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중요전시행사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展]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1월 12일(수)부터 2015년 2월 27일(금)까지 2012년부터 [오마이뉴스 관련뉴스] http://omn.kr/bksi 

바우하우스 전시 포스커 

3년간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과 공동기획 1919년 바우하우스 설립 이후, 1933년 폐교까지 행해졌던 다양한 무대실험예술과 퍼포먼스 자료 전시 바우하우스와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한국현대미술작가 6명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다 

[바우하우스 어: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파티가 되고 파티가 놀이가 된다] - 바우하우스사람들 노는데 천재들


바우하우스의 최종목표는 모든 인류가 함께 손을 잡고 배움(건축 디자인 회화 상상력 예술 패션 가구 타이포그라피 염직 등)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춤추는 것인지 모른다 요약하면 바우하우스의 정신은 놀이로 시작하여 놀이로 끝난다 산업화사회에서 잃어버린 축제의 회복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 보았다 

[바우하우스 선생들] 

바우하우스(1919-1933)를 이끈 사람들: 나지, 클레, 칸딘스키 등이 보인다 

"우리의 교육신조는 디자인이란 지적이거나 물질적인 일이 아니라 문명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꼭 필요한 삶의 재료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발터 그로피우스 "디자인은 직업이 아니라 태도이다" -라슬로 모호이너지 


바우하우스(1919-1932)는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회화, 건축, 그래픽 디자인, 내부 디자인, 공업 디자인, 공예 사진 특히 현대가구 등에서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번 서울 전에는 여러 장르 중에 무대장치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바우하우스는 산업화에서 잉태한 것으로 삶에 대한 태도 특히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여성이 사회활동을하게 됨에 따라 편리하고 단순하게 합리적인 가사활동을 하는데 주력한 점이 있다 그리고 주목을 끄는 것은 교수가 아니라 작가가 선생이었는데 이들은 교육에서 기존의 경직된 방식이 아니라 교육에 예술성을 가미해 궁극적으로는 교육이라는 것이 목적지향적이 아니고 그 과정을 중시하면서 교육을 유희의 과정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이 가장 위대한 점이다. 모든 수업을 춤추는 것으로 끝내는 그런 방식이라고 할까요 

[제1부 신체 조화(Body Harmonization)] 

바우하우스 초기부터 신체 훈련이 과목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신체 훈련은 바우하우스 사람들이 새로우면서 조화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예술가적인 창안자로서 자신감을 가지도록 하였다. 이들의 훈련은 신체를일종의 ‘지각 장치’로서 생명공학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전체로서 인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수업 중 촬영된 움직임과 체력 훈련에 관한 사진들, 수업만큼이나 많이 개최되었던 스포츠 게임, 회화 그리고 인체 조각은 신체의 역동성을 증대시킴과 동시에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바우하우스인들의 폭넓은 접근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제3부 구성주의적 형상 (Constructivist Figuration)] 


'오스카 슐레머' 작품 1923년 이후, 바우하우스는 단색 추상, 데 스틸, 구성주의의 기하학적인 형태의 영향 아래 인간이 얼마나 기계에 가까울 수 있는지 탐구하기 위해 추상적인 디자인과 구성에서 인간 신체의 전통적인 표현을 재해석하였다. 그들은 신체를 정밀하고 단순한 형태로 묘사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공유함으로써 자연과 인공물 간의 격차를 좁히는 다양한 모형을 만들었다. 장난감과 때로는 퍼포먼스에 사용되었던 꼭두각시 제작은 바우하우스 사람들에게 놀이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동시에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생각되었다. 

<제5부 조각적 안무(Sculptural Choregraphies)> 


기계적인 극장과 무대 디자인 이외에 바우하우스의 무대 실험은 안무, 마스크 제조 및 의상 디자인을 포함한다. 발터 그로피우스가 구상했던 바와 같이 무대는 ‘공간, 몸, 움직임, 형태, 빛, 색채, 소리의 특정한 문제’에 대한 분석을 용이하게 했다. 바우하우스의 무용작품에서 공간과 오브제는 무용수의 움직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의상과 움직임으로 규정되는 구조가 된다. 무대가 디자인에 있어서 전인교육으로서 역할을 하였고 어느 정도에서는 시각디자이너들에게 ‘응용가능한’ 극장으로서 이해되었다. 두 번째로 의상과 무대영역은 무용가와 배우를 위해서 디자인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바우하우스인 자신들을 위해서 디자인되었다는 점이다 


실험적이면서 실용적이고 유희적이면서도 성찰적인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바우하우스 소개] 


바우하우스(1919-1933)는 현대시대를 위한 디자인, 예술, 건축에 있어 동시대의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한 예술의 다원적 접근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실험적으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연구공간이었다. 1919년 바이마르에서 처음 설립된 바우하우스는 정치적 이유로 데사우로 이전하였고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1925~26년 디자인학교를 설립하였다. 

장인정신에서 출발하여 형태교육자(교수), 석사과정의 학생들, 장인과 견습생들이 모여서 산업시대 대량생산의 디자인 모델을 위한 이상적 환경을 만들어냈다. 바우하우스는 모더니즘을 비평적 시각으로다 루는 동시에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개념을 발전시킨 최초의 학교로서 전통적인 교육방식으로부터 의도적으로 탈피하여 예술과 기술의 융합과 실험을 장려하는 급진적이고 틀에 박히지 않은 길을 추구하였다. 


1925년부터 1932년까지 데사우 기간 중 유명한 교수진들은 발터 그로피우스, 한네스 마이어 미스 반 데어 로에, 바실리 칸딘스키, 오스카 슐레머, 파울 클레, 리오넬 파이닝거, 라즐로 모홀리-나지 등이 있으며 이들은 바우하우스가 국제적으로 예술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기여하였다. 

나치정권의 압력으로 인해 바우하우스는 1932년 문을 닫게 되었고, 1933년 베를린에서 해체되었다. 이후 바우하우스는 창의적인 교육방식과 상품개발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미술의 중요한 경향으로서 여겨지게 되었다. 바우하우스의 개념은 이후 전 세계로 펼쳐졌으며 이후 더욱 개발되고 진화하였다. 오늘날 바우하우스의 건축물은 유럽 모더니즘의 주요 결과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데사우 학교 건물과 형태교육자들의 주택단지인 마이스터 하우스는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건물과 함께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다. 

김영나 I <2'13" 35frames> 2014년 작품 

바우하우스정신을 응용해서 김영나 작가가 디장인과 순수예술곙계를 넘어 전시장 건물 외벽 네면을 둘러싼 창문을 활용 그것을 하나의 악보로 보고 만든 작업이다. 이 조형악보는 ㅇ번 전시에 참여한 다른 작가나 공연에 의해서 연주되건 공연될 수 있는 여지를 보인다. 빨강 파랑 노랑 3원색으로 악보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미술관자료]바우하우스(1919-1933)는 예술, 디자인 학교로서 20세기 예술, 건축, 염직, 그래픽, 산업 디자인, 타이포그라피 등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우하우스 학교는 모든 예술의 통합을 목적으로 하며, 사회 변화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가들을 교육시키는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공간,기계>展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독일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이 2012년부터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바우하우스의 실험을 다루는 전시이다. 

바우하우스의 건축, 디자인 전시는 자주 개최되었으나 이번 전시는 무대실험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첫 번째 전시이다. 전시는 제 1부 신체 조화, 제 2부 분위기 장치, 제3부 구성주의적 형상, 제 4부 신기한 무대기술, 제5부 조각적인 안무, 제6부 총체극장, 제 7부 집단 프로그램 등 총 7부로 구성되었다. 

특히 인간, 공간, 기계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서 무대의 역동적인 역할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졌으며..., 이를 위한 기초적인 실험의 놀이터로서 총체극장에 대한 연구가 초기부터 진행되었다. 무대공방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1921년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에 설립하였으며 1923년까지 연출가 로타르 슈라이어(Lothar Schreyer)와 1929년까지 화가이자 안무가인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에 의해 지도되었다.[...] 

이외에도 창작과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했던 바우하우스의 경향이 21세기 오늘날 한국현대미술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김영나, 백남준, 안상수, 오재우, 조소희, 한경우 등 6명의 한국현대미술작가 작품을 함께 보여주고자 한다. 이들의 작품은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바우하우스운동이 일정한 시기에 일어났던 특정한 경향이 아니라 예술가들 본연의 창작태도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덧붙이기] <1993년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플럭서스 공연이 서울에서 있었다 그때 한국의 이불 작가도 참여하다 아래 사진 하단은 더 원본이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동양최초로 플럭서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라고 상상이 된다. 물론 나는 이걸 보지 못했지만요 1993년 서울 플럭서스 페스티발 퍼포먼스 중 한 장면 사진저작권 천호선 1990년대 세계화 지구촌시대라는 분위기 속에서 정말 서울에서 놀라운 전시와 퍼포먼스 공연이 쏟아졌다 한국의 관객이 이해하기 매우 벅찬 것이었을 것이다 ⓒ 천호선

1993년에는 또 백남준이 주도한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순회전>도 서울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렸다. 사실 이 전시도 획기적인 일이다. 당시에 동성애등 당시로는 받아들이긴 힘든 일부 부분이 빠지기는 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원전시를 그대로 가져와 감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동양최초로 플럭서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라고 상상이 된다. 물론 나는 이걸 보지 못했지만요 1993년 서울 플럭서스 페스티발 퍼포먼스 중 한 장면 오리지널은 여성이 완전 누드로 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는 아니였지요 이 퍼포먼스에 <이불>작가가 참가했네요

1985년 플럭서스 덴마크 공연 때 사진이네요 누드를 등장하는 것은 질서를 강조하면서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고체 같은 시스템과 고정관념과 터부를 깨는 일종이 사건으로서(something happens) 의 예술 즉 해프닝같은 것이겠지요. 해프닝이 없는 현대미술은 상상하기 힘들죠


[코끼리를 쏘다  코끼리를 생각하다] 삼성미술관 Leeum 기획전시실 2015.2.12(木)-5.10(日)(월 휴관) 35점(조각, 설치, 영상, 콜라주 등) - 상실의 시대에 자연과 인간의 회복을 호소하는 설치작가 양혜규전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omn.kr/brcz http://m.blog.ohmynews.com/seulsong 

방울이 서로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가 인간의 어리석은 영혼을 일깨운다 

인간상실의 극한 시대, 인간존엄의 막장시대 이것을 이겨해 내는 힘은 나치수용소의 극한의 상황에서 오직 크고 웅장한 코끼리를 보면 자신의 생존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간 '로맹 갈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의 주인공인 모렐이 코끼라는 거대한 크기의 코끼리를 의지하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상상력을 자신의 목숨을 이어간것처럼 21세기형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빵이 아니라 코끼리보다 보다 더 크고 웅장한 상상력뿐이다. ... 

사살된 코끼리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순수한 자연을 의미하는 동시에 무너져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은유한다. 상실의 회복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양혜규의 주제에서 다치기 쉬운 것, 존재감이 전혀 없는 것, 하찮고 시시한 것들에 대한 짝사랑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양혜규는 인류의 구원을 유비쿼터스하고 원대하고 광활한 상상력에서 찾다 

<象>자를 사방팔방으로 그래픽한 모양 이번 전시의 상징이다 [네오룩] neolook.com/archives/20150213d 

<象>자처럼 상자처럼 사방팔방으로 봐도 통하고 뒤집어 봐도 통하고 문자를 상하좌우로 봐도 통하고 만화경처럼 비춰보고 반시시키고 개념과 의미구조를 확대하고 증폭시킬 수 있는 상상력뿐이다. 인간은 이제 창의적 상상력으로만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우리시대의 정신이고 또한 양혜규 작가가 이 시대의 위기를 이겨내는 대척점으로 삼고 있다. 

양혜규 I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 알루미늄 블라인드, 알루미늄 천장 구조물, 분체 도장, 강선350*1052.5*352.5cm 2015 

위 작품은 이번 전시에 백미, 밀도(덴시티)가 강렬하다 그것을 가장 잘 형상화한 작품은 바로 블라인드 작품 <성채>에 이어 이번에 야심차게 선보인 <솔 르윗 뒤집기>이다 

기획전시장 입구 경사로 위에 설치된 작품은 신작<솔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2015)이다.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솔 르윗의<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1986)이란 작품을 23배 확장한 블라인드 설치작품으로 솔 르윗 작품의 입방체 형태와 구성을 그대로 차용했다. 대신 원작의 위 아래를 뒤집고, 크기를 확장했으며, 선적인 구조를 블라인드의 면으로 대체했다. 형식적으로 기하학적 형태와 단일한 모듈이 반복되어 미니멀리즘적 요소를 지닌 블라인드의 특성을 잘 살린 작업으로, 이미알려진 양혜규의 블라인드 작업의 큰 전환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계열의 블라인드 작업을 예고한다 

양혜규하면 생각나는 것은 <블라인드>인데 양혜규 자체가 블라인드다. 다시 말해 그는 투명하게 보이면서도 블라인드의 특성이 그렇듯 일부는 가려져 보이지 않기도 한다. 태현선의 말대로 "명료하면서 모호하고, 이성적인가 하면 감성적이고, 도회적이고 모던한가 하면 민속적이고 예스럽다. 지적이면서 지극히 노동집약적이고, 산업화된 모습이면서 수공적이다. 이렇듯 종잡기 어려울만큼 종횡무진하는 이중성 혹은 양가적인 특성은 갖추고 있으면서도 교묘하게 작품 속에 녹아있고 은유적이면서 수사적이다 

양혜규 I '상자에 가둔 발레' 2013-2015 
그리고 20세기 초에 그런 상상력의 지원지인 바우하우스운동계승하고 그것을 재해석한 <상자에 가둔 발레> 바우하우스는 20세기 초에 나치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되어 완벽하게 뭉개졌다 양혜규는 바로 그런 정신을 다시 21세기 되살리고 있다 

틀이 없는 축제의식에 몰입한 20세기 초 미술운동 바우하우스에 심취해 그를 자신만의 설치미술언어로 재번역하다 독일나치는 이 미술운동이 너무나 보기 싫어서 완전히 추방시켜 버린다 너무나 행복한 족속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우하우스 미술운동은 지금까지도 100년 이상 전세계 사람들의 가구 건축 디자인 미술 무대장치 패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양혜규 작가와 태현선 리움 수석연구원(큐레이터) 

양혜규 작가는 21세기 인간상실의 극한시대 인간존엄의 막장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자의 코끼리 <象>자처럼 전후좌우로 뒤집은 일종의 상형문자같이 생긴 사방팔방으로 통하고 아무리 뒤집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유비쿼터스한 창의적이고 인간적인 상상력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시대정신과 그것을 또한 뛰어넘는 비전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미술관자료] 사자탈을 쓰고 추는 사자춤은 그 힘을 빌기 위한 주술적인 행위로, 그 영험한 힘에 대한 믿음이 전파되면서 동양권 전체에 확산되고 전래되어온 민속춤이다. '코끼리를 쏘다  코끼리를 생각하다'전을 통해 옛 인류 공동체의 민속과 전통을 우리 시대로 다시 소환하고자 하는 양혜규는 보이지 않는 사자춤을 한 판 벌여 그 힘을 빌린다. 

시공을 초월한 작가의 상상력으로 펼쳐진, 물리적인 현실 세계를 벗어난 듯한 이 토템들의 풍경은 감겨 있는 우리의 3의 눈을 뜨게 한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곧 벌어질 것 같은 이 혼성적 풍경 속에 방울옷 <소리 나는 의류>를 몸에 두른 관람자가 나타난다면 그의 움직임이 내는 청량하고 현묘한 방울소리는 보이지 않는 은유적인 사자춤의 주술적 효과를 높이게 될 것이고, 관람자는 알게 모르게 실제적인 '매개자'가 된다. 

양혜규 I '창고 피스' 2004 

이 작품은 보관할 곳이 없던 작품들을 전시장에라도 보관하려는 작가의 궁여지책에서 비롯됐다. 23점에 달하는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 미술품 운송업체가 포장한 상태 그대로 네 개의 운반용 나무 팔레트 위에 차곡차곡 쌓여 <창고 피스>로 재탄생했다. 영국에서 첫 선을 보인 <창고 피스>는 이후 여러 도시에서 전시되다가 2007년 하우브록 전시장에서 열린 <창고 피스 풀기>에서 포장을 모두 풀어 개별 작품들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렇게 <창고 피스>는 창작적 재구성, 전시 관행, 미술품 보관과 판매 등 예술 작품의 다층적 현실을 함축적으로 시사한다. 

양혜규 I '상자에 가둔 발레'연작 2013-2015 

출품작들은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단선적인 이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 다양성과 차이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갈피를 잡기 힘들고, 요행히 저변에 흐르는 하나의 맥을 어렵사리 짚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양혜규의 작업은 단순한 시각적 감상과 유희, 지적인 이해와 몰이해, 혹은 그 혼란스러움을 모두 포괄한다. 심지어 일종의 신념과 믿음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는 그 자신이 예술에 내재한 크고 작은 모든 가능성과 변화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양혜규의 개인전은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던진다. 미리 밝히자면, 양혜규에게 코끼리는 자연과 인간 본성의 존엄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사유를 매개하는 은유적인 존재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버린 혹은 인간이 소외시킨 "자연과 야생을 우리 주변에 포함"시켜" 자연과 인간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사유를 시도하고 제안한다. 

이러한 사유의 배경에는 두 문학 작품이 있는데, 하나는 조지 오웰의 자전 수필 <코끼리를 쏘다>(1936)이고 다른 하나는 로맹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1957)이다. 식민지 제도의 비인간성을 깨닫게 한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에서, 사살된 코끼리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순수한 자연을 의미하는 동시에 무너져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은유한다. 한편 가리의 소설에서 주인공 모렐의 상상 속 코끼리는 모렐로 하여금 나치 치하 인간성 말살의 참담한 상황을 버티고 인간다운 본성과 신념을 지킬 수 있게 한 자연이다. -태현선 리움 큐레이터 

양혜규 I '상자에 가둔 발레'연작 2013-2015 

이 작품은 <소리 나는 인물>(2013/2015) 6점과 <바람이 도는 궤도 - 놋쇠 도금>(2013)으로 구성된 작품군으로, 방울을 주재료로 한다. 블랙박스는 검은 암막이 드리워진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며,바닥에는 흰색 나선형 궤도가 테이프로 표시되어 있다. <소리 나는 인물>은 그 궤도 위에 점점이 놓인다. 

양혜규 I '상자에 가둔 발레'연작 2013 

양혜규의 같은 작품인데도 전시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위는 리움 아래는 독일 본 쿤스트페어라인이다 

바우하우스 춤. 연출 양혜규 여기에서 영감을 얻다 

함께 서 있는 <바람이 도는 궤도-놋쇠 도금>은 8대의 선풍기가 3단으로 달려 있는 기계 조각이다. 선풍기 중 일부는 놋쇠 도금된 방울이 날개 자리에 달려있어, 돌아갈 때마다 청아한 소리를 낸다. 이는 바람을 만드는 선풍기이기도 하고, 소리를 만드는 악기이기도 하며 동시에 머리가 여럿 달린 기이한 기계이기도 하다. 

토템들의 풍경 

양혜규 I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자춤–신용양호자 #240(뒷면) 보안 무늬 편지 봉투, 모눈종이, 색종이, 액자, 비닐 시트 21점, 920*775cm 정지井址(앞면) 괴목, 밤나무, 느티나무, 바둑판, 은행나무, 바퀴 157*155*115cm 2015 

양혜규의 리움 전에 나오는 <사자춤>은 이게 오리지널이다. 이 모습은 자본의 신과 싸우는 상상력의 신 같다 

양혜규는 이번 개인전을 약 1년 앞둔 지난 해 2월 일본 가나자와의 어느 공원에서 짚풀로 공들여 감싼 큰 나무들이 조형물처럼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양혜규는 기계화되고 산업화된 오늘날에도 원시-농경사회의 재료인 지푸라기와 이를 엮는 사람의 손기술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이 흔한 겨울나기 풍습에서 문화인류학적 맥락을 발견했다. 그가 포착한 것은 짚풀이라는 재료와 인류의 수공이 문명과 역사를 가로지르며 편재하는 동시에 각 문명에 따라 상이하게 토착화되어 발현되어 왔다는 점이다. 인조짚을 일일이 엮어 만든 양혜규의 신작 <중간 유형 The Intermediates>(2015)은 바로 이 보편성과 개별성, 유사함과 상이함이 공존하는 짚풀공예의 혼성적 속성에 주목한다 

예술가에게 재료선택의 독창성은 중요하다. 특히 현대미술에서 그렇다. 재료의 사냥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번에 양혜규는 일본에서 우연히 본 짚풀공예에서 영감을 받은 모양이다. 그리고 한국의 굿에서 애용되는 도금된 놋쇠도 멋진 재료가 되고 있다 

양혜규 I '삼족광주리' 토템 인조 짚, 강철 스탠드, 분체 도장, 바퀴, 바인더 끈, 무명실, 황마실, 털실, 끈, 인조 깃털, 조개껍데기, 소라 껍데기, 금속 고리, 금속 체인, 금속 방울 230*105*95cm 2015 

"짚풀 공예 신작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동안 양혜규는 문화 인류학자 겸 예술가였다. 그는 산업화 이전, 동양의 여러 문화답사와 책을 통해 살피고 자연의 원초적 순수함을 간직한 옛 민속과 전통들을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해 예술적으로 재현했다.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전은 바로 그 상상력으로 펼쳐진 풍경이다. 로맹가리의 주인공 모렐이 참담한 상황에서 초원을 달리는 코끼리를 상상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신념이라는 순수한 가치를 지켜냈듯, 자연을 다시 우리 삶에 되돌림으로써 고귀한 인간적 가치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양혜규는 그 '상상想像'의 힘을 믿는다". 

양혜규 I '성채' 알루미늄 블라인드, 알루미늄천장구조물, 분체도장, 강선, 무빙라이트, 향분사기(모닥불, 산안개, 침향나무, 우림, 삼나무, 바다, 베인 풀, 탐부티나무향 가변크기 2011 

<성채>(2011)는 양혜규의 전형적인 블라인드 설치작으로, 블라인드와 빛의 조합, 그리고 냄새와 그림자를 아우른다. 186개의 블라인드로 이루어진 <성채>는 정방형에 가까운 ‘성곽’과 수직으로 뻗은 ‘탑’으로 구성된다. 눈높이로 걸려있는 블라인드는 시야를 방해하면서 우리를 <성채> 안으로 유인한다. <성채>의 바깥쪽에 설치되어 서서히 블라인드 표면을 비추는 6대의 무빙라이트는 물속을 유영하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동작 감지 센서가장착된 향 분사기 6대는 관람객이 지나갈 때마다 모닥불, 산안개,바다 등의 인공적인 향을 뿜으면서 다른 시공간을 연상시킨다. 

한편 양혜규는 상실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상상력 외에 일종의 적용 혹은 적응의 과정을 제안한다. 자연과 조응했던 과거 다양한 민속과 전통들이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자기화(작가의 표현으로는 토착화)의 결과다. 따라서 작가의 거대한 시나리오에는 개별적이고 이질적인 정서의 타자성과 화해하는 과정과 방법까지 은유적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전시장에서 <신용양호자들>을 수호하고 있는 사자춤이다. 사자가 살지 않는 동양에서 사자는 영묘한 힘을 가진 상상의 존재였다. 

양혜규 I '서울근성–약장수' 행거, 바퀴, 전구, 전선, 끈, 금속 체인, 금속 고리, 밧줄, 방울, 말린 인삼, 말린 마늘, 약통, 플라스틱과일, 안마기, 계수기 200*100*90cm 2010. 서울에 본 사람들 모습을 광원조각으로 의인화 

<서울 근성>(2010)은 1994년 이후 해외에서 머물던 작가가 2010년 서울에 3개월 가량 체류하는 동안 제작한 작업이다. 광원조각은 보통 다양한 일상적 사물들을 옷걸이용 행거에 전선, 전구 등과 함께 메달고 얹으면서 어떤인물을 형상화한다. 휴대폰 장식이나 가재 도구, 화장 도구, 장식용 조화, 욕실과 주방용품 등 다양한 소재들로 구성된 개별 조각들은 해학적으로 펼쳐진 우리들의 진솔한 모습이다. ‘사이비’ 의료 기구, 약통, 인삼 뿌리 등에서는 건강에 대한 서울 사람들의 염려를, 기아한 화장 도구에는 외모에 대한 집착을 읽을 수 있다. 제목 <서울 근성>처럼 작가는 자신이 포착한 도시, 서울과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구체적인 작품으로 생생하게 나타내면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근성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경의를 표현한다. 

양혜규 작가와 리움에서 인터뷰 후 기념사진. 내용은 차후에 소개 

[양혜규 2월 9일 리움에서 인터뷰] 인터뷰를 문장으로 바꾸는 것이 나에게는 고문이네요. 정말 녹음한 것 바로 텍스트가 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지금도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여기 문장도 70% 정도만 옮긴 것이다 예술가란 참을 수 없는 창조의 욕망을 잠시도 내려놓지 않는 사람, 양혜규와 인터뷰하고 나서 떠오른 생각이다. 양혜규는 역시 어느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작가다. 낮은 목소리로 사소한 것에서 인류의 보편적 난제까지 그 주제의 폭이 넓고 깊다. 

[01] 국내에서 첫 전시 인 <사동 30번지>를 발표한지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이번 리움 전시를 기준으로 그동안 전시가 많이 달라졌죠. 다른 점이 뭐죠?


양혜규 한국에서 첫 전시 <사당 30번지> 이 작품이 나온지 거의 10년이 되어오는데 이제 이런 종류의 전시는 한국에서 대유행이다 그리고 요즘은 한국관객도 이런 전시를 매우 즐긴다 

"물론 차이가 있죠. 그동안 상황도 바뀌고 관심도 달라지고 작업도 많이 하면서 국내외전시를 하면서 작품도 많이 축적되었죠. 한국에서 첫 전시는 제가 젊은 작가로서 1년 반 쉬다가 한 컴백전이라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가 양혜규라는 작가를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잖아요. 그때 그래요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지만 저는 스스로 매번 전시 때마다 <끝(쇼부)>을 보려고 해요.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고요. 리움 전시를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저한테는 이 정도의 규모의 전시가 사실 필요했어요. 어느 정도의 크기가 되면 풍부함을 동반되잖아요. 서로 다른 안정감을 가지면서 차분하게 어떤 이슈도 없이 캐치프레이도 구애받지 않고 양혜규라는 한 작가의 개인전을 실어줄 수 있다는 곳, 그럼에도 사실 서울시내 이런 걸 충족시킬 만한 전시장이 그리 많지 않아요. 사람들이 그 많은 전시장 중 전시할 곳이 없다니 의아하게 생각하실 테지만 전 그래요. 그런데 이번 전을 하면서 이렇게 큰 전시장이 제공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사실 전시란 그야말로 작품을 발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미술이 어렵다는 이유로 아이러니하게 저 스스로도 전시를 많이 재단하죠. 본연의 임무를 전달해 보려는 점점 더 저에게도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기에 저 역시 아직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02] 항상 조어능력이 탁월하신데 이번 제목에 코끼리가 들어가니 아주 특이하네요. 


이번 양혜규전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는 아래 왼쪽 것(소리 나는 의류)이다 이 작품은 전시장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이 작품을 위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가 된다 여기에 전시장 입구를 지난 메인 전시장 들어가는 입구에 쓰여진 코끼리 상(象)자를 더하면 상상력 할 때 상(像)자가 된다. 양혜규는 이렇게 교활할 정도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휘했군요. 이번 전시의 주제가 바로 상상력임을 암시한다 

"일단 코끼리 상자가 기호인지 문자인지 그림인지 들어가죠. 한자든 영어든 코끼리 상자 들어갔죠. 처음 해본 시도인데 그래서 문장 앞뒤좌우 어디서 봐도 코끼리 象자가 반복 되죠. 전시장 입구에 코끼리 象자가 예쁘죠. 정진영 디자이너와 같이 한 작업인데 코끼리작업을 하면서 같이 생각한 것은 여기에 많은 개념과 의미구조와 은유도 들어가게 하려 생각했어요. 코끼리 象자를 만화경처럼 풀면서 이런 것이 비춰지고 다시 반사되는 뭐 이런 모습이죠. 그래서 사방팔방 '상상상상(象象象象)' 그러다 보니 상상해야 한다는 의미도 사람 인(人)자에도 코끼리 상(像)자이 들어가죠. 상(象)자는 그러니까 이미지를 생산한다는 것 그래서 상상력 공장이 되죠. 상상한다고 할 때 이 상(象)자가 들어가죠. 


인류학적으로 보면 이런 놋쇠도금 방울이나 금속고리는 샤먼의 도구로 사람들에게 코끼리보다 더 큰 위용과 에너지를 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바로 (예술적) 상상력의 힘이다 이번에 양혜규 작가가 리움 전에서 노린 점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런 작품은 아이들이 전문가보다 더 잘 감상할 줄 아는 것 같다 사진 이경민 

[03] 일간지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사대주의에 빠진 난쟁이만 양산"한다고 했어요. 정약용 시에도 똑같은 내용 "우리가 한반도자루에 갇혀 남의 것 모방하기에 급급하고, 견문은 좁고 흐릿하고 어리석은 것 하나 받드느라" 옛날과 차이가 없네요? 

"저는 현역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불평하는 것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불평 안 하면 뭔가 잘못된 거겠죠. 작가들이란 그래요. 높낮이 있는 것 같아 보이만 우리 작가들 사이에는 동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죠. 굉장히 수평적이에요. 우리에겐 과장도 없고 사모님도 없고 동료일 뿐 이쪽은 생물학적 나이도 신경을 쓰지 않고 요. 저는 일개 개별 작가로서 그렇게 불평을 늘어놓은 것뿐이에요. 

[04] 국내외 여러 곳에서 전시한 설치작가로서 즐기는 공간사용법이 뭐죠? 


이곳이 바로 양혜규에 이번에 선보인 아래층 전시 인류의 보편성과 민족의 특수성의 관계를 집풀이라는 재료를 통해서 토템의 방식으로 구현한 <중간 유형>의 영감을 준 일본의 가나자와의 풍경이다 여기서 중간 유형 우리말로 쓰면 이해불가능한 용어도 영어로 Intermediates다 인터미디어라는 뜻인데 바로 문명미디어를 서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제 기조는 매번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부분 경우 저는 원래 공간상태를 그대로 사용하기를 즐겨해요. 베니스비엔날레에도 그랬고 오스트리아 브레겐츠미술관 전시에도 그랬고요. 대부분 경우 이게 큰 전시장은 건물 건축가의 무슨 생각이 있어서 한 것 개개 그 의도를 읽어보려고 그 의도 안에는 지형이라든지 장소이라든가 이미 한번 소화한 흔적과 의미구조가 들어있기 때문에 건축에 반해서 구도보다는 일단 건축을 읽어보려고 해요. 리움 특이한 건물 <그라운드 갤러리> 지하공간에 가깝죠. 이 블랙박스라는 공간에 밑변을 보고 있는데 저는 사실 흥미로운 구조라고 생각해요. 어마어마한 공간 안에 블랙박스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태인데 칸막이 없이 전시장 창문까지도 다 열었어요. 제가 즐겨하는 것은 건축의 원상태 살리는 거예요. 

[05] 재료의 독창성이 현대미술에서 중요하다 그 재료를 어디서 헌팅하나? 

"제가 어떤 국면에서 이야기 했는지 기억이 나는데 <광원조각> 재료의 독창성 어디서 구했나 생각이 나도 어디서 구했는지 <각설이 작업> 온갖 주워온 것이 다 들어있는 것 그것을 하면서 쇼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헌팅이라고도 하고 <광원조각> 제일 그것들이 극도로 다양함이라든지 사소함과 하찮음 지금 전시에서도 보듯 느껴지는 광원조각은 재료로 다양하고 많죠. 모노형태로 보여주려고 했어요. 

[06] 양혜규 작가하면 <블라인드>가 생각난다. 왜 블라인드 많이 쓰이는지? 


양혜규는 리움이 내 자신의 상상력을 다 담을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만족한다고 나외의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그가 한 말의 뜻을 오늘 태현선 리움 수석 큐레이터의 강연을 들으면서 실감하다 태현선 수석 큐레이터의 강의를 듣고 양혜규에 대한 의문점이 많이 풀렸다 그의 강의에 A+++주고싶다 양혜규가 인터뷰에서 말한 추상적 언어를 가장 선명하고 구체적이고 감동적으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 

양혜규 블라인드 아트의 새국면을 보여주는 작품 <솔 르웟 뒤집기 23배로 확장된 3개의탑이 있는 구조물> 지금까지 해온 블라인드아트 세계를 뒤집어 보면서 그런 굴레에서 스스로 해방되고 싶어 새로이 시도한 작품이다 

"제 생각에 이 질문을 틀어볼게요. 블라인드 작품 2개 선보이고 있어요. <성채>와 <솔르윗 뒤집기> 입니다. 그동안 너무 기존의 블라인드 작품은 너무 많이 이야기 했잖아요. 블라인드 작품이지만 서로 아주 다른 2개의 작품을 비교하면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성채> 웅장하고 규모격자 내부와 외부 파고들죠. 기존방식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솔 르윗>은 생소하고 비전형성이에요. 이 작품은 소위 말하는 오래 같이 작품해온 사람도 기우뚱하게 할만큼 생경해요. 방법론으로 보면 <성채>는 어떤 규모 어떤 격자로 되어 있고 내·외부 파고들다 블라인드를 가지고 추상적이지만 서사구성요소가 크지요. 서서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추상을 거부하지 않음 같은 방식이 다만 내뱉지 아니뿐이죠. 하지만 <솔 르윗>은 달라요 차용이라는 점도 특이하지만 서사구조가 부재해요. 그 말은 사실 서사와 구성에서부터 해방이라고 할 수있어요. 미니멀리즘의 미술학적으로 업적이기도 하고 랜덤(무작위)방식 존 케이지가 주사위 던져 작곡하듯 그렇게 무의미하게 그러나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론으로부터 부터도 해방된 방식이죠 그리고 둘 작품의 다른 점은 <성채>는 블라인드가 186개 들어가고요 <솔 르윗>는 compact한 블라인드가 500개 넘게 들어가 구성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밀도(density)가 높죠. 블라인드의 특성을 극한으로 밀고 붙인다. 반투명성이 무력화하죠 원래 블라인 듯 가린 긋 아닌 듯하지만 <솔 르윗>에서는 가볼 때까지 간다(radicalization) 그래서 극한으로 치닫는 실험이 필요합니다. 저 스스로 기존의 것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요했어요. 

[07] 성채 옆에 전시된 <상자에 가둔 발레> 너무 아름답네요. 설명 좀 부탁할게요? 


양혜규는 살기등등한 사회 인간의 존엄이 막장으로 가고 있는 사회 속에 사는 우리에게 축제의 회복을 절박하게 요구한다. 그는 바로 이에 대한 선례로 바우하우스의 춤이 상징하는 축연(celebration)과 환상의 회복을 들고나왔다. 아래 사진은 이 오리지널로 바우하우스의 회원인 오스카 슐레머의 연출한 삼부작 발레 의 한 장면이다 

"이게 저도 바우하우스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1918년, 도이치제국이 붕괴되어 바이마르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바이마르는  지금의 베를린 상당히 당시 중심도시였어요. 지금의 베를린 상당히 중심도시 나치 들어나면서 망명하게 되죠(발터 그로피우스가 1919년 바이마르에서 설립) 1925년 변방도시인 데사우로 쫓겨나죠. 사실은 축하행사(celebration) 퍼포먼스 정말 '안구에 습기가 찬다'의 상태 안타까움 눈물 나는 추방된 배제된 상태 이 사람의 장난기로 그 배경을 같이 보면 눈물겹다. 그 안에 이들이 품은 이상향 추구 나름대로 래디컬한 실험 추구 진보적인 건축 인형 극 조명 끔찍스러운 그 상황에서 나서는 엉뚱한 일을 저지른 셈이죠. 지금 빛나 보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아니었어요. 그때 거부당함 이 사람들은 구상이 없어 완벽히 낙인찍히고 그들의 눈에 거슬렸다. 


서울시립에서 몇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 <놋쇠방울로 만든 소리나는 의류> 블랙 박 속에 담긴 이 작품에서 놋쇠방울은 주술적인 용구의 상징이며 우리는5분마다 돌아가는 선풍기를 통해서 이 방울이 서로 부딛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상처받은 마음에 작은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도 있다 일종의 힐링아트다. 

[08] '라디에이터'를 보고 작가는 "낮은 곳에 따뜻함을 전하는 장치"라고 했다. 작가에게 주변 사물이 순간적으로 언제 새롭게 다르게 보일 때 언제인가요? "저의 경향인 것 같아요 취향 어떤 사람은 기계 좋아하는 사람 자기 성향 미술인 남이 앞서 제가 먼저 보는 자의 통찰력이겠지요. 

[09] 첫 전시 인천의 외할머니 폐가도 그렇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하찮은 것 존재감 없는 것을 작가는 주목한다. 하찮은 것이 것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바람에는 팔이 없다>이 작품이야말로 가장 양혜규답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복원이 주제다 2006년 작품 사동 30번지의 버전 업이다 양혜규는 존재감이 없는 것 사라져버린 것 음지에 가려진 것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에 대한 짝사랑 내지 애정이 강력하다. 이 작품은 리움 주차장에 설치되어 있어 이 작품을 여간해서 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중요한 개념작품이다
 

"<서울근성>을 보면 허접하죠. 싸구려 사물 사소하고 사람으로 치면 소외된 이들, 내게는 양가적이고 대조화이 있어요. 저라고 그런 허접한 것 보면 민망해요 작가이기에 때로는 상대해야 하는 폭이 넓어요. 전시장 설치해주는 아저씨에서 눈여겨보다가 갑자기 사회저명인사 상대해야 하고 리움주차장에 설치한 작품 <바람에는 팔이 없다> 그런 건데요 이 작업이 어쩌보면 <외부에 꾸린 살림>이죠. 전시장 전체에 단위로 볼 때 외부에 살림 차림 가장 보잘 것 없는 것 많은 사람이 못 보고 갈 수도 있는 전 그것도 각오하고 있다. <사당 30번지>와 같은 자세로 만든 것이에요  효율성 유용성 같은 것 염두에 두지 않고 한 작업이에요. 

[10] '창고피스(2004)'를 보면 시대정신이기도 한 노마드 연상 이에 대해서한 마디? 
"그렇긴 한데요 모든 작가 미술인의 고민 물리적 짐 생김 음악과 다르게 미술 하는 사람은 너무나 부담스런 물리적인 짐 생김 그런 관계 작가와 생산물과 관계 유통되고 운반 되고 저장 되고 생태학 푸코의 생물정치학(bio-politic) 그 이면에 로지스틱(logistic) 군사 경제 용어죠. 시장이나 전시장이 가지고 있는 권력구조가 있죠. 전시장 컵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도 의미심장한 권력구조 관계가 형성되죠. 

[11] <배가 고프면 음악이 들리지 않지만, 배가 부르면 음악이 배고프다> 이건 문화와 경제의 관계를 비유한 말인데 선생님이 관계성의 중시한다는 것 같아요. 

"관계성 비유 그 중 코끼리로 설명하면서 문학작품(여기에 2개가 있다 하나는 조지오웰의 <코끼리를 쏘다>고 또 하나는 로맹 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다 여기서는 로맹 가리의 것을 인용)에서 참조한 건데요. 로맹 가리 가 쓴 소설 <하늘의 뿌리>의  주인공 모렐이 2차 대전에서 나치 포로수용소 잡혀 끌려가 상상하겠지만 비인간적 상황 속에서 자괴감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간 이하의 삶 존엄이란 찾아볼 수 없기에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 코끼리를 생각하면서 이겨내요 거대한 자연의 힘차게 질주하는 어떤 인간도 막을 수 강력한 존재를 상징하는 코끼리에 의지해서 이 사람이 상황에서 극복해 살아나간다면 여생을 코끼리 보호에 바치겠다고 해서 이 지옥을 나가면 세상에 나가 코끼리보호 운동을 결심했고 그는 당시 프랑스 식민지아프리카 출몰 내전 식민 유탄 유린 뜬금없이 코끼리 보호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코끼리가 무해할 수 있다 상상력의 코끼리를 상상하면서 살리려고 하죠. 현실의 토끼 강력하기는커녕 그렇게 나약한데 사실은 짧게 코끼리 보호 무효할 수 있는 그 생각이 인간을 살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상상과 현실의 아무리 극한 상황의 분화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의 존엄함 연관 그 상상력의 힘은 거대하고 강력한데 현실에서 양가적 모렐 이름도 상징성이다. 정말 극한 상황에서 이사람 하루에 빵 한 조각 살아남았다. 꼭 살수 있다는 보장 없지만 코끼리라는 힘을 의지해서 버팀 그게 인간이다 이상한 존재 그것이 또한 인간이 코끼리와 다르지 않다. 연약하고 어마어마 강력하고 비인적일만큼 신성한 게 인간이죠. 그런 경지에 도달 문화예술도 어려운 시기에 융성하다 이상하다고 하면 이상한 것 엄연한 것은 엄연한 거예요 


양혜규는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역시 자본의 신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인류학적인 토템의 모습을 한 새로운 신을 등장시킨다 그것을 바로 상상력의 신이다. 그리고 작가는 자본의 신과 상상력의 신과 싸움을 붙이고 누구 이기나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뒤에 나온는 작품의 이름이 신용양호자다 그게 무슨 뜻인가 역설이다 다시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 심증은 있고 물증은 없지만 그가 자본의 신과 싸우는 상상력의 신일지 모른다 

[12] 고통(agony)이 작가생활을 유지시키는 비밀병기라 했는데 얼마만큼 필요하죠? 

"작가에게 필수불가결 인간에게 확대 시켜서 적용시킬 고통으로 그렇고 소위 말해서 미쳐버리는 것 우리가 정상의 상태가 아닌 미쳐버리는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도 덧붙이고 싶어요. 당사자가 아니라도 다만 체험하면 더 좋겠네요. 

[13] 선생님 설치를 보면 빛, 열, 냄새, 바람, 습도, 온도, 조명, 반사, 움직임, 장소의 특징 같은 것이 작동하잖아요. 그게 왜 필요한가? 

"예를 들면 2층에 전시되는 성채를 보면 현장감이 가는 영상작품(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중 하나)도 있고요 블라인드 위에 반사 긴장 조명 의 일부 그 위에 덮인 무빙 라이트(moving light) 조명기구 블라인드 그림자가 그 위에 떨어지기도 하고 영상 마자도 주변의 영향 중첩(overlap) 계속 하고 있었다. 문이 열었다는 것은 소외 분리 벽 없애고 하나의 작업 뒤에 또 다른 작업으로 계속 이어지죠. 영상이 성채 안에 들어옴 그 속에 풍경이 나오고 영상에 이야기(narration)가 들어가고 무빙 라이트로 인해서 일부 오버랩 되면서 그림자가 덮이고 중첩과 분리가 되죠. 프레임 넘어서 경계를 넘으면서 또 다른 이미지와 영상이 그림처럼 나타나죠. 전체적으로 봐도 색채와 구성도 아름다워요 

양혜규 <소리 나는 의류> 2013 도금된 방울, 고리 스트라스부르 

양혜규 <소리 나는 의류> 2015 도금된 방울, 고리 서울 

[14] 예술작품은 시대를 반영하면서 또한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하다는데 그 예가 있나요? 

"저는 이번에 보편성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이 질문이 보편성과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이건 제 말인데 그것은 엄연하다 다시 말해 엄연하다 보편적이다 우리시대는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시대의 밑에 그냥 그 속으로 흐르잖아요. 시대가 요구한다기보다는 엄연하게 그냥 흐르고 또 무한하게 흐르잖아요. 이건 일개 개인의 이야기 아니라 사람과 시대가 다 양가적 서로 물고 물리며 상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15] 요즘 베를린 세계미술의 중심지다. 그곳 생활은 어떤가? 

"저는 독일체류증을 받고 살고 있지만 독일의 팬은 아니다. 독일을 잘 모르고 독일에 대해서 무심하게 지내는 편이에요. 서울에서 하는 불평·불만 못지않고 거기서도 많은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살아요. 


여간해서 웃지 않는 양혜규 작가, 김홍희 관장을 보고는 웃네요 오른 쪽에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로 같이 나갔던 주은지씨... 리움미술관 양혜규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기에는 너무 좁다 하지만 그만한 전시장도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이 작품<VIP학생회>은 양혜규의 상상력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백남준의 TV코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주제는 <보이지 않는 공동체>다 요즘 구차하고 가난했지만 전에는 그 나름의 인정공동체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씨가 말라버렸다. 여기 의자는 기부를 받은 것으로 각국의 대사관이 보내주기도 하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보내준 것이다 여기서 착안자인 작가와 대여자인 여러 사람들 그리고 작품을 보려온 관객들이 서로 얼굴을 볼 수는 없는 느슨한 연대와 관계 속에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일시적이나마 보이지 않는 공동체를 이룬다. 이런 공동체는 일직이 백남준이 열망한 유토피아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관객이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쉼터의 장이 되기도 하다


양혜규의 작품 중 비교적 예쁜 컬러가 살아있는 작품이다색채와 모양의 유희정신을 보여준다 예술이란 바로 빨래말리기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혼을 잘 빨아서 잘 널어말리는것이 인생예술이 아닌가


양혜규의 매듭연작 중 하나다. 얼키고 설킨 매둡풀기와 유기적 관계성의 애매모호함과 그 난해성과 그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왼쪽은이번에 도록의 전시글을 쓴 김성원 교수 

[경향 인터뷰] <질문>그간의 작품 속에는 항일운동가 김산,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녹색혁명가 페트라 켈리, 재일 서경식 교수 등이 언급되고 있는데. <대답> 나는 그들을 ‘홈리스’라 부른다. 노마드, 디아스포라 개념 등도 있지만. 이 홈리스들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다른 게임을 요구한다. 지금 시스템, 체제로는 감싸안을 수 없음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지금, 현재의 프레임에 딴죽을 거는 그들에게 관심이 많다.” 양혜규 작가는 체제가 품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 사건을 통해 지금의 우리 체제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것이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102145415&code=960202 


이번 리움 양혜규전에서 아래층에서 전시되는 <중간유형>은 바로 일본의 가나자와 공원의 겨울나무를 보호하는 장치를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번 리움 양혜규전에 나오는 '보로부두르사원(Borobudur)'의 오리지널이다 

[전시강연]
 2.14(토) 14시, 태현선 큐레이터, 김성원 교수 3.21(토) 14시, 양혜규 작가  전시설명 :국문11시, 13시, 15시 / 영문 14시(주말) 전화 02)2014-6655 


오늘 리움미술관에서 본 하늘은 조금 멜랑콜리하다
 


다른 각도에 찍은 리움 입구 이게 카푸어 작품이다
 


리움미술관 오래간만에 본 칼더의 작품 기분이 유쾌해진다


[이번 전시에 모티브가 된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에 대해] 

소설가 로맹 가리와 그의 부인 진 세버그(Romain-Gary & Jean-Seberg) 
<출처> 연합뉴스 http://book.daum.net/media/detail.do?seq=30941 

로맹 가리(Romain Gary)의 '하늘의 뿌리(Les Racines du Ciel 1956)'는 아프리카에서 잔인하게 말살당하고 있는 코끼리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프랑스남자 주인공 모렐과 그 주변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는 강제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모렐은 수용소 출감 뒤 아프리카 차드로 가서 코끼리 보호 운동에 투신한다. 

그에게 코끼리는 수용소 생활 당시 절망에 무릎 꿇지 않도록 도와준 버팀목 같은 존재. 좁디좁은 감방에 갇힌 모렐과 동료들은 자유롭게 초원을 누비는 아프리카 코끼리를 상상하며 지긋지긋한 수용소 생활을 견뎌냈다. 

모렐은 아프리카에서 한해 3만 마리씩 잔인하게 죽어가는 코끼리 사냥을 막기 위해 총을 들고 코끼리 편에 선다. 모렐이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의 평원을 무리지어 이동하는 코끼리 떼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이유는 코끼리의 존재에서 생명의 자유와 존엄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진보라는 허울 아래 학살되는 코끼리를 지킴으로써 발전이라는 구호에 밀려 점점 희미해져가는 인간의 존엄도 함께 지키고자 한다. 1980년대에 소개됐다가 절판된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심민화 옮김)도 <문학과사상사>에서 의해 재출간. 로맹 가리(1914-1980)는 같은 작가에게 절대로 다시 주는 않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공쿠르 상을 유일하게 두 번 탄 작가다. 

[백남준 미국전시] NAM JUNE PAIK February 12 - March 14, 2015 James Cohan Gallery 
http://www.jamescohan.com/exhibitions/2015-01-01_nam-june-paik 

NAM JUNE PAIK M200/Video Wall, 1991, Television monitors, 300*960*50cm Cha Zoo Yong Photography Copyright POMA / fazi, inc. 위 작품은 모자르트에 대한 오마주 

In 1991, Paik again paid tribute to Mozart in his large-scale video wall sculpture M200, which was made on the 200th anniversary of Mozart’s death. Paik arranged 94 television monitors into a wall-sized sculpture, which plays simultaneous video of Mozart, John Cage and Joseph Beuys, in a 90-minute loop. The monitors are arranged in an almost fractal pattern, with 16 monitors forming a unit and singular images combining to form overall pictures. At certain moments, the video sequences come together into one expanded image. The soundtrack was arranged by Paik and includes the music of Mozart, pop tunes and instrumental compositions. Image and music move together in synchronized rhythm. The constantly switching video and sound are experienced as “moving wall paintings” and give realization to Nam June Paik’s 1965 prediction that, “The cathode-ray tube will someday replace the canvas.” 

[시민을 위한 문화콘텐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디자인박물관에서 (3월1일 당일) 무료개방 
31절에 간송문화전 3부 '진경산수화 - 우리 강산, 우리 그림' 2015.05.10까지 홈페이지www.ddp.or.kr 
평소에 못 만나신 분들 서로 연락해 전시장에서 만나면 그림을 보면 의미있는 삼일절 하루... 

사진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작품명 정선(鄭敾,1676-1759), 견본담채, 133.0×58.8cm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
 2015년 1월6일부터 2월22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이중섭_가족과 비둘기,종이에 유채,29 *40 cm 

이중섭 담배은박지 그림 

갤러리현대(서울 사간동)는 새해 1월6일부터 2월22일까지 미공개 편지화 등을 중심으로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을 연다. 일본으로 떠나보낸 부인과 아들들에 대한 애끓는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편지화, 궁핍한 생활 속에서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 외에 유화, 드로잉 등이 출품된다. 특히 편지화 20여점은 미공개작이며 은지화 3점은 1955년 당시 주한미대사관 문정관이던 아서 맥타가트가 구입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기증했던 작품으로 60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 중인 은지화 

이중섭_은지화(MoMA) 연작 

신문을 보는 사람들 People reading the Newspaper, Number 84 (1950-52).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MoMA). Incising and oil paint on metal foil onpaper, 10.1*15 cm. Gift of Arthur McTaggart. Acc.n.: 28.1956.© 2014. Digital image, The Museum of Modern Art, NewYork/Scala, Florence 

이중섭_은지화(MoMA) 연작 

낙원의 가족 Family in Paradise, Number 57 (1950-52).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MoMA). Incising and oil paint on metal foil onpaper, 8.3*15.4cm. Gift of Arthur McTaggart. Acc. n.: 27.1956.© 2014. Digital image, The Museum of Modern Art,New York/Scala, Florence 

이중섭_은지화(MoMA) 연작 

복숭아 밭에서 노는 아이들 Children playing in the Peach Farm, Number 50(1950-52).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MoMA). Incising and oil paint on metal foil on paper, 8.3*15.4 cm. Gift of Arthur McTaggart. Acc. n.: 26.1956.© 2014. Digital image,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Scala, Florence 

그의 유화_가족이 다시 하나 되기를... 

이중섭_봄의 어린이 종이에 유채, 연필, 32*49cm 

세상과의 불화에 시달린 그였지만, 목 타는 세상일 속에서도 그나마 그를 지탱해준 건 바로 가족이었다. 이중섭만큼 가족을 많이 그린 화가도 없다고 할 정도로 여러 점의 가족 그림이 우리에게 남았다. 특히 채색화 중 여러 점이 가족을 그린 작품인데, 이들 그림을 이중섭의 신변잡기로 여기거나 개인적 체험을 그린 것이라 깎아내리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짧은 생각이다. 이중섭이 그린 가족 그림들에는 헤어져 있던 가족이 다시 하나되기를 바라는 이중섭의 염원이 담겨 있거니와 일제강점기 이래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과 비극을 대변하는 표현이 엿보인다. 


어머니를 비롯한 혈육과 헤어진 데 이어 아내와 자식과도 헤어져야 했던 이중섭은 이산의 극단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비극에 마침표를 두지 않고 극복하려는 의지도 함께 두었는데, 그림 속 가족은 재회하고 행복과 평화의 한 때를 즐긴다. 가족이 황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간다거나, 가족 모두가 색띠를 부여잡은 채 새와 꽃을 희롱하고, 생명과 사랑을 낳는 중인 닭가족과 사람 가족이 한데 노니는 식이다. 한 시절의 그늘을 온몸으로 내리받은 이의 그림이라기엔 지극히 밝고 희망적인 건 그의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신분열 속, 순수욕망의 회화미를 미완성으로 남기고 간, 이중섭' 



이중섭이 서귀포에 있을 때 그린 <해변의 가족>을 보면 거의가 나체 아니면 반나체다. 벌거벗은 가족그림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한번은 이중섭의 친구인 한묵화백이 그의 집을 놀러 갔는데, 밖에서 보니까 온 가족이 옷을 다 벗고 신나게 놀아 집안으로 들어가기가 좀 어색해 그만 발길을 돌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중섭의 주요테마는 몰아 지경에 빠진 자들의 환희와 열락을 표현하는데 있다. 그래서 벌거벗은 채 복숭아 먹으면서 새와 꽃과 나비와 물고기와 사람이 같은 급으로 유희하는 것이다. 마치 해탈의 경지를 넘나들듯 원초적 인간이 자연과 친화력 속에서 순수욕망의 회화미를 체험하고 음미하게 만든다 

희망의 서신 – 편지화 

이중섭_편지(태현) 

전쟁 통에 원산에서 부산으로, 제주로, 다시 부산으로 옮겨 다니며 뼈 녹아내리는 나날을 보내던 이중섭은 결국 처자식을 일본으로 보내고 그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이번에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썼다. 우동과 간장으로 한 끼 먹던 날에도, 요행으로 두 끼 먹던 날에도 편지를 썼다. 편지의 글 귀퉁이에 그림을 곁들였고, 그림으로만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자신은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제작을 계속하고 있다”고, “오직 하나의 즐거움, 매일 기다리는 즐거움은 당신에게서 오는 살뜰한 편지뿐”이니 “빨리빨리 사진과 편지를 보내”달라고, “조금만 참으면 되”니, “더욱더 우리 네 식구 의좋게 버티어 보자”고 썼다. 그 마음의 오목과 볼록이 그대로 드러나는 편지글은 사뭇 절절해 읽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이중섭_편지 

삶의 통각과 압각에 짓눌려 살던 그였지만 그림에는, 무엇보다 편지글 속 그림에는 헤어져 울거나 슬퍼 우는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다시 만난 가족이 원을 그리며 춤추거나, 과수원에 모인 가족이 과일을 따 먹으며 즐기는 광경을 그려보냈다. 한자리에서 다시 만난 감격과 기꺼움이 편지글 속 그림에 가득했다. 

화가로서, 좋은 화가로서 이중섭이 지닌 역량이 바로 이것이다. 그 자신을 포함해 이 땅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는 희망과 곧 이루어야 할 바를 미리 그려 보여주었다. 그늘에서 더욱 빛나는 얼굴, 그것이 이중섭과 그 그림의 힘이다. 그가 우리 민족의 미술가인 까닭도 바로 이것이다.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북서울미술관 사진갤러리 1, 2전시실에서 2015.02.03-04.19까지 
[전시시간] 10:00–20:00 /토․일․공휴일 10:00-18:00 (2월) 3월부터는 19:00까지 매주 월요일(휴관) 
[박현주기자 관련뉴스] www.ajunews.com/view/20150204082113337 

콜비츠 I '차에 치인 아이(Run Over)' 1910, 에칭, 24.8*31.7cm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소장 

"흑백 대비에서 오는 명암의 극적이라고 할까. 비극과 가난과 슬픔을 드러내는 데는 판화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전쟁터에서 18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살려고 태어나게 했는데 죽음을 먼저 맛보다니요. 세계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내 예술이 목적을 가졌다는데 동의한다.나는 인간이 어쩔줄 모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 - 콜비츠.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콜비츠 전 서울 북서울 미술관 사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참으로 반가운 전시다 콜비츠는 
개인적 정서가 아니라 사회적 정서를 그린 작가다. 그녀는년 이세상에서 오갈데 없는 사람들 기댈 데가 없는 사람들 따뜻한 여성과 뜨거운 모성의 무한정 가슴으로 그림이라는 큰 그릇에  담았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1945)의 전시를 연다. 콜비츠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180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에 걸친, 초기부터 말년까지 총 56점의 작품으로 구성하였다. 출품작은 모두 일본 오키나와에 소재한 사키마미술관의 소장품이며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 공동 주최로 이루어졌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자화상)' 1919 석판 

케테 슈미트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년 7월 8일-1945년 4월 22일)은 독일 화가, 판화가이며 조각가이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전반기의 인간 조건을 사실적이고 애틋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불행한 사람, 특히 가난과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이를 그림, 에칭, 리소그래피, 목판화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에 기반하지만 후기 작품들은 표현주의적인 경향도 있다.참여미술의 선각자로도 불린 콜비츠의 미술은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케테 콜비츠 I '작품(독일가내 노동전 포스터_1906년 독일산업전시회)' 1905-1906 

살아있으나 죽은 사람 같은 얼굴 휑한 얼굴 누렇게 뜬 얼굴 당시 여성노동자의 얼굴이네요 

케테 콜비츠는 1867년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10대부터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현대 독일 판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클링거(Max Klinger, 1857~1920)의 판화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초기에는 에칭과 석판화를 주로 제작했으며 후에 에른스트 바를라흐(Ernst Barlach, 1870~1938)의 영향을 받아 목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평생에 걸쳐 총 275점의 판화를 제작했고 대부분 흑백판화였다. 콜비츠는 사회참여적인 수단인 판화를 선택하여 자기 체험적인 고백과 시대를 담은 예술을 펼쳤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어머니들)' 1921 

전시는 결혼 후 더욱 심화된 콜비츠의 사회의식과 전쟁을 겪으며 작품에 쏟아 부은 작가로서의 발언에 주목한다.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에 여성적 시선이 더해져 당대의 현실과 이슈를 작품으로 풀어내었다는 점은 콜비츠 특유의 작가정신으로 꼽을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예술적, 개인적 실천을 수행했다는 점은 콜비츠 작품세계의 핵심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그의 작가적 의지는 더욱 강화되었기에 전쟁은 콜비츠 작품을 살펴보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케테 콜비츠 I 콜비츠의 자화상 1934 

직접 보면 인간의 내면을 이렇게 리얼하면서 감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니 정말 심장에 강력한 파문이 일어나고 예술의 힘이 느껴진 그의 그림은 민중미술이라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휴머니즘의 승리하고 할 수 있다 전시는 무료 한번 가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전시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을 기점으로 전쟁 이전과 이후의 작품군으로 분류하였다. 먼저 사진갤러리1에서는 1차 세계대전 발발과 아들의 전사라는 역사적,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세계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전쟁의 참상으로 가난, 죽음, 모성과 같은 문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시기이다. 전쟁 전 주로 노동자 계층의 고된 노동, 질병, 가난과 같은 핍박의 삶을 표현했다면,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작가는 반전과 평화를 적극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자화상)' 1915 외 

콜비츠 그는 시대의 증인으로 우리에게 그 어떤 역사서보다 독일의 과도기 고난의 시점을 감동도 전율의 시각언어로 전달하고 있다 도무지 문자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판화형식이 아니면 고발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과 그 비극을 극복해 가는 인간의 위대함도 같이 보여준다 이 전시는 절대로 빼놓지 마세요 북서울 시립미술관이 있어 북서울은 행복한 지역이 되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고요 하나의 미술관은 100개의 수력발전소보다 더 위력이 있는 문화발전소가 될 수 있음을을 체감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와 부녀자의 대비되는 표정은 전쟁 이후의 비참함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 중에서도 작가의 주요 연작인 ‹전쟁 War›(1921~1922)은 케테 콜비츠 작품의 백미로, 작가 개인이 어머니로서 전쟁을 겪으며 아들을 잃은 슬픔, 모성애를 보편적으로 승화시킨 시기의 작업들이다. 절제된 표현의 목판화는 콜비츠가 겪은 아픔과 절규를 표현하는데 매우 적절한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이룬다. 뚜렷한 흑백대비의 목판화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강한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살아남은 자)' 1923 

당시에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던 시대였나요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생각이 나는군요 참혹한 인간수난시대특히 하층민 땅의 사람들 농민 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그들에게는 살아남기만 해도 대단한 시대가 있었다
 

브론즈 조각 작품 ‹피에타 Pietà›(1937~1938)의 아이를 꼭 안고 있는 어머니는 콜비츠의 후기 작품을 지배한 죽음에 대한 애도와 평화에 대한 갈망의 절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전쟁 이전의 여성들이 억압받고 투쟁하는 계층으로 등장했던 반면, 전쟁 시기의 여성은 어머니로서의 본능을 강조한 작업들이 주류를 이룬다. 격동기를 거친 작가의 자화상과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어머니의 모습이 거의 동일시 됨을 확인할 수 있다. 

케테 콜비츠 I 전쟁 5 과부 1922-23 '지원병들 1921-23, 목판, 35*49m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 소장 

인간의 고통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인간을 고통만큼 위대해진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고통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환희의 세계는 과연 가능한가요 

사진갤러리2의 전시는 ‘1차 세계대전 이전’ 케테 콜비츠의 초기 에칭, 석판 작업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작가의 현실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빈민, 노동자 계층의 억압받는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이름을 알리게 된 주요 연작과 초기 대표작들을 비롯하여 여성 노동자의 초상들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게르미날 Germinal› (1891)을 시작으로 가난의 추방이나 질병 퇴치와 같은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표현한 작품들을 연작으로 제작하였다. ‹직조공 봉기 A Weavers’ Rebellion›(1893~1897)는 비참한 직조공들의 상황과 이로인한 새로운 투쟁을 소재로 한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1862~1946)의 연극 ‹직조공들Die Weber›(1893)에서 비롯되었다. 

케테 콜비츠 I '기도 하는 소녀' 에칭 1892 

기도하는 소녀 감동이다 위선적 종교행위와 처절한 경건성 서로 다르다
 

전시에는 연작 중 세 번째 작품으로 봉기에 앞선 직조공들의 회의 장면을 담은 ‹협의 Conspiracy› (1898)가 전시된다. 또 다른 대표 연작인 ‹농민전쟁 Peasants' War›(1901~1908)은 ‹직조공 봉기›보다 적극적인 혁명 의지를 담고 있다. 1840년 출간된 침머만(Wilhelm Zimmermann, 1807~1878)의 «대농민전쟁사개설»을 읽고 재구성한 판화 연작으로, 농민전쟁(1522~1525)을 소재로 제작했으나 역사적 장면을 그린 것이 아니라 ‘검은 안나(Black Anna)’라는 모티브를 빌어 농민 혁명을 조형화한 것이다. 혁명적인 주제로 가득한 그녀의 1차 세계대전 이전 작품들에는 의례적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왕과 귀족 등의 지배계층 대신에 억압당하는 피지배계층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한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전쟁 6 어머니들)' 1922-1923 목판 

모성의 절대적 경지는 신성이 되는 것인가. 땅의 사람들(암아하레스) 그들은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오직 뜨거운 포옹과 절대적 신뢰 그리고 형제애적 끈적끈적한 연대뿐인가요 

더불어 사진갤러리2에는 전시개최 배경과 작가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이 전시를 공동으로 주최한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와 작품을 대여해준 일본 사키마미술관에 대한 소개와 연표를 제시하였다. 

케테 콜비츠 I '작품(농민전쟁 5 폭발)' 1903 

몸부림으로서 절규 같은 삶을극명하게 보여주다. 

콜비츠의 사회적, 예술적, 개인적 실천을 드러내는 뜻깊은 이번 전시가 격동기의 삶과 당대의 이슈에 공감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한 작가의 삶과 예술이 일체를 이룬 현실 참여 정신이 동시대 미술가들에게 여전히 큰 울림으로 전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대행사] 일반인 대상 <전시와 만나다> , 어린이 대상 <어린이 겨울방학 교실> 운영 *신청: 홈페이지-교육 / 문의 T. 2124-5276 *부문/작품수 판화, 조각 / 총 56점 도슨트 시간 1일 1회 / 오후 2시 * SeMA 도슨팅앱과 소책자를 통해 작품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관람료 무료 주최 및 후원 서울시립미술관,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전시문의 김혜진(02-2124-5269) 

<아트선재센터 2가지 동아시아 작가 전시 2015 2.7-3.29>> 
- 미니 동아시아 비엔날레 같은 전시 

[전시1] <히만 청(싱가포르 작가_절대 지루할 틈 없는 요즘> 아트선재2층 2015 2.7-3.29 

히만 청, <낯선 이로부터의 이메일(자라)>Heman Chong,Emails From Strangers (Zara), 
2015, 캔버스에 아크릴, 뒷면에 사인 및 날짜 명기, 46x61x3.5cm 

자기 안녕, 좋은 하루 보내고 있기를! 내 이름은 자라이고 나는 우리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예전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지만 너도 괜찮기를? 내가 너를 당혹스럽게 하는 거라면 미안해. 그저 오늘의 ‘안녕’ 인사가 내일은 우정이 될 수도 있잖아. 우정이 곧 행복으로의 길이니까. 오늘 페이스북에서 네 프로필을 보고 너한테 관심이 생겼어. 네가 답장한다면 내 사진을 보내주고 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게.내 마음을 담아,자라 
이메일...zara3n@hotmail.com 

스팸메일은 어느새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비타민제 등 간단한 상품을 구매하라는 광고부터 10억 달러를 상속받으라는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이르기까지, 스팸메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거짓과 기만을 기반으로 하는 이 같은 이메일은 읽는 이를 이 어두운 계략의 일부가 되도록 유혹한다. 히만 청은 자신이 받은 스팸메일 중 유독 센티멘탈했던 것을 골라 관람객에게 이메일이 아닌 회화의 형식으로 ‘전달’한다.
 

[전시2] <불협화음의 하모니> 아트선재1층 3층 2015 2.7-3.29] 

구정아작가 '당신이 하는 일을 당신은 왜 하는가' 

이 작품 위에 올라가면 정말 우리가 얼마나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구정아는 1967년서울출생으로, 주로공간에대한개입에 관해작업한다. 이러한 개입을통한 작업의 가장 큰 목적은 공간에영혼을 불어넣기 위함이며, 작업의 형태는 건축적요소, 다양한드로잉, 소설, 시, 출판물, 설치, 조각, 도시공간에대한 개입, 영화, 소리작업, 건축프로젝트를 포괄한다.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건축사무소 ‘레스코’와협력해스케이트파크 구조물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다른나 라에서도 건축이 진행될 예정이다. 최근 개인전«Ousser»(이탈리아라라이아재단, 2014), «Shining Living»(파리이본램버트온페이퍼, 2014)을열었고, 제14회베니스건축비엔날레 스위스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요즘 독일에 엄청나게 문화투자를 하고 있군요 독일은 최근에 문화예술이 가장 많이 상승한 나라죠 이제 독일은 유럽에서 최고의 나라가 되고 있다 아시아작가 전시에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네요 아트선재에서 작은 비엔날레 같은 동아시아 작가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독일문화원장이 참석해서 지원하고 식사까지 제공하네요. 문화의 투자가 시간은 걸리지만 그 이자가 가장 높다는 것을 하는 것인가요 이제는 베를린으로 공부하러 갈가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기획전] 박현기 1942-2000만다라 작품과 함께 대공개 1천평 전시장에 1천여점 전시 2015년 1월 27일부터 5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2015년 1월 27일부터 5월 25일까지 '박현기 1942-2000 만다라'을 연다. 


박현기는 국내에서 비디오를 본격적으로 예술에 도입했던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주로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1984년에야 한국을 드나들기 시작한 데 반해, 박현기는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영상 매체를 작품에 활용하며 독특한 비디오 작업을 해나갔다. 그는 1942년 식민지 시대 일본 오사카의 가난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1945년 해방이 되자 대구에 정착했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와 건축을 함께 공부한 후 1970년대 초 대구로 낙향, 건축 인테리어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번 돈을 모니터와 카메라를 사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쏟아 부었다. 


1974년부터 시작된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요 작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79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1980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일찍부터 국제적인 시야를 넓혔다. 1980년대에는 일본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1990년대 한국에서도 비디오 아트에 대한 열풍이 일어나면서 박현기의 활동이 주목 받게 되었으며, 그는 1997년 이후 <만다라> 시리즈, <현현(顯現)> 시리즈 등 대표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내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각광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 갑작스럽게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2000년 1월 숨을 거두었다. 


58세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그는 수많은 작품과 자료를 남겼다. 그의 사후 여러 차례 박현기를 재조명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회고전은 2만 여 점에 달하는 그의 자료가 처음으로 정리 완료되어 공개되는 전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1965년 학창 시절 메모부터 2000년 임종 직전의 스케치까지 35년간 그의 인생과 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풍부한 자료가 선별, 전시된다. 또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을 총망라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자료를 토대로 그의 주요 작품을 재현(再現)해 냄으로써, 박현기의 ‘거의 모든 것’을 전시에 담아내었다. 


그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비디오’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매우 동양적인 정신의 바탕 위에 올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초기 비디오 작업은 돌탑 사이에 돌을 찍은 영상 모니터를 끼워 넣은 것들이다. ‘그냥 돌’과 ‘모니터의 돌’은 서로 중첩되어,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상인지의 구별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마치 하늘에 뜬 달과 강물에 비친 달을 구별하지 못한 채, 강물의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전설을 남긴 이백(李白, 701-762)의 정신세계 같다. 


그의 작품은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등 세상의 온갖 극단(極端)들이 서로 갈등하고 공존하는 일종의 ‘에너지 장(場)’을 형성한다. 그는 미디어의 끊임없는 변모 속에서도 어쩌면 항구적일지 모를 인류 궁극의 가치를 찾아내는 일에 주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에게서 ‘미디어’는 영구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을 ‘우주적 코드’를 암시하는 도구일 뿐인 것이다. 1천여 점에 달하는 작품과 아카이브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박현기의 진면모를 확인하고, 그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백남준과 부인 시게코여사, 박현기 일본전시에 참석한 적이 있군요 

우환선생의 돌(자연)과 철판(문명)의 관계망처럼 박현기 작가의 돌과 TV, 선사시대와 첨단시대의 공존과 소통 대화를 엿볼 수 있다 백남준 선생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퐁피두에서 제프쿤스 전] Jeff Koons au Centre Pompidou [퐁피두전 관련사이트] parisart.tistory.com/40 
-미술계 악동에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제프쿤스 공식홈 www.jeffkoons.com/ 

Balloon Dogs 벌룬 도그(풍선 개) 

제프 쿤스 1955년 1월 21일 생 펜실버니아 뉴욕 출신의 미국작가이다 21세기의 워홀이라고도 한다. Jeff Koons was born in York, Pennsylvania in 1955. He studied at the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in Baltimore and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He received a BFA from the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in 1976. Koons lives and works in New York City.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작품을 해 보고 싶다 -제프쿤스 

Jeff Koons utilise plusieurs techniques artistiques : l'installation, la photographie, la peinture, la sculpture sur tous matériaux (bois, marbre, verre, inox) jusqu'à la création assistée par ordinateur, sa technique de prédilection pour les peintures, qui sont ensuite mises en forme sur toile par ses assistants1. Il affirme essayer de faire de l'art pour le plus grand nombre et travailler toujours avec le souci de « traiter de choses avec lesquelles tout le monde peut créer un lien »[réf. nécessaire]. Malgré la simplicité apparente de ses œuvres, Koons y met le plus grand soin, ses Balloon Dogs, par exemple, reproduisent le moindre plissement du ballon. Le temps de production d'une sculpture serait de près de trois ans. 

Split-Rocker Puppy stainless steel, wood (at Arolsen only), soil, geotextile fabric, internal irrigation system, live flowering plants 1234.4 x 1234.4 x 650.2cm © Jeff Koons 1992 

L'une de ses dernières créations, Split-Rocker, est une sculpture réalisée avec plus de 100 000 fleurs. Elle représente pour une moitié un Dino, pour une moitié un Pony, tous deux issus de l'imagerie de l'enfance. Elle a été acquise par François Pinault en 2001. 

The 17th BMW Art Car Koons created the 17th BMW Art Car, which raced at the 24 Hours of Le Mans,0 France. © Jeff Koons 201 - See more at: http://www.jeffkoons.com/artwork/projects#sthash.DNtlhtIs.dpuf 

Plus récemment, Koons a collaboré avec BMW et a décoré la 17e Art Car de la marque, une M3 courant dans la catégorie GT2 aux 24 Heures du Mans 2010. Cette décoration spéciale, réalisée à partir d'une impression numérisée sur vinyle recouverte de deux épaisseurs de film transparent de protection, a été dévoilée le 1er juin 2010 au Centre Georges-Pompidou à Paris. 

Il a participé à la création de la statue de Artpop (dévoilée le 11 novembre 2013) lors de la artRave qui est le quatrième album de la chanteuse Lady Gaga. 

Gazing Ball (Antinous-Dionysus) plaster and glass 153.2 x 112.7 x 69.7cm © Jeff Koons 

최선희 디렉터 아이들과 그 친구들 아리안( Gazing Ball ) 작품 앞에서 포즈 

Pour cette série entreprise en 2013, Gazing Ball [« Boule réfléchissante »], Jeff Koons réalise des surmoulages de chefs-d'œuvre de la sculpture classique représentant des figures féminines ou masculines (Ariane endormie, Hercule Farnèse, Torse du Belvédère…), ainsi que quelques répliques d'objets communs, comme une boîte aux lettres ou un bonhomme de neige gonflable 

[사진출처] 
https://www.facebook.com/sunhee.choi.921?fref=ts 최선희 


[작가소개] Since his first solo exhibition in 1980, Koons’s work has been shown in major galleries and institutions throughout the world. His Celebration sculptures were the subject of exhibitions on the rooftop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n New York and at the Neue Nationalgalerie in Berlin. Château de Versailles opened its doors to a living artist for the first time with Jeff Koons: Versailles, where a selection of his works were presented within the Grand Apartments.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is presenting the most comprehensive survey of Koons’s career to date, Jeff Koons: A Retrospective (through October 19, 2014), which will also travel to the Pompidou Centre Paris in November, and to the Guggenheim Museum Bilbao in June 2015. 


Koons earned renown for his public sculptures, such as the monumental floral sculpture Puppy (1992), shown at Rockefeller Center and permanently installed at the Guggenheim Bilbao. Another floral sculpture, Split-Rocker (2000), previously installed at the Papal Palace in Avignon, Château de Versailles, and Fondation Beyeler Basel, is currently on view at Rockefeller Center (through September 12, 2014). 

Popeye 

Jeff Koons has received numerous awards and honors in recognition of his cultural achievements. Notably, Koons received the Governor’s Awards for the Arts “Distinguished Arts Award” from the Pennsylvania Council on the Arts; President Jacques Chirac promoted Koons to Officier de la Legion d’Honneur; and most recently, Secretary of State Hillary Rodham Clinton honored Koons with the State Department’s Medal of the Arts for his outstanding commitment to the Art in Embassies Program and international cultural exchange. 

LUXURY & DEGRADATION 

Koons has been a board member of The International Centre for Missing & Exploited Children (ICMEC) since 2002, and co-founded the Koons Family International Law and Policy Institute with ICMEC; for the purpose of combating global issues of child abduction and exploitation and to protect the world’s children. 
- See more at: http://www.jeffkoons.com/biography-summary#sthash.5ZBFBgPH.dpuf 

Made in Heaven lithograph billboard 317.5 x 690.9 cm © Jeff Koons
Edition of 3 plus AP 1989 - See more at: http://www.jeffkoons.com/artwork/made-in-heaven... 

보통 사람들은 제프 쿤스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기 쉽지 않다. 제프 쿤스의 성공비결은 역시 누구도 하지 않은 모션과 퍼포먼스를 제일 먼저 취한데 있다. 아무도 하지 않은 말(예를 들면 니체가 "신은 죽었다")을 하고 아무도 하지 않은 행동(백남준의 TV아트나 위성아트 등)을 할 때 그는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고 예술가가 된다. 그러나 제프 쿤스는 그걸 알았던 것이다 그는 바로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포르노배우와 결혼한 것인데 이 것은 바로 현대사회에서 너무나 친근한 매체인 포르노를 예술화하는 것이다 바로 시대정신임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정말 앙팡테리블(악동)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도 이제는 고전작가가 되고 말았다. 

후버전기청소기 

제프 쿤스도 그만의 방식으로 오브제 아트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행하다 

[밀레, 모더니즘의 탄생展] 소마올림픽미술관에서 2015.01.25(일)-2015.05.10(일) 


이번 전시는 밀레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보스턴미술관이 4년여에 걸쳐 연구하고 기획한 것으로 2014년 1월부터 시작된 미국과 일본 전시에서 무려 100만 명이 관람하는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밀레의 대표작이자 보스턴미술관 4대 걸작으로 알려진 <씨 뿌리는 사람>,<감자 심는 사람>, <추수 중에 휴식(룻과보아스)>,<양치기 소녀>를 선보일 본 전시는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게 됩니다. '밀레와 함께하는 목요일'에는 작품 설명이 있다. 

[전미경 초대전_달빛에 물들다]
 금보성아트센터에서 2015년 2월 23-3월 7일 

[관련기사 조선일보] http://art.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26/2015022602300.html 

전미경 작가의 작업 노트를 살펴보면 자연으로부터 식물을 직접 채집해 이를 회화로 번안하는 작업을 해왔다. 마른 꽃잎과 씨앗은 작가의 마음을 대변하고 삶을 기록하는 의탁의 대상이다. 자연과 호흡하며 얻게 된 깊은 명상과 활기찬 생명의 노래를 탐구하고 기록한다. 

작가는 달빛 내려앉은 하얀 마당에 대한 작가의 유년시절 기억은 지금도 따사로움으로 간직되어 있다고 한다. 인공적인 조명 아래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생명의 전율은 작가의 끊임없는 창작의 샘터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얻어지는 자연의 따스한 감성과 소중함을 기억하기 위한 몸짓이 작업의 시작이며 이유라는 것. 

전미경 작가와 김영호 교수 

달빛에 바치는 헌사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이병주) 

2005년 첫 개인전 이후 10년 넘게 마른풀과 씨앗 그리고 나무껍질을 매체로 삼아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가 이번 6회 개인전을 위해 꺼낸 화두는 달빛이다. 달빛은 동서고금의 무수한 시인과 음악가 그리고 화가들의 창조적 영감을 자극해 왔다. 낭만과 환상의 서정을 자아내는 달의 마력은 지역에 따라 수많은 명작을 낳은 원인이 된다. 

전미경이 꺼낸 화두로서 달빛은 이러한 역사 속에서 신화의 코드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빛이 작가의 화폭 위에서 신화가 되는 사연은 과연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작품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일까. [..]

달빛은 스스로 신화가 되지 않는다. 달빛이 신화가 되는 것은 그것에 빛을 제공하는 태양처럼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과 음악가와 화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달이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듯이 달빛의 신화는 태양의 역사로부터 온 것이었다. 태양빛 아래에서 노동과 투쟁의 시간을 가져온 인간은 달빛 아래에서 비로소 휴식과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전미경의 경우 자신이 구현하려는 유희와 사랑의 신화는 합리와 교양의 삶이 낳은 결실이었다. 그의 달빛 연작에서 해질녘에야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 부엉이의 신화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지혜란 역사와 신화가 함께 어우러져 생기는 산물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2015.2) 

전미경 I '달빛 연작(work)' 

자연을 채집하여 화폭에 단순한 조형과 맑은 서정으로 이식시켜 사람들 마음에 사라진 자연의 노래와 영혼의 그림을 다시 부르게 하고 다시 그리게 한다. 거기에 공기를 뺀 압화의 특징을 살려 표현력을 높인다. 

전미경 I '달빛 연작(work)' 

나무결이 그대로 화폭에 옮겨지면서 자연을 이식한 셈이다. 거기에 나무가 서 있는데 붉은 나무다. 작은 금박 장식도 있지만 그 마저도아주 소박하게 보인다.  이런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음양의 조화가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는 점이 놀랍다. 은은하게 어린 달빛이 작품의 중심을 잡아준다. 

금빛 반달과 함께 자연의 나무은 수분이 많은 물이나 그림 속 나무는 열기가 넘치는 불이 된다. 작가는 자연을 번역하면서도 물과 불의 위상을 바꾸거나 뒤집어놓는다. 자연은 가져온 것이지만 전미경 작가의 자연이다. 

전미경 I '달빛 연작(work)' 

새와 달과 나무 그리고 보름달과 반달 추상적 화풍과 구상적 조형이 잘 어울린다. 역시 음양의 조응을 잘 배치했다. 천상병 시인이나 장욱진의 천진난만의 경지가 보인다. 이를 더 심화할 미래작도 기대된다. 

전미경 I '달빛 연작(work)' 

큰 보름달 가운데 가운데 2개의 가는곡선은 화룡정점이다. 작품이 자연의 형상과 향기와 소리가 넘쳐나기에 관객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림에 조예이 있든 없든 누구나 그의 작품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푸근해진다. 물아일체라는 최고의 감상법이 너무나 쉽게 형성된다. 모두가 어린아이나 신선이 되게 하여 하늘을 새처럼 가볍게 날 게 하고 동시에 꽃처럼 향을 은은하게 피우게 한다.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수상자: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영국)] 

수상자: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영국) 사진출처 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22653749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시상식 2015. 1. 29. 오후 4시 수상자로 하룬 미르자 선정 - 하룬 미르자는 사운드 아트, 설치 미술, 퍼포먼스 등 분야 간 경계를 횡단하는 작업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이자, 가장 적합하게 백남준의 유산을 현대화하여 계승하는 작가 - 백남준 추모 9주기인 2015년 1월 29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시상식 개최 (상금 $50,000 수여, 2015년 10월 22일 개인전 개최)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 국제예술상 심사위원회는 <2014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영국, 1977- )를 선정하였다. 시상식은 백남준 추모 9주기를 맞이하는 2015년 1월 29일(목) 4시에 열리며 하룬 미르자에게는 $50,000(한화 약 5,000만원)의 상금과 경기도 도지사상이 수여된다. 시상식 당일에는 수상자인 하룬 미르자와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노부오 나카무라 CCA 기타큐슈 관장과의 아티스트 토크가 펼쳐지며, 2015년 10월에는 하룬 미르자의 개인전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하룬 미르자 작품 

하룬 미르자 작품 

빛과 소리의 교묘한 조합을 보인다 심사위원: 마이크 스텁스 (Mike Stubbs, FACT 관장), 노부오 나카무라 (Nobuo Nakamura, CCA 기타큐슈 관장),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부관장, 사무소 관장), 안규철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_2015 랜덤 액세스] 2015년 1월 29일부터 5월 31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 2층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을 지향하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신진 작가들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원했던 백남준의 바람을 구현하는 프로젝트 기획- 영상,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국내 작가 10팀의 신작으로 전시를 구성하고, 전시 기간 중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백남준아트센터는 향후 2년마다 신진 작가들이 참여하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에서는백남준의 실험적인 예술정신과 현대예술이 만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고자하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세대가 제시하는 예술형식과 의미를 논의하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이 전시는 백남준아트센터의 큐레이터 5명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로, 각 큐레이터가 작품의 장르, 형식, 내용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오로지... 실험성과 도전정신을 기준으로 작가 2명을 추천하여, 총 10팀의 작가가 참여한다. 예술가의 존재의미를 ‘미래를 사유하는 자’라고 규정했던 백남준의 말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한 10팀의 작가들은 현재의 삶과 예술에 대해 특유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장르와 형식을 가로지르면서 끊임없이 미래를 향하고 있다.


<랜덤 액세스>(임의 접속)은 디지털 사회의 정보접속 방식이자 즉흥성, 비결정성, 상호작용, 참여 등 백남준의 예술 실험의 핵심을 담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 전시의 제목으로 <랜덤 액세스>를 선택함으로써 현대예술을 구분 짓는 장르와 형식, 선입견을 배재한 채 실험적인 방식으로 관객과 접속하는 예술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규범화되고 상업화 되어가는 현대예술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발견하고 작가들이 제시하는 예술언어를 관객과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백남준아트센터는 한국의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동시대 예술 담론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향후 <랜덤 액세스> 전시를 격년제로 열 예정이다. 

2015 랜덤 액세스》에 참여하는 작가는 김시원+윤지원+이수성, 김웅용,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박승원, 서영란, 양정욱, 오민, 이세옥, 차미혜, 최은진으로,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횡단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이들의 작품은 20세기 현대예술이 구축해온 형식과 이론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그것을 새롭게 변주하는 경향을 지닌다.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 2015 '랜덤액세스' 2015 5월31일까지 양정욱작품 노화라는 시간의 문제를 시각화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관점을 주제로 삼고있다 

김시원+윤지원+이수성은 <무제> 시리즈를 통해 기존의 ‘화이트 큐브’, ‘미술관’이라는 제도화된 전시공간에 대한 비판과 그 공간에 대한 탈주를 꾀했던 이전 세대 예술가들의 시도에 ‘작품’이라는 명제에 대한 질문을 추가한다. ‘예술 작품이 없는 전시장’을 구현하는 이들은 작품이 아닌 전시 공간을 전시하는 조명장치,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전시장 바닥을 더욱 균일하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기존의 예술이 가졌던 형식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시도는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어디에나 있는 극장’을 의미하는 극단 이름처럼 이들은 언제 어디에서건 자유로운 내러티브로 배우, 극장, 극단, 조명, 무대 등 연극의 모든 형식적인 요소들에 대해 질문하고 상황을 만들고 사라지게 하는 동명의 작품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를 공연할 예정이다. 김웅용은 <사방에 있는 천사: 알파와 오메가>에서 전통적인 영화와 연극의 형식을 레퍼런스로 두고 이를 전유한다. 그는 이만희 감독의 영화 <휴일>의 사운드를 차용하여 사운드가 지닌 내용과 억양이 화면과 일치하지 않고 서로 어긋나고 미끄러지면서 다층적 의미를 생산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2015년 1월 29일부터 6월 21일까지 백남준전 《TV는 TV다》] 백남준아트센터1층 
TV는 먹통이 아니고 말이 통하는 인간이다. TV는 총체적 삶이 담긴 인간의 몸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장 풍경 

TV는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다 전시를 설명하는 안소현 큐레이터(미술관학 박사) 

백남준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클루언의 문장을 패러디하여 “미디어는 미디어다”라는 작품을 만든 바 있다. 맥클루언은 미디어 자체가 의미전달에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려고 하였으나, 백남준은 의미전달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환경 그 자체가 되어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하려 하였다. 이번 백남준전 《TV는 TV다》는 백남준의 주요 매체였던 텔레비전이 환경이 된 상황을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백남준 식 아날로그 영상 편집을 가능하게 했던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와 다양한 TV 조각들, 폐쇄회로 카메라를 이용한 설치들, 그리고 백남준이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만든 영상들이 전시된다.


TV 영상을 왜곡하거나 변형시키는 편집기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전《TV는 ...TV다 (TV is TV)》­ 백남준의 다채로운 TV 사용법을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는 백남준아트센터의 2015년 첫 번째 백남준전,­ 마셜 맥클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백남준이 패러디하여 만든 작품 "미디어는 미디어"를 재해석하여 미디어가 환경 그 자체가 되어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강조하려 하였던 백남준을 바라본 전시, ­ 백남준의 주요 텔레비전 작품과 관련 아카이브 자료를 네 가지 주제로 구분하여 집중적이고 분석적으로 백남준과 TV에 대해 살펴보는 계기를 삼고 있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예술의 매체로 활용하기 위해, 텔레비전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이끌어냈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단순한 정보의 수신장치를 넘어, 감각적 실험의 도구, 실시간 개입의 통로, 로봇과 악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다가가는 방송 환경이었다. 이번 백남준전 《TV는 TV다》에서는 백남준의 다채로운 TV 사용법을 한 눈에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백남준아트센터의 다양한 소장품을 중심으로 TV의 속성을 크게 ‘실험’, ‘라이브와 재생’, ‘신체’, ‘방송’의 4가지로 구분하였다. 

TV 촛불 

[1]실험(TV as Experiment) 백남준은 실험 TV 시리즈를 통해 자석이나 전류, 음향신호 등을 이용하여 화면을 변형하며 다채롭고 역동적인 컬러 패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백남준이 실험 TV 시리즈에서 찾아낸 화면변형의 기본적인 방식은 그가 일본의 엔지니어 슈야 아베와 함께 개발한 아날로그 합성장치인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 특유의 캔디 컬러와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의 제작 원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실험 TV들과 더불어 2011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슈야 아베와 함께 그 기능을 복원한 비디오 신디사이저 및 원래의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만든 영상들을 전시한다. 전시 작품: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참여TV>, <닉슨 TV>, <왕관 TV> 등 

TV 벽걸이 퐁텐블로 

[2] 라이브와 재생(TV as Live & Play) 백남준은 “편협하거나 획일적이지 않은” TV를 만드는 것을 꿈꾸었는데, 폐쇄회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객이 참여할 수 있고, 영상의 내용을 변형할 수 있는 작품들도 그 일환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의 대표적인 시리즈 중 하나로 종교적인 구도자가 대중매체의 화면을 응시하는 <TV 부처>, 시간의 흐름을 공간 속에 복제하여 복합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스위스 시계>와 같은 폐쇄회로 카메라를 이용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시 작품: <TV 부처>, <스위스 시계> 

TV <스위스 시계> 

TV 샹들리에 

[3] 신체(TV as Body) 백남준에게 텔레비전은 그 자체로 신체의 기관 일부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거나, 사람의 신체처럼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백남준은 텔레비전 모니터를 이용하여 로봇이나 악기를 만들기도 하고, 또 그 악기가 내는 소리를 시각화하여 다시 화면에 나타나게 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TV가 마치 인간의 몸처럼 기능하는 물리적, 전자적 시스템을 만들었다. 백남준전 <TV는 TV다>에는 백남준이 평생의 협업자였던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을 염두에 두고 만든 대표작 <TV 첼로>, 그리고 앤틱 TV 모니터와 라디오를 이용해서 만든 아트센터의 대표적인 소장품 <슈베르트>, <밥 호프>, <찰리 채플린> 등이 전시 된다. 전시 작품: <밥 호프>, <찰리 채플린>, <슈베르트> 등 

TV 첼로 1999 

[4]방송(TV as Broadcasting)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서양의 영화잡지들을 뒤적이며 낯선 문화를 접하는 희열을 느꼈던 백남준은 다양한 문화를 먼 곳까지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TV 전파의 힘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편협하거나 획일적이지 않은” 방송이 필요하다고 느낀 백남준은 실험적이고 새로운 예술을 안방까지 전달하기 위해 여러 방송국과 협력하여 방송용 비디오 아트를 제작하였다. 백남준의 이 방송 작품들은 4시간 동안 비틀즈의 음악과 함께 신디사이저 합성 영상을 내보내는 <비디오 코뮨>부터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시청한 위성 오페라 삼부작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채널들로 이루어져 있다. 

TV 물고기 

백남준 연대기 총정리 

기자에 질문에 답하는 박만우 관장 

한국 프랑스 수교 130(2015-2016)주년을 맞아 파리시립미술관에서 백남준 특별전이 열린다고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 알려주네요 프랑스 문화부 장관 한국계 꽃 장관이 역할도 크겠네요 사진은 전 루브르 미술관 관장 앙리 루와레트(Henri Loyrette) 은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집행위원장이 되다 


한불 외교관계 수립 130주년(1886~2016)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지난 21일 오후 6시 30분부터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은 프랑스 측 집행위원장인 앙리 루와레트씨와의 간담회가 있었다. 

[백남준 개인전 W3] 학고재 본관에서 2015.01.21-03.15까지 

백남준 샬럿 무어먼 

백남준의 환상적 예술파트너 샬럿 무어먼 그의 마를린 먼로였다 무어먼을 신비한 베일에 쌓인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군요 가운데 무어먼의 상징은 첼로가 보인다 

20년간 백남준 작품 기술지원자 이정성 선생 

일본의 기술자 아베에 이어 1988년부터 백남준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의 작품의 기술적 측면을 지원한 이정성 선생 그는 거의 20년간 백남준의 전시를 따라다니며 독일과 미국에서 주로 활동했고 일년의 3-4개월은 한국에서 7-8개월은 외국에서 생활했다 

[이정선선생] 백남준의 “손”으로 불리는 그는 백남준작품 기술전문가로, 1988년 다다익선 작품을 만들 때부터 기술파트를 담당해 백남준 작가와 20년 동안 40~50점의 작품을 함께 하였다.그는 20여 년을 ‘백남준의 손’으로 살면서 작가의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였고 경기 양평 출신의 이정성씨는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기술학원을 다니다가 군 제대 후 청계천의 세운 전자상가에서 전파상을 차리면서 본격적으로 가전제품 기술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이름 없는 기술자였던 그가 백남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당시 다다익선 작품의 TV를 협찬한 삼성전자가 백남준에게 이정성씨를 추천해서였다고 그는 백남준과 작품을 할 당시, 작가에게 재차 설명을 요구하거나 의문을 달아본 적이 없다고 했고, 못 알아보는 기호가 적힌 메모를 받아도 걱정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 백남준은 밥을 먹다가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다가도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와 계획을 늘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백남준의 작품을 다룰 줄 아는 비디오 아트 기술자이며 백남준이 스케치하고 이정성이 만든다’ 고 할 정도로 백남준의 아이디어는 그의 손을 거쳐 현실화됐고, 백남준의 작품 전시가 열리는 곳에는 늘 그가 참여하였다. 그는 ‘가족 같은’ 백남준의 작품과 함께 해온 시절이야말로 언제나 행복했다고 말했다. "선생님 상상 속의 기계를 내가 멋진 작품으로 만들고 사람들이 열광했어요.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보람이 있었어요" 


문화민주주의자 백남준은 TV가 독불장군처럼 고약한 독재자처럼 혼자 자기하고 싶은 말만 하고나서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방식, TV가 하는 말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이런 TV의 소통방식에 백남준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작품을 통해서 백남준은 TV의 주인인 인간이 그 먹통이 하는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서 화면의 내용을 마음껏 조정하고 관리하고 왜곡 확대 등 변화를 주는 보다 쌍방적인 소통을 원했던 것이다. 백남준의 참여TV는 바로 이런 쌍방소통의 개념을 예술로 시도한 것이다. 사실 이런 작품은 볼거리는 없지만 번뜩이는 그의 아이디어와 개념에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아래는 백남준이 전시의 주인공인 관객에게 TV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한 화면통제장치이다. 

[1992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회고전'에서 일어났던 그 열풍 다시 부활?] 

올해 초, 타계 9주년을 맞은 백남준이 세계굴지의 뉴욕 가고시언갤러리(미술파워 세계8위) 전속작가가 됐다. 작고한 작가 중에는 드문 예이다. 백남준은 최근 학고재갤러리 백남준 전에서 TV로봇 '톨스토이'가 4억5000만 원에 팔려 관심을 끌었다. 1992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회고전'에서 일어났던 그 열풍이 다시 부활할까.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bl7s 

백남준 '톨스토이(1995)' 톨스토이는 말년에 동양사상에 심취해 노자의 도덕경을 러시아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 최근 학고재갤러리에서 4억 5천 팔렸다고 한다. 

백남준은 기계의 인간화, 일상의 축제화, 시간의 예술화에 각별한 관심이 있었죠. 여기서 보면 뉴욕뒷골목 고물상에서 사온 것을 만든 그의 TV로봇은 정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 그의 조형능력은 탁월하다 잡동사니의 비빔밥미학인데 그의 특이한 장난기와 골목대장의 개구쟁이 같은 개그감각 유머감각도 한 몫 한다. 차가운 기계부속품이 온돌보다 더 따뜻하고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백남준은 또한 기계와 인간마저도 서로 적으로 보는 서구적 개념을 탈피해 특히 현대에 와서는 서로 공존하며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백남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60이 넘은 나이에 한국과 미국 독일을 긴 비행기시간을 감당하며 양적으로 질적으로 너무나 많은 작품을 몰입했는데 신이 좀 쉬라는 뜻인가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꼭 10년간 부처와 같은 맑은 영혼의 어린아이로 돌아가 생애 후반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그리고 2005년 <엄마>라는 유작은 남기고 어린왕자처럼 지구의 별이 되어 하늘로 돌아갔다 

[단독] 비디오아트 백남준, 세계 굴지 화랑 가고시언 전속작가 되다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73933.html 
[아트리뷰] 가고시언 2014년 미술계 파워 세계 8위 http://artreview.com/power_100/ 

[백남준] 1963년 첫 전시(독일 부퍼탈)에서 '작가의 죽음' 선언 

백남준 I 
백남준의 첫 전시 '음악의 전시_전자 텔레비전'에서 쿠바TV를 보고 있는 백남준과 칼 오토 괴츠. 미국의 백남준 전문가 존 핸하르트 큐레이터는 비디오아트를 "르네상스의 원근법과 사진술의 발견과 버금가는 미술사의 혁명"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 ⓒ 국립현대미술관 

7년간 정말 혼신을 다해 준비한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전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에서는 13대의 실험TV와 4대의 피아노를 통해 비디오아트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었다. 정말 그 개념과 전시기획에서 선각적이고 천재적이다 '‘랜덤 액세스 뮤직' '참여TV'같은 실험적 음악미술을 통해 관객이 전시의 주인이 됨을 실험한다. 

백남준 I '슈톡하우젠의 오리기날레(괴짜)에게 바치는 비디오' 영상제작: Wolfgang Ramsbott(볼프강 람스보트) 1961. 그가 29살 때 고뇌하는 철학자적 면모. Courtesy Kunsthalle Bremen ⓒ The Estate of Nam June Paik 

그는 기존의 서양에서 주류였던 작가중심의 수직적 전시를 해체하고 관객중심의 수평적 전시를 선보였다. 다시 말해 그는 선언한 것이다. 작가는 죽었다고 그리고 관객이 주인이라고 이것은 바로 그의 휴머니즘에서 온 것인데 인간소외가 없는 사회(막스의 영향)에 대한 유토피아 사상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전시에서 이런 유토피라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결국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백남준보다 7년 후인 1970년에 발간된 <텍스트의 즐거움>라는 저서에서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을 선언했다 백남준과 같은 맥락이다 청년 백남준은 이러한 내용을 ‘동시성’, ‘참여’, ‘임의접속’ 등등에 관한 16개의 테마로써 종합적인 큐레이팅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최근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연구자들 사이에 점차 활발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진다. 

백남준 <나의 파우스트> 연작 중 하나 '예술' 


'나의 파우스트(My Faust)'는 뉴욕의 13개의 케이블 TV 채널 수에 맞추어 교육·농업·통신·정보·종교·의약·경제·환경·연구개발 운송·인구·예술·국수주의·자서전 등의 주제로 13개의 고딕성당으로 된 비디오 제단을 만든 것이다. 각기 25개의 TV 모니터를 배치하고 3개의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를 사용했으며 성당 프레임에는 주제와 연관된 이미지를 콜라주하거나 오브제를 부착했다. 

백남준이 바라보는 <나의 파우스트>는 오늘날 13개의 분화된 사회문제와 이슈를 통해 보다 은유적 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 연작을 통해 대중의 우상인 TV를 다른 세계로 보여준다. 백은 초창기 자신의 자전적인 노트와 낡은 자동차 번호판, 장난감 자동차 등이 담긴 낡은 여행용 가방을 괴테의 자서전 제목을 그대로 따 <시와 진실 1961-72>이라는 제목으로 제시한 적이 있는데, 이제 그가 3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괴테이름을 빌어 제시한 것은 그 자신이 개인적 관심이자 곧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되겠다. 

"백남준은 자신이 창조한 시간 속에서 산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시간 어디에선가 그는 늘 추앙해 마지않던 몽골의 칭기즈칸처럼 말을 타고 시베리아, 페루, 네팔 등지를 뛰어다녔다. 아득한 미래에도 십만 살의 나이로 살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 2006년 물리적인 육신은 작고했지만 그는 지금 실존한다" -류진




철학은 가장 높은 단계에서의 삶의 전략이자 기술이다. 다만 일반인들이 그것이 좀 어렵기에 멀게 느껴질 뿐이다. 하긴 미술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미술 아닌 것이 어디 있다 이 세상에 형태와 색깔이 없는 것이 어디 있나.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현대미술을 진절머리 나게 어렵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이렇게 관객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인생 좀 생각하고 살라고 하는 우정 어린 충고가 아닐까 사실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철학서적이나 현대미술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렇지 않은가 

프랑스라는 나라가 나하고 맞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내가 프랑스를 좋아하는 한 가지 이유는 프랑스고등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철학을 잘 할까 고민하는 것과 대학입시에서 철학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시험을 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인생의 철학과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그 답을 찾을 때 철학적 소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에 기초한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자신의 욕망에 진정 충실한 사람은 절대로 부정부패를 할 수 없다 욕망은 이성과 다르게 계산하거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기호가 뭔지를 솔직하게 물고 그걸 즐기는 것이다. 남에게 그럴듯하게 행복하게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나에게 그러한 진정 행복한 진정 내가 하고픈 욕망에 충실한 삶을 말한다 

인문이란 말 그대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나 창문(window)이라고 재해석해도 되겠지요.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고 남이 좋아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삶을 살고 바람직한 삶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삶 의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지로 사는 삶 자신의 욕망을 억제(관리)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호와 생각을 발휘하면서 사는 것 이런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려면 가장 필요한 영양분이 바로 인문학이겠죠. 그중에서 철학이나 미학이 아닐까 싶은데요. 

모든 철학은 시대의 아들이다. 내가 철학을 한다는 것은 내가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진다는 뜻이고 내가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내가 세계를 보는 관점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다. 


중국의 전국시대 말 당시 최대 강국이었던 진나라에서 천문학, 지리학, 음악, 농학, 의술 등의 내용이 담긴 백과사전 같은 책이 바로 '여씨춘추(呂氏春秋)'인데 백남준이 프랑스 200주년 기념 로봇 디드로(백과사전파) 로봇을 만들어서 이런 부제를 '여씨춘추(呂氏春秋)'로 붙인 것은 백남준의 지적 교양과 참신한 아이디어 결합된 백남준다운 사건이다 게다가 문화적 자긍심에서 동서가 구별이 없는 의미도 있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랑스 대학자격시험 문제(미술대학의 경우) 중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의 혁명을 요약한 말 "콜라주가 오일페인팅을 대신했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라는 백남준의 인용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주는 메시지가 뭔지를 나름으로 해석해 보라는 문제가 출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정말 이런 점이 멋지다. 백남준은 정말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 인간의 전형이 아닌가!! 

백남준 TV첼로 2001년 작품 서울 옥션에서 

아주 고급스러운 단순성이 돋보인다 그래서 스마트하다 

[창조교육] 창조교육에서 학생들의 시행착오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또한 그런 과정을 겪지 않으면 절대로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앞서가는 교육이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실패의 과정을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말하기가 없는 영어교육, 쓰기가 없는 국어교육, 토론이 없는 사회교육, 실험이 없는 과학교육, 퍼포먼스(실기)가 없는 예술교육 등은 그래서 다 문제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실패한 아이디어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이를 잘 활용해야 성공할 수 있다 

TV 숫사슴(stag) 1996 

백남준의 섹스아트 중 하나로 1996년 백남준이 하반신 불편해지고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성에너지를 더욱 잃게 되고 다시 말해 남성으로서의 기능이 떨어지게 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아주 긍정적인 의미의 작품이다. 그 내용에는 섹시한 여성 등도 많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백남준이 쓰러지고 나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섹스치료법을 받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젊은 여성이 백남준의 몸을 마시지를 하는 방식으로 다시 기운을 차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 때의 심경을 TV아트로 전환한 작품, 숫사슴은 남성의 성에너지를 말하고 흔히 영어에서 총각파티라고 할 때 쓰이는 용어다. 백남준의 특이한 유머감각이 여기도 보인다. 남성 페니스가 3개나 있다. 


백남준 I 'Video Venus' 1978년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Performance ⓒ Photo: Ivo Dekovic "나는 검은 옷을 차려 입고 음악을 연주하는 성이 제거된 남녀의 고인물 같은 분위기를 휘젖어 놓고 싶었다" 1967 백남준의 섹스아트에 대한 철학 피아노 연주에 따라 여성의 몸이 다르게 움직인다 상호교감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백남준 여성시대 도래의 예언] 


백남준의 이때 애인은 샬럿 무어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은 환상적 예술파트너였다 섹스행위를 연상시키는 둘의 몸 연주는 뉴요커들의 부러운 눈길로 받으며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이 섹스연주에서 남자가 여자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연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여성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린다. 백남준의 전설은 뉴욕에서 이렇게 시작된다. 이게 언제인가요 1960년대죠 


1973년 파사데나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체스(섹스)를 '두고 있는' 뒤샹 

백남준 1978년 작품은 마르셀 뒤샹과 같은 섹스아트의 맥락으로 보인다 

제2부 남준 안에 무당 있다. - 내 사랑 백남준 중에서 

1974년 웨스트베스 작업실에서의 백남준과 시게코. copyrighrt Tom Haar. 사진저작권 이순출판사 

남준의 어머니는 무속신앙을 믿는 분이셨다. 그의 어린 시절 속에는 무당을 집안으로 불러다 굿을 하거나 뭔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점쟁이를 찾아가 점괘를 받아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어릴 때 친숙하게 접해서인지 남준은 한국의 무속문화를 사랑하고 무한한 자부심을 까지고 있었다. 얼마나 자부심이 높았던지 때때로 나와 말싸움을 벌일 정도였다 

그날 우리는 동양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그였다일본에 선도 좋지만 한국의 샤머니즘에 비하면 무척이나 따분하지무슨 소리예요 둘다 각자의 이론과 배경을 가진 철학 아니에요. 위아래가 어디 있어요.(나는 발끈했다)절대 아니야 한국의 무당이 훨씬 창의적이라고흥미롭게 그는 한국의 샤머니즘을 그의 어머니처럼 종교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 소재를 삼았다.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의 무속은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한마디로 소통이야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지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되고 면은 오브제가 되고 결국 오브제가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겠어.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한국의 무속은 따지고 보면 세상의 시작이 아니겠어. 

그래서일까. 남준 안에는 무당의 신기 같은 것이 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고 미친 듯 무대 위를 뛰어다니던 퍼포먼스장면 그리고 샬럿 무어먼과 함께 전위적 공연을 했던 순간들을 들여다보면 남준은 영락없이 신들이 무당의 모습 그대로였다남준 스스로도 굿장이를 즐겨 자처했다. 1984년 귀국 당시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예술은 매스게임이 아니에요 페스티벌이죠. 쉽게 말하면 잔치입니다. 왜 우리는 굿이 있잖아요. 아는 굿장이예요. 여러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광대나 다름이 없는 것이죠"실제로 그는 뒷날 신명나는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1990년 7월 남준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뒷마당에서 자신의 가장 절친한 진구이자 동료인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진혼굿을 치렀다. 

떠나간 벗을 위로하기 위해 마려된 이 자리에서 동해안 별신굿으로 유명한 김석출 김유선 부부가 초대되었다갓을 쓰고 도포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1시간동안 너무나 진지하게 굿을 벌였다. 죽은 자에게 보내는 음식을 상징하는 쌀이 든 밥그릇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요세프 보이스 사진 위에 쌀을 뿌리기도 했다. 

이날 굿판에는 500여면의 관객이 참여 흥미진진한 퍼포먼스를 지켜봤다. 또 한국은 프랑스 방송국에서도 이날의 굿 장면을 촬영해 프랑스전역에 방송했다예술과 버무려져 진행된 이날 굿은 오후 4시쯤 끝났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굿이 끝날 무렵 거센 모래바람과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관중들이 모두 돌아가자 천둥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져 일대 전기가 모두 나갔다고 한다. 

더 이상한 것을 바로 굿을 벌였던 마당 한가운데 큰 느티나무가 벼락을 맞아 시들어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준의 신기가 정말 보이스의 영을 부른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쑥덕거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우연이라고 해도 너무 절묘한 우연이다. 

[백남준, 굿의 예술화 현대화 실험]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http://omn.kr/bksi 


"초기 행위음악에서 플럭서스 해프닝을 거쳐 비디오 아트에 이르는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사상적 통찰과 상상적 미학 실험의 산물이며, 소통과 참여라는 그의 진취적 예술이념 역시 자신의 의식 속에 내재하고 있는 동양정신과 깊게 맞닿아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샤마니즘은, 백남준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주와 인간, 자연과 인간, 이승과 저승의 소통과 조화를 신봉하는 샤마니즘적 사유방식에 대한 참조, 그 문화적 기능과 의미에 대한 숙고를 통해 대중 소통, 관객 참여, 나아가 전 지구적 문화교류를 추구하는 상호성의 예술을 개념화한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무속과 해프...닝, 샤마니즘적 ‘마술’과비디오 ‘미술’, 구체적으로는 샤마니즘과 백남준 예술의 유추를 상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첨단의 테크노 문화와 고전 동양사상 사이의 동질성과 차이를 인식하고백남준 작업에 나타나는 아시아성 또는 한국성을 이해할 수 있다. 샤마니즘과 비디오 아트는 영험적 초자연 세계와 물질적 자연세계,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매체적 기능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고인간 주체와 자연 대상의 소통을 증진시킨다는 유사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텔레비전과 비디오 작업으로 새로운 영상미학을 제시한 백남준의 매체실험을 신화를 전수·재현하는 샤먼적 행위의 실천에 비견할 수 있는 한편, 샤머니즘을 문화의 차이를 넘어 교감의 형식과 가능성을 추구하는 백남준 예술의 은유로 파악할 수 있다. 

백남준은 샤머니즘 세계관에 입각하여 인류의 기원과 역사를 해석하고, 한국의 선조를 샤머니즘 신화에 결부시킴으로써 몽골, 우랄알타이계의 아시아 정체성을 강조한다. 또한 1963년 자신의 첫 개인전이자 비디오 아트의 효시가 되는 역사적인 전시회인 <음악의 전람회>(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화랑)에 방금 잡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황소머리를 내걸어 주위를 경악시킨 샤먼적 행위 역시 유럽의 아방가르드화단에 자신의 뿌리를 알리는 일종의 인종적, 민족적 선언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차대전 중 중앙아시아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타타르 족의 보살핌으로 회생한 후 샤머니즘에 경도된 요셉 보이스에게 분신과 같은 혈육애를 느끼고, 그가 죽은 후 추모굿(1990년 현대화랑)을 열어준 백남준의 정서를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홍희의 굿모닝 미스터 백 중에서 


대가집 자손으로 어려서부터 굿판을 보고 자라난 백남준에게 굿판과 같이 떠들썩하고 혼란스러운 해프닝은, 존 케이지와의 인연이 ‘운명적’이듯, 어쩌면 백남준을 위한 운명적 장르였는지 모른다. 백남준은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작품을 만들 때 무의식으로 만들지만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것은 무당이다. 매년 10월이 되면 어머니는 1년 액을 때우기 위해 무당을 부른다. 24시간 해프닝이 된다. 혼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밤에 이루어지는 예술. 그것도 그녀의 예술이 된다. (중략) 무당은 돼지머리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춤춘다. 그 리듬은 중국 아악 리듬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의 리듬은 싱코페이션이 있는 삼박자로 3박자, 5박자, 7박자로 이어지는 홀수가 많다. 내가 작곡하면 거의 3박자, 5박자가 되던 것은 결국 나의 예술은 한국의 미술, 그 중에서도 민중의 시간예술, 춤, 무당의 음악에 가까운 것이다.”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의 보이스 추모굿 장면 중 처음 보는 것 사진출처 갤러리현대 

그러면 무속 신앙을 물려받고 무당의 제식에 익숙한 백남준은 자신이 택한 예술 장르, 해프닝과 비디오 아트를 통하여 무엇을 추구하며 그것은 결국 무속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해프닝은 전통예술개념을 부정하는 인터미디어와 비고정성 개념으로 참여 이상을 실현한다. 미술과 연극의 인터미디어이자, 시간과 공간의 비고정적 환경인 해프닝 환경에서 관객의 역할은 수동적 감상자에서 능동적 주체로 전환되며, 자신을 ‘지금 여기’의 미학적 요소로 상정한다. 비디오 역시 해프닝으로부터 이 두 개념을 전수받고 있지만, 매체의 특성상 이 두 개념이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즉, 비디오는 인터미디어의 총화로서, 회화적 이미지와 조각적 오브제,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의 중간형태일 뿐 아니라, 예술과 기술,예술과 유흥 사이에 위치하며 우리의 인생과 생활에 개입한다. 

비디오 이미지는 또한 전자적 운동으로전개되는 이미지의 흐름이 비고정적 이중 장면을 창출하고, 그 이중 장면의 이중성이 특수한 양태로 보는 이의 지각적 반응을 일으킨다. 말하자면 피드백 미캐니즘으로 생물학적 차원의 관객 참여가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이러한 관객 참여 이슈는 비디오를 대중문화, 대중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이렇게 관객 참여로 상호연결되는 해프닝과 비디오는 라이브 아트, 즉 예술과 인생의 통합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며, 인생 장르적 반예술 실천으로 전통재현예술의 위상을 훼손시킨다. 

보이스추모굿에서와 같이 굿과 퍼포먼스의 결합이 시도되기도 한다. 해프닝과 굿판의 유사성을 비교해보면 백남준 예술이 얼마나 샤머니즘 전통과 결부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선 해프닝은 집단참여 예술로서, 굿은 민중적 기복이나 집단정화를 위한 사회적퍼포먼스로서 소통과 참여의 맥락을 같이한다. 예컨대 해프닝의 능동적 관객처럼, 굿판의 구경꾼은 제관으로 뽑혀 신내림과 접신의 엑스터시를 경험하며 행사의 일원이 된다. 


또한 무복, 무악, 무화, 무가, 무극, 무담, 무언 등의 총체적 문화집합으로 이루어지는 굿은 음악, 미술, 연극 등 다장르 사이에존재하는 인터미디어로서의 해프닝 형식과 유사하며, 굿판의 현장성과 장소성은 시공적으로 비결정적인 해프닝의 현장미학에 비견될 수 있다. 이처럼 해프닝과 굿은 관객참여 양상, 인터미디어 형식, 비결정성의 미학에서 공유점을 갖는데, 바로 이러한 점들이 관객을 분리시키고 각본에 의존하며 타장르들을 위계적으로 종합하는 연극, 오페라와 같은 전통공연예술과 다른 점이다. 

해프닝과 굿의 이러한 양식적 유추를 통해 비디오 아트와 샤머니즘의 매체적 환유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해프닝의 비결정성미학이나 인터미디어 양식이 비디오 아트로 연장되고, 관객 참여 이슈가 비디오에서는 기억을 담보하는 생태학적 차원의 참여나 사용자 친숙형의 인터페이스 미캐니즘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이나 가상현실의 발전이 미디어를 영매靈媒 현상으로 파생시키는 현 테크노 문화에서 비디오와 샤머니즘은 매체와 영매의 동일한 어원을 환기시키듯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이러한 맥락에서 백남준은 “매체는 중세 신학적 개념으로 신과의 교접을 의미한다. 굿의 기원,무당의 액소시즘은 얼, 몽고말로 영혼을 의미하는 얼이다. 얼은 미디어와의 유사어이며, 미디어는 굿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1990년 7월 20일 뒤로 삼성TV가 보이고 한국인의 생명줄인 쌀을 뿌리고 있다 죽은 영혼를 달래고 새로 부활하라는 메시지다 

굿과 해프닝, 샤머니즘과 비디오 아트는 소위 주객체의 인터액티비티 개념으로 상호연결되는데, 장르적으로 보면 해프닝, 비디오 아트, 무속굿은 모두가 시간성에 기초한 시간 장르라는 점에서 미학적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해프닝, 비디오 아트, 굿은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일반적 의미의 시간 장르가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잡아두거나 역류시키는 특수한 시간 장르라는 점에서 의미 심장하다. 그것은 마치 꿈의 시간처럼 비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비맥락적인, 우리를 공리적인 좌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비합리적인 시간성으로 그것이 관객에게 새로운 지각 경험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의미를 갖는다. 

백남준은 ‘지금 여기’라는 현재성과 함께 동시성, 통시성을 담보하는 해프닝, 비디오의 시간성에 주목하면서 현재 속에서 ‘생’으로 진행되는 퍼포먼스나 비디오 생방송 예술의 의미를 강조한다. “생예술은 인간의 불가항력적 요소들을 그대로 반영하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같이 우연과 사고를 동반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 탄생, 죽음 같은 중요한 일은 일생 단 한번 일어나듯, 생예술의 의미는 그것이 똑같이 되풀이 될 수 없다는 일회성에 있다" 

백남준 I '북경원인' 1992, 각종 전자기기 부품, 알루미늄, 철, 플라스틱, 램프 2, 14인치 컬러TV 2, 8인치 컬러TV 3, 레이저 디스크 1, 디스크 플레이어 1, 150 x 178 x 72 cm 

위 작품을 보면 그의 비빔밥미학이 뭔지 알 수 있다. 로봇은 백남준 예술의 진면목을 어김없이 드러내 보이며, 작가가 "비빔밥의 미학"이라고 부른 창조적 혼합을 아날로그, 디지털적으로 화려하게 구사하고 있다. 구식 라디오와 TV 박스를 근간으로 각종 소도구가 첨가되어 한 인물의 캐리커쳐가 만들어지고 TV 화면에는 작가의 비디오 영상이 현란한 조합과 변화의 율동적인 아라베스크를 펼치며 낡은 물건의 조합에 표정과 생명을 불어넣는다. 백남준의 상상력과 유머는 우리의 상상을 즐겁게 자극하며 동시에 시간과 공간이 자유자재로 압축되고 혼합되며 반복되는 4차원의 세계로 인도한다 

백남준 뉴욕전시 소개 

TV Buddha Re-Incarnated, 1994. Vintage Buddha head, chassis, computer monitor, keyboard, telephone, and Samsung 13-inch TV] One of the most recognizable of Paik’s sculptures is Video Buddha, (1976–78). A sculpted Buddha figure gazes at his image in the TV monitor that is recorded by closed circuit video. The historical/religious significance of the Buddha figure makes it an apt metaphor for ...contemplation, yet there seems to be conflict between the desires to look away from and into the self. Decades later, Paik reinterpreted this theme by placing the Buddha sculpture in front of a computer monitor in Buddha Re-Incarnated (1994). The connection is not made through a contemplative gaze, but rather through a telephone receiver linking the Buddha figure, which has cyborg components, to the computer monitor. Perhaps this is a commentary on the technological advances that allow for immediate real-time communication of voice and image. Paik may also be commenting on the nature of the relationship and the connection between the mind and objective reality. 
http://www.sculpture.org/documents/scmag01/june01/paik/paik.shtml 

사진 저작권 피터 무어(Peter Moore) 1965년 뉴욕에서 플럭스 소나타 (Flux sonata)4번 제목의 포퍼먼스 작품으로 랜덤 액세스 방식으로 소리를 이미지화하는 가상적 행위로 보인다 

Nam June Paik, Untitled, Newspaper drawing, 1990s 

백남준의 신문지 낙서화 이런 장르의 드로잉이 왜 독창적인가 아니 무엇보다 매우 아름답다 시각적으로 그렇고 조형적으로 그렇고 회화적으로도 그렇고 색채로도 너무 아릅답다. 그렇다 또한 천진난만의 미학이다 천진이라는 하늘의 진리라는 뜻인데 여기는 하늘의 닿은 그림이라는 뜻도 된다 

그것을 바로 신문에 난 기사도 그렇고 거기에는 시대정신이 담겨 있기에 시대정신+작가사유가 상생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이는 것이다. 백남준은 이제 낙서화가로 재조명해야 한다.사이 톰블리보다 낫다 이부분에서 좋은 평론이 나와야 한다 아직 글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사실 이런 작업은 1963년부터 시작된다. 그는 419학생혁명에 대해 유일하게 제대로 보도한 경향신문 위에 자신의 첫 전시 홍보용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다. 독일에 있을 땐데... 독일에서는 1962년 슈피겔지 언론사 탄압하는 큰 이슈가 터졌고 백남준은 서울에 있는 형에게 부탁해 경향신물을 구입한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정치적이다 

여기 월스트리트 저널에도 레닌이 등장하는데 흥미롭다. 백남준은 정치를 예술화한 것이 아니라 예술을 정치화했다 그래서 그는 민중미술과는 전혀 다르다. 정치는 아래서 위를 보는 것이지만 예술은 위에서 아래를 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기가 막히게 잘 융합한 것이다. 바로 백남준이다 그래서 그는 정말 교활한 정치가인 것이다
 

[1992년 소리(sound)가 영상(image)이 되는 포퍼먼스를 한국에서 처음 소개] 

1992년 유럽초대전을 <백남준·비디오 때·비디오 땅>전이라는 제목으로 바꿔 백남준 회갑을 맞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7월 30일부터 9월6일까지 백남준 대회고전을 연다 부대행사가 국제학술대회도 열렸지만 92년 춤의 해를 맞아 김현자의 춤과 함께 8월 한국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비디오소나타>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공연장이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행사가 무사히 끝났다. 비디오를 마이크처럼 잡고 피아노 연주를 해 소리가 어떻게 영상으로 변형이 되는지 한국관객에게 실감나게 보여줬다. 화면에 백남준 코가 보인다. 사진촬영 이창훈 

[백남준, 1993년 베니스에서 '문화칭기즈칸' 되다]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bm9n] 

ddhakdl오마이뉴스 관련기사[ 백남준 1993년 베니스에서 문화칭그즈칸 된다백남준 I 마르코 폴로 1993 

백남준은 만 29살에 <황색재앙은 바로 나다> 즉 내가 문화칭기즈칸으로 전 세계 미술을 호령해 보겠다고 선언하고 30년만에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로 나가 황금사자상을 타면서 그의 약속을 지켰는데 그때 그가 만든 제목은 바로 전자슈퍼하이웨이였다 다시 말해서 전 세계를 전자아트를 통해서 통일시키겠다는 포부를 구현한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 작품이 있다 노마드 백남준 전자초고속도로 위성안테나를 달고 자동차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 독일에서 나온 도록 표지다 바로 뒤로 단군 스키타이왕이 보이네요 

백남준 아트센터 초대 학예실장 토비아스 버거 인터뷰 서양인의 화려한 수사와 논리적 디테일이 돋보이네요 인터뷰 중 인상적인 것은 거리의 유랑자 같이 보이는 백남준은 유희적 풍자와 비평적 풍자를 비밤밥으로 만드는 훌륭한 정치가였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버거는 비스바텐이 고향인데 어려서 백남준을 봤군요. 


새해 미술계의 시선은 지난 29일 9주기를 맞은 비디오아트 거장 고 백남준(1932~2006)에게 일제히 쏠렸다. 그동안 그가 너무 ‘저평가’ 됐다는 공감대 속에 세계 굴지의 미국 화랑 가고시안과 고인의 대리인인 미국의 장조카 켄 백 하쿠타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기 때문이다. 가고시언의 적극적인 작가 마케팅을 통해 고인의 작품 값과 미술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백남준 '단군 스키타이 왕' 1993년 우주선을 타고 가는 전자 유목민으로 묘사



<스스로 뿌리를 선택하지 않은 삶은 백남준을 전에 없던 유목민으로 만들었다>

백남준에게 한국은 ‘선택’한 나라다. ‘모국’이나 ‘조국’, ‘고향’과 같은 개념은 그의 의식에 없었다. 1932년 7월 20일, 그가 태어난 서울 종로는 백남준의 유목 루트 중 한 지점에 불과하다. 그가 34년간의 타지 생활을 마치고 우리나라에 돌아온 건 ‘회귀 본능’ 과는 거리 가 멀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선임학예연구원 김성은은 그의 귀환에 대해 “백남준이 한국에 돌아와 한국을 위해 활동한 것도, 작품에 한국적 모티브를 사용한 것도 뿌리로의 회귀가 아닌 유목적 사유와 실천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백남준은 자신과 세계, 시간과 공간을 자기 방식으로 해체하고 새롭게 배치하여 인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예술가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직선적인 인과관계를 초월한 사유를 가지고 스스로 뿌리를 선택하지 않은 삶은 백남준을 전에 없던 유목민으로 만들었다. -백남준아트센터 자료 

작품목록도 없고 아직 저평가된 백남준, 그러나 요즘 다시 새로운 도약의 기운이 일고 있다 

갤러리 확고재에서 열리는 백남준전 장면 뒤로 인터넷을 상징하는 W3라는 작품이 보인다 


현재 프랑스 파리 루이 뷔통재단 전시장에 선보이고 있는 백남준의 TV 로댕 

백남준 I 앤드워홀 

백남준이 좋아했던 앤디 워홀을 TV 로봇로 형상화하다 

백남준 I 고인돌 1995 

1995년 백남준이 한국에 처음으로 광주에 비엔날레를 여는데 큰 역할을 하면서 선 보인 작품이다 백남준은 남도지방의 선사시대 고인돌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1998년 백남준의 뉴욕에서의 모습 

[백남준 추모 9주년에] 이경희여사(백남준 유치원친구)가 말하는 천재란 어떤 사람인가? 

1. 기억력도 좋아야 하지만(백남준 전화번호부가 없다 왜냐하면 다 외운기 때문에 1년 전에 본 큐레이터 이름을 100% 암기) 어린아이 같은 사람 2. 제가 백남준과 캐딜락을 같이 타고 명동에 있는 유치원을 다녔는데 어린 시절 백남준 집 3000평이라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서 놀다가 제가 이마 다쳐 피가 흘렀는데 백남준이 1984년 30여년 귀국하게 되었는데 그때 전화로 하는 말이 어렸을 때 나하고 놀다 다친 이마가 괜찮은지를 묻는 사람 3. 백남준이 나에게 뭔가를 부탁했을 때 안 들어주면 절교한다고 자기표현을 그대로 말은 거침없이 하는 사람 4. 백남준 선생이 윤이상와 같이 공연하고 싶다는 한국 신문에 기사가 났는데 저희 주변에서 공연을 하지 말하고 전해달라고 해서 제가 백남준이 미국에서 전화가 왔기에 한국에서 그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를 말했더니 백남준 소리를 확 지르면서 이경희씨하고는 안 만나면 되지 않겠어라고 용감하게 말하는 사람
http://tvcast.naver.com/v/303538/list/8549

[마저MAJEO작가] 아가마가 전 (AGAMAGA) 아다마스253 Gallery 2015.02.05 Thu. ~ 02.28 Sat. 
http://www.adamas253.com/


AGAMAGA Oil on canvas 30cm 100pcs 2015 

이전작품보다 더 진화되고 해체되고 현대화되고 추상화되고 고급화되고 보편화되다. 그림의 해석에 대한 폭과 넓이 확장되었다. 끈과 인연의 관계망은 여전하고 ㄷ만 그 실이 끊어질듯 아슬아슬하다. 아니 아찔하다. 그런 시각적 긴장감은 그림에 탄력성을 준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인간사를 시각언어로 살짝 보여준다 


수많은 인연의 끈 속에 뒤엉킨 레고 새는 가벼운 색채의 경쾌함 속에서 하늘을 날 것 같고요. 생명체를 닮은 오브제에 숨결과 호흡을 불어넣어주니 현대적 감각을 느껴지지만 꽃잎 같은 자연스러움도 피어나 또 다른 묘미를 보여주고요 그래서 자연미와 인공미를 다 충족시켜 주고 있어 풍성해 보인다.


마저 전 제주호텔 켄싱턴갤러리 전시장면 

[마저개인전]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를 현대화한 플라스틱 조충도(鳥蟲圖)' 
[네오룩] http://www.neolook.com/archives/20141103e 
-오색실, '레고', 플라스틱 '조충도' 그리고 지상낙원 
켄싱턴 제주갤러리에서 2014년 11월 01일부터 2015년 01월15일까지 


[백남준에 대한 탁월한 영문글 제목은 칭기즈칸의 귀환] 
Paik Nam June: The Rehabilitation of Genghis Khan - Asian Art May 10, 2010

The powerful discourses of Paik Nam June s art is rooted in his movement from Asia through Europe to United States, translating his nomadic life and global experiences into an arresting new visions, assembling his discoveries in unpredictable new formations. Paik never failed to surprise the viewer with his raw aesthetic sensibilities and avant-garde concepts, ones that were rooted in history and yet fully contemporary, stringing together cultural, economic, and artistic influences from the 1960s to 20th Century under the facade of the modern medium of technology. The core of his inspiration began when Paik s family fled from the Korean War to Hong Kong, and to Japan, where Paik developed a fervent interest in history of art and music at the University Tokyo; he eventually furthered his studies for at Munich University in Germany in 1958; 1958 later became a crucial year for Paik in nurturing his innate intelligence into his very own intoxicating utopian world. His early acquaintance with John Cage, the American experimental composer, transformed Paik s life by involving him in the avant-garde music scene and the activities of the Fluxus movement. Seeking to redefine traditional aesthetics by provoking irrational situations that leap outside order and predictability, he articulated his Dadaist spirit. The Fluxus group was an ideal domain for Paik to find expression for his dormant creativity:   Fluxus art fun should just be simple, entertaining and undermining, it should be about insignificant things, it shouldn t require special skills and countless rehearsals, it should have no commercial or institutional value.- George Maciunams. In 1963, and still working within the uninhibited realm of Fluxus, that Paik held his historic exhibition, the first exhibition in which television was adopted as medium for high art. Paik staged 13 customized television sets with a shocking invitation of a dead bull s head, hung in front of the gallery in Germany. His idiosyncratic and legendary performances combining music, sculpture and paintings all claimed the audience s full attention, demanding multi-sensory interaction with his visual, auditory, physical and psychological strategies. The cross-fertilization of mediums, multidimensionality and simultaneity were all key as Paik found harmony mixing high and low art, the traditional and the modern, to breed a witty transcultural multi-media works, perceptively engaging the viewer with vibrantly textured digital images, sharpening our hearing with conflicting mix of synthesized sounds, inviting the viewer to meander around the three-dimensionality of his work, a cheeky, puckish sense of humor suggested by the com-mingling of historical figures and his playful reinterpretation of their characters. Bill Clinton Stole My Idea ; Paik Name June While Paik explored how technology established connections between different cultures, he was aware of the simultaneous concern for defining personal identity and the urge to preserve individual consciousness especially in the era of instantaneous, mass media technologies of communication. Walter Benjamin famously posited that  the history of every art form shows critical epochs in which a certain art form aspires to effects which could be fully obtained only with a changed technical standard, that is to say, in a new art form and, indeed, it was Paik s acute awareness of technology s relationship to socio-cultural change that garnered him the prestigious Gold Lion award for his contribution to the Germ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in 1993. Under the theme of  Artists as Nomads, Paik presented a large scale project -  Electronic Superhighway-from Venice to Ulan Bator,<  including reconstructions of cultural heroes such as Marco Polo, King Tangun, Attila the king of the Huns, Crimean Tartar, Catherine the Great; and Genghis Khan and Alexander the Great. Paik re-imagines these iconic warriors and leaders as adventuresome, quixotic artists, and as such each portrait is in some way also a self-portrait. Playfully including himself as a cultural nomad, this exhibition is perhaps his quest to collide all its historical and artistic sensibilities as a collection of his many personas, as a self-reflective exhibition of his migration between different countries, cultures, language, and also as a symbol for media immersion and in his reluctance to be defined or rooted into one rubric. By rehabilitating Genghis Khan, Paik addresses the idea of cultural exchange with a simple and clever proposal of bicycle as a literal portrayal of exchange. Shrewdly exploiting the pictorial idiom of a bicycle and its wheel; Paik knowingly incorporated the civilizing and historical trait it embodies as the most momentous discovery in moving the world forward towards our modern technology. Taking a shape of a tool for an almost childish gratification, the notorious founder of Mongolia is amiably clothed in colorful poncho and a vintage diving gear, hauling a clumsily stacked bundle of machineries, physically delivering information on his bike. Silly and irrational, the audience is left with a pleasant grin as we realize that the innocently mischievous nature of Paik himself is hidden behind the masked protagonist. These objects are assigned new meanings in Paik s human economy as he implements radical recipes in his artistic constructs, honoring the long legacy established by Marcel Duchamp with his readymades. Ridiculing and stripping away the practical function of rusty diving gear and a worn-out poncho, he inserts new social contexts and purpose to these objects; they become catalysts in triggering a visual puzzle, reducing the intimidating figure of Genghis Khan an oddly irrelevant and comic figure. This endearing figure contains deeper historical allusions, staged with recontextualized artifacts to echo the solid and collective social bonds of a nomadic society as the backdrop to their stable power and state security; thus, scripting a metaphoric notion of his nomadic mixed medium and a sense of plurality of them. The humanist extraction of technology is exploited to its utmost capacity in a quirky and futuristic replica, aptly positioning the monitor as the core of Khan s body to personify the production and transmission of video images as his soul. The versatile waves of kinetic forms unravels and articulates the command of Genghis Khan, emitting frequencies of information and data, parallel to his historical input in uniting the nomadic tribes under one unified political environment, thus his success in expanding the horizons of the West and Middle East by advancing trade and communication through the silk road. Clearly manifested and constructed in similar economical remedy by constructing the Scythian Road to connect East and West within the Venice Biennale, Paik s sheer curiosity and fearless will to evolve and ignoring rationality has awarded his works to preserve a sense of universalism through work that transcends beyond definition and classification. Constantly in fluctuation and in exchange of new modes of information and data, Paik shares a mutual framework for autobiographical reference with Genghis Khan in their meritocracy, support to science, intelligence, innovation and openness to new knowledge.The Future is Now ; Paik Nam June If Genghis Khan extended rule over an expansive empire over Asia, Paik established a new media empire, infinite in its creative production, sharing the same scale and scope of strategy in their advocacy for building a modern world, and destroying institutions and ancient civilization. It was through his ready-made medium of technology that he defied the conventional artistic idea of creation, constructing his unique niche for utilizing new media technology as a tool for displaying a sprawling synthesis of the imaginary, reality and absurdity; and picture, sculpture and performance all at once. Nevertheless, Paik s savvy tweaking of electromagnetic verified that he too can investigate all academic aspects of painting through the use of his TV screen canvas as precisely as Leonardo; as freely as Picasso; as colorfully as Renoire; as profoundly as Mondrian; as violently as Pollock and as lyrically as Jasper Johns. By manipulating the electronic canvas of video, television as an effective cultural agent and as a commodity in a capitalist economy, he circulated a global satellite of multiple channels of temporal images and auditory messages through snap shots of optical disturbances that indicate the wrapping of reality and static flickering and malfunction of its screen in symbolism of the unsettled harsh and fragile reality, full of assassination attempts and threats on Genghis Khan s life. Demonstrating man s will to survive, Genghis Khan s eager spirit kept him in force to build a global empire through his devoted endeavor to circulate knowledge, hence contributing heavily to the initiation of the modern, capitalist economy that we live in today. Aware of the social significance of medium and the command of television in transforming society, Paik makes analogous promises to the command of Genghis Khan in transforming society; uttering their experience of time and space, delegating network of strong transmission ranges and communication to the people, symbolically presented through the pulsating sequence of images that change its form between flowers, earth, heart, bird, fish, historical sites and psychedelic patterns, all actively engaged in exchanging their form and visual language. Its deep-seated issues within the shift in universal economics of cultural production and reception is broadcasted and received in television s images showcasing horizons of informative exchanges of language, ideas and customs. Like so, both television and Genghis Khan emerged cultures to develop a new cognition that could further the continuous desire for advancement and exploration, consenting to Marshall McLuhan s theory on the unity of the modern world becomes increasingly a technological rather than a social affair, the techniques of the arts provide the most valuable means of insight into the real direction of our own collective purposes. Corresponding to the economical infra-structure of Mongolia which contributed into a stronger, uniformed and internationally competitive country under Genghis Khan s rule, Paik s aesthetic infrastructure of a bicycle, television, audio, poncho and diving gear accumulate a strong cross-cultural reference to model his liberal, cultural, political and economical pluralism by proposing exchange of new modes of information and data. As a conceptual installation that broadcast theoretical fragments, The Rehabilitation of Genghis Khan unravels historical ramifications in a homogeneous and internationally understood narrative and visual Through altering the materiality and electronic fields of the television, Paik defined a new form of creative expression and statement of liberation that soon paved ways for many young artists by challenging audiences and opening art to new possibilities in advocacy for young artists to fearlessly break away from conventional art practice and to imaginatively progress together with the changing media environment, establishing Paik s profound originality as one of the most phenomenal and global influence in 20th century art. 

‘이응노 미공개 드로잉’ 400점 공개 박수근
 
드로잉은 33년 만에 선봬 

박수근, 무제, 종이 위에 연필, 12×16㎝, 연도 미상. 

반세기 넘어 세상 빛 본 ‘한국 근대 미술의 진수’-한윤정 선임기자 yjhan@kyunghyang.com 

문자 추상으로 유명한 이응노 화백(1904~1989)이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인 1930~1950년대에 그린 미공개 드로잉 400여점이 한꺼번에 선보이고 있다.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유화 밑그림이 된 드로잉 35점 역시 30여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가나인사아트센터(서울 관훈동) 전관에서 다음달 1일까지 열리는 ‘가나아트 컬렉션전’은 두 작가의 드로잉을 비롯해 한국 근대 조각전(권진규·문신·송영수·김정숙), 근대 한국화 4인전(변관식·이상범·허백련·김은호), 외국인이 본 근대 풍물화전(엘리자베스 키스·폴 자쿨레·릴리안 메이 밀러·윌리 세일러·버타 럼·요시다 히로시) 등 다양한 전시로 구성됐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20세기 한국 미술의 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박수근미술관 기행] 2015.01.23 금요일 맑음 때로 흐림 



2015.01.23 양구 신령한 하늘과 하늘에 그려진 눈 같은 구름과 땅에 쌓인 구름 같은 눈이 예사롭지 않다 


박수근 미술관 주변 겨울바람과 공기가 달콤하고 유쾌하다 


미술관에서 처음 본 낯선 사람들도 왠지 꽤 오래 사귄 사람들 같다. 이것은 미술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친화력과 보이지 않는 공감력 초고속으로 통하는 소통력 등 이런 건 박수근미술관에 가서도 여지 없이 맛볼 수 있다




하늘의 구름과 땅의 눈이 하나이다 

박수근 자화상 

"나는 우리나라의 옛 석물 즉 석탑이나 석불 같은데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며 그걸 조형화에 도입하고 애쓰고 있다" - 박수근 

박수근 미술관 뒷편 자작나무 숲 


독일분도 오셨네요 아들과 함께 고향은 슈투트가르트와 뮌헨 사이에 있는 울름 출신 이곳이 울름 디자인 대학이 있는데 지난번 DDP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정말 수퍼울트라 최고급 디자인이었다. 세계적 권위가 높다. 이 선생님은 뒤셀도르프미술대학에서 공부 백남준을 만나긴 한 것 같다 그때 백남준 선생 미국에 주로 계셔 수업이 많이 참석하지 못했다고 

지금 중앙대에서 조소과 교수로 있는데 이름은 베른트 할프헤르 지난번 서울시립미술관 한국거주 외국작가에전에 멋진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사모님과 잉꼬부부라 보기 좋았다 아들은 엄마와 아빠 반반씩 닮았다



조덕현 '박수근' 캔버스에 연필 콘테 설치구조물 360*360*420cm 2014 

[박수근 탄생 200주년 기념 특별전] 미석 박수근전 2014. 05.03-08.03 포스터




2014년 작년 미술계 가장 안타까운 일은 국민화가 박수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회고전이나 특별전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지 않고 상업갤러리에 떠넘겼다는 것이다. 아래에서 보듯 박수근미술관에서 탄생 100주년전이 있었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 전시를 준비하려면 5개년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런 그림을 볼 수 없다면 누가 세금을 내고 싶어할까 국립에서 전시를 하면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급영어로 된 최고급 도록이 남고 그것이 전 세계 도서관에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한국미술을 세계에 소개하는 지름길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데는 왜 예산을 안 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앉아있는 두 남자 하드보드 유태 20.3*24.2 1965 

박수근은 큰 작품이든 작은 작품이든 그 회화적 가치에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작품이 더 아우라가 강하게 느껴진다. 요즘 영국에서는 down to earth 화풍이 유행이라고 하는데 박수근은 이미 60년 전에 바로 그런 원칙에 충실한 작가로 그의 그림은 바로 그의 옆구리에 있는 것을 그렸다 연애장소였던 빨래터 어쩌다 돈이 좀 생기면 사온 굴비 그리고 장날 늘 언제나 그렇듯 직장도 없이 아낙에 등에 업혀 사는 시골의 촌로와 실업자 남자들 거기에서 풍겨 나오는 가난함의 아름다움을 예술화했다 몰라서 그렇지 가난함에는 장엄한 힘과 깊은 서정 그리고 끈끈한 정과 서로를 철저하게 의지하는 신뢰와 상호연대감 그런 것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처절함이 미학도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집 1953 제12회 국전 특선 

박수근의 단순함은 단순하게 그리겠다는 그런 의지마저 버린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그린 그런 단순함이다. 당시에는 이런 풍경이 그림에 될 수 없었다. 그의 아들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은 아버지의 그림이 멋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고 그렇다고 말한 적이 없단다. 바로 그 점이 자신에게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농가의 여인 캔버스에 유채 1938 제17회 조선미전 입선작 

박수근은 정말 
50년을 앞선 사람이다 아낙이 일상을 변화시키는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때 그는 아낙의 그의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람과 여성이야말로 신을 대신하는 위한 존재라는 존경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밀레가 그림에 농부를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그렸듯 수근은 아낙을 그림에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그렸다



굴비 하드보드 유태 55.5*29 1962 박명자 기증 

박수근은 화가로서 사람과 그림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그런 면모를 갖춘 화가로 자상한 아버지 여성을 존경하는 남편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한 인격체 이런 삼위일체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인물 중 하나다 


박수근은 화가로서 사람과 그림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그런 면모를 갖춘 화가로 자상한 아버지 여성을 존경하는 남편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한 인격체 이런 삼위일체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박수근 파빌리온개관 기념전] 2014.12.20-2015.10.11 자연에 새겨진 익숙한 질서를 존중하는 궁극의 기념홀 

박수근 파빌리온개관 기념전 포스터 

파빌리온 내부 전시장 

박수근미술관에 새로운 전시장 박수근 파빌리온 

박수근미술관에 새로운 전시장 박수근 파빌리온 2014년 12월 20일 개관 건축가 이종호 한양대 교수가 설계를 했는데 이분이 최근에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여기에는 기증한 기존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여기에는 김환기 이중섭 이응노 황유엽 등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 건축물의 철학은 자연에 새겨진 친숙한 질서를 궁극적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김영배 기증작품 옛이야기-쎄레 아클릴 72*90 1994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9기 입주작가 김형곤-정명화-최윤정-황연주전> 2015년 1월 9일-2월 28일 

벽화 정명화 작가 작품 

박수근미술관 제2기획전시관에서 2015년 1월 9일 ~ 2월 28일 (월요일 휴관)까지 -기억의 잔상 김형곤/點心 · 마음에 점을 찍다 정명화/눈물섬 최윤정/타인의 삶 황연주라는 제목으로 젊은 작가들의 참신한 전시가 열렸다
 

김형곤 작가 작품 

황연주 작가 

최윤정 작가의 눈물섬 

바라보다 2014 

[장현주 전_숲 깊어지다] 갤러리조선 2015.2.5-2.25] 

장현주 I work 

이런 그림을 집에 걸어놓으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씻어주는 거울이 될 것 같다 

장현주 I work 색채는 단아하고 화폭에 여백이 많아 여유롭다 

<고통의 부족> 나무 한 구루 / 자연스럽게 / 한 편의 시같다 
저렇게 되기까지 / 얼마나 고통이 따를까 
내가 겪은 고통만큼 / 남을 이해 한다는데 
나의 고통은 / 어디까지 확대해야 하나 
쓴맛에서 단맛을 찾는 게 / 인생의 묘미라는데 
나의 고통을 너무 가볍다 
사람들과 교감이 / 일 힘든 것도 / 다 고통의 결핍인가 
내 고통이 / 아직 부실공사란 말인가 
애시당초 / 소통이란 불가능한 것인가 
본래부터 /사랑이란 없는 것인가 
고통을 넘어 환희로 / 베토벤의 합창처럼 / 그 다리를 건너야 하다 
내 고통이 / 형편없이 부족하다 2015.02.06 

<쉬어 가는 코너> 

<콜레주 드 프랑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무료 시민개방대학으로 여기 개설한 과목의 강사는 프랑스에서 최고석학 1명만이 할 수 있다 

[1분유머] 우리나라에 좌파가 있나. 없는 것 같다. 프랑스는 좌파의 뿌리가 프랑스혁명이지만 우리는 그런 뿌리도 없다 분단국가에서 뭐 그런 게 있겠나. 그런데 종종 정부를 비판하면 그런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런 사회가 되려면 더 지적이고 더 설득력이 있고 더 많은 토론문화와 다양성이 인정되는 성숙한 사회여야 한다. 만약에 한국에 좌파가 생긴다면 이런 일을 해야 한다. 

돈이 없어도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혹은 학력이 없어도) 최고의 지성인 될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쉽게 이동하거나 여행할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쉽게 다닐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마음 놓고 연애를 할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능력만 있으면 대학가는 사회(추가 대학입시과목에 철학을 필수로 하는 사회), 돈이 없어도 거주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사회, 돈이 없어도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사회 등등 돈이 없어도 저비용으로 행복권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대안을 내 놓아야 한다. 

예컨대 돈이 없어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란 공공도서관의 접근성 강화와 책도 국가에서 명저들은 선발해 정부가 출판사에 지원을 해 3000원 이하의 정도의 보급판 책을 많이 만들어 읽을 수 있는 사회 일본만 해도 10분의 1가격의 보급판 도서가 있고(황인선생의 도움말) 프랑스도 국가지원의 보급판 책이 많다. 이것은 돈이 없어도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사실 유럽에서 처음 지하철은 만들 때 철학은 돈이 없어도 차가 없어도 아주 싼 가격으로 여행을 하거나 이동을 하기 위해서 나온 제도이다. 돈이 없어도 최고의 지성이 될수 있는 우리나라가 되려면 서울대보다 더 훨씬 높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민대학이 나와야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그런 제도가 있다 바로 <콜레주 드 프랑스>다. 여기에 개설한 과목에서 그 과목에서 프랑스에서 최고의 석학 1명만이 강의 할 수 있다 예술 들면 정신분석에는 라캉이라든가 사회철학에서는 푸코라든가 등등. 

돈이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사회에 대한 접근을 앞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 좌파가 있다면 일 것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서울대학교를 파리대학처럼 제1대학 제2대학 제3대학 제10대학까지 쉽게 접근하게 하는 방식도 그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