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그루브 흥 전] 2015.11.13-2016.01.29 세종문화회관에서 축제주의자 백남준의 글로벌 페스티벌 진수를 보여준다
http://ham451887.tistory.com/17685
새천년이 시작하는 2000년 00시 호랑이는 살아있다 동서의 만남 여기에는 남북의 만남도 포함되어 있다 동양을 상징하는 악기 월금과 서양을 상징하는 악기 첼로가 새천년이 시작되는 첫순간에 서로 만나다. 동서의 화해와 공존과 평화를 백남준은 염원하고 있군요 네트워킹 소통 긴밀한 관계 교감 상호주체적 의존성 등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비디오 컨텐츠는 그의 2000년까지 작품이 총망라되다. There are instrument representing the Orient is wolgeum and instrument representing the Occident is cello. Nam June Paik aspire for the coexistence and the communication the West and the East At The first time that the new millennium begins in 2000
백남준이 30살에 한 말 "황색재황은 나다"와 60살에 한 말 "서구가 만든 룰이 문제가 있으면 그걸 바꿔라" 이것만 기억해도 백남준이 어떤 인물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백남준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보여준 칭기즈칸의 후예라는 자부심 자신감 그에게 남의 시선은 없다 그냥 작업하기 좋은 멜빵 패션이면 끝이다. 그의 해맑은 미소와 천진의 얼굴은 천재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다 그에게는 돈은 물론이고 권력도 안 보인다. 명예도 우습다 다만 창조하는 자의 기쁨이 있을 뿐이다 그의 눈빛에는 경쟁자가 없다
그는 랭보가 말하는 견자(voyant or visionary)였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고 있었고 3천 년대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사진 하나하나는 오늘날 맥 빠진 우리 삶에 기운을 넘치게 해준다 그의 비디오제국의 황제지만 그의 행색은 초라하다 그저 보따리 노마드일뿐 TV에 모든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이 다 담고 지구촌 놀이터에서 잘 놀다 저 먼 하늘로 귀천했다.
황색재앙 그것을 바로 나다 30살 백남준의 패기넘치는 말이죠 세계미술계를 쓸어버리겠다는 포부가 보입니다 동서의 장벽을 없애고 지구촌 사람들이 손에 손잡고 춤추는 코뮌세상 백남준의 비디오제국의 황제로서의 포부가 보이는 멋진 사진이군요
새로 단장을 한 세종문화회관 전시장 풍경 인간적이고 자유롭네요 분위기 좋습니다 백남준이 관객을 흡족한 표정으로 보고 있네요
이번 백남준전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김노암 전문위원 총감독의 전시설명
1984년 KBS 방송출연해 작품을 설명하는 백남준
백남준 전시장 참가자 기념 사진
황병조 선생의 전시 축하공연
황병기 백남준 전 축하공연 가야금 연주 제목은 '침향무'
"서양음악이 벽돌이라면 동양음악은 소리 하나 하나를 정원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서양곡은 벽돌을 쌓아가듯이 작곡하지만, 동양곡은 정원에 돌을 배열하는 기분으로 만들지요. 돌 하나 하나의 모습, 즉 소리 하나 하나가 어떻게 오묘하게 변하는가에 귀가 열려야 우리음악의 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황병기
'침향무'는 1974년 작곡된 장구 반주가 붙은 가야금 독주곡이다. '침향(沈香)은 본래 나무의 이름이다. 학명으로는 알킬라리아 아갈라차(aquilaria aqallacha)라고 한다.
인도가 원산지인 상록수로 높이가 20m, 지름이 2m이상 자라는 큰 나무이다. 가지에 상처를 내 흘러나온 진으로 향료를 만들고, 이 향료를 다시 '침향'이라고 부른다. 침향은 의복이나 기물에 스며들게 하거나 태워서 향기를 내며, 예로부터 동양의 가장 고귀한 향으로 존중되었다. 따라서 '침향무'라는 곡명은 '침향의 향기 속에서 추는 춤'이라는 뜻이다.
현재 우리가 연주하고 있는 전통음악은 조선시대의 유산이다. 나는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기 위해 전통음악의 틀, 즉 조선시대의 틀을 벗어나려 했는데, 그 한 방법으로 '침향무'에서는 신라적인 예술세계에 복귀함으로써 조선조의 틀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신실크로드인 전자초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전지인간을 연상시키는 작품
이번 전시의 최대성과는 백남준 첫 전시 포스터에 16개의 테마가 불어 독어 영어로 적혀 있는데 그것에 대한 창조적 해석을 붙이다. 정말 괄목할 만한 일이다 16개 테마 중 하나인 <비인과적 연결 원리로서의 동시성> 백남준의 개념미술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백남준이 요셉 보이스에게 지워준 이름 한자로 普夷壽가 보이네요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 보이스 소장품이군요
Global Groove 1973 지구촌 축제 비디오 파노라마백남준의 절친 요셉 보이스 모자로 이 오브제는 보이스를 상징한다다다익선의 원조가 되는 작품인가요 설명을 못 들었네요백남준의 실험아트 피아노를 치면 음악이고 피아노를 비디오카메라로 치면 미술이 되고 피아노를 부수면 또한 전위아트가 되고 사운드를 이미자로 코드변경하는 실험을 시도하다
와인과 식혜와 함께 간소한 샌드위치 떡 다과회백남준 독일 부퍼탈에서 첫 전시 전시장 입구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머리를 걸어놓고 씩 웃고 있다 서구인들 기 죽이는데 이보다 더한 아이디어는 없다 그의 대담성은 어디서 오나 그는 이 전시 1년 전에 "황색재앙(몽골지배에 대한 서구인의 공포 혹은 트라우마)은 바로 나다" 문화를 통해서 유럽(세계)을 쓸어버리겠다고 호령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세중문화회관에서 백남준 글로벌 흥(Paik Nam June GROOVE) 전이 2015, 11, 13일부터 열립니다 프리뷰(전야제)는 11월 12일 6시부터 시작한다고 하네요 혹시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알려드립니다
이번 전시의 최대성과는 백남준 첫 전시 포스터에 16개의 테마가 불어 독어 영어로 적혀 있는데 그것에 대한 창조적 해석을 붙이다. 김남수 선생의 노고다. 정말 괄목할 만한 일이다 16개 테마 중 하나인 <비인과적 연결 원리로서의 동시성> 백남준의 개념미술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최대성과는 백남준 첫 전시 포스터에 16개의 테마가 불어 독어 영어로 적혀 있는데 그것에 대한 창조적 해석을 붙이다. 김남수 선생의 노고다. 정말 괄목할 만한 일이다 16개 테마 중 하나인 <비인과적 연결 원리로서의 동시성> 백남준의 개념미술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이남 전시작품 국립미술관 서울관]
이이남 작 비디오 작품 동영상사진 촬영법 좀 배워야겠네요 한 작품에 4계절이 다 나옴 이것은 봄이다. 이이남 작가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짓이 없으면서도 까다로운 관객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면 성공이다. 1992년 백남준 과천 회갑전에서도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대 인기였다. 하늘의 진리라는 뜻이 담긴 천진(天眞)의 세계가 가장 높은 예술의 단계가 아닌가
이이남 작 비디오 작품 동영상사진 촬영법 좀 배워야겠네요 한 작품에 4계절이 다 나옴 이것은 겨울이다. 수묵화가 테크놀로지와 만나면 이렇게 새로운 아트로 부활하네요https://www.youtube.com/watch?v=Xpux-IC9PvM
반복 792 Repetition 792, 1979, 혼합재료 Mixed media on wooden panel, 70x100cm.JPG
갤러리현대(대표 조정열)에서는 4월 29일부터 5월 31일까지 일본 교토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일작가 곽덕준(1937-)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전 이후 10여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국내 개인전이자, 갤러리현대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전시장은 작가가 본격적으로 개념미술을 시작한 1970-80년대의 사진, 설치, 비디오 등의 다양한 작품들로 채워진다. 전시에 출품되는 30여 점의 작품은 한국과 일본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타인으로 살아온 작가의 불편한 정체성과 이를 극복해가는 그의 역정을 엿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곽덕준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관념들의 절대성을 무너뜨리는 작업으로 국내외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아왔다. 1960년대의 회화에서 사진, 설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의 변신을 시도해온 작가는 70년대 이후 일관되게 사회와 개인의 관계, 현실과 의식, 미디어 이미지와 개인적 사유 간의 거리에 대하여 역설적으로 되물어왔다. 이번 전시는 곽덕준만의 아이러니컬한 유머와 냉소를 통해 그가 외치는 무의미 속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전시 제목 “TIMELESS”는 그 태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곽덕준을 따라다니는 ‘이중의 정체성’이라는 영원한 숙제와 그의 끊이지 않는 분투를 표현한다. 이 전시는 여든을 바라보는 작가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작가의 예술의 여정을 함께하고 한 사람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작가 곽덕준의평생에 걸친 자기확인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갤러리현대의 첫 개인전을 통해, 원로 화가 곽덕준에 대한 세간의 이해를 넘어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새롭고 심도 깊은 해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위 사진 박현주
[마크 로스코전] 예술의 전당에서 2015.03-23-06.28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cs9i
예술의 전당 입구 전시포스터. * 그에게 바치는 시 http://blog.daum.net/seulsong/8743894
작가 마크 로스코
러시아적 우울과 절대적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유토피아주의자 누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카리스카 그리고 예술의 숭고함과 단순함에서 축출한 최고미 등등 한국사람의 심정을 더욱 건드리는 20세기 최고의 작가라고 할 수 있지요
전시포스터(하나)
전시포스터(둘)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미국문화의 최전성기 그 한가운데 로스코가 있었다 뒤로 잭슨 폴록도 보이네요
자료영상 연합뉴스 http://m.yna.co.kr/kr/contents/?cid=MYH20150307006900038
에술가노조를 만든 것은 로스코가 처음이 아닌가 싶네요 그는 미술전공자가 아니었다는 것이 다행인가요 그 어떤 틀에도 갇힐 수 없는 사람 미국의 천재들 잡스와 빌 게이츠가 그랬듯이 명문 대학에 갇히지 않고 거기서 탈출 예일대 자퇴하다 로스코 얼굴은 소수종파의 교주 같은가요 위엄이 넘친다 21세기에는 예술이 종교임을 그는 정말 여실히 보여준 것인가요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작품명에 왜 무제가 붙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런 그림에 제목을 붙이면 작품의 감상이나 영역이 확 좁아지고 줄어든다 침묵의 의미처럼 무제의 의미는 심오하고 기묘하다
이렇게 따뜻하고 온화하면서 격정적인 노란주황색이 어디 있나 이런 색채의 뉘앙스를 지난 여자라면 금방 사랑에 빠질 것 같다
이런 작품을 보면 최고의 오르가슴을 느끼게 되고 몰아지경과 무념무상에 젖어든다 그야말로 침묵과 고요와 침잠의 바다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동양의 번짐의 기법에 서양화에서도 가능하다니 선의 경계가 없어 더욱 매력적이다 색채의 삼원색을 로스코 나름으로 응용한 것인가 애교가 넘치가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작품이다
나와 생각이 너무나 비슷한 로스코 "정치로는 문화를 만들 수 없지만 문화로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 문화가 부모라면 정치는 그 자녀죠 그런데 우리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너무나 많죠
로스코이 색채로 보여주는 채플, 이것은 완전히 러시아 색이다 슬라브 민족의 우울을 상징하는 색이다. 한국의 묵색과 다르고 어둔 유럽의 블랙이나 밝은 미구구의 블랙과도 다른 으로 뭐하고 규정할 수 없는 신비하고 숭고한 짙은 회색이나 고동색이다
미국 휴스턴 소재한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장소, 로스코 채플, 여기에서 터키 탁발승이 회전무용(1978)을 추고 있다. 이 채플에 가면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곳은 그렇게 초종파적이다. 토론과 공연과 강연도 가능한 마음의 치유와 경건한 묵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세상에 이렇게 엉성한 그림이 어디있나 그런데 너무나 아름답다 청초록의 대조가 극한으로 치닫는다
로스코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그의 그림에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로스코는 진정한 미의 유혹자이다
로스코는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작가와 관객이 그 어떤 장애물도 없이 완벽하게 만나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군요. "나는 2차 대전의 참혹한 비극을 경험하면서 현실의 폭력과 그것 앞에서 나약할 수 밖에 없다는 인간의 비극을 고대신화를 통해서 그림으로 전달해보려고 했다". -소위 신화의 시대라는 불리는 로스코의 초기작품에 대한 해설 중에서
1970년 2월 로스코가 자살했는데 그의 죽음은 마치 50년대 60년대 그리고 70년대 미국의 전성기와 같은 시기에 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실에서 자실도 하나의용기라고 할 수 있는데 매우 예술적 자살이라고 할까요. 그의 최전성기에 죽은 거죠 후기에 가서 더 나쁜 작품이 나오기 전에 ㅋㅋ
로스크는 백남준이 한 말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이고 뒤샹을 보면 뒤샹을 죽이고 백남준을 보면 백남준을 죽이고> 그런 말과 같은 말을 했군요. 로스코는 자식은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한다. 그는 사실 피카소를 살해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로스코의 작품은 주변이 어두워야 더 잘 볼 수 있다 하나의 역설이다. 어둠이 드리운 밤에 더 강력할 빛을 갈망하게 하는 반어법이다
평생에 한번이라도 인간적이 되어 보자 -로스코
이번 전시는 ‘신화의 시대’, ‘색감의 시대’, ‘황금시대’, ‘벽화시대’, ‘부활의 시대’ 등 모두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부활의 시대 레드가 등장하는데 이 레드에 대해서 로스코는 다음과 같은 단어를 나열하면 이 색을 비유했군요.
<심장 박동, 열정, 동맥 혈, 마당에 세워둔 자전거에 슨 녹, 폭풍처럼 번지는 불, 루소의 태양, 들라크루아의 깃발, 그레코의 예복, 피렌체 대리석, 원자의 섬광, 원자의 섬광, 면도하다가 벤 자국, 면도거품 속의 피, 러시아 국기, 나치 깃발, 중국 국기, 용암, 바닷가재, 전갈, 내장 불꽃, 죽은 야수파 화가들, 손목 긋기, 싱크대에 흐르는 피, 사탄>로... 로스코가 블랙을 삼키는 색으로 레드를 본 것은 바로 죽음을 상징하는 블랙보다 부활을 상징하는 레드가 더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번 로스코 전시에서 아쉬운 점은 관객은 비싼 돈을 내고 그림을 보는데도 불구하고 관객이 너무 기가 죽어 있다 더 당당하게 만들어야 한다. 주최측의 배려가 부족하다. 현재 레드 작품만 사진을 찍게 하는데 중간 중간 그의 대표작은 몇개 더 사진을 찍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면 관객이 2배로 늘어날 것 같다. 이것은 로스코가 말하는 작가와 관객의 장애없이 기밀한 교감과 친밀한 관계형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개념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로스코의 작품은 적어도 관객을 그의 작품 앞에 10분은 잡아둔다 대단한 위력이다 우리가 그림을 보는 평균시간은 몇초 뿐일 텐데
시간을 통해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로스코 사색의 시간을 통해서 침묵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인가
로스코는 피카소를 엄청나게 깎아내리면 조롱했는데 이제 입체파는 죽었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폴록과 쿠닝과 로스코의 시대가 도래를 선언했는데 역시 그만의 배짱과 자신감과 기본의 우상적 대가가 발휘하는 지배력에 대한 저항이 유럽의 미술을 극복하고 미국의 미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그가 피카소에서 인정하는 것은 한 가지 피카소가 그림에 움직임을 줬다는 것 뿐이다. 피카소의 시대는 지났죠. 로스코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수많은 해석과 상상력을 유발시킨다는 면에서 일보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겠죠.
로스코는 초기에 신화성이 많은 구상으로 시작하여 상상력을 유발하는 신비한 색채로 갔다가 중간에 종교성이 넘치는 채플이 되었다가 후반기에는 원시성이 넘치는 벽화를 그렸다. 그는 말년에 검은 색보다 붉은 색에 더 몰입했는데 검은 색이 그의 죽음이라면 붉은 색은 그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 같다.
1970년 2월 그의 자살은 왠지 고흐의 자살을 연상시키고 누구는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작품에서 새로운 뭔가를 만들 수 없다는 한계를 느껴서 그랬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여간 그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을 연상시키고 그의 붉은 색 작품은 작가의 부활과 예수의 부활을 연상시킨다. 고흐와 로스코는 그런 면에서 순교자의 면모를 보인다.
로스코 추상으로 가지 전 초기작이다 그의 회화는 정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독창성이 있다
로스코의 광택이 전혀 없는 색채와 애매모호한 선과 면과 붓 터치는 관객에게 무한대의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그림에서 운동감을 강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한 것인가 그는 그림에 있어서 그 어떤 경계도 편견도 고정관념도 만들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인생 혹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둔 것 같다.
로스코는 고등학교 때 사진을 봐도 이미 애 늙은이처럼 심각했고 진지하고 삶에 대한 비극적 감정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던 것 같다. 혹자는 폴록을 보고 디오니소스적인 감성이 폭발하는 세계라고 하고 나를 보고는 아폴로적인 지성이 녹아든 세계라고 말하는데 나는 차라리 감성과 지성의 공존의 세계에 서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로스코의 멀티폼(multiform) 시대라는 말이 나왔군요.
로스코의 작품에 보면 둥둥 떠다니는 색채의 덩어리가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는 추상화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현대인이 그 방향을 잡지 못하고 부유하며 떠도는 삶을 상징한 것인가 생명력과 숨결이 들어가지 않는 뼈와 살과 같은 구체적 고통과 환희가 없는 추상은 아무짝에 쓸모도 없다. -로스코
로스코의 초기작 물의 드라마 물결의 잔영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새로운 조형으로 잉태되다
로스코의 이런 청색은 참으로 묘하다
여기는 초기 구상에서 추상으로 가는 과도기의 그림이라고 할까 추상이면서 가운데 구상의 흔적이 보인다 도무지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애매모호함이 더욱 매력적이다
로스코는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페인팅의 창시자인지 모른다
이것도 초기작인데 색채가 아름답다 남녀의 삼각관계를 그린 것인가
로스코의 초기작 이런 작품은 그가 예언자로서의 면모을 풍기는 작품이다 어떤 신화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지하철의 환상곡
초기작으로 구상에 가깝다 우리에게도 익숙한다 <지하철의 환상곡> 이 작품에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데 찾아봐야겠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을 추가하면 이 작품은 도시생활의 익명성과 수동성 고립된 삶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지하철은 소외와 방향을 읽은 당대사람의 지하세계를 은유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작가의 아웃사이더적인 감정과 멜랑콜리가 담겨 있다
그는 잭슨 폴록과 다르게 유럽에서 2차 대전의 비극을 경험했고 이민자로 미국에 왔기에 흑인은 아니지만 초기에는 어려서는 미국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어두운 경험을 많이 한 것 같다 그의 모습은 자살하기 직전의 그런 심각한 모습이다 그러면서 내 그림의 핵심은 언제나 비극이라고 했고 2차 대전의 비극을 그리지 않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했다
초기작으로 구상에 가깝다 우리에게도 익숙한다 이 작품에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데 찾아봐야겠다
로스코의 두번째 만남 선이 선이 아니고 색이 색이 아니고 면이 면이 아니고 테두리도 없고 그림의 틀도 없는 경계도 없는 정말 괴상할 만큼 독창적 화법이다
[로스코 화풍 2세대]
추상표현주의 작품 전시 아래 작품 프랑크 볼링 Frank Bowling, For Zephr, (1973). Courtesy Hales Gallery, London [사진출처] http://artreview.com/opinion/gallery_girl_wishlist_22_abstract_spiritual/
[리뷰_마크 로스코전] 리움 전
러시아 출신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는 추상회화의 본질과 형상에 혁명을 일으키다.
45년에 걸친 마크 로스코의 활동 시기는 리얼리즘 시기(1924~1940), 초현실주의 시기(1940~1946), 과도기(1946~1949), 고전주의 시기(1949~1970)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두 시기에 로스코는 전원풍경화, 실내화, 도시풍경화, 정물화, 그리고 뉴욕의 지하철 그림들을 그렸는데, 이 중 마지막 주제는 이후의 작품들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2차 대전과 전쟁 직후에 그린 작품들은 상징적이며 그리스 신화나 기독교적 모티브에 기반을 둔 것들이다.
로스코는 순수추상회화로 옮겨가던 과도기 시절에 소위 ‘멀티폼’이란 것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한, 직사각형의 색면, 즉 유명한 고전주의 시기 작품으로 점차 발전해 나갔다. 마크 로스코는 1940년을 전후해 미국에서 일었던 급격한 화풍의 변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해외에서의 전쟁으로 인한 폐해와 혼란을 피해 뉴욕으로 온 마크 로스코와 동시대 화가들의 회화는 구상화에서 추상화로 이행한다.
1923년 뉴욕으로 온 뒤 전설적인 예술 학생 연맹에서 수학한 것을 제외하면 마크 로스코는 정식 미술 수업을 거의 받지 않았다. 젊은 시절 드라마에 가졌던 관심을 발전시켜 신화와 심리 분석서를 닥치는 대로 탐독했고, 렘브란트의 그림, 모차르트의 음악, 니체의 철학은 마크 로스코의 사상에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1940년대에 이르러 마크 로스코는 '추상 표현주의 화가'라고 알려져 있으면서 때로는 '뉴욕 학파'라고도 불리는 느슨하게 구성된 일군의 화가들과 함께 활동한다. 그러나 이들 화가들이 전부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것은 아니며, 또한 추상화에 대한 접근방식도 서로 큰 차이를 보였다. 마크 로스코는 추상 이미지가 "휴먼 드라마"의 근원적 속성을 직접 반영할 수 있고, 회화가 비극, 환희, 숭고함과 같은 영원한 주제와도 때로는 맥을 같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위키피디아
[서정욱]http://seojeongwookgallery.com/artists.asp?artist_no=90&page=2&movie_no=87
[2006년 6월 6일 쓴 마크 로스코에 대한 쓴 낙서 같은 글]
2006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로스코 전 풍경
그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최영미 시인의 시집 <서른 잔치 끝났다> 표지에서다.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그림 같지 않다. 순수한 무(nothing)의 추상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림이란 유무를 떠나는 것이지만 그는 분명 무를 추구하고 있다(Nothing is something?) 그의 절대적이고 순수하고 시적인 세계 앞에 서면 우리자신도 모르게 진공청소기처럼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는 유태계출신 러시아인으로 10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어려서는 미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이 살았다. 공부를 잘 해 예일대 장학생으로 들어가 처음에는 노동운동가가 되려 했다. 그래서 철학, 언어, 역사, 미술사, 경제학 등등 공부했지만 결국 적성에 안 맞아 포기하고 뉴욕에 미술학교를 다니면서 웨버 등 친구들과 어울리며 미술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뉴욕에서 <아티스트노조>를 만들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그는 사실 50이전까지 생활이 너무나 어려웠다. 1968년 예일대에서 명예예술학 박사학위 받는 등 화가로서 서서히 유명해지고 이름이 나자 자살했다. 그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유명해 지는 것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의 자살은 고흐를 연상시킨다.
그는 색채를 종교이상으로 생각했다. 이를 통해서 삶을 조명하고 탐색하고 명상하고 성찰했다. 화가라기보다 고뇌하는 철학자처럼 보인다. 이런 색채는 신비롭고 신령하고 신기까지 느끼게 한다.
그가 어린 시절 겪은 상실감과 소외감이 그에게 커다란 상처와 고통을 주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의 예술의 기반이 되었다. 자연히 그의 그림 세계는 우울하고 비관적이고 실존적이다. 유럽의 칸딘스키가 창시한 추상미술은 미국으로 건너가 이를 한 단계 더 높인 '추상표현주의'로 꽃피운다. 이로서 미국미술도 드디어 세계미술사에 정식 등재되었다.
추상표현주의'에는'액션페인팅과 '색면추상(color-field)'이라는 두 흐름이 생겼는데, 폴록과 로스코가 각각 이 흐름의 대표자였다. 이렇게 그는 미국미술사에 중요한 한 복판에 서 있었다. 40년대, 로스코는 세계대전의 전운에 몸서리쳤고 실제로 참혹한 전쟁이 발발되면서 인간 존엄성이 여지없이 짓밟히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벗어나고자 새로운 형태의 추상미술을 요청 받았다. 그것이 바로 색면추상이다. 그의 그림 앞에서 서면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숭고해지고 경건해지고 심지어 눈가가 눈물을 고이게 만든다. "내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내가 그 작품을 그릴 때 느꼈던 종교적인 경험과 동일한 체험을 한 것이다" 라고 한 그의 말을 직접 그림을 보니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마티스를 위한 경의>란 작품이 지난해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화로 약 235억 원에 낙찰되기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빌 비올라(1951)]전 국제갤러리 2-3관에서 2015.03.05 - 2015.05.03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http://omn.kr/ch17
2014년 파리 그랑팔레 전시 포스터
"나는 시간을 명확한 물질로 본다" - 빌 비올라
큐레이터 제롬 뇌트르(Jerome Neutres) 는 “빌 비올라가 지난 40 년 간 다음의 세 가지 형이상학적질문들과 힘겹게 싸워왔다고 말한다 말한다. 즉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이. 인간조건 인생여정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가 등이 주제이다. 그것을 비디오형식에 담았다.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냄새까지 풍긴다. 물세례를 받는 종교적 숭고미도보인다. Bill Viola expresses his emotional and spiritual journey through great metaphysical themes – life, death and transfiguration
빌 비올라는 그의 작품에서 본질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들을 던지면서 시간의 심오한 특질들을 기록해왔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보고 듣는 행위를 통해 인식하도록 하였다. K2 전시장 1층에는 영적인 탄생의 변형을 주제로 다룬 다섯 개의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비올라는 텅 빈 경관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를 통해 그리움과 시간의 경과에 대한 감각을 자아내며, 대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K2 전시장 2층에 전시된 <밤의 기도 Night Vigil>(2005/2009)에서는 빛과 어둠을 사용하여 인간의 욕망에 대해 탐구한다. 이 작품은 19세기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두 개의 나란히 놓인 스크린에는 한 쌍의 연인의 모습이 영사되는데 그들이 겪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 정신적 통합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진실된 사랑이라는 알레고리는 개인과 타자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튜브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Jg19GwNCJU0
2014년 파리 그랑팔레 비올라 회고전 작품 중 하나 이 작가가 수중 환타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비올라 40년 작가 생활을 아주 짧은 몇 마디로 요약하다 [기자간담회] 창조는 인간에게도 있고 그 나름으로 동물에게도 있고 벌레에게도 있다 Bill Viola is one of the most famous representative of video art. A large body of his work, from 1977 to today, combining tables and monumental installations movement, is currently presented for the first time at the Grand Palais.
국제갤러리 빌 비올라 기자간담회 2015. 03.05
비올라의 대한 첫 인상을 천진한 어린아이 백남준 과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의 부인과도 앙상블을 이루는 첨단과학인 미디어아트를 하는 분 같지 않는다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시대정신을 꿰뚫는 심각하지 않는 철학자이고 부드러운 예언자이면서 흙과 공기, 물과 불의 연금술로 인간내면을 탐구하면서 시공간에 갇혀 있는 인간조건의 출구를 찾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태어나지않은 영혼과도 소통을 하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의 프레임을 확장하고, 감정을 무한대로 키우면서 창조와 파괴 속에 변화, 재생, 승화를 추구하는 자아의 고립에서 초월하고 해탈하는 일면을 보인다 죽음 이후의 모습까지도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인다. 그래면서 그는 이 말을 반복했다 LEAVE SOMETHING BEHIND 뭔가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남겨야 한다
선사 같은 작가, 흐르는 시간 속 영원 건지기 - LEAVE SOMETHING BEHIND
빌 비올라 국제갤러리 2015.35-5.3 백남준의 인간미에 홀린 작가 동양에서 버린 가치관 다시 주워 현대미술의 새로운 영감을 준 작가 그는 속도의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그는 세속의 시대에 숭고한 성스러움을 그는 소음의 시대에 침묵과 선(禪)과 명상을 그는 고통의 시대에 축제와 낙관을 추구하는 작가다 우리시대 최고의 작가 가장 존경받는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서양인으로 드물게 불교에서 말하는 고집멸도(고통이 있음으로 집착을 버리고 도 즉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의 진리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영상주인공은 연극배우도 있고 작품에 따라 다르다. 미술에서 퍼포먼스는 연기가 아니라 자아성찰이다.
그는 시대정신을 꿰뚫는 심각하지 않는 철학자이고 부드러운 예언자이면서 흙과 공기, 물과 불의 연금술로 인간내면을 탐구하면서 시공간에 갇혀 있는 인간조건의 출구를 찾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태어나지않은 영혼과도 소통을 하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의 프레임을 확장하고, 감정을 무한대로 키우면서 창조와 파괴 속에 변화, 재생, 승화를 추구하는 자아의 고립에서 초월하고 해탈하는 일면을 보인다 죽음 이후의 모습까지도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인다. 그래면서 그는 이 말을 반복했다 LEAVE SOMETHING BEHIND 뭔가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남겨야 한다
[비올라(1951-)가 백남준에 대해 언급한 부분만 발췌]
"제가 젊었을 때 그때 당시 막 비디오아트가 태동하던 시기인데 당시에는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제가 백남준 조수를 했거든요. 제 평생 그런 분은 처음 만나봤어요. 너무 에너지가 넘치고 정말 재미도 있고 지극히 아름다운 분이였어요. 나이 든 분이나 젊은이든 그 누구에게도 마음이 열린 분이시고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최고의 분이셨어요. 백남준 선생의 경우 비디오아트를 창시자이시지만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쓰고자 하고 배우고자 하면 그 자료(소스)도 주저없이 열어주었어요. He was grateful!! 여러 번 반복하다. 그는 이렇게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보셨죠" 2015.03.06. 국제갤러리 비올라 인터뷰 중에서
비올라 싱클 채널 이 여인은 우리시대의 성모마리아인가 심오한 카타르시스와 죽음 탄생 환생의 중요한 모멘트를 우리의 내면에 직면하거나 직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연출한다
[빌 비올라 인터뷰 내용을 에세이 형식(2천자)으로 요약(피드백)
_시간을 일방적으로 흘러가 돌아오지 않지만 나는 시간을 쌍방형적으로 흐르게 하고 싶다
"70년대 선(禪)사상이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게 했다 동양에서 버린 것을 다시 줍다. 사물에 대한 다름과 함께 그 보이지 않는 깊이를 통찰하다. 그래서 내적 통로를 만들다. 그는 초고독 촬영 등 첨단의 장비를 씀에도 불구하고 비디오의 철학적 측면 느림의 미학을 주시한다. 그는 존 케이지처럼 정신적인 영적인 개념적인 면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세부적인 것에는 디테일하지만 전체적인 면을 항상 같이 보려고 하다.
그는 시간을 물질과 재료 혹은 물감으로 생각했다는 면에서 백남준의 후예다. 시간을 작가의 의도대로 느리게도 빠르게도 하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빠른 것은 격정적이고 문명적인 것을 느끼게 하고 느린 것은 명상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감지하게 한다. 그의 작품은 해석의 여지가 많아 흥미롭다 시대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 같은데 사실 그의 작품에는 시대정신이 그 어느 작품보다 강력하다. 비디오아트라는 것 그 자체의 재료가 그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서서히 달아오르는 가장 느린 사랑이다. 다시 말해 명상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빌 비올라의 너무나도 황홀하고 신비롭고 경이로운 러브스토리다. 저기 여인의 느리게 움직이는 손(섬섬옥수)에 얼마나 숭고하고 애틋하고 장엄한 사랑이 담겨 있는지 보라 감동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물질에 묶여 있으면 익사하기 쉽다. 거기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죽음의 직전과 대면해야 한다. 작가는 6살 동네 호수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 삼촌이 그를 건져주었지만 그는 거기서 맛볼 황홀경 죽음 직전의 시간을 아주 어려서 이미 맛본 것이다 천국을 이미 갔다 온 셈이다 그걸 예술화한 것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갈 때까지 가 봤다. 물밑에서 가장 황홀하고 색감적이고 전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마치 종교인들이 성령으 받은 것처럼 그는 그래서 항상 그 노스탤지어의 천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와서 저곳으로 가는데 우리의 삶이란 글 한 가운데 다. 탄생과 생성과 죽음에서 물과 불의 이미지가 가미되는데 물을 예를 들면 그것은 파괴와 죽음도 주지만 변화와 창조도 일으킨다. 물은 무궁무진하게 변할 수 있고 그것이 모든 창조와 상상력과 자극한다.
우리는 지금 시간과 함께 공간 속에 살고 있는 위는 넓은 공간과 좁은 공간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전혀 다르게 생사를 초월하는 영혼의 공간 이해해야 한다. 그 경계를 넘어 거기에서 보이지 않는 위안과 변화를 맛보야 한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피드백이 불가능하다 나는 그것을 백남준의 노스탤지어로 다시 가져오고 싶다 시간을 쌍방향으로 다르고 싶다. 좋든 나쁘든 우리가 잘 모르지만 흐르는 시간과 또 다른 시간이 있다.
그런 면에서 시간의 나의 평생 주제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창의적 활용하여 뭔가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가가 중요하다. 모든 것은 다 창의적 능력이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동물과 식물 벌레까지도 말이다. 우리가 모르는 심오한 곳에서 뭔가 끊임없이 변화는 것이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심오한 그 무엇이 있다. 나는 그것을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그 프레임의 시작은 작으나 깊이 들어가면 그 프레임을 자꾸 커진다. 계속 성장한다. 그리고 자생적으로 뭔가 숨겨진 것을 발휘하면서 더 큰 프레임을 만든다. 물과 불 흙과 공기 4원소 이것은 세상을 파괴, 변화, 순화, 재생시킨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과 함께 인간의 자아고립을 초월하고 해탈하여 생로병사 같은 어떤 순화리듬을 만들고 싶다.
나는 일본에서 '젠 마스터(禪師)'에게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유머감각과 자유로운 영혼 활기가 넘치고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깊고 따뜻한 아우리가 있는 분인데 한번에 내 작품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했더니 정보와 생각이 너무 많다고 꾸짖는다 그래서 모든 것을 비어보는 생각도 배웠다.
백남준은 "작가란 미래를 사유하는 자"라고 했는데 그의 말은 바로 그런 맥락이다. 나는 비디오아트 미래를 믿는다. 강같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작은 개울이 모여 큰 천을 이루고 바다로 나아다슷 그리고 사라지듯 그런 가운데 뭔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낙원에 가면 이 세상의 모든 추억이 지워지는데 그 이전에 뭔가 남겨야 한다.
예술이란 원시시대부터 있었고 지금도 역시 필요하다. 태어나지 안는 사람부터 이미 죽은 망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유한 속에 무한을 추구한다 뭔가 남겨야 한다 LEAVE SOMETHING (new) BEHIND 결론으로 말해 탄생은 시작이 아니고 죽음은 끝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는 어려서 6살에 동네 호수에 빠졌는데 죽음 직전의 그 짧은 순간이 너무나 황홀하고 아름다워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단다. 만약 그때 삼촌이 날 구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삶과 죽음이 기로에 서 있는 그 물속의 절대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무슨 성령을 받은 것 같은 순간인가. 그는 거기서 인간이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그 무엇의 세계가 있음을 온몸으로체험한 것이다 비올라는 불과 물의 연금술으로 만든 작품이 많은데 이런 정화의례를 통과한 인간의 삶이 한단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인가 그는 확실히 불교에서 말하는 고집멸도 고통이 구원의 끄나플이 되고 죽음 직전이 인간에게 가장 황홀한 순간과 아름다운 영원을 열어주는 길임을 비디오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도 자신을 넘어서는 삶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유진상 평론가 식사 중에게 비올라에게 질문공세를 늦추지 않고 게속하다
[온 팔방미인형 다국적 작가 4인_Avaf, Ross Manning, Jinnie Seo, Shinji Ohmak]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6전시실 2015. 4. 14.~ 8. 23.
건축, 디자인, 그리고 예술 영역의 한계를 허물며 주목받아 온 팔방미인형 다국적 작가 4인_Avaf, Ross Manning, Jinnie Seo, Shinji Ohmaki 의 대형 설치 프로젝트가 곧 열린다 일상의 사물들로 변화되는 공간!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프로젝트! 2015 현장제작설치 <인터플레이>
영국작가 카푸어 <베르사유> 전시
[사진] www.chateauversailles-spectacles.fr/spectacles/2015/anish-kapoor-versailles?hc_location=ufi
영국 작가 카푸어 이우환 전 이후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 6점이 <베르사유>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British artist of Indian origin born in 1954, Anish Kapoor installs several of his works in the gardens of Versailles, in dialogue with prospective Le Notre, fountains and water features, marble statues and gold and the concept of mirror that at once some basins and the Hall of Mirrors, the heart of Louis XIV's palace.
[기사] http://www.lefigaro.fr/arts-expositions/2015/04/09/03015-20150409ARTFIG00343-six-oeuvres-monumentales-d-anish-kapoor-bientot-a-versailles.php
Anish Kapoor but also takes the weight of power present everywhere in Versailles, even in its revolutionary and democratic peak. A key exhibition that takes the Domaine National head on
[피에로 보나르] 전 오르세 미술관 2015. 03.17-07.19
보나르 <큰 정원> 17 mars - 19 juillet 2015 Musée d'Orsay Exposition temporaire1985 Le grand jardin, 1895.(RMN-Grand Palais/Patrice Schmidt) Publié le 16-03-2015 à 20h33 par L' Obs
[사진출처] http://tempsreel.nouvelobs.com/galeries-photos/photo/20150316.OBS4726/photos-exposition-pierre-bonnard-au-musee-d-orsay.html
보나르 사과따기 Pierre BonnardLa cueillette des pommes© ADAGP, Paris © Pola Museum of art
[사진출처] http://www.musee-orsay.fr/fr/evenements/expositions/au-musee-dorsay/presentation-detaillee/article/pierre-bonnard-41180.html?tx_ttnews%5BbackPid%5D=254&cHash=3bf97287be
인상파와 나비파의 차이는 나비는 곤충이 아니라 나비(Navis)라는 종교적 용어에서 온 말이다. 나비파는 미술을 종교의 일부로 생각하는 일파였다. 이 나비파의 특성은 '세상의 그림은 다 틀려 먹었어. 내 내면을 표현하겠다! 그 뿌리는 의외로 고갱입니다. 고갱의 그림이 인상주의와 다르기도 했고, 실제 사물과 다르지만 실제를 표현하는 미묘한 경계선에 서있었다면 나비파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화가가 생각하는 그리고 그리는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이르게 된다. 초기에는 고갱이나 나비파나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갱은 타히티에서 열대의 정열과 밝음으로 생명력을 그림에 부여하게 되었다면 나비파는 강렬한 외곽선 외에도 조금씩 다크해지는 경향을 보였고 형태의 왜곡 같은 것들도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후기인상파 고흐는 표현주의을 낳았고 고갱은 나비파를 낳았다.
[그림/그림자_오늘의 회화_새로운 형식의 유화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2015.03.19(木)-06.07(日)(월요일 휴관)
-실험적인 현대회화 작가 12명이 이미지 홍수시대에 회화의 존재이유를 자문하다 작 품:35점
참여작가:헤르난바스, 리넷이아돔-보아케, 데이나 슈츠, 브라이언캘빈, 백현진,리송송, 셰르반 사부, 빌헬름사스날, 박진아, 질리언카네기, 조세핀할보슨, 케이티 모란 아티스트 토크 :빌헬름사스날+리송송(3/19), 박진아(4/18), 백현진(5/16) 전시연계 강연 :전영백 교수(3/28), 조나영 큐레이터(4/4) 사진 박현주기자
헤르난 바스 달빛 정원의 알비노 2014
분위기가 묘하네요 헤르난바스(1978生, 미국)의 초기작들은 어린 소년들 사이의 성적긴장감과 혼란을 미묘하게 표현했지만, 점차 회화적 표현 자체에 대해 깊은 성찰을드러낸다. 그의 신작들은 데카당스 문학과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그의 관심사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무한한 내러티브를 상상하게 한다.
회화는 소설처럼 영원하다 하지만 과거처럼 대세가 되기는 힘들다 그저 한 장르일 뿐이다 그럼에도 미술에서 가장 매력적 장르다. 앞으로 회화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하여간 플라토 회화전 뭔가 색다르고 엉뚱하다
박진아 여름촬영
회화와 그림자와의 관계는 서양미술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유 문화에서도 순수우리말로 ‘그림’과 ‘그리다’ 그리고 ‘그림자’가 그 어원을 같이 하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이 교차점에 주목하여 ‘그림자’의 상징성과 ‘그리기’의 행위로써 드러나는 회화의 표현영역과 새로운 가능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박진아 작품에는 단순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람의 몸짓이 살아있고 그림이 움직인다. 박진아 역시 사진적 이미지를 회화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동시대 삶의 순간들을 추적한다. 하나의 화면에 다수의 사진을 결합하는 작업은 회화의 물리적인 제작과정으로 축적된 또 다른 차원의 시간을 시각화하며, 이미지이자 오브제로서 동시에 존재하는 회화의 근본적인 특성을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한국, 영국, 미국, 중국, 루마니아, 폴란드 등 다양한 출신의12명의 작가들은서로 다른 주제와 스타일, 그리고 문화적 맥락으로 작업하면서도 디지털이미지부터 레디메이드까지 무한히 확장하고 있는 현대회화의 맥락안에서 붓과 물감, 그리고 캔버스로 이루어지는 가장 전통적인 ‘붓질’의 언어로서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공통적으로 모색한다.
박진아 작가와 그의 회화 친구들
박진아 작가의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손수 꽃바달을 준비해온 친구 얼굴이 환하게 피었죠
백현진_평상심
수세기에 걸친 회화라는 매체의 유산을 동시대 맥락에 전략적으로 개입시키는 이들의 작업은 회화적 표현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방향성을제시할 것이다. 또한 관람객들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붓질의 감각을 통해 회화만이 줄 수 있는 깊은감동과적극적인 참여를통한 열린 해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회화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자료]
데이나 슈츠 신(God)
코믹한 작품 만화풍이네요 데이나 슈츠(1976生, 미국)는 작업 초기부터 창의적이고 독특한 내러티브로 호평을 받았다. 인상주의부터 신표현주의까지 모든 시대를 차용하면서도,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대담하고 새로운 표현을 탄생시킨다.
브라이언 갤빈 I '감시' 아크릴 122*183cm 2007
감시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감상자는 누구죠 선승혜 선생인가요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눈빛을 보면 꼭 우리의 눈빛을 닮아있는 것 같다. 우려섞인 눈물 조금을 우울하고 속상한 그렇지만 어떤 때 어찌할 수 없다고 체념하는 듯한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그런 일을 당하지 말아야지 하는 의지도 보인다
리넷 이아돔 보아케 작가의 <예언자의 경고>
이번 플라토 전시에서 가장 나의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제목도 가장 마음에 든다. 느리고 게으로 나태한 21세기 새로운 야만인 이런 스타일의 인간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말인가
리넷 이아돔 보아케 목숨을 건
작품 <질리언 카네기> 섹션 2013
질리안카네기(1971生, 영국)의 회화는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와 같은 전통적 장르에 무난하게 부합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카네기는 의도적으로 동일하고 진부한 주제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도 작품마다 다른 회화적인 기술과양식을 적용한다. 자기회의적 태도로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그리는 그의작업은 작품속 대상이 그 의미를 잃게 하고 더 나아가 물감의 물질성으로 흡수되어 사라지게 한다.
전시연계 프로그램1 Talking Dal〉 권진규를 기억하다 2015년 4월 16일(목) 15:00~17:0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지털정보실 2층 DAL(Digital Archive Lounge)
권진규 작업실
전시연계 프로그램2 영화로 만나는 권진규의 조형세계 2015년 5월 8일(금)-5월 24일(일)
상영영화 : 고질라(ゴジラ)〉(1954), 〈고질라의 역습(ゴジラの逆襲)〉(1955),〈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 〈지옥문〉(1962)- 관람시간 : 수, 목, 금, 일요일 14:30, 토요일 14:30 / 18:3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영화관
권진규 조각 아키이브전에 소개
권진규 일본전 도록표지 권진규전 아카이브전 중에서
[한국추상미술전] Korean Abstract Painting- 45th Anniversary of Gallery Hyundai 2015.3.25~4.22
[참여작가] 이응노, 남 관, 김환기,한묵,유영국, 이성자, 곽인식, 류경채, 권영우,정창섭, 윤형근 ,김창열, 서세옥, 박서보,정상화 ,하종현,이우환, 김기린 (총 18명)
갤러리현대에서는 올해 45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추상 회화 작가 열여덟 분의 작품을 선보이는
1970년 4월 4일, 인사동에 개관한 현대화랑은 1972년 <남관>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추상작가들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1974년 '이성자', '서세옥', 1975년 '유영국', '이응노', 1976년 '김창열', '한묵', 1977년 '김환기', 1978년 '이우환', 1981년 '박서보', 1982년 '권영우', '곽인식', 1983년 '정상화', 1984년 '하종현', 1989년 '김기린', 1990년 '류경채', 1996년 '윤형근', '정창섭' 작가님의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에도 꾸준히 이분들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 45년의 역사와 함께 열여덟 분 작가님의 6-70년대 작업부터 최근 작업들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자리로써, 한국 추상 회화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1979년의 <한국현대미술: 4인의 방법전 (이우환, 윤형근, 김창열, 박서보)>, 1996년의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 (정창섭, 정상화, 하종현, 김기린)>전, 2001년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 1970-90 (김환기, 김종영, 유영국, 윤형근, 서세옥,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2007년 갤러리 바이엘러와 함께 기획한
이우환이 단색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단연 무겁고 정적인 단색화가 아니라 깃털처럼 휘날리는 여성처럼 경쾌한 유연하고 동적인 단색화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시골소년같이 수줍고 말이 어늘하고 표현이 없는 이우환도 단색화에서 이런 애교와 여유와 유머와 기지를 발휘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스스로 끊임없이 어떤 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역력하다.
갤러리현대 디스플레이에서 일가견을 가졌다는 생각 전시를 볼 때마다 느낀다
이우환의 이런 단색화는 동적이면서 정적이고 정적이면서 동적이고 양이면서 음이고 음이면서 양이고 무색이면서 유색이고 유색이면서 무색이고 음양오행의 질서가 조형적으로 잘 융합되었다
[한지석_Silence, please] 갤러리조선에서 April 2-April 26, 2015
[더 페이지 갤러리_MUSTAFA HULUSI] 추상을 구상으로 구상을 추상으로 번역한 회화
MUSTAFA HULUSI "PROPAGTING AMBIENT SPIRIT" 2015.03.18-04.30
부모세대가 사이프러스 출신으로 영국에 이민와 작가 훌루시 그 자신은 런던에서 태어나 영국교육을 받는 그는 언어표현의 레토릭에서 완벽했다 매우 세련되고 설득력 있는 언어구사 감탄을 자아낸다. 그렇다가 자신의 뿌리를 잊지는 않는다. 영국은 아직도 제국주의적 흔적이 남아있지만 그는 자신의 문화를 지키는 투쟁을 하기 위해서 작품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미술은 결국 영국의 미술이 된다는 역설이 있는데 이것은 영국의 문화정책이 그런 것까지도 포함할때 결국은 영국의 미술이 되고 영국의 예술이 된다는 점을 이제는 알기에 그에게 어떤 표현의 자유도 보장하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오늘도 자신의 고유성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독창성을 창조하기위해서 오늘도 투쟁한다는 말을 쓴다 그리고 예술을 통해서 사회의 작은 변화를 기도하기도 했다
작가에게 추상구상의 구분을 무의미하다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르다. 역사적 경험을 여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추상 구상 자유롭게 이동하고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하나의 시점이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처럼 여백이 맣다 그는 한국에 3개월 체류하면서 작품에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완벽한 순간과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싶은 던 것이다 끝엇이 이어지는 영혼성 무한개념은 수학적 개념이지만 이 작가에게도 중요하다 자본은 무한하나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둘 사이의 충돌 무한성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 그리고 또한 거기서 자유롭게 싶은 욕망이 동시에 있다
갤러리의 지원을 받으며 한국에서 3개월 체류하면서 템플 스테이 그리고 문화유적지와 제주도 등등 한국전역을 돌면서 나름의 이미지스케치와 채집을 했단다 내가 런던에 오면 자신이 갤러리투어를 시켜주겠다고 하니 말이라도 고맙다
꽃의 화사함과 흑백의 단백함 그 경계가 없는 곳에서 어울릴 수 없는 것의 공존과 동양에서 말하는 음양의 조화처럼 왼쪽은 음이고 오른쪽은 양이다 그런데 전혀 서로를 거부하지 않고 포용하면서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 작가가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라는 것은 아무래도 오른쪽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역시 그 유연한 리듬감과 조형적 균형감이 아닐까 싶다
이런 햇살은 지중해나 사이프러스 섬에서 살아보지 않고는 그릴 수 없는 그림이다 서양화에서 과일의 여왕은 단연 사과다 세잔이 왜 사과를 그렸다 여기서는 무한과 유한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절정의 순간에 보여주는 색채의 발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최고의 절정이라는 환희와 영원할 수 없다는 허무도 동시에 보여준다
이런 도자기는 한 시대의 문명의 절정이 어떤 경지에 까지 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이프러스 꽃은 황홀함과 우아함과 찬란함과 적막함과 결연함이 뒤섞인 이 세상에서 가장 돋보이는 꽃 그림을 그리려고 한 것 같다. 그런에 오른쪽 일장기은 같은 인상을 주기에 우리에게는 불편하지만 사이프러스에 산 사람들은 이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맑은 눈부신 햇살을 그렸다는 것은 나도 어려서 이런 아침햇살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정말 아침에 해를 정면으로 보면 이렇게 보인다. 전혀 가감없이 말이다. 그때 온몸에 전율이 오면 물아일체를 경험하게 되는 데 그것은 예술적 감각을 넘어 숭고한 종교적 체험을 하는 것 같은 황홀경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인류학적 접근으로 만든 세계 여러 나라의 풍속과 식민지배의 흔적 잔인한 제국주의의 얼굴과 그 속에 담긴 혹독함 국가간 분쟁 사이프러스 지역의 장례의식 북의 선전영화까지 다양한 자료가 뒤섞여 있다.
포스트모던이라는 것이 혼성의 문화라는 면에서 이상할 것도 없지만 할리우드 방식의 영화가 아니라 글로벌 부족사회를 맞이하여 인류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 등등에 대한 대안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과 공간을 압축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작품이다
16-17세기 유럽의 뉴욕은 역시 베니스였다 그곳에서 가공된 최고의 예술품이자 공예품 여기서 작가는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것은 역사라는 구분와 범위를 넘어 한 시대의 문명의 절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것이 시들기 직전의 엑스터시를 복원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시대의 유토피아를 찾고자 하나 역시 그것은 영원할 수 없기에 좌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지만 우리는 또다시 우리시대의 새로운 절정기를 만들 수 있다는 면에서 여전히 희망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작가란 원래 가장 충만하고 화려고 절대적인 순간을 박제화는 하는 것이 모든 회화작가의 염원인지도 모른다
[아티스트의 포트폴리오([Artist's Portfolio])전] 사비나미술관 2015.03.18-06.05
-작가의 작업과정 그 이면을 보다 예술가의 또 다른 초상, 예술가를 펼쳐본다
아카이브 라운지 : 시각예술 아티스트 67명 및 유학생 38명의 포트폴리오
참여작가 홍승혜 한성필 홍순명 고명근 김기철 김영나 유근택
김영나 작가는 외국에 가면 가장 먼저가는 곳이 있다 바로 문방구다 나라다 문방구 물건의 색이 다 다르단다. 그런 색채를 가지고 자기나름의 새로운 스트라이프 색채 디자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열거하고 있다. 디자인의 범위을 전에 비해 엄청 확대된 것 같다. 이제는 보험에서서 라이프 디자인을 쓸 만큼 이제 디자인 개념을 누구나 사용하게 되었고 디자인이 없는 현대적 삶을 불가능하다. 이제는 문화부장관을 국가 문화정책 디자이너라고 해야 할 정도까지 왔다
[작가소개 김영나 Na Kim] 그래픽 디자이너. 한국과학기술대학(KAIST)에서 제품 디자인을, 홍익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네덜란드 타이포그래피 공방(Werkplaats Typografie)을 졸업하고 암스테르담에서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했다. 현재는 서울에서 테이블유니온(Table Union)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먼센터(COMMON CENTER)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2008년 ‘차세대 디자인 리더’로 선정되었고, 2013년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하였으며,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다. 쇼몽 페스티벌 (Chaumont Festival), 브루노 비엔날레(Brno Biennale), 타이포잔치 등 국제 행사에서 큐레이터로 활동
평생 회화만 하시던 분이 갑자기 오브제아트로 바뀌다 팽목항에서 주변에 버려진 흔전들 쓰레기 나뭇가지 깨진화분 조개겁데기 플라스틱 등을 모아 크리스토식 감싸기를 한 것인가 그에게도 세월호의 충격은 큰 것 같다
전시장에서 살짝 포즈를 취한 이명옥 관장과 홍순명 작가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은 강조되지만 실제 사례를 접하기는 매우 드물다. 본 전시는 20년 이상 작가로서의 외길을 걸어온 중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전시를 통해서는 쉽게 알 수 없었던 작가 작업의 역사 및 프로세스를 전시장에서 펼쳐보게 함으로써 작업세계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돕도록 한다.
회화, 사진, 설치, 디자인 등 다양한 시각예술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해석하는 포트폴리오의 형식과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관념적인 포트폴리오에 대한 시각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의 접근을 유도한다.
[포트폴리오 아카이브 라운지]에서는 중진, 신진작가와 더불어 디자인, 건축, 무용, 음악,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바인더, 웹, 오브제 형식의 실용적인 포트폴리오의 사례를 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공개하는 등 그동안 궁금했던 시각/공연 예술분야에서의 포트폴리오의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김기철 작업의 중심은 소리를 시각화 하는데 있다. 그가 보여준 다양한 실험들 중에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업은 '빗소리'이다. 본 전시에서는 1998년 봄, 종묘에서 채집한 빗소리를 오리지널 트렉으로 들려주고, 이를 다시 2005년 전시공간에 맞춰 다중음향채널로 들려주며 비 내리는 풍경을 자연스럽게 시각화 시킨다.
[작가소개] 김기철(Kichul Kim) 1969년생으로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The Art Institute of Seattle)에서 오디오 프러덕션을,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순수미술과 인티그레이티드 미디어를 전공했다. 김기철은 일관되게 ‘소리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작업을 한다. 그에게 소리를 본다는 것은 일종의 구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주제는 하나지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소리의 시각화를 꾀한다. 최근에는 조각가로서 초기에 시도했던 소리의 감성적 접근과 음향심리학에 기반을 둔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올해의 작가상 2015> 후보작가로 선정 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
8월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개최될 <올해의 작가상 2015>전을 기다리며, 작년에 열린 김기라, 나현, 하태범의 개인전을 도두바에...서 감상해보세요! Congratulations to Tae Bum Ha, Kira Kim, Hyun Na and Inhwan Oh for being selected as finalists for the ‘2015 Korea Artist Prize’!! Take a look at some of their solo exhibitions in 2014 as we await the Korea Art Prize Exhibition opening at the MMCA in August!
김기라 Kira Kim @페리지갤러리 Perigee Hall & Gallery > http://goo.gl/SmZTxa
하태범 Tae Bum Ha @ 소마미술관 SoMA > http://goo.gl/f1sUpI
나현 Hyun Na @LIG 아트스페이스 LIG Art Space > http://goo.gl/SB0XKz
박노해 시인이 이라크로 처음 떠난 것이 2003년 3월 그러니까 그가 이리크를 떠난 12년이 지나고 오늘이 13년이 되는 날이군요 그래서 그 날을 기억하기위해서 사진전을 열고 있군요
[아트선재센터 2가지 동아시아작가 전] 아트선재에서 2015 02.07-2015.03.29까지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omn.kr/bzuw - 동아시아 미니 비엔날레 같은 동아시아 작가전
[미묘한 삼각관계_한중일 차세대 대표작가 3인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015.03.10-05.10
한중일 그런데 한국은 분단국 항상 반쪽이죠 제대로 온쪽이 된 한국과 중일 시대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서울시립미술관 기자간담회 한중일 만남은 미묘하고 까다로운수밖에 없죠 젇치적으로 이념적으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문화예술로는 얼마든지 서로 만나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분야죠 꼬인 한중일삼각관계 미술로 풀다
오른쪽 일본작 가이즈미 메이로에게 그의 작품 가미가제에 대해서 질문하는 한국기자 시원한 대답을 못 들은 표정이다
서적 도록 등으로 만든 설치미술
중국작가 쉬전의 이번전시 대표작으로 우선 시각적으로 유쾌하다쉬 전_Xu Zhen 상아트 슈퍼마켓 2007/2014 설치 (계산장비, 카운터, 선반, 냉장고, 다수의 상품) 가변크기 메이드인 컴퍼니 제작
한중일 미술사 이런 난해한 작업을 하느라 고생이 얼마나 많았을까
중국작가 쉬전의 텍스트 아트
한중일의 관계는 아래 작품 처럼 아슬아슬한 관계죠
일본작가 고이즈미 메이로 금기인 가미가제 문제를 아주 미학적으로 빼어난 감각으로 풀다
한국작가 양아치 비디오작품 한국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매우 메타하고 매혹적인 그리고 풍자적이고 시니컬한 방식으로 작가가 풀어낸 랩소디 같은 수준급 작품이다
기자와 큐레이터 간 진지한 대화 소통을 향한 또 하나의 징검다리를 놓고 있다
[2014 신소장작품전 2부 세마 미디어 살롱]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015.3.10-5.17
박윤경 I 관객이 내 그림을 완성하다(You complete me You complete me) variable size Acrylic Painting marker on chiffon, wooden canvas Hinge 2014
작가는 고정된 회화가 아니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회화를 추구한다. 작가는 “새로운 곳에서 ‘회화 그 자체(painting itself)'에 대해 탐구를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2차원 평면회화를 지탱하는 기본 요소로만 여겨지던 색채, 선, 붓질 등을 회화의 주체로 올려놓음으로써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회화 영역을 확장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그 탐구의 과정을 증명한다.
캔버스 천이나 종이만을 고집하던 전통적 회화는 실크, 쉬폰 천, 샤워커튼 등의 투명한 재질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숨겨져 있던 회화의 뒷면을 관객에게 개방한다. 열린 회화 공간에는 작가가 선택한 색채와 붓질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작가의 행위와 작품의 과정을 관객과 공유한다. 현대미술이 관객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도한지도 어느덧 반세기 가까이 지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대미술에서 관객은 이방인이다.
신미경 작가 작품
비누로 만든 청화백자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사라질 수도 있죠 여기는 공간성과 함께 시간성이 들어간다
황혜선 작가 작품 <끝없이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2005년
투명성이라고 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아카이브 스토리 김달진과 미술자료전] 2015년 3월 12일-5월 31일까지
-한국 아카이브의 아방가르드 김달진 관장
상명여대 앞에 주변을 놀라게 변화시킬 문화지대로 만든 박물관이 하나 들어서다 참으로 축하를 보낼만한 일이다. 바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다
새로 이전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사진 박물관 파사드 작년 11월 부터 리모델링 1달 반 김원선생님 재능기부로 무료로 건물 개념 비용은 4억 정도(후원금 등등) 대지구입비등등 10억은 은행융자
당시 좌익 미술잡지 등 전시자료를 직접 꺼내서 그 안에 들어간 내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김달진 관장님 모습 미술자료를 수집하는 거와 함게 앞으로는 그 내용(content)에 대한 내용분석이 과제로 남게 되었다
1940년대 후반 당시 미술지(조형예술지) 안에 나오는 운보의 그림 코베이에서 주로 구입 올드 북스 등에서 구입
김달진 관장님 미술자료을 설명할 때는 눈빛에 광채가 들어간다
김구림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전찬승이 뉴욕에 있을 만든 폐품으로 모아서 하는 정크아트으로 만든 것으로 이 작품이 음악가 이창신이라는 분에게 기증되었는데 이창신 분과 김달진 친척관계로 알고 있었는데 그때 전달받았다고 한다. 백지숙선생이 아르코 관장으로 있을 대 전찬승 재평가 전시를 시도했으나 결국 이루지는 못했다 전창승은 한국미술사의 행위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제가 미술자료는 일차적인 아날로그 자료에 많이 가지고 있는데 디지털화하고 싶은데 그래서 모든 시민들에게 박수근 이중섭 등 국민작가들의 미술자료 등을 공유하고 싶은데 정부적 차원에서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비엔나레 등 미술행사에는 수십억의 지원을 하면서 미술의 기초자료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아쉬움을 토로하다
1972년 고3때부터 본격적으로 미술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1972년이전에는 서양의 것만 수집하다가 1972년부터는 덕수궁에서 열린 아래 전시도록<1900-1960 한국근대미술 60년>을 보고 크게 감흥을 받아 한국미술자료를 수집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당시 입장료가 20원이었다는 것과 당시 앞에 작품과 뒤에 차례 등의 틀린 부분을 빨간 볼펜으로 표시하는 등 미술자료연구가로써의 면모를 고3부터 보이다
1988 백남준의 판화전 자료
아카이브와 자료의 차이는 뭔가 아카이브는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 그 특징이아고 설명하시네요. 1989년 당시 국립미술관 학예실장 유준상 선생이 백남준이 보내준 연하장인데 유준상 선생이 김달진 관장에게 그냥 가지라고 해서 소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백남준이 당시 1992년 국립미술관장 이경성에게 준 사인아트작품
박물관 옆 중국집 먼저 오신분들 가시고 남은 사람들 사진 거실에 그림 하나가 완전히 분위기를 살려준다
[한겨레_노형석기자] 큐레이터가 관리자가 되느냐 창조자가 되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 고흐·샤갈은 그만…‘동시대 미술’로 확 바꾼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서소문 미술관 본관에서는 2013년 고갱 전시를 끝으로 외부기획사의 블록버스터 대관 전시가 끊기고 거의 모든 전시가 자체 기획전으로 채워진다. 기획전 절반 가까이를 ‘샤갈’, ‘고흐’ 등 거장 블록버스터 전시로 채워 학예직인 큐레이터들을 관리직으로 동원했던 구태가 싹 사라진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산하 분관과 난지 레지던시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서울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서울사진축제도 맡으며 가을엔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미술품 장터(아트페어)도 차릴 참이다. 연간 100억원대 예산과 28명의 학예인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규모다. 울림 깊은 전시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나온다. ‘한계는 많지만, 할 일은 여전히 많다’는 김 관장이 남은 임기 1년 동안 대안적 미술과 대중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너끈히 잡을 수 있을까.
[사진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680281.html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기획전] 박현기 1942-2000만다라 작품과 함께 대공개 1천평 전시장에 1천여점 전시 2015년 1월 27일부터 5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2015년 1월 27일부터 5월 25일까지 '박현기 1942-2000 만다라'을 연다.
박현기는 국내에서 비디오를 본격적으로 예술에 도입했던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주로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1984년에야 한국을 드나들기 시작한 데 반해, 박현기는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영상 매체를 작품에 활용하며 독특한 비디오 작업을 해나갔다. 그는 1942년 식민지 시대 일본 오사카의 가난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1945년 해방이 되자 대구에 정착했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와 건축을 함께 공부한 후 1970년대 초 대구로 낙향, 건축 인테리어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번 돈을 모니터와 카메라를 사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쏟아 부었다.
1974년부터 시작된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요 작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79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1980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일찍부터 국제적인 시야를 넓혔다. 1980년대에는 일본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1990년대 한국에서도 비디오 아트에 대한 열풍이 일어나면서 박현기의 활동이 주목 받게 되었으며, 그는 1997년 이후 <만다라> 시리즈, <현현(顯現)> 시리즈 등 대표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내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각광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 갑작스럽게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2000년 1월 숨을 거두었다.
58세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그는 수많은 작품과 자료를 남겼다. 그의 사후 여러 차례 박현기를 재조명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회고전은 2만 여 점에 달하는 그의 자료가 처음으로 정리 완료되어 공개되는 전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1965년 학창 시절 메모부터 2000년 임종 직전의 스케치까지 35년간 그의 인생과 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풍부한 자료가 선별, 전시된다. 또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을 총망라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자료를 토대로 그의 주요 작품을 재현(再現)해 냄으로써, 박현기의 ‘거의 모든 것’을 전시에 담아내었다.
그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비디오’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매우 동양적인 정신의 바탕 위에 올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초기 비디오 작업은 돌탑 사이에 돌을 찍은 영상 모니터를 끼워 넣은 것들이다. ‘그냥 돌’과 ‘모니터의 돌’은 서로 중첩되어,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상인지의 구별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마치 하늘에 뜬 달과 강물에 비친 달을 구별하지 못한 채, 강물의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전설을 남긴 이백(李白, 701-762)의 정신세계 같다.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북서울미술관 사진갤러리 1, 2전시실에서 2015.02.03-04.19까지
[전시시간] 10:00–20:00 /토․일․공휴일 10:00-18:00 (2월) 3월부터는 19:00까지 매주 월요일(휴관)
[박현주기자 관련뉴스] www.ajunews.com/view/20150204082113337
콜비츠 I '차에 치인 아이(Run Over)' 1910, 에칭, 24.8*31.7cm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소장
"흑백 대비에서 오는 명암의 극적이라고 할까. 비극과 가난과 슬픔을 드러내는 데는 판화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전쟁터에서 18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살려고 태어나게 했는데 죽음을 먼저 맛보다니요. 세계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내 예술이 목적을 가졌다는데 동의한다.나는 인간이 어쩔줄 모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 - 콜비츠.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콜비츠 전 서울 북서울 미술관 사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참으로 반가운 전시다 콜비츠는 개인적 정서가 아니라 사회적 정서를 그린 작가다. 그녀는년 이세상에서 오갈데 없는 사람들 기댈 데가 없는 사람들 따뜻한 여성과 뜨거운 모성의 무한정 가슴으로 그림이라는 큰 그릇에 담았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1945)의 전시를 연다. 콜비츠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180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에 걸친, 초기부터 말년까지 총 56점의 작품으로 구성하였다. 출품작은 모두 일본 오키나와에 소재한 사키마미술관의 소장품이며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 공동 주최로 이루어졌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자화상)' 1919 석판
케테 슈미트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년 7월 8일-1945년 4월 22일)은 독일의 화가, 판화가이며 조각가이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전반기의 인간 조건을 사실적이고 애틋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불행한 사람, 특히 가난과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이를 그림, 에칭, 리소그래피, 목판화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에 기반하지만 후기 작품들은 표현주의적인 경향도 있다.참여미술의 선각자로도 불린 콜비츠의 미술은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케테 콜비츠 I '작품(독일가내 노동전 포스터_1906년 독일산업전시회)' 1905-1906
살아있으나 죽은 사람 같은 얼굴 휑한 얼굴 누렇게 뜬 얼굴 당시 여성노동자의 얼굴이네요
케테 콜비츠는 1867년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10대부터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현대 독일 판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클링거(Max Klinger, 1857~1920)의 판화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초기에는 에칭과 석판화를 주로 제작했으며 후에 에른스트 바를라흐(Ernst Barlach, 1870~1938)의 영향을 받아 목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평생에 걸쳐 총 275점의 판화를 제작했고 대부분 흑백판화였다. 콜비츠는 사회참여적인 수단인 판화를 선택하여 자기 체험적인 고백과 시대를 담은 예술을 펼쳤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어머니들)' 1921
전시는 결혼 후 더욱 심화된 콜비츠의 사회의식과 전쟁을 겪으며 작품에 쏟아 부은 작가로서의 발언에 주목한다.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에 여성적 시선이 더해져 당대의 현실과 이슈를 작품으로 풀어내었다는 점은 콜비츠 특유의 작가정신으로 꼽을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예술적, 개인적 실천을 수행했다는 점은 콜비츠 작품세계의 핵심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그의 작가적 의지는 더욱 강화되었기에 전쟁은 콜비츠 작품을 살펴보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케테 콜비츠 I 콜비츠의 자화상 1934
직접 보면 인간의 내면을 이렇게 리얼하면서 감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니 정말 심장에 강력한 파문이 일어나고 예술의 힘이 느껴진 그의 그림은 민중미술이라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휴머니즘의 승리하고 할 수 있다 전시는 무료 한번 가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전시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을 기점으로 전쟁 이전과 이후의 작품군으로 분류하였다. 먼저 사진갤러리1에서는 1차 세계대전 발발과 아들의 전사라는 역사적,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세계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전쟁의 참상으로 가난, 죽음, 모성과 같은 문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시기이다. 전쟁 전 주로 노동자 계층의 고된 노동, 질병, 가난과 같은 핍박의 삶을 표현했다면,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작가는 반전과 평화를 적극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자화상)' 1915 외
콜비츠 그는 시대의 증인으로 우리에게 그 어떤 역사서보다 독일의 과도기 고난의 시점을 감동도 전율의 시각언어로 전달하고 있다 도무지 문자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판화형식이 아니면 고발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과 그 비극을 극복해 가는 인간의 위대함도 같이 보여준다 이 전시는 절대로 빼놓지 마세요 북서울 시립미술관이 있어 북서울은 행복한 지역이 되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고요 하나의 미술관은 100개의 수력발전소보다 더 위력이 있는 문화발전소가 될 수 있음을을 체감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와 부녀자의 대비되는 표정은 전쟁 이후의 비참함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 중에서도 작가의 주요 연작인 ‹전쟁 War›(1921~1922)은 케테 콜비츠 작품의 백미로, 작가 개인이 어머니로서 전쟁을 겪으며 아들을 잃은 슬픔, 모성애를 보편적으로 승화시킨 시기의 작업들이다. 절제된 표현의 목판화는 콜비츠가 겪은 아픔과 절규를 표현하는데 매우 적절한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이룬다. 뚜렷한 흑백대비의 목판화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강한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살아남은 자)' 1923
당시에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던 시대였나요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가 생각이 나는군요 참혹한 인간수난시대특히 하층민 땅의 사람들 농민 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그들에게는 살아남기만 해도 대단한 시대가 있었다
브론즈 조각 작품 ‹피에타 Pietà›(1937~1938)의 아이를 꼭 안고 있는 어머니는 콜비츠의 후기 작품을 지배한 죽음에 대한 애도와 평화에 대한 갈망의 절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전쟁 이전의 여성들이 억압받고 투쟁하는 계층으로 등장했던 반면, 전쟁 시기의 여성은 어머니로서의 본능을 강조한 작업들이 주류를 이룬다. 격동기를 거친 작가의 자화상과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어머니의 모습이 거의 동일시 됨을 확인할 수 있다.
케테 콜비츠 I 전쟁 5 과부 1922-23 '지원병들 1921-23, 목판, 35*49m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 소장
인간의 고통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인간을 고통만큼 위대해진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고통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환희의 세계는 과연 가능한가요
사진갤러리2의 전시는 ‘1차 세계대전 이전’ 케테 콜비츠의 초기 에칭, 석판 작업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작가의 현실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빈민, 노동자 계층의 억압받는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이름을 알리게 된 주요 연작과 초기 대표작들을 비롯하여 여성 노동자의 초상들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게르미날 Germinal› (1891)을 시작으로 가난의 추방이나 질병 퇴치와 같은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표현한 작품들을 연작으로 제작하였다. ‹직조공 봉기 A Weavers’ Rebellion›(1893~1897)는 비참한 직조공들의 상황과 이로인한 새로운 투쟁을 소재로 한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1862~1946)의 연극 ‹직조공들Die Weber›(1893)에서 비롯되었다.
케테 콜비츠 I '기도 하는 소녀' 에칭 1892
기도하는 소녀 감동이다 위선적 종교행위와 처절한 경건성 서로 다르다
전시에는 연작 중 세 번째 작품으로 봉기에 앞선 직조공들의 회의 장면을 담은 ‹협의 Conspiracy› (1898)가 전시된다. 또 다른 대표 연작인 ‹농민전쟁 Peasants' War›(1901~1908)은 ‹직조공 봉기›보다 적극적인 혁명 의지를 담고 있다. 1840년 출간된 침머만(Wilhelm Zimmermann, 1807~1878)의 «대농민전쟁사개설»을 읽고 재구성한 판화 연작으로, 농민전쟁(1522~1525)을 소재로 제작했으나 역사적 장면을 그린 것이 아니라 ‘검은 안나(Black Anna)’라는 모티브를 빌어 농민 혁명을 조형화한 것이다. 혁명적인 주제로 가득한 그녀의 1차 세계대전 이전 작품들에는 의례적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왕과 귀족 등의 지배계층 대신에 억압당하는 피지배계층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한다.
케테 콜비츠 I '작품(전쟁 6 어머니들)' 1922-1923 목판
모성의 절대적 경지는 신성이 되는 것인가. 땅의 사람들(암아하레스) 그들은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오직 뜨거운 포옹과 절대적 신뢰 그리고 형제애적 끈적끈적한 연대뿐인가요
더불어 사진갤러리2에는 전시개최 배경과 작가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이 전시를 공동으로 주최한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와 작품을 대여해준 일본 사키마미술관에 대한 소개와 연표를 제시하였다.
케테 콜비츠 I '작품(농민전쟁 5 폭발)' 1903
몸부림으로서 절규 같은 삶을극명하게 보여주다.
콜비츠의 사회적, 예술적, 개인적 실천을 드러내는 뜻깊은 이번 전시가 격동기의 삶과 당대의 이슈에 공감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한 작가의 삶과 예술이 일체를 이룬 현실 참여 정신이 동시대 미술가들에게 여전히 큰 울림으로 전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대행사] 일반인 대상 <전시와 만나다> , 어린이 대상 <어린이 겨울방학 교실> 운영 *신청: 홈페이지-교육 / 문의 T. 2124-5276 *부문/작품수 판화, 조각 / 총 56점 도슨트 시간 1일 1회 / 오후 2시 * SeMA 도슨팅앱과 소책자를 통해 작품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관람료 무료 주최 및 후원 서울시립미술관,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전시문의 김혜진(02-2124-5269)
[밀레, 모더니즘의 탄생展] 소마올림픽미술관에서 2015.01.25(일)-2015.05.10(일)
감자 심은 사람들
이번 전시는 밀레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보스턴미술관이 4년여에 걸쳐 연구하고 기획한 것으로 2014년 1월부터 시작된 미국과 일본 전시에서 무려 100만 명이 관람하는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밀레의 대표작이자 보스턴미술관 4대 걸작으로 알려진 <씨 뿌리는 사람>,<감자 심는 사람>, <추수 중에 휴식(룻과보아스)>,<양치기 소녀>를 선보인다 본 전시는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게 됩니다. '밀레와 함께하는 이번 전시회는 목요일'마다 작품 설명이 있다.
씨 뿌리는 사람, 1850년. 미술 박물관, 보스턴.
1849년 밀레는 '추수하는 사람들'(The Harvesters)를 그려 국가에 기증하였다. 파리 살롱에서는 같은 해에 '숲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양치기'(Shepherdess Sitting at the Edge of the Forest)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이 작품은 매우 작은 유화작으로 이전까지 그가 그려왔던 미화되고 목가적인 주제에서 보다 더 사실적이고 화가 개성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같은 해 6월 그는 파리에 콜레라가 유행하자 파리의 교외인 바르비종으로 옮기고, 본격적인 농민 화가로서 전원생활의 정경을 그렸다. 그는 가난에 쪼들렸으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농민의 모습을 종교적인 분위기로 심화시켜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였다.
1850년 밀레는 그의 열렬한 후원자인 상시에게서, 그에게 작품을 그려주는 대가로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물론 그는 다른 구매 희망자를 위해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 해에 파리 살롱에서 밀레는 '이삭 줍는 사람들'(Haymakers)와 '만종,' '이삭 줍는 사람들' 과 함께 걸작이라 평가되는 3개의 작품들 중에 가장 초기 작품인 '씨 뿌리는 사람'(The Sower)를 전시하게 된다.
1850년에서 53년까지 밀레는 그가 가장 중요시했으며 가장 오랫동안 작업하게 된 작품 '추수하는 사람의 휴식시간'(Harvesters Resting)을 그리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나 푸생과 같은 그의 개인적인 영웅 화가들에게 필적하기 위하여 그려진 이 그림은, 밀레의 그림 인생에 있어 농부들의 일상만을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하기보다 사회적인 상황 자체를 상징적인 기법으로 나타내는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이 작품은 밀레가 날짜를 기록한 유일한 작품이며, 파리 살롱에서 1853년 2위에 해당하는 메달을 수여받으면서 공식적인 명예를 쌓도록 도와준 작품이었다.
양치기 소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앳된 얼굴의 소녀가 오른손엔 꼬챙이를, 왼손엔 양털 뭉치를 든 채 어딘가를 보고 있다. 양털에서 실을 뽑다 잠시 쉬고 있는 걸까? 새하얀 앞치마엔 한낮의 햇빛이 반사돼 아름답게 일렁이고, 그녀의 발 아래로는 섬세하게 묘사된 풀과 민들레가 바람에 나부낀다.
이 작품은 밀레의 그림 중 가장 큰 인물화로 꼽힌다. 그렇기에 실제 그림을 보면 중심에 자리한 소녀의 모습이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이 그림은 또 재미난 탄생의 비밀을 가졌다. 밀레가 젊은 시절 그린 역사화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 위에 물감을 덧발라 그렸다는 점이다. 이런 연관성으로 그림 속 소녀에게선 당시의 신 또는 왕에게나 주어졌을 영웅성마저 느껴진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한국일보
[사진출처] http://www.milletseoul.com/exhibit/piece.php
백남준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세계적일 때 가장 한국적일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준 인간이다. 그에게로 가면 모든 세계관이 뒤집어진다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_2015 랜덤 액세스] 2015년 1월 29일부터 5월 31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 2층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을 지향하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신진 작가들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원했던 백남준의 바람을 구현하는 프로젝트 기획- 영상,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국내 작가 10팀의 신작으로 전시를 구성하고, 전시 기간 중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백남준아트센터는 향후 2년마다 신진 작가들이 참여하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에서는백남준의 실험적인 예술정신과 현대예술이 만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고자하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세대가 제시하는 예술형식과 의미를 논의하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이 전시는 백남준아트센터의 큐레이터 5명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로, 각 큐레이터가 작품의 장르, 형식, 내용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오로지... 실험성과 도전정신을 기준으로 작가 2명을 추천하여, 총 10팀의 작가가 참여한다. 예술가의 존재의미를 ‘미래를 사유하는 자’라고 규정했던 백남준의 말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한 10팀의 작가들은 현재의 삶과 예술에 대해 특유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장르와 형식을 가로지르면서 끊임없이 미래를 향하고 있다.
<랜덤 액세스>(임의 접속)은 디지털 사회의 정보접속 방식이자 즉흥성, 비결정성, 상호작용, 참여 등 백남준의 예술 실험의 핵심을 담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 전시의 제목으로 <랜덤 액세스>를 선택함으로써 현대예술을 구분 짓는 장르와 형식, 선입견을 배재한 채 실험적인 방식으로 관객과 접속하는 예술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규범화되고 상업화 되어가는 현대예술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발견하고 작가들이 제시하는 예술언어를 관객과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백남준아트센터는 한국의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동시대 예술 담론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향후 <랜덤 액세스> 전시를 격년제로 열 예정이다.
2015 랜덤 액세스》에 참여하는 작가는 김시원+윤지원+이수성, 김웅용,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박승원, 서영란, 양정욱, 오민, 이세옥, 차미혜, 최은진으로,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횡단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이들의 작품은 20세기 현대예술이 구축해온 형식과 이론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그것을 새롭게 변주하는 경향을 지닌다.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 2015 '랜덤액세스' 2015 5월31일까지 양정욱작품 노화라는 시간의 문제를 시각화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관점을 주제로 삼고있다
김시원+윤지원+이수성은 <무제> 시리즈를 통해 기존의 ‘화이트 큐브’, ‘미술관’이라는 제도화된 전시공간에 대한 비판과 그 공간에 대한 탈주를 꾀했던 이전 세대 예술가들의 시도에 ‘작품’이라는 명제에 대한 질문을 추가한다. ‘예술 작품이 없는 전시장’을 구현하는 이들은 작품이 아닌 전시 공간을 전시하는 조명장치,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전시장 바닥을 더욱 균일하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기존의 예술이 가졌던 형식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시도는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어디에나 있는 극장’을 의미하는 극단 이름처럼 이들은 언제 어디에서건 자유로운 내러티브로 배우, 극장, 극단, 조명, 무대 등 연극의 모든 형식적인 요소들에 대해 질문하고 상황을 만들고 사라지게 하는 동명의 작품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를 공연할 예정이다. 김웅용은 <사방에 있는 천사: 알파와 오메가>에서 전통적인 영화와 연극의 형식을 레퍼런스로 두고 이를 전유한다. 그는 이만희 감독의 영화 <휴일>의 사운드를 차용하여 사운드가 지닌 내용과 억양이 화면과 일치하지 않고 서로 어긋나고 미끄러지면서 다층적 의미를 생산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2015년 1월 29일부터 6월 21일까지 백남준전 《TV는 TV다》] 백남준아트센터1층
TV는 먹통이 아니고 말이 통하는 인간이다. TV는 총체적 삶이 담긴 인간의 몸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장 풍경
TV는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다 전시를 설명하는 안소현 큐레이터(미술관학 박사)
백남준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클루언의 문장을 패러디하여 “미디어는 미디어다”라는 작품을 만든 바 있다. 맥클루언은 미디어 자체가 의미전달에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려고 하였으나, 백남준은 의미전달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환경 그 자체가 되어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하려 하였다. 이번 백남준전 《TV는 TV다》는 백남준의 주요 매체였던 텔레비전이 환경이 된 상황을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백남준 식 아날로그 영상 편집을 가능하게 했던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와 다양한 TV 조각들, 폐쇄회로 카메라를 이용한 설치들, 그리고 백남준이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만든 영상들이 전시된다.
TV 영상을 왜곡하거나 변형시키는 편집기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전《TV는 ...TV다 (TV is TV)》 백남준의 다채로운 TV 사용법을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는 백남준아트센터의 2015년 첫 번째 백남준전, 마셜 맥클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백남준이 패러디하여 만든 작품 "미디어는 미디어"를 재해석하여 미디어가 환경 그 자체가 되어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강조하려 하였던 백남준을 바라본 전시, 백남준의 주요 텔레비전 작품과 관련 아카이브 자료를 네 가지 주제로 구분하여 집중적이고 분석적으로 백남준과 TV에 대해 살펴보는 계기를 삼고 있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예술의 매체로 활용하기 위해, 텔레비전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이끌어냈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단순한 정보의 수신장치를 넘어, 감각적 실험의 도구, 실시간 개입의 통로, 로봇과 악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다가가는 방송 환경이었다. 이번 백남준전 《TV는 TV다》에서는 백남준의 다채로운 TV 사용법을 한 눈에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백남준아트센터의 다양한 소장품을 중심으로 TV의 속성을 크게 ‘실험’, ‘라이브와 재생’, ‘신체’, ‘방송’의 4가지로 구분하였다.
TV 촛불
[1]실험(TV as Experiment) 백남준은 실험 TV 시리즈를 통해 자석이나 전류, 음향신호 등을 이용하여 화면을 변형하며 다채롭고 역동적인 컬러 패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백남준이 실험 TV 시리즈에서 찾아낸 화면변형의 기본적인 방식은 그가 일본의 엔지니어 슈야 아베와 함께 개발한 아날로그 합성장치인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 특유의 캔디 컬러와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의 제작 원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실험 TV들과 더불어 2011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슈야 아베와 함께 그 기능을 복원한 비디오 신디사이저 및 원래의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만든 영상들을 전시한다. 전시 작품: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참여TV>, <닉슨 TV>, <왕관 TV> 등
TV 벽걸이 퐁텐블로
[2] 라이브와 재생(TV as Live & Play) 백남준은 “편협하거나 획일적이지 않은” TV를 만드는 것을 꿈꾸었는데, 폐쇄회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객이 참여할 수 있고, 영상의 내용을 변형할 수 있는 작품들도 그 일환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의 대표적인 시리즈 중 하나로 종교적인 구도자가 대중매체의 화면을 응시하는 <TV 부처>, 시간의 흐름을 공간 속에 복제하여 복합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스위스 시계>와 같은 폐쇄회로 카메라를 이용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시 작품: <TV 부처>, <스위스 시계>
TV <스위스 시계>
TV 샹들리에
[3] 신체(TV as Body) 백남준에게 텔레비전은 그 자체로 신체의 기관 일부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거나, 사람의 신체처럼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백남준은 텔레비전 모니터를 이용하여 로봇이나 악기를 만들기도 하고, 또 그 악기가 내는 소리를 시각화하여 다시 화면에 나타나게 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TV가 마치 인간의 몸처럼 기능하는 물리적, 전자적 시스템을 만들었다. 백남준전 <TV는 TV다>에는 백남준이 평생의 협업자였던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을 염두에 두고 만든 대표작 <TV 첼로>, 그리고 앤틱 TV 모니터와 라디오를 이용해서 만든 아트센터의 대표적인 소장품 <슈베르트>, <밥 호프>, <찰리 채플린> 등이 전시 된다. 전시 작품: <밥 호프>, <찰리 채플린>, <슈베르트> 등
TV 첼로 1999
[4]방송(TV as Broadcasting)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서양의 영화잡지들을 뒤적이며 낯선 문화를 접하는 희열을 느꼈던 백남준은 다양한 문화를 먼 곳까지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TV 전파의 힘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편협하거나 획일적이지 않은” 방송이 필요하다고 느낀 백남준은 실험적이고 새로운 예술을 안방까지 전달하기 위해 여러 방송국과 협력하여 방송용 비디오 아트를 제작하였다. 백남준의 이 방송 작품들은 4시간 동안 비틀즈의 음악과 함께 신디사이저 합성 영상을 내보내는 <비디오 코뮨>부터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시청한 위성 오페라 삼부작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채널들로 이루어져 있다.
TV 물고기
백남준 연대기 총정리
기자에 질문에 답하는 박만우 관장
한국 프랑스 수교 130(2015-2016)주년을 맞아 파리시립미술관에서 백남준 특별전이 열린다고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 알려주네요 프랑스 문화부 장관 한국계 꽃 장관이 역할도 크겠네요 사진은 전 루브르 미술관 관장 앙리 루와레트(Henri Loyrette) 은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집행위원장이 되다
한불 외교관계 수립 130주년(1886~2016)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지난 21일 오후 6시 30분부터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은 프랑스 측 집행위원장인 앙리 루와레트씨와의 간담회가 있었다.
[백남준타계 10주년_한불수교 130주년]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2016년 4월 7일부터 '백남준 회고전'
-한국출신 문화부 꽃(Fleur) 장관의 역할기대
현재 프랑스 파리 루이 뷔통재단 전시장에 선보이고 있는 백남준의 TV 로댕
백남준을 프랑스인으로 가장 잘 이해한 <장 폴 파르지에>가 1981년 영어로 된 대담영상이다 백남준의 첫 마디는 이렇게 시작한다 "회화에서 색채는 공간의 기능이지만 비디오아트에서는 색채는 시간의 기능을 가진다" 그밖에도 그는 말한 동양에서 "색(color)이 왜 성(sex)인가" 등등의 문제를 맥루한 미디어이론과 자신의 시공간개념과 연결시켜 풀어내고 있다 매우 천재적인 발상이다.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유튜브보기]https://www.youtube.com/watch?v=2pYAUppfiXk
아래는 장 폴 파르지에 쓴 백남준 평전 첫페이지 PAIK NAM JUNE (1932-2006) Né à Séoul le 20 juillet 1932, l'artiste coréen Nam June Paik débarque en Europe en 1956, proclamant : « Yellow peril, c'est moi ! » Comme il le fera ...toute sa vie, il mêle plusieurs langues en un sabir digne du Joyce de Finnegans Wake, dont il est un disciple à travers le joycien John Cage, son véritable maître. Au moment où il lance ce cri de guerre, Paik ignore encore qu'il va inventer une des rares formes d'expression radicalement nouvelles du xxe siècle : l'art vidéo.
1. Invention de la télévision abstraite Paik se veut et se croit musicien d'avant-garde. Ayant étudié le piano en Corée et soutenu une thèse sur Schönberg à Tōkyō (1956), il vient à Munich travailler auprès de Stockhausen la musique électroacoustique. C'est alors qu'il rejoint Fluxus – un groupe d'artistes qui se réclame de Dada pour mieux réagir aux ruines morales laissées par la Seconde Guerre mondiale.
La première composition fluxiste de Paik, la Sonate no 1 pour violon solo, consiste à briser sur un pupitre un violon, devant l'auditoire. Sa seconde œuvre remarquable, dans le même désordre d'idées, se présente, en mars 1963 à la Galerie Parnass de Wuppertal, comme un orchestre de treize téléviseurs déréglés. Au lieu de diffuser des images, ils exhibent des zébrures, provoquées par l'injection d'une fréquence sonore dans leur tube cathodique. « J'ai inventé la télévision abstraite », déclare fièrement celui que l'on n'allait bientôt plus nommer que « le pape de l'art vidéo
En 1964, Nam June Paik part pour New York, afin d'être plus près du cœur de Fluxus, qu'incarne le Lituanien George Maciunas (1931-1978). Ayant entre-temps abandonné la musique (non sans s'être autoproclamé « le plus mauvais pianiste du monde »), Paik invente au Japon, avec l'ingénieur Shuya Abe, un des premiers synthétiseurs vidéo (1969-1970). Avec cet instrument, il colorie et déforme les images des caméras, les modifiant parfois en les soumettant aux paramètres des sons. Commence alors pour lui une carrière de défricheur de form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2pYAUppfiXk
[백남준, 굿의 예술화 현대화 실험]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http://omn.kr/bksi 사진 ⓒ 최재영
"초기 행위음악에서 플럭서스 해프닝을 거쳐 비디오 아트에 이르는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사상적 통찰과 상상적 미학 실험의 산물이며, 소통과 참여라는 그의 진취적 예술이념 역시 자신의 의식 속에 내재하고 있는 동양정신과 깊게 맞닿아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샤마니즘은, 백남준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주와 인간, 자연과 인간, 이승과 저승의 소통과 조화를 신봉하는 샤마니즘적 사유방식에 대한 참조, 그 문화적 기능과 의미에 대한 숙고를 통해 대중 소통, 관객 참여, 나아가 전 지구적 문화교류를 추구하는 상호성의 예술을 개념화한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무속과 해프...닝, 샤마니즘적 ‘마술’과비디오 ‘미술’, 구체적으로는 샤마니즘과 백남준 예술의 유추를 상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첨단의 테크노 문화와 고전 동양사상 사이의 동질성과 차이를 인식하고백남준 작업에 나타나는 아시아성 또는 한국성을 이해할 수 있다. 샤마니즘과 비디오 아트는 영험적 초자연 세계와 물질적 자연세계,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매체적 기능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고인간 주체와 자연 대상의 소통을 증진시킨다는 유사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텔레비전과 비디오 작업으로 새로운 영상미학을 제시한 백남준의 매체실험을 신화를 전수·재현하는 샤먼적 행위의 실천에 비견할 수 있는 한편, 샤머니즘을 문화의 차이를 넘어 교감의 형식과 가능성을 추구하는 백남준 예술의 은유로 파악할 수 있다.
백남준은 샤머니즘 세계관에 입각하여 인류의 기원과 역사를 해석하고, 한국의 선조를 샤머니즘 신화에 결부시킴으로써 몽골, 우랄알타이계의 아시아 정체성을 강조한다. 또한 1963년 자신의 첫 개인전이자 비디오 아트의 효시가 되는 역사적인 전시회인 <음악의 전람회>(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화랑)에 방금 잡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황소머리를 내걸어 주위를 경악시킨 샤먼적 행위 역시 유럽의 아방가르드화단에 자신의 뿌리를 알리는 일종의 인종적, 민족적 선언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차대전 중 중앙아시아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타타르 족의 보살핌으로 회생한 후 샤머니즘에 경도된 요셉 보이스에게 분신과 같은 혈육애를 느끼고, 그가 죽은 후 추모굿(1990년 현대화랑)을 열어준 백남준의 정서를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홍희의 굿모닝 미스터 백 중에서
대가집 자손으로 어려서부터 굿판을 보고 자라난 백남준에게 굿판과 같이 떠들썩하고 혼란스러운 해프닝은, 존 케이지와의 인연이 ‘운명적’이듯, 어쩌면 백남준을 위한 운명적 장르였는지 모른다. 백남준은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작품을 만들 때 무의식으로 만들지만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것은 무당이다. 매년 10월이 되면 어머니는 1년 액을 때우기 위해 무당을 부른다. 24시간 해프닝이 된다. 혼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밤에 이루어지는 예술. 그것도 그녀의 예술이 된다. (중략) 무당은 돼지머리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춤춘다. 그 리듬은 중국 아악 리듬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의 리듬은 싱코페이션이 있는 삼박자로 3박자, 5박자, 7박자로 이어지는 홀수가 많다. 내가 작곡하면 거의 3박자, 5박자가 되던 것은 결국 나의 예술은 한국의 미술, 그 중에서도 민중의 시간예술, 춤, 무당의 음악에 가까운 것이다.”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의 보이스 추모굿 장면 중 처음 보는 것 사진출처 갤러리현대
그러면 무속 신앙을 물려받고 무당의 제식에 익숙한 백남준은 자신이 택한 예술 장르, 해프닝과 비디오 아트를 통하여 무엇을 추구하며 그것은 결국 무속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해프닝은 전통예술개념을 부정하는 인터미디어와 비고정성 개념으로 참여 이상을 실현한다. 미술과 연극의 인터미디어이자, 시간과 공간의 비고정적 환경인 해프닝 환경에서 관객의 역할은 수동적 감상자에서 능동적 주체로 전환되며, 자신을 ‘지금 여기’의 미학적 요소로 상정한다. 비디오 역시 해프닝으로부터 이 두 개념을 전수받고 있지만, 매체의 특성상 이 두 개념이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즉, 비디오는 인터미디어의 총화로서, 회화적 이미지와 조각적 오브제,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의 중간형태일 뿐 아니라, 예술과 기술,예술과 유흥 사이에 위치하며 우리의 인생과 생활에 개입한다.
비디오 이미지는 또한 전자적 운동으로전개되는 이미지의 흐름이 비고정적 이중 장면을 창출하고, 그 이중 장면의 이중성이 특수한 양태로 보는 이의 지각적 반응을 일으킨다. 말하자면 피드백 미캐니즘으로 생물학적 차원의 관객 참여가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이러한 관객 참여 이슈는 비디오를 대중문화, 대중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이렇게 관객 참여로 상호연결되는 해프닝과 비디오는 라이브 아트, 즉 예술과 인생의 통합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며, 인생 장르적 반예술 실천으로 전통재현예술의 위상을 훼손시킨다.
보이스추모굿에서와 같이 굿과 퍼포먼스의 결합이 시도되기도 한다. 해프닝과 굿판의 유사성을 비교해보면 백남준 예술이 얼마나 샤머니즘 전통과 결부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선 해프닝은 집단참여 예술로서, 굿은 민중적 기복이나 집단정화를 위한 사회적퍼포먼스로서 소통과 참여의 맥락을 같이한다. 예컨대 해프닝의 능동적 관객처럼, 굿판의 구경꾼은 제관으로 뽑혀 신내림과 접신의 엑스터시를 경험하며 행사의 일원이 된다.
또한 무복, 무악, 무화, 무가, 무극, 무담, 무언 등의 총체적 문화집합으로 이루어지는 굿은 음악, 미술, 연극 등 다장르 사이에존재하는 인터미디어로서의 해프닝 형식과 유사하며, 굿판의 현장성과 장소성은 시공적으로 비결정적인 해프닝의 현장미학에 비견될 수 있다. 이처럼 해프닝과 굿은 관객참여 양상, 인터미디어 형식, 비결정성의 미학에서 공유점을 갖는데, 바로 이러한 점들이 관객을 분리시키고 각본에 의존하며 타장르들을 위계적으로 종합하는 연극, 오페라와 같은 전통공연예술과 다른 점이다.
해프닝과 굿의 이러한 양식적 유추를 통해 비디오 아트와 샤머니즘의 매체적 환유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해프닝의 비결정성미학이나 인터미디어 양식이 비디오 아트로 연장되고, 관객 참여 이슈가 비디오에서는 기억을 담보하는 생태학적 차원의 참여나 사용자 친숙형의 인터페이스 미캐니즘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이나 가상현실의 발전이 미디어를 영매靈媒 현상으로 파생시키는 현 테크노 문화에서 비디오와 샤머니즘은 매체와 영매의 동일한 어원을 환기시키듯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이러한 맥락에서 백남준은 “매체는 중세 신학적 개념으로 신과의 교접을 의미한다. 굿의 기원,무당의 액소시즘은 얼, 몽고말로 영혼을 의미하는 얼이다. 얼은 미디어와의 유사어이며, 미디어는 굿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1990년 7월 20일 뒤로 삼성TV가 보이고 한국인의 생명줄인 쌀을 뿌리고 있다 죽은 영혼를 달래고 새로 부활하라는 메시지다
굿과 해프닝, 샤머니즘과 비디오 아트는 소위 주객체의 인터액티비티 개념으로 상호연결되는데, 장르적으로 보면 해프닝, 비디오 아트, 무속굿은 모두가 시간성에 기초한 시간 장르라는 점에서 미학적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해프닝, 비디오 아트, 굿은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일반적 의미의 시간 장르가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잡아두거나 역류시키는 특수한 시간 장르라는 점에서 의미 심장하다. 그것은 마치 꿈의 시간처럼 비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비맥락적인, 우리를 공리적인 좌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비합리적인 시간성으로 그것이 관객에게 새로운 지각 경험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의미를 갖는다.
백남준은 ‘지금 여기’라는 현재성과 함께 동시성, 통시성을 담보하는 해프닝, 비디오의 시간성에 주목하면서 현재 속에서 ‘생’으로 진행되는 퍼포먼스나 비디오 생방송 예술의 의미를 강조한다. “생예술은 인간의 불가항력적 요소들을 그대로 반영하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같이 우연과 사고를 동반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 탄생, 죽음 같은 중요한 일은 일생 단 한번 일어나듯, 생예술의 의미는 그것이 똑같이 되풀이 될 수 없다는 일회성에 있다"
"Das Kapital Raum 1970-1977" and passes it on permanent loan to the National Gallery. But it is there to stay? 26/02/2015, by Julia Voss Auf dem Höhepunkt seines Ruhms: Joseph Beuys bei der Einrichtung des „Kapitals“ im Zentralpavillon der Biennale, Venedig 1980 © ZANNI/RCS/CONTRASTO/laif
백남준의 유작 <엄마>
백남준의 유작 <엄마> 서양의 차가운 기계문명을 한국의 엄마가 포근히 품어 안아 주는 작품이죠 서양을 안은 동양의 따뜻한 품이다 세계평화의 꿈이 서려있다 15일 백남준의 유분을 갖고 방한한 백남준의 장조카 켄 백 하쿠타씨는 "19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두루마기는 뉴욕에서 휠체어를 타고 고미술상을 다니다 본인이 마음에 들어 구입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백남준 시대의 예언자이자 철학자
시대의 예언자이자 철학자로서의 백남준 뒤 칠판에 보니 자본주의 종말의 날은 올 것인가가 되로 보인다
백남준의 비디오 꽃
1990년 초에 이 작품이 시리즈 작품 비디오로 꽃을 피우다 사진 이정성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개념의 전자벽화
[사진출처] https://www.facebook.com/jungsung.lee.3?pnref=story 사진 이정성
부산 시립미술관 옆에 그의 미술관이 생겼다 "예술적 삶은 일상에 자극을 주고 울림을 주는 외로운 길"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 '돌'이다. 수십억년의 시간의 덩어리랄까. '철'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철판'은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졌다" 자연(돌)과 문명(철판)의 만남과 조응이 그의 일관된 주제이다 청바지에 재킷을 입은 이우환 모습 보기가 좋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회화전]
[이동기〈겨울〉등 추상화전]
이동기 〈겨울〉 캔버스에 아크릴릭 90×90cm 2014
[사진출처] http://amadoart.org/?page_id=34&hc_location=ufi
[서용선전 유토피아의 지연 도시그리기] 학고재와 금호미술관
서용선전시 표스터
호주에서 그린 작품 그래선가 색채가 밝고 호주의 햇살은 정말 사진에서 보면 눈부시다 작가에 온몸을 파고드는 햇살에 서용선 작가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 일그러진 표정은 같아 보이나 그 색채만큼는 눈에 보일 정도로 환하고 투명하다
서용선의 천재성이 번쯕이는 드로잉이 인상적이다
작가와 작품이 너무 닮았죠 아카시아나무라고 한다
한국근대사의 비극연대기를 한폭에 작품에 다 담고 있다 꼭 순경이나 경찰 혹은 군인이 등장한다. 서용선 작가 최근에 상을 연연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격과 형과 틀을 파괴하는 언제나 실패할 수 있는 모험적이고 파격적인 작업을 많이 하신다 이 작품은 실제로 봐야 정말 깊은 울림과 전율이 온다 이렇게 실감이 가는 역사화도 드물 것이다
서용선 작가의 나무조각 독일풍 표현주의를 연상하기도 하지만 역시 후기인상파 이후에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나라마다 다른 표현주의가 유행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 파리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독일의 유명한 화가 <마르쿠스 뤼페르츠회고전> 작품을 생각나게 한다
[자가해체 8: 신병(神病 쉽게 말하면 샤먼) 멕시코작가 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1968-)] 아트선재센터 1층 2층 3층 2015.04.11-07.26까지
하나의 자전거를 세우기 위해서 이 많은 잡동사니가 필요한가요 하여간 매우 현대적이고 전위적이고 기존의 질서를 해체시키는 통쾌함을 주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2015 아트선재 프로젝트 #1: 홍원석 – P.S. I LOVE U (2015.4.17 – 5.10)]
2009년 갤러리현대에서의《Window Gallery》, 2013년 서울시창작공간 문래예술공장의 MAP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되어 《문래일기-새나라자동차프로젝트》외 총 8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2013년 경기도미술관에서의《생생화화/生生化化》전, 토탈미술관 에서의《UP-AND-COMERS: 신진기예》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하였으며, 최근 경기창작센터와 고양레지던시, 독일 Kulturamt Frankfurt am Main Artist in Residence 국제 교환 입주 프로그램, 창동레지던시 지역연계 프로젝트 등 다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이정규 개인展] '신비한 자연으로의 여행' 8번째 개인전 통인옥션갤러리 2015.04.22-05.11
히말라야 봉우리를 담은 작품 '신비함(Mysterious, 60.6x72.7cm, 2008)'은 검은 바위와 흰 눈이 대조미를 이루다 청명한 히말라야 하늘과 산의 봉우리가 만나 빚어낸 자연풍경은장엄하고 자연의 강력한 기운과 에너지를 분출시킨다 [작가소개] 198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미대 대학원(MFA PA) 졸업 1982년 뉴잉글랜드대학 졸업 1977 홍익대 2학년 수료 1983-1985 Asian Cultural Council Fellowship Award NY 1985-1991
하늘로 치솟는 상승과 함께 하강의 아름다움이 이 작품에서 꼼꼼한 필력으로 관객의 마음까지 파고든다
[김진 展] Isolated Garden 고립된 정원:낯설지만 소통을 갈망하는 공간 @ 아트팩토리 서울 2015.04 08(sat)-2015.04.28(tue) 월요일 휴관
아트팩토리는 4월에 약 한달 간 김진 작가의 <Isolated Garden>전을 연다. 김진은 작가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하여 정체성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작가가 속해 있는 공간, 그 공간 안과 밖에서의 인간관계, 그리고 창(窓)이라는 이중적 장치를 통해 관계의 소통을 다룬다. 서로 유기적인 속성을 가진 이미지들은 서로 간의 경계를 유지하며 변형된 실존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전의 <N_either>연작에서는 다양한 색의 레이어들이 중첩되어 화려한 붓 터치 안에 작가의 심리적 긴장이 최고조였던 과거가 숨겨져 있었다.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 반한 소통의 부재는 사회전반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확장되고 개념화되어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 <...N_either>의 모호한 경계를 드러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간 <Isolated Garden>은 최소한의 공간 드로잉과 모노톤, 검정색의 붓터치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신작 (Isolated garden15101~Isolated garden15100) 10점은 창의 개념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김진의 작품은 드로잉에서부터 시작된다. 작가 특유의 강렬하고 세련된 필력과 추상적이고 즉흥적인 드로잉을 통해 그 존재가치를 부여하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인간이 겪는 고독과 회의를 상기시킨다.
또한 공간 주변에 선으로 재배치된 공간들은 이전 작품보다 더 다양한 공간을 형성하고 빛과 색이 합쳐진 붓질로 담아내어 은근한 긴장을 자아낸다. 그의 화면에는 화려하면서도 강렬한 색과 빛이 함께 두드러지며, 우리의 시선은 그의 색이 닿아있는 화면 전체로 그 범위가 확대되어 화면 구석구석 배어 있는 작가의 감수성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김진에게 있어 회화는 곧 그의 눈에 보이는 대상들을 분해하여 색과 선으로 겹겹이 포개어 펼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행위이고 공간은 해체하고 분석하는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그에게 공간은 개인의 서사들이 얽혀 또 다른 역사를 생성하는 곳이며 작가와 관객 간의 상호교류를 가능케 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곳으로 생성된다.
이번 전시 <Isolated Garden>은 공간에 중첩된 레이어들로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신비감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하여 공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다시 말해, 그에게 공간은 개인의 서사들이 얽혀 또 다른 역사를 생성하는 곳이며 작가와 관객 간의 상호교류를 가능케 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곳으로 생성된다. 이번 전시 <Isolated Garden>은 공간에 중첩된 레이어들로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신비감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하여 공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관객과 소통되어 함께 융화되길 바란다. -문예슬(아트팩토리 큐레이터)
독일 유명화가 <마르쿠스 뤼페르츠회고전> 드디어 파리시립미술관에서 140여점의 회화를 선보이다
In the German painter, to which the Museum of Modern Art of the City of Paris a retrospective, bronzes and paintings, rid of superfluous tend towards a common abstraction. How to approach a giant painting, German moreover, without falling into simplistic associations, too historical readings and repetition? Sculpturally, meets Julia Garimorth, Commissioner Markus Lüpertz epic in the Modern Art Museum of the City of Paris Sans titre (détail). Crédits photo : © ADAGP, Paris 2015
<쉬어 가는 코너> 419혁명 아침에
미국도 그렇지만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의 역사적 근거(뿌리)는 바로 프랑스대혁명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근거는 바로 31항쟁과 419혁명이다. 헌법전문에 나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31운동(movement)는 잘못된 표기다. 식민사관이다. 정확한 용어는 31항쟁(uprising)이다.
419, 55주년 아침에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초등학생의 419시이고 그리고 김수영과 신동엽이다.이어령선생도 훌륭하지만 김수영시인과 비교하기는 그 차원이 다르다 당시 두분의 논쟁도 있었지만 김수영시인 이렇게 잘 생긴 시인도 있나싶다. 그는 625때 그가 거제도포로수용소에 끌려가 있을 때 자신의 친구와 살림을 차렸던 수복후 김수영은 그의 부인을 받아들였다 그의 설움의 원인은 여기에도 있다. 그리고 이일로 그는 평생 연애시를 쓰지 못했다.
김수영시인이 도시적(global) 시인이라면 신동엽시인은 전원적(l...ocal) 시인이다. 백제의 고결한 영혼을 품은 한국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신동엽이 김수영보다 한수 위다. 정지용시도 그렇지만 시에서는 전라도가 최고라고 하지만 충청도가 또 한수위다. 그러나 문명사적으로 보면으로 보면 김수영이 또한 신동엽보다 한수위다. 김수영은 신동엽을 보고 세계적 발언을 할 줄 아는 위대한 시인이리고 칭송했다
나는 419혁명때 마산에 있었다 그해 마산에는 315시민항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경찰들이 쏘는 총소리며 최류탄 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정말 내 생애 처음 민주주의 경험이었다 315일 김주열 학생이 경찰이 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앞바다에 떠올랐기 때문에 마산시민들 일제히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아 2015.04.16
세월호 참사 1년이군요. 돌아가신 분들 영령에 머리 숙이고 신의 가호와 하늘의 위로가 있기를 빕니다. 그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돈과 권력과 명예보다 최우선적으로 인간의 생명이 가장 먼저이고 소중하다는 인류보편의 진리를 다시 자각하고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정부만 그들을 죽인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도 역시 그 일에 공모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고귀한 죽음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국가안보보다 훨씬 국민안전이 중요한가를 집단 학습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국민의 계약서인 헌법에 보면 정부의 존재이유 중 첫 번째가 바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런 일을 최우선적으로 하지 못하면 그 정부는 물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구선진국에서 보듯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세제를 통해 국민의 교육권과 건강권을 지켜야 합니다. 그 나라가 잘 되려면 먼저 건강해야 하고 그리고 잘 배워야 합니다. 특히 21세기 정보지식에는 더 그렇습니다. 이를 위해 당연히 사회지도층이 더 세금을 내야합니다. 그래서 獨·佛처럼 대학까지도 무료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건강보험도 강화돼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형태의 사회적 복지도 확대해야 합니다.
[1] 후안 무노스 인간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조롱 혹은 희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전시를 한 적이 있는 후안 무노스 인간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조롱하거나 희화하면서도 동시에 연민과 애정을 가진 작가라고 할까 그의 조각들은 그런 면에서 이중적이고 환상적이고 착시적이다 Juan Muñoz (June 17, 1953 – August 28, 2001) was a Spanish sculptor, working primarily in paper maché, resin and bronze. He was also interested in the auditory arts and created compositions for the radio. He was a self-described "storyteller" In 2000, Muñoz was awarded Spain's major Premio Nacional de Bellas Artes in recognition of his work; he died shortly after, in 2001.
[2] 미래의 종교건축 이모저모 아래 제주도
미래의 종교건축 이모저모 아래는 제주도네요 Church of Water and Light by Itami Jun Architects, Seojopu, Jeju Island, South Korea, 2009. Photograph: Shinichi : Sato Religion continues to inspire some of the world’s finest buildings, but these stunning non-traditional places of worship – from the South Korean Church of Water and Light to an award-winning Islamic cemetery in Austria – have rejected old-fashioned architecture and turned towards the light. Sacred Spaces, a new book published by Phaidon on 20 April, sings their praises
[사진출처] www.theguardian.com/artanddesign/gallery/2015/apr/14/future-of-religious-architecture-in-pictures?hc_location=ufi
[3] 동시대회화 같은 선사시대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
동시대회화 같은 선사시대 프랑스 쇼베 동굴의 벽화 이런 작품을 보면 21세기 미술이 무색하다 Crédits : REUTERS/ROBERT PRATTA
En savoir plus sur www.lemonde.fr/sciences/portfolio/2015/04/10/la-replique-de-la-grotte-chauvet-en-12-images_4613423_1650684.html?hc_location=ufi
[4] 자코메티 <사람연작>
자코메티 <사람연작> 미술옥션에 처음 등장 굉장한 가격으로 거래될 예정
Giacometti’s Pointing Man.COURTESY CHRISTIE’S
[사진출처] www.artnews.com/2015/04/15/giacomettis-lhomme-au-doigt-coming-to-auction-for-the-first-time-could-become-most-expensive-sculpture-ever/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우리시대의 자화상]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이보다 더 잘 그릴 수는 없다 초록이 참 우아하네요 Head of a Man, 1960, by Francis Bacon. Photograph: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All rights reserved, DACS 2015
[사진출처] 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5/apr/14/francis-bacon-and-the-masters-review?hc_location=ufi
독일의 사르트로 귄터 그라스 사망
- 그의 유언 "시민의 직업은 입을 여는 것이다" The job of a citizen is to keep his mouth open.
독일의 사르트르라고 할까요 그라스는 항상 논쟁의 한 가운데 서 있는 투사와 같은 인물이었죠 독일에서는 국민시인이라고 불리지만 그는 항상 말로 싸움을 거는 사람(Süddeutsche Zeitung)이었다고 독일에서도 평가한다. 그는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 87세로 사망 그는 말했다 나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긴 이 말처럼 조국을 사랑하는 말도 없다 Günter Grass, « poète national » à « l’esprit querelleur
En savoir plus sur http://www.lemonde.fr/culture/#GB43BUOdqzIrld2O.99
[사진출처] http://www.lemonde.fr/culture/article/2015/04/13/mort-de-gunter-grass-prix-nobel-de-litterature_4615011_3246.html?fb_ref=Default
[사진출처] http://www.theguardian.com/books/booksblog/2015/apr/13/gunter-grass-in-quotes-12-of-the-best?CMP=share_btn_fb
독일에 이런 인물이 나왔다는 것은 지금이 독일의 전성시대임을 암시한다. 그의 이력 중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뒤셀도르프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하다 The Nobel Prize winner Günter Grass died on Monday morning at age 87 in a hospital in Lübeck. The announced via Twitter Grass' publisher Steidl. Display Since the worldwide success of his novel "The Tin Drum", which appeared in 1959, Grass was considered one of the most important authors in the world. For the groundbreaking book that over three million copies sold and was translated into 24 la...nguages, he also was awarded the Nobel Prize for Literature in 1999. Grass was born on October 16, 1927 in Gdansk, where he went to school. In 1944, he was drafted into the Air Force auxiliary, after wounding a soldier he was until 1946, the American prisoner of war in Bavaria. 1947/1948 he completed a mason apprenticeship in Dusseldorf and then studied from 1948 to 1952 graphics and sculpture at the Düsseldorf Art Academy. Until he published in 1959 with "The Tin Drum" his first novel
[사진출처] http://www.spiegel.de/kultur/literatur/guenter-grass-ist-tot-a-1028275.html
귄터 그라스 역시 지식인답게 2012년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조치를 비판하는 시를 쓰기도 했군요 2012년 독일 신문에 발표한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이라는 시에서 이스라엘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과거사를 가진 독일인으로서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공개 비난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사항이었다. 이후 그라스는 유대인 단체들로부터 맹렬히 비판받았다. 2006년 베를린 국제펜클럽대회 연설에서는 당시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과 전쟁을 주도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두고 “마치 총을 찬미하면서 바이블을 들고 먼 나라까지 죽음을 나르는 성직자들과 같다”고 비판했다.
In 2012, Mr. Grass found himself the subject of further scrutiny after publishing a poem criticizing Israel for its hostile language toward Iran over its nuclear program. He expressed revulsion at the idea that Israel might be justified in attacking Iran over a perceived nuclear threat and said that it “endangers the already fragile world peace [사진출처] http://www.nytimes.com/2015/04/14/world/europe/gunter-grass-german-novelist-dies-at-87.html?smid=fb-share&_r=0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자만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귄터 그라스 © photothek.net
나는 일본의 초청을 3번이나 받았지만 과거청산을 안 한 나라는 안 간다. 한국에는 가겠다 문학강연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이야기를 하러 가겠다 나는 독일의 통일을 반대한다. 나는 결코 흡수통일방식의 독일통일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귄터 그라스
귄터 글라스에 대한 독일문단의 평가는 이렇다. "그는 잘 길들여진 독일문단에 나타난 야생의 괴물이다
남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착취하는 시대에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일이 놀이가 되고 유희가 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다보니 삶이 축제가 되지 못하고 삶이 지옥이 되고만다 이런 관점을 귄터 그라스의 문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삶을 즐기는 페시미스트라는 평을 듣는 이유다
삶을 즐기는 페시미스트인 권터 그라스는 45년 독일 폐허를 기리며 춤을 추는 작가다 그는 뒤셀도르프 미대를 나온 작가인데 한국에 와서 남대문 시장 할머니에게 당신의 얼굴을 그려도 되느냐고 묻는다. 그 할머니의 주름살에 한국의 근현대사가 다 담겨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거절함으로써 안타깝게도 그의 펜화는 탄생하지 못했다 [사진출처] http://www.seoul.diplo.de/Vertretung/seoul/ko/01/diverses__DE/Grass-s.html
인사동 수문장인 <석장승>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해체된 지 1년 되다
- 종로구 문화과 이성우 계장님에게
북인사동 입구 석장승
북인사동 입구 석장승 복원에 건의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났군요. 제가 3번이나 종로구청을 방문했지만 문화과과장이 자리에 안 계서 그를 만나기는커녕 통화 한 번 제대로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도의 수도인 종로구청의 행정의 이렇다니 놀랐습니다. 어떻게 서울의 센터인 종로구에서 이런 행정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반인도 아니고 기자인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급이 낮은 행정서비스를 받다니 제가 서울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전혀 가질 수 없습니다.
제가 문의한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받은 유일한 정보는 해체된 석장승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뿐입니다. 왜 어떤 법에 근거해 문화재적 관점 전문적인 관점을 반영해서 그 석장승을 해체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게다가 도대체 어떤 단체가 그걸 건의했는지 조차 알려줄 수 않다니 기사를 쓸 수가 없고 이것은 그것을 떠나서도 시민의 알 권리를 완전 무시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4년을 잡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석장승 할아버지 서 있던 북인사마당. 2009년 5월20일사진. 풍류객의 피리 부는 모습이 멋지다 당분간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박원순시장에게로 넘어갑니다. 요즘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안승문 선생이 박원순시장의 교육자문이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고 승효상 건축가도 서울시 건축위원회에 책임자로 선정하는 등 탁월한 인사행정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볼 때 석장승 복원문제에 있어 완전 빵점입니다 소통·소통·소통을 그렇게 많이 강조하신 박원순시장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 불통·불통·불통입니다
<참고사항 전 오세훈 시장 때 2009년 석장승 해체되어 제가 기사를 통해 공개로 건의해서 복원되었는데(정상적이지는 않지만 복원됨) 박원순 시장이 되어서 다시 2014년 석장승이 4월 해체되어 바로 복원을 종로구청에 가서 직접 건의했으나 1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입니다
[인사동 석장승은 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나] - 관련 오마이뉴스 http://bit.ly/6PRb4c
2009년 오세훈 시장 때 석장승이 해체되었는데 석장승 복원을 건의한 기사, 이 기사가 나간 후 석장승 복원
[윤동주시비를 찾아보다]
[뉴욕은 미국이 아니고 하나의 독립된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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