑쿠시는 나이 채 열 살도 되기 전에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게 되었는데 올테니아주의 티르구지우에서 염색공으로도 일했다. 크라이오바에서 술집 종업원으로 여러 해를 보내는 동안에도 뛰어난 목각 재주로 포장용 나무 상자에서 나온 판재를 이용해 바이올린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이런 손재주를 눈여겨 본 한 제조업자가 그를 후원하여 크라이오바 미술 공예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여기서 목공예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물론이고 혼자 힘으로 읽고 쓰기를 배워 나갈 수 있었다.

부쿠레슈티의 미술학교를 거쳐 1904년 파리로 간 그는 파블로 피카소, 막스 자코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과 어울리면서 본격적인 창작생활을 시작했다. 입체파의 영향으로 사실적인 요소를 점차 배제한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해, 1908년에는 첫 주요작품인 '입맞춤 The Kiss'을 발표했다. 뒤이어 '잠자는 뮤즈 Sleeping Muse', '공간의 새 Bird in Space' 등 사물의 핵심을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형태로 표현한 독특한 작품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전위예술 조각의 대표자가 되었다.

[원숙기작품: 신생아The Newborn] 브랑쿠시가 로댕을 능가하는 이유는 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브랑쿠시는 조각을 하지 않는 조각을 했기에 조각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회화에서 입체파와 같은 차원, 전혀 다른 조각세계로 들어갔기에 그는 현대조각이 거장이 되었다.

1910년에 브랑쿠시는 '잠자는 뮤즈'를 개작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청동상은 머리가 분리되어 있으며 얼굴 형태를 달걀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눈·코·입을 평부조와 같이 새겼다. 브랑쿠시는 1912년까지 석고와 청동을 두루 사용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러한 형태의 '잠자는 뮤즈'를 만들었다.

이때 평부조를 새긴 달걀 형태가 그의 조각에서 자주 나타났는데, 1911년의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에서는 조상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1915년의 '신생아 The New-Born'에서는 곡선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달걀 형태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24년 마침내 '태초 The Beginning of the World'라는 대리석으로 만든 완전한 달걀 형태의 작품을 낳았으며, 브랑쿠시는 이것을 "눈 먼 사람을 위한 조각"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브랑쿠시의 원숙기 대표적 작품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또 하나의 주제는 새였다. 이 주제는 1912년 '마이아스트라 Maiastra'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그것은 루마니아의 민간전설에 나오는 기적의 새의 이름이다. 머리를 들어 올리고 날아가는 이 새의 모습을 순수한 형태로 묘사하고 있는 첫 작품을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그뒤 1940년까지 이와 비슷한 작품을 28개 만들었다. 1919년 이후로 '마이아스트라'는 '공간의 새 Bird in Space'로 바뀌었다. 이것은 매끄러운 청동상으로, 타원형의 가는 선으로 재빠른 비행의 본질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엄미술관엄 사무실 서재

로댕을 능가한 브랑쿠시를 보고 루마니아 브랑쿠시 후배들이 만든 그의 오마주 작품을 선보이 
미술관에서 간단한 점심도 준비했네요. 2층 전시장.

사실 한국에서 작은 갤러리가 브랑쿠시의 개인전을 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시리즈 전시를 이어가겠단다.

루마니아의 모든 책 표지에는 그의 작품이 들어간다 사회주의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술관 주변 내부 풍경 샹들리에

[김두례 개인전] 롯데갤러리 잠실점(송파구 올림픽로 240)에서 11. 2(금) ~ 11.25(일), 24 일간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12F, 02-411-6911 전시작품 색과 점, 선, 면 등 회화의 기본 요소에 더욱 집중한 추상회화 신작 70여점 전시 오프닝 11/2(금) 6pm

깊어가는 가을, 한국 표현주의의 지평을 넓혀 온 김두례 작가의 개인전 열린다. 오방색에서 확장된 다양한 색과 회화의 기본 요소에 집중한 색면추상회화 70여점 전시된다 롯데백화점은 독자적인 화풍으로 한국 표현주의의 지평을 넓혀 온 김두례 작가의 개인전을 연다.

김두례 작가는 1993년 첫 개인전 이후 풍경화, 인물화, 누드화를 두루 탐색하던 중 1999년 뉴욕으로 건너가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공부하면서 한국적 표현주의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지난 작품들에서 가벼운 붓질로 표현된 인물상과 전통 오방색의 단순한 색면을 통한 회화적 탐구를 보여줬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색과 점, 선, 면 등 회화의 기본 요소에 더욱 집중한 추상회화 신작 70여점을 선보인다.

[백남준아트센터 개관 10주년 전시《#예술 #공유지 #백남준] 백아트센터, 개관 10주년을 맞아 2018년 10월 11일부터 2019년 2월 3일까지 세계시민이 시공간 뛰어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 시대, 정보와 지식의 공유는 필수적, 평화와 공존의 최우선 조건>

세계시민의 목소리 공유하는 작품

[1] 지난 10년간 백남준아트센터의 전시, 퍼포먼스, 교육 등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존재론과 소통방식 탐색 [2] 자본화된 예술 안에서 새로운 예술의 존재론을 제시한 선구자들 사유제시 [3] 백남준아트센터 10년, 통계와 단어 분석, 사진, 출판물을 전시하는 아카이브 전시열다 급변했던 지난 10년의 한국 동시대 미술의 지형도 확인하는 자리 [참여작가] 안규철, 정재철, 옥인 콜렉코끼리

세계 통신과 유통의 공유를 주제로 한 작품

수레(유통과 소통이 지 작품의 주제)〉는 백남준이 말하는 ‘미디어에 대한 기억’을 담아낸 작품. 백남준은 코끼리를 탄 돌부처가 이끄는 커다란 수레에 앤틱 텔레비전, 라디오, 전화기, 축음기 그리고 스피커까지 그가 기억할 수 있는 많은 통신기기를 올려놓았다.

백남준은 당시 신제품이었던 텔레비전을 일부러 앤틱 텔레비전 케이스 속에 집어넣어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가득 실은 수레는 케이블 전선으로 이어진 코끼리의 이동방향 혹은 기술에 발달에 따라 정보가 확산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미디어의 역사와 기억, 경험은 온 인류가 같이 공유해야 하는 일종의 문화와 역사의 공유지다. 백남준은 작품을 통해 이러한 기억을 인류와 나누기를 원했으며, 이러한 공동의 기억은 우리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비롯하여 미디어에 대한 이해와 상상의 폭을 확장시켜 준다.

동양(백남준)과 서양(보이스)의 예술가의 영역을 공유를 보여주는 작품

티브,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언메이크랩X데이터 유니온 콜렉티브, ‘공유지로써의 예술’을 탐구하는 신작 소개

백남준과 보이스, 두 거물의 우정 네트워크는 상생효과를 내다 전시는 백남준과 예술적으로 교감했으며 예술이 지닌 정치적 혁명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요셉 보이스 공통점은 자본화한 예술 속에서 새로운 예술 삶의 스타일을 제시한 거장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남준 예술에서의 공유지(Commons) 개념은 프랑스 예술가인 파스칼 길렌(Pascal Gielen)의 말 "다중의 목소리와 반대의 목소리가 공명을 이루는 공간"과 유사하다

동양(백남준)과 서양(보이스)의 예술가의 우정의 공유를 보여주는 작품

백남준과 보이스의 우정을 너무나 단순하게 표현한 작품 여기서 볼 수 있는 앙증맞고 귀여운 토끼는 바로 보이스를 상징한다 그는 인류를 저렇게 착한 토끼보다 미개한 존재로 본 것이다 그리고 백남준의 TV는 미래의 인터넷을 말하며 모든 인류가 가장 저렴한 돈을 가장 빠르게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사회에 염원이 담겨 있다 이 두 작가가 만나니 그야말로 예술계의 핵융합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종족과 편견을 넘어서 인류가 하나가 될 수 있으면 그런 이상향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제의 작품

백남준의 문화패인 플럭서스(흐름 flow)의 이상향이 담긴 지도 <데콜라주 바다의 플럭서스섬(1964)> 여기에는 예술공유지의 모델을 보여주면서 <적대적 종족이 뒤섞인 공간>을 동경하고 있다(나치의 끔찍한 학살을 경험한 후라 더욱 절실했겠죠) 또 <원자폭탄과 그 희생자들의 무덤>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인류평화에 대한 강력한 염원을 엿볼 수 있다 동성까지도 허하는 친밀한 공동체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의 사유화와 상업화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포퍼먼스를 중시한 것은 바로 작품활동에서 돈을 벌 수 없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사유(독점)민주주의>가 아니고 <공유(share)민주주의>에 대한 유토피아는 결국 인터넷이라는 공공재를 발명하게 되어 기술적으로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구현하게 되었다. 맑스가 사유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려고 하다가 실패한 대안을 백남준은 다 버리지 않고 그것을 주워다 다시 고쳐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실크 로드에서 영감을 받아 발명한 '전자초고속도로' 는 흥미롭다

사유에 대한 저항감을 가진 백남준은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의 시발점은 TV(비디오)코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백남준의 아이디어는 전지민주주의와 문화의 예술화 민주화에도 충분히 기여할 바가 많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류에게 남겨진 몫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인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할 때 되었다. 백남준의 유언 "내일은 아름다울 것이다"가 진정 실현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백남준아트센터 10년을 맞아 미술관 측은 여러 모로 많은 준비를 하다

백남준아트센터 10년은 맞으면서 서진석 관장은 미래의 미술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싶은 의욕을 보이다 (공공재로서의 측면에서 사회적 측면에서) 사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소통이론은 세계적으로 공인 받는 최고의 지적자산이다.그동안 백남준아트센터는 기존미술관의 선구자로 역할을 하기도 했고 지금 그런 전시가 일반화되기도 했지만 그동안 백남준 영토확장에는 충분하게 활동하는데 예산과 위상 등에서 위축된 것도 사실이다 이번 10주년을 맞아 공유지로서 백남준 아트센터 미술관을 어떻게 공유하고 활용할 것인가 공개 프로젝트를 통해서 실험적으로 메타 퍼포먼스를 벌릴 예정이다 아래는 인류가 그물망처럼 서로 얽히고 설켜 있음을 보여준다 10주년 국제세미나 강사와 내용 등도 소개되다

인류의 지식과 정보의 공유를 상징하는 세계를 나무 망(네트워크)으로 표현

백남준아트센터가 공공재임을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이번 전시 내내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백남준 아트센터 뒷뜰이다 여기 나무로 만든 그물망은 바로 네트워크를 상징한다고 봐도 좋은 것이다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한 나눔과 공유의 세상을 이런 오브제와 기호로 바꾼 것이리라

백남준아트센터 뒷뜰

박이소의 하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표현한 설치작품

박이소, <오늘>, 2001/2018, 전시장의 벽, 단관 비계, 4대의 프로젝터, 4개의 비디오카메라, 각목

박이소 작품, 하늘(창공)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품 박이소의 개념도(설계도)를 보고 저작권 허락을 받아서 미술관에서 재현한 작품 아트센터 옥상에 4대 CCTV가 설치되어 있다 <하루 종일 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지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해는 모든 사람의 공유물이다>

박이소(1957-2004)는 미국과 한국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예술가이자 교육자, 대안 공간 운영자, 활동가이자 미술에 관한 글을 생산하는 작가로 활동했다. 박이소는 창작은 작가 혼자 생성하는 산물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주변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며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그는 경계선을 넘나드는 자유롭고 불안하며 모호한 왕복운동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잘려나가 바닥에 눕혀진 벽의 일부, 그리고 그 위에 투사되는 하늘의 화면으로 구성된다. 백남준아트센터 옥상에 설치된 네 대의 비디오카메라가 동쪽에서부터 서쪽까지 하늘을 향해 설치되어 태양이 움직이는 길을 촬영하고, 이 실시간 영상을 누운 벽을 향해 투사한다. 해의 실시간 이미지가 벽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하루 종일 서서히 옮겨간다. 〈오늘〉에 사용된 재료들은 벽이 잘려진 일부 내부의 각목, 건축용 비계 등이며, 공사장의 재료나 칸막이를 전시장으로 끌어들여 건축과 파괴의 요소를 보여주고, 사용되는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차이점을 드러낸다. 그가 말한 대로 “주어진 역할대로 기능하는 질서 속에 있다기보다는 무질서와 혼돈, 불연속과 우연, 어긋난 인과관계, 미끄러지는 의미 등은 세상사 뿐 아니라 창작과 예술의 영역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간의 목소리 그 공명을 통해 서로의 울림을 공유할 있다는 점을 착안한 작품

안규철,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사운드 설치&조각, 나무, 혼합매체 360×360×90cm, 2018,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

안규철 작가의 작품 소리의 공명(울림)을 시각화한 작품 / 안규철 작가는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라는 작업에서 소리를 굴절하여 반사하는 ‘사운드 미러’를 설치한다. 사운드 미러 앞에서 관객은 공간을 울리는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소리라는 물결이 하나의 점에 수렴되어 큰 울림을 만드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물결이 다시금 퍼져 나가는 것을 꿈꾼다.

리미니 프로토콜, <100% 암스테르담>, 2014, 비디오/오디오 설치, 1시간 49분, <암스테르담 인구의 51%가 여성이고, 12%가 65세 이상이며, 0-4세 사이의 인구는 4%이다. 809,892명의 거주자 중 230,549명이 미혼자이며, 69,857명이 아이가 있는 기혼자이다>(암스테르담 170개국의 사람이 산다)

정재철, <크라켄–또 다른 부분>, 2018, 설치&영상, 혼합매체,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자연의 공유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인류의 공유지 바다를 오염하는 이 전지구적인 공유지의 비극의 상황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자연의 공유를 훼손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담긴 작품>

정재철은 2004년부터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2013년부터 현재까지 해양 오염과 바다 쓰레기에 관한 리서치와 참여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을 바탕으로 한 그의 수행적 작업은 공간과 장소의 기억을 발굴하고, 문화적 전이와 혼성을 드러내며, 자연과 교감하고 삶의 문제를 성찰한다.

2013년도부터 진행하고 있는 〈블루오션 프로젝트〉는 해양오염과 바다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예술이 어떻게 그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의 바다 쓰레기 문제는 단순히 인근 해안의 지역민들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순환구조를 훼손하는 전 지구적 문제이다. 인류의 공유지의 해양오염의 비극의 상황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작가는 그간 이 해양 쓰레기의 지형도를 그리고 해양 부유 사물들의 표본을 떠서 문제의식을 제기함과 동시에 예술이 현실과 관계 맺는 방식을 모색해 왔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2018년의 제주도와 신안 앞바다의 쓰레기를 채취하고 기록하였다. 환경문제에 대한 예술가의 접근이 과연 얼마만큼의 공감과 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질문하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바다라는 공유지의 비극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내년에 베니스비엔날레 나가는 남화연 작가의 영상. 무명의 노래(북한가요가 일본어로 번역되어 조선학교에서 불리게 되고 그러면서 널리 알려졌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금지곡이 된다)가 공유될 때 일어나는 엄청난 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작품 [작가소개] 2004 코넬대학교 졸업 2008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대학원 졸업

세계시민의 목소리 공유하는 작품 여기는 암스테르담

100% 도시’의 다른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인구통계학에 근거한 100명의 암스테르담 시민이 출연한다. 〈100% 광주〉와 같은 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동북아시아의 도시 광주와 역사적으로 국제적인 항구였던 암스테르담의 통계와 시민들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차이를 경험하게 한다. 암스테르담에는 터키와 모로코, 아프리카와 아시아, 전세계에서 온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출신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정치적으로 도시의 무단 점유(스쾃)를 찬성하는 이와 반대하는 이가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정치, 인종, 환경, 난민 등등의 이슈에 대해 시민들은 교집합과 합집합을 번갈아 오간다. 한 질문 안에서 반대 입장이었지만 금세 같은 입장이 되는 이 시민들 사이에서 우리는 공동체가 가진 정체성은 하나의 입장으로 대변될 수 없음을 목도한다

리미니 프로토콜, <100% 광주>, 2014, 비디오/오디오 설치, 1시간 40분 / <광주 인구 중 오직 1%만이 외국인 여권을 가지고 있고, 6%가 70세 이상이며 10%가 0-10살이다. 51%의 광주시민은 여성이고 3%는 전라남도에서 이주했다>

세계시민의 목소리 공유하는 작품 여라 나라 샘플이 있다 여기는 광주

리미니 프로토콜은 2000년부터 헬가르트 하우크, 슈테판 카에기 그리고 다니엘 베첼이 하나의 팀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들은 예술이라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도구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리미니 프로토콜은 ‘100% 도시’라는 이름으로 이미 <32개 도시>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이 작업은 전통적인 공간, 문화, 그리고 정치적인 분리가 인구분포로 대변되고 이해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통계자료가 제시하는 이슈를 생생하고 솔직하게 보여준다.공연에 등장하는 100명의 시민들은 특정한 도시의 인구통계학을 대신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노령화, 복지, 이민, 그리고 관계 등을 포함한 넓은 범위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표현한다.

세계시민의 목소리 공유하는 작품 여라 나라 샘플이 있다 여기는 광주

광주 인구 중 오직 1%만이 외국인 여권을 가지고 있고, 6%가 70세 이상이며 10%가 0-10살이다. 51%의 광주시민은 여성이고 3%는 전라남도에서 이주했다.

오 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도시에 흩어져서, 〈100% 광주〉는 한 명의 멤버가 다음 멤버를 24시간 안에 섭외하고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다른 멤버를 24시간 안에 구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멤버들은 한국에서 여섯 번 째 큰 도시의 인구통계학에 근거한 나이, 성별, 거주형태, 지리적 위치, 그리고 민족적 배경에 대한 통계 결과를 대변하는 사람들이었다. 광주라는 도시의 통계를 대변하는 이들은 과연 도시의 무엇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이제야 막 알아가고 있는 한번도 제대로 연습해본 적 없는 합창단이자 새로운 그룹의 얼굴들로 계속 바뀌고 합쳐지는 불가능한 총합이다. 광주라는 도시와 도시인, 그들이 지닌 공동의 역사에 대한 정체성은 이 통계 안에 담겨질 수 있는 것인가?

히만 청, <나는 믿고 싶다>, 2016,

인터넷 상에서 자유롭게 배포되는 디지털 파일, 작가와 윌킨슨 갤러리 소장/싱가폴과 뉴욕에서 작가와 큐레이터, 그리고 소설가로도 활동 중인 히만 청의 작업은 이미지, 퍼포먼스, 상황 그리고 글쓰기가 만나는 교차로에 위치해 있다. 그의 작품은 일상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을 해체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내러티브의 생성과 기능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에게는 미래를 상상하는 개인과 집단들의 존재와 행동 방식에 대한 철학적 개념과 근거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 다다익선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영상]

1988년부터 백남준 돌아가실 때까지 백남준 작품 전자 테크니션 이정성 선생

다다익선에 대한 의견을 소개하는 영상 / 백남준 작품 전자테크니션 이정성 선생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예술품이 아니라 시설물에 등록된 점에 대한 말도 안되는 백남준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모순점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는 인터뷰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등등

[PS] 백남준아트센터 전 학예사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의 의견도 소개된다 / 그리고 영상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어제 우연히 뵌 이영철 초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의견은 아래와 같다

[천재 예술가는 국가도 못하는 일을 혼자서 한다 초대백남준아트센터관장 이영철]

뒤샹이 만든 예술 랜드와 베어드랜드(TV 발명자) 만든 하이테크 랜드 그 사이에 백남준은 세계미술사적으로 그 통로(채널)를 찾은 사람이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 아니다.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백남준 같은 천재 예술가는 한 기관(국가)이 못한 일을 한 것이다 그의 대표작 다다익선 이런 천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세계에서 정보통신이 가장 발달한 한국 삼성 LG와 같은 기업이 있는 나라에서 창피하게 모니터가 어쩌고저쩌고 정말 말도 안 된다. 이런 사건은 바로 백남준에게 물어봐야 한다.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큐레이터는 항상 작가가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 스스로 언제 고치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모니터가 부족하고 전기세 너무 나가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어처구니없어 격분하게 된다. 국립미술관과 그 관장과 책임자들 정신나간사람들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초대백남준아트센터 이영철 관장

백남준은 이미지 생태계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예술가란 바로 그 시대의 이미지가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지 그는 그런 비밀을 캐는 어마어마한 일한 사람이다 다다익선이 뭔가 천지개벽 개천절이라는 새로운 하늘이 열린 것은 알린 것이다 정보사회의 새로운 도래를 말이다 그런 시대정신과 한국의 역사 등 모든 것을 집약한 작품으로 한국에 와서 가장 한국적인 작품을 만든 것이다 세계의 이미지 생태계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모니터가 어떻게 전기세가 어떻게 너무 좀스러운 관료화된 사고가 아닌가. 모니터가 무슨 예배대상이나 숭대대상도 아닌데 이런 것은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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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샤프: 슈퍼 팝 유니버스(KENNY SCHARF, SUPER POP UNIVERSE)]전 롯데 아트 뮤지엄 7층에서 2018.10.3.(수)-2019.3.3(일)까지 <작성중>/구글'에서 한번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안 된다. 왜 그렇지 이젠 국가보안사령부도 같이 차단(?)

롯데 타워 입구

공상과학만화의 캐릭터와 소비사회의 메시지를 결합시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친 팝아트의  귀재 케니 샤프의 전시를 연다

전시장 입구1

케니 사프전 앤디 워홀 이후 새로운 ‘슈퍼팝’의 세계를 창조한 회화, 조각, 영상, 사진 등 100여점 출품이 소개된다. 사이키델릭한 우주로 탈출을 상징하는 유토피아 공간, 초대형 <코스믹 카반> 대공개

전시장 입구 2

태극무늬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담아 작업한 10미터 벽화 제작Club 57 :이스트빌리지 반항아들의 집합소 당시 하위그룹으로 잘 놀던 작가와 그의 동료예술가들 이들은 기성미술에 도전하다

<클럽 57(팝아트 문화패)>의 새로운 문화는 비전문적이고, 즉흥적이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을 통해 주류 예술에 도전했다. 현실에 대한 불안과 혼란은 그들 예술의 또 다른 에너지가 되었다. 이후 케니 샤프, 키스 해링, 장 미쉘 바스키아는 퀸즈의 모마 별관1에서 진행된 ‘뉴욕 누벨바그’전시에 초청되었고, 처음으로 그들의 새로운 예술을 대중에게 선보이게 된다.

<종말론 강박에 빠지다> 내일 죽을 지도 모르는 극도의 불안에서 태어난, 단 하룻밤의 재미를 위한 클럽 57의 실험들은 그들 작업의 근간이 되었고, 1980년대 이후 현대 사회의 시각문화를 변화시키는 새 반향을 일으켰다.

케니 샤프는 우리의 일상을 환상의 세계로 만든다

Cosmic Cavern 2012 dimentions dependent on the space

<사이키델릭한 유토피아로 떠나는 탈출구> 환경운동가로 쓰레기통을 환상의 천국으로 만들다 [케니 샤프: 슈퍼팝 유니버스(KENNY SCHARF, SUPER POP UNIVERSE)]전 롯데 아트 뮤지엄 7층에서 2018.10.3.(수)-2019.3.3(일)까지 [작가 취향 Psychedelic-Playful-Colorful-Cosmic-Joy of Life(No future)-Pleased-Plastic-the style of Fancy cartoon/<Super Extraordinaire colorful and powerful POP ART FANTASY> Cosmic Cavern :

Cosmic Cavern 2012 dimentions dependent on the space

1970년대 미국은 그들이 1950년대에 예측한 대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세상이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 경제침체와 냉전시대의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되면서 세기말적 종말론이 고조된다. 십대를 막 지난 케니 샤프와 젊은 예술가들은 당시의 불안과 혼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스트 빌리지로 모여 들었다. 일찍부터 컬러 티비에서 환상의 세계를 경험했던 케니 샤프는 ‘내일이 없는 듯 신나게 놀 수 있는’ 우주로 통하는 공간, 코스믹 카반을 창조한다.

Cosmic Cavern 2012 dimentions dependent on the space

코스믹 카반은 1981년, 친구 키스 해링과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시작되었다. 케니 샤프는 주워온 플라스틱 폐기물에 형광 페인트를 칠하고 벽 안에 붙여서 사이키델릭한 우주 공간을 만든다. 이후 케니 샤프는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는 코스믹 카반으로 그 크기를 확장시키고 모마 별관 스튜디오에 설치했다.

대중에게 선보이기 시작한 이 환락의 공간은 뉴욕 이스트 빌리지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작가는 휘트니 뮤지엄 비엔날레를 위해 미술관에서 머물며 코스믹 카반을 설치했고, 이 때를 기머점으로 코스믹 카반은 케니 샤프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다.

Cosmic Cavern 2012 dimentions dependent on the space

코스믹 카반은 공간으로 나아간 <사용자 마음대로 만들기(커스터마이징 Customizing)> 작업의 확장판이다. 버려진 물건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그의 커스터마이징 작업은, 현실에서 벗어나 완벽한 세계에 도달하는 이상향이자 우주로 탈출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그는 안전하게 자신과 친구들을 지킬 수 있는 사이키델릭한 유토피아를 창조했다.

코스믹 카반 내 설치된 TV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인 백남준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이다. 현재까지 40여년간 케니 샤프는 36개가 넘는 클로젯–코스믹 카반 작업을 세계 각국에 전시했다. 이번 전시에는 특별히 한국 관람객 50명이 기증한 폐장난감이 함께 사용되었다.

작가 코스믹 카반

그는 지구 종말 이후 유토피아 세계로 이동하는 통로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과도한 소비주의와 환경 파괴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초대형 코스믹 카반은 환경문제를 예술로 확장시키는 케니 샤프의 실천적인 예술을 지원하는 롯데그룹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공간을 경험하면서 이 물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플라스틱 쓰레기로 둘러싸인 우리의 환경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즐거움과 환상을 경험함과 동시에 우리가 만든 쓰레기로 오염되는 자연의 모습을 함께 함께 느끼게 된다.

케니 샤프: 슈퍼팝 유니버스(KENNY SCHARF, SUPER POP UNIVERSE)]전 롯데 아트 뮤지엄 7층에서 2018.10.3.(수)-2019.3.3(일)까지 그의 퍼포먼스 장면

자동차에 스프레이로 그리기 퍼포먼스 일종의 스트리트 아트의 한 면모를 보여주다

그의 작품은 과거에는 하위문화였지만 지금은 주류문화에 영입되다

[작가소개] <워홀(대선배), 바스키아(1960년생 2년 후배), 키스 해링(1958년생 동갑) 등과 가까운 친구> Kenny Scharf (1958-) 미국 캘리포니아 LA에서 태어난 케니 샤프는 키스 해링, 장 미쉘 바스키아와 함께 앤디 워홀 이후의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살아 있는 팝 아트의 전설이자 스트리트 아트의 선구자이다.

1978년 뉴욕으로 이주한 케니 샤프는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에서 수학하면서 예술적인 영감을 주는 친구들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을 만난다. 이후 그들은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뉴욕 시 맨해튼 남동부의 지명 "뉴욕 보헤미아 "라고도 자유 분방 한 젊은 아티스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를 활보하며 자유롭게 새로운 예술을 실험한다

대중소비사회 속에서 탄생한 팝아트,

일상을 환상의 세계로 변화시키는 마법 같은 예술

<대중소비문화의 예술화는 가능한가 그렇다> [초현실주의적 팝 Death of Estelle(우주여행의 좌절)] 시리즈 <20세기 현대 예술의 태동지로서 Club 57의 중요성을 밝히는 뉴욕 MoMA의 대규모 기획전 ‘Club 57: Film,

Performance, and Art in the East Village, 1978-1983’에 출품되었다. 패션과 광고 등 대중문화를 예술에 접목시키고 새로운 주제와 만화적 유희를 혼합한 케니 샤프의 [Death of Estelle]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사의 흐름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으로 인정받다>

1979년 케니 샤프는 CLUB 57에서 만난 예술가 조이 아리아스(Joey Arias)에게 재미있는 제안을 받는다. 피오루찌(Fiorucci) 부띠끄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조이가 케니 샤프에게 백화점 매장에 전시할 작품을 그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Death of Estelle]이며 이 전시는 케니 샤프의 첫 번째 뉴욕 전시로 기록된다.

당시 재학 중이던 SVA의 교수들에게, 만화 같은 그림을 그리고 우주에 집착하는 그의 작업은 그저 장난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CLUB 57의 친구 예술가들에게 그의 작업은 매우 실험적인 도전이었다.

이스트 빌리지의 반항아 케니 샤프는 [Death of Estelle]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표출했다. 이 전시는 케니 샤프가 처음으로 CLUB 57 밖으로 나와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케니 샤프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철학을 보여주는 시작이 되었다.

작가는 [Death of Estelle]에서 이후 자신의 작업에서 보여줄 예술관을 모두 드러낸다. 라틴어로 별을 의미하는 ‘Estelle’이라는 이름과 우주여행을 떠난다는 설정, 그리고 캐딜락을 연상시키는 자동차와 에스텔의 패션은, 1950-60년대 우주시대와 미래주의에 대한 그의 향수와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작가는 환상의 세계였던 TV와 피자 등의 대중적인 소재들을 핵폭발과 지구종말이라는 이야기와 혼합하여 초현실적인 팝아트(Pop Surrealism)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후 케니 샤프는 본격적으로 캔버스 작업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발전시킨다.

[Death of Estelle]은 1980년대 새로운 예술의 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17년, 20세기 현대 예술의 태동지로서 Club 57의 중요성을 밝히는 뉴욕 MoMA의 대규모 기획전 ‘Club 57: Film, Performance, and Art in the East Village, 1978-1983’에 출품되었다. 패션과 광고 등 대중문화를 예술에 접목시키고 새로운 주제와 만화적 유희를 혼합한 케니 샤프의 [Death of Estelle]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사의 흐름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식상한 시각문화에 그만의 독특한 색채언어로 선보이다

케이 사프는 소비문화가 낳은 똥(온갖 잡동사니)을 밥(당당한 팝아트)으로 바꾸다 역설적으로 만다라의 그림이 되다 거대한 팝의 우주를 향해 여행을 떠나다

팝아트의 미술사에 가장 큰 공로는 무엇보다 문화의 민주화다. 그리고 평화의 정신이다 이들은 전쟁을 반대하다. 미술을 고급적이고 고상한 것에서 일상의 거리로 끌어내린 것이다 <흔히 쓰다버린 전기제품을 의인화해서 커스터마이징 작업을 통해 반려동물처럼 그렇게 사랑스럽워하며 즐겁게 사용하다>

액면 가치(Face value)

낡은 물건들에 그림을 그려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일상의 물건들로 전혀 다른 공간을 창조

사용자 마음대로 만들기(커스터마이징 Customizing) 시리즈 작품

사용자 마음대로 만들기(커스터마이징 Customizing): 재밌는 일상을 만드는 커스터마이징 / 케니 샤프는 작업 초기부터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버려진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다. 작가 특유의 유머로 커스터마이징된 제품들은 저마다의 얼굴을 갖고 있는 의인화된 인격체로 재탄생한다. 작가는 작은 시계, 라디오, 전화기부터 시작해 의자, 침대, 자동차까지 새롭게 작품화한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코스믹 카반은 공간으로 나아간 커스터마이징 작업의 확장판이라 볼 수 있다.

'BAX'  2016 사용자 마음대로 만들기(커스터마이징 Customizing) 시리즈 작품

또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실제로 쓰는 자동차를 스프레이로 커스터마이징하는 카밤즈(Karbombz) 프로젝트는 실생활과 예술을 접합시키는, 예술로 삶을 재미있게 만들고자 하는 그의 세계관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TV 뒷모습을 독창적으로 커스터마이징(사용자[작가]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기) 작업을 하다 일종의 의인화라고 할 수 있다> [BAX] 시리즈는 케니 샤프가 2016년에 공개한 새로운 형태의 커스터마이징 작업이다 / “갑자기TV 뒷면에서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이것에 그림을 그림으로써 생기를 불어넣었다. 나는 내가 이미 본 것을 가져와 그렸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항상 보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키스 해링 퍼포먼스

키스 해링은 “이 괴짜는 뭘까 생각했다. 맨하탄의 모든 쓰레기를 다 끌고 다니는 것 같았다.”라는 말로 케니 샤프의 첫 인상을 서술했다. 뉴욕 시절 그는, 커스터마이징 하는 반 크롬이라는 제 3의 인물을 만들어내서 ‘반 크롬, 활동개시! (Chrome on the range)라는 제목으로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후 케니 샤프는 환경 문제에 집중하면서 바다를 뒤덮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직접 수거해 커스터마이징 작업을 완수한다.

초창기 괴짜의 실험적인 퍼포먼스로만 여겨졌던 그의 커스터마이징 작업은 소수만을 위한 엘리트 예술을 거부하고 ‘모두를 위한 예술’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용자 마음대로 만들기(커스터마이징 Customizing) 시리즈 작품

케니 샤프의 커스터마이징 작업은 일상의 순간을 예술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작가는 각종 상품들이 버려져 쓰레기로 전락하는 현대 물질주의와 소비사회의 폐허를 드러내고자 한다. 직접 수거한 폐기물들을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커스터마이징 작업은, 일상을 예술로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관람객과 함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캠페인으로 확장된다. 1980년대 초반 그는 쓰던 청소기에 그림을 그려 반려동물처럼 이스트 빌리지를 끌고 돌아다녔다.

Dragon serpents adore Korea! 2018

서울의 한강을 보고 태극무늬를 넣어 경쾌하고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게 큰 벽화형식으로 그리다 / *대형벽화(Mural): 케니 샤프는 본 전시를 위해 롯데뮤지엄 내부에 10미터 길이의 대형벽화를 제작했다.

케니 샤프는 이번 내한을 계기로 태극기를 접할 수 있었다. 음과 양의 조화를 작품으로 표현해온 케니 샤프에게 태극 형상은 무궁무진한 상상의 원천이 되었다. 케니 샤프는 가장 신비로운 동물인 용 두 마리와 태극문양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평화와 화합을 나타내는 벽화를 제작했다. 또한 서울을 감싸고 있는 산과 한강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표현했다.

[작가소개 2부] <케니 샤프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 LA 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죽음의 행성 Jetstone

예술적 롤모델이었던 앤디 워홀을 만나고 클럽 57 과 같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퍼포먼스와 실험적 전시를 계속하면서 케니 샤프는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한다. 1979년 뉴욕 백화점 피오루찌(Fiorucci) 매장에서의 첫 번째 전시를 시작으로, 1980년 하위문화로 여겨지던 작품들로 구성된 대규모 단체전 타임스퀘어쇼와 P.S.1의 뉴욕/뉴웨이브 쇼에 참여하면서 케니 샤프는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인다. 이후 케니 샤프는 펀갤러리와 토니 사프라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Super Pop 거대한 팝의 우주로 떠나는 여행

1982년 케니 샤프는 독일 하노버의 케스트너 게젤샤프트(Kestner-Gesellschaft)에 키스 해링과 함께 전시했으며 이듬해 스위스 루체른 미술관 전시에는 바스키아, 키스해링과 함께 참여했다.

이후 케니 샤프는 휘트니 뮤지엄의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그의 환상적인 설치 공간 코스믹 카반을 전시했고, 명실상부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한다. 1987년 앤디 워홀이 사망하고, 1988년에는 바스키아가, 1990년에는 키스 해링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케니 샤프는 해외 유명 미술관 전시에 계속 참여하면서 독창적인 예술활동을 계속한다.

냉전 시대 우주로의 탐험은 그의 작품을 초현실적인 우주 공간으로 인도했다. 친구들을 빼앗아간 마약과 에이즈의 공포, 그리고 핵 전쟁과 환경문제에 대한 두려움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녹아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공상과학만화였던 플린스톤과 젯슨가족의 내용을 차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독특한 외계생물체를 창조했다. 녹아 내리는 듯한 형태는 화려한 색채 그리고 작가 특유의 유머와 결합해 현실의 문제를 새롭게 보여주는 역동적인 상징이 되었다.

그는 뉴욕을 비롯한 세계 유명 도시의 거리에 그래피티를 남기면서 스트리트 아트의 초석을 세웠으며 지금도 회화, 조각, 퍼포먼스, 그래피티 등 장르의 구별 없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롯데뮤지엄은 아시아 최초로 케니 샤프의 작품을 총 망라한 대형 전시를 진행한다.

죽음의 행성 Jetstone

이 시리즈는 케니 샤프가 2016년에 공개한 새로운 형태의 커스터마이징 작업이다. 이 시리즈의 주요 소재는 버려진 구식 TV의 뒷면이다. 케니 샤프는 오래된 텔레비전을 수거한 후 플라스틱으로 된 뒷면에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강렬한 표정을 지닌 다양한 얼굴들을 완성했다. 이름 BAX는 TV 뒷판을 영어로 했을 때의 ‘backs’라는 발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또한 세상에 대한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쓸모 없던TV 뒷면은 놀랍게 변신하여 부족의 신령스런 가면이나 승리자의 전리품처럼 당당히 전시장 벽에 걸려있다

[사용자 마음대로 만들기(커스터마이징) 로봇 청소기와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케니 샤프는 한국 전시를 위해 LG 전자의 로봇 청소기 Cord Zero R9을 커스터마이징 했다. 작가는 3 대의 R9을 구성하는 청소기, 충전기, 리모콘에 그림을 그리고 보석 등으로 장식해 개구쟁이 얼굴을 가진 장난꾸러기 악동, ‘Robby Robot’, ‘Rita Robot’, ‘Ricky Robot’으로 재탄생시켰다. 작품의 이름은 모두 모델명 ‘R9’의 ‘R’을 따서 지은 것이다.

이 이벤트는 LG 전자의 제품 협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작품들과 교감하며 이색적인 전시 관람의 재미를 느끼며, 케니 샤프의 삶을 위한 예술 철학을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만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이번 서울 전시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케니 샤프의 작품을 미술관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콜라보레이션 행사도 진행되었다. 국내 카 셰어링 브랜드 그린카의 차량 4대의 외관과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 1기 내부에 케니 샤프의 작품 이미지가 랩핑되어 현재 운행 중이다. 또한 롯데 주류 맥주 ‘Fitz’와 진행한 콜라보레이션은 경쾌한 이미지와 영상으로 SNS 상에서 반응이 뜨겁다.

케니 샤프의 작품 이미지로 새롭게 디자인 된 ‘Fitz 수퍼 클리어’ 캔은 특별 한정판으로 제작되었다. 케니 샤프와의 콜라보레이션의 일환으로, 롯데주류에서는 10월 3일부터 9일까지 [Fitz X KENNY SCHARF 비어가든] 행사를 진행한다. 롯데월드타워 잔디광장에 마련되는 비어가든 현장에서는 Fitz 맥주를 마시면서 케니 샤프 전시 정보와 특별 제작 아트 상품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다.

그는 스트리트아티스트답게 이번에 서울 지하철에서 작업을 할 예정이다 그의 모든 미술은 우주와 밀통하고 있다. 작가는 어려서 인류가 우주에 갈 수 있었다고 믿었단다 그러나 지금 우주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는 갈 수 있기에 그의 작품에는 우주여행에 대한 열망이 큼을 알 수 있다

<나머지 사진들>

Donuts& Hotdogs 케니 샤프는 물질주의 삶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화려함과 그 이면에 숨겨진 잔혹한 인간성이라는 양가적인 측면을 도넛 시리즈를 통해 표현한다.  

[케니 샤프: 슈퍼팝 유니버스(KENNY SCHARF, SUPER POP UNIVERSE)]전 롯데 아트 뮤지엄 7층에서 2018.10.3.(수)-2019.3.3(일)까지 앤디 워홀 이후 새로운 ‘슈퍼팝’의 세계를 창조한 회화, 조각, 영상, 사진 등 100여점 출품 / 사이키델릭한 우주로 탈출을 상징하는 유토피아 공간, 초대형 <코스믹 카반> 대공개 / 태극무늬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담아 작업한 10미터 벽화 제작 케니 샤프는 키스 해링과 동갑으로 같이 뒷골몰 이스트 빌리지에서 놀던 시대의 사진도 보인다

우주를 지향하다

냉전 시대 우주로의 탐험은 그의 작품을 초현실적인 우주 공간으로 인도했다. 친구들을 빼앗아간 마약과 에이즈의 공포, 그리고 핵 전쟁과 환경문제에 대한 두려움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녹아있다

블롭(BLOBZ) 시리즈 초현실주의적인 화면,

블롭 시리즈는 케니 샤프가 보여준 다양한 변주가 집결된 작품이다. 만화에서 시작된 캐릭터와 그의 초현실주의적인 화면, 그리고 그래피티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는 블롭에서 우리는 작가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유쾌한 감성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케니 샤프는 2000년대 초부터 작가 특유의 독특한 얼굴들을 혼합하여 추상성과 구상성이 합쳐진 새로운 블롭 시리즈를 보여준다. 케니 샤프는 스프레이 페인팅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화면에 도입하여 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이어간다.

블롭 시리즈는 작가의 우연적인 의식의 흐름과 독특한 캐릭터, 그리고 그 유기체적 형태들이 서로 얽혀 전달하는 각양각색의 감정들이 만나는 접점이다.우리는 흘러내리는 우스꽝스러운 얼굴들을 통해서 일상에서 벗어나 그림의 세계로 빠져든다. 세기말의 혼란과 공포를 극복한 케니 샤프는 블롭 시리즈를 통해 매일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독특한 조형언어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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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새미술관(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최정화_꽃, 숲]전 MMCA 서울관 미술관 마당과 5전시실에서 2018년 9월 5일(수)부터 2019년 2월 10일(일)까지
백남준이 1963년에 그의 첫 전시에 도입한 발견한 오브제(les objets trouves)의 21세기적 발현이다 그가 수집한 물건은 사실 거의 쓰레기취급하는 만물상 같은 것이나 그는 거기에 작가에 혼과 기와 넋을 담아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것을 흔히 예술적 전문어로 발견한 오브제라고 한다. 그는 자신도 잘 모르면서 하여간 40년간을 이런 것을 모아 이번에 활짝 전시의 꽃을 피운 것이다

현대자동차 이대형 아트디렉터의 인사말

세계10대 큐레이터의 전시성공에 대해 의견을 물었더니 지금 세계적으로 성과를 내는 전시는 사실 20-30년에 전에 가장 치열한 논쟁을 일으킨 주제라면서 그렇게 고민한 주제가 오늘날의 미술의 테마로 실현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데 20-30년 간 현대미술에 대해 고민한 최정화작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번 현대자동차가 지원한 이불 작가(2013년)의 경우를 보면 국립전시 4년 반 후에 그 효과가 나타나 이불 작가는 헤이오드(?) 재개관전이 열렸고 또 다시 독일 베를린 마틴-그로피우스-바우 유명미술관에서도 이불전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50대가 한국에서는 나이로 역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20-30년 고민한 것이 50대에 피어날 수 있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할 것으로 최정화작가에서 보게 될 것이다 [개인의견] 최정화 작가 5년후에 테이트모던에서 전시가 열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대기업과 미술투자의 관련성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한 개인의견]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간 매년 1인의 우리나라 중진작가를 지원하는 연례 프로젝트이다. 한 작가에게 10억에 가까운 작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으로 현대자동차(2013년부터시작)는 해외에서 발언권을 얻을 수 있게 되고 대기업으로써 그 위상을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외국에서 아트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은 완전히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이 연례 프로젝트와 관객에게 좋은 문화이미지를 심어주는 다리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현대미술은 쓰레기통에서 나온다]

Lost and Found(Lost property)라고 하지만 이 사진을 베를린 잃어버린 물건 찾아주기 창고다 여기서 나온 미술이론이 바로 발견한 오브제인 것이다 이런 관점을 백남준은 1960년대부터 플럭서스 활동을 하면서 시도했는데 이번에 한국판으로 멋지게 최정화작가 한국관객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재미있고 흥겹게 조형예술으로 꽃을 피우다


현대미술은 역사와 철학과 디지털 하이테크로는 도무지 풀수가 없다 그것을 푸는 열쇠는 역시 고고학과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이다 사실 역사를 기록에 의존하다보니 인류의 살 전체를 담을 수 없다 철학도 그 한계가 있고 첨단 테크놀로지 역시 마찬가지다 인류학이 역사보다 더 큰 그릇인 것은 역시 인류학은 태초의 세상으로부터 시작하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무한대의 미래도 내다보기에 보기에 그 그릇이 큰 것이다


오늘날처럼 복잡한 현대인의 살을 담은 예술이란 결국 고고학적인 혹은 인류문화적인 방식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것은 가장 대중적으로 코믹하게 풀어난 한국의 작가는 역시 최정화다 그는 40년을 내다보니 40년번부터 온갖 쓰레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의 예술의 출발점은 놀랍게도 1971년 일본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사진을 찍은 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예술은 뭔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은 것과 같다고 본 것이 바로 최정화의 천재성이다

최정화에게 예술이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삶의 온기와 일상의 흔적이 묻어 있는 모든 사물을 모으는 것이다 그 중에서 작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바로 어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끊여준 바로 그 찌그러진 냄비인 것이 이번의 그의 작품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다 이런 관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뒤샹의 미학이기도 하다 뒤샹은 예술이란 그리는 것이 아니고 가져다놓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둘은 오브제아트라는 점에서 상통한다

제목 '민들레(Dandelion)' 2018, 생활그릇, 철 구조물(Used Kitchenware, Steel structure),

<가을하늘 도시의 숲에 핀 꽃이자 큰 별이다 우리에게 뭔가 산다는 고마움에 대한 희망을 준다> 기자가 농담으로 머리가 뜨겁지 않나요 하니 그의 재치 있는 대답은 "따뜻해요" 최정화 제 작품을 통해서 여러분의 이야기 숲을 가지고 가세요 최정화 작가는 이 작품을 사모곡 즉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가 하는군요 눈물 겨운 어머니의 사랑과 손길이 묻어 있는 냄비가 바로 이 작품의 주재료인 셈이다

최정화(1961년생)는 플라스틱 바구니, 돼지저금통, 빗자루, 풍선 등 일상에서 소비되는 흔하고 저렴한 소재 혹은 버려진 소모품을 활용하여 다채로운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작가이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비재를 예술로 재탄생시키는 그의 작업방식은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며 급속한 경제성장이 빚어낸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을 은유한다


최정화의 힘은 그의 작품을 통해 모든 사람을 예술가로 만든다는 점이다. 사진기자나 매체 기자도 예술가가 되고 관객도 예술가가 되고 갤러리 직원들도 예술가가 되고 관객도 예술가가 된다. 요셉 보이스의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는 그의 명제가 자연스럽게 전시를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몸으로 체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주저함이 없이 전시장을 자주 찾게 될 것이다

작품에 대해서 소개하는 최정화 작가 이 작품 아래 그가 어머니에게 바치는 돌판에 쓰여진 시도 보인다(아래사진)

이런 작품을 한국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릏 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풍자와 함께 한국 사회에 대한 연민도 같이 읽어낼 수 있다 키치적이면서도 흥미롭다 우리가 이런 풍경은 결혼식장이나 호텔 등에서 흔히 불 수 있다 유럽적(서구적)인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담겨 있는데 이런 한국인의 정서를 다 나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세기의 선물(Present of Century), 2016, 철구조물, FRP, 크롬도장 Steel Structure, FRP, Chrome coating), 가변설치(Dimension variable)

코린트식 주두부가 잘려져 뒤섞인 이 작품은 본래 작가가 결혼식장의 장식에서 착안해 제작한 작품이다. 오늘날 서양문화를 선호하는 소비경향에 맞춰 결혼식장 곳곳에서 코린트식 기둥을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이러한 소비 현상을 제시하고 동시에 과거와 현재, 동서양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형태나 색상의 확연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시공을 뒤섞는 작업방식과 상통한다.


이 정도되면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에는 청동기 것도 있다고 한다 물론 고려시대 조선시대 유물도 있다 그가 40년간 모은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뭔가 모은다 일종의 물건 헌팅이다 그것을 가지고 나중에 무엇을 하게 된 지 생각하지 않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40년이 지나니 이 하찮아보이는 만물상이 예술품이 변모하게 되었는데 누구 그것을 예상할 수 있으랴

미켈란젤로는 "돌 속에서 영혼을 꺼낸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런 점을 이번 최정화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최정화전 박영란 학예연구관

최정화의 키워드는 바로 3 가지 염원과 애도와 축제다 한국인의 DNA에는 염원을 실현하고자 하는 경력한 에너지가 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탑 을 쌓는 문화다 여기서 그런 점을 잘 읽을 수 있다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을 보여준다 인류학적으로 접근하면 더욱 이해가 쉬워진다 탑을 세우는 방법은 주로 3가지 가운데 봉을 사용하거나 그냥 쌓겨나 아니면 구멍을 내고 붙이거나 등등


상 올라간 것 보에서 아찔하죠 그래서 끝까지 쌓아 올리는 게 또한 한국인의 특징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다보탑이 따로 없다 한국의 간절한 염원을 읽을 수 있다 뭐가 그렇게 비는 것이 그리도 많은지 한이 많은 민족이라는 뜻이겠죠

꽃의 향연(Feast of Flower), 2015, 생활그릇, (Used Kitchenware), 75.5x122x290cm

최정화 작가가 주로 사용해온 작품의 재료는 돼지머리, 플라스틱 바구니, 플라스틱 대야, 제사용 과자, 조화 등으로 미술작품의 소재로 활용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하여 천박하다고 여겨졌던 소재로부터 발견된 아름다움을 제시해왔다. 최근에는 됫박, 제기, 배틀, 촛대, 사발, 솥, 돌, 폐타이어, 장승, 원시토템상 등 지난 세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소모품을 소재로 작가 특유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로부터 비롯된 <꽃의 향연>은 획일적으로 대량 생산되었으며 동시에 어느 가정주부가 신혼부터 사용한 삶의 흔적을 내포한 식기가 탑을 이루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된 작품이다.

어린꽃(Young Flower), 2016-2018, 플라스틱 왕관, 철 구조물(Plastic crown, Steel structure), 가변설치(Dimension Variable) 그의 3대 주제 중 하나인 '애도' <세월호추모작>

<어린꽃>은 금빛, 은빛의 화려한 유아용 플라스틱 왕관을 활용한 작품으로 눈부신 거울면 위에 설치되어 7미터를 힘겹게 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끝내 오르지 못하는 이 왕관을 통해 세월호 침몰로 희생당한 어린 생명을 추모한다. 반짝이는 미러 시트 위에 놓인 왕관은 작가가 어린 생명에게 씌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선택한 소재로 슬픔과 안타까움을 담은 추모의 의미가 다른 일체의 언급이나 수사대신 최정화 특유의 방식으로 재현된다.

[그의 작품은 관객참여형이다] 작품 가이드를 위해서 관객에게 서비스하는 코너 작가의 말

그의 작품이 관객참여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위해서 냄비 등 버린 물건을 모아주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내 모든 예술을 관객에게 돌려주고 싶다 관객이 각자 내 예술을 즐기게 되기를 바란다 각자 관객이 자기 나름의 신화를 만들어내게 하기 위해서 나는 작품을 한다 -최정화 I make an art work so that every one(viewer) can create his own myth - Choi Jung Hwa

전 작업을 한 것이 없어요. 일단 모으는 것만 해요. 그러다 보면 작품이 나에게 따라와요. 그래서 그것이 나중에 저절로 작품이 된다 -최정화 / 미술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물으니 미술만 하지 마라 미술에 갇혀 버린다 -최정화

최정화는 자신의 예술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전해져 삶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보살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관음보살은 사실 불교에서 최고의 부처다 그런데 여성이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린 가톨릭으로 말하면 성모마리아에 해당한다 천개의 손을 가진 보살 '천수보살' 중생이 아품을 아무리 쓰다듬어도 손이 모자란다. 백남준의 천수보살이라는 작품도 있다

1최정화의 키워드 중 하나는 미끼와 삐끼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고. 미끼는 보드리야르의 키워드인 유혹이다. 삐기는 더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예술은 유혹의 기술이다 유혹은 그 자체가 최고의 예술인 셈이다 보들레르의 악의 미학이라는 유혹의 기술은 서구현대시에서 최상급이다 그에게 있어 미끼와 삐끼란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한 미학적 유혹인가(?)

전시자 입구 최정화전 소개글 이 부분만 잘 읽어도 최정화의 예술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

[1] 일상을 꽃피우는 작가 ‘최정화’의 대규모 개인전 [2] 공공미술프로젝트와 연계한 대형 신작 공개 [3] 집에서 쓰던 식기 7,000여개가 모여 탄생한 9m 대작 ‘민들레’ 등 버려진 사물에 의미와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으로서의 예술 탐색 관객참여형 프로젝트 ‘꽃, 숲, 꽃’ 워크샵방식이다

늙은 꽃(Grand Flower), 2015, 혼합재료(Mixed media), 가변설치(Dimension variable)  

요즘 거의 사라진 빨래판 구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겠죠. 중국에 가서 경우에 따라서는 플라스틱 빨래판과 바꾸기도 잘못하면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에 그들과 친하기 소통하기가 우선이도 그것이 되면 나무빨패판 얻기가 쉽단다

<늙은 꽃> 

역시 일상의 오브제에 대한 작가의 일관된 관심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중국 각지에서 수집한 나무빨래판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작가는 이 빨래판을 반복적으로 배열하여 <중국식백과사전>으로 명명하였으며, 이번 전시에는 <늙은 꽃>으로 작품의 명제를 바꾸었다. 이 작품의 개명 역시 일상의 오브제를 발견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작업태도를 반영한다

알케미(Alchemy), 2016, 혼합재료(Mixed media), 가변설치(Dimension variable) /

인도의 항아리 등도 돋보인다 플라스틱, 일회용품과 같은 일상의 오브제를 다루던 작가가 시공을 넘나드는 오브제를 쌓아 올려 만든 작품이다. 트럭의 바퀴, 무쇠솥과 인도의 항아리, 밥그릇, 막걸리 잔이 탑을 이룬 이 형상은 어느 시절 어느 곳에서 흔하게 사용된 물건을 찾아 새롭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작가가 의도한 과거 현재 미래를 공존하게 하고 관객과 소통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작가의 다 듣지 못한 진솔한 목소리는 밥을 같이 먹어야 나온다 여기서 좋은 기사 거리를 잡아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나의 작품은 우주적 비빔밥(혹은 한정식 밥상)이다" "나의 작품은 성속이 없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고 나면 작가의 것이 아니고 관객의 것이다" "나는 묵히고 익힌 물건이 나에게 말을 걸면 그때부터 작품을 시작한다" -최정화 /

최정화의 기발함은 가짜경찰의 쓸모없어지자 버린 가짜경찰을 다시 발굴해 작품화하다 그의 미술의 시작은 일본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사진을 찍은 것을 보고 착안해 그의 예술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에게 예술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리는 것도 아니고 일단 사진을 찍고 재료를 모으는데서 시작한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발견된 오브제(objets trouves)'는 전에 보이지 않던 모든 것은 새롭게 보게 하는 방식이다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나의 예술이다 "앞으로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예술은 다 없어질 것이다" "일상이 예술보다 더 중요하다" -최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